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115
故 박종철 열사의 20주기다. 박종철 열사가 죽는 순간까지 보호하려 했던 박종운씨가 한나라당에 입당해 부천오정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대경실색했다. 박씨는 “나를 변절자라며 매도하지만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반시장적 반민주적 처사들을 극복하는 것과 북한의 민주화를 이루는 것이 종철이의 정신을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그는 386이라는 레테르를 뽐내며 그렇게 동원되고 소비되기로 작심한 모양이다.

물론 민주화 운동을 훈장으로 금배지를 탐했던 사람은 헤아리기 힘들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며 숱한 인사들이 권세를 얻고 명예를 누렸다. 박씨는 운 없게도 총선에서 연거푸 낙선했으니 마음 고생도 심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그의 진심을 못 받아들이겠다. 박씨의 출세를 시기해서도 아니고 치열한 자기성찰을 폄하해서도 아니다. 다만 고통 속에 죽어간 한 다정한 정신이 너무 억울하고 분통하기 때문이다.

도피생활로 고초를 겪고 있는 선배를 걱정하며 목도리를 벗어주고 1만 원을 손에 쥐여 줬던 박종철 열사를 떠올린다면 정말 그러면 안 된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다면 그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차마 못할 일을 하지 않는 그침의 미덕이리라. 다른 건 몰라도 때 되면 비장한 표정으로 박종철을 추념한다고 팔고 다니지 말기를 박씨에게 정중히 요청한다.

실천하는 지성을 감히 흉내조차 내지 못하는 나는 고작 애먼 사람만 험담했다. 왜 이리 아픈가. 왜 이리 추운가.


070116
2006년 11월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영어의 경제학>이라는 보고서에는 “한국은 공교육을 제외한 영어 관련 사교육 투자 비용만 한 해 1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 학생수가 1193만5000여명이고 이들이 매달 10만원씩 연간 120만원을 학원 수강, 개인 교습 등 사교육에 지출하고 있다고 추산하면 14조 3,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여기다가 토익, 토플 등 영어시험 응시로 한 해 7,000억원 이상을 쓰다 보니 15조가 얼추 나온다. 2004~2005년 세계 토플 응시인원 가운데 18.5%가 한국인이었다.

“영어구사 수준은 만족스럽지 못해 '고비용 저효율' 현상이 심각하다”라는 진단을 들으니 고비용 저효율에 일조하고 있는 내 자신이 민망해졌다. 국보 제70호 훈민정음(訓民正音)과 비슷한 시기에 간행된 국보 제142호 동국정운(東國正韻)은 우리나라의 바른 음이라는 뜻의 책이다. 당시 혼란스럽던 조선의 한자음을 중국의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기 위해 표준음을 정하는 목적으로 편찬했다고 한다. 애민정신의 표상인 한글 창제에서 엿볼 수 있는 모화사상의 편린이다. 오늘날 영어 열풍도 강대국이 되지 못한 이 땅의 서글픈 역사의 재연인지도 모르겠다.

턱없이 높은 영어 능력을 요구하는 세태에 대한 불만을 좀 다독여본다. “고귀한 인물은 쉽게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지 않는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씀을 음미한다. “실패와 몰락에 대해서 책망할 사람은 나 자신 이외는 없다. 내가 내 자신의 최대 적이며, 내 비참한 운명의 원인이었다”는 나폴레옹의 금언을 되새긴다. 문제의식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철저하게 내 탓을 하자.


070117
삼청동길 근처에서 고종석 팬카페 신년 모임이 번개처럼 열렸다. 새벽까지 적포도주를 많이 마셨다. 파스퇴르는 “포도주는 모든 술 가운데서 건강에 가장 유익한 술이다”라고 예찬하기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적정량을 마실 때의 이야기일 게다. 물론 파스퇴르는 포도주는 많이 마셔도 다른 술보다 그 해악이 덜하다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다.

일전에 백포도주에 대해 찾아보고 청포도로 만든다고 확인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청포도 말고 껍질을 벗긴 적포도를 이용해서도 만듦을 발견했다. 포도알을 으깨면 청포도와 적포도 상관없이 투명한 즙이 나온다고 한다. 이처럼 과즙만을 발효시켜 씨와 껍질을 함께 발표시켜 붉은 색소를 추출하는 적포도주와는 다른 풍미를 낸다. 추가로 차게 먹는 포도주인줄 알았던 아이스 와인(ice wine)은 언 포도로 만든 와인을 말한다는 것도 새로 익혔다. 포도가 얼면서 당도가 높아지게 된다. 어쩐지 언젠가 먹어봤던 아이스 와인은 서늘함보다는 달콤함이 강했다.^^;

내가 우파 편식을 막기 위해 부러 진보적 인사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듯이, 동양 편식을 막기 위해 포도주를 배워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포도주를 즐기기에 내 미각은 참 둔하지만.^^; 대화 가운데 프랑스어, 독일어, 기사련, 빈, 깐느와 같은 유럽 관련 소재가 많았는데 내 귀찮음을 다스려 언젠가는 유럽을 좀 둘러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고종석 선생님도 무척 반기신 문화관광부가 2011년까지 세계 100곳에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가르치는 '세종학당'을 건립에 가장 마음이 갔다. 중국의 공자학원, 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 프랑스의 알리앙스 프랑세즈, 영국의 브리티시 카운슬, 일본의 일본어 학습거점과 같은 문화와 언어를 전파하는 학교를 세계각지에 만들겠다는 포부가 기껍다. 그간 외국인의 한국어 습득은 한국학을 전공하는 등의 지식층을 위주로 이루어졌다면, 세종학당은 현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더욱 기대가 크다. 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참 풍성했다.


070118

아침에 온 주원형의 문자에 재까닥 답문을 보냈다. 점심에는 몇 주째 벼르던 토요일 저녁의 고기부페 회동 참석인원을 확정했다. 오후에 걸려온 종로구청 동년배의 업무 문의전화에 성심껏 답해줬다. 해질 무렵에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학교를 찾아가서 군대 가는 후배 얼굴을 보기로 했다. 퇴근길에 들른 헌책방에서 옆 사무실 동생에게 선물하기 위해 사기열전 2, 3권을 샀다.

오전에 “곰곰이 뜯어보면 경상도 사나이라는 말은 삶에서 일종의 면죄부로 작용한다는 생각이다. 다정하지 않아도, 잘 해 주지 않아도, 무뚝뚝해도, 엄해도 “나, 경상도 사나이야” 한 마디면 모든 게 용인된다는 뉘앙스다(최지향. “‘경상도 사나이’면 다냐.” 한국일보. 2005. 05. 12.)”는 글을 읽고 무의식적으로 다정한 행동을 많이 한 거 같다.

정계에서 소문난 마당발 가운데 한 분인 김상현 전 의원은 얼굴과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1만 명이라고도 하고, 아는 사람들의 연락처를 정리하다 보니 3만 명이 넘었다는 등의 놀라운 이야기가 전한다. 그가 아끼던 측근의 배신을 접했을 때 “그 사람은 자리든 돈이든 내게 기대한 게 있어서 왔는데 충족시켜줄 수 없게 됐으니 내가 그 사람을 배신한 것”이라고 답했다는 일화는 의미심장하다(김두우. “누가 배신자인가.” 중앙일보. 2006. 08. 20. 참조).

내 마음 한 구석에는 발이 넓은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다. 하지만 발을 넓히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손 잘 비비기를 할 자신이 없어서 그림의 떡으로만 두고 봤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거스르거나,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거스르기란 참 힘들다. 용기를 내어 거스른다고 해도 내 자신에 쏟아질 그 실망의 눈초리를 감내하는 건 따갑다. 난 무뚝뚝함을 애호하지만 좀 더 살갑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핑계 같지만 내가 보기보다 속정이 깊다.^^;


070119
05학번 후배 정석이의 환송회 자리에 다녀왔다. 저녁만 먹고 나온다는 것이 눈치 없게 자리를 너무 오래 지켰다. 후배들끼리 오붓한 시간을 빼앗아 민망했다. 집에 오는 길에 이제는 너무 식상해져버린 의형제라는 말을 생각해봤다. 초등학교 시절 읽었던 도원결의에 대한 집착 탓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언젠가 의형제를 맺고 싶다.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지만 주몽의 의형제였던 오이, 마리, 협보 역시 도원결의 못잖은 우애를 나눴으리라 믿는다.

불신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시대라지만 허물없이 지내는 사람을 그리는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낮에는 야당, 밤에는 여당” 식의 이중생활을 처세 방편으로 삼을 요량은 아니다. 공사의 구분을 엄격히 하되 사적인 영역에서는 가능하면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북돋워줌을 지향한다. 볕들 때나 그늘질 때 한결같이 내 빈곳을 채워줄 사람 찾는 마음을 세속적인 꿍꿍이로 보기에 우리는 너무 외롭다.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마음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라는 함석헌 선생님의 시구는 내 마음의 가시다. 일생동안 내 곁에 몇 명의 사람을 둘 수 있을까? 섬광처럼 의형제 하자고 손을 내미는 사람에게 머뭇거리지 않을 자존감을 키우고 싶다.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 날도 있을 게다.


070120
청원, 승현(섭), 승현(정)과 고기 뷔페 까르네 스테이션에서 저녁을 먹었다. 작년 2월 수원화성을 답사하고 나서 수원갈비의 엄청난 가격에 경악하며 눈물을 머금고 갈비탕을 먹었다. 갈비탕을 달게 먹긴 했지만 그래도 못내 아쉬워서 머잖아 돈 많이 벌어서 이 갈비를 보란 듯이 뜯어주자며 맺은 갈비 서약(?) 이후 고기에 대한 내 애정은 좀 더 짙어진 거 같다. 섭은 괜찮은 고기 뷔페라며 까르네 스테이션을 권유했고 수원갈비의 상흔을 다독이기 위해 회동을 갖기로 결의했다.

그렇게 많은 곡절을 안고 찾은 고기 뷔페에서 원 없이 먹고 마셨다. 소주, 맥주는 물론 포도주와 양주까지 무한대로 마실 수 있어서 흥취는 극에 달했다. 양주와 포도주를 모두 한 번씩 맛봤지만 내 미각은 너무 무뎠다. 맛 메모라도 좀 해서 다음에 시행착오를 좀 줄일 수 있게 하고 싶었는데 뷔페에서 메모를 부지런히 하고 있는 사람을 좋게 볼 사람은 거의 없을 거 같아서 그만 뒀다.^^; 고기도 이것저것 많이 구웠지만 소 양지삼겹과 소 부채살이 특히 달콤했다. 백김치와 무쌈을 번갈아 싸먹으니 세상사 시름이 스르르 녹아 내리는 듯하다.

1985년 유시민 선생님의 항소이유서에는 “열여섯 꽃 같은 처녀가 매주일 60시간 이상을 일해서 버는 한달치 월급보다 더 많은 우리들의 하숙비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맥주를 마시다가도, 예쁜 여학생과 고고 미팅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 잦아졌습니다”는 구절이 나온다. 한 끼 잘 먹어놓고 갑자기 비장한 표정으로 돌변하겠다는 게 아니다.

친구들과 청계천을 산보하면서 밥 벌이 하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밥 값하는 삶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생각했다. 수입원도 없는 학생에게 22,000원짜리 뷔페는 부담스럽지만, 한 해에 한 두 번쯤은 이런 호사를 누리면서 재충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070121
KBS 드라마 <대조영>에서 고구려가 멸망했다. 고구려의 멸망 이유를 보통 내부의 적 때문이라고 정리한다. 연개소문 아들들의 골육상잔은 고구려-수당전쟁의 피해를 복구하느라 여념이 없었어야 할 고구려를 더욱 암담하게 만들었다. 나당 연합전선을 상대하기에 무척 벅찬 지경이 이르렀고 결국 당시 최고 권력자 연남건으로부터 군사 일을 위임받은 승려 신성(信誠)이 성문을 열어 주고 만다.

평양성이 포위되자 보장태왕은 남건의 아우 남산을 시켜 당나라 군대에게 백기 투항을 했지만, 남건은 여전히 성문을 닫아 걸고 막아 지켰다. 당에 협력한 매국노 연남생이 우위대장군(右衛大將軍)에 봉해진 것은 물론 성문을 연 신성이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항복의 흰 기를 들고 항복의 뜻을 전한 남산이 사재소경(司宰少卿)이란 벼슬을 받았다. 끝까지 저항한 남건만이 검주(黔州)로 귀양을 떠났다.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일지언정 성문을 사수했던 남건에게 애틋한 시선을 건네는 것은 단지 그가 고구려 패망의 책임을 진 거의 유일한 지도층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패권국가의 오만에 맞서 싸웠던 고구려의 호기로움을 곱씹으면 평양성 성문은 스스로 열어 젖히기보다는 적들에게 부수어지는 편이 나았다. 그것이 화려했던 문명을 꽃피운 이들 다운 최후였을 것이다. 반달리즘(Vandalism)에 사로잡힌 당나라가 철저히 파괴해 아련한 그리움이 되어 버린 고구려 문명이 새삼 아쉽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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