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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0.08.30 꼽등이 생각

2010년 여름 답사기

문화 2010. 8. 30. 04:58 |

이번 여름은 서울 바깥나들이를 별로 하지 못했습니다. 답사라고 할 만한 것도 없지만 그래도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문화유산에 대한 짧은 감상을 늘어놓겠습니다.


1. 보은 법주사의 쌍사자 석등(7월 11일)


법주사 하면 목탑인 팔상전(捌相殿)을 가장 눈여겨보기 마련입니다. 지난 답사에서는 팔상전 뒤편에 있는 국보 제5호 쌍사자 석등이 가장 인상에 남았습니다. 우리네 돌조각이 대부분 그렇지만 사자는 온화함을 넘어 귀엽고 앙증맞았습니다. 여담이지만 원성왕릉으로 추정하는 경주의 괘릉(掛陵) 앞의 돌사자들은 무서운 눈으로 째려보기보다는 씩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진정한 권위나 오래가는 아름다움은 결코 공포나 폭력으로 조성할 수 없는 것일까요.


한국인에게는 오래 전부터 양순함과 익살맞음이라는 정서가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제멋대로 생각해 봤습니다. 오늘날 예의 넉넉함과 푸근함을 자꾸 잃어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웠고요. 요즘 방영 중인 <제빵왕 김탁구>라는 드라마에서 “착한 사람이 이기는 세상”을 희구하는 닭살이 돋는 대사가 나오는데 천년이 넘도록 석등을 들고 있는 사자들이 바라던 바였는지도 모르겠다고 또 멋대로 상상했습니다.


사자가 한 마리는 입을 다물고 있고, 한 마리는 입을 벌리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안내를 해주신 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은 교(敎)를, 입을 다물고 있는 모습은 선(禪)을 표상한다고 합니다. 찾아보니 시작과 끝의 순환을 의미한다는 등의 다른 해석도 있던데 꿈보다 해몽이겠으나 꽤 그럴 듯하게 들려서 한참을 그 앞에 서있었습니다. 초기 불교에서는 불보살 이외의 자가 성불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뒤에 이르러 일반 중생도 후천적인 수행을 통해 불성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퍼졌습니다. 그러던 것이 종국에는 일체중생은 불성을 지니고 있으며 미망에 가려져 있을 뿐 그것을 떨쳐버리면 성불한다고 말하게 되죠. 이 석등이 세워졌을 시기에는 어떤 생각이 퍼져 있었는지 자못 궁금합니다.


선종(禪宗)에서 말하는 돈오(頓悟)는 인간은 본래 깨달은 존재라는 본각(本覺) 사상에 기반을 둡니다. 따라서 수행할 때 깨달음을 기대하는 태도를 대오(待悟)라 칭하며 경계합니다. 깨달음을 얻고자 헤아리고 따지는 것은 사량분별(思量分別)이라 하여 덧없게 여기죠. 선종의 법맥을 잇는 후계자는 육조 혜능(慧能)이었지만, 저는 신수(神秀)의 게송인 “틈틈이 부지런히 닦고 털어서 먼지가 끼지 않도록 하라(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라는 성찰도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지만 교와 선을 통한 점진적인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점오(漸悟)야말로 저에게 어울리는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고생스럽게 공부해야만 깨달음을 얻는 ‘곤이지지(困而知之)’라는 유가의 용어를 억지로 빌려서래도요.


제 잡생각이 꼬리를 물어서 입을 다문 이판(理判)과 입을 벌린 사판(事判)을 연상해봤습니다. 한 개인이나 어느 사회가 지속하려면 무게중심의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판과 사판 사이의 균형이 긴요한 과제라고 여겨져서요.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이라는 고 김대중 대통령님의 말씀과도 잇닿는 측면이 있는 듯합니다. 지금은 사판의 시대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사판을 연마하면서도 이판에 대한 관심을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뭐 이판사판으로 지내는 제가 할 소리인가 싶지만요.^^; 
 

입 벌리고 있는 사자와 입 다물고 있는 사자(7월 11일 촬영)

잠깐 언급했던 경주 괘릉의 돌사자(2월 13일 촬영)

2. 철원의 승일교(8월 25일)

철원은 38선보다는 북쪽에 있고, 휴전선보다는 남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부터 광복 초기까지는 북한의 땅이었지만 한국전쟁 이후에는 남한의 땅이 된 것이죠. 여담이지만 ‘남한’ 대신 ‘대한민국’이나 ‘한국’이라는 표현이 나을까 싶다가도 ‘북한’을 언급할 때는 ‘남한’이라고 말하는 것이 분단을 인식하고 통일을 지향하는데 좀 더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한민국’이라고 표기하려면 북한의 국호를 온전히 불러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할 것 같아서요. 남북이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아서 정식 국호를 안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라는 비판도 수긍할 만합니다. 어찌 보면 북한이나 남조선은 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나라이니까요.


본래는 철원으로 래프팅을 갈 계획이었는데 비가 많이 내려서 래프팅은 취소되고 숙소 근처를 산책했습니다. 그 덕분에 철원의 지형학적 위치를 설명해주는 문화유산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한탄강 위에 호젓하기 터 잡은 승일교가 그것입니다. 승일교는 이승만의 승(承)과 김일성의 일(日)을 합쳤다는 설과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고 박승일(朴昇日) 대령을 기리고자 했다는 설이 전해집니다. 승일교 초입에 붙은 석판에는 후자의 설명을 기록하면서 ‘북괴’라는 표현을 쓰는데 참 오랜만에 접하는 단어였습니다.


다리의 제작을 두고도 설이 갈려서 안내판에 두 가지 설명을 적어놓고 있습니다. 비교적 널리 알려진 건 북한이 다리의 절반 정도를 만들고, 한국전쟁 이후에 남한이 완성해서 남북이 반반씩 만든 다리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고 보니 다리가 좌우대칭이 좀 안 맞는다는 느낌을 어렴풋이 받았는데 실제로 양쪽의 무지개(홍예) 모양이 좀 다르다고 합니다. 작은 공법의 차이보다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남북 사이에 커져가는 마음의 거리겠지요. 래프팅 명소로 더 유명해진 곳에서 승일교는 통일을 기원하며 서있습니다.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너와 내가 닦고 낸 긴 길
형제들 손잡고 줄지어 서고
철조망도 못 막아
지뢰밭도 또 못 막아

휴전선 그 반은 네가 허물고
나머지 반은 내가 허물고
이 다리 반쪽을 네가 놓고
나머지 반쪽을 내가 만들었듯
- 신경림, ‘승일교 타령’ 中


승일교는 등록문화재 제26호입니다. 등록문화재 제도는 1876년 개항 이후 한국전쟁에 이르는 동안 만들어진 근대문화유산을 효율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2001년 7월 도입했습니다. 그동안은 일제 잔재라는 오명과 개발 광풍 속에서 멸실되기 일쑤였다면, 등록문화재 제도는 오늘이 쌓여 역사가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곱씹게 해줍니다. 등록문화재 제도가 정착된다면 일상의 흔적들에 대한 기록과 보존도 한층 강화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특히 등록문화재에는 성당이나 교회도 적잖이 지정되어서 불교 문화유산에 편중된 우리네 문화유산의 지평을 좀 더 넓혀주는 긍정적 효과도 있습니다.


3. 비무장지대의 태봉국 도성(8월 25일)

‘궁예도성’은 좋은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궁예도성은 궁예를 폄하했던 고려, 조선시대의 지리서나 일제 강점기의 지도에 나오는 말이라고 합니다. 최근 철원군은 “역사적으로 국가가 건국됐거나 천도(遷都)를 했던 경우 도성에 국왕 개인의 이름이 붙여진 사례는 없다”라는 지적을 받아들여 궁예도성을 태봉국도성으로 개칭했습니다. 승일공원에 세워진 관광안내지도에도 태봉국 도성이라고 표기되어 있더군요. 승자에게 치우친 기록을 조금 교정하겠다는 애틋한 마음씨가 고마웠습니다.


하나의 사물을 표현하는 데 단 하나의 정확한 표현이 있다는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은 무시무시한 말씀입니다. 꼭 이런 이론이 아니더라도 태봉국 도성이 좀 더 올바른 표현인 것은 또렷합니다. 이름은 되찾았지만 태봉국 도성은 여전히 가볼 수 없는 곳입니다. 비무장지대(DMZ)에 남아있어 아직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남북이 태봉국 도성을 함께 조사하는 모습을 희망해봅니다. 개성 일대의 고려왕릉들도 보존이 제대로 되지 못해 황폐해져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자본주의의 안목(?)으로라도 투자할 수는 없는 것인지 안타깝습니다. 아참~ 승일교 근처에 자리잡은 ‘궁예도성’은 음식점 이름이나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함께 간 분들과 영화 ‘인셉션’에 나오는 아리아드네 이야기에서 미노타우로스까지 화제가 이어졌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미노타우로스는 소머리를 하고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로 묘사됩니다. 문득 궁예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삼국사기』에서 미노타우로스 정도로 못된 인물로 그려집니다. 궁예의 포악한 성격을 나타내는 구절이 적잖고 비참한 최후 역시 박절하게 쓰여 있습니다. 그러나 민간에 전승되는 이야기는 궁예가 극악무도한 인물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궁예와 관련한 지명이 오늘날 많이 전해지는 까닭도 한국사에서 보기 드문 캐릭터였던 궁예에 대한 연민이 전해지는 탓이겠지요.


신화학자 정재서 선생님은 신화 읽기의 편식 현상이 상상력의 빈곤과 편견을 낳는다며 풍부하고 균형 잡힌 상상력을 위해 그리스 로마 신화와 동양신화는 물론 다른 신화도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서양의 미노타우로스가 있다면 동양에는 소머리를 한 염제(炎帝) 신농(神農)이 있습니다. 신농은 농업의 신이자 불의 신이며 복희(伏羲), 황제(黃帝)와 더불어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삼황으로 꼽힙니다. 신농은 황제와의 전쟁에서 패해 중국 주변에서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등장하기도 하고, 월남의 개국신화에서 시조신으로 나타난다고 하네요. 신농은 동이족 계열의 신화로 보는데 신농의 후계자가 바로 잘 알려진 치우(蚩尤)입니다. 신농은 인간에게 농사짓는 법이나 독초와 약초를 구별하는 법 등을 가르쳐 준 어진 신입니다. 궁예는 미륵불을 자처했다고 하니 신농 같은 자애로움을 지향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패배자에게 돌아온 것은 미노타우로스라는 멍에였네요.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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꼽등이 생각

잡록 2010. 8. 30. 04:04 |

꼽등이는 며칠 전에 알게 된 곤충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곱등이’였는데 국어사전이나 백과사전에 ‘꼽등이’라고 나오기에 이 표기를 따른다. 머리부터 배로 이어지는 등 쪽이 곱사등이처럼 굽어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모양이다. 귀뚜라미와 비슷하지만 더듬이가 길고 뒷다리가 길어서 잘 뛰는 편이다. 적잖은 분들이 꼽등이를 혐오하는 이유도 이 친구가 예상치 못한 점프력을 보여주기 때문인 듯하다. 나도 그래서 메뚜기과를 데면데면하게 여기는 편이다. 어쩌면 내가 가공할 점프력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곤충 따위는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종(種)차별주의(speciesism)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의 트라우마 때문일수도 있겠다.^^;


꼽등이는 시각과 청각이 약하고, 날개가 없어 귀뚜라미처럼 울지도 못한다고 한다. 나는 곤충계의 헬렌 켈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둘레 사람들에게 거의 동감을 얻지 못했다. 헬렌 켈러를 언급하니까 EBS 지식채널 ⓔ에서 헬렌 켈러가 장애를 극복한 인간 승리의 대명사로만 알려졌을 뿐, 그가 사회주의 운동에 몸담았던 사실은 대개 은폐되었음을 지적하는 <미국의 우상>편이 떠오른다. 헬렌 켈러의 삶을 발췌해서 간직하려는 그들은 헬렌 켈러를 그의 삶과는 정반대로 소비한다. 사회적 모순을 비판하던 그를 개인의 초인적 노력으로 역경을 딛고 일어서라는 자조론, 자력갱생의 미덕으로만 이용하려 했으니까 말이다. 헬렌 켈러 선생님은 낙관주의자의 사표셨는데 꼽등이도 세상의 비난을 의연하고 꿋꿋하게 해쳐나가길 바랄 따름이다.


꼽등이가 해충이라고 하는데 어떤 악행을 저지르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토로했더니 이런저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벌레 중에 피나게 무는 것은 거머리와 꼽등이 뿐이라든가, 꼽등이의 입과 항문 주변에 세균이 많은 비위생적 녀석이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좋다는 등의 이유는 무척 설득력 있었다. 음습한 곳에 사는 야행성 곤충이 한 둘이 아니지만, 초식성이 아니라 쓰레기 부식질이나 죽은 곤충 등도 먹는 (대부분은 동물성 먹이를 먹는) 잡식성이라는 사실이 꼽등이에 대한 비호감을 부채질한다.


꼽등이의 다양한 별칭 중에 ‘소악마’라는 것도 있었다. 고종석 선생님의 신작 소설 『독고준』에서는 “호모사피엔스가 가장 싫어하는 종은 호모사피엔스일 것이다. 인간은 악마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그러니까 우리들 자신이 악마이므로”라는 구절이 인상 깊었다. 넘치는 혐인(嫌人)도 경계하고 싶지만, 인간이 발전하거나 진화하는 게 맞는다면 우리 내부의 악마성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랑을 더해가는 세상보다는 미움을 덜어가는 세상이 좀 더 현실적인 목표 같기 때문이다. 꼽등이에 대한 사랑을 더하기는 어렵지만 미움을 더는 것은 약간의 정성이면 가능하다.


시인 김명수 선생님은 ‘꼽등이’라는 시에서 “귀뚜라미처럼 울지도 못하는 꼽등이가/ 수염이 너무 길고/ 뒷다리도 너무 가늘다고 여겨졌다”라고 쓰셨다. 메뚜기나 귀뚜라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혹시 꼽등이를 만나게 된다면 시인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금은 다정한 눈길을 건네 보고 싶다. 꼽등이를 해충이라 부르는 이유가 인간을 기준으로 한 것인지, 아니면 황소개구리나 베스처럼 자연계의 시각으로 본 것인지 아직도 헛갈리기 때문이다. 이 흉한 몰골의 벌레보다 인간은 얼마나 더 아름답고 덜 추악한 것일까? 이따금 자신이 없다.


내가 거니는 대학원 건물에 종종 출몰한다고 하니 곧 만나게 된다면 그 괴이한 형상을 마주치고 나면 내가 앞장서서 악플을 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전에 나쁜 벌레가 있으니 좋은 벌레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살육을 저지르는 인간이 이런저런 미물(微物)을 성토하는 것은 민망한 일이 아닐까 의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꼽등이의 존재를 알게 해주신 혜림누나, 꼽등이 못지않은 무서운 풍채로 유명한 그리마와 연가시와 같은 곤충 영상을 보는데 많은 도움을 주신 은영누나, 현영에게 다시금 고마움을 표한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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