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319
KBS 스페셜 <참여정치의 추억>은 상식과 원칙, 유쾌한 개미들의 반란을 꿈꾸며 창당했던 개혁국민정당의 소멸 이후를 담담히 술회한다. 2002년 11월 16일 창당식을 가지고, 2003년 11월 1일 해산투표를 하며 사실상 종지부를 찍은 개혁당은 내게도 애틋한 그리움이다. 나는 개혁당의 태동부터 몰락까지 1년여의 격정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처음 겪어보는 정당 홈페이지를 거의 매일 들렀던 거 같다.

2003년 법적으로 투표권이 생기고, 정당에 가입할 권리가 생겼을 때 개혁당원이 되는 걸 많이 검토했다(나는 여전히 개혁당 정도의 포지셔닝을 가진 정당이 한국 정당에 하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점입가경의 신당 논의를 지켜보다 때를 놓쳤다. 만약 내가 개혁당원이었다고 해도 개혁당 해산 투표에 찬성표를 던졌을 듯싶다. 난 민주노동당 지지자들만큼의 확신과 끈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강경 보수파의 독점을 얼른 해체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개혁당 일부를 흡수 통합한 열린우리당은 얼마 전 기간당원제를 스스로 허물고, 날림 전당대회를 치름으로써 제 존재 가치를 생존욕구로만 한정짓고 말았다. 이 정당에서 작은 것이나 실현하려고 했던 무수한 꿈이 아프게 깨졌다. “개혁당 같은 정당 만들 때 다시 연락해!”라는 피켓 문구가 유독 눈에 박히는 것은 개혁당 같은 시도가 다시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는 짙은 회의 때문이리라.

당원과 지지자를 실험동물로 쓰려는 이들을 단죄하지 못하는 한 개혁당의 실패는 되풀이된다. 진정한 생활정치는 남 좋은 일이 아닌 나 좋은 일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데서 시작한다. 염치없는 바람이지만 개혁당과 열린우리당이 못다 이룬 백년 정당의 꿈이 다시 싹 틔우길 바란다. 그 때는 지금보다 더 적은 눈물만으로도 결실을 거뒀으면 좋겠다.


070320
노무현 대통령님이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급 행정 지도자는 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는 말씀하셨다. 정치와 행정의 관계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거리가 있는 만큼 자세한 건 덮어두도록 하자. 하지만 장관처럼 고도의 정책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현실 정치에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는 점은 명징하다. 정무직 공무원으로서 정치활동을 폭넓게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이러한 선출직, 임명직 공무원이 누리는 정치적 자유에 견주어 일반 공무원들이 누리는 자유의 크기가 너무 작다는 데 있다. 노 대통령님께서 정치에 무조건(!) 무관해야 하는 하위직 공무원들의 처지를 먼저 헤아리셨으면 좋았을 거 같다.

일전에 민주노동당의 당우(黨友) 제도의 적법성 여부에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교사와 공무원의 정당활동이 원천봉쇄된 것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헌법재판소는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는 헌법 제7조 2항을 의무로 해석했다. 그런데 헌법 제6조 2항(외국인의 지위), 제8조 1항(복수정당제 허용) 등 다른 헌법조문들에서 “보장된다”는 구절에서 의무가 도출되지는 않는다. 제38조(납세의 의무)와 제39조 1항(국방의 의무) 조항에서는 “의무를 진다”고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의무를 “보장한다”는 건 대다수 한국어 사용자들의 상식에 어긋난다.

현행 국가공무원법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11조를 위배하고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다. 외국의 사례에 비춰 봐도 하위직 공무원에 대한 정치활동 규제가 엄격한 측면이 많다. 정당정치 제도화를 위해 청소년 및 대학생 정치교육의 내실화와 더불어 정치활동의 저변을 높이려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자유는 대학교수와 국무위원들만 누리기에는 너무 중요하다.


070321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20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현재 우리 사회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마법에 빠져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구호는 ‘목소리 큰 일부 대기업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으로도 비쳐질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21일자 <기업 하기 나쁜데 살기 좋은 나라도 있나>라는 사설에서 일류국가들은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기업 하기 더 좋은 나라’로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고 반박했다.

또 이 사설은 “기업 하기 좋은 나라보다는 소비자, 국민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권 위원장의 주장에 대해 “마차(馬車)를 말보다 앞에 놓겠다는 격이다. 기업 하기가 나쁜데 어떻게 소비자와 국민이 살기 좋아질 수 있나”고 반문한다. 불학무식한 내가 건드리기에는 너무 어려운 주제다. 기업의 성장과 전체 경제 주체들의 윤택한 삶이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는 지에 대한 통계자료를 쉽게 만들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겨레신문 2월 3일자 칼럼에서 “우리나라 상장기업의 순이익은 2000년부터 2005년 사이 네 배나 늘었다. 반면, 가계의 소득 증가는 경제성장률을 크게 밑돌고 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해법도 있어야 할 듯싶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최대한 전경련 수준으로 주창하시려는 분들은 제 주장의 정당성을 높이기 위한 논거들을 합리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샌드위치라느니 하면서 공포의 동원을 부추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시장만능교를 세속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디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수사가 가뜩이나 비대한 자본권력의 살을 더 찌우는 데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Utopia)』가 그리는 사회의 주된 특징은 획일성이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개인의 자유를 고양해 공공성을 구축하는 활사개공(活私開公, 사를 살리면서도 공을 추구한다)을 지향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버려지는 사람이 없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모두를 위한 나라 말이다.


070322
너는 사케를 언급하며 잘 모르는 분들을 배려해 정종이라는 용어를 썼겠지만 이제 알 만큼 알려진 만큼 청주라는 말을 써도 괜찮을 거 같단다. 정종(正宗)은 그리 바람직한 명칭이 아니라고 생각해. 정종은 일제 강점기 때 들어온 일본의 청주 상표 중 하나가 널리 쓰여 일반 명칭처럼 잘못 굳어진 것이니까. 백제 사람들이 일본에 청주 제조법을 전파했다고도 하니까 주객이 전도된 셈이야. 물론 일본은 주조 기술을 발전시켜 청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고유의 술인 사케(Sake)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원조라고 주장하기가 좀 머쓱하지만.

여하간 정종은 일본의 청주 상표 가운데 마사무네라고 불리는 사케의 한 브랜드일 뿐이지. 가령 한 때 진로가 수도권 소주 시장을 독점하던 시절 그냥 “진로 주세요”했듯이, 내가 버블에서 종종 즐기는 벨기에산 흑맥주 “레페 브라운 주세요”하는 것과 비슷한 셈이야. 일본 술 중에 예를 들자면 “아사히 주세요”하는 것과 비슷하고. 이처럼 상표명이 대표화된 예로 봉고, 워크맨, 레미콘, 미원 등이 있어. 술에서는 프랑스의 샹파뉴(Champagne) 지방에서만 생산되는 거품 나는 술인 샴페인이 보통명사처럼 쓰이고.

일본에서는 정종이 보통명사처럼 쓰이고, 정종이라는 술 브랜드가 많다고 하지만 우리가 그걸 따를 필요가 있을까 싶다. 정리하자면 정종은 일본말 마사무네를 우리 음으로 읽은 것이며, 소주나 맥주 같이 술의 종류를 나타내는 말이 아닌 브랜드명인지라 진짜 정종 상표를 마실 때만 한정해서 말하는 것이 비교적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그냥 청주 혹은 일본 청주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일본 국왕의 호칭 문제도 참 난감한 문제지. 일왕(日王), 일황(日皇), 천황(天皇) 혹은 덴노까지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 사실 나도 헛갈린다(요즘 일본 하는 꼴을 봐서는 확 왜왕이라고 부를까도 싶지만^^;). 야채(野菜, やさい)가 일본식 용어임을 알면서도 채소(菜蔬)를 어색해 하고, 순우리말인 푸성귀나 남새는 거의 잊어버리는 현실을 보면 이름을 바로잡는 일(正名)보다 더 중요한 건 일상의 실천인지도 모르겠다. 본의 아니게 잡설을 늘어놓았어. 너그러이 헤아리시길.^-^

-  <정종의 바람직한 명칭을 찾아서> 전문


070323
매일유업이 지난해 12월 내놓은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이하 하얗다)’가 인기다.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에 이어 단숨에 시장 2위를 차지했다. 바나나 우유는 노란색이란 고정관념을 깬 ‘하얗다’는 색소를 넣지 않았음을 강조하기 위해 투명 재질의 용기를 써 흰색을 부각시켰다.

바나나의 속살은 본래 하얗다. 노란 껍질에 미혹되어 그 알맹이를 몰라봤던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한다. 어쩌면 바나나 우유 시장의 독점을 막기 위해 ‘하얗다’를 소주 ‘처음처럼’ 같이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달달한 걸 좋아하는 내가 단맛을 최소화했다는 이 녀석과 쉽게 친해지기는 힘들게다. 그러고 보니 바나나는 원래 안 달다.^^;


070324
사실 우이동은 집에서 가까운 편이 아니다. 하지만 엠티를 참석한답시고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에 그곳을 향했다. 늦게 찾아간 만큼 날은 금세 밝았고 나는 도망치듯 유유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내 옆을 오래 지켜준 태순이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는데 스치듯이 지나간 숱한 후배들과 푸근한 한 때를 공유했을지 자신이 없다. 내 딴에는 있는 시간 없는 시간 짜내서 후배들을 만나는 건데 상대방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다.

후배로서의 나도 변변치 못하지만, 선배로서의 나는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는 녀석이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내세움의 잣대는 세간의 평가와 사뭇 다르기 때문에 빚어지는 마찰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학부생 시절에 뭔가 대단한 걸 이루기는 어렵다고 해도 돌아보면 딱히 해놓은 게 없어 부끄럽다. 하지만 인간관계라는 게 반드시 서로의 치밀한 계산 하에서 이루어지는 건 아닌 모양이다. 피차 해놓은 거 없는 적수공권(赤手空拳)끼리 의지를 북돋고 시름을 달래는 건 정겹다.

‘손님이 짜다면 짠 것’으로 여기는 음식점은 손님의 마음을 많이 얻었으리라. 나도 내 진정성을 다해 사람을 대하면서 나를 향한 충언을 귀담아 들어야겠다. “내가 그린 나보다 타인이 그린 내 모습이 설득력이 있다”는 칸트의 말씀은 재미나다. 그는 대상이나 사물이 이미 완성된 상태로 주어져 있고 우리가 그에 따라 모사하거나 반영함으로써 인식이 성립하는 대상 중심의 인식론을 반박했다. 주어진 대상을 인간이 어떤 구체적인 대상이나 사물로 만들어서 인식한다는 인간 중심의 인식론을 설파한 그인 만큼 타인에 비친 자기 모습에도 관심을 보냈을 듯싶다. 나도 점점 그런 거 같다. 내 둘레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걸까?


070325
<하얀 거탑>이 종영된 지 2주가 되었는데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여진(餘震)이다. 다면적 인간이었던 장준혁에 대한 내 감정도 복합적이다. 나는 그를 마음껏 미워하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고백했듯이 내 안의 장준혁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치열함과 그의 갈망에 미치지 못하는 내 흐리멍덩함이 더 미웠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이 습관처럼 말하던 “그만두고자 해도 그만둘 수 없는 길”이란 건 어떤 모습일까? 나는 얼마나 의연하게 지는 게임에 참여할 수 있을까? 너무 많이 나가버려서 다시 돌아오기 힘들지 않도록 잘 살필 수 있을까? 마냥 느긋한 걸 보면 내가 아직 돈맛을 덜 보고, 권세의 달콤함에 취해보지 못한 모양이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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