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226
2월 26일 한국관광문화정책연구원이 기획예산처 사회서비스향상기획단에 제출한 <문화분야 사회서비스 실태조사 제도개선 연구>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문화예술인들은 저소득층에 해당한다. 문화예술가의 60% 가량이 창작활동 소득 월평균 100만원 이하에 그치고 있다고 한다. 다른 일을 병행하지 않으면 생계가 어려울 정도라니 우리의 허약한 문화역량이 다시금 드러난다.

미술학부에 다니는 다운, 연정에게서 대다수 미술학부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작품 활동보다는 교사 등의 진로를 결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영국의 경우 손꼽히는 미술학과 졸업전시회에는 유수의 콜렉터들과 전문가들이 참석해서 신인 작가들을 발굴한다고 한다. 반면 우리네 대학 졸업전시회는 친구들 정도가 축하해주는 자리로 끝날 때가 많다. 있는 돈 없는 돈 모아서 개인전을 다섯 번쯤을 해야 그 때서야 작가로서의 자격을 어느 정도 인정해주기 때문에 그걸 버티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 두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두 미술 전공 친구들의 푸념을 들으며 인내심 테스트가 되어버린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의 서글픈 모습을 실감했다. 몇몇 연예인들과 작품들이 해외에서 인기를 얻는다고 한류라고 호들갑을 떨기에는 내실이 없다. 이렇게 2차 문화산업에 관심이 쏠리면서 기초 문화예술에 건네는 눈길이 줄어 외화내빈을 부추기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 양질의 소장 도서를 갖추었느냐의 여부를 떠나 도서관의 절대 개수가 부족한 지역 도서관 실정을 보면 더욱 안타깝다.

『관자(管子)』 목민편(牧民篇)에는 “창고가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풍족해야 영욕(榮辱)을 안다(倉稟實則知禮節, 衣食足則知榮辱)”는 말씀이 있다. 요즘 경제를 살리자는 이들이 즐겨 인용하는 문구라지만 이 말을 좀 변형해서 도서관에 책도 좀 차고, 예술가의 의식도 좀 풍족해지길 바란다.


070227
최장집 고려대 교수님은 최근 발표한 글을 통해 ‘정당체제의 제도화’와 ‘사회경제적 민주화’가 우리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셨다. 사실 이러한 지향점보다는 참여정부가 이 두 가지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려 있어 논의의 본질이 흐려졌다. 보수 언론들은 최 교수님의 가리킨 달보다는 참여정부로 향한 손가락질이 더 요긴했는지도 모르겠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님이 최 교수님의 견해가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로 이용되는 가를 검토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신 것도 비슷한 맥락의 충고다.

참여정부와 진보진영 사이의 진보 논쟁이 생산적이려면 서로가 겸허하게 자신의 과오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단지 책임 공방에 초점에 맞춰지는 게 볼썽사나운 이유다. 최 교수님의 지적대로 나 또한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국민들의 정당일체감이 너무 낮은 데 있다고 생각한다. 양대 보수정당의 차별화가 별로 없어 그 놈을 그 놈으로 여기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민주주의 제도 가운데 정당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핵심적인 집단적 행위자라는 최 교수님 말씀에 크게 공감한다.

그런데 당비를 내가며 당원이 되겠다는 유권자가 별로 없다면 정당체제의 제도화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친다. 그렇다고 유권자들이 제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픈 정당이 만들어지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정당체제의 제도화를 선결문제로 삼기에는 현재 우리 정치 풍토상 꽤 오랜 시간을 요하는 작업이 될 듯싶다. 열린우리당이 기간당원제를 스스로 폐지하는 과정을 바라보며 정당 민주주의 구축을 원할수록 일모도원(日暮途遠)을 뇌까리게 된다.

민생을 가장 챙기고 기간당원제를 먼저 정착시킨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가 좀처럼 반등의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보수 정당의 과점체제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 과점을 해체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많은 이들이 누차 지적하고 있지만 최 교수님은 이에 대한 해법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지는 못하다. “정당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사회통합을 성취할 수 없다”는 최 교수님의 지론을 실현시키기는 방안들을 모색해봐야겠다. 비교정치쪽 공부를 할 때 정당일체감 고양 방안을 탐구해보고 싶다. 원론적인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또 원론적인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다.


070228
노무현 대통령님이 28일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다. 대통령님은 탈당신고서 접수와 함께 공개한 <열린우리당 당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서 “임기가 끝난 뒤에도 당적을 유지하는 전직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며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의 역량부족으로 한국 정치구조와 풍토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말씀하셨다.

“저는 임기 말 당을 떠나는 마지막 대통령이 되기를 바랍니다”는 말씀이 아프게 들린다. 정당체제의 제도화를 건설하기 위해서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 몇몇 정치인들의 욕심에 좌우되지 않는 정당에 대한 열망이 다시금 싹트길 바란다. 못다 이룬 백년정당의 꿈이 밀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저 비통하다.


070301
『패자의 역사』(구본창, 2003)는 패자의 역사를 도두보는 책이다. 내 흥미를 끈 것은 이율곡의 10만 양병설에 의구심을 품는다. 10만 양병설이라는 말은 이율곡의 학문을 계승한 서인(西人)들의 문집인 김장생의 율곡전서, 송시열의 율곡연보에만 나와 있다고 한다. 사실 이런 문집은 위인전인 관계로 실제보다 부풀려 써질 개연성이 크다.

실제로 선조실록에는 10만 양병설 기록은 나타나지 않는다. 인조 쿠데타로 집권한 서인 정권이 이들 문집을 기초로 선조실록을 고친 선조수정실록에서야 10만 양병설이 수록되었다고 한다. 특히 이것이 정설로 굳어진 것은 서인 노론 가문의 후손인 역사학자 이병도가 국사교과서에 실어 국민적 상식으로 만들었다. 이런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율곡 선생이 10만 양병설을 실제로 주장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적잖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임종 전 마지막 저술인 시무육조계(時務六條啓) 등을 볼 때 국방력 강화를 위한 방비를 촉구한 점은 분명하다. 그의 사회경장론은 조선 사회의 폐단을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 많았다. 그의 개혁안이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그의 무실(務實)은 오늘날에도 많은 영감을 준다. 다만 한 인물의 위대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승자가 가필을 했다면 그건 배워서는 안 될 것이다. 율곡 선생께서도 바라는 일은 아니었을 테고 말이다.


070302
신권 발행을 놓고 이런저런 지적과 불평들이 쏟아지고 있다. 다 지난 일이기는 하지만 왜 한국은행이 인물 초상 변경에 소극적이었는지 모르겠다. 조선시대 이씨 남성으로만 되어있는 현행 화폐가 대한민국을 온전히 대표하지 못한다는 건 자명하다. 일본은 의학자 노구치 히데요,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 등을 비롯해 화폐 인물이 다채로운 편이다. 특히 2004년 11월 새 오천엔권에는 여성 소설가 히구치 이치요가 등장해 큰 관심을 모았다. 적어도 화폐 측면에서 일본에게 한참은 뒤진다.

화폐 인물을 선정하는 건 어지간한 선거를 몇 번 치르는 것보다 더 까다로운 일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쟁쟁한 후보들 가운데 국민적 공감대를 모으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 화폐의 상징적 의미가 크다는 방증이다. 은행권 용지나 주화 등을 수출할 만큼 훌륭한 기술을 보유하고도 정작 우리 화폐 도안에 대한 치밀한 검증에는 소홀한지 아쉽다. 화폐는 ‘무언(無言)의 외교관’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이제 내 지갑에도 구권보다는 신권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우리의 문화적 수준을 표상하는 신권을 보며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 조만간 고액권 화폐를 만들게 되면 꼭 여성을 넣었으면 좋겠다. 그간의 모자람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로 삼기를.


070303
“쯧쯧 아랫사람 입 단속 하나 못하고 말이지.”

염동일의 양심선언을 두고 시청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속이 메스껍다. 어쩌면 장준혁도 치밀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귀다툼에서 나가떨어지는 패배자 취급을 받는 건 아닐까 싶다. <하얀 거탑>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찬사를 받은 건 장준혁의 승리에서 기인한 바 크다. 빼어난 실력만으로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없는 제약조건을 그려낸 것이 드라마의 핵심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염동일의 부끄러움을 보며 우리 스스로에게 마구 발급했던 면죄부를 돌아보게 하는 효과는 있다. 하지만 차라리 장준혁이 보란 듯이 이겨서 진실이 패배하는 모습을 보면 어떨까 싶다. 그게 정말 리얼리티일지도 모르겠다.

양명학파의 시초인 왕양명은 앎과 실천이 하나라며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한다. 먼저 이치를 깨우쳐야 행할 수 있다는 주자의 선지후행설(先知後行說)을 통박하는 말씀이다. 왕양명은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단지 아직 알지 못한 것(知而不行 只是未知)”이며 “참된 앎은 행하기 위한 까닭이다. 행하지 않으면 그것을 앎이라 말할 수 없다(眞知所以爲行 不行不足以爲知)”라고 설파한다. 지행합일의 참된 앎(眞知)이 발현되지 않는 것은 사욕(私慾)에 가로막힌 것이며 사욕을 배제해 지행의 분열을 극복해야 한다는 논변이 매력적이다. 사욕을 걷어낸 염동일의 지행합일이 각별하게 다가온다.


070304
비 오는 중랑천변을 한 시간쯤 걸었다. 낚시하는 분들을 좀 지켜보다가 강태공(姜太公) 생각을 했다. 미끼도 없는 곧은 낚싯바늘로 낚시를 하며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기다린 강태공은 인내의 상징이다. 조바심 내지 않는 기다림이다. 사람을 낚는 어부는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고등학교 동창들과 대학교 동기, 후배들을 서른 명쯤 만난 오늘 하루 나는 어떤 끈기를 보여줬을까?

『육도삼략(六韜三略)』에 나오는 강태공의 사자후는 늘 내게 큰 울림을 준다.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천하의 삶을 이어받은 보통사람들의 천하다. 천하의 이익을 함께 나누는 자는 천하를 얻고, 천하의 이익을 오로지하려는 자는 천하를 잃는다(天下非一人之天下 及天下之天下也 同天下之利者 則得天下 擅天下之利者 則失天下).” 이 말을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실천하고 싶다.

Posted by 익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