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521
잃어버린 몇몇 카드 신고를 하기 위해 전화도 걸고, 직접 은행에 가서 처리도 하다가 중국 약국을 회상했다. 세 해 전 중국 여행을 다녀왔을 때 약을 사러 갈 일이 생겼다. 약국에서 약을 툭툭 던지더라도 너무 놀라지 말라는 당부 말을 듣기는 했지만 약국 직원들은 대개 멀뚱거렸다. 생각보다 약은 세게 던지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전화로나 창구에서나 하나 같이 친절해 말 거는 사람이 무안할 정도다. 인간적인 수준을 넘어선 봉건왕조 시대의 왕을 비롯한 상층부나 누릴 법한 호사다. 물론 고객의 요구를 무시하거나 짜증을 내서야 곤란하겠지만 신속하고 정확하게만 처리해주면 고객과 종업원 사이에 볼일은 끝난다. 살가운 목소리가 고객 감동을 유발하고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다만 내가 듣기에 좀 부담스러웠다. 과공비례랄까. 하기야 내가 그만 좀 잃어버려서 그 분들의 일감을 줄일 생각은 않고 과잉 친절이 어쩌고저쩌고 말하다니 참 못 됐다.

박노자 선생님은 일전에 <자본주의와 친절>이란 글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말단 직원에게 강제하는 친절이 허망하고 위험하다고 지적하셨다. 나는 그 논설이 너무 날카롭다고 생각한다. “소시민에게는 순간적으로 ‘왕대접을 받는’ 착각”을 일으키지만 그 순간은 너무 찰나고 이미 소시민도 그걸 잘 인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친절도 평가로 말미암아 노동의 강도가 급격히 올라갈 거 같지도 않다. 나 또한 사무적인 관계에서 과도한 친절은 좀 삼갔으면 하지만 아마 기업 차원에서 덜 친절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쉽지는 않을 듯싶다. 우리는 덜 친절하게 모시겠습니다라고 발설할 기업이 어디 있겠는가. 보다 근본적으로 아랫사람들의 친절을 문제 삼을 게 아니라 도무지 불친절한 윗사람들을 문제 삼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아랫사람의 친절강박증도 좀 누그러지지 않을까 싶다. 권위적인 한국사회에서 윗사람은 불친절하라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 5월 26일 잃어버린 지갑을 되찾았습니다. 푸하하


070522
한윤형님의 블로그에서 <2007년 대선, 역전승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 이유>라는 글을 읽었다. 자신은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당선되면 이기고 상대방은 그 외의 사람들이 당선되면 이기는 걸로 해서 내기를 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제외한 사람들이 확률이 아니라 희망에 돈을 걸었다고 평했다. 맞는 말이다. 윤형님은 “집권당에 대한 평가는 2002년이 훨씬 좋았다, 노풍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은 대세에 영향을 줄 요인이 없다, 범여권이 정권재창출을 해야할 이유가 없다”는 논거를 들어 정권재창출은 난망하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고 역설하셨다. 거개 수긍할 만하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퇴하고 당으로 돌아오며 남긴 말씀이 인상 깊다. 그는 참여정부를 배에 비유하며 “승객 남아 있는 한 승무원에게는 탈출할 권리가 없다. 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고, 구하지 못하면 배와 함께 운명 마감해야 한다. 이것이 상식이다”며 “별난 충성심이라고 말하면 이는 정치적인 문화가 잘못된 것”이라 말씀하셨다. 물론 가장 최선책은 구조선으로 옮겨 타는 거다. 하지만 지지자와 국민의 꿈을 연료로 삼아 항해하는 정당이란 이름의 배들은 갈아타는 배도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아무 배나 잡아 탈 수 없다는 게 바로 책임정치이며 정당정치 아닌가. 나는 승무원은커녕 3등칸 승객조차 아니었다. 통통배 타고 있다가 큰배가 침몰할 때 같이 깔리는 형국이랄까. 그게 살짝 억울하다.

요즘 들어 정치인이라는 직군의 사람을 함부로 믿는다는 게 얼마나 무지하고 허망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러나 어느 수준의 심리적 계약, 즉 잘 하리라는 믿음 없이 우리 대리인을 뽑는 정치적 지지가 가능할까? 어느 정도 기대에 어긋나도 앞으로 잘 하라며 격려해주는 넉넉한 마음 없이 누군가에게 내 꿈을 투자한다는 게 가능할까(그렇다고 어느 정당의 시멘트 지지율이 마땅하다는 건 아니다)? ‘믿음-실망’의 사이클의 계속 반복된다고 하지만 다음 선거에서 그 사람을 지지하지 않음으로써 환멸을 불러일으킨 책임을 묻는 시스템도 있고 말이다. 직선 대표의 임기 중에 유권자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시급하지만 평가에 충실했다면 적어도 오늘날 같은 저열한 정치가 횡행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유권자 무서운 줄 모르고 저러고 있지 않은가.

하고픈 말을 꾹꾹 참느라 말이 겉돈다. 나 역시 확률이 아니라 희망에 건다. 사실 희망이라고 표할 것도 없고, 대세를 따르느냐 안 따르느냐의 문제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내가 차마 대세를 따르지 못하는 건 앎과 삶의 거리를 좁히려는 내 실존적 몸부림이다. 나 같은 보수주의자가 찍을 정당이 고작 저런 집단이라니 이건 너무 불공평하고 잔인하다. 사람은 살다보면 변할 수 있기에 훗날 나의 이런 결정에 후회를 할지도 모르겠다. 머리를 쥐어뜯는 와중에 그래도 자신이 믿는 바를 소중히 여긴 것만은 내 힘이 되지 않을까. 나란 놈을 아끼는 마음에서 걱정해주신 도광양회(韜光養晦) 같은 충언들을 이번에도 다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게 죄스러울 따름이다.

희망은 원래 있다고 할 수도 있고 없다고 할 수도 있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걷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길이 되는 것이다. - 루쉰


070523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님의 『1997년 이후 한국사회의 성찰』(2006, 길)라는 책은 지성의 위기를 진단하고 있다. 김동춘 선생님은 한국사회가 ‘기업사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기업이 단순히 사회의 일부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가 기업의 모델과 논리에 따라 재조직되는 사회”라는 것이다. “기업의 효율성이 사회의 효율성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김 선생님의 명제를 공병호 선생님은 “경영원리의 도입이 모든 영리단체뿐만 아니라 비영리단체의 효율성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사회의 효율성은 자연히 뒤를 따르게 된다”로 대체해야 한다고 지적하신다. 한겨레 신문 지상에서 오고간 두 분의 토론을 흥미롭게 읽었다. 김 선생님은 기업사회에서의 처벌은 명예퇴직 강요, 분사, 비정규직화, 해고, 비연고지 근무 요구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처벌이 아니라 기업 경영 합리화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음을 꼬집는다.

“기업사회의 소외와 차별, 억압은 사회적으로 주변화, 개인화되며, 탈락자들은 그 책임을 자신에게 돌린다는 점에서 정치적 차별보다 더 무섭다”는 주장에 수긍한다. 자기 탓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만 패배의 내면화는 인간의 존엄성을 심대하게 저해한다. 김 선생님은 소비자는 결코 시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주체적 인간으로서의 자각과 정치 기능을 복원함으로써 기업사회를 견제하는 버팀목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씀은 구체적이지는 않아도 실천을 고심해볼만 하다. 기업사회의 가치관으로 비추어 볼 때 민주적 방식이 효율적이거나 생산성이 높다고 보기 힘들다. 그런데도 민주주의를 건사하고 오히려 경제영역에까지 확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주의는 기업사회에 삼감의 미덕을 갖출 수 있도록 작동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는 언설 앞에 주눅 들지 않고 맞설 희망의 언어는 무엇일까. 

최근 국가/지방 행정에서 ‘경영행정’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간단히 말해 행정에도 기업식 경영방식을 도입하는 것을 말한다. 비용의 최소화, 고객 지향적 사고, 신축적 관리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행정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높이자는 시스템이다. 단점도 많다. 가령 대중을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소비자로 간주할 경우 공동체 형성이 어려우며, 국가적 혹은 집단적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움/ 성과와 능률 등의 결과적 가치에 대한 강조는 형평성, 공정성, 절차적 정당성, 대표성 등의 민주적 가치를 손상시킬 우려/ 수익자 부담원칙의 채택으로 불필요한 공공서비스를 줄이는 과정에서 서비스의 격차가 유발되어 저소득계층의 타격이 더 클 소지/ 정부의 권한을 분산, 이양한 관계로 행정 통제가 어려워져 책임성의 문제가 대두될 가능성 등이 있으리라. 행복한 살림살이를 위한 사회 운영원리는 타협과 절충, 시행착오의 연속일 게다.


070524
이덕일 선생님의 『장군과 제왕2-중원의 고구려, 제왕 이정기』(2005, 웅진)과 지배선 선생님의 『중국 속 고구려 왕국, 제齊』(2007, 더불어책)을 읽었다. 765년에서 819년까지 이정기-이납-이사고-이사도로 이어져 중국 산동반도 일대를 통치한 제(齊)나라 이야기다. 이사도는 이태 전 드라마 <해신>에서 악역처럼 나와 역사 왜곡 논란을 낳기도 했던 인물이다. 이정기부터 이사도까지 고구려를 적극적으로 계승하려는 의지가 있었는지는 자세히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당나라 조정은 이사도군을 “고구려의 흉악한 무리”라고 칭했다. 제나라에 고구려 유민 출신이 많았다는 것도 분명하다. 이사도는 궁궐뿐만 아니라 종묘를 건설할 정도로 독립국가라는 의식이 있었다. 그는 중국에 맞서 싸우다 순국한 한국사상 매우 드문 인물이다.

한국측 사서에는 헌덕왕 11년(819) 이사도의 군대를 치기 위해 당나라가 원군을 청하자 신라는 3만명의 군사를 파견했다는 기록만 전한다. 우리가 제나라를 이렇게 팽개쳐도 되는 걸까? 중국측 사서인 『신당서』, 『구당서』와 『자치통감』은 이씨 왕조에 대해 시종일관 부정적으로 서술한다. 그네들이 자랑하는 춘추필법은 늘 이런 식이다. 이렇게 쩨쩨한 소인배 같은 기록을 남겨 놓고 대국을 자처했는지 알면 알수록 민망하다. 하기야 이렇게 구질구질했기에 결국은 대륙을 차지해 호령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그들에게서 영악함을 좀 배울 필요가 있다). 남 탓할 거 없는 건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비롯해 우리나라 사서 대부분도 중국 흉내내기 바빴기 때문이다. 모화사상은 갈수록 심해져 나중에는 중국의 기록을 그대로 베껴오기 급급한 지경에 이르렀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이겼으면 됐지 패자의 기록을 이렇게 모질게 해도 되는 건지 참 야박하다. 승자를 존중한다. 승리 앞에서 도덕이니 정의를 들먹이는 게 얼마나 허망한 가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구차하게 이기고 비루하게 부귀영화를 누린 자들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건 뒷사람의 떳떳한 도리다. 사료의 틀에 갇힌 고정관념을 벗기는 참 힘들지만 패자의 역사를 살필 때 나는 좀 더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070525
1919년 2월 말 독립선언서 제작하던 인쇄소에 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 신철이 들이닥친다. 민족 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이던 최린은 신철에게 민족을 위해 며칠간만 모른 척 해달라고 사정한다. 신철은 3·1운동이 거행되기 전에 만주로 출장을 떠난다. 그의 침묵 덕에 3·1운동이 발각되지 않았다. 신철은 정보를 감추고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헌병대에 투옥되었고 그곳에서 곧 자살했다고 1919년 5월 22일자 매일신보는 전한다.

악질형사로 유명했던 이의 대변신이 참 드라마틱하다. 그런데 이런 희생을 발판으로 이뤄진 3·1운동은 결과적으로 철저히 실패했다. 민족 대표 33인은 현장에 함께 하지 않고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을 한 후 전원이 일본 경찰에 연행되는 촌극을 연출했다. 당시 조선의 인구가 1600여만 명 정도였는데 3·1운동은 200만 명이라는 엄청난 인파가 참여했다. 3·1운동을 짜임새 없는 산발적인 시위로 그치게 만든 건 지도부 탓이 크다. 남을 대표한다는 건 멋 삼아 할 일은 아니다.


070526
한미 FTA가 비준될 경우 저작자 사후 50년에서 저작자 사후 또는 저작물 발행(또는 창작) 이후 70년으로 연장하게 된다. 저작권 보호기간은 저작자와 자손 2세대까지 보호한다는 의미로, 최근 평균수명 연장 등의 이유로 전세계 약 70여개 국가가 70년 이상 보호한다. 하지만 나는 그 보호 수준이 너무 과도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장하늘님이 좋은 글을 엮어 만든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 문장 』이란 책이 있었다. 본래 43편이 아닌 53편으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저작권자나 그 유족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10편이 빠지게 되었다.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생겨난 저작권법이 오히려 작가의 작품이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는 길을 원천적으로 막아버리는 장애 요인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는 말씀에 참 공감했다. 출판사는 불법 대신 작품 게재를 포기했다. 나로서는 내가 모르던 명문을 접할 기회를 잃은 셈이다.

내가 크리스트교와 좀 데면데면해서 성경 구절은 잘 모르지만 전도서 1장 9절의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there is nothing new under the sun)”는 말씀은 새기고 있다. 지식의 창조자 혹은 생산자들은 그것이 자신만의 것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될 거 같다. 그건 오만이 아닐까. 설령 순수하게 자신의 머리로 나왔다고 한들 그걸로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게 온당할 거 같지도 않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즈는 천부적 재능은 사회적 공공재라고 주장했다. 부잣집에서 태어났거나 재능이 뛰어나거나 하는 자연적, 사회적 우연성은 그 사람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탁월한 지적 능력은 단지 우연이라고 할 수만은 없지만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고사처럼 운이란 것도 있고, 천재라는 것도 있는 건 분명하다. 아무도 자신의 뛰어난 천부적 능력을 받을 자격이 있지 않으며, 사회에서 보다 유리한 출발점을 차지할 자격은 없다는 그의 말씀은 음미할 만하다. 나는 불법 복제를 옹호하는 게 아니다. 다만 저작권법이 배움을 막는 쪽으로 나아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070527
금아(琴兒) 피천득 선생님이 지난 25일 돌아가셨다. 추모하는 많은 분들이 선생님의 순수함을 드높였다. 나는 그보다 더 감명 깊은 것이 선생님의 멈춤이다. 선생님은 1970년대 중반 절필을 선언하셨다. 당신께서 전보다 못한 글을 쓰고 있다고 느껴서 글쓰기를 그만 두셨다고 한다. 선생님은 번역서를 제외하고는 한 권의 수필과 한 권의 시집을 남겼을 뿐이다. 나는 선생님의 수필 가운데 ‘반사적 광영反射的 光榮’이라는 글을 참 좋아한다. “사람은 저 잘난 맛에 산다지만,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 잘난 맛에 사는 것”이라는 말씀에서 겸허함을 배우고 싶다. 잘난 사람을 꿍꿍이 없이 인정할 수 있어야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선생님의 글을 배우고 익히던 학창시절이 문득 그립습니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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