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11/20 창덕궁 창건 600주년 기념 답사
2005년 11월 매주 일요일마다 창덕궁 자유관람 행사를 열었다. 창건 600주년 기념행사로 안내원의 통제 없이 자유롭게 창덕궁을 거닐 수 있도록 해줬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은선, 칠성이를 섭외해서 답사를 떠났다. 사진 찍는 데 조예가 깊은 칠성이 덕분에 과분한 사진들을 많이 얻었다. 나와 기종이 같은 디카를 소지한 은선이도 만만치 않은 사진 공력을 선보였다. 난 언제쯤 Auto 모드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돈화문을 지나면 금천교(錦川橋)가 나오는데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다리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600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다리 남쪽에 해태상, 북쪽에 거북상을 배치하여 궁궐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았다. 중학교 미술 시간에 금천교 그림을 가지고 풍경화를 그렸던 기억이 나서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仁政殿)에 도착했는데 창덕궁 내에 있는 건물 중 유일한 국보(제225호)이다. 현 건물은 순조 4년(1804)에 다시 지은 것이다. 인정전의 창호는 황색을 칠해 장식했는데 황제가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대한제국 시대 궁궐로 쓰였던 경운궁(덕수궁) 중화전과 더불어 금빛 창호를 가진 궁궐 정전이다.


칠성이랑 서로 찍어주는 장면이다.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나듯이 사진도 서로 찍어줘야 기록에 남는다.^^:


위의 사진을 찍기 위해 이런 광경이 벌어져야 했다.^^;


주합루(宙合樓)를 등지고 어수문(魚水門) 앞에서 등용문(登龍門)의 고사를 떠올렸다. 이 곳에서 정약용,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이 적서의 구별 없이 탕평정책을 수행하며 활동했을 것을 생각하니 웬지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탕평책 하니 생각나는 논어의 한 구절을 음미해본다.

君子 周而不比 小人 比而不周
군자는 두루 통하고 편벽되지 않지만 소인은 편벽되고 두루 통하지 못한다


창덕궁의 많은 정자 중에 내가 특히 좋아하는 애련정에서... 애련이라는 이름은 중국 북송 시대의 유학자 주돈이가 지은 애련설(愛蓮說)에서 유래된 것이다. 애련설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흙탕물에서 자라되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고, 내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予獨愛蓮之, 出於泥而不染, 濯淸蓮而不妖
연꽃이 흙탕물에서 자라되 진흙에 물들지 않고, 맑은 잔물결에 씻었으되 요염하지 않은 것을 나는 홀로 사랑한다.


사방 6치(약 18cm) 정도의 방형 화강석을 사고석이라고 하는데 이 사고석으로 쌓은 담장을 사고석담장이라고 한다. 사고석담장을 쌓을 때는 안정감을 위해서 지면에는 장대석을 1~2단 놓고 쌓는다. 또 사고석담장은 기와를 얹어 마감하는 것이 보통이다(김왕직. 2000. 『그림으로 보는 한국건축용어』. 발언. 178쪽 참고). 덕수궁(경운궁) 돌담길의 담장이 바로 사고석담장이다. 창덕궁뿐만 아니라 궁궐 담장은 약간의 꽃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고석담장이다. 칠성이가 애써서 찍어 주었으나 배경에 비해 모델이 따라가지 못해서 미안할 따름이다.^^;
Posted by 새우범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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