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관람기
사진 2006/01/09 03:48 |
10월 29일, 11월 12일, 12월 28일 세차례에 걸쳐 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왔다. 무료입장일 때 한번이라도 더 가보려고 애썼다. 일본, 영국, 프랑스 등지의 유명한 박물관들이 조금 폄하해서 장물 집합소라면 우리네 박물관은 남의 것 약탈한 흔적은 거의 찾을 수 없는 평화와 문화의 이상적인 만남이 아닐까 자화자찬해본다. 소장유물 15만여점 중에서 전시되는 1만1000여점은 세계적 박물관과 비교해 조촐한 편이다. 하지만 이 그리 크지 않은 땅에서 침략하지 않고도 나온 피와 땀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고 오주석 선생님의 다음 말씀을 음미하여 내 자신이 문화인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침략했던 프랑스 장교는 썼습니다. 이 약하고 초라한 나라 조선, 그러나 형편없이 무너져가는 시골 초가집 속에도 반드시 몇 권의 책은 있었다는 사실이 그의 자존심을 몹시 상하게 한다고 말입니다. 자기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 그것은 장차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자신감으로 연결됩니다. 여러분, 어느 분야에 계시든 간에 우리 역사와 문화에 때한 진정한 이해와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셔서, 큰 꿈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 오주석. 2003.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솔. 249쪽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
부여의 백제 나성과 능산리 무덤 사이에 절터에서 출토된 백제 향로. 높이는 64cm, 무게 11.8kg의 대형이다. 받침부분의 다리 하나를 치켜든 용, 몸체의 연꽃봉오리, 그 의의 신선들이 사는 산, 맨 위의 봉황 등 조형미와 조각 수법이 탁월한 명품이다. 이 발굴을 백제 고고학의 최대 성과라고 한다. 촘촘히 표현된 74개의 산봉우리, 6그루의 나무, 12곳의 바위, 39마리의 동물, 16명의 인물상이 황홀하다. 서산마애삼존불상, 산수무늬 벽돌(山水紋塼)과 더불어 백제인의 미의식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성덕왕릉 원숭이상
성덕왕릉에 있는 십이지신상은 거의가 손상을 입어 머리가 떨어지거나 몸의 어느 부분이 없어졌는데, 다행히 원숭이상과 닭상만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십이지상을 능묘의 외호 석물로 사용하는 것은 신라 왕릉만의 특색으로 성덕왕릉이 그 시초가 된다. 당의 묘제를 모방하였으나 신라의 특색이 가미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문득 경주 고분군을 거닐고 싶다.

국보 제79호 황복사(구황리) 금제여래좌상
국보 제80호 황복사(구황리) 금제여래입상
1934년 경주 구황리(황복사터) 3층석탑(국보 제37호)을 해체·복원할 때 나온 사리함에서 발견된 두 개의 순금제 불상이다. 희귀한 순금제 불상이라는 점에서 금딱지 좋아하는 나로서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순금제 불상하니까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소장하고 있다는 금은아미타여래좌상의 진위가 궁금하다.
문화재수집가 김동현이 금은아미타여래좌상이 제 평가를 받는 것을 그토록 갈구했다고 하는데 그러려면 그걸 삼성쪽에 넘기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도 든다. 사설 미술관의 공로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일반 관람객들이 좀처럼 감상하기 여의치 않다는 점에서 다소 부정적이다. 하물며 장물의 의심이 짙다면야... X파일 사건도 그렇지만 진실이 삼성을 빗겨 가는 건가.^^;

고구려 광개토호태왕비 탁본
글자가 하나가 주먹 하나 크기일 정도로 웅장한 비석이다. 중국의 황제, 일본의 천황처럼 고구려인들은 자신의 왕을 태왕(太王)이라 부른 것으로 보인다. 태왕이란 왕중왕이란 뜻으로 고구려가 당시 동아시아에서 독자적인 질서룰 구축하며 그 패자임을 나타낸다. 국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구려 석비인 중원 고구려비(국보 제205호)를 비롯하여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국보 제3호), 창녕 진흥왕 척경비(국보 제33호), 단양 신라 적성비(국보 제198호), 울진 봉평 신라비(국보 제242호), 영일 냉수리 신라비(국보 제264호)의 크기 등을 비교해볼 때 광개토호태왕비는 석비 중 단연 압권이다. 만주 땅에 있는 국보가 아쉽다.
석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부여박물관에서 올라온 사택지적비를 만날 수 있는데 현존하는 백제 유일의 석비이다. 유려한 문장과 빼어난 서체라는 평까지 더하고 보면 국보가 되어도 손색이 없는데 고작 충청남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101호일 뿐이다. 미술사학자 고 오주석 선생에 따르면 우리의 지정문화재 현황은 썩 좋은 편이 아닌데 일본 사람들이 유난히 좋아했던 도자기 같은 것들이 무더기로 지정된 반면 글씨나 그림 쪽은 소홀하게 취급되고 있다고 한다. 하기야 그 유명한 단원풍속도첩도 아직 보물에 머무르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전 국보 1호 교체 논란도 그렇지만 지정 문화재 재정비가 어떤 식으로든 필요하다.

국보 제86호 경천사 10층석탑
북한 지역인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 경천사에 있었으나 일제시대에 일본인이 약탈했다가 극적으로 되돌아왔다. 높이 13.5m, 무게 110t에 달하는 이 탑을 10년 간 해체, 수리해서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동 내의 역사의 길 중앙에 자리잡았다. 비단 경천사 석탑 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재의 상당수가 제자리를 떠나 방랑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 목조건축에서는 볼 수 없는 용 문양이 새겨진 기둥이 인상적이다.

현화사(玄化寺) 석등
국내에서 보기 드문 사각형 모양의 석등으로 지붕 위의 상륜부도 형태가 독특하다. 상하 평면이 방형(方形)의 전형적인 고려시대 석등인 점에서 특이하다. 고려 조각의 괴체감이 내 입맛에 맞는 듯 한참을 바라봤다.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일월오봉병(日月五峯屛)
일월오악도(五嶽圖), 일월곤륜도(崑崙圖)라고도 불리는데 이름 그대로 해와 달이 나란히 하늘에 걸려있는 것과 다섯 개의 봉우리가 솟아있는 것을 말한다. 궁중에서 기록화를 그릴 때 왕의 모습 대신 일월오봉도를 그려 왕의 존재를 표시하는 게 상례다. 왕의 모습을 직접 그리지 않았던 이유는 그림을 본 누군가가 왕의 용안에 흠을 내는 일을 미리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즉 일월오봉도는 왕의 존재를 대신할 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는 그림으로서 일월오봉도를 병풍에 그려놓은 것으로 일월오봉병(日月五峯屛)이라고 부른다.
임금이 앉는 자리 뒤쪽에 놓아 국왕의 존재와 권위를 상징하는 이 작품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조선시대의 독특한 형식이다. 이 소재들은 매우 도식화된 모습으로 병풍마다 별 차이 없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궁중화가들이 전통적인 본(本)을 따라 그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2007년 상반기에 새로 발행하는 새 1만원권 지폐의 앞면 그림으로 채택되었다. 일월오봉병은 괜찮은 편이지만 다른 지폐 도안들은 솔직히 그다지 별로다.

국보 제86호 경천사 10층석탑
탑골공원에 있는 국보 제2호 원각사터 10층석탑은 경천사 석탑을 그대로 모방한 작품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원각사터 석탑은 답답한 유리 보호막에 갇혀 있고, 경천사 석탑은 건물 안에 자리를 꿰차고 있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두 탑의 재질이 화강암에 비해 부드러운 대리석이기 때문에 보존을 위한 고육지책이다. 그러나 비바람에 씻겨 허물어지는 것이 제행무상(諸行無常,세상의 모든 일들은 덧없다)이라는 불가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후손들에게 최대한 잘 보존해줄 의무가 더 중하다고 생각한다. 허물어지면 다시 세워 올릴 능력도 부족하고 말이다.

국보 제81호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국보 제82호 감산사 석조아미타불입상
이 두 불상이 있었기에 50여년 뒤 석굴암 본존불이라는 불후의 명작이 탄생하게 된다. 걸작을 잉태하기 직전의 난숙한 기교를 감상할 수 있는 수작이다.

보물 제332호 춘궁리(광주) 철조석가여래좌상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하사창리의 절터에서 발견된 고려시대의 철불 좌상로서 고려 철불 중 가장 규모가 크다. 통일신라 불상양식을 충실히 계승한 고려 초기의 전형적인 작품으로서 철의 둔중한 질감이 잘 전해진다.

영전사터 보제존자사리탑(보물 제358호)
현재의 1만원권 화폐에는 1979년부터 경회루가 도안되었다. 두 눈 크게 뜨고 잘 찾아보면 아주 작게 탑이 하나 세워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탑이 영전사터 보제존자사리탑이다. 일제는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을 훼손시키기 위해 수많은 건물을 허물고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불교 문화재들을 경복궁으로 옮겼다. 지금은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겼지만 한때 경복궁에서 많은 탑과 부도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탑의 주인공 보제존자는 무학대사의 스승인 나옹화상이다. 모양은 탑과 같으나 사실 부처의 사리를 모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부도이다. 승려의 부도를 탑 모양으로 만든 것은 대단히 파격적으로 흔히 볼 수 없는 경우이다. 현재 우리 지폐에 그나마 유일한 불교문화재인 이 부도마저 1만원권 신권 발행으로 조만간 사라지게 된다. 우리 지폐에서 불교문화유산이 단 한 개도 들어가지 않는 건 납득할 수 없는 처사다. 신권의 깔끔한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화유산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서 아쉽다.

궁궐 답사 등을 통해 목조 건축에만 약간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내가 이제는 조각, 공예, 회화, 건축 등 한국 고미술 전반에 대한 애호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공적 영역에 대한 토론이 활발한 것이 건강한 사회이며, 반대로 사적 영역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한껏 존중해주는 것이 성숙한 사회다. 가령 역사를 좋아하고 문화유산 완상을 즐기는 나는 내 나이 또래에서 문화적 소수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소수파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 내 마음이 끌리는 것에 아낌없는 시간과 정성을 쏟을 자유가 있다. 문화인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침략했던 프랑스 장교는 썼습니다. 이 약하고 초라한 나라 조선, 그러나 형편없이 무너져가는 시골 초가집 속에도 반드시 몇 권의 책은 있었다는 사실이 그의 자존심을 몹시 상하게 한다고 말입니다. 자기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 그것은 장차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자신감으로 연결됩니다. 여러분, 어느 분야에 계시든 간에 우리 역사와 문화에 때한 진정한 이해와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셔서, 큰 꿈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 오주석. 2003.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솔. 249쪽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
부여의 백제 나성과 능산리 무덤 사이에 절터에서 출토된 백제 향로. 높이는 64cm, 무게 11.8kg의 대형이다. 받침부분의 다리 하나를 치켜든 용, 몸체의 연꽃봉오리, 그 의의 신선들이 사는 산, 맨 위의 봉황 등 조형미와 조각 수법이 탁월한 명품이다. 이 발굴을 백제 고고학의 최대 성과라고 한다. 촘촘히 표현된 74개의 산봉우리, 6그루의 나무, 12곳의 바위, 39마리의 동물, 16명의 인물상이 황홀하다. 서산마애삼존불상, 산수무늬 벽돌(山水紋塼)과 더불어 백제인의 미의식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성덕왕릉 원숭이상
성덕왕릉에 있는 십이지신상은 거의가 손상을 입어 머리가 떨어지거나 몸의 어느 부분이 없어졌는데, 다행히 원숭이상과 닭상만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십이지상을 능묘의 외호 석물로 사용하는 것은 신라 왕릉만의 특색으로 성덕왕릉이 그 시초가 된다. 당의 묘제를 모방하였으나 신라의 특색이 가미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문득 경주 고분군을 거닐고 싶다.
국보 제79호 황복사(구황리) 금제여래좌상
국보 제80호 황복사(구황리) 금제여래입상
1934년 경주 구황리(황복사터) 3층석탑(국보 제37호)을 해체·복원할 때 나온 사리함에서 발견된 두 개의 순금제 불상이다. 희귀한 순금제 불상이라는 점에서 금딱지 좋아하는 나로서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순금제 불상하니까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소장하고 있다는 금은아미타여래좌상의 진위가 궁금하다.
문화재수집가 김동현이 금은아미타여래좌상이 제 평가를 받는 것을 그토록 갈구했다고 하는데 그러려면 그걸 삼성쪽에 넘기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도 든다. 사설 미술관의 공로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일반 관람객들이 좀처럼 감상하기 여의치 않다는 점에서 다소 부정적이다. 하물며 장물의 의심이 짙다면야... X파일 사건도 그렇지만 진실이 삼성을 빗겨 가는 건가.^^;
고구려 광개토호태왕비 탁본
글자가 하나가 주먹 하나 크기일 정도로 웅장한 비석이다. 중국의 황제, 일본의 천황처럼 고구려인들은 자신의 왕을 태왕(太王)이라 부른 것으로 보인다. 태왕이란 왕중왕이란 뜻으로 고구려가 당시 동아시아에서 독자적인 질서룰 구축하며 그 패자임을 나타낸다. 국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구려 석비인 중원 고구려비(국보 제205호)를 비롯하여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국보 제3호), 창녕 진흥왕 척경비(국보 제33호), 단양 신라 적성비(국보 제198호), 울진 봉평 신라비(국보 제242호), 영일 냉수리 신라비(국보 제264호)의 크기 등을 비교해볼 때 광개토호태왕비는 석비 중 단연 압권이다. 만주 땅에 있는 국보가 아쉽다.
석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부여박물관에서 올라온 사택지적비를 만날 수 있는데 현존하는 백제 유일의 석비이다. 유려한 문장과 빼어난 서체라는 평까지 더하고 보면 국보가 되어도 손색이 없는데 고작 충청남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101호일 뿐이다. 미술사학자 고 오주석 선생에 따르면 우리의 지정문화재 현황은 썩 좋은 편이 아닌데 일본 사람들이 유난히 좋아했던 도자기 같은 것들이 무더기로 지정된 반면 글씨나 그림 쪽은 소홀하게 취급되고 있다고 한다. 하기야 그 유명한 단원풍속도첩도 아직 보물에 머무르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전 국보 1호 교체 논란도 그렇지만 지정 문화재 재정비가 어떤 식으로든 필요하다.
국보 제86호 경천사 10층석탑
북한 지역인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 경천사에 있었으나 일제시대에 일본인이 약탈했다가 극적으로 되돌아왔다. 높이 13.5m, 무게 110t에 달하는 이 탑을 10년 간 해체, 수리해서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동 내의 역사의 길 중앙에 자리잡았다. 비단 경천사 석탑 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재의 상당수가 제자리를 떠나 방랑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 목조건축에서는 볼 수 없는 용 문양이 새겨진 기둥이 인상적이다.
현화사(玄化寺) 석등
국내에서 보기 드문 사각형 모양의 석등으로 지붕 위의 상륜부도 형태가 독특하다. 상하 평면이 방형(方形)의 전형적인 고려시대 석등인 점에서 특이하다. 고려 조각의 괴체감이 내 입맛에 맞는 듯 한참을 바라봤다.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일월오봉병(日月五峯屛)
일월오악도(五嶽圖), 일월곤륜도(崑崙圖)라고도 불리는데 이름 그대로 해와 달이 나란히 하늘에 걸려있는 것과 다섯 개의 봉우리가 솟아있는 것을 말한다. 궁중에서 기록화를 그릴 때 왕의 모습 대신 일월오봉도를 그려 왕의 존재를 표시하는 게 상례다. 왕의 모습을 직접 그리지 않았던 이유는 그림을 본 누군가가 왕의 용안에 흠을 내는 일을 미리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즉 일월오봉도는 왕의 존재를 대신할 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는 그림으로서 일월오봉도를 병풍에 그려놓은 것으로 일월오봉병(日月五峯屛)이라고 부른다.
임금이 앉는 자리 뒤쪽에 놓아 국왕의 존재와 권위를 상징하는 이 작품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조선시대의 독특한 형식이다. 이 소재들은 매우 도식화된 모습으로 병풍마다 별 차이 없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궁중화가들이 전통적인 본(本)을 따라 그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2007년 상반기에 새로 발행하는 새 1만원권 지폐의 앞면 그림으로 채택되었다. 일월오봉병은 괜찮은 편이지만 다른 지폐 도안들은 솔직히 그다지 별로다.
국보 제86호 경천사 10층석탑
탑골공원에 있는 국보 제2호 원각사터 10층석탑은 경천사 석탑을 그대로 모방한 작품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원각사터 석탑은 답답한 유리 보호막에 갇혀 있고, 경천사 석탑은 건물 안에 자리를 꿰차고 있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두 탑의 재질이 화강암에 비해 부드러운 대리석이기 때문에 보존을 위한 고육지책이다. 그러나 비바람에 씻겨 허물어지는 것이 제행무상(諸行無常,세상의 모든 일들은 덧없다)이라는 불가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후손들에게 최대한 잘 보존해줄 의무가 더 중하다고 생각한다. 허물어지면 다시 세워 올릴 능력도 부족하고 말이다.
국보 제81호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국보 제82호 감산사 석조아미타불입상
이 두 불상이 있었기에 50여년 뒤 석굴암 본존불이라는 불후의 명작이 탄생하게 된다. 걸작을 잉태하기 직전의 난숙한 기교를 감상할 수 있는 수작이다.
보물 제332호 춘궁리(광주) 철조석가여래좌상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하사창리의 절터에서 발견된 고려시대의 철불 좌상로서 고려 철불 중 가장 규모가 크다. 통일신라 불상양식을 충실히 계승한 고려 초기의 전형적인 작품으로서 철의 둔중한 질감이 잘 전해진다.
영전사터 보제존자사리탑(보물 제358호)
현재의 1만원권 화폐에는 1979년부터 경회루가 도안되었다. 두 눈 크게 뜨고 잘 찾아보면 아주 작게 탑이 하나 세워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탑이 영전사터 보제존자사리탑이다. 일제는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을 훼손시키기 위해 수많은 건물을 허물고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불교 문화재들을 경복궁으로 옮겼다. 지금은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겼지만 한때 경복궁에서 많은 탑과 부도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탑의 주인공 보제존자는 무학대사의 스승인 나옹화상이다. 모양은 탑과 같으나 사실 부처의 사리를 모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부도이다. 승려의 부도를 탑 모양으로 만든 것은 대단히 파격적으로 흔히 볼 수 없는 경우이다. 현재 우리 지폐에 그나마 유일한 불교문화재인 이 부도마저 1만원권 신권 발행으로 조만간 사라지게 된다. 우리 지폐에서 불교문화유산이 단 한 개도 들어가지 않는 건 납득할 수 없는 처사다. 신권의 깔끔한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화유산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서 아쉽다.
궁궐 답사 등을 통해 목조 건축에만 약간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내가 이제는 조각, 공예, 회화, 건축 등 한국 고미술 전반에 대한 애호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공적 영역에 대한 토론이 활발한 것이 건강한 사회이며, 반대로 사적 영역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한껏 존중해주는 것이 성숙한 사회다. 가령 역사를 좋아하고 문화유산 완상을 즐기는 나는 내 나이 또래에서 문화적 소수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소수파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 내 마음이 끌리는 것에 아낌없는 시간과 정성을 쏟을 자유가 있다. 문화인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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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둘러볼때는 몰랐는데, 사진을 보니 나는 사진을 못찍었네^^;;
네 말대로 다음엔 동행이 있어야겠다
반가사유상이 압권. 사진촬영조차 금지더구만.
아무튼 중앙박물관 전체의 백미라 할 수 있을듯. 아예 방도 따로쓰더만 ㅋㅋ
개관 극초반 때는 사진 촬영도 가능했지. 조명이 어두워 좋은 사진은 찍을 수 없었지만 나도 그럭저럭 여러 장 찍어서 컴퓨터 바탕화면으로도 애용하고 그랬었어. 근데 터뜨리지 말라는 플래시를 쓰는 사람이 적잖았던지 두 번째로 찾았을 때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버렸더라. 그래 그 정도면 금지할 만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