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문제 해결은 “더 내고 덜 받기”를 실천하기만 되는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 논의되고 있는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민주노동당의 국민연금 개혁법안은 그렇게 단순하게 넘어가기에는 차이점이 많다. 여당의 개혁안은 현행 60%인 급여율을 2008년부터 50%로 10% 포인트 낮추고, 보험료율은 지금처럼 9%를 유지하되 2008년 이후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함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 65살 이상 전체 노인 중 65%에게 7만원에서 10만원을 차등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하기로 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노동당이 주장하는 기초연금제를 상당부분 도입하기는 했지만 각 당의 입장 차는 그리 쉽게 봉합될 거 같지 않다. 1990년대 초 스웨덴 총선에서 연금개혁을 주도한 집권당이 참패한 사례 등을 봐도 국민들의 인기를 얻기 힘든 이 폭탄을 선뜻 품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님은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국민보고서’를 통해 “보험료율을 더 올리고 급여율을 낮추는 재정안정화 대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보험료율을 올리고 급여율을 내리는 동시에 빈곤 고령층에게 국가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공적부조를 제공하자는 보건복지부의 새로운 절충안”은 재원조달 등이 불투명한 야당의 전면적인 기초연금제 도입에 견주어 점진적 개혁안으로 평가된다. 적어도 이 수준이나마 고쳐서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를 조속히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초연금제도는 분명 매력적인 제도지만 현실적으로 돈이 너무 많이 든다. 특히 재원을 조세로 하는 조세방식 기초연금은 스웨덴, 핀란드 등 복지정책이 탁월한 나라들도 축소개편하고 있는 실정이다. 저성장과 저출산, 고령화로 말미암아 조세방식 기초연금을 유지하는 비용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안은 기초연금제와 소득비례연금을 분리하는 2층 구조다. 기초연금 재원은 조세로 충당하고 소득비례연금은 보험료로 충당한다는 것이다. 저소득층에 집중되는 연금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조세에 의한 재원조달이 불가피한 만큼 보험료와 조세의 비율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열린우리당안이 야당 등에서 주장하는 기초연금 제도를 경로연금 확대로 부분적으로 수용하기는 했지만 기초연금의 취지를 구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초노령연금을 낮은 수준의 기초연금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당장 2조 7천억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제대로 된 기초연금을 시행하려면 그 이상이 될 것은 자명하다. 국민연금기금의 일부를 기초연금의 재원으로 쓰는 등의 다양한 제안들이 있지만 급격한 고령화사회를 겪는 우리가 기초연금제를 지속 가능하게 유지할 수 있는지를 엄밀히 따져봐야 한다.


특히 한나라당은 민주노동당의 15%보다 높은 20% 급여율의 기초연금제를 제안한다. 이 기초연금은 2006년에 급여율 9%(14만원)로 시작, 2028년에 20%에 도달한다. 높은 기초연금액을 마다할 사람은 없으나 재원방안이 아직 명쾌하게 나오지 않은 것 같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감세를 주장해온 한나라당이니 만큼 보다 명확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기왕 감세를 추진한다면 감세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세수 감소분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공급중시 경제학(supply-side economics)과 어떤 차이가 나는 것인지, 재정 적자에 대한 대비책은 있는 것인지, 단기적 경기부양으로 그칠 염려는 없는 것인지, 감세혜택이 부유층에만 집중될 소지는 없는지 등을 면밀히 따져야 할 것이다. 정부나 여당이 국민연금제도 개혁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에 비해 제1야당의 움직임이 그리 민첩하지 못한 거 같아서 해보는 소리다.


아울러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있는 영세 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기존 가입자의 급여율과 보험료율 조정 문제에서 시야를 넓혀 미가입자들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 등 특수직연금도 고통을 분담하는 동반 개혁이 있어야 한다. 비록 그네들이 강고한 이익집단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커진 요인에는 미진한 공무원연금 개혁 등이 크게 작용했음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자영업자들에 대한 소득 파악도 보다 정교하게 해서 국민연금의 형평성을 높이고,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한나라당 등에서 주장하는 소득비례연금은 소득에 비례해서 받게 되므로 소득을 파악하기가 원활해지는 측면이 있다).


세계에서 제일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는 국민연금만으로 고령빈곤 문제를 해결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복지후생을 전적으로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구축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과제가 될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보다 섬세한 논쟁을 통해 미래세대의 희생을 줄여나가는 사회적 계약이 필요하다. 만약 기초연금제를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당장의 재원 확보 방안이 없다면 기초연금의 대상을 대폭 줄여야 한다고 본다. 상위 20%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지 않으며, 부부가 동시에 기초연금을 받을 경우 일부를 감액하는 등의 내용을 포함한 민주노동당안도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 여당의 국민연금 재정안정화에 대한 문제의식도 타당하고, 야당 등의 기초연금제 주장도 경청할 점이 많다. 과연 우리의 대리인들은 얼마나 멋진 ‘가능성의 예술’을 선보여줄까? 부디 눌언민행(訥言敏行) 하기를!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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