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중국 여행(하)
사진 2005/01/28 10:45 |
8/26 빠다링 창청(八達嶺 長城)
만리장성은 흉노, 몽고, 여진족 등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춘추전국시대 때부터 부분적으로 쌓은 성을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할 후 하나로 연결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만리장성은 명나라 때, 교통 요충지를 방어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적들이 나타나면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돈대에 봉화를 올려 침입을 알렸다고 한다.
베이징에서 가장 쉽게 찾아갈 수 있는 팔달령에 다녀왔다. 교통이 잘 발달된 곳을 이르는 사통팔달(四通八達)은 이 팔달령에서 유래된 것이다. 관광객을 위해 잘 정돈 해놓아서 솔직히 별다른 감흥이 일지 않았다. 장성의 벽돌 하나가 사람 목숨 하나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으니 그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 즐듕귁을 외쳐야했다.^^;



만리장성은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장성을 쌓던 인부들이 일에 지쳐 죽으면 그 자리에 묻혔기 때문이다. 맹강녀 설화를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참 많은 이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곳이다.
8/26 용경협(龍慶峽)
천연 협곡으로 양쪽 벼랑의 깎아지를 듯한 기세가 매우 장관이며, 경치가 아름다워 작은 계림이라고 불린다. 풍경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배를 타고 한 번 주욱 둘러보는 것으로 관광을 마쳤다.
에스컬레이터, 배, 백화원 동굴 이용하는 전체표(通票)를 끊어놓고도 백화원 동굴이 아닌 어두컴컴한 동굴을 내려왔다. 중국에서의 손실 중에 백화원 동굴 표 10위안이 제일 크게 느껴진다. 어두컴컴한 땅굴이 마치 북한군이 판 남침 기도용 땅굴이 생각나서 기분이 나쁘기 때문이다. 여하간 중국의 관광지 대부분이 옵션 요금제이므로 풀옵션 표를 샀다면 빼먹은 부분이 없나 잘 살펴야한다.

이 용 에스컬레이터는 1996년에 완공되어, 길이가 258m인데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고 한다.

꼭대기에 있는 정자나 사원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경관이 일품이라고들 하지만 귀찮아서 그냥 적당한 계단에서 사진 찍고 내려왔다.^^;
8/26 정릉(定陵)
명나라 14대 황제 만력제와 두 황후의 무덤. 주익균은 10세 때 황제에 올라 48년 간이나 황제 자리에 있었으나 내시와 후궁에게 둘러싸여 25년 간 조회를 한번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무덤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데 국력을 기울인 무능한 황제로서 명의 몰락을 재촉한 인물이다.

명루 앞의 석오공(石五供)은 고대 능묘의 상징적 제물이다.

정릉 지하궁전 금강문에서...

만력제의 산공선덕비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만력제 사후 그의 아들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버지의 비에 쓸 공덕을 찾을 수가 없어서 무자비(無字碑)가 세워졌다고 한다. 만력제는 48년 간 나라 말아먹는 것밖에 한 일이 없었다. 불쌍한 백성들...ㅡ.ㅜ 그래도 후손들에게는 짭짤한 관광수입을 올려주고 있으니 몇 자 적어줌직도 한데...^^;
중국에서 유학 중인 고등학교 친구들과 마침 중국 여행을 현이 등이 모여 즐거운 한 때를 보내다. 청나라 모자를 쓰고 기념 사진.
8/26 술집 魚太廊
8/27 옹화궁(雍和宮)
베이징 최대의 라마교(티베트 불교) 사원이다. 원래는 청나라 옹정제가 즉위 이전에 살던 사저였으나 그가 즉위하고 나서 절반은 사원으로 만들고 나머지는 별궁으로 꾸몄다. 청나라는 한족보다 소수민족 우대정책을 펼쳤는데 1744년 건륭제는 몽고와 티베트의 소수민족을 회유하기 위해 옹화궁을 라마사원으로 개조하였다.
거의 횃불 수준의 향을 여기저기서 피우기 때문에 매연에 찌든 베이징의 공기에서 해방되어 향에 취할 수 있었다. 만복각(萬福閣)에는 직경 3m의 백단목(白檀木)를 통째로 조각해 만든 세계에서 제일 큰 높이인 26m(지면으로부터 꼭대기 까지가 18m, 지하부분이 8m)짜리 목조 미륵불입상으로 유명한데 정말 하늘을 우러러 봐야 미륵불의 눈과 마주칠 수 있다.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아쉽게 함께 찍지는 못했다.

종 같이 생겼는데 돌릴 수 있는 이 물건에 무엇인지 궁금했으나 그냥 돌리면서 소원을 빌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은 불경을 새겨 손으로 돌릴 수 있도록 만든 마니차(法輪:prayer wheel)라고 하는데 글씨를 읽지 못하는 이를 위해 만들어진 도구로 이 마니차를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서 옴마니밧메홈(om mani padmehum, 연꽃 속의 보석이여 영원하소서!)을 외면 경전을 한 번 읽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만복각 내부를 도촬하고 싶었으나 라마승의 경비가 삼엄한 관계로 밖에서 거대한 미륵불상을 향해 기도를 하는 연출사진으로 만족해야 했다. 역사왜곡을 일삼는 자들에게 천벌을 내려주십사 빌었다.^^;
8/27 공묘(孔廟)
황제가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고목과 비석들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조선시대에 공자 모시기에 목숨을 걸었던 우울하고 못난 과거가 생각나서 그리 감흥이 일지는 않았다.

공자상 앞에서 현이와 함께 손모양을 따라했는데 공자상의 눈동자가 너무 재미나게 표현되어 있어 연신 피식거려야 했다.^^

대성전 안 공자의 위패에 절하는 연출사진이다. 아직도 논어를 제대로 못 읽은 것이 죄송스러워 절을 올리다.
8/27 국자감(國子監)
원나라 때 창건되어 명, 청 시대까지 중국 최고의 학문 기관이었던 곳이다. 안에는 집현문(集賢門), 태학문(太學門), 벽옹(辟雍) 등의 건축물이 있다.

벽옹 앞 다리에는 대학 합격을 기원하는 홍패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중국의 입시열도 우리 못지 않는 것 같다.^^
8/27 천안문(天安門)
자금성을 한번 더 가고 싶어서 현이 일행에 합류해 두번째 관람을 하다. 천안문을 들어가는 요금은 없으나 천안문 위로 올라갈 경우 등루료(登樓料)를 내야 한다. 돈을 내고 올라 가봤으나 별 것도 없는 데도 내부 사진 촬영도 엄격히 통제하고 실망스러웠다.

현이의 저 알 수 없는 손모양은... OK인가?^^;
8/27 자금성 오문(午門) 앞
자금성 오문(午門) 앞에서 중국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어주는 것이 있었다. 거금 40위안에다가 10위안을 추가하니 소지한 디카로도 사진을 찍어줬다.


함께 했던 현이와 金皇后와 翼宗을 연출해봤다.
주제는 어진 정치를 베풀기를 고민하는 금황후와 익종이다.

어리버리하고 문약해 보이는 익종... 정사를 돌보기보다는 웃는 것과 책 읽는 것을 더 즐겼을 것만 같다.

오문 앞 광장을 거닐며 화기애애한 금황후와 익종...
황제의 체통을 버리고 헤벌쭉 웃어 버리다.^^

金皇后가 金太后로 업그레이드되다. 익종의 뒤를 이은 어린 황제를 수렴첨정하며 권력의 핵심에 우뚝 선 그의 위풍당당한 자태를 보라~

금태후를 총애를 받아 단숨에 대장군의 직위에 오르게 되다. 하지만 백면서생이 더 어울리는 최 대장군의 전투력은 0에 가깝다고 한다.
8/27 자금성(紫禁城)
탈진한 규상이를 제쳐 두고 현이 등과 함께 자금성을 한 번 더 관람하기로 했다. 이틀 전 처음 갔을 때 너무 늦은 관계로 1시간 정도밖에 돌아보지 못한 것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될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완전히 다 돌아보지 못할 정도로 자금성은 여전히 볼거리가 풍성했다. 우리의 경복궁이 일제에 조직적으로 훼손되어 현재는 10% 정도밖에 남지 않은 것에 비하면 너무나 부러운 일이다.

태화전(太和殿)은 현존하는 중국 최대의 목조 건물로 황제의 즉위식을 비롯해 원정군 사령관의 임명, 조서 반포, 전시(殿試) 합격자 발표, 황제의 결혼식, 황후의 책봉, 원단, 동지, 만수절(萬壽節, 황제의 생일) 등의 각종 의식도 여기에서 거행되었다. 현이도 엄지의 물결에 동참해줬다.^^

보화전(保和殿) 뒤쪽의 층계 중간에 있는 운룡대석조(雲龍大石雕)는 무게가 250톤에 달한다. 이 거대한 조각품이 단 하나의 대리석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 대리석을 채취하는 데만 1만여 명의 인부가 투입되었고, 250톤이 넘는 돌을 50km 밖에 위치한 채석장에서 가져오기 위해 길가에 넓고 깊은 도랑을 파고 물을 부어 빙판을 만든 뒤 1,000마리의 말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정말 피땀으로 이룩한 아름다움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 짜냈지만 오직 황제만이 가마를 타고 떠서 나가는 길이기도 하다.ㅡ.ㅡ;

구룡벽(九龍壁)은 말 그대로 황제의 상징인 아홉 마리의 용이 그려져 있으며, 모두 270장의 기와로 이루어졌다. 설화에 따르면 구룡벽 공사가 끝날 무렵 건륭제가 시찰을 나오기로 했는데 그만 한 기술공이 실수로 기와 한 장을 깨뜨렸다고 한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그 기술공은 밤새 나무로 기와를 만들어 놓아 깨진 유리기와 대신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황제는 이를 눈치 채지 못했고, 그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이 나무 기와는 왼쪽에서 세 번째의 용의 몸에 있다고 하는데(엄지손가락이 가리키는 용) 모두 먼지가 묻어서 육안으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더 정확히는 세 번째 용의 허리 부분인데 직접 표면을 만져볼 수 있으면 모를까... 혹시 허풍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대우치수옥산(大禹治水玉山)은 옥돌에 백성들이 제방을 쌓고 물길을 내는 작업을 조각하였다. 옥은 베이징에서 5000km 똘어진 신강성에서 운반하였으며, 높이가 2.24m, 무게는 5t이고, 운반과 설계, 조각하는데 모두 10년이 걸렸다. 중국에서 가장 큰 옥 예술품이다.

진비정((珍妃井)은 광서제의 첩인 진비(珍妃)가 빠져 죽은 작은 우물이다. 진비는 매우 총명한 여인으로 1900년대 의화단 사건으로 외국군이 쳐들어 올 때 황제에게 도망가지 말고 담판을 하라고 청하였다. 그러나 그녀를 미워하던 서태후는 서양 병사들이 들어오면 치욕을 당할지 모른다는 핑계를 대며 진비를 우물 속에 빠뜨리도록 했다. 하여간 서태후는 여러 사람 고달프게 했다.

베이징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98위안 짜리 일본 뷔페를 달리기로 하다. 참치회나 롤, 두부 등이 하나같이 정갈하고 맛깔스러웠다. 종업원들의 은근한 눈치를 받을 정도로 본전을 뽑기 위해 신나게 먹어댔다.^^
인생의 행복은 거창한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가끔 이렇게 맛난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 것만으로도 그 얼마나 기쁜 일인가.^^ 게다가 좋은 사람들과 재미난 이야기 나누며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다면 이만한 산해진미는 따로 없다.
8/27 저녁 일본 뷔페

우리의 중국 여행 가이드였던 섭의 학교인 인민대의 교훈석인 실사구시 앞에서 기념사진~ 섭은 자신의 인민대 법학과는 북경대에도 밀리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하간 공부 열심히 하시길 바라며.^^
8/28 인민대학
8/28 베이징 대학(北京大學)
베이징 대학(北京大學)은 1898년에 창립된 중국을 대표하는 대학이다. 교수 1인당 학생수가 10명에 달할 정도로 훌륭한 교육환경 속에서 미래의 중국 지도자들이 키워지고 있는 무시무시한 곳이다.

도서관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중국의 대학생들이 제발 열심히들 배우되 동북공정 같은 속 좁은 헛짓거리를 하지 않기를 기원했다. 하도 으리으리하다기에 기대했으나 막상 가보니 역시나 허풍이었다.

베이징 대학에는 큰 호수가 있는데 너무나 아름다워 차마 그 이름을 지을 수 없다는 의미로 미명호(未名湖)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수질 최악의 똥물에 불과했다. 하여간 중국 사람들의 허풍은 알아줘야한다.^^;

베이징 대학의 정문이라고 할 수 있는 서문의 현판은 마오쩌둥의 친필이다.
베이징 대학을 끝으로 베이징과 작별을 고했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즐거웠던 베이징에서의 추억을 뒤로 했다. 다시 밝고 맑은 모습으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톈진에 도착해서 이 지역을 대표하는 꺼우부리 빠오즈((狗不理包子)를 먹다. 만두소가 가득하고 육즙이 풍부한 맛난 만두다. 狗不理란 원래 창업자의 별명이었다. 그의 성격이 너무 괴팍해서 주변 사람들이 그와는 개도 이치를 같이 할 수 없다는 뜻에서 구불리라 불렀다고 한다. 즉, 개만도 못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만두 하나 만큼은 기가 막히게 맛있게 만들어 그의 별명을 붙여 부르게 된 것이다.
8/28 저녁 꺼우부리 빠오즈

再見 中國! 謝謝 朋友!
8/29 톈진항

신영복 선생의 말씀대로 여행은 돌아옴(歸)인 것 같다.
과연 나는 제 자신으로 정직하게 돌아오고,
타인에 대한 겸손한 이해를 체득할 수 있었을까?
이번 중국 여행에 함께 해준 모든 벗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표한다.
8/29 天仁號
만리장성은 흉노, 몽고, 여진족 등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춘추전국시대 때부터 부분적으로 쌓은 성을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할 후 하나로 연결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만리장성은 명나라 때, 교통 요충지를 방어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적들이 나타나면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돈대에 봉화를 올려 침입을 알렸다고 한다.
베이징에서 가장 쉽게 찾아갈 수 있는 팔달령에 다녀왔다. 교통이 잘 발달된 곳을 이르는 사통팔달(四通八達)은 이 팔달령에서 유래된 것이다. 관광객을 위해 잘 정돈 해놓아서 솔직히 별다른 감흥이 일지 않았다. 장성의 벽돌 하나가 사람 목숨 하나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으니 그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 즐듕귁을 외쳐야했다.^^;
만리장성은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장성을 쌓던 인부들이 일에 지쳐 죽으면 그 자리에 묻혔기 때문이다. 맹강녀 설화를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참 많은 이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곳이다.
8/26 용경협(龍慶峽)
천연 협곡으로 양쪽 벼랑의 깎아지를 듯한 기세가 매우 장관이며, 경치가 아름다워 작은 계림이라고 불린다. 풍경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배를 타고 한 번 주욱 둘러보는 것으로 관광을 마쳤다.
에스컬레이터, 배, 백화원 동굴 이용하는 전체표(通票)를 끊어놓고도 백화원 동굴이 아닌 어두컴컴한 동굴을 내려왔다. 중국에서의 손실 중에 백화원 동굴 표 10위안이 제일 크게 느껴진다. 어두컴컴한 땅굴이 마치 북한군이 판 남침 기도용 땅굴이 생각나서 기분이 나쁘기 때문이다. 여하간 중국의 관광지 대부분이 옵션 요금제이므로 풀옵션 표를 샀다면 빼먹은 부분이 없나 잘 살펴야한다.
이 용 에스컬레이터는 1996년에 완공되어, 길이가 258m인데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고 한다.
꼭대기에 있는 정자나 사원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경관이 일품이라고들 하지만 귀찮아서 그냥 적당한 계단에서 사진 찍고 내려왔다.^^;
8/26 정릉(定陵)
명나라 14대 황제 만력제와 두 황후의 무덤. 주익균은 10세 때 황제에 올라 48년 간이나 황제 자리에 있었으나 내시와 후궁에게 둘러싸여 25년 간 조회를 한번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무덤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데 국력을 기울인 무능한 황제로서 명의 몰락을 재촉한 인물이다.
명루 앞의 석오공(石五供)은 고대 능묘의 상징적 제물이다.
정릉 지하궁전 금강문에서...
만력제의 산공선덕비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만력제 사후 그의 아들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버지의 비에 쓸 공덕을 찾을 수가 없어서 무자비(無字碑)가 세워졌다고 한다. 만력제는 48년 간 나라 말아먹는 것밖에 한 일이 없었다. 불쌍한 백성들...ㅡ.ㅜ 그래도 후손들에게는 짭짤한 관광수입을 올려주고 있으니 몇 자 적어줌직도 한데...^^;
중국에서 유학 중인 고등학교 친구들과 마침 중국 여행을 현이 등이 모여 즐거운 한 때를 보내다. 청나라 모자를 쓰고 기념 사진.
8/26 술집 魚太廊
8/27 옹화궁(雍和宮)
베이징 최대의 라마교(티베트 불교) 사원이다. 원래는 청나라 옹정제가 즉위 이전에 살던 사저였으나 그가 즉위하고 나서 절반은 사원으로 만들고 나머지는 별궁으로 꾸몄다. 청나라는 한족보다 소수민족 우대정책을 펼쳤는데 1744년 건륭제는 몽고와 티베트의 소수민족을 회유하기 위해 옹화궁을 라마사원으로 개조하였다.
거의 횃불 수준의 향을 여기저기서 피우기 때문에 매연에 찌든 베이징의 공기에서 해방되어 향에 취할 수 있었다. 만복각(萬福閣)에는 직경 3m의 백단목(白檀木)를 통째로 조각해 만든 세계에서 제일 큰 높이인 26m(지면으로부터 꼭대기 까지가 18m, 지하부분이 8m)짜리 목조 미륵불입상으로 유명한데 정말 하늘을 우러러 봐야 미륵불의 눈과 마주칠 수 있다.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아쉽게 함께 찍지는 못했다.
종 같이 생겼는데 돌릴 수 있는 이 물건에 무엇인지 궁금했으나 그냥 돌리면서 소원을 빌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은 불경을 새겨 손으로 돌릴 수 있도록 만든 마니차(法輪:prayer wheel)라고 하는데 글씨를 읽지 못하는 이를 위해 만들어진 도구로 이 마니차를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서 옴마니밧메홈(om mani padmehum, 연꽃 속의 보석이여 영원하소서!)을 외면 경전을 한 번 읽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만복각 내부를 도촬하고 싶었으나 라마승의 경비가 삼엄한 관계로 밖에서 거대한 미륵불상을 향해 기도를 하는 연출사진으로 만족해야 했다. 역사왜곡을 일삼는 자들에게 천벌을 내려주십사 빌었다.^^;
8/27 공묘(孔廟)
황제가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고목과 비석들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조선시대에 공자 모시기에 목숨을 걸었던 우울하고 못난 과거가 생각나서 그리 감흥이 일지는 않았다.
공자상 앞에서 현이와 함께 손모양을 따라했는데 공자상의 눈동자가 너무 재미나게 표현되어 있어 연신 피식거려야 했다.^^
대성전 안 공자의 위패에 절하는 연출사진이다. 아직도 논어를 제대로 못 읽은 것이 죄송스러워 절을 올리다.
8/27 국자감(國子監)
원나라 때 창건되어 명, 청 시대까지 중국 최고의 학문 기관이었던 곳이다. 안에는 집현문(集賢門), 태학문(太學門), 벽옹(辟雍) 등의 건축물이 있다.
벽옹 앞 다리에는 대학 합격을 기원하는 홍패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중국의 입시열도 우리 못지 않는 것 같다.^^
8/27 천안문(天安門)
자금성을 한번 더 가고 싶어서 현이 일행에 합류해 두번째 관람을 하다. 천안문을 들어가는 요금은 없으나 천안문 위로 올라갈 경우 등루료(登樓料)를 내야 한다. 돈을 내고 올라 가봤으나 별 것도 없는 데도 내부 사진 촬영도 엄격히 통제하고 실망스러웠다.
현이의 저 알 수 없는 손모양은... OK인가?^^;
8/27 자금성 오문(午門) 앞
자금성 오문(午門) 앞에서 중국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어주는 것이 있었다. 거금 40위안에다가 10위안을 추가하니 소지한 디카로도 사진을 찍어줬다.
함께 했던 현이와 金皇后와 翼宗을 연출해봤다.
주제는 어진 정치를 베풀기를 고민하는 금황후와 익종이다.
어리버리하고 문약해 보이는 익종... 정사를 돌보기보다는 웃는 것과 책 읽는 것을 더 즐겼을 것만 같다.
오문 앞 광장을 거닐며 화기애애한 금황후와 익종...
황제의 체통을 버리고 헤벌쭉 웃어 버리다.^^
金皇后가 金太后로 업그레이드되다. 익종의 뒤를 이은 어린 황제를 수렴첨정하며 권력의 핵심에 우뚝 선 그의 위풍당당한 자태를 보라~
금태후를 총애를 받아 단숨에 대장군의 직위에 오르게 되다. 하지만 백면서생이 더 어울리는 최 대장군의 전투력은 0에 가깝다고 한다.
8/27 자금성(紫禁城)
탈진한 규상이를 제쳐 두고 현이 등과 함께 자금성을 한 번 더 관람하기로 했다. 이틀 전 처음 갔을 때 너무 늦은 관계로 1시간 정도밖에 돌아보지 못한 것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될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완전히 다 돌아보지 못할 정도로 자금성은 여전히 볼거리가 풍성했다. 우리의 경복궁이 일제에 조직적으로 훼손되어 현재는 10% 정도밖에 남지 않은 것에 비하면 너무나 부러운 일이다.
태화전(太和殿)은 현존하는 중국 최대의 목조 건물로 황제의 즉위식을 비롯해 원정군 사령관의 임명, 조서 반포, 전시(殿試) 합격자 발표, 황제의 결혼식, 황후의 책봉, 원단, 동지, 만수절(萬壽節, 황제의 생일) 등의 각종 의식도 여기에서 거행되었다. 현이도 엄지의 물결에 동참해줬다.^^
보화전(保和殿) 뒤쪽의 층계 중간에 있는 운룡대석조(雲龍大石雕)는 무게가 250톤에 달한다. 이 거대한 조각품이 단 하나의 대리석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 대리석을 채취하는 데만 1만여 명의 인부가 투입되었고, 250톤이 넘는 돌을 50km 밖에 위치한 채석장에서 가져오기 위해 길가에 넓고 깊은 도랑을 파고 물을 부어 빙판을 만든 뒤 1,000마리의 말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정말 피땀으로 이룩한 아름다움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 짜냈지만 오직 황제만이 가마를 타고 떠서 나가는 길이기도 하다.ㅡ.ㅡ;
구룡벽(九龍壁)은 말 그대로 황제의 상징인 아홉 마리의 용이 그려져 있으며, 모두 270장의 기와로 이루어졌다. 설화에 따르면 구룡벽 공사가 끝날 무렵 건륭제가 시찰을 나오기로 했는데 그만 한 기술공이 실수로 기와 한 장을 깨뜨렸다고 한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그 기술공은 밤새 나무로 기와를 만들어 놓아 깨진 유리기와 대신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황제는 이를 눈치 채지 못했고, 그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이 나무 기와는 왼쪽에서 세 번째의 용의 몸에 있다고 하는데(엄지손가락이 가리키는 용) 모두 먼지가 묻어서 육안으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더 정확히는 세 번째 용의 허리 부분인데 직접 표면을 만져볼 수 있으면 모를까... 혹시 허풍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대우치수옥산(大禹治水玉山)은 옥돌에 백성들이 제방을 쌓고 물길을 내는 작업을 조각하였다. 옥은 베이징에서 5000km 똘어진 신강성에서 운반하였으며, 높이가 2.24m, 무게는 5t이고, 운반과 설계, 조각하는데 모두 10년이 걸렸다. 중국에서 가장 큰 옥 예술품이다.
진비정((珍妃井)은 광서제의 첩인 진비(珍妃)가 빠져 죽은 작은 우물이다. 진비는 매우 총명한 여인으로 1900년대 의화단 사건으로 외국군이 쳐들어 올 때 황제에게 도망가지 말고 담판을 하라고 청하였다. 그러나 그녀를 미워하던 서태후는 서양 병사들이 들어오면 치욕을 당할지 모른다는 핑계를 대며 진비를 우물 속에 빠뜨리도록 했다. 하여간 서태후는 여러 사람 고달프게 했다.
베이징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98위안 짜리 일본 뷔페를 달리기로 하다. 참치회나 롤, 두부 등이 하나같이 정갈하고 맛깔스러웠다. 종업원들의 은근한 눈치를 받을 정도로 본전을 뽑기 위해 신나게 먹어댔다.^^
인생의 행복은 거창한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가끔 이렇게 맛난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 것만으로도 그 얼마나 기쁜 일인가.^^ 게다가 좋은 사람들과 재미난 이야기 나누며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다면 이만한 산해진미는 따로 없다.
8/27 저녁 일본 뷔페
우리의 중국 여행 가이드였던 섭의 학교인 인민대의 교훈석인 실사구시 앞에서 기념사진~ 섭은 자신의 인민대 법학과는 북경대에도 밀리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하간 공부 열심히 하시길 바라며.^^
8/28 인민대학
8/28 베이징 대학(北京大學)
베이징 대학(北京大學)은 1898년에 창립된 중국을 대표하는 대학이다. 교수 1인당 학생수가 10명에 달할 정도로 훌륭한 교육환경 속에서 미래의 중국 지도자들이 키워지고 있는 무시무시한 곳이다.
도서관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중국의 대학생들이 제발 열심히들 배우되 동북공정 같은 속 좁은 헛짓거리를 하지 않기를 기원했다. 하도 으리으리하다기에 기대했으나 막상 가보니 역시나 허풍이었다.
베이징 대학에는 큰 호수가 있는데 너무나 아름다워 차마 그 이름을 지을 수 없다는 의미로 미명호(未名湖)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수질 최악의 똥물에 불과했다. 하여간 중국 사람들의 허풍은 알아줘야한다.^^;
베이징 대학의 정문이라고 할 수 있는 서문의 현판은 마오쩌둥의 친필이다.
베이징 대학을 끝으로 베이징과 작별을 고했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즐거웠던 베이징에서의 추억을 뒤로 했다. 다시 밝고 맑은 모습으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톈진에 도착해서 이 지역을 대표하는 꺼우부리 빠오즈((狗不理包子)를 먹다. 만두소가 가득하고 육즙이 풍부한 맛난 만두다. 狗不理란 원래 창업자의 별명이었다. 그의 성격이 너무 괴팍해서 주변 사람들이 그와는 개도 이치를 같이 할 수 없다는 뜻에서 구불리라 불렀다고 한다. 즉, 개만도 못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만두 하나 만큼은 기가 막히게 맛있게 만들어 그의 별명을 붙여 부르게 된 것이다.
8/28 저녁 꺼우부리 빠오즈
再見 中國! 謝謝 朋友!
8/29 톈진항
신영복 선생의 말씀대로 여행은 돌아옴(歸)인 것 같다.
과연 나는 제 자신으로 정직하게 돌아오고,
타인에 대한 겸손한 이해를 체득할 수 있었을까?
이번 중국 여행에 함께 해준 모든 벗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표한다.
8/29 天仁號
TAG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