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서울기행 1~2월

사진 2005/02/21 04:44 |
05. 1/22 백제고분군
석촌동백제초기적석총은 백제가 한강 하류역에 위치한 한성(漢城)에 도성을 정한 후 서기 475년 웅진(熊津)으로 천도하기 이전까지 형성된 백제 전기 고분군이다. 백제의 매장 풍습과 함께 축조 당시 문화, 정치, 사회 등에 관한 백제사의 여러 가지 내용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이 고분은 중국에 있는 고구려 장군총(광개토대왕릉으로 추정)보다 규모가 크다고 한다. 고구려 초기 무덤과 양식상 일치하기 때문에 삼국사기의 기록처럼 백제의 지배자들이 고구려에서 넘어온 것임을 실증하는 무덤이다. 백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근초고왕의 무덤으로 추정하기는 하지만 확실치 않다.


05. 2/3 우정총국

서울 시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관청 건물이다. 개화파들이 우정총국 개설 축하 연회식을 기점으로 갑신정변을 일으킨 것이 유명하다. 건물 내부에 각종 우편 관련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다.


05. 2/3 경복궁
2005년부터 서울시내 궁궐 입장료가 대폭 인상되고 무료입장하던 어린이, 청소년에게도 입장료를 징수하게 된다. 경복궁의 경우 성인 입장료가 1000원에서 3000원으로 올랐다. 24세까지 청소년 적용을 받던 것도 19세로 낮춰졌고, 무료입장이던 7~18세의 어린이/ 청소년들도 성인 요금의 50%를 내야한다. 나는 작년까지는 청소년 요금이 적용되어 500원(1000원의 50%) 내던 것을 올해부터는 3000원이나 내야했다.

중국 자금성은 성인 입장료가 80위안(우리 돈 12000원 가량)이다. 물론 궁궐이 잘 보존되어 있어 그만한 가치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 물가의 1/3 수준인 중국으로서는 매우 비싼 입장료이다.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해 이마저도 올릴 예정이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무척 부러운 일이다. 그래도 사람이 북적거릴 정도로 잘 보존된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 궁궐 입장료가 지나치게 낮은 감이 있었는데 이 정도의 인상은 감수할 만 하다. 이 정도가 아깝다고 생각할 만큼 쩨쩨하지 않았으면 한다. 너무나 파괴되어 중건(혹은 복원)이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우리 궁궐을 위해 약간의 투자를 한다고 너그럽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3년 간의 보수 공사 끝에 깔끔하게 새로 태어난 근정전... 단청들이 화려한 빛깔을 뽐내고 있다.


자경전 후원에 있는 보물 제810호 십장생 굴뚝
십장생 굴뚝에서 만수무강을 빌어보다.


중국 유학 중인 섭과 함께...
자금성과는 다른 우리 궁궐의 매력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교태전의 후원에 있는 보물 제811호인 아미산의 굴뚝
굴뚝 장식은 온돌 문화인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아미산을 만들고 거기에 아담한 굴뚝을 만들었던 게 바로 조선의 힘이었다.


경회루 없는 경복궁은 상상하기 힘들다.
웅장하면서도 소박한 경회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누각이다.


세종 때 집현전 자리로 고종의 경복궁 재건 때 수정전으로 고쳐 지어졌다. 어릴 적에 왔을 때는 매우 퇴락한 건물이었는데 단청을 새로 입히고 보수를 해서인지 새건물 같았다. 집현전 학사들을 기리며 책 읽는 자세를 연출해봤다.^^;


근정전 동행각을 배경으로

05. 2/3 경희궁
경희궁(慶熙宮)은 17세기 초반 광해왕 시절에 창건된 이후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이궁(離宮)으로 존속해왔으나 왜놈들에 의해 완전 개박살났다. 몇 채의 건물이 가까스로 복원되어 궁궐터를 지키고 있다. 궁궐터에 서울역사박물관을 큼지막하게 세워놓아 더 이상의 복원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은 일제시대 때 헐려 지금 동국대학교 법당인 정각원으로 쓰이고 있다. 지금 경희궁터에 있는 건물은 ‘진짜’ 숭정전이 낡아서 이 곳으로 옮겨오는 것이 힘든 관계로 대타로 복원한 건물이다. 별로 가치가 있지 않다 보니 건물 내부까지 들어갈 수 있게 해놨다. 천장의 용을 쳐다보면 플라스틱 장난감 얼마나 조잡한 복원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태녕전 뒤 언덕에 바위가 있는데 광해군 때 왕기가 서렸다는 소문의 근거가 된 바위로 서암 혹은 왕암이라고 한다. 예사롭지는 않지만 고작 이 정도를 가지고 궁궐을 억지로 짓다가 정작 입궁도 못해보고 쫓겨난 광해왕의 삽질이 아쉬웠다. 광해왕을 쫓아내고 즉위한 인조가 정원군의 장남 능양군이었으니 전설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경희궁 자리가 원래 정원군의 옛집이었으니까 어쨌든 왕의 기운이 서리기는 한 모양이다. 그래봤자 인조는 별로 신통치 못한 임금이었지만 말이다.

05. 2/13 경운궁
덕수궁(德壽宮)이란 이름은 궁궐 이름이 아니다. 고종에게 붙인 궁호(宮號)로서 황제위에서 밀려난 고종을 가리키는 칭호일 뿐이다. 즉 덕수궁이란 이름은 상왕의 장수를 비는 뜻으로 붙였다가보다는 왕위에서 쫓겨난 폐왕의 거소를 지칭하는 뜻으로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궁궐의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이라고 해야 맞는다. 창경원이 창경궁으로 본래 이름을 되찾았듯이 덕수궁도 경운궁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정관헌은 고종황제가 커피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거나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정관헌 뒤쪽에 러시아공사관으로 통하던 지하 비밀 통로의 입구가 남아 있다.


경운궁의 정전인 중화전을 배경으로... 대화재 때 소실되지만 않았어도 근정전이나 인정전처럼 중층의 웅장한 건물이 이어졌을 텐데 아쉽다.ᅮ.ᅮ 대화재 후 단층 건물로 복원된 중화전은 대한제국의 열악한 재정과 기울어져가는 국운을 방증하는 셈이다. 그래도 황제궁의 정전인 만큼 위엄을 갖추기 위해 지붕을 크게 했다고 한다.


준명당과 석조전을 배경으로 해봤는데 신구의 조화가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너른 잔디밭은 건물이 있던 흔적을 나타내준다.


석조전은 조선왕조가 마지막으로 지은 궁궐 건물이지만 전통 궁궐의 모습과 너무 달라 생뚱맞을 따름이다. 경운궁에서 쓰러져 가는 제국의 향수를 느껴보자.
Posted by 새우범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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