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에서 지지정당 묻기
문화 2009/03/02 01:40 |지난해 시월의 일이다. 시월의 마지막 며칠이라도 금주하기로 결심한지 채 이틀이 되지 못해서 술자리에 참석했다. 미팅, 소개팅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는데 호기심을 가지고 듣고 있던 내가 한마디 했다. “미국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을 지지하는 남녀 간에는 소개팅을 주선하면 실수라고 하던데 거기에 동감한다”라고 말했더니 좌중이 폭소했다.
다대다로 만나는 미팅 자리에서까지는 따지지 못하더라도, 일대일로 만나는 소개팅에서는 지지정당을 물을 거라는 개인적인 소견도 밝혔다. 본래 정치적 가치관이라고 말하려다가 무슨 사상 검증하는 냄새가 나서 지지정당이라고 고쳐 말했다. 내가 그런 말을 한 까닭은 일대일로 만나는 자리에서 한나라당 지지자를 내게 소개시켜주면 상대방에게도 실례고 주선자와도 서먹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언급한 이야기의 출전은 이진 선생님의 『나는 미국이 딱 절반만 좋다』(북&월드, 2001)라는 책에 나오는 일화다. 저자는 공화당파 남자와 민주당파 여자를 소개시켜주고 나서 두 사람 모두에게 항의 전화를 받은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글쓴이는 양 당의 지지들이 온몸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고 드러내는 사례를 나열하며 미국의 정치 문화를 실감나게 전한다.
한나라당 지지자분과 소개팅에서 만나기를 피하고 싶다고 했더니 놀랍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그런 문화가 없어서 어색한 모양이다. 나는 다만 사사로운 소개팅 자리 같은 사적인 영역에서도 사회적 정견을 마음대로 나누지 못하는 한국의 문화가 너무 치우쳤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공적 영역에 대한 대화가 막혀 있다 보니 이야기의 소재는 사적 영역으로 집중된다. 자연스레 외모나 취미생활 및 생활습관 같은 지극히 개인적 영역에서 맴돈다.
이런 문제의식을 김별아 선생님께서 <대통령에게 쌍꺼풀을 허하라>(한겨레, 2005.03.13)는 칼럼에서 잘 짚어주신바 있다. 공적인 영역을 엄격하게 감시하고, 사적인 영역은 감시의 끈을 느슨하게 풀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종종 거꾸로 되어서 공적 영역에 대한 토론은 억압되고, 사적 영역에 대한 간섭이나 참견이 넘쳐흐르는 것 같다.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을 끌어들이지 않으려는 한국의 문화는 결국 한나라당 과점 사태에 일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비정치적’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현 시점의 주류적 정치세력의 과점 사태에 일조하는 형태가 된다는 결론이 매끄럽게 도출되지는 않는다. 비정치적이길 권하는 사회가 결국 오늘날 지배적인 세력에게 가장 큰 혜택을 주는 건 맞지만 그것을 일반화하는 건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비정치적이라는 정언명제(?)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분들이 가장 정치적인 결정을 내리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고민이 든다. 비정치적이라는 이데올로기(!)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 청년들이 남았다. 사회에 대해 가장 투덜거릴 법한 젊은이들이 세속적 기준을 맞추는데 허덕이느라 체제순응형 인간이 되어버린다면 마냥 달가운 일은 아니다.
사시사철 중도(中道) 권하는 사회가 된지 오래다. 그 중도가 균형감각을 향한 노력이기보다는 자신의 치우침을 분칠하기 위한 용도가 강한 듯싶다. 모든 치우침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이 땅을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 가야 하느냐하는 섬세한 논의를 위해서 정책이나 가치 논쟁을 벌일 용기나 정성이 모자란 모양이다.
중도나 중립이라 불리는 개념이 단순히 양극단의 산술평균이 아니라는 점은 자명하다. 중도나 중립을 습관처럼 입에 올리는 분들이 이것과 저것을 뛰어넘은 대안을 만들어 낸 거 같지도 않다. 중도니 상생이니 통합이니 하면서 토론과 갈등이 필요한 곳을 적당히 넘어가려 하지 않았나 엄중히 성찰해야 할 것 같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2003년에 펴낸 자서전 『Living History』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보인다. 힐러리는 열렬한 공화당 지지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공화당을 지지했다. 1964년 힐러리의 선생님은 대통령 후보 모의 토론회 시간에 힐러리에게 민주당 출신 존슨 대통령 역을 맡겼다. 힐러리는 도서관에서 민주당 강령과 백악관 성명 등을 읽으며 민주당에 대한 오해를 풀었고 종국에는 민주당원이 된다.
힐러리는 자기 스스로가 반대자가 되어 가려진 일면을 보았다. 그에 비추어 나는 너무 편협한 짓을 벌이는 듯싶다. 물론 애정과 정견은 양자택일이 아니다. 힐러리의 어머니는 비밀스런 민주당 지지파였다고 한다. 혹시 소개팅 자리에서 배우고픈 정치적 반대자를 만날지도 모른다. 내가 첫눈에 반할 한나라당 지지자분들이 대한민국에는 넘쳐날 게다. 하지만 그런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내가 좀 머뭇거렸으면 좋겠다. “하지 않는 바(有所不爲)”를 건사하길 희망한다.
사람은 하지 않는 것이 있은 다음에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만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인 셈이다. 이것을 포기하고 나서 이룬 성과는 무의미하다고 외치는 결기가 필요하다. 타협이나 융통성이라는 미명 하에 유소불위(有所不爲)를 버리는 건 그리 자랑은 아니다. 유소불위의 목록에 한나라당 지지가 들어간다는 건 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명시된 금지사항만 위반하지 않으면 모두 허용한다는 뜻의 경영·경제 용어인 네거티브 시스템(negative system)을 차용하자면 우리는 이것만은 하지 않겠다는 네거티브 리스트 몇 개쯤은 가슴에 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 여당이 나쁜 법을 만드는 행위, 지키지도 못할 법을 만드는 행위(혹은 범법자를 양산하는 법을 만드는 행위), 법에 대한 비판을 죄악시하는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지켜야 할 최소”를 버리고, “보편적 당파성”마저 잃어가는 정당을 네거티브 리스트에 들여보내지 않을 명분이 없다.
국민의 지지가 가장 높은 정당을 네거티브 리스트에 올려야 하는 심정이 착잡하다. 이처럼 힘겹게 네거티브 리스트에 올린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과 연애를 하는 게 가능할까? 서로의 속내를 감추지 않는 진솔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한나라당 둘레의 사람들이 곧잘 하듯이 또 다른 의미의 마녀사냥을 저지르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아무쪼록 한나라당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품에 다시 돌아온 탕자가 되길 기원한다. 내 고민도 덜어주길.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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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늘 그런 생각을 했지만 입밖에 내지는 못했는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동료들과 대충 잘지내려고 하는데
그러자면 정치얘기는 절대금지라서,
공감, 동감.
나도 그런 용기를 배워야 할텐데......
“저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저는 이명박 지지자는 아니지만...” “저는 민주노동당 지지자는 아니지만...” “저는 반북주의자는 아니지만...” “저는 운동권은 아니지만...” “저는 군 면제는 아니지만...” “저는 재벌옹호론자는 아니지만...” 이런 식의 말을 입에 달아야만 안심이 되고 비로소 색안경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한국 사회는 아직도 불행하다고 생각해요.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 아직도 어색하게 느껴져서 갑갑합니다. 업무상으로 만나는 관계에서야 공적 영역에 대한 견해를 크게 드러낼 필요는 없겠죠. 하지만 친구나 애인 같은 사사로운 만남에서마저 공적 영역에 대한 토론을 꺼리는 풍토는 좀 누그러뜨려야 하지 않나 생각해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