네가 진정 원하는 건 열린우리당의 의회권력 쟁탈 그 자체가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열린우리당의 다수당화는 정치개혁, 올바른 나라로 가는 수단일 뿐이고, 정말 제대로 된, 상식이 통하는 한국을 건설하는데 일임이 될 세력을 지지하고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극단적인 천민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정상적인 시장경제가 낮은 곳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뿌리치지 않으면서 발전해 나가는 나라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정치적 의사를 강하게 펼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건 그간 내가 너와 나눈 대화로 내가 유추해 낸 이야기일뿐이다. 이에 적잖게 동의한다면, 네가 지지해야할 곳은 열린우리당이 아니라 생각한다.


딱 이태 전 총선을 코앞에 두고 mannerist 선배님께서 내게 해주신 말이다. 나는 총선이 임박하자 메신저 대화명으로 “한나라당 찍으면 전여옥이 국회의원 된다”와 “우리당을 도와주세요. 탄핵 세력 부활을 저지합시다” 같은 문구를 썼다. 선배님은 묵시론을 퍼뜨리고 있다고 타박하셨고 나는 그 지적에 거개 동감하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뭐 그 때의 해명을 다시금 꺼내자면 나는 열린우리당 지지 호소보다는 또래친구들의 투표 참여에 더 열심이었지만 말이다.^^;


문득 2002년 지방선거 운동 과정에서 민주당 김민석 후보와 민주노동당 이문옥 후보를 놓고 벌어진 옥석논쟁이 떠오른다. 진중권 선생님은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한 대동단결(?)에 동참하라는 강준만 선생님을 위시한 민주당 지지자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지방선거를 대통령선거와 연계하지 말라는 진중권 선생님의 주장은 적절했다. 진중권 선생님의 논변에 손을 들어주면서도 만약 그 때 한 표의 권리가 있었으면 김민석에게 한 표를 던졌을 내 자신의 모순이 당혹스러웠다. 결과론적 이야기지만 김민석이라는 사람이 생각보다 더 시시하고 비루해서 더 무참하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도 진중권 선생님의 바람이 실현될 공산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는 서울시장 경선에서 “이번에 서울시장을 열린우리당에 내주면 대선은 없습니다”, “한나라당 대통령을 만드는 서울시장이 되겠습니다”고 공언했다. 후보로 확정된 뒤에는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지방선거에 임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정권 교체의 초석”이 되겠다는 외침에 더 무게중심이 가있는 듯하다. 결국 또 한바탕의 묵시록이 재연될 판이다.


나 또한 강준만 선생님의 지적 세례를 적잖이 받은 몸인지라 한나라당의 집권을 저지하는 것이 소극적 진보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믿었던 적이 있다. 한나라당에 대한 증오가 대체로 옳다고 믿었다. 지역주의에 대한 혐오를 고스란히 한나라당에 대한 적대감으로 표출했다. 이런저런 성장통을 겪으며 나는 조금 세련되어졌다. 세상을 두부 자르듯이 재단하기를 두려워하게 되었고 인생은 건곤일척의 단판승부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남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내 부박함을 먼저 돌아보게 되고 남의 허물을 내 보신책으로 삼는 것에 신중해졌다. 미움과 구역질 대신 부끄러움과 연민이 늘었다. 다만 내가 믿고 의지하는 가치들이 자랑할만한 것이 되도록 하고 싶다는 소망은 품어 본다.


'집권'을 해야만 진보하는 게 아니다. 집권해도 퇴보할 수 있고, 집권 못해도 진보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사회를 한 발짝씩 앞으로 전진시키는 이들은 특정 정당의 집권이 아니라 권력과는 관계없는 누추한 실천을 통해 그 일을 하고 있다. 집권에 목매지 말라. 집권은 진보를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꾸준하게 원칙을 지킴으로써 신뢰를 얻을 때 비로소 미친 넘 널뛰듯 하는 '민심'이 아니라, 지속적이며 안정적인, 진정한 의미의 정치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중략)

민주당의 정체성을 위해 어차피 떠날 사람들은 빨리 떠나야 한다. 집권을 못 해도 실망할 것 없다. 세력이 적어진다고 좌절할 필요 없다. 희망은 다수에 있는 것도 아니고 집권에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사회의 희망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지켜야 원칙을 지키며, 지켜야 할 자리를 지키는 그 사람들에게 있다. 그렇게 남은 사람들의 수, 그것이 우리 희망의 양이며, 그렇게 남은 사람들이 간직한 소신, 그것이 우리 희망의 질이다.

진중권, 「너희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오마이뉴스 2002-10-17


진중권 선생님의 위의 글이 큰 울림을 준다. 그간 양을 중시하느라 소홀히 했던 질의 가치를 절실히 느낀다. 희망의 양뿐만 아니라 질도 중요하다는 양식을 애써 외면한 것 같아 무안하다. 나는 좀 더 섬세해졌지만 한편으로는 대범해졌다. 드라마 신돈에서 큰스님으로 나오는 월선 스님의 주옥같은 말씀을 여러 번 읊조리니 콧잔등이 시큰하다. 희망은 기다림이며 권태와의 싸움이다. 지치면 좀 쉬었다 가고, 막히면 느긋이 기다리고, 엎어지면 찔끔 울자. - [小鮮]


편조야. 부처님께서도 꿈을 꾸신 게야. 그런 아름다운 세상이 당장 온다고 믿으셨겠느냐. 꿈을 꾸셨겠지. 부처님의 꿈이 아름다우니 우리가 그 꿈을 믿고 의지하는 게 아니겠느냐. 천년 넘게 기다렸으니 천년을 더 기다리지 못할 까닭이 무엇이 있겠느냐.
Posted by 새우범생

Trackback Address :: http://ikgu.com/trackback/932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