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오랜 숙원이었던 일기 쓰기에 도전합니다. 일단 무조건 매일 쓰는 걸 원칙으로 합니다. 그 날 못 쓰면 다음 날, 다다음 날이라도, 아니면 예전에 썼던 글 조각을 인용하더라도 날마다 한 가지 생각씩을 하고 살았음을 기록하려 합니다. 일주일 단위로 등재할 예정입니다. 제 게으름이 두려울 뿐입니다.^^;


060814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기록문화 유산을 자랑한다. 조선시대 임금의 비서실 격인 승정원에서 작성한 ‘승정원일기’ 3,245책의 글자수는 2억4,125만여자에 달한다. 중국 명나라 294년의 역사를 기록한 명실록의 글자수가 1,600여만자인 점과 비교하면 그 방대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16대 인조(재위 1623~1649)부터 고종까지 승정원일기 중 한글로 옮겨진 것은 고종때 것 뿐이다.

꼭 번역해야 하는 고전은 얼마나 되고, 언제쯤이면 ‘까막눈’신세를 면해 조상의 남긴 글을 쉽게 볼 수 있을까. ‘국학진흥을 위한 기획조사 연구’에 따르면 한 해 동안 60여책을 번역하는 현재의 여건 대로라면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국가 기록물(국고문헌) 전체 3,300여책 중 번역이 안된 2,500여책, 문집 등 일반 고전 가운데 번역이 필요한 4,000여책을 모두 번역하는 데는 100년이 걸린다.
- “한자의 벽에 갇힌 전통을 구하라”, 한국일보, 2006. 07. 28 

국보 제151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국보 제153호 일성록(日省綠), 국보 제 303호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같은 유구한 기록정신을 이어 받아 나도 흉내를 좀 내봐야겠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이 참 무섭다. 그러나 기록을 통해 내 자신에 좀 더 엄격해지는 계기로 삼도록 하자.


060815
고이즈미가 결국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러 갔다지만 나는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동빈, 홍익이와 함께 지난 7월에 봤던 평양에서 온 국보들 특별전을 다시금 보니 역시 두 번째라 그런지 그 때 놓쳤던 느낌들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북한은 1998년부터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도, 황하문명과 함께 '대동강문명'을 추가하여 이를 '세계 5대문명의 발상지'라고 주장하고 교육하고 있다고 한다. 셋이서 그걸 가지고 조금 구박을 했고, 국보, 준국보 지정을 너무 남발하는 게 아니냐며 좀 투덜거렸다. 만약에 북한 관계자가 우리의 말을 들었다면 좀 상심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잖은 명품에는 마땅한 찬사를 보냈으며, 회화가 부족한 북한 문화유산의 형편에는 깊은 안타까움을 보냈다. 나는 신문지상에서 읽은 대로 고려 태조 왕건상에서 남근이 2cm로 축소되어 나타난 색욕을 멀리하라는 불교식 표현임을 설명했고 그걸 놓고 또 한바탕 이야기꽃을 피웠다.

상설전시관 관람이 이번이 다섯 번째이기는 하지만 갈 때마다 새로 눈에 들어오는 문화유산들이 참 많다. 회화 같은 경우 주기적으로 교체를 하다 보니 새로운 것들이 눈에 띄었다. 한 권의 책으로 된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첩은 교체 전시를 쪽수만 바꾸면 된다며 박장대소했다. 고려 묘지명(墓地銘) 기획특별전에서 최윤의 할아버지 묘지명과 기념촬영을 했다. 해주 최씨 선조이신 최윤의 할아버지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알려진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을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상정(詳定)은 골라 뽑았다는 뜻으로 고금의 예문을 모아 편찬한 책이니 좀 거칠게 말하면 명언명구 모음집 같은 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가 명언명구 수집을 즐기는 건 어쩌면 조상님의 피를 좀 이어받아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상정고금예문을 1234년(고종 21년)에 금속활자로 찍어냈다는 기록이 있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국민의 성금으로 되찾아 온 선무공신 김시민 교서를 보면서 해외로 반출된 문화유산을 찾으려면 얼마나 돈이 많이 들지 한탄을 했다. 홍익이는 일본에 있는 몽유도원도를 얼른 찾아와야 한다고 역설했고 과연 얼마나 돈이 들지 서글픈 계산을 해봤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목판을 감상하며 고산자 선생의 장인정신에 감탄사를 아끼지 않았다.

국보 제302호 진주 청곡사 괘불은 길이 10m, 폭 6.3m에 이르는 지라 정말 엄청났다. 괘불(掛佛)은 글자 그대로 '걸어 매다는 불화'를 말한다. 석가모니가 설법하는 장면인 영산회상도를 그린 이 괘불은 본존불인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양 옆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화면 가득히 배치했다.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걸개그림인데 이 때 야외에 설치하는 법단이 야단(野壇)이며, 괘불이 걸리는 날에는 절에 사람이 북적거렸기에 야단법석이란 말이 나온 건 이제 상식이 된 거 같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에서는 이 거대한 불화를 전시하면서 소책자를 발간했는데 중앙박물관에서 특정 유물 1점만을 대상으로 한 이런 도록 발간은 사상 처음인 것을 보인다.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문화유산을 선별해서 이런 소책자를 많이 발간했으면 좋겠다. 높아진 문화수요에 공급이 절실하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는 케인지언이 되어 본다. 불화 전시실을 지나며 나는 또 고려불화의 90%가 외국 특히 일본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광복절이라 보니 일본이 조금 더 미워졌다.

일전에 이건무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가장 마음이 끌리는 유물로 꼽은 것이 반가사유상 전시실 가는 길목에 전시된 10세기 고려 철조불두(鐵彫佛頭)인데 나 또한 무척 좋아한다. 다정다감한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그간의 근심걱정이 가벼워지는 치유효과가 있는 것 같다. 독방을 쓰시는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의 미소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앉아서 바라보니 은은한 미소가 더욱 그윽하게 다가왔다. 셋이서 미소를 찬탄하니 안내하시는 분께서 국보 제83호에 비해 미소가 더 깊다며 맞장구를 쳐주셨다. 개인적으로 국보 제78호에 금박이 좀 더 남아 있었더라면 인기가 더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희준(犧尊, 소 문양의 술잔)과 상준(象尊, 코끼리 문양의 술잔)은 제기로 종묘나 문묘에서 행해지는 제사에서 사용했다고 하는데 익살스런 모양에 한참을 감상했다. 술을 담는 야외용 합인 주합(酒盒)도 인상적이었는데 위와 아래는 안주를 담거나 술잔으로 대용하고, 가운데는 술병인 매우 재미난 유물이다. 오늘도 마음의 양식을 과식했다. 기획특별전 공짜표를 선사해준 동빈이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표한다. 8월 가기 전에 호림박물관 국보전도 보러 가야겠다. 나는 내 것의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 거의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쓴 거라 좀 더 내용 보강해서 익구닷컴에서 "광복절 기념 국립중앙박물관 관람"이란 제목으로 새로 썼다.


060816
수현, 준식, 준석이와 함께 현식이네서 잡탕찌개를 끓여 먹으며 엠티 기분을 냈다. 현식이가 기숙사 입성에 성공하면서 현식장 폐쇄가 못내 아쉬운 이들은 땀을 흘려가며 환담을 나눴다. 그러다가 준석이가 대뜸 묻는다.

“너 아직도 노사모냐?”

뭐 이런 질문 한 두 번도 아니지만 들을 때마다 좀 당혹스럽다. 왜냐하면 묻는 사람이 노사모의 개념 정리를 잘 안 해주기 때문이다. 노사모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한 회원이라는 뜻인지, 아니면 여론조사에서 20% 정도 나온다는 대통령 지지자들을 일컫는 말인지, 아니면 열린우리당 친노 계파를 지칭하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사실 뭐 그런 세세한 부분을 알았다면 그렇게 단순하게 질문을 던지지도 않았을 게다. 차라리 참여정부나 집권여당의 거시적 혹은 미시적 정책을 가지고 논쟁을 벌이자고 했으면 얼마나 유익했을까? 너 노사모냐 아니냐 같은 마녀재판보다는 종합부동산세 문제나 한미FTA 문제 같은 걸로 안주를 삼았으면 좀 더 생산적이지 않았을까? 고등학교 시절부터 세월의 무게를 잘 견뎌온 우리 우정이 아쉬워서 하는 소리다.

지난 2006 월드컵 결승전 당시 프랑스팀의 지단이 이탈리아팀의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한 이유가 “지단 너, 노사모지?”라고 말해 지단이 참을 수 없었다는 유머가 나돌기도 했다. 어쩌다가 노사모라는 상징성이 이렇게 야유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을까? 일단 노무현 팬클럽 의미로서의 노사모는 이제 역사에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고 본다. 더 이상 무언가 새로 이룰 동력이 사라졌다는 판단에서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제는 저무는 일만 남지 않았나 싶다. 화려한 빛깔과 짙은 향기를 더 붙들어 두려고 안간 힘을 쓰기보다는 고이 지는 꽃잎이 되길 바란다. 노사모라는 이름에 집착할 필요는 없을 듯싶다. 다만 이런 온라인 커뮤니티로서의 노사모가 아닌 노무현이 표상했던 원칙이나 정신이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 것이다.

노사모란 이름으로 모였던 사람들이 어떤 이들인가? 노사모의 상당수가 현재의 열린우리당의 창당에 지지나 호감을 나타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열린우리당의 창당명분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열린우리당은 ‘깨끗한 정치, 잘사는 나라’, ‘당원이 주인되는 정당’, ‘국민통합을 지향하는 정당’, ‘백년 가는 정책정당’라는 목표를 걸었다.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질타를 받을망정 한국 정당사에서 매우 빼어난 모습으로 등장했다. 중산층과 서민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고, 지역주의를 극복해 진정한 사회통합을 이루고, 깨끗하고 효율적인 정치를 구현하고, 평화통일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나가는 건 열린우리당뿐만 아니라 모든 수권정당의 목표가 될 수 있고, 독점 불가능한 꿈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런 꿈을 품는 사람이 노사모라면 나는 여전히 앞으로도 노사모를 칭하겠다. 그러나 아마 이런 의미도 아닌 것 같다.

앞으로는 누군가를 노사모라고 삿대질하는 친구들에게 당최 노사모가 뭘 뜻하는지부터 반문해야겠다. 그래야 가타부타 답을 해줄 것이 아닌가. 좀 더 자유로우면서도 정의로운 세상이란 어떤 것인가를 궁리하는 친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가까운 친구들과 복선 없이 허심탄회한 토론을 나누는 건 상상만으로도 기쁜 일이다.^-^


060817
영화 괴물의 흥행 돌풍에 김기덕 감독은 “한국영화의 수준과 한국관객의 수준이 잘 만났다고 생각한다. 이는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며 뼈있는 한마디를 했다. 괴물의 쾌속질주에서 우리네 집단주의 정서를 확인하는 건 오버일까? 몇 년 만에 인터넷 세상이 저열하게 바뀌고 있는 것 또한 다양성을 감내하지 못하는 우리의 편협함 때문은 아닐까?

민심이 천심이라고 믿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신봉하던 나였지만 요즘은 자꾸 회의가 든다. 대의 민주주의에 확신이 없어지는데 버나드 마넹 교수가 지은 [선거는 민주적인가]라는 책을 좀 보면 해법을 찾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김기덕 감독의 표현을 빌려 한국정당의 수준과 한국유권자의 수준이 잘 만났다고 말하면 지나친 처사일까?


060818
내가 생각하는 바를 분명히 밝히는 것과
타인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비판하는 것
(혹은 미감을 거스르지 않게 하는 것)
이 두 가지 것의 균형을 잡는 일이 참 어렵다.
진정성이 담긴 내 선의를 인정받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060819
고심 끝에 행정고등고시 재경직에서 일반행정직 응시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일단 책을 사 모으는 습성 탓에 재경직 필수과목인 재정학 교재를 몇 권 사놓은 게 조금 민망하지만 역시 내 마음이 좀 더 끌리고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요 며칠 간 행정고등고시 재경직 선택과목 선정을 놓고 너무 난항을 겪었다. 내 전공이기도 한 경영학은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기피 과목이 되어 도전하기 망설여졌고, 세법이나 통계학, 국제경제학도 내가 섣불리 선택하기 꺼려지는 분야다. 남은 게 회계학과 상법이었는데 회계학은 명색이 전공이지만 나는 그다지 소질이 없었다. 행시 회계학 시험은 CPA시험과 달리 계산문제는 거의 출제되지 않고 주로 이론적인 질문 등이 주된 출제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학부시절 내 회계학의 처참한 전과들을 보면 호기롭게 고르기가 힘들다. 상법의 경우 법학에 무식한 내가 감내할 수 있을지 적잖이 걱정스럽다. 비록 선택과목 비중이 많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꼬리가 개를 흔드는 격으로 내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내 자존심이 너무 높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이런 시험 공부를 안 하고 다른 공부를 한다면 그에 못지 않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엄청난 기회비용을 치르면서 하는 시험 공부인 만큼 반드시 성사시켜야 내 기회비용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설혹 남아 있을 마음의 장애물은 조속히 걷어내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행시 재경직에 도전해서 그 핑계로 경제학과 재정학 공부를 좀 해보자는 너스레를 떨기도 했지만, 일반행정 필수과목에는 재정학 대신 정치학이 들어가고 선택과목은 재경직의 그것과는 달리 고르기가 조금은 무난한 편이다. 정책학이나 지방행정을 고르고 남는 화력을 경제학과 행정법에 투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대개의 고시생들에 비해 출발이 다소 늦은 편인 나로서는 좀 더 효율적인 수험 전략을 구사해야 했다. 내가 하려는 일이 결코 소풍을 가듯이 할 성질의 것이 아님을 이제 알겠다.

요즘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마음이 바뀌는지라 아직 좀 더 궁리할 시간에 최종결정이 바뀔 가능성은 있겠지만 이쯤 되니 배수진을 치는 느낌이다. ‘바람은 쓸쓸히 부는데 역수의 물이 차구나. 장사가 한번 떠나니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라는 노래를 읊으며 자객 형가(荊軻)는 훗날 진시황이 된 진나라 왕을 암살하기 위해 떠났다. 형가가 역수를 건너지 않고 지체하자 태자 단(丹)은 그가 변심하지는 않은지 의심했다. 형가는 노하여, “비수 한 자루를 가지고,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예측할 수 없는 진나라로 들어가는 와중에, 제가 아직 머무르고 있는 까닭은 제 길벗을 기다려 함께 떠나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연암 박지원은 “형가가 기다린 사람이란 이름을 지닌 어떤 실재하는 인물은 아닐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형가가 기다린 사람은 제 자신의 굳은 결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며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는 제 자신의 시린 마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의지를 지닌 인간은 그토록 아름답고 무섭다.

내일은 희망차면서도 불안하다. 서둘지 말고 쉬지 말자고 하지만 조바심도 나고 머뭇거리기도 한다. 오지 않는 길벗을 기다리듯이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버려가며 무엇을 이루려는 결단은 참 힘들다. 모든 빼어난 것은 드물기에 아름다운 지도 모른다.


060820
외대 근처 신고서점에 가서 책 54권을 갖다 주고 오만원어치 책을 바꾸고 만원짜리 한 장을 받아왔다. 사실 내놓은 책들에 포함된 두툼한 대학교재 두 권 값 정도에 지나지 않으니 어찌 보면 너무 적은 금액이다. 하지만 헌책 팔아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헌책으로 6만원 상당의 돈을 벌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 나름대로 양질의 도서를 엄선해서 내놓았기 때문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푸하하 평소에 신고서점에서 좋은 책들 값싸게 많이 사왔던 터라 고마운 마음을 보답하기 위해 흥정 같은 거 없이 부르는 값에 책을 내려놓고 왔다. 책을 한번 바꿔보니 앞으로 도서 충동구매를 좀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싼 돈주고 산 책도 헌책방에 내놓을 때는 정말 얼마 못 받는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정말 소중한 경제 공부였다고나 할까. 부디 내 책들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 손에 값싸게 쥐어졌으면 좋겠다. 온오프라인 헌책방에 책을 내놓으려는 분들은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팔릴 법한 책들을 내놓아야 한다. 생각보다 값을 적게 쳐준다고 성내기 전에 누군가 필요한 사람에게 내 책들이 전해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여유로울 것이다. 책 소유욕만큼이나 책 보시는 아름답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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