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205
‘백성들에게 육전 이외에서도 매매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許市民六廛外, 通共和賣).’ 조선왕조실록 정조편 신해년(1719년) 1월25일자의 일부다. 조선 상업사 최대사건이라는 ‘신해통공(辛亥通共)’이 시행된 것이다. ‘통공’은 진입장벽 철폐. 비단과 종이 등을 국가에 대는 육의전을 제외한 품목의 자유로운 매매 길이 열렸다.
- 권홍우. “[오늘의 경제소사/1월25일] 신해통공” 서울경제. 2005. 01. 25.

신해통공으로 시전상인이 누리던 독점상업특권인 금난전권(禁亂廛權)이 사라졌다. 이러한 봉건 상업질서의 붕괴는 사상(私商)들의 부단한 투쟁의 성과였다. 나는 여기서 영감을 얻어 “금난독권(禁亂讀權)”을 만들어 봤다.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마구 읽는 독서 습관을 금지하겠다는 뜻이다. 내가 읽기로 결심한 동양고전 목록을 추려보니 아무리 속독을 한다고 해도 엄청난 양이다. 선현들이 몇 십년 걸쳐 곱씹은 고전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읽어치우겠다는 게 지나친 처사지만 나 아니면 누가 또 이런 헛짓거리를 하겠는가?^^; 금난독권의 한시적 비호 아래 할 수 있는 데까지 고전의 바다에 빠져보자.


070206
열린우리당 김한길 전 원내대표와 강봉균 전 정책위의장 등 23명의 의원들이 집단 탈당했다. 대한민국 정당 정치의 비루한 수준을 몸소 보여주지 않으셔도 익히 잘 알고 있는데 이런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소속 정당을 떠남은 의원 개개인의 자유다. 허나 이 분들은 자신이 누리는 커다란 자유만큼의 책임은 모르는 듯싶다. 떠나는 이들의 감동 없는 참회를 들으며 이들에게 쥐어준 건국 이래 최초의 의회 권력 교체가 무참해졌다.

송나라 이방(李昉)이 편찬한 백과사서 『태평어람』에는 사귐에 대한 제갈공명의 말씀이 실려 있다. “선비가 서로 사귐에 있어서 따뜻하다고 해서 꽃을 더 피우지 않고, 춥다고 해서 잎 모양을 바꾸지 않는다. 사시사철 시들지 않고, 어려움을 겪어가며 더욱 굳건해진다(士之相知,溫不增華,寒不改棄,貫四時而不衰歷,坦險而益固)”는 말씀을 새기며 너무 많이 바꾸고, 너무 빨리 시든 분들을 곡한다. 미안하지만 당신들의 ‘먹고사니즘’에 건넬 동냥은 없다.

명나라 말기의 고증학자 고염무는 <일지록(日知錄)>에서 “세상의 흥망은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天下興亡 匹夫有責)”고 말했다. 나같은 백면서생의 어깨마저 무겁구나.


070207
아침에 출근하다 구청 앞에서 민주노동당 중구위원회의 “노무현 정부의 공무원연금 개악을 반대한다”는 제하의 유인물을 받았다. 이 유인물은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투쟁은 우리 모두를 위한 투쟁이다”고 강조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취업난과 형편없는 연금제도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공무원 노동자들에게 돌리려 한다”는 것이다. 물론 “세금이 복지에 쓰이는 것만큼 당연한 일이 어디 있는가! 오히려 다른 노동자들의 국민연금도 정부가 지원해야 마땅한 일”이라는 주장에 상당 부분 동감한다.

하지만 “공무원들이 고용 안정을 누리고 있다지만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백 명이 해고됐고 ‘괘씸죄’에 걸려 연금도 못 받을 판”이라며 공무원에게 건네지는 선망의 시선을 간단하게 처리하고 넘어간 것은 그리 고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고용 안정에 큰 가중치가 부여된 시대인 만큼 공무원들의 항변이 그리 와 닿지 않는다. 다만 “진정으로 특혜를 누리는 자들은 공무원연금을 삭감하려는 정부 고위 관료들과 국회의원들”이라는 주장에는 큰 공감을 보낸다. 국회의원들이 고통을 분담한다며 세비나 후생복지를 줄였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성추행범 최연희가 꼬박꼬박 타먹은 세비만 생각하면 이 땅의 상도덕이 참 무안하다. 위로부터의 개혁을 굳이 해야 한다면 위에서부터 뼈를 깎아야만 따를 마음이 생긴다.

오후에는 중구청 광장 개소식이 열렸다. 오세훈 서울시장님이 참석하는 관계로 “명품서울 행복중구 오세훈 시장님과 함께 만들어요”, “오래도록 세상을 훈훈하게 만드시는 오세훈 시장님을 환영합니다”, “오세훈 시장님의 중구 방문을 전 구민과 함께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는 펼침막이 여기저기 걸렸다. 특히 4층짜리 별관 한쪽 면을 뒤덮는 대형 펼침막은 몇 시간 쓰려고 만든 것 치고는 너무 지나쳤다. 과공비례(過恭非禮)다. 거부감이 드는 펼침막을 걸어 놓는 몰취향도 문제지만 만약 서울시장 일행이 그걸 보고 흐뭇해한다면 이게 더 큰 문제리라. 중구민이 아니더라도 지나가면서 대형 펼침막을 보고 세금 걱정을 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서울시장이 중구청을 다시 방문해 펼침막 비용을 절반으로 줄이는 게 최선의 방책이려나.^^;

행사 진행 내내 광장 앞 한 켠에서는 덕운·흥인상가 세입자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오 시장님은 “똑같이 혜택이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이 마음 아프다”며 “효율적으로 서울을 개발하고 발전해 나가야”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문득 “그건 정말 특수한 경우일 뿐이야, 라는 자기정당화로 눈을 감아도 소용없다. 특수하든 그렇지 않든, 극빈은 관념이 아니라 삶이므로”는 황인숙 시인님의 글이 떠올랐다. 거창한 말이야 쉽지만 관념이 아닌 삶의 문제를 인고하며 풀어내는 정성어린 행정을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찾듯이 펼치길 바란다. 공천헌금을 받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박성범 의원은 염치가 있는지 짤막한 인사만 하고 내려왔다.


070208
맹자는 “큰사람이란 어린 시절의 순진한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孟子曰 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也)”라고 말씀하셨다. 젊은 날의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에 열중한 나머지 어린 시절의 순수하고 유치했던 기억을 하찮게 여기지는 않았나 반성한다.

정조대왕은 <일득록(日得錄)>에서 맹자의 이 구절을 언급하며 어린이의 마음이 성인의 마음과 꼭 같지는 않다고 말씀하신다. 다만 사욕에 물들지 않아 순수하고 거짓이 없는 기상을 잘 간직하여 마치 밝은 거울이며 잔잔한 수면과 같기에 ‘잃지 않는다’라고 풀이할 수 있다고 풀이한다.

중학교 1학년 시절 내 삶의 제일 목표로 삼았던 것은 “한결같음”이었다. 새삼 한결같음의 위력을 실감한다. 대중형님께서 말씀해주신 “위대한 일상성”을 떠올리며 권태와 싸우는 소소한 삶의 재미를 찾아봐야겠다.

75년 생애의 수많은 주간들은 정해진 일과의 틀을 따라 흘러갔다. 매일은 다른 날과 쌍둥이처럼 비슷하였다. (...) 이 끔찍한 작업 캘린더에는 빈 곳이 없다. (...) 창조적인 힘의 이런 엄청난 균형은 그의 생활의 지겨운 겉모습 뒤에 진짜 마적인 요소가 숨어 있음을 폭로한다.
-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정신의 탐험가들』, 푸른숲, 2000, pp. 319-321, mannerist님 블로그에서 재인용


070209
사적 제101호인 삼전도청태종공덕비(三田渡淸太宗功德碑)가 7일 붉은 페인트로 칠해져 심하게 훼손되었다. 삼전도비로 많이 불리는 이 비석은 370년 전인 1637년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한 것을 기념해 세운 비석이다. 비문을 지은 이경석이 글공부를 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된다며 탄식했던 비극의 기록이다. 말끔히 지우기 힘들 페인트만큼이나 우리 마음의 생채기도 깊어질 것이다.

누구에게나 지우고 싶은 역사는 있게 마련이다. 어쩌면 지난날의 과오를 고쳐 나은 역사를 만들 때만 과거를 분칠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간 조선 백성들의 비참한 이야기들을 회고하려니 가슴이 아프다. 병자호란이 끝나고도 뻔뻔스럽게 왕위를 유지했던 인조를 비롯한 대다수 신료들의 무책임이 역겹다. 책임 정치를 갈구하는 건 민초들의 오랜 바람이자 마땅한 권리다.


070210
나는 확실히 호고벽(好古癖, 옛것을 좋아하는 취미)가 있는 모양이다. 옛사람들의 언행에 끔찍한 관심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기전체 역사서의 장점은 역시 열전에 있다. <한서열전(漢書列傳)>을 읽으면서 한번 뿐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되돌아보았다.

중과부적을 극복하지 못하고 흉노군에 항복한 이릉(李陵) 장군은 한나라로 귀환하라는 제안을 거부하며 “대장부는 욕된 일을 두 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간신을 없애라고 황제의 분노를 사서 끌려가다가 어전의 난간에 매달려 난간이 부러지는 바람에 절함(折檻)의 고사를 만든 주운(朱雲)은 직언의 결기를 보여줬다. 사치로운 장례(厚葬)는 죽은 이에게 무익하다며 벌거벗긴 채로 묻어 주길 유언한 양왕손(楊王孫)은 인간의 허영심을 깨우쳤다.

도연명은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에서 스스로를 평하며 “책 읽기를 좋아하되 그 뜻을 깊이 깨달아 알려고 하지 않았으며(好讀書 不求甚解), 좋은 구절을 만나면 기뻐하여 밥을 먹는 일도 잊어버렸다(每有意會 便欣然忘食)”라고 말하고 있다. 나 또한 가슴에 와 닿는 구절을 갈무리하기를 즐기며 심대한 의미를 파헤치는 수고로움은 꺼리는 편이다. 물론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것은 엄연히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070211
내가 읽을 동양 고전 목록에 여씨춘추는 넣지 않았다. 여씨춘추는 잡가(雜家)에다 백과사전 성격이 강한 글이라고 들어 제대로 독해를 하지 못할 거 같았다. 그런데 우연히 접한 여씨춘추 한 구절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결국 여씨춘추도 읽을 책 목록에 넣기로 했다.

요리사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만 자기가 그것을 먹지 않기 때문에 요리사일 수 있다.
만일 요리사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그것을 자기가 먹으면 요리사가 될 수 없다.

庖人調和而弗敢食, 故可以爲庖.
若使庖人調和而食之, 則不可以爲庖矣.

이 말은 사회 지도층이 사사로운 이득을 꾀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제를 나타내고 있는 듯싶다. 당리당략에 식상하고 사리사욕에 진절머리가 나는 요즘에 더욱 음미하고픈 말씀이다. 정성껏 만든 요리를 남에게 내어 보이고 크게 심호흡을 내쉬는 모습이 요리사의 본분이요, 사명이다.

노자는 “생성하고도 그것을 소유하지 않고, 이루고도 그것에 기대지 않는다(生而不有 爲而不恃)”라고 했다. 이경숙님은 生而不有를 “살면서도 없는 듯하다”, “있는지 없는지 모를 만큼 없는 듯하다”라고 풀이하셨는데 일리가 있다. 여하간 논공행상에 집착하며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권리를 누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머금을 수 있는 만큼의 물방울이 넘으면 미련 없이 비워내는 연꽃잎처럼 들어온 만큼 내보낼 수 있는 마음자리를 갈망한다. 열심히 가르친 스승이 아쉬움을 감추고 제자를 하산시키는 모습은 그 얼마나 애틋한가. 미식가는 넘치는데 요리사가 없는 사회는 암담하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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