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의 경주 기행

사진 2005/02/21 06:30 |
2005년 2월 8일, 긴 설 연휴 덕분에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 이후 10년만의 경주 방문을 했다.

흥덕왕릉
본격적인 경주 탐방에 앞서 경북 경주군 안강읍에 위치한 할머니댁에서 머지 않은 곳에 위치한 흥덕왕릉을 찾았다. 다른 신라 고분들이 경주 시내나 근처에 포진되어 있는 것에 반해 흥덕왕릉은 농가 밀집지역에 외롭게 자리잡고 있다. 지리상 떨어져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기는 하지만 흥덕왕릉은 신라 역대 왕릉 가운데서 규모가 크고 형식이 갖추어진 대표적인 왕릉의 하나이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무덤을 호위한 돌사자와 함께


흥덕왕릉은 수 차례나 도굴 당할 정도로 관리가 소홀한 편이다. 봉분 주위의 호석을 보아도 도굴의 여파로 깨진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또 언제 신라 고분의 사슴뿔 모양 금관과 불꽃 모양 금관을 기대하며 장비를 챙기는 검은 손들이 나타날지 모를 일이다. 무궁무진한 부장품을 지키기 위해 도굴을 잘 감시하던가 얼른 발굴해서 보존하던가 해야할 것이다.

석불사
흔히 석굴암이라 부르지만 본래 그 이름은 석불사였다. 말 그대로 돌부처가 있는 절이다. 1910년경부터 일본인들이 석불암 대신 석굴암(石窟庵)으로 불렀다고 한다.


일제가 석굴암을 완전 해체하고 잘못 조립하여 지금은 불상들의 온전한 위치와 정확한 구조를 알 길이 없게 되었다. 수리하는 와중에 슬쩍해간 것도 적지 않으니 분통이 터지는 일이다. 일제는 석굴 전체를 해체하여 일본으로 가져갈 계획까지 세웠으나 한일합방으로 굳이 반출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고 하니 섬뜩한 일이다. 일제는 보수를 하면서 당시 신소재로 각광을 받던 시멘트를 사용함으로써 석굴 내부에 습기가 차는 중 각종 문제점을 낳았다. 결국 1961년 복원 때 목조 전실과 석굴암 사이에 유리벽을 설치하여 일반 답사객은 유리로 막아놓은 벽 너머로 석굴암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밖에 없어 제대로 된 감상이 힘들다. 애를 써도 십일면 관음보살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유리벽 너머의 감상은 여러모로 제한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본존불의 온화한 미소를 마음에 새기기 위해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 뿌듯한 표정을 보라~^^

불국사
너무나도 유명한 불국사... 한국 사람 치고 불국사를 가보지 않은 사람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이 아름다운 사찰은 임진왜란 때 크게 불타 석축만 남게 된 것을 이후 여러 차례 중건하였다가 1973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통해 무설전, 관음전, 비로전, 경루, 행각 등이 복원되었다.


수학여행 기념 사진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자하문과 청운교, 백운교... 대웅전의 본존불의 시각에서 화려한 다보탑 뒤로는 단순한 건물인 경루(고루)가 들어섰고, 단아한 석가탑 뒤로는 화려한 종루(수미범종각)가 배치되어 각기 생김새가 다른 두 탑과 누각이 전체적으로 다양함 속에서도 통일성을 잃지 않는 균형을 이루고 있다. 불국사에 가면 이 두 곳의 돌기둥을 유심히 살펴보자.


다보탑에서


석가탑에서


무설전(無說殿)은 오래 전에 없어져서 빈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73년에 중건한 것이다. 말하는 이가 설법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거나, 듣는 이가 들어서 깨달아야 한다는 데 집착하면 법을 제대로 설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는 뜻이다. 썰을 풀기 위해 만들어진 강당이면서도 썰이 없다는 뜻이나 말과 글이 진리를 다할 수 없다는 불립문자(不立文字, 문자의 세계를 뛰어 넘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오묘한 진리)를 나타내는 것 같다. 염화미소(拈華微笑)를 나눌 것을 상상만 해도 즐겁다.


황룡사터
훼손된 문화유산의 목록은 끝도 없지만 그 중에서 많은 이들을 애타게 하는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황룡사다. 황룡사는 4대왕 93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완공된 신라 최대 사찰이다. 동양 최대의 목탑인 9층목탑과 구리 3만여근, 황금 1만198푼이 들어간 본존불 금동장륙상 및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보다 4배나 큰 황룡사종이 있었다고 한다. 1238년(고려 고종 25년) 몽골군의 침입으로 불타버리고, 임진왜란 때도 왜놈들이 불타버린 황룡사의 유물들을 파헤쳐 갔다고 한다. 지금의 황룡사터는 금동장륙상을 올려놓았을 커다란 석조대좌 흔적과 9층목탑을 쌓았던 64개의 초석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9층목탑 터에 서면 전율이 돋는다. 600년대에 세워진 높이 80m(225척)의 웅장한 목탑의 위용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현존하는 목탑 중에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1056년 요나라 때 만들어진 응현5층탑을 능가하는 높이다. 많은 이들이 9층목탑 복원하기를 소망하는 것도 문헌상의 기록으로만 짐작하는 화려했던 목탑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리라. 너른 목탑 터에서 세계 최고의 목탑을 세운 것에 대한 자부심보다는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 더 짙게 드리운다.


분황사
분황사는 634년(선덕여왕 3년)에 지어진 절로서 황룡사와 이웃하고 있다. 원효대사가 이 곳에 머물면서 많은 저술음 남겼다고 한다. 몽골의 침략과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분황사는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국보 제30호 분황사 석탑은 현재 전하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탑이다. 본디 9층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파괴되고, 그후 더욱 파손되어 1915년 일본인들이 해체, 수리가 되었다. 지금은 3층만 남아 있고 높이는 9.3m, 동서 길이 13m이다. 왜놈들이 와서 훼손한 것을 일본인이 고쳤으니 병주고 약주고가 따로 없다.^^;


드넓었던 황룡사와 분황사를 통틀어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은 분황사 석탑뿐이다. 문화유산은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보존하는 것도 능력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형편없는 축에 속한다. 진정한 문화 강국은 잘 만드는 것보다 잘 지켜내는 것에 있는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마음을 탑돌이를 하며 달랬다.^^

경주국립박물관
설 연휴라 공짜로 경주국립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솔직히 전문 용어들이 많이 나와서 이해하기 힘든 점이 많았다. 문화재 편식(?)이 심하다보니 금속공예품이나 불교유물 위주로 관람을 했지만 황홀한 볼거리가 많았다. 금관, 사리탑, 황룡사터에서 발굴된 대형 망새(치미), 얼굴무늬 수막새를 비롯한 기와들과 고선사터 삼층석탑을 비롯한 야외전시물을 둘러보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야외에 전시된 국보 제29호인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과 함께... 비천상을 비롯한 화려한 문양과 조각 기법은 통일신라 예술의 전성기를 가늠하게 해준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경주를 방문해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가 고단한 인간들의 영혼을 편안 하게 해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2004년 11월 타종 영구 중단 방침이 결정되어 이제는 녹음된 소리에 만족해야 한다. 녹음된 소리나마 듣고 싶었는데 시간차였는지 듣지 못해서 아쉬웠다.
Posted by 새우범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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