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2일 열린우리당이 결국 기간당원제를 폐지했습니다. 이로써 “당원이 주인되는 정당”이라는 원대한 꿈이 막을 내렸습니다. 자식의 종아리를 치는 부모의 마음에는 그보다 몇 배 굵은 몽둥이가 내려쳐 집니다. 제 자식처럼 여겼던 한 정당의 쇠락에 따른 몽둥이를 마다할 길이 없을 거 같아요. ‘동원의 대상’이 아닌 ‘참여의 주체’로 살려고 한 제가 감내해야할 짐이겠지만요. 진중권 선생님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이념’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다. 그래서 하나의 이념이 좌초했다고 그로써 삶의 전(全) 의미를 잃지 않는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주인보다는 노예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경망스러움에 휘둘렸던 제 잘못을 반성합니다.


권력을 위해 이념과 정책과는 관계없이 몰려든 잡탕정당을 지지했던 과오를 겸허히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정당이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시대적 소명에는 부응하리라 판단했기에 지지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과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우리당의 탄생을 많이 반긴 사람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으로 마지막 예의를 다하겠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려 저는 참여정부의 자산과 부채를 지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며, 우리당의 공과(功過)에서 자유롭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당의 창당초심이 꺾인 만큼 이와 함께 역사적 패자로 남으려고요. 어쩌면 창당초심이란 것도 제 마음이 빚어낸 허상이었을지 모릅니다.


“싸움에서 진 장수는 용맹에 대해 말할 수 없고, 멸망한 나라의 대부는 나라를 지켜내는 일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敗軍之將 不可以言勇 亡國之大夫 不可以圖存)”고 했습니다. 그간 입 놀리기 좋아하면서 쏟아냈던 많은 말글을 통해 제 견해와 입장은 거개 밝힌 거 같습니다. 이제 패장의 자세로 내려와 앞으로 사회적 이슈에 대한 발언을 예전처럼 쉽게 못할 거 같습니다. 제 문제의식은 많은 오류가 있었던 만큼 그걸 수정하기도 바쁠 거 같아요. 가령 지역주의를 우리 사회 비합리성의 구조적 원인으로 돌리려 했던 건 틀린 거 같습니다. 국가보안법 개폐 같은 개혁입법은 민생 개혁과는 거리가 있는 이념적 개혁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제 무식과 중독의 대가를 기꺼이 치르겠습니다.


문학평론가 김미현님은 <참된 ‘안티’를 위하여>라는 글에서 “진정한 비판이란 이처럼 그 당사자를 화나게 하지 않고 부끄럽게 하는 것이다. 슬프게 하지 않고 아프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진정한 안티도 못 되었고, 진짜 안티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습니다. 니체의 말씀대로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는데 미워하면서 닮아갔습니다. 패장의 자기변명 같지만 리영희 선생님의 표현을 빌려 목소리를 낮추고 알맹이를 채우겠습니다. 목소리가 아닌 알맹이로 저란 녀석의 진정성과 성실성을 북돋우겠습니다. 그런 연후에 제가 품었던 이상과 그 현실적 구현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철저히 졌습니다. 그 패배가 제 이상을 견결하게 지켜내지 못했기 때문인지, 현실과의 섬세한 조율에 미숙했기 때문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뭐가 옳은 건지 혼미하고, 제가 믿고 의지하던 가치는 흔들립니다. 저는 무능과 무지를 고치지 못했으며, 독선과 오만에 빠졌으며, 영악함과 탐욕으로 얼룩졌습니다. 제 소신이라는 건 지킬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제 원칙은 떼쓰는 옹고집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지적 허영에 들떴던 과거를 통렬하게 반성합니다. 더 정교하고 치밀하게 공부해야겠습니다. 스스로 만든 도그마에 맹종하지 않고, 현상에 안주하지 말고 본질을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니 어떤 정당을 지지한다는 것, 어떤 사회적 견해를 표명한다는 것은 그만한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습니다. 제 딴에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바탕을 둔 편들기를 하겠다며 호기롭게 말했지만 그러기에 제 인식은 거칠었고 성정은 부박했습니다. 그간 이런저런 편견과 낙인에 가려 오해받고 구박 받았지만 섭섭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제가 비교적 옳다고 생각되는 바를 말씀드리는 과정에서 특정 집단을 편들기도 했고, 특정인을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제 불찰로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경우가 많은 줄로 압니다. 염치없지만 깊은 사과를 드립니다. 아울러 제 아슬아슬한 언행을 지적해주셨던 많은 분들의 충언도 참 고맙습니다. 저를 아끼는 마음에서 걱정해주신 거 귀 담아 듣지 못한 거 정말 죄송해요.


저는 인간에게는 저마다 차마 못하는 구석은 하나씩 있다고 믿습니다. 인간에게 반드시 있으리라 믿고 싶은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은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여기서 다시금 희망의 고갱이를 봅니다. “단기적인 조건과 장기적으로 타협해서는 안 된다”는 영국의 문화비평가 레이먼드 윌리엄스 말씀대로 장기적 안목을 기르고, 일반균형분석을 할 수 있는 혜안에 진력하겠습니다. 저는 여전히 많이 배우고 익히면 좀 더 인간다운 삶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공부와 인간적 성숙에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좀 더 애써보고 싶습니다. 올바름이 무엇인지, 이로움은 무엇인지 더 궁리하겠습니다. 세상을 향해 손가락질만 하기보다는 실현 가능한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역량을 기르겠습니다.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바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꿀벌도 때로는 서글픕니다. 안거(安居)나 피정(避靜)을 좀 떠나고 싶어요. 이 우울증이 헤픈 자기연민에 그치지 않고 뼈를 깎는 자기성찰을 하려는 매운 의지이길 벼려봅니다. 정의로운 자유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던 그 때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또 부질없이 먼저 부끄러워하고, 늦게 물들기를 다짐합니다. 제대로 해본 것도 없으면서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는 건 민망한 일입니다. 요 근래 힘들고 괴로워서 매사에 의욕이 없긴 하지만 저는 여전히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입니다. 곧 훌훌 털고 일어날게요.


하잘 것 없는 저란 녀석의 손을 잡아주었던 아름다운 마음들께 다시금 미안합니다. 부디 용서하세요.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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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민 2006.12.05 04:11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저 역시 노빠라고 알려져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는지요.... 특정인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맹목적인 지지를 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의 지지마저 선동하는 건 정말 위험한 짓이더이다. 사족으로..문학평론가 김미현이 저렇게 멋진 말도 하는구나, 싶습니다.

  2. 익구 2006.12.05 12:13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제 반성문의 서두에 열린우리당의 지리멸렬을 좀 지적하기는 했지만 저는 좀 더 복합적인 이유로 반성을 해봤습니다. 글로 다 풀어내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인 삶의 태도와 성품까지 반추하는 제법 큰 규모의 자기비판이었죠.^^; 우리당 이야기를 좀 꺼낸 건 우리당의 황혼에 아무도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다는 게 안타까워 창당초심에 꿈을 투자했던 저부터라도 역사의 패자로 남겠다는 아픈 고백을 해본 거랍니다. 글에서 누차 강조하듯이 패장이 무슨 할말이 있겠습니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할말은 있겠지만 할 수가 없는 거겠죠.

  3. 처절한기타맨 2007.09.11 14:14 Address Modify/Delete Reply

    “진정한 비판이란 이처럼 그 당사자를 화나게 하지 않고 부끄럽게 하는 것이다. 슬프게 하지 않고 아프게 하는 것”
    간만에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이군요. 뽀려갑니다.
    글고 부탁드릴게 있는뎅. 메일주소 부탁드려요.
    제 메일은 sos6903@empal.com 입니다.

    • 익구 2007.09.23 03:38 Address Modify/Delete

      최근 호스팅 업체 점검 관계로 불안정한 상태여서 거기 신경 쓰느라 댓글이 늦어졌네요. 죄송합니다. 저도 어차피 빌려온 말인데 좋으셨다니 저도 기쁘네요. 제가 보탬이 될 일이 거의 없을 거 같아 선뜻 부탁을 들어보겠다는 말씀을 못 드리겠어요. 시간도 너무 지나버렸고요. 혹여 조용히 말씀하실 게 있으시면 비밀글을 이용해주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