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 2006/11/25 06:28 |나의 공책(http://www.mycahier.com)에 groove님이 프랑스 사회당의 새로운 기수가 된 세골렌 루아얄 이야기로 시작해서 박근혜를 지지하는 여성주의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는 글을 재미나게 읽었다. 이 글을 놓고 mannerist님과 groove님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란 존재의 “문화적 효과와 심리적 위안”을 놓고 의견이 많이 갈렸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기를 마다하지 않겠다는 내 신조(?)에 충실해서 두 분의 댓글 가운데 새우범생이라는 아이디로 내 잡설도 살짝 달아봤다.
저는 기왕이면 여성에게 기회를 더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계속 따라 다닐 것 같습니다. 여성 권력자들이 특별히 부귀영화를 마다할 리는 없겠지만 기대를 가져볼 만 하다는 건 또렷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 기대는 아직 권력의 단맛(?)을 많이 못 본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담백함 같은 것이겠지만요. 여성이 남성에 비해 특별히 더 유능하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저는 이것이 잘못된 희망을 퍼뜨리는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성을 높이는 건 잘못된 희망이 아니라 마땅히 실현해야할 과제가 아닐까 싶어요. 물론 그 수단이 좀 과격해서 당혹스럽기는 하지만요.^^; “심리적 위안과 문화적 효과”보다 더 논의의 진전 혹은 의견의 일치를 보기 힘든 대목이 바로 남성 후보보다 부적합하고 무능한 여성 후보 골라내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박근혜님은 그나마 공적 행위가 많이 드러났지만 대다수 예비 여성 지도자들은 정보도 많이 부족하고요. 부족한 게 아니라 잘 알려고 하지 않은 탓이기도 하겠지만요.
개인적 차원의 내적 감정을 정치적 주장으로 논의하는 것의 해악을 지적하신 mannerist님의 말씀은 절반만 동감합니다. 문득 견우미견양(見牛未見羊)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제물로 끌려가는 소가 가엾게 여겨져서 보지 못한 양을 제물로 쓰게 되었다는 희생양의 고사가 여기에 적합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구체적 생활의 문제를 건드리는 생활정치(Micro-politics)는 결국 개인적 경험과 식견에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사익의 단순합이 공익이라는 공익과정설(공익 = ∑사익)을 비교적 지지하는 터라 개인적 차원의 이해와 발언이 그리 구박될 사안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물론 지식인, 공직자 등에게는 좀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다른 영역에서 쌓은 명성을 이용하려는 점은 비판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 또한 거시적 통찰 혹은 일반균형분석을 해내는 안목이 중요하다 생각하고, 이를 기르기 위해 노력하려고요.
각종 통계를 보면 선거 때 기왕이면 여성을 뽑겠다는 사람들이 적잖음에도 늘 과소 대표되는 게 이상했습니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 대놓고 공언하지는 못해도 여자라서 찍는다라는 사람보다 여자라서 안 찍는다는 사람이 더 많은 탓인 거 같아요. “박근혜는 여자라서 안 될 거다”라는 말을 주위에서 많이 접한 제 개인적인 경험이 크게 작용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저는 성별 구분 없이 능력을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편애 혹은 혐오의 수준이 여성과 남성이 차이가 나는 거 같더라고요. 이런 지극히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저는 차마 양비론을 꺼내들지는 못하겠습니다. “소수파를 소수파로 묶어두는 것 자체가 자유주의 윤리에 어긋”난다는 고종석 선생님의 말씀을 어떤 방식으로 실현해야할지 정말 어렵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비례대표나 공천의 여성 할당제보다는 여성후보에게 득표수의 일정 %를 가산해주는 우대조항이 더 실효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런데 이걸 채택한 나라가 있기는 한가요?). 아마 위헌 논란도 있고 역차별 문제도 있겠지요. 정당 경선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이게 만병통치약이 아님은 자명하고요. 하지만 아무리 제도적 보완을 해도 미미한 효과에 그친다면 한시적이나마 좀 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할 거 같습니다. 물론 생물학적 여성만이 선출직 공직자에서도 특혜(?)를 받아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이 남습니다. 그나마 생물학적 여성은 양적 다수파(적어도 절반)라도 되지만 양적 소수파인 약자들이 참 많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의 절반이 누리는 삶의 질이 제법 향상된다면 그 동력을 발판으로 사회적 약자와 문화적 소수파에게 건네는 눈길도 좀 더 넉넉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여성에 대해 가해지는 편견과 질시조차 극복하지 못하면서 그보다 더 낮은 사람들을 어떻게 보듬을 수 있을지 회의적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는 “계급문제에 둔감한 여성주의 운동”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반쪽짜리 시각이고, 부분균형분석에 치중한다는 비판을 수긍하지만요. 견우미견양(見牛未見羊)으로 다시 돌아가면 이라크 민간인들의 원통한 죽음에는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던 사람들이 김선일씨의 죽음에는 격렬한 슬픔을 보이는 게 나쁜 일일 거 같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그게 어디냐” 싶습니다. 인간 이성과 감정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는 노력과 그 한계를 좀 줄이려는 노력을 동시에 진행해야겠지요.
매우 재미나고 배울 점이 많은 댓글들의 빛남을 흐리는 잡글을 썼습니다. 해량해 주십시오.
mannerist님께서 내가 쓴 댓글과 관련한 코멘트를 해주셨다.
난 대체 그 '문화적 효과'라는게 무엇인가에 대해서 묻고 싶다. '우리도 저기까지 갈 수 있다'는 희망? 김규항의 말마따나 지독한 정치적 남성인 정치인이 펴나갈 정책 아래에서 과연 그게 가능할까? 난 되려 이게 더 나쁘다고 본다. (다른 표현을 찾을 수 없어 쓴다)무제한적인 신자유주의 정책, 그로 인한 반 여성화 정책을 핀다 해도, 여성이 최고 의사결정자 자리에 있다면 '남녀차별? 여자도 저렇게 될 수 있는데 무슨!'라고 허울뿐인 억압기제가 되기 딱 좋다는 얘기다. 그런 이유로, 네가 말한 해악이 좋은 점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이야기다.
핵심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다시 한 번 하자면, '자질 없는 정치인도 여자니까 지지해주자'라는 위험천만한 주장을 나포하는 데 대해서는 난 계속해서 씹을 거다. 그정도 위치에 있는 - 시네 21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고 지금은 영상문화진흥원 원장자리까지 앉은 - 조선희가 할 일은 자질없는 정치적 남성인 여성 정치인을 지지해야 한다고 '우리도 여성 최고 의사 결정자 하나 가져보자'고 한풀이성 외침을 공적인 자리에 끄적일 게 아니라, 정치적 여성성을 가진 정치인에 대한 지지를 보내고 박근혜를 비롯한 정치적 남성인 여성 정치인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영상문화진흥원의 비정규직을 포함안 여성 노동자의 처우를 그녀의 권한 내에서 증대시키는 거라 본다.
그리고 새우범생, 내가 '잘못된 희망'이라 언급한 것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데, 실제 정치적 남성인 자질 미달인 여성 정치인이 최고 의사결정자가 된다는, 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만으로 여성의 권익이 더 나아질거라는 생각이 위와 같은 이유로 착각이라는 이야기라는걸 하고 있다. 글로 써진 주장이 진지하게 펼쳐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해본다면, 박근혜에 대한 지지, 함부로 말할 것 못된다고 본다.
아주 극단적으로 말해서, 단지 여성이란 이유로 박근혜를 지지하는게 이해가 된다면, 똑같은 이유로 송영선과 전여옥을 지지하는 것 역시 의미있는 일이라는걸 생각해보기 바란다. 한국인에게 필요한 건, 여성 정치인에 대한 지지 증가가 아니라, 여성지향적인 정책을 펼 가능성이 있는 정치인에 대한 지지와, 거짓된 근거에 기반한 지지에 대한 강한 반론이라고 본다.
나는 소극적으로 해명을 한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지지하는 사람은 매우 적을 거라고 봅니다. 다만 박근혜님의 경우에는 대통령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적잖기 때문에 전략적 지지 같은 논의가 좀 되는 모양이지만요. 저는 여성이란 이유로 지지하는 게 여성이라는 이유로 지지하지 않는 것보다 개미 눈물만큼은 우월하다고 봅니다. 저는 우월하다는 위험한 표현을 썼습니다. 똑같은 한 표인데 우열을 나누는 건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를 현저히 거스르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입니다. 여성 후보는 절대로 찍지 않는 분의 한 표도 제 한 표 만큼이나 가치롭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입니다(어쩌면 이 발언을 한 걸 많이 후회할 거 같네요).
여하간 이처럼 제한된 유의미성인 만큼 어느 정도 용인 가능하지 않을까요. 아마 사회적 타협을 이루기는 어렵겠지만 여성에게 유리하게 약간 기울어진 경기장이 필요하고, 그것이 기회의 평등에, 실질적 민주주의에 좀 더 부합한다고 생각해요. “정치적 남성인 여성 정치인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를 말씀하신 대목은 많이 동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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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호
계속 가 보자. 대단히 착각하고 있는데, 지금 '그 글'안에서 조선희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박근혜를 지지할 이유가 있다고 보는거야. 개미 눈물만큼의 우월을 이야기하는데, 지면상을 떠난 '양성평등을 위한 기울임'이란 그 논리가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관찰해보라고. 까놓고 말해 '여자들 잘 먹고 잘 살려면 박근혜 찍어라'라는 개소리라고. 그 개미 눈물만큼의 우월을 이유로 박근혜 따위(대체 '아버지의 이름으로'밖에 짖지 못하는 이 남성적 포유류를 지지해야할 이유를 난 도무지 모르겠다)에게 지지 보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는 건, 1. 현실세계에 해당 주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도외시했다는 점 2. 실질적 변화보다는 눈에 보이는 변화만을 추구한다는 점 3. 그리고, 박근혜 지지로 인해 사장되는, 네 표현을 빌어 '개미 눈물만큼' 정치적으로 나은 정치인에 대한 지지가 그만큼 떨어져 나간다는 점에서 문제 있다고 봐.
고종석의 생각과 수사학을 연습하는 것은 그 자체로 나쁜 일이 아니지만, 이 사례만큼은 그리 예가 좋아보이지 않는다. 그런 수사로 보호하기에, 박근혜는 대단히 지랄 같은 정치인이라구.
박근혜님의 경우 매우 특수한 케이스가 아닐까 싶어요. 그가 아버지의 후광을 얻은 것에 불과하든, 여성의 탈을 쓴 정치적 남성이든 간에 여성 후보가 적잖은 지지를 얻고 있고 대통령 자리에도 상당히 근접해 있다는 데서 오는 독특한 사례가 아닐까 싶어요. 조선희 선생님도 그 점에 착안해 문제의식을 가졌겠죠. 그건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고민인지도 모르겠어요. 박근혜님이 문제가 아니라 박근혜님 수준의 인지도와 지지도를 가질 수 있는 여성 지도자들이 너무 적다는 게 문제의 근원이 있는지 모르겠고요.
최근에 서민 선생님이 쓰신 <차라리 박근혜가 어떨까>라는 칼럼에서 나오듯이 차라리 여자라서 찍는 게 오히려 더 나은 지지 근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변변치 못한 후보들이 지역주의에 기대고, 개혁을 팔아 당선을 거머쥐는 것보다 심리적 위안 효과나마 얻기 위해 여성을 지지하는 이들이 더 나은 측면이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어요. 아니, 좀 수세적으로 말해 딱히 더 나쁠 건 없다고 봅니다. 한 표의 가치가 차이나는 것처럼 말한 대목은 이쯤에서 철회할래요. 개인의 소중한 한 표가 모여서 결정된 결과에는 무조건 승복하는 것이 제 원칙인 거 아시잖아요.^^;
여하간 조선희님의 문제(?)의 글 전문을 읽어 보고, 2003년 1월에 <여성 후보>라는 제목으로 쓰신 비슷한 주제의 칼럼으로 비추어 볼 때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박근혜님을 지지해야 한다고 쓰신 거 같지는 않더라고요. “단결할 줄 모르는 마이너리티는 마이너리티의 운명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조선희님의 말씀을 굳이 박근혜 지지의 논거로 끌어다 해석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물론 “하지만 투수가 아무리 좋은 공을 던져도 타자가 있어야 홈런을 날릴 것 아닌가”와 같은 문제의식이 몇 안 되는 여성 후보에 대한 편애 수준의 지지로 연결될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1번 지적에서 현실상의 부정적 파급효과는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요(적어도 미실현 효과일 거 같아요), 2번 지적에서 눈에 보이는 효과나마 있다면 그것도 유의미하다고 봅니다. 실질적 변화를 당장 가져다 오지 않는다고 시각적 효과에 그친다라고 핀잔하기는 힘들 거 같아요. 정말 우리 사회가 그렇게 실망을 가질 정도로 여성에게 정치적 권력을 많이 쥐어주었나 하는 점도 회의적이고요. 과연 실망할 건덕지나마 제대로 있었던 걸까요?
3번 지적인 여성 후보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후보에 건넬 표를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는 많이 동감해요. 누구나 제 한 표가 소중하다면 그 한 표로 많은 효과를 보고 싶어하겠죠. 여성에게 한 표를 건네 여성의 능력에 신뢰를 표할 수도 있겠고, 교육 정책이 빼어난 후보에 한 표를 건넬 수도 있겠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자신하는 후보에게 한 표를 건넬 수도 있겠죠. 이런 다양한 의견 가운데 사표를 감수하고 여성 후보에게 던지는 표가 경솔하다고 여길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답니다.
“이 돈, 한 개가 가지고 싶었습니다”고 말하는 은전 한 닢 마지막 구절처럼 여성 대표 하나 늘리고 싶다는 욕망이 특별히 구박받을 까닭은 없을 거 같아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자면 보편타당하게 인정받는 “정치적으로 나은 정치인”이란 게 존재할 수 있을까요? 아니 상대적으로 비교우위를 따진 “정치적으로 나은 정치인”이란 것이나마 합의 가능할까요?
위에서 밝힌 바 있지만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도 여성의 과소 대표가 너무 심했다는 생각에 제 본심보다 좀 더 넘치게 말한 감이 있네요. 이래저래 남성 편향이 강한 저 같은 녀석이 여성에 대한 지지를 운운하는 게 좀 어색하네요. 다만 제가 실천하지는 않아도 남들이 그렇게 말하는 게 제법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해서 부러 편들어 봤습니다. 저는 “여자라서 안 찍을” 자신만큼이나 “여자라고 찍지 않을” 자신도 있답니다. 그렇다고 제가 여성혐오증은 아니에요. 푸하하
글 잘 읽었습니다. 같지도 않은 제 글도 언급해 주셔서 감사. 제 질문은 이거지요. 박근헤와 노무현 중 누가 되는 게 더 낫냐. 매너님은 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차이는 없다고 했으니 둘 중 누가되어도 괜찮은 게 아닐까 싶고, 사정이 그렇다면 여성이라는 점에서 박근혜가 차라리 더 낫다는 게 제 주장이죠. 사족: 전 여성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걸 여성의 삶이 나아지는 것과 연결시키고픈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전여옥과 송영선도 여성이니까 지지하냐,는 말은 좀 오버인 듯합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을 여성의 삶의 질 향상과 연계시켜서 보는 분들의 주장이 어느 정도 수긍할만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단지 여성이니까 지지하는 것’이 단지 남성이니까, 동향이니까, 동문이니까 지지하는 것에 비해 특별히 더 구박 받을 것도 없고 오히려 조금이나마 긍정적 함의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맥락에서 계급문제에 둔감한 여성주의 운동도 존재할 수 있다고 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