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열린우리당의 창당에 애정의 눈길을 보냈듯이 국민참여당에도 관심이 간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제대로 된 보수정당으로 달려갈 만한 가능성이 가장 많아 보인다는 측면에서다. 내가 보수정당이라고 칭하는 것은 아마도 유럽의 정치 개념으로 분류한 것일 테다. 또렷한 진보정당들이 존재하는 한국에서 국민참여당을 진보정당으로 분류하기는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책을 지향한다고 볼 여지는 있을 듯싶다(이런 분류에 동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국민참여당이 괜찮은 보수정당으로 발돋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줄 끼적거려 본다.


2.
국민참여당은 인기가 떨어진 대통령을 내치기에 바빴던 지난 정당사에 견주어 특이한 정당이다. 과거 정부의 공과를 분석하고 창조적으로 계승하겠다는 포부는 신선하다. 이 당이 기존의 민주당 지지자들이 옮겨 올 여지가 적잖다는 점에서 야권 분열의 우려는 수긍할 만하다. 하지만 정치 냉소층의 지지도 얻고, 민주당을 울며 겨자 먹기로 지지하고 있던 개혁파 유권자들이 좀 더 즐겁게 지지할 정당으로 자리매김한다면 야권 분립이라고 봐도 좋다. 새로운 지지층을 창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민주당이 포용하지 못한 옛 열린우리당 지지층을 복원하는 것도 주요 과제다.


경기도지사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불리한 조건을 딛고 유시민 후보가 승리한 이유는 국민참여당에 대한 범야권 지지자들의 일정한 호감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민참여당의 등장이 비정한 정치판에서 모처럼 느끼는 사람 냄새라고 여기는 분들이 계시고, 민주당으로는 안 되겠다는 분들도 적잖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어지러운 탈당과 창당 놀이 끝에 탄생한 대통합민주신당을 이어받은 민주당은 의연하게 패배하지 못했다. 위기관리에 실패했던 당시의 경험 때문에 야권 통합의 기수로 민주당을 내세우기 머뭇거리게 만든다. 민주당이 좀 더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나는 이전부터 지역적 기반이 없는 신생정당이라면 자유선진당 만큼도 성과를 거두지 못할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한 정당 전체가 죽기를 각오하고 달려드는 경우는 1990년 3당 합당에 반대했던 꼬마 민주당 정도가 기억나는데 거대 여당을 눈앞에 두고 이 모험을 감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국민참여당은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과의 후보 단일화가 없이는 단독으로 승리하기 힘든 군소정당일 뿐이다. 바보 노무현의 험난한 좌절을 되풀이하는 것이 지금 이 단계에서 적절한 전략인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창당의 기치를 내걸었으니 응원하는 수밖에 없겠다.


3.
우리나라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정당일체감이 낮은 편이다. 당비 내는 당원의 비율이 낮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부 지역주의적 투표 행태는 정당일체감의 부족으로 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권자가 특정 정당의 이념과 정책에 대한 일체감이 적으니 지역일체감이 상대적으로 큰 변수로 부각되는 것이다. 정당일체감을 위해서는 돈도 들고, 각종 행사에 참석하는 시간도 내야하지만 지역일체감을 실현하려면 선거 때만 표를 찍고 오면 되니 훨씬 비용이 적게 든다는 요인도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의 차이를 능가하는 가치의 차이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 있다.


1968년 미국 독립당을 창당했던 조지 월러스는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는 1달러는커녕 25센트 정도의 차이도 없다”라고 말했다. 우리네 여당과 제1야당은 10센트의 차이를 선거 때 2달러로 불리는 재주가 대단하다. 물론 10센트의 차이를 50센트로 벌인다면 지역구도에 균열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꼭 가치의 차이를 벌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작은 차이도 내실 있게 경쟁한다면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발현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치 지도자의 인간적인 매력 역시 그 정당의 경쟁력이 된다.


국민참여당이 내세우는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은 열린우리당이나 개혁당이 시도했다가 흐지부지된 정치실험이다. 민주당과 정책 측면에서 큰 차이를 내기 힘들다 보니 조직 운영 측면으로 접근한다는 비판은 타당하다. 하지만 같은 정책이라도 정책을 실현하는 사람에 따라 효과성에 차이가 날 수 있고, 같은 정책이라도 얼마나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느냐에 따라 효율성이 달라질 수 있다(물론 민주당이 의지는 부족해도 실천할 수 있는 역량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은 인정한다). 국민참여당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민주당에게서 보이지 않는 활력이나 기운이다.


4.
전반적인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정보의 접근과 가공이 쉬워지면서 일반 유권자와 정치 전문가의 거리가 많이 좁혀졌다는 점은 국민참여당의 기회 요인이다. 정치적 영향력이 특정 소수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게 고르게 퍼지면서 국민의 생활정치 욕구는 앞으로도 더 커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주의가 심화되면서 특정 정당의 열성적 지지자가 될 만한 공통분모를 더듬기 힘들다는 점은 국민참여당의 위협 요인이다. 국민참여당은 당 지도부의 참신한 행보와 당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문호를 넓히는 것으로 이에 대응하는 듯하다.


미국식의 원내정당은 원내 의원과 정책 전문가 등이 당을 운영하는 반면, 유럽식의 대중정당은 당비를 납부하는 진성당원이 상향식 의사결정으로 당을 운영하는 것이 핵심이다. 옛 열린우리당은 원내정당과 대중정당을 동시에 추구했다. 결과적으로 당의 최후가 아름답지 못했기 때문에 두 가지를 잘못 섞어서 혼란에 빠졌다는 비판을 듣는다. 비교적 꾸준히 대중정당을 추구하는 민주노동당이 외연 확장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볼 때 국민참여당이 대중정당을 절대시하는 건 위험하다.


그렇다고 어릴 적부터 민주당 지지나 공화당 지지가 자연스럽게 나뉘는 미국의 정치 문화에서 가능한 원내정당을 우리가 전적으로 도입하기에는 저마다 지지하는 정당을 떳떳하게 밝히기 어려운 한국의 정치 문화와 맞지 않는다. 이렇게 볼 때 어떤 정당이든 대중정당과 원내정당을 절충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국민참여당은 당원에게 배타적으로 권리를 줄 사안과 지지자나 국민도 참여할 수 있는 사안을 정하는데 정성을 쏟아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참여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좀 더 섬세할 필요가 있다.


5.
지난 2008년 총선 때는 내게 주어진 두 표를 모두 진보정당에게 건넸다. 이번 지방선거 때는 적어도 비례대표 표는 국민참여당에 건넬 예정이다.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내가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니 크게 미안할 일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나는 야권 단일화의 대의를 위해 서울시장을 노회찬 후보로 단일화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다녔다. 결과적으로 전혀 그렇게 되지 않았고 야권 단일화는 생각보다 촘촘하지 못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번 선거에서 국민참여당을 비롯한 작은 야당들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래서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민주당에게도 일침을 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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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한별 2010.05.24 20:51 Address Modify/Delete Reply

    그러게..정당정치의 공고화를 해야한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어떤 정당의 당원이라는 것 자체가 살짝 숨겨야할 문제로 치부되고 별다른 자부심도 주지 못하는 현실이 참..신용카드에는 골드카드, 플래티넘카드 네 VVIP를 위한 카드네 하는 마케팅에 잘 낚이던데 당원 가입을 좀 까다롭게 해서 당원이라는 신분이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만들면 어떨까 생각도 들더라고. 한달에 만원도 안내려는 우리나라 분위기에서는 공상같은 생각이긴 해. 하지만 일당독재에다가 부패의 유혹이 매우 큰데도 불구하고 중국 공산당이 그럭저럭 지도력을 잃지 않고 복잡한 문제를 잘 해결해나가는 원동력 중의 하나가 공산당원이라는 지위 자체가 갖는 사회적인 명예의 측면을 생각하면 안타깝긴 해. 명망가정당이 아닌 진정한 대중정당을 건설해보지 못한 짧은 민주주의의 역사와 민주노동당의 뼈아픈 분열이 참 아쉽다니까.

    아무래도 지금 당장의 선거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익구 말대로 지금 상태대로라면 참여당의 유시민 후보가 더블 스코어로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을텐데 안타깝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지금의 기대가 좌절과 냉소로 바뀌어서 이명박의 당선처럼 더 부정적인 반동을 불러오지는 않을런지 걱정되고.

    • 익구 2010.06.28 05:09 Address Modify/Delete

      정당정치의 공고화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무엇이 있을까 고심하다가 보니 답글이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사실 저도 말은 저렇게 해놓고 정당 가입을 계속 망설이고 있으니까요. 어떤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한다는 것은 믿으면서도 경계해야 하는 오묘한 긴장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많이 신중해진 모양입니다. 하지만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아예 정치 관련 이슈를 대화의 소재로 삼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는 정말 문제가 있는 듯싶어요.

      일전에 <소개팅에서 지지정당 묻기>라는 잡글을 쓰기도 했지만...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오히려 정치적 편향으로 귀결되고, 비정치적인 것에 대한 압력이 오히려 더욱 정치적인 선택을 낳는 것은 아닐까 늘 생각합니다. 노정태님 같은 분은 “오바마니아는 다 민주당원인데, 노사모는 개혁당원 혹은 민주당원이 아닌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시며, 거기서부터 “본격적인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곱씹을 점이 많았습니다.

      이따금 치러지는 선거에서 한 표야 어쩌다가 찍어줄 수 있겠지만, 매달 제 지갑을 여는 행동은 정말 결단(!)이 필요한 일이니 긴 호흡이 필요하겠지요. 이 결단을 쉽게 내릴 수 있도록 현재의 거대 정당들이 ‘내 돈 건네고 싶은 정당’으로 탈바꿈하기란 난망일 테니 말입니다. 여하간 저는 한국의 정치문화가 정치적 기본권을 상당히 제약하는 쪽으로 형성되어 있다고 봅니다. 2학기 때 배울 기본권론 수업에서 이 고민을 풀 실마리를 좀 얻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