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528
조만간 외국 여행을 떠나는 친구가 수집해놓은 여행 정보 가운데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견했다. 터키 국민의 99%가 이슬람 교도지만 터키 헌법은 세속주의를 명시하고 있다니 놀랍다. 터키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도 이슬람적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며 오히려 법으로 금지된 게 적잖다. 1923년 10월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국을 수립한 케말 파샤가 확립한 세속주의 원칙을 국민들이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니 신기하다. 얼마 전 이슬람주의 집권여당인 정의개발당(AKP)이 총리직과 의회를 장악한 상황에서 대통령직마저 차지할 것으로 보이자 이를 놓고 터키가 내홍을 겪었다. 터키에서 막강한 실력을 보유한 군대가 세속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개입을 암시하기까지 했다. 결국 대통령 단독 후보가 사퇴하고 7월 조기 총선을 실시하기로 가까스로 결판이 났다. 세속주의 세력은 이슬람 근본주의에 맞서 일단 소기의 성과를 거둔 셈이다.

터키에서는 이슬람계 정당이 헌법상 세속주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 판결을 받아 해산되는 일까지 있었다. 공공기관인 대학이나 행정 관서에 종사하는 사람은 히잡(hijab)을 착용할 수 없다고 한다. 정교분리를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하는지 짐작이 간다. 아시아의 눈으로 볼 때 터키는 묘한 나라다. 국토의 96.4%가 아시아에 있으면서 3.6%가 속한 유럽을 동경하기 때문이다. EU 가입이 하도 튕기는 바람에 최근 들어 EU 가입에 대한 터키인들의 지지도가 많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터키의 유럽지향성이 쉽게 누그러들 거 같지는 않다. 아마 터키의 정교분리가 비교적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까닭도 터키의 역사문화적 맥락에서 기인했기 때문일 듯싶다. 헌법정신을 지키기 위해 고심하는 터키인들의 모습을 좀 배우고 싶다. 초파일이라고 조계사에 헌화하기 위해 줄 선 정치인들을 보니 답답해서 하는 소리다. 종교의 자유를 핑계로 사립학교법을 흔드는 대다수 종교 재단들을 볼 때 우리네 헌법이 참 초라해 보인다.


070529
영국의 철학자 무어(G.E.Moore)는 고전적 윤리학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첫째로 형이상학적 윤리설은 초자연적, 초경험적 실재에 관한 이론이 선(善)에 관한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기초가 된다는 입장이다. ‘있어야 할 것’이나 ‘해야만 할 것’이라는 당위의 근거를 초경험적 실재에서 구할 수 있다는 건 개인적으로 그다지 동감가지 않는 내용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나 크리스트교적 중세 철학에서 자주 보는 논리다. 둘째로 자연주의적 윤리설은 경험 가능한 사실을 근거로 삼아 보편적인 인생의 목적 또는 절대적인 행위 규범을 도출해 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자연주의는 사실 또는 존재에서 가치 또는 당위를 도출하는 이론이다. 이러한 시도는 윤리학을 과학화하려는 사람들이게 많은 호응을 얻었다. 셋째로 직관주의적 윤리설은 인간이 지닌 선천적 능력을 동원하여 도덕의 원리를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자연주의와는 달리 사실 또는 존재에 대한 인식으로부터는 어떤 가치나 당위도 도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직관주의는 직각론(直覺論)이라고도 부른다. 직관주의는 사실에서 당위를 연역해내는 자연주의의 추리 방식을 통박한다. 흄과 무어는 “~이다”라는 사실(존재)에서 “~해야 한다”는 가치(당위)를 도출하는 것은 전제 안에 없는 것을 결론 속에 도입하는 것으로서 논리학의 추론 규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특히 무어는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를 입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듯싶다. 그는 “선은 단순하기 때문에 정의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단순 관념은 분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의할 수 없다는 논리다. 선은 이미 단순하기 때문에 분석이 불가하므로 선은 선일 뿐이라는 것이다. 즉 단순 관념인 선은 (분석된) 요소로 환원할 수 없다. 이러한 반박의 얼개는 가치술어가 사실적, 경험적 정의된다고 생각해 발생하는 오류인 정의적 오류(definitive fallacy)와 당위를 존재로부터 도출할 때 생기는 오류인 연역적 오류(deductive fallacy)로 나눠져 꽤 설득력 있게 자연주의를 공략한다.

이처럼 날선 공격을 날리던 직관주의는 20세기에 등장한 정의주의(emotivism)나 규정주의(presscriptivism)에게 논박되고 있다. 사실과 가치, 존재와 당위(보통 이렇게 두 개씩 짝지어서 많이 쓰는 듯싶다)의 관계를 규명하려는 노력이 참 많다. 그 노력과 고심의 궤적을 훑어 보는 것도 힘에 부친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수많은 사실과 수많은 가치가 버성기고 맞물린다. 우리는 사실만 정리하는 것에도 편차가 난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도 사실 가치가 개입되어 필터링 된 사실인지도 모른다. 하물며 가치나 당위가 맞설 때는 접점을 찾기 더 어렵다. 특히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현실론’은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볼 여지가 많다. 자신에게 유리한 몇몇 사실을 모아 당위를 도출해내는 논리 구조의 허술함을 이제 좀 더 잘 살펴봐야겠다. 인간이 획일적이지 않다는 건 괴로운 축복이다. 고통을 줄이고 축배를 들자.

<참고문헌>
김태길, 『윤리학』, 박영사, 2004
P.W.테일러 지음, 김영진 옮김, 『윤리학의 기본원리』, 서광사, 1985


070530
요 근래 여기저기 적어놓았던 메모의 흔적들을 정리해봤다. 시의성을 놓쳐 수를 다한 기록들 사이에서 명언명구들이 빛난다. “나는 기술적으로는 프로가 되고 싶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언제나 아마추어이고 싶다”는 뉴질랜드의 등산가이자 탐험가인 힐러리의 말씀이 심금을 울린다. 아마추어는 순수함이나 겸손함을 가리키는 뜻일 게다. 높을수록 낮아지는 마음자리를 흠모한다. <쿠니미츠의 정치>라는 만화책 13권에서 아즈마 미츠아키라는 인물이 말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은 위에서 던지는 게 아니야. 같은 눈높이에서 똑바로 던지는 직구만이 사람의 마음을 흔들 수 있어”라는 구절도 만화책을 보다 펜을 들게 만들었던 명구다. 사실 난 아직도 직구를 잘 못 던진다.

방대한 양이라 아직 완독은 못했지만 『전국책』에서 갈무리해둔 구절도 많이 보인다. “나라가 망하는 것은 현인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쓸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國亡者, 非無賢人, 不能用也)”, “백리 길을 가는 사람은 구십리를 반으로 여겨야 한다(行百里者, 半於九十)”, “지난 일을 잊지 않으면 뒷일을 위한 스승이 된다(前事不忘, 後事之師)” 같은 말씀들은 담박하지만 큰 울림이 있다. 유가의 상고주의(尙古主義)는 옛글에 주석을 달고 표현을 윤색하고 비유를 첨가하는 식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자신이 만들었다고 지식의 소유권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달갑다. 손에 잡히는 종이에 아무렇게나 끼적댄 아포리즘을 발견할 때 잊고 지내던 옛 친구를 만나고 옛 스승을 뵙는 기분이다. 하지만 좀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도 느낀다.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에서 ‘쓸모없는’(obsolete)과 ‘지식’(knowledge)’을 합한 ‘무용지식’(obsoledge)이라는 신조어를 제시했다. 그는 “미래 경제의 모습은 지식의 타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진실 여과 장치를 사용하는지에 달려 있다”라며 무용지식을 가려낼 수 있는 능력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두서없음과 뜬금없음을 자유로움의 징표로 삼는 내게는 좀 화끈거리는 말씀이다. “이론은 장례식을 거듭하며 진보한다”는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의 말씀대로 쓰레기지식도 좀 더 나은 지식의 밑거름이 되겠거니 넉넉하게 생각하고 싶다(물론 거름이 되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는 안 되겠지만서도). 힘겹게 배운 걸 매정하게 내치려니 마음이 약해져서 말이다. 지식과 정보의 홍수를 슬기롭게 대처하려면 어지간히 신산스럽겠다.


070531
기자실 통폐합을 놓고 거의 모든 언론이 정부와 대통령을 향해 집중포화를 날리고 있다. 이제 언론탄압이라는 듣기 민망한 언어의 인플레는 적잖은 누리꾼들이 항의한 덕에 좀 수그러든 듯싶다. 정보 접근권 확대라든가 정보공개법 개정 같은 좀 더 생산적이면서 국민의 알 권리 확대에 보다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논점이 옮겨가는 듯싶어 다행스럽다. 정부의 이번 조치에 극렬 반대하는 언론 집단들의 행동이 가슴 뭉클하지 않는 사람이 적잖다는 건 긍정적인 현상이다. 그네들이 언론탄압이라고 마음껏 외칠 수 있는 게 바로 언론탄압이 아니라는 증거다. 언론탄압이라니 국민의 알권리가 심대하게 침해된다느니 하는 매서운 말들이 무덤덤하게 들리는 건 우리네 언론의 자유가 반석 위에 올랐음을 나타낸다.

참여정부 비판에 학문적 역량을 아끼지 않으시는 최장집 교수님은 이번 사태가 ‘위임 민주주의’이며 ‘사이비 민주주의’라고 평했다. 정부의 섬세하지 못한 처사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조기숙 교수님의 반론대로 언론은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 지금이 언론독재의 시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치독재보다 언론독재가 더 위협적이라는 지적에는 동감한다.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부장님은 <독점 깨지니 두려운가?>라는 칼럼에서 전자브리핑은 지방지와 중소매체 기자들에겐 기회가 될 수 있으며 “서울지들이 난리를 치는 건 바로 이 독점이 깨진다는 것 때문이 아닐까”라고 묻는다. 획일적인 목소리 가운데 들려오는 소수의견이 반갑다. 대다수 언론들의 대동단결을 흐뭇하게 바라보기 힘든 까닭은 내 옹졸함 때문만은 아닌 듯싶다.

언론의 자유를 넘어 ‘언론으로부터의 자유’를 꾀해야 한다는 주장은 시의적절하다. 하지만 언론으로부터의 자유는 언론 보도만을 지식과 정보의 원천으로 삼지 않고 좀 더 심층적으로 사고하자는 개인적인 영역에 국한된 노력일 따름이다. 모든 국민이 신문 기사 훑어볼 때마다 행간을 읽고 가려진 진실을 추론해야 한다면 그건 너무 비효율적이다. 우리네 언론이 사실조차 입맛대로 재단한다는 의혹은 거개 온당하다. 가까운 사례로 지난 25일 세종대왕함 진수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의 일부를 발췌해 요상한 기사를 쓴 문화일보 어느 기자분에게 소설가라는 야유가 쏟아졌다. 할 말은 하는 언론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사실 그 자체만이라도 충실하게 보도해줬으면 좋겠다. 행정부 정보 공개만큼이나 중요한 과제는 사실 보도 정착이다. 언론으로부터의 자유와 더불어 문학성 짙은 언론을 견제하는 방안도 함께 마련하자. 펜은 확실히 칼보다 강하다. 그렇기에 칼보다 상처도 깊다.


070601
오늘자로 김병장이 전역했다. 유월에 전역인 건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이르다. 김병장보다는 김이병이 더 내 입에 익다. 내가 처음 구청에서 군복무를 시작했을 때 그와 나는 업무적 통화를 적잖이 나눴다. 업무 인계를 거의 받지 못해 업무 관련 용어를 생판 모르던 나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말을 도무지 해독(?)하지 못했다. 가령 동미참훈련이 동원훈련 미참석자 훈련인 건 몇 달 지난 뒤에 알게 된 일이다. 그가 일병이 좀 지났을 때 그는 더 이상 통화를 하지 않았고 다른 막내 병사가 우리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와 나는 2005년 7월부터 그 해 말까지 반년 정도 종종 통화를 나눴다. 나는 그에게 미안한 마음에 업무를 스스로 익히기 위해 이것저것 뒤지고 물어가며 배웠던 듯싶다. 어리둥절하던 나와 긴장한 목소리의 그는 이등병 시절을 비슷하게 났다(나도 공익이병이었으니).

2006년 여름 어느 날 나는 그를 한 번 만났다. 그는 군부대 관련 행사로 구청을 들른 그는 기동대 사무실에 잠시 들렀고, 나와 김상병(당시 계급)의 관계를 아는 상근병 동생이 귀띔해줬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옆 사무실로 달려갔지만 정작 그와는 한 마디도 나누지 못했다. 먼저 인사를 건네야지 결심하고 들어갔건만 예전에 업무상으로 몇 번 통화 나눴던 사람이 괜히 아는 체를 한다고 생각할까봐 저어됐다. 지금 돌아보니 많이 후회된다. 그 때 이상한 놈으로 비치더라도 인사를 건네는 게 좋았다. 설령 그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심지어 언짢게 생각해도 무슨 대수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살다보면 한 번 만나고 못 만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 하룻밤 술자리를 진득하게 보내고 나서 영영 연락을 나누지 못하는 경험은 얼마나 많은가. 설령 그럴지라도 나를 스쳐갔던 분들에게 내 정성을 다했으면 좋겠다. 한 번에 충실한 사람이 두 번 세 번도 충실하고 늦게까지 한결같다고 믿는다. 김병장의 전역을 축하하며 앞으로 하는 일이 잘 되길 빈다. 고마웠어요.


070602
헌책방 온라인 커뮤니티를 운영하시는 최종규님의 글을 읽다가 경악했다. <가자헌책방>이란 헌책방에서 불온 이념도서를 팔았다는 죄목(?)으로 수사를 받았다 게다. 여느 책방에서도 볼 수 있는 『자본론』 같은 책을 싸게 판 게 혐의를 구성한다니 기가 막힌다. 제 값 받고 팔아서 판매량을 낮춰야 하는데 괜히 싸게 팔아서 독자층을 넓히는 효과를 유발한다고 판단한 건 아닐 테고. 인권운동가 박래군님의 글에 따르면 <미르북>이란 곳의 운영자도 비슷한 명목으로 구속적부심까지 가서 석방됐다고 한다. 이 인터넷 서점을 통해 책을 구입한 명단을 확보해 추가 수사를 하겠다는 엄포는 뭐란 말인가. 국가보안법으로 서점 대표가 체포된 것은 1997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는데 문득 세 해 전 생각이 났다.

국군기무사령부가 2001년부터 2004년 8월까지 경찰청 산하 공안문제연구소에 장병들이 읽거나 갖고 있는 서적, 인터넷 사이트의 글에 대해 이적·용공성 여부 감정을 의뢰했다는 기사(경향신문 2004년 10월 18일자)를 기분 나쁘게 읽었다. “군의 이념적 순수성을 보장하기 위해”라는 기무사의 해명은 민망하다. 박노자 선생님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같은 책을 읽으면 안보 위해세력이 된다는 논리는 얼마나 궁색한가. 나는 공안기관에 밥줄이 걸린 사람들의 생존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네들이 먹고 살기 위해 확신범이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이제 선량한 사람 족치는 일 대신 다른 일감을 쥐어줄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법치주의와 합리주의를 신뢰하는 보수주의자로서 하는 말이다.


070603
미국의 중국현대사가 로버트 이스트만은 『장개석은 왜 패하였는가』라는 책에서 중국 국민당이 공산당에게 패배했던 이유를 연구했다. 공산당이 국민당을 멸망시킨 것이 아니라 국민당 스스로 무너졌음을 논증했다. 전쟁 초기 정면 대결을 피하고 유격전을 벌이며 전략적 방어를 펼친 공산군의 전략도 주효했겠지만, 부패한 국민당 관리와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경제적 실책으로 말미암아 민심을 잃은 탓이 크다. 토지개혁을 통해 농민들의 지지를 얻어 이를 전장에서 동원할 수 있었던 공산당과 달리 농촌지역에 세금과 징발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킨 국민당이 지지를 잃는 건 또렷하다. 국민군은 스스로의 부패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멸함으로써 내부의 적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일깨워주고 있다. 이 책을 번역한 민두기 선생님은 패자의 역사는 더 많은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말씀하셨다. 맹자가 주창하고 매천 황현이 인용했던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먼저 망하게 하고 나서 남이 치러 들어온다(國必自伐而後人伐之)”는 말이 사무친다.

국민당 정부가 패주해 간 대만(타이완)의 정식 국호는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이다. 중화민국은 1949년부터 1971년까지 유엔 회원국이다가 중화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China)이 유엔에 가입하면서 회원국 지위를 잃었다. 중화민국은 눈물겹게 유엔 재가입을 시도하고 있지만 중국의 강력한 반대에 막혀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최근에는 타이완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국가의 신규 가입 형식을 꾀하지만 이마저도 중국의 반대가 거세다. 중국은 줄곧 대만은 중국 영토의 일부분으로 보고 하나의 성(省)쯤으로 간주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현대 중화민국과 수교하고 있는 나라는 중남미와 남태평양, 아프리카 지역의 약소국이 대부분이다. 최근 들어 바티칸이 중국과 수교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어 교황청마저 대만을 버릴 공산이 크다. 명백한 주권국가인 중화민국의 유엔 가입이 좌절되는 건 국제사회의 부끄러움이다. 지난날 국민당의 실덕과 오늘날 중화민국 사람들의 고초는 맞바꿀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타이완보다는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존중한다. 한때 자유중국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던 이 나라를 매몰차게 버리는 건 사람의 도리가 아닌 듯싶다.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은 1948년에 국교를 맺었다가 1992년 한중 수교로 인해 단교했다. 중화민국의 장제스는 우리의 독립에 적잖은 지원과 격려를 해줬고, 유엔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우리의 입장을 많이 대변했다고 한다. 노태우 정부는 북방외교의 일환으로 중국과 전격적으로 수교하면서 타이완과 일방적으로 단교했다. 이러한 외교적 무례는 중화민국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가 됐다.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절도가 있어야 했다. 비록 정부차원의 공식적 교류는 끊어졌지만 인적 교류와 통상 교역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서로에게 5, 6대 교역국이기도 하다. 다행히 2004년 이후 양국간에 직항노선협정 체결로 하늘길이 열렸고, 중화민국 현지의 한류 열풍도 양국의 앙금을 조금씩이나마 눅이고 있다. 우리가 중화민국을 홀대했듯이 우리는 아직도 달라이라마의 방한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중국의 막강한 영향력을 외면하자는 게 아니다. 용미(用美)만큼이나 용중(用中)의 지혜가 필요하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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