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서울 기행 2탄
사진 2005/01/29 08:46 |
04. 11/05 경복궁
경복궁은 조선의 정궁이지만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에 타 오랜 기간 폐허로 방치되었다. 1867년(고종 4년)에 흥선대원군이 간신히 다시 세웠지만 망국의 길로 접어들면서 궁궐도 쇠락하게 된다. 일제는 정문인 광화문부터 근정문 앞까지 모두 허물어 버리고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었으며, 경무대에는 총독의 관저를 지었다. 또한 강녕전, 교태전 등 대부분의 건물도 철거하여 빈터로 만들었고, 을미사변의 현장인 건청궁을 철거하였다. 또한 각지의 절과 절터에 있던 탑과 부도 등을 경복궁으로 옮겨놓아 유교 국가의 궁궐에 불교 상징물이 엉켜있게 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원래 경복궁의 10~15%에 지나지 않는다. 경복궁이 제 모습을 찾으려면 아마 상당기간 보수, 복원을 해야할 것이다.

광화문 앞 해태상과 함께... 본래는 이렇게 광화문에 붙어 있지 않고 세종로 쪽으로 나아간 지점이 있었다. 광화문 앞은 차가 쌩쌩 달리고 있어 과거에 육조거리였던 세종로에서부터 찬찬히 음미하며 광화문을 직선 코스로 들어갈 수 없는 이상한 구조로 되어 있다. 여하간 광화문만 보면 속이 꽉 막힌다. 목조 건물을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한 개발독재의 무지막지함이 한탄스럽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세워야 한다.

근정전 월대에는 사신과 십이간지의 동물들이 배열되어 있다. 모두 아기자기하게 생겨 정감이 간다. 주작과 함께.

근정전은 조선시대 궁궐의 법전 가운데 유일하게 상월대와 하월대에 난간을 두르고 돌짐승들을 조각해 놓았는데, 이는 경복궁이 법궁으로서 갖는 위상을 근정전의 격식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보수 공사를 거친 뒤라서 그런지 단청들도 화려한 빛깔을 뽐내고 있었다. 경복궁역 내의 지속적인 보수, 복원 공사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보수 공사로 근정전 내부는 깨끗해졌지만 옥좌에 왕 마네킹을 앉혀둔 것은 오바인 것 같다. 왕은 지엄하신 존재라 옛날에는 그림을 그릴 때도 왕의 자리만 있을 뿐 왕의 모습을 그려넣지는 않았는데... 떡하니 밀랍인형을 세워놓은 것이 그다지 보기 좋지 않았다. 왜 만들어놨지? ㅡ.ㅡ

근정전 월대에 올라 천하를 논하다.

3년 10개월 간의 보수 공사를 마친 경복궁 근정전의 아름다움에 매혹되다. 왜놈들의 손에 개박살 난 경복궁의 정전이 이나마 남아 있음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향원정에서... 저 취향교를 건너 가고 싶다

경회루 앞에서 엄지 자세를 안 할 수 없었다.
04. 11/5 청와대
관람 2주 전에 신청을 해야 가볼 수 있는 청와대를 귀차니즘을 뚫고 신청해서 가봤다. 아무래도 보안에 크게 신경 쓰는 곳이라 제한적인 관람이 이루어졌지만... 이 정도가 가능할 정도로 민주공화국은 발전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님과의 오찬을 기대했으나 이 때 대통령님은 해외순방 중이었다는...^^; 청와대 관람이 끝나면 보너스로 보여주는 칠궁(七宮)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청와대 후원 격인 녹지원에 거대한 반송 나무가 우리를 반겨줬다.

사실 본관 건물이 그다지 호감이 가지는 않았다. 청기와가 너무 파랗다. 궁궐 건축에 쓰였던 청기와는 본래 녹색빛이 도는 데 가까이서나 멀리서나 파랗게나 보여서 빨간 길과 너무 대비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하간 나중에 기필코 저 안에 들어가서 일을 보거나 얻어 먹을 생각이다.^^

여행 파트너 청원이와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청와대 비서실 아저씨께 부탁했지만 그다지 잘 못 찍는다는...^^;
04. 11/14 창덕궁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仁政殿)을 배경으로 선복이와 함께...
인정전은 창덕궁 내의 유일한 국보이다. 경복궁 근정전과는 다른 매력을 풍긴다.

창덕궁 후원 중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부용지와 주합루 배경으로 수현이와 함께...

주합루(宙合樓)는 아래층은 왕립도서관인 규장각이 있고, 위층은 열람실로서 이곳에서 부용지 주변의 빼어난 경관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주합루 정문인 어수문(魚水門)이 굳게 닫혀 있으니 아쉽게 돌아서야했다. 주합루 편액은 정조대왕의 친필이다.

낙선이란 말은 착한 일을 즐긴다는 의미이다. 낙선재는 본래 창경궁에 속했지만 현재는 창덕궁 영역에 속해 있어, 창경궁과는 담장으로 단절되어 있다. 순종의 황후였던 순정효황후가 이승만 정부와의 황실 재산 환수 문제에서 끈질긴 싸움 끝에 낙선재를 지켜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에 있던 영친왕 이은과 부인 이방자 여사, 조선왕조의 마지막 딸인 덕혜옹주 등이 이곳 낙선재에서 생활하다가 운명하였다.

낙선재의 화계는 조선 궁궐 중에 단연 으뜸이다.

현존하는 궁궐 전각 중에서 유일한 푸른색의 유리기와인 선정전을 배경으로... 맑은 날에 청기와가 햇살에 비쳐 눈부시게 빛나는 광경을 상상하니 황홀하기 그지없다.
중국 자금성의 황금빛 기와보다 윤기 나는 파란 기와가 훨씬 매력적이었다. 청기와는 회색조의 일반 기와보다 세 배 정도 비싸다고 하는데 조선 초기에는 몇몇 사찰에 청기와를 썼고, 궁궐 건물로는 경복궁의 근정전과 사정전만이 청기와를 이었다고 한다. 흥선대원왕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근정전만큼은 청기와를 덮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앞으로 복원하는 건물 중에서 청기와를 써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04. 11/14 창경궁

창덕궁, 창경궁, 종묘는 붙어 있어서 한꺼번에 둘러보기 좋다. 창경궁은 보수, 복원 공사가 별로 이뤄지지 않아서 전체적인 전각들이 허름하다. 하지만 덕분에 세월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04. 11/17 창덕궁
창덕궁 특별관람코스 현장 예매를 하려고 시도했으나 또 바로 앞에서 매진되어 그냥 일반관람코스로 둘러봤다. 기왕 개방하기로 한 것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으면 좋겠다. ㅡ.ㅜ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은 1609년(광해왕 원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현재 남아있는 궁궐 정문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문이 다섯칸인 것은 황제의 양식이다 보니 제후의 양식을 따라야 했던 우리는 다섯칸을 하기는 했는데 양 옆 두칸은 막은 듯 하다. 황제의 양식을 흉내만 낸 셈이라고나 할까?

낙선재 거북이 등껍질 문양의 담장이 아름답다.
04. 11/17 운현궁
운현궁은 조선 제26대 고종의 생부인 흥선대원군의 사저로서 고종이 12세까지 자란 곳으로 고종이 왕위에 오른 후 대폭 확장, 신축되어 궁으로 승격되었다. 흥선대원군이 이 곳에서 개혁정치를 구상하였고 실천하였던 조선후기 역사의 산실이 되었던 곳이다. 대원군은 1907년 흥선헌의대원왕(興宣獻懿大院王)으로 추봉되었다. 그래서 나는 대원왕이라고 부르길 즐긴다. 광해군을 광해왕으로 높여 부르듯이 기왕이면 높은 칭호를 써주고 싶다.

전시관에 척화비 모형이 있었다. 흥선대원왕의 쇄국정책은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실책으로 기록되었다. 진실은 막는다고 가려지는 것이 아니니까.
04. 11/17 탑골공원

탑골공원 팔각정 뒤로 국보 2호인 원각사지 10층 석탑이 보인다. 내 사진을 보고서 참 범생스럽게 나왔다는 탄성이 나왔다.^^;
경복궁은 조선의 정궁이지만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에 타 오랜 기간 폐허로 방치되었다. 1867년(고종 4년)에 흥선대원군이 간신히 다시 세웠지만 망국의 길로 접어들면서 궁궐도 쇠락하게 된다. 일제는 정문인 광화문부터 근정문 앞까지 모두 허물어 버리고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었으며, 경무대에는 총독의 관저를 지었다. 또한 강녕전, 교태전 등 대부분의 건물도 철거하여 빈터로 만들었고, 을미사변의 현장인 건청궁을 철거하였다. 또한 각지의 절과 절터에 있던 탑과 부도 등을 경복궁으로 옮겨놓아 유교 국가의 궁궐에 불교 상징물이 엉켜있게 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원래 경복궁의 10~15%에 지나지 않는다. 경복궁이 제 모습을 찾으려면 아마 상당기간 보수, 복원을 해야할 것이다.
광화문 앞 해태상과 함께... 본래는 이렇게 광화문에 붙어 있지 않고 세종로 쪽으로 나아간 지점이 있었다. 광화문 앞은 차가 쌩쌩 달리고 있어 과거에 육조거리였던 세종로에서부터 찬찬히 음미하며 광화문을 직선 코스로 들어갈 수 없는 이상한 구조로 되어 있다. 여하간 광화문만 보면 속이 꽉 막힌다. 목조 건물을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한 개발독재의 무지막지함이 한탄스럽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세워야 한다.
근정전 월대에는 사신과 십이간지의 동물들이 배열되어 있다. 모두 아기자기하게 생겨 정감이 간다. 주작과 함께.
근정전은 조선시대 궁궐의 법전 가운데 유일하게 상월대와 하월대에 난간을 두르고 돌짐승들을 조각해 놓았는데, 이는 경복궁이 법궁으로서 갖는 위상을 근정전의 격식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보수 공사를 거친 뒤라서 그런지 단청들도 화려한 빛깔을 뽐내고 있었다. 경복궁역 내의 지속적인 보수, 복원 공사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보수 공사로 근정전 내부는 깨끗해졌지만 옥좌에 왕 마네킹을 앉혀둔 것은 오바인 것 같다. 왕은 지엄하신 존재라 옛날에는 그림을 그릴 때도 왕의 자리만 있을 뿐 왕의 모습을 그려넣지는 않았는데... 떡하니 밀랍인형을 세워놓은 것이 그다지 보기 좋지 않았다. 왜 만들어놨지? ㅡ.ㅡ
근정전 월대에 올라 천하를 논하다.
3년 10개월 간의 보수 공사를 마친 경복궁 근정전의 아름다움에 매혹되다. 왜놈들의 손에 개박살 난 경복궁의 정전이 이나마 남아 있음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향원정에서... 저 취향교를 건너 가고 싶다
경회루 앞에서 엄지 자세를 안 할 수 없었다.
04. 11/5 청와대
관람 2주 전에 신청을 해야 가볼 수 있는 청와대를 귀차니즘을 뚫고 신청해서 가봤다. 아무래도 보안에 크게 신경 쓰는 곳이라 제한적인 관람이 이루어졌지만... 이 정도가 가능할 정도로 민주공화국은 발전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님과의 오찬을 기대했으나 이 때 대통령님은 해외순방 중이었다는...^^; 청와대 관람이 끝나면 보너스로 보여주는 칠궁(七宮)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청와대 후원 격인 녹지원에 거대한 반송 나무가 우리를 반겨줬다.
사실 본관 건물이 그다지 호감이 가지는 않았다. 청기와가 너무 파랗다. 궁궐 건축에 쓰였던 청기와는 본래 녹색빛이 도는 데 가까이서나 멀리서나 파랗게나 보여서 빨간 길과 너무 대비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하간 나중에 기필코 저 안에 들어가서 일을 보거나 얻어 먹을 생각이다.^^
여행 파트너 청원이와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청와대 비서실 아저씨께 부탁했지만 그다지 잘 못 찍는다는...^^;
04. 11/14 창덕궁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仁政殿)을 배경으로 선복이와 함께...
인정전은 창덕궁 내의 유일한 국보이다. 경복궁 근정전과는 다른 매력을 풍긴다.
창덕궁 후원 중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부용지와 주합루 배경으로 수현이와 함께...
주합루(宙合樓)는 아래층은 왕립도서관인 규장각이 있고, 위층은 열람실로서 이곳에서 부용지 주변의 빼어난 경관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주합루 정문인 어수문(魚水門)이 굳게 닫혀 있으니 아쉽게 돌아서야했다. 주합루 편액은 정조대왕의 친필이다.
낙선이란 말은 착한 일을 즐긴다는 의미이다. 낙선재는 본래 창경궁에 속했지만 현재는 창덕궁 영역에 속해 있어, 창경궁과는 담장으로 단절되어 있다. 순종의 황후였던 순정효황후가 이승만 정부와의 황실 재산 환수 문제에서 끈질긴 싸움 끝에 낙선재를 지켜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에 있던 영친왕 이은과 부인 이방자 여사, 조선왕조의 마지막 딸인 덕혜옹주 등이 이곳 낙선재에서 생활하다가 운명하였다.
낙선재의 화계는 조선 궁궐 중에 단연 으뜸이다.
현존하는 궁궐 전각 중에서 유일한 푸른색의 유리기와인 선정전을 배경으로... 맑은 날에 청기와가 햇살에 비쳐 눈부시게 빛나는 광경을 상상하니 황홀하기 그지없다.
중국 자금성의 황금빛 기와보다 윤기 나는 파란 기와가 훨씬 매력적이었다. 청기와는 회색조의 일반 기와보다 세 배 정도 비싸다고 하는데 조선 초기에는 몇몇 사찰에 청기와를 썼고, 궁궐 건물로는 경복궁의 근정전과 사정전만이 청기와를 이었다고 한다. 흥선대원왕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근정전만큼은 청기와를 덮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앞으로 복원하는 건물 중에서 청기와를 써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04. 11/14 창경궁
창덕궁, 창경궁, 종묘는 붙어 있어서 한꺼번에 둘러보기 좋다. 창경궁은 보수, 복원 공사가 별로 이뤄지지 않아서 전체적인 전각들이 허름하다. 하지만 덕분에 세월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04. 11/17 창덕궁
창덕궁 특별관람코스 현장 예매를 하려고 시도했으나 또 바로 앞에서 매진되어 그냥 일반관람코스로 둘러봤다. 기왕 개방하기로 한 것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으면 좋겠다. ㅡ.ㅜ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은 1609년(광해왕 원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현재 남아있는 궁궐 정문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문이 다섯칸인 것은 황제의 양식이다 보니 제후의 양식을 따라야 했던 우리는 다섯칸을 하기는 했는데 양 옆 두칸은 막은 듯 하다. 황제의 양식을 흉내만 낸 셈이라고나 할까?
낙선재 거북이 등껍질 문양의 담장이 아름답다.
04. 11/17 운현궁
운현궁은 조선 제26대 고종의 생부인 흥선대원군의 사저로서 고종이 12세까지 자란 곳으로 고종이 왕위에 오른 후 대폭 확장, 신축되어 궁으로 승격되었다. 흥선대원군이 이 곳에서 개혁정치를 구상하였고 실천하였던 조선후기 역사의 산실이 되었던 곳이다. 대원군은 1907년 흥선헌의대원왕(興宣獻懿大院王)으로 추봉되었다. 그래서 나는 대원왕이라고 부르길 즐긴다. 광해군을 광해왕으로 높여 부르듯이 기왕이면 높은 칭호를 써주고 싶다.
전시관에 척화비 모형이 있었다. 흥선대원왕의 쇄국정책은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실책으로 기록되었다. 진실은 막는다고 가려지는 것이 아니니까.
04. 11/17 탑골공원
탑골공원 팔각정 뒤로 국보 2호인 원각사지 10층 석탑이 보인다. 내 사진을 보고서 참 범생스럽게 나왔다는 탄성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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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사진들이 넘 이뿌게 나온거 같아요!! ㅋㅋㅋ
LOOKS GOOD!!!!!!!!!!*^^*
사실 배경들이 좋아서 그런 것이지. 게다가 잘 나왔다 싶은 것만 골라서 올린 것이니 실물 이상으로 나온 사진들이 제법 되겠지 뭐... 그래도 칭찬 고마우이. 너도 궁궐 비롯해서 서울 시내 문화 유적들을 기회되면 둘러보려무나.^^
안녕하세요 익구오빠~ ^^ 마땅히 방명록 쓸 곳이 없네여~ ^^; 그냥 이렇게 간단히 방명록 남기고 갑니다. 경복궁 저도 저번에 갔다왔는데 사진으로 보니깐 새롭네요~ ^^
방명록은 맨 위에 달려있지.^^ 작년 같으면 24세까지는 500원만 내면 경복궁 관람할 수 있었는데 이제 그 기준이 19세로 낮춰지고, 입장료도 대폭 올라 3000원을 내야 들어갈 수 있어서 선뜻 답사하기가 쉽지는 않아졌지만 그래도 오늘도 한번 또 가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