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2007년 8월 18일 임시전국대의원대회(전당대회)를 열어 대통합민주신당과의 합당을 결의했다. 작년 11월 22일 기간당원제를 폐지함으로써 정치적 종말을 예고한 우리당은 2003년 11월 11일 창당 이후 3년 9개월만에 막을 내렸다. 열린우리당의 가장 큰 패인은 아무래도 개혁의 지속적(!) 후퇴에 있지 않을까 싶다. 2004년 4대 개혁입법 처리가 외부의 반대는 물론 내부의 적에 막혀 허우적거렸고, 2006년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문제에 무기력하게 대응하는 등 민생 개혁도 허술했다. 2005년 대연정 논란을 비롯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해 지지자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다. 기간당원제와 당정분리 같은 시도가 너무 이상적이었다는 지적도 들린다. 그러나 새로운 정치를 위한 실험은 돈 덜 쓰는 선거, 권위주의 타파 등을 낳아 대체로 유의미했다고 평가된다. 꽤 괜찮은 보수정당의 탄생을 바랐던 나는 퍽 씁쓸하다.
열린우리당 내부 구성원들의 동지의식 부족은 한 정당을 존속시키는 핵심 요소가 무엇이어야 하는 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결국 어수선한 내분으로 말미암아 추하지 않게 지는 꽃이 되지 못했다. 탈당과 창당, 합당과 재탈당 등이 어지럽게 이어지면서 한국 정당사의 나쁜 선례들을 되풀이했다. 권력의 단맛을 적잖이 누렸을 인사들이 나 몰라라 탈주극을 벌이는 것은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을 갖다 붙여도 역겹고 서글픈 일이다. 대통합이라는 이데아를 향해 달렸던 분들의 몸부림이 별다른 감동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라는 건 자명하다. 자신의 올바름을 드러내기 위해 남을 헐뜯는 자들은 추하게 마련이다.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몇 번을 다짐했는지 모른다. 언젠가 이런 나의 결심이 흔들리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 때 덜 흔들리고, 더 많이 부끄러워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오늘의 이 참극을 단단히 간직하리라.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에 활약한 군사전문가 악의(樂毅)는 자신의 재능을 쓰기 위해 무던 애쓴 모양이다. 위나라에서 태어난 그는 조나라에서 벼슬을 하다가 다시 위나라로 갔다. 그러다 연나라에서 인재를 구한다는 소문을 듣고 연나라로 가서 제나라를 정벌해 큰 공을 세웠다. 연나라 소왕(昭王)의 뒤를 이어 혜왕(惠王)이 즉위해 제나라의 전단(田單)이 쓴 이간책을 믿자 악의는 조나라로 달아났다. 속임수가 통한 제나라는 연나라를 패퇴시키고 잃은 땅을 회복했다. 연나라 혜왕은 후회하며 악의를 다시 부르는 편지를 보냈다. 악의는 혜왕에게 이른바 보연혜왕서(報燕惠王書) 혹은 보연왕서(報燕王書)라 불리는 유명한 답장을 보냈다. 악의는 이 명문에 힘입어 연·조 두 나라의 객경(客卿)이 되었다고 전한다. 악의를 절개가 있는 인물이라고 평하기는 힘들지만 그렇다고 낯두꺼운 기회주의자라고 평하는 건 지나치다.
악의는 이 글에서 혜안을 가진 선비는 공명을 이루면 그것을 손상시키지 않기 때문에 후세에 칭송을 받는다며 혜왕의 권유를 완곡히 거절한다. “일을 잘 꾸미는 자가 반드시 잘 이루는 것도 아니고, 일을 잘 시작하는 자가 반드시 잘 마무리하는 것은 아니다(善作者不必善成 善始者不必善終)”라는 말도 인용하며 자신의 물러남을 변호한다. 그러면서도“군자는 교제를 끊더라도 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않고, 충신은 나라를 떠나더라도 자신의 명성을 깨끗하게 하지 않는다(君子交絶 不出惡聲 忠臣去國 不潔其名)”라고 말한다. 사귐이 다하더라도 상대방의 험담을 하지 않으며, 자기의 고결함을 위해 군주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말에 설복된 나는 더 이상 누군가를 통박하고 싶지 않아졌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협력관계든 한 때나마 충만했다면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모든 관계맺음이 굳이 현재진행형일 필요는 없다. 현재진행형이 아닌 관계를 잘 맺는 것도 살면서 배워야 할 일이다.
나는 2004년 1월 26일부터 2005년 6월 9일까지 열린우리당 당원이었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당원이 늘어날 때 정당정치가 뿌리내린다는 평소 신념을 지키기 위해 내 천성에도 맞지 않는 당적이란 걸 잠시 가져봤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당비를 내서 기간당원을 해본 게 전부다(고민하다 2004년 10월부터 8개월 간 냈다). 후회는 없다. 신인상을 타볼 기회가 한 번 뿐이듯이 내 생애 처음으로 지지한 정당의 당원이 되 볼 기회도 한 번 뿐이다. 굳이 이런 거창한 의미를 떠나서 한 정당의 당원이 된다는 건 공민권을 가진 사람으로서 한 번쯤은 해볼만한 일이다. 탈당하게 된 계기가 군 복무여서 잠시 떠난다고 했던 게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5월 말에 탈당하려는 걸 일주일이라도 당적을 유지하고 싶어 6월 7일날 탈당계를 제출해 9일날 처리되었던 기억이 새록하다. 100년 정당의 원대한 꿈이 사그라질 때 적어도 나 같은 녀석 정도가 납득할 이유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살짝 아쉽다. 내 삶이 덜 뒤숭숭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당원 같은 건 못할 듯싶다.^^;
서애 유성룡은 <포은집(圃隱集)> 발문에 “큰집이 기울어지려는데 하나의 나무로 지탱하고, 큰 바다가 넘쳐흐르는데 하나의 갈대로 막으니, 그 불가함을 알면서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은 직분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大廈將傾而一木扶之 滄海橫流而一葦抗之 知其不可 而猶且爲之者 分定故也)”라고 썼다. 너도나도 ‘가야만 하는 길 ’ 혹은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을 외치며 열린우리당의 끔찍한 최후를 방관했다. 나보다 훨씬 뛰어난 분들이 거의 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걸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안 되는 줄 알면서 마지막을 우직하게 지킨다는 게 얼마나 만만찮은 일인지를 절절하게 느꼈다. ‘동원의 대상’이 아닌 ‘참여의 주체’로 산다는 게 어렵다는 건 익히 잘 알고 있다. 새삼스레 호들갑 떨지 말고 일상의 소소한 실천에 매진하자. 그리고 자유만큼의 책임을 지자.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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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들어봤겠지만, 개혁의 후퇴가 우리당 패인의 이유라면, 지금 한나라당이 받고 있는 지지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거지? 게다가 민노당의 약세.
권위주의 타파또한 우리당의 성과로 내세우기 힘들 것이라고 봐. 그건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업적이 아닐까. 권위주의를 타파했다면 우리당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타파했는지 설명해 줬으면 좋겠어.
네 지적에 동감해. 우리당의 개혁이 더디다고 구박받을 때 내가 방어하던 논리이기도 하고. 하지만 내가 결국 개혁의 미흡이라는 패인을 꺼낸 까닭은 핵심 지지층을 붙잡아두는 몇몇 주요 개혁의 기회를 놓쳐 한나라당과의 차별화에 실패한 거 같아서 말이지. 왜 이 정당을 지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만들어주지 못한 셈이지. 지지자 충성도가 안 그래도 한나라당에 견주어 낮은 편인데 말이지(그만큼 맹목적 지지가 적다고 좋게 해석할 여지도 있지만). 누가 뭐래도 우리당의 핵심 지지층은 개혁적 보수주의자일 테니... 상당부분 한나라당으로 향한 건 사실이지만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정치냉소층으로 돌아선 분도 적잖지. 민주신당이 이 분들을 다시 불러모을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네.
내가 말한 권위주의의 개념이 네가 생각하는 것과 좀 다른 모양인데 나는 정치적 의사결정 측면에서의 권위주의로 한정해서 말해본 것이었어(한미 FTA 같이 권위주의적 의사결정도 적잖았지만). 기간당원제와 당정분리, 상향식 공천제도는 보스 중심의 하향식 의사결정구조를 제법 흔들었다고 생각해. 물론 리더십 및 정치력 부재라는 암초를 맞이하기는 했지만. 원내중심의 정책정당을 표방하고 국회의원 개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하려 했던 시도 같은 걸 굳이 인색하게 평가할 필요는 없을 듯싶네.
에휴 초상집에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패장은 물러나서 화풀이 소주 약속이나 잡을 따름.^^;
권위주의가 그 얘기였군. 학기초에 모여서 소주나 한잔 하자.ㅎㅎ 기독교 피랍자에 관한 얘기도 좀 하고 말이야.
그리고 아이리쉬 생각보다 없네.. 보고는 있는데, 찾기가 어렵다.
그랴 필설로 다 못한 건 오프라인 상에서 도란도란 나눠보자고. 아이리시 책은 혹시나 해서 부탁한 거고 너무 부담 갖지 마시게나. 우리네 번역 풍토가 그런 걸 어쩌겠니.ㅡ.ㅜ
저도 열린우리당의 실패는 안타깝게 생각이 드네요. 제가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열린우리당의 최후가 좀 씁슬하더군요;; 폐당(廢黨)도 아름답게 끝낼 수 있을텐데 열린우리당의 최후는 썩 아름답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뭐랄까요; 열린우리당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열린우리당에 침뱉고 돌아서는 모습이 과히 좋아보이지는 않더라구요...
어쨌든 종교와 정치 얘기는 살짝 조심스럽네요~^^;;
8월도 어느덧 끝나가고 있어요; 이번 학기 복학하시나요? 즐겁게 보네세요~
종교와 정치 이야기가 조심스러우시다니 문득... 이태 전에 한겨레신문에 실린 소설가 김별아님의 <대통령에게 쌍꺼풀을 허하라>란 칼럼이 떠오르네요. "좋은 사회라면 공적인 영역에서 더욱 엄정한 반면 사적인 영역에서 철저히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야 옳다"라는 요지의 글입니다. 정치나 종교 이야기보다 개인의 외모나 기호를 문제삼는 게 더 저열하고 무례하다는 지적에 적잖이 동감했습니다. 한국 사회는 정치나 종교 등의 사회적 이슈를 사사로운 것으로 봐서 쉬쉬하고, 개인의 취향이나 개성에 찬반투표라든가 가치평가를 하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여하간 둘레 사람들과 정치와 종교 이야기하는 거 함 시도해보세요. 하고 나서 실망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요.^^; 열린우리당의 최후가 아름답지 못해 개인적으로도 많이 아프네요. 여기서 또 배울 점이 있겠지요. 복학은 안 할 거 같은데 장기 휴학생으로서 너무 게으르게 지내지 않기 위해 궁리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