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9/29 인간도 위하는 동물해방
  2. 2009/09/02 역사의 비정함을 덜어가기

지난 삼월 초에 ㅊ역에서 놀라운 게임기를 발견했다. 집게발이 달린 뽑기 기계에다 물을 채우고 바닷가재를 넣어 두었다. 불결한 공간에서 괴롭힘을 당하며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던 바닷가재가 너무 측은했다. 배병삼 선생님의 어느 칼럼 제목인 ‘먹을거리에 대한 예의’가 너무 없는 그 비정한 게임기가 미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종류의 게임기가 한 때 유행처럼 퍼지기도 한 모양이다. 불행 중 다행인지 ㄴ역에서 본 바닷가재 게임기의 수질은 그나마 나아 보였다. 게임기에서 뽑은 바닷가재를 방생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볼 때 어차피 조리될 운명이라면 남은 생애를 굳이 저런 곳에 가둬야할까 싶다. 위생상의 문제 때문에 조리하지 않고 버려지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리라.


문득 광우병이 초식동물인 소에게 도살한 동물의 살과 뼈의 가루를 섞어 만든 사료를 먹인 일과 관련되었다는 조사가 기억났다. 2008년 광우병 파동 때 국민의 건강을 위해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겨진 30개월 미만의 소만 수입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소의 생명을 그만큼 단축하자는 뜻이니 따지고 보면 잔인한 말이었다. 물론 그 당시 시국이 여기까지 검토할 여유를 주지 않았지만 이제는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공장식 사육시스템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에도 차분히 귀를 기울여 볼만 하다. 강명관 선생님은 『시비를 던지다』에서 우리는 “미국이란 강자의 횡포를 통탄”하면서도 “우리 역시 동물에 대해 강자의 횡포를 부리고 있지는 않은가”라고 꼬집었는데 훌륭한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한다.


강 선생님은 이어서 『성호사설』 인사문(人事門) 식육(食肉)편을 인용한다. 성호 선생님은 만물이 사람을 위해 생겨났기 때문에 사람에게 먹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주장에 대한 정자(程子)의 논변을 소개한다. 정자는 사람을 물어뜯는 이[蝨]를 위해 사람이 생겨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모기가 사람의 피를 먹고 산다고 사람이 모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닌 셈이다. 성호 선생님은 “고기를 먹음은 군자로서도 부득이한 일인 만큼, 또한 마땅히 부득이한 마음으로 먹어야 할 뿐이다”라고 역설한다. 성호 선생님이 오늘날의 넘치는 육식을 보신다면 약자의 살을 강자가 뜯어먹는 행위라고 비판했을 듯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절제는 미덕이다.
 

피터 싱어 선생님의 『동물해방』, 『죽음의 밥상』을 읽으며 여러모로 괴로웠다. 육식 애호가인 나는 혀의 만족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당장 육식을 그만 두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육식을 적극적으로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은 듯싶다. 동물의 처우 개선을 바라는 나의 바람은 이토록 시시한 것이다. 이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 잡글을 쓰고 있는 까닭은 채식주의자에도 여러 무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동물성 단백질을 전혀 섭취하지 않는 비건(vegan)만 있는 게 아니라 조류와 어류만 먹는 사람, 어류만 먹는 사람, 우유와 달걀까지 먹는 사람, 우유까지 먹는 사람 등으로 나뉘었다. 마찬가지로 육식을 하는 사람 가운데는 방목된 고기만 먹는 사람, 덩어리로 된 고기는 먹지 않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이런 다양한 층위의 노력을 보고 나도 먹을거리에 대한 예의를 요청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복지 혹은 동물해방은 여러 빛깔이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가령 육식을 하되 깐깐한 사람들처럼 낮은 단계의 동물복지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동물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인간을 위한 것에 가까워 보인다. 분류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동물권리론을 주창하는 분들은 이러한 인간 중심적 윤리를 비판하며 동물을 인간의 이익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이용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천부인권의 개념을 확장한 천부생명권(天賦生命權)이라고나 할까. 아마 강고한 채식주의자들은 동물권리론에 끄덕일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의 이익을 위해 동물을 희생하는 현실은 인정하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자는 동물복지론의 가치가 크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단순히 인간이 안전하기 위해 동물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사고를 뛰어넘어 먹을거리 앞에서 인간의 품격이나 기품을 갈구하는 게 더욱 인간다운 사회로 맞닿는 오솔길이 아닐까 싶다. 결국 동물해방을 인간이 덜 잔인해지는 방편이나 수단으로 삼는 셈인데 일단 이 정도부터 시작하는 것도 유의미한 시도다. 동물보호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HSUS)가 제안했던 고기를 덜 먹고(Reduce), 먹더라도 자연친화적으로 생산된 고기를 먹고(Refine), 가능하면 채식으로 식습관을 바꾸자(Replace)라는 ‘3R’에 이르지 못한다고 크게 자책하지 말자(동물실험의 3R 원칙을 응용한 듯하다). 티비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연산(!)을 얼마나 맛있게 요리하는지 보여주려고 애쓰는 장면을 불편하게 바라보거나, 식당에서 고기반찬을 남기지 않도록 하는 일이 너무 시시하다고 여기지 말자.


19세기 노예해방, 20세기 여성해방에 이어 21세기는 동물해방의 시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 적잖이 동감한다. 한-EU FTA 협상에서 동물복지가 주요 의제로 채택되었고 앞으로의 국제무역협상에서도 제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의 동물복지는 동물이 사육·운송·도축 도중 받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일컫는다. 무역장벽이라는 험담도 들리지만 그런 곳에 관심을 두는 마음자리가 고맙다. 유럽인들이 동물을 사랑하는 현상의 근원이 제국주의 식민통치로 말미암아 쌓인 옹골진 경제적 풍요 덕분이라고 핀잔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제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우리도 선진국의 배부른 소리를 경청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스트레스를 덜 받은 고기가 더 맛있다는 명분(?)도 나쁘게 볼 일은 아니다.


독일은 2002년에 동물에게도 인간과 같은 헌법적 권리를 주는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탈리아의 로마는 2005년에 관상용 물고기의 시력 보호를 위해 둥근 어항에서 살지 않을 권리를 부여했다. EU는 2009년부터 모든 가축 수송차량에 위성추적장치 부착을 의무화해서 수송 과정에서 가축들이 충분한 휴식을 취했는지 점검한다고 한다. 설령 위선일지라도 인간복지를 넘어 동물복지를 고민하는 그네들의 애틋함이 부럽다. 우리네 동물보호법은 아직 동물도 권리의 한 주체라고 보지는 않지만 앞으로 좀 더 그 방향으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동물실험에 대한 윤리성 및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2009년 3월부터 시행한 실험동물에 관한 법률도 반갑다.


개발도상국의 열악한 인권, 보다 가까이는 북한 어린이들의 참상을 틈틈이 목도하면서 감히 동물권을 논하는 것이 온당한지 망설여지기도 한다. 극단적인 동물권리론을 제외하고는 동물을 존중한다면서 인간과 동물을 일대일로 계산하지 않기는 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꼭 인간의 동물의 상충관계만 상정할 이유는 없다. 인간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동물에게 이익을 주는 경우를 얼마든지 가정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의 이익과 동물의 이익이 병존할 여지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맹자』에는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제사에 쓰이기 위해 끌려가는 소를 가엷게 여겨 양으로 바꾸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고사는 인간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딱히 더 이익이 돌아갔다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소 대신 양이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맹자는 눈앞의 소가 죽는 걸 차마 보기 어려운 마음이 어짊을 베푸는 실마리라고 평가했다.


“소는 보았고 양은 보지 못했다(見牛未見羊)”라는 구절에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엿본다. 보지 못했던 양을 덜 불쌍히 여기는 건 너무 자연스러워서 당위적 혹은 합리적 가치를 들이대기 무안하다. 자기 둘레에 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랑한다는 것은 관념에 지나지 않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측은지심을 자기 주변부터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방점을 찍을 부분은 측은지심을 바지런히 넓히는 데 있다. 궁극적으로는 나와 덜 친밀한 것까지 측은지심을 품으려는 정성 말이다. 측은지심이 확산되는 순서는 매끄럽게 정해지기 힘들지만 동물 같이 힘없는 존재에 대한 윤리적 처우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회가 다른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데도 열심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다시 말해 측은지심의 확산이 하나의 중심에서 퍼져나가는 동심원 구조라고 볼 필요는 없다. 게임처럼 1단계를 완료해서 2단계로 넘어가는 식은 아닐 듯싶다. 성차별과 인종차별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고 동물차별 문제를 논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간의 문제를 다 풀고 동물을 보듬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국내 경제가 충분히 성장하면 비로소 북한을 도울 수 있고, 통일까지 이뤄야 국제 구호에 나설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인류가 충분히 평안해진 다음에 동물을 돌보겠다는 식의 엄격한 선후관계는 피해야 한다. 싱어 선생님이 설파했듯이 사람에게나 동물에게나, 친절함과 동정은 다른 감각 있는 존재의 고통에 무관한 것보다는 확실히 나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을 모으더라도 동물복지에 드는 비용이 생산비에 반영되어 개별 경제주체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된다는 걱정이 든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심리적 반발을 극복한 상태라면 약간의 경제적 부담에 대한 두려움은 극복 가능하다. 얼마 전에 영양 성분이 풍부하다고 광고하는 기능성 달걀이 제값만큼의 품질을 갖추지 못했다는 조사가 나왔다. 제조사들이 기능성 달걀이라고 홍보해야했던 이유는 소비자의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동물복지 인증 제품에 대한 인식이 미비한 편이라 관련 제품에 대한 수요도 적다. 로버트 라이시 선생님이 『슈퍼 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와 투자자’로 사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시민’으로서의 가치관을 세우자고 촉구한 바를 곱씹는다. 우리의 건강을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착한 소비, 어진 소비를 위해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기를 희망한다.


‘채식이냐, 육식이냐’라든가 ‘인간이냐, 동물이냐’ 하는 양자택일은 상당부분 허구다. 싱어 선생님은 유인원 같은 고등동물에게 좀 더 나은 대접을 하도록 우선 검토해보자고 제안했지만 우리와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반려동물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해도 괜찮겠다. 가령 사망한 반려동물을 생활폐기물로 취급해 쓰레기봉투에 넣어 처리하도록 한 현행 규정을 개선해 합법적이면서도 저렴한 장묘 방식을 마련하자는 운동이 좋은 예다. 인간과 동물을 차별하는 종차별주의를 반대하는 논거를 숙고할 때 그 설득력 넘치는 논증에 매료되지만 선뜻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동물에게 따스한 시선을 건넬 때 인간에 대한 존중도 더불어 커진다고 믿는다. 우리는 동물해방론에서 논리적 일관성 이상의 것, 즉 인간에 대한 사랑을 키울 수 있다.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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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우범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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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창덕궁 대조전을 거닐다가 새 모양으로 생긴 처마 빗물받이가 익살맞다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내가 마냥 좋다며 흐뭇한 미소를 보내던 빗물받이가 있던 곳은 대조전 부속건물인 흥복헌(興福軒)이었다. 1910년 8월 22일 흥복헌에서는 한일합병을 결의하는 조선왕조의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렸다. 이 사실을 알고 다시 흥복헌 앞에 서니 옥새를 치마 속에 감췄다는 순정효황후의 통분이 느껴지는 묘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소설가 김인숙은 내가 느꼈던 오묘한 감정을 일상에서 체화한 듯하다. 『제국의 뒷길을 걷다』(문학동네, 2008)는 북경이 천하의 수도에서 한 나라의 수도로 내려오는 여정을 묘사한다. 저자는 그 내리막길을 따라가며 어디에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헤집고 오늘날에 주는 함의까지 따져본다. 역사에 대한 입체적이고 총체적 이해가 돋보인다. 기록의 이면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채우려는 시도는 풍부한 사료 검토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더욱 빛난다.


이따금 역사의 물결을 탓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는 개인의 책임을 없애겠다는 속셈이 아니다. 어떤 역사적 귀결의 최종 책임자를 당대 최고의 의사결정자로 삼는 것은 대개 온당하다. 그런데 그 최고 권력자에게 얹어지는 책임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보일 때 필부필부의 가슴은 짠하다. 늘 승전고만 울릴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일까. 김인숙 역시 선통제 푸이의 이야기에서 지은 죄보다 더 과중한 벌이 내려지는 것은 아닐까 안타까워한다.


저자는 중국은 남의 나라 이야기니까 덜 고통스러워서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고 밝힌 바 있지만 그의 눈길은 충분히 촉촉하다. 어쩌면 모든 동정은 나를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중국의 문화유산들이 약탈당할 때 가슴 아파하는 까닭은 중국 근대사의 굴곡과 고스란히 빼닮은 대한제국의 말로가 자꾸 포개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기적인 동병상련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세계시민 의식이 꽃피는 실마리는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수용소에서 양말을 깁고 있는 푸이의 모습이 이 책에 실린 마지막 사진이라는 점은 인상적이다. 저자도 지적하듯이 “두 차례의 침략과 삼전도의 굴욕 등으로 조선에 가혹한 모욕을 주었던 청나라(76쪽)”의 마지막 황제의 안쓰러운 신세를 한껏 통쾌한 마음으로 볼 수 없는 것은 무슨 영문일까. 일세를 풍미했던 인물들이 한줌 흙으로 돌아가고, 욱일승천 하던 기세가 가뭇없이 소멸하는 무상함은 옛 원한을 눅이는가 보다.


고려 공양왕은 폐위당할 때 자신은 본디 임금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여러 신하들이 나를 강제로 왕으로 세웠다고 말하며 울었다. 푸이는 그럴 투덜거림마저 내뱉기 전에 용상에서 내쳐졌다. 아무리 권세를 누렸던 이라도 선대의 죄과를 한 사람이 모두 짊어지는 연좌제는 불편하다. 한때는 우리를 괴롭혔던 이들의 후임자라고 하더라도 그런 연좌제에 고개를 가로 젓는 것이 오늘날을 사는 시민의 양식일 게다. 어떤 시대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받아야 하는 수난을 조금씩 덜어내는 것이 뒷사람의 도리가 아닐까 싶다.


만리장성 아래 깔렸던 원혼들을 비롯해서 억울한 죽음이 무수한데 몇몇 위정자들의 처지를 딱하게 여기는 건 일견 사치스럽다. 기록된 치욕보다 더 많은 수모가 존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록되지 않은 고통까지 추체험하기에 우리는 너무 약다.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랑한다는 것은 관념화된 추상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 곳에서는 애틋함이 배어나오지를 않는다. 이름 없는 민초의 아픔을 추념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인(仁)의 확산이 하나의 중심에서 퍼져나가는 동심원 구조라고 볼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가엾어 보일 때 순서를 계산할 필요는 없다.


저자가 악명 높은 서태후에게도 연민의 시선을 보낼 때 역사에서 개인이 져야 할 책임은 어디까지인가를 곱씹는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청이 패한 것이 서태후가 해군의 군비를 이화원의 증축에 유용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유용이 서태후의 탐욕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서태후에게 아부를 하기 위한 제삼자의 행동 때문이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혹자는 한 푼의 군비도 빼돌려지지 않았더라도 청이 일본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청나라가 좀 더 강력한 해군을 갖추었던들 쇠퇴해가는 길만이 역사의 흐름이라고 한다면 잔인한 말일까. 설령 이런 흐름이 눈에 보이더라도 서태후는 최선을 다해 억지로 거스르려고 했어야 옳다. 그가 머물렀던 자리는 그리 하라고 만든 자리였으니 말이다. 그는 자리에 걸맞은 행동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비난을 감내해야 한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서태후가 마음을 고쳐먹을 수 있을까 상상해본다. 인간에게 두 번의 삶이 없다는 건 차라리 축복이다.


연개소문의 자식들이 골육상잔을 벌이지 않았다면 고구려는 버틸 수 있었을까. 최영과 정몽주가 별다른 실책이 없었더라면 고려를 지켜낼 수 있었을까. 큰집이 무너지려 할 때 기둥 하나로 떠받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목난지(一木難支)임을 알면서도 저항하는 사람들은 무모하다. 하지만 그 무모함이 때때로 눈부시다. 현실 세계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장구한 역사는 지킬 만한 가치를 견지한 사람을 줄곧 외면하지 않음을 되새기는 것이 역사를 읽는 자세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다는 걸 깨닫는 것(18쪽)”이기도 하다.


물론 푸이와 그 둘레 사람들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는 시시한 것이었다. 예정된 실패였던 의화단이 품었던 꿈보다 더 초라한 바람이었다. 청 황릉의 도굴에 비분강개한 마음은 순정한 것이었으나 그것만으로는 선통제가 복위할 명분을 세울 수 없었다. 푸이가 만주국 수립에 협조한 것이 일본의 강압으로 말미암은 것만은 아닌 듯싶다. 그가 만주국 강덕제(康德帝)가 된 것은 단지 일본의 간계에 의한 행동이 아니었다.


푸이의 비극은 제국민을 위한 제국이었다기보다 황제를 받들기 위한 제국을 원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니 제국민의 위한 제국을 꾀했더라도 시대정신은 제국을 거부했으리라. 일본 패망 이후 푸이는 전범 재판을 받고 사상개조라는 명목 하에 갖은 고초를 겪는다. 중국 공산당은 마지막 황제에 대한 예우를 외면하고 가혹하게 다룸으로써 이전 시대와 결별했다. 푸이의 전기에는 자신이 한 사람의 인민으로 거듭났음을 밝히고 있으나 그것이 진심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렇게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새사람이라면 그리 탐스럽지 않다.


역사가 진보한다면 한 시대를 마무리하는 일도 점점 나아져야 한다. “사라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60쪽)”기 때문이다. 아무리 변변치 못한 역사의 끝자락을 잡은 사람이더라도 야멸치게 업신여기는 건 사려 깊은 처사가 아니다. 폐허의 잔해를 수습하는 사람이 전적으로 틀렸다는 보장이 없다. 건곤일척의 승부가 일단락되었다면 승자는 패자의 낡은 생각들을 향해 법적 책임을 넘어선 앙갚음을 하기보다는 자신과 패자 사이의 조심스러운 견줌을 시작해야 한다. 역사의 패자가 서서히 잊힐 여유를 품어서 역사의 비정함을 줄여야 비로소 승자가 될 자격을 얻는다.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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