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책망하지 마세요!
사회 2006/06/11 04:09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받은 지지의 크기를 보면, 이 사회의 가장 어려운 계층 사람들 가운데 적잖은 수가 이 부패한 부자 정당에 표를 건넨 것이 분명하다. 이들의 계급의식은 어디로 갔는가?
한국 사회의 경제적 상층에 자리잡은 서울 강남 유권자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한나라당 지지를 철회해본 적이 없다. 말하자면 이 부자들은 철저한 계급의식으로 뭉쳐 있다.
그런데 여당에 실망한 서민 유권자들은 왜 자신들을 대변하는 민주노동당에 표를 주지 않았을까? 물론 서민들에게 소구할 매력을 만들어내지 못한 민노당 잘못이 크다. 그렇다 해도 부자 정당을 지지하는 가난한 사람들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중략)
사회 상층부가 계급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고 하층부가 거꾸로 된 계급의식을 소비하는 허영에 몰두하는 한, 사회 양극화의 출구는 없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마땅히 민노당 김종철 후보에게 표를 던져야 했음에도 그러지 못한 나 자신을 책망하며 하는 말이다.
- 고종석. "계급의식은 어디로?" 한국일보. 2006. 06. 07.
고종석 선생님 칼럼 말미에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김종철 후보에게 표를 던지지 못한 것을 자책하신 대목이 언짢았다. 선거 날에 행사하는 한 표는 어디까지나 권리(!)다. 서민들이 김종철 후보에게 표를 건넬 의무가 없는데도 계급의식을 빌미로 권리를 의무화하려는 의도가 불편하다. 권리와 의무가 완전히 별개의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구분할 필요는 있다. 병무청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듯이 "병역은 젊은 날의 권리, 병역의 특권을 가진 여러분은 우리의 자랑입니다"란 식으로 의무를 권리화하는 것도 절제해야 하듯이 권리를 의무화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물론 나 또한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서 노예의 도덕을 떠올리는 오버질을 적잖이 해왔다. 고종석 선생님의 논지에 거개 동감하고 서민들은 부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정당에 좀 덜 너그러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선거 결과에 있어서 만은 무조건 승복이 가장 깔끔하고 윤리적이기까지 하다고 본다.
고 선생님이 강금실 후보에게 건넨 한 표의 가치는 오롯이 유지되는 건데 선거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책망 운운하는 게 좀 민망하다. 나는 이 칼럼에서 어차피 강금실이 질 거라면 그럴 바에야 김종철을 뽑았어야 했다는 뉘앙스를 읽었다. 그 말을 뒤집어 말하면 강금실과 오세훈이 박빙의 승부를 벌였다면 김종철을 외면하는 게 당연시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라는 의문을 품어본다. 강금실이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박주선, 오세훈 등에게 제 표를 건네지 않은 사람들도 충분히 제 한 표의 권리를 선용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내가 강금실에게 건넨 한 표를 후회하지 않고 자랑스럽다. 이는 강금실이 완전무결한 인간이기 때문도 아니며, 열린우리당의 치부를 감추기 위한 것도 아니다. 못난 점도 알고 한계도 알면서도 내 소중한 한 표를 그에게 건넨 건 내 나름의 숙고의 결과다.
솔직한 고백이지만 나는 남을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고 자랑스레 외치던 민주당 박주선 후보를 무지 한심하게 봤다. 그에게 건네진 30만 표를 존중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었다. 씨네 21의 신윤동욱님은 "수도권 호남 향우회는 죽지 않았다"는 표현을 쓰셨는데 동감하면서도 조금 조심스럽다. 박주선 후보의 공약을 면밀히 검토하며 그의 공약이 자신의 입맛에 맞아 소신껏 지지한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호남 향우회의 조직표라고 해도 그것이 비록 후진 행태이기는 해도 한 표의 가치가 훼손되는 건 아니다. 하다 못해 섬뜩한 선거 포스터를 만들어 붙였던 시민당의 이귀선 후보에게 건네진 4790표가 그의 아스트랄한(신비한, 판타스틱한, 황당한 정도의 뜻이라고 한다) 매력에 빠져 홀리듯 던진 것이라고 해도 그것이 한 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건 아니다. 물론 이런 식의 태도가 절차적 민주주의에만 천착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민주주의가 위대한 까닭은 나 같은 민초에게도 주인의식과 책임의식을 선사해주는 것과 더불어 남을 존중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누구나 투표장에 들어서면 제가 생각하는 최선의 선택을 한다고 본다. 부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정당에 제 소중한 한 표를 건넨 서민들의 금욕주의(?)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후회하지 않는 한 표를 던지기란 참 힘들고 어려운 문제다. 남을 존중하면서도 내 자신도 바르고 기품 있기가 얼마나 미친 듯이 까다로운 일인지를 절감하는 하루 하루다. 고 선생님이 요근래 화풀이 음주를 즐기고 계시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내 영혼의 스승이 건승하시길 바란다. - [小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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