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507
홍기빈 선생님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녹색평론사, 2006)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ISD(Investor-State Dispute)가 한미 FTA의 최대 독소조항으로 지적하는 분들이 적잖기 때문에 관심이 가는 분야다. 홍 선생님의 저서는 ISD의 다각적 조명으로 많은 기초 교양을 쌓게 해준다. 오늘날 세계경제를 휩쓰는 (자본가의) 자유지상주의라는 철학적 기반을 엿보는 즐거운 배움이다. ISD는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 유치국의 협정의무 위반 등으로 손해를 입을 경우 직접 해당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홍 선생님은 “투자자는 국가를 대상으로 소송을 걸 수 있지만 국가는 투자자를 대상으로 소송을 걸 수 없다(23쪽)”는 비대칭적 특징을 지적한다.

ISD는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사적 소유권의 개념이 확장된 결과물이다. 소유자가 갖고 있는 “단순한 ‘사물’에서 ‘사물을 통해 벌어들일 화폐가치’, 즉 ‘소득창출 능력’으로 바뀐 것(66~68쪽)”이다. 글쓴이는 적용된 사례 검토를 통해 투자자가 주권 국가와 동급의 법적 지위를 누리는 것을 넘고 있음을 보여준다.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방패’의 성격을 넘어서는 것으로, 오히려 투자자들이 투자대상국 사회 전체를 공격하는 ‘창’의 성격(114쪽)”으로 돌변했음을 강조하며, “‘힘없는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배상금’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정복자가 된 투자자들’이 뜯어가는 ‘승전 배당금’(161쪽)”에 가깝다고 역설한다.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 투자자들이 그리 만만한 존재들이 아니라는 건 직관적으로도 알 수 있다. 경계해야 한다.

송기호 변호사님 등의 분들은 ISD의 위헌적 요소를 우려한다. 투자자의 재산권과 기대이익을 포괄적으로 보장하고 있어 우리의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재산권보다 보호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또한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등을 통해 우리 헌법이 수정자본주의 혹은 사회적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게 해석론적 통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헌법 제6조 2항은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지위가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어 외국인의 재산권 보호가 법률보상주의에 위배되지 않을 여지가 많다. 또한 FTA 협정문을 국내법으로 판단한다면 어지간한 국제조약은 위헌 시비에 말릴 공산이 크다는 현실론도 설득력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 행정법상 손해전보제도의 흠결을 검토해야 한다. 행정상 손해전보에 관한 현행 법제도에는 적잖은 흠결이 발견된다. 현행 국가배상법상 위법하지만 무과실인 경우에는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지 않고, 행정상 손실보상에 관한 일반조항이라 할 수 있는 헌법 제23조 3항은 재산권에 대한 직접적 침해에 대한 보상만을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적법행위로 말미암은 특별한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에도 보상규정이 없어 적절한 보상을 해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입법론적 정비가 필요하다. 간접수용을 인정하지 않는 국내법을 근거로 협정문을 위헌이라고 타박하는 논리가 아슬아슬하다. 우리 스스로가 먼저 고칠 점이 꽤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우리가 세계 각국과 맺은 투자협정에 포함한 ISD로 인한 실제 분쟁이 벌어진 바는 없다. 그러나 소송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과는 양상이 사뭇 다를 것이다. 법무부는 현행법과 제도, 관행 등을 분석해 협정 위반 소지가 있는 부분을 사전에 찾아내 고치고, 각 부처가 외국인 투자관련 정책을 입안할 때 FTA 협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는지 미리 점검하는 ‘외국인투자 영향평가제’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국제 전문 인력풀을 구축하는 등의 장기적 호흡의 노력도 기울일 게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한국은 ISD 조항이 포함된 협정초안을 미국에 제시했다. 국내의 반대 여론을 이용해 다른 분야에서 미국의 양보를 받을 가능성을 없애버렸다. 폭넓은 예외조항을 받아냈다고 자화자찬하기 전에 협상카드 하나를 날려버린 건 실책이 아닐까 싶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도 잘 했으면 좋겠다.


070508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서 집권 대중운동연합의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가 세골렌 루아얄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프랑스식 국가 개입주의 모델의 황혼이라면 섣부른 생각일까? 영미식 신자유주의 모델에 맞섰던 프랑스의 예외성도 글로벌 스탠더드 앞에 융해되고 있다. 선거 결과에 대한 감상과는 별개로 프랑스 국민들의 높은 참여정신과 프랑스 정당들의 또렷한 정책 대결이 부럽다. 민주적 정당성과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결선투표제도 호감이 간다. 그 무엇보다 패배한 사회당 지자자들이 진심으로 슬퍼할 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절감한다.

다시 눈을 대한민국으로 돌리니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하느냐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프랑스인의 기품에 견주어 솔직히 열등감을 느낀다. 한국보다 더 좋은 나라로 이민을 간다는 사람의 심정이 이런 건지도 모르겠다. 같은 해에 대선을 치르는 이 땅은 국고보조금을 받기 위해 급조한 가건물 정당, 백마 타고 올 초인을 기다리는 학수고대 정당이 횡행하고 있다. 필패의 구도로 향해가는 분열신당론자들은 구차하게 질 것이 뻔한데다 역사적으로 옳지도 않은 길을 으쓱대며 걷고 있다. 물론 국회의원님들이야 어찌어찌 금배지를 다시 달 수 있을 테니 그리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역사를 경시하는 국민들이 많다 보니 오명을 좀 남겨도 비용편익분석상 이득이 더 큰 셈이다.

선거 승리나 정치적 생존에 집착하는 분들이 추레하듯이 ‘도로 민주당’의 귀환에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솔직히 어쩔 수 없다. 내 성장통에 지역주의가 끼어있기 때문이다. 92년 대선 때 나는 열 살배기 어린이였다. 정규 방송을 다 중단하고 오로지 개표방송을 하는 게 참 지겨웠다. 88 올림픽 때 경기 중계 관계로 만화 프로그램이 일시 취소되어 분개했듯이 말이다. 내 눈에 가장 먼저 비친 것은 김영삼의 환희나 김대중의 눈물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말 한국사에 빠져 있던 내게 신라와 백제를 연상시키듯 갈라진 영호남의 개표 결과 그래프가 가슴에 박혔다. 난 그 때 처음 지역주의라는 걸 실감했다.

그 후 15년, 여전히 지역주의는 우리 정치의 큰 상수(常數)다. 역사를 하늘보다 두려워하는 녀석으로서, 양심이 신보다 위대하다고 믿는 녀석으로서 나는 새삼 또 다짐한다. 내 영혼을 내 스스로가 통제 가능할 때까지 지역주의에 손짓하거나 굴하지 않기를. 지역주의를 비롯한 부조리한 각종 연줄에 생채기가 날 때 함부로 좌절하지 말기를. 그나저나 나부터 지역주의에 대한 집착을 좀 버려야겠다. 내 자신의 문제의식만을 절대화하는 잘못을 범할까 걱정이다. 어릴 적 고민을 아직도 품고 끙끙대다니 난 어른이 덜 된 걸까? 내 출생지가 대구가 아니었더라면 좀 덜 괴로웠을까? 어렵다.


070509
두부는 물기를 어느 정도 빼느냐에 따라서 일반두부, 연두부, 순두부로 나뉜다. 빨갛게 조려낸 일반두부, 양념간장 살짝 올린 연두부, 보글보글 순두부찌개 모두 내가 사족을 못 쓰는 음식들이다. 나는 논쟁을 할 때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분명히 정하기 어려울 때면 세상을 두부 자르듯이 썰지 못하겠다며 물러설 때가 있다. 세상이 단순하지 않은 게 내 탓은 아닐 테니 나의 우유부단함만 구박하지 말아달라는 방어기제인 셈이다. 여기서 말하는 두부는 일반두부 즉 모두부를 말한다. 연두부도 모두부마냥 낱개 포장해 팔기도 하지만 연두부는 완만한 곡선미가 그 본성이라고 우기고 싶다.

점심 때 작은 연두부를 숟가락으로 떠먹으며 인간 세상이 이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순두부처럼 흐물흐물하지도 않으면서 일반두부처럼 각지게 썰리지도 않는 그런 세상 말이다. 일반두부 같은 마니교적 이분법도 아니고, 순두부 같은 니체식 허무주의도 아닌 그리 단단하지 못한 본질과 다채로운 현상이 버물리는 연두부 같은 세상! 혹자는 푸딩과 뭔 차이가 나느냐 핀잔하겠지만 내가 겪기로 푸딩의 점성(실체를 유지하려는 힘)은 연두부에 견주어 더 세다. 나는 연두부 수준의 차짐과 끈기를 사랑한다. 연두부의 목넘김을 만끽하며 나는 내 삶을 연두부처럼 가꾸고 싶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래 놓고 순두부찌개 먹을 때는 순두부의 고집 없음을 예찬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가끔 요상한 방법으로 세속을 철학화(philosophize the secular)한다.^^;


070510
『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을까』(바다출판사, 1999)를 쓴 김용만 선생님은 “고구려는 착한 나라가 아니었다. 물론 악한 나라도 아니었다. 고구려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국가였다(43쪽)”라고 평했다. 『삼국사기』 광개토태왕 기록에는 거란을 쳐서 남녀 5백 명을 포로로 삼고 거란으로 이주 당한 고구려 백성 1만 명을 환국시키고, 백제를 패배시키고 8천 여명을 사로잡았다는 기록 등이 실려 있다. 이들 포로들은 고구려의 새로운 백성이 되었을 것이다. 광개토태왕비문에는 왕릉의 수묘인에 대한 규정이 나오는데 광개토태왕은 자신의 정복 활동으로 포획한 신래한예(新來韓穢)들로 하여금 묘지 관리를 맡기라고 하교한다(실제로는 한예사람들이 예법을 모를까봐 고구려 원 구성원인 구민(舊民)들을 데려와 함께 능을 관리했다).

광개토태왕 치세 때뿐만 아니라 고구려는 중국을 비롯해 주변 나라들로부터 인구를 빼앗기 위해 애썼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의 그 애달픈 피난 행궁을 긍정한다”는 김훈 선생님의 표현을 빌려 나는 고구려의 그 치열했던 노동력 확보 전쟁을 긍정한다. 나는 고구려의 약탈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억지로 부인할 수 없다는 소극적 긍정이다. 고구려에 침략주의나 제국주의적 요소가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음 역시 소극적으로 긍정한다. 한민족이라는 개념은 없었지만 자기 땅에서 사는 백성들이 배곯지 않고 자존심 팽개치지 않게 하기 위해 애썼던 고구려 지배계급에 견주어 오늘날 이 땅의 위정자들은 얼마나 진화했는가. 무참하다. 고구려는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많은 이들의 피를 흘렸다. 역사에 진보라는 것이 있다면 불가피함의 여지를 줄여서 회피 가능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을까. 우리네 지도자들이 너무 함부로 불가항력적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실은 늘 냉혹하지 않았던가.


070511
지난 프랑스 대선에서 패배한 사회당이 책임 소재를 놓고 내홍을 겪고 있는 모양이다. 루아얄 후보의 탓인지, 사회당의 탓인지, 프랑스 국민들의 성향 변화 탓인지 가장 큰 요인을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사회당의 기존 이념을 건사해 흐트러진 전선을 다잡자는 쪽과 중도파와 손잡아 우경화 된 민심을 다독이자는 쪽이 팽팽히 맞선다. 공교롭게도 대한민국 열린우리당의 사정도 비슷하다. 과격한 개혁정책이 민심을 잃었다는 쪽과 지지자를 배신하고 보수화 되었기 때문에 동력을 잃었다는 쪽이 버성긴다. 노무현 대통령의 탓인지, 열린우리당의 탓인지(혹은 한나라당의 탓인지), 대한민국 국민들의 성향 변화 탓인지 헛갈리는 문제들이 적잖다.

그만큼 인간 행동을 구성하는 요인은 복합적이고, 사회의 작동원리도 다면적이다. 신채호 선생님은 『조선상고사』에서 “개인이 사회를 만드느냐, 사회가 개인을 만드느냐”는 문제를 고심했다. “개인도 자성(自性: 그 자체의 본성이나 성질)이 없고, 사회도 자성이 없다면 역사의 원동력은 어디에 있는가?”고 묻는다. 단재는 궁리 끝에 “개인이나 사회의 자성은 없으나 환경과 시대를 따라서 자성이 성립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힌다. “환경에 따라서 성립한 민족성”과 “시대에 따라서 성립한 사회성”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원효와 퇴계가 시대와 환경을 바꾸어 태어났다는 사고실험을 통해 시대와 경우가 인물을 산출하는 원료가 되기는 하지만, 인물이 시대와 환경을 이용하는 능력은 다름을 논증한다. 이런 논의 끝에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단재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사회가 이미 결정된 국면에서는 개인이 힘을 쓰기가 매우 곤란하고, 사회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국면에서는 개인이 힘을 쓰기가 아주 쉽다”는 것이다(신채호 지음,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비봉출판사, 2006, pp. 79~86 참조).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놓고 이명박, 박근혜 진영이 티격태격하고 있다. 만약 프랑스처럼 결선투표제 있었다면 이들이 이렇게 다투기보다는 1차 투표 통과를 위한 정책 공방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별로 차이가 없는 분들이니 아마 개인의 문제보다는 사회(즉 제도)의 문제가 크다. 범여권의 갈팡질팡은 호남 지역주의라는 거부하기 힘든 매력(?)이 없었더라면 저렇게 구차하지 않을 것이다. 같이 하기 힘든 사람들이 밥그릇 동맹을 맺는 것을 보니 사회적 요인보다는 (생존에 집착하는) 개인적 요인이 더 커 보인다(지역구도 하에서 소수파인 범여권이 뭉치는 건 사회적 요인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나누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이런저런 합리화를 할 뿐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단재의 견해를 좇자면 우리 사회는 결정된 국면일까 그렇지 않을까. 당대의 사람들은 늘 과도기를 살게 마련이라 결정되지 않은 국면이라고 보는 경향이 많을 듯싶다. 더군다나 오늘날 변화의 속도도 빠르다. 개인의 가능성이 만개하기 좋은 시절이지만 여전히 견고한 수구기득권 구조를 보면 사회의 문제가 만만치 않으니 혼란스럽다.

그나저나 이인제씨가 민주당으로 복당한단다. 그의 이런 스스럼없는 행각은 개인의 문제인가, 사회의 문제인가.^^;


070512
사촌 윤정누나가 결혼하셨다. 내 개인 홈페이지 익구닷컴의 설계와 관리를 맡아주셨고, 외형보다는 내실이 중요하다는 점을 늘 강조하시던 누나께 늘 고맙다. 결혼식장에서 나는 부조금 봉투를 받아 번호를 매기는 일을 하느라 결혼식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식권으로 밥을 먹는 대신 답례품을 교환하거나 만원을 봉투에서 넣어 하객들에게 주는 게 흥미로웠다. 주말이면 결혼식이 겹치게 마련인데 한 쪽에서는 밥을 먹고 다른 쪽에서는 답례품을 받거나 봉투를 받는 게 훨씬 실용적이다. 내가 결혼식을 많이 안 다녀봐서 잘 모르겠지만 하객들의 선택권을 넓힌다는 측면에서 괜찮은 방안 같다.

예전 국제경영 강의 시간에 중국에서 결혼식 답례품으로 초코파이 한 상자를 나눠주는 게 인기라는 걸 배운 기억이 난다. 당시 오리온의 현지화 전략의 성공 사례로 많은 상찬을 받았다. 결혼식을 잘 마무리짓고 큰집으로 돌아와 2시간 30분에 걸쳐 부조금을 계산했다. 장부액과 실제금액이 2만원 차이 났는데 3만원짜리 부좃돈을 5만원으로 기입했기 때문에 난 착오인 듯싶다. 오차율이 0.1%도 안 되니 미련 없이 손을 털어야 회계학을 배운 자의 도리(GAAP에 따른 효익과 비용간이 균형)를 다하는 셈이 된다. 흔히 부주, 부줏돈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부조(扶助)가 맞는 표현이다. 그나저나 자형 담에는 좀 덜 어색한 모습 보여 드릴게요.^^;


070513
일주일만에 다시 종묘를 찾았다. 지난 일요일 종묘대제가 있었던 날은 너무 번잡해서 제대로 답사를 못한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우리궁궐 길라잡이에서 자원하신 안내원분의 설명을 경청했다. 건물도 몇 동 없어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제대로 둘러보니 한참을 들었다. 특히 종묘 정전을 그동안 가운데서 양옆으로 증축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오른쪽으로만 증축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뻤다. 내가 안내했던 분들께 정정 보도(?)를 해야 할 텐데 걱정이다. 세관 공무원이시면서 주말에 짬을 내어 궁궐 안내원으로 자원봉사를 하시는 박태훈님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나도 언젠가 그런 기분 좋은 투잡을 가져보고 싶다.

사회봉사라고는 도통 할 줄 모르는 내게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리라. 우리 것에 대한 예찬만 늘어놓는 게 아니라 통렬하게 투덜거리는 시비쟁이 안내원이라 구박받을까봐 벌써부터 걱정이지만. 2004년 10월 1일 종묘 답사부터 시작된 목조건축에 대한 관심이 고구려 고분벽화나 고려청자, 불화, 불상, 석탑 같은 고미술 전반으로 확장되더니 이제 문화산업이나 문화정책에까지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종묘는 세계문화유산이기 이전에 내 삶의 큰 전환점이 되는 소중한 공간이다. 내게 가슴 뛰는 생의 의미를 불러일으킨 이 공간을 더 탐구하고 싶다. 종묘를 비롯한 궁궐 건축에는 준전문가가 될 계획이다. 우리 문화유산을 아끼는 아마추어 애호가가 더 늘어나야 한다는 게 내 평소 신조인데 일단 나부터 실천해야겠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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