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니야, 고이 잠들길

잡록 2007. 8. 30. 03:23 |

8월 29일 새벽 익구네 애견 야니가 향년 7세로 운명했습니다. 전날 위 절개술을 받고 잘 회복하던 중에 일어난 일이라 더 경황이 없네요. 그리 큰 수술이 아닌데다 수술도 잘 되었기 때문에 안심하던 터라 충격이 큽니다. 원체 갇혀 있는 걸 싫어하는 녀석이라 처음 겪는 입원에 쇼크사한 게 아닐까 막연히 추정하고 있습니다. 삼가 애견 야니의 명복을 빕니다.


안녕 야니야... 형아다. 네가 하얀 천에 덮여 있었을 때 나는 담담했단다. 천을 들추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쓰다듬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나는 침착했었지. 늘 뜨겁던 네 몸이 서늘할 때도 나는 참을 수 있었어. 그런데 네 귀가 빳빳하게 굳어 잘 안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는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구나. 그렇게 튼튼하고 활기차던 네가 어떻게 병실에서 하룻밤을 못 넘기고 그렇게 되었는지 참 슬프다. 따갑다.


그간 하도 집 밖 나서기를 좋아하는 너를 농담 삼아 자유견(自由犬)이라고 불렀는데 철창에서 하루도 못 참았네. 우리들 곁에 한시도 떨어지기 싫어하던 너는 실상 외로움을 많이 탔었지. 네가 안정을 취하려면 들여다보지 않는 게 좋다는 병원의 충고대로 한 건데 그 사이를 못 참다니 안타까워. 결국 내가 건넨 마지막 말은 수술실 들어가기 전에 네게 건넸던 “안녕”이었네. 참 멋없게 헤어졌다. 네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게 많이 아쉽다. 곁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해.


집이 참 적막하네. 지난 주말에 사다놓고 몇 끼니 먹지 못한 채 고스란히 남아있는 네 밥, 네가 그렇게 좋아하던 간식과 껌들 그리고 쌀과자, 네가 즐겨 가지고 놀던 쿠션과 공들, 꼭꼭 씹어 늘 젖어있던 네 이불까지 덩그러니 남겨져 있어. 사진첩에 있는 네 모습에 자꾸 눈길이 간다. 네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같이 왔던 꼬질꼬질하던 수건에서 어찌나 안 떨어지려고 했었는지. 네가 가지고 놀던 물건들에 애착이 강한 걸 잘 알고 있는지라 뭘 좀 버리려고 해도 선뜻 결심이 안 서네. 다른 건 몰라도 한겨울에 입던 노랑병아리 옷은 차마 못 버릴 거 같아.


네 이름 야니에 내가 들 野, 진흙 泥라는 한자를 붙였지. 이 말처럼 개구쟁이 같던 너, 말썽꾸러기 녀석. 하얀 털에 눈 두 개, 코 하나만 새까맣다고 해서 지은 삼점(三點)이라는 아호(雅號)가 겸연쩍게 되었네. 온갖 복을 가져다준다는 뜻으로 지은 네 보금자리 이름 백복헌(白福軒)도 허전하다. 내 호사스런 취미 때문에 붙였던 이 이름들이 지금은 가슴에 사무친다. 그만큼 네가 각별했었던 모양이야. 야구리, 야구리우스, 야굴장군, 나불나불이, 복실이 등등 다채로웠던 별명들도 이제 주인을 잃었구나.


사람은 영악한 동물이라 나도 조금 지나면 너를 잊고 살겠지. 아니 그 말은 아무래도 너무 박절하다. 사실 너를 영영 못 잊을 거 같아. 무뚝뚝한 내가 네게 정이 많이 들었어. 내가 마냥 무심한 놈은 아니라는 걸 너로 인해 깨우쳤다. 이 아픔은 무(無)로 돌아간 너를 위한 것만은 아니야. 결국 내 자신을 위한 괴로움이겠지. 함께 나눌 수 있었던 내일의 가능성을 묻어야 한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그러나 마땅한 감정이랄까. 내 일부가 소실된 듯한 이 상실감. 미어진다는 기분이 이런 것이구나. 마음이 아리다. 저민다.


너는 내 생애 처음으로 겪는 지근거리(至近距離)와의 이별이다. 첫 죽음이라는 게 일개인에게 유형무형의 많은 영향을 미치겠지. 천수를 다 누리지 못하고 보내 더 비통하다. 어쩌면 네가 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의 불행을 모두 안고 그렇게 빨리 가버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너와 한 식구가 된 지난 4년 2개월 간 적어도 내 자신한테는 나쁜 일이랄 게 없는 나날들이었거든. 쌔근쌔근 잠든 네 모습을 보며 가끔 네가 내게 행운을 가져다 주는 건 아닐까 생각했지. 그간 참 고마웠어. 내가 일자리도 얻고 돈도 버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옆에서 좀 더 지켜보지 너는 날 뭘 믿고 그리 일찍 떠났니.


귀여운 내 동생아, 너 덕분에 내가 많이 웃었다. 너를 도닥거릴 때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었다. 지난 주 어느 날 내가 술 마시고 늦게 들어갔을 때 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나를 맞이해 준 네 모습이 선하다. 그게 마지막으로 네 단잠을 깨운 게 되었을 줄이야. 나는 사후세계를 믿지 않아. 천국과 지옥이 있을 것 같지 않고, 극락세계와 내세도 도무지 믿기 힘들어. 입으로는 명복을 빈다고 하지만 사실 네 죽음은 네게 있어 우주의 소멸에 지나지 않겠지. 한번뿐인 네 삶에 내가 어떤 의미였을지 모르겠다만 좋게 기억해주길 바랄게.


만약 내 믿음이 틀린 거라 우리가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면 내가 너를 알아볼까? 네가 나를 반길까? 이 부질없는 상상조차도 버겁다. ‘쭉쭉이’라고 불렀던 네 기지개가 그리울 게다. 산책 가자고 은근슬쩍 조르는 네 투정이 떠오를 게다. 다른 강아지들만 보면 짖어대던 네 극성맞음마저 추억할 게다. 매일매일 떼 줄 눈곱이 없어서 서운할 게다. 자기 전에 오줌 누고 오라고 엉덩이 톡톡 쳐주던 손동작을 괜히 해볼 게다. 첫새벽에 꼬리 흔드는 녀석이 없어서 쓸쓸할 게다. “앉아”와 “손”밖에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늘 즐거웠던 간식시간이 절실할 게다.


표현이 과격하기는 하지만 세상에는 개보다 어렵게 사는 사람도 많고, 개만도 못한 사람도 제법 있다. 너와의 짧은 인연을 딱한 사람을 헤아리는데 쓸게. 개만도 못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네 못 다한 삶까지 끌어다가 열심히 살게. 응원해주렴. 널 끔찍이 아끼던 어머니가 상심이 크시다. 슬퍼하되 너무 다치시지 않게 도와주라. 말이 너무 길었다. 오늘이나 내일쯤 화장장에서 네 유해가 돌아오면 네가 자주 거닐던 산책로를 함께 걸어야겠다. 늘 그랬듯이 나는 이야기하고 너는 듣기만 하겠지. 묵동천에서 부는 바람을 네가 느꼈으면 좋으련만.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서 “형아 왔다”고 외치고 싶은데... 네가 없었다면 내 삶은 얼마나 가난했을까.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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