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영공(刻影公)께 드리는 글

엊그제 신촌에서의 회동에서 뜬금없이 나왔던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내 견해를 밝히는 내내 두려웠단다. 그러나 내 자신이 어떻게 비춰질지가 염려스러워 내 속내를 감춘다면 그것 또한 친구에 대한 예의가 아닐 거 같아서 늘 그렇듯이 솔직한 내 입장을 밝혔지. 일단 예전에 보도된 통계를 재인용하고 싶다. 2005년 북한 1년 예산은 1달러에 1,000원으로 환산했을 때 한국 돈으로 2조 8,700억원 정도로 추산돼. 20005년 한국 정부 예산 195조원의 약 1/70 규모지. 2005년도 한국 국방비가 20조8,226억원이고, 정부가 추산한 북한의 국방 예산을 1조원(정부는 북한의 실제 국방예산은 실제 공개된 것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상이라 보더라도 우리 국방비의 1/10도 안 된다는 계산이 놀라웠어. 북한의 예산체계가 우리의 그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물가도 차이가 난다는 점을 참작하더라도 이 수치는 놀랍지 않니(물론 북한 국방비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만 적어도 우리가 액수는 앞선다는 건 자명하다고 본다).


또 2005년 국방부 보고에 따르면 첨단 무기구입비는 남한이 북한의 30배 이상이라고 하니 적어도 국방에 들이는 돈의 크기는 대한민국의 우위가 확고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당최 우리나라 군대는 이 압도적으로 차이나는 예산을 가지고도 북한 하나 이기지 못하는 국방력을 보유하고 있다니 기가 막히잖아. 그렇다고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을 우리가 먼저 침공할 일도 없을 테고 방어하는 입장에서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조심스레 내 의견을 말해본다. 더군다나 한반도는 이미 군사력이 포화상태인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라서 남북간 군사우위는 무의미한 단계이고 말이지. 이 엄청난 무력 대치 상황은 일단 전쟁이 났다 하면 누가 이기고 지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멸망하는 상태인 게 자명하잖아.


사실 군사력에 대한 평가는 가장 까다로운 문제 가운데 하나인 거 같다. 진짜 전쟁을 해보지 않고서야 확증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기도 하지. 그러나 적어도 국군의 대북 억지력은 적잖이 갖추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야. 그것은 우리 사회가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슬기롭게 극복해가며 건실하게 성장했다는 기쁜 증거이기도 하고 말이지. 이견들이 많다 보니 확언하기는 힘들지만 남한의 군사력이 질적으로 앞선다고 해도 북한이 평양∼원산 이남에 전력의 70%를 배치한 상황은 우리에게 여러모로 위협이 된다는 점도 인정하고. 여하간 나는 이런저런 수치보다는 과연 이 나라를 목숨 바쳐 지키는 보람이 있을까라는 회의를 갖게 만드는 일반 사병들의 사기 문제라든가, 군 지도부가 미국의 정보력, 작전수행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심을 가지는 용기를 품을 수 있느냐 하는 심리적 측면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


불민한 나도 작전통제권이 군사주권의 핵심이며 주권국가의 주요 요건이라는 건 직관적으로 알 수 있지. 네가 말한 정보수집능력과 작전기획능력이라는 것도 우리가 작전통제권을 가져야 좀 더 발전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싶다. 다만 전시 작전통제권 문제가 너무 정치화되어서 섬세하게 논의되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야. 한반도의 안보가 불안한 분위기가 유지돼야 먹고사는 인간들이 너무 많구나. 애국심을 핑계로 나라걱정은 자기가 다 하는 줄로 아는 일부 사회 지도층의 몰지각한 행동에 신물이 난다. 아무튼 전시 작전통제권 문제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아. 부러 조바심 내서 환수할 것도 없지만 억지로 미국에 계속 맡겨둘 필요도 없는 거니까. 그저 이 나라가 지킬만한 가치가 더욱 높아지도록 열심히 알콩달콩 살아보세.


언제쯤 이 “농노의 도덕”(노예의 도덕보다는 조금 진화한 형태를 일컫는 말로 내가 멋대로 만들어 쓴 용어^^;)을 극복해낼 수 있을까. 개 같이 벌어 정승처럼 쓴다는 속담이 개(犬)와 같이 열심히 일하라는 뜻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일단은 개처럼 비굴하게 나가자는 뜻이라면 고개를 가로 저을래. 국제정치에서 국익을 위한 부득이한 굴신도 있게 마련이지만 대개는 개처럼 벌면 개같이 쓰게 된다고 믿거든. 정승을 지향하는 결과위주의 사고가 얼마나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는지는 딱히 더 밝힐 것도 없고 말이지. 정승처럼 부귀영화를 누리는 건 좋겠지만 그 과정도 아름다워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부귀영화는 사회 밑바닥까지 골고루 퍼져야하지 않을까. 정승만 선망하는 사회보다 지근거리에 넘쳐나는 아픔을 보듬는 사회가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모델이 아닌가 모자란 머리로 생각해봤어.


정조대왕이 수원 화성을 지을 때 신하들이 “성이란 튼튼하면 되는 것이고 적을 물리치는 힘만 있으면 되는 것인데 어찌하여 이토록 아름답게 짓사옵니까?”라고 물었대. 정조대왕은 “아름다움이 바로 적을 이기는 힘이니라”고 답했다고 해. 이 이야기의 출전이 혹시 조선왕조실록에 있나 해서 샅샅이 뒤졌지만 발견하지 못했어. 여러 사람이 이 말을 인용하는 걸 보면 지어낸 이야기 같지는 않은데 원전을 확인할 길이 없어서 아쉽네.^^; 여하간 정조대왕의 이 말씀은 무척 많은 영감을 주는 거 같아. 결국 우리는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을 위해 평화를 추구해야 하고 이 분단체제를 극복해내야겠지. 부국강병이라는 미명 하에 아름다운 문화의 저력, 매력의 힘을 간과하지 말자꾸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이기는 대한민국의 힘이란 게 무엇인지 좀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랄게. 사람이 하찮다고 그 말까지 버리지 않는 네 마음자리가 참 고마우이.^-^ - [小鮮]

싸이 미니홈피 방명록 글자수 제한에 걸려서 부득이 여기에 전문을 싣는다. 말이 많아서 큰일이야.ㅡ.ㅜ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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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민 2006.08.14 10:4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음... 저야 뭐, 작전권 환수에 그리 목매다는 편은 아닙니다. 다만 일관성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조선일보 얘기지요...정권을 공격하기 위해 반대하는 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뉴스를 보니 원로 군인들이 환수하면 안된다고 데모를 했더군요. 그게 참 희한하게 느껴졌습니다. 저같은 사람이야 작전권이 먼 일로 느껴지겠지만, 군인들이라면 작전권을 달라고, 우리는 충분히 북한을 이긴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2. 익구 2006.08.14 17:3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예 저도 그 점을 지적하고 싶어요. 사실 저 또한 작전통제권 문제에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지요. 이런 사안은 자칭 군 원로라는 분들이 좀 앞장서서 챙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이 남네요. 이 분들은 나라걱정을 하시느라 여념이 없으신가 봐요. 물론 국가안보는 1%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겠죠. 하지만 이 분들은 너무 호들갑인 것 같아 좀 민망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