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급보가 전해져왔다. 탄핵 타이틀 매치에 이은 무규칙 이종 국가보안법 타이틀 매치 현장을 생중계 한다)

국가보안법 폐지안이 상정되자 한나라당 의원들 전원은 의장단상 등을 점거하고 72시간 철야농성에 돌입한다.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기습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며 121명이라는 숫자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저기 담요를 깔고 널브러져 평소 하던 데로 화투판을 벌이며 지난날의 영화를 추억하고 있다.


아침 11시경 어디선가 “어 들어온다”라고 외쳐온다.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새천년민주당 연합 170명의 의원들이 나란히 줄 서서 들어온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기겁을 하며 스크럼을 짜며 결사항전의 의지를 불태운다. 하지만 김원기 의장은 경호권을 발동하여 양복을 잘 차려입은 건장한 아저씨들이 스크럼의 일각을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들이 버티고 있는 한나라당의 스크럼을 뚫기는 역부족이다. 결국 우리-민노-민주 연합 의원들이 합세하여 하나씩 하나씩 끌어내기 시작한다.


김덕룡 의원이 끌려나가면서 “천정배 어딨어! 천정배! 이게 무슨 짓이야!” 버럭 외치지만 난장 통에 묻혀 버렸다. 정형근 의원은 안기부장 시절 갖은 고문을 지시하던 왕년의 실력을 발휘하며 경호원 몇 명은 가볍게 제압했으나 결국 중과부적으로 끌려나간다. 정 의원은 분을 삭히지 못하며 남산 시절이 그립다며 그 때 너희들을 다 처리했어야 했다며 악다구니를 놀렸다. 전여옥 의원은 의장 단상 아래로 끌려 나오자 갑자기 디카폰을 꺼내들고 “내 몸에 손대면 내 신간 ‘국가보안법 폐지는 없다’에 적힐 줄 알아!”라며 되먹지도 않은 헛소리를 지껄인다.


막강한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송영선 의원은 의외로 몸싸움에 참가하지 않고 기자들을 향해 “설령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더라도 이라크 파병은 연장해야 한다”며 대략 알 수 없는 파병 주문만 외우고 있다. 보다 못한 김영선 의원은 “아니 아줌마 파병은 좀 있다 말하고 일단 이것부터 막아!”라고 볼멘 소리를 내뱉는다. 바로 옆의 김용갑 의원은 무언가 뜨끔한 것이라도 있는지 군대 면제받은 두 아들에게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1인 시위용 피켓 제작을 주문하고, 얼른 피켓을 장렬히 휘두르며 싸움판에 뛰어든다.


의장 단상 주위로 밀고 밀리는 싸움이 계속되자 가운데 꼭 껴있던 남경필 의원은 너무 꽉 조이는지 “국민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빠져나갈 구멍을 궁리하고 있다. 그러다가 결국 경위 네 명에게 팔, 다리 하나씩 잡혀 들려 가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 마찬가지로 함께 끌려나온 원희룡 의원은 담요로 몸을 감싸고 “이건 아니냐~ 이건 아니야~”를 읊조리면서 “아무리 국가보안법이 미워도 이건 아닙니다. 이건 아니에요.”라며 눈물을 글썽인다.


체격이 좋은 박진 의원의 박치기 공격을 강기갑 의원이 고무신으로 격파하자 박진 의원의 그 기름진 얼굴에 한줄기 코피가 흐른다. 분노한 박진 의원이 애꿎은 임채정 의원의 사타구니를 가격한다. 비슷한 체급의 문희상 의원이 사투 끝에 박진 의원을 KO 시킨다. 백전노장 이규택 의원이 이건 빨갱이 짓이라며 탄핵감이라며 외치지만 단병호, 노회찬 의원의 좌우 공격에 끝내 끌려나가 버린다. 유인태 의원과 장영달 의원이 아직도 저항하는 한나라당 의원을 차례차례 끌어내고 있다.


한참이 지나고 김원기 의장이 의장석 옆까지 진출하자, 사태가 절망적임을 알고 소극적 공격으로 일관하던 김문수, 이재오 의원이 막판 공력을 쏟아 저항한다. 이미 양심의 가책일랑 상실한 이들에게는 지난날의 기억들은 아무 상관이 없는 듯 했다. 결국 이들의 장렬한 산화를 끝으로 어수선한 장내가 정리되고 있다. 박근혜 의원은 상심한 표정으로 한 손을 치켜들고 “국민 여러분 도와주십시오!”를 외치며 뜨거운 눈물을 훔친다.


이 때 탈옥한 이인제 의원을 필두로 한 자민련 특공대가 투입되어 안팎의 협공을 노렸으나 이미 중과부적이었다. 또한 정형근, 김용갑 의원이 다시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했으나 170명의 스크럼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경위들에 의해 질질 끌려나가고 만다. 끝까지 선전하던 전여옥 의원이 마이크를 낚아채서 갖은 독설을 품어내려는 찰나에 유시민 의원이 마이크를 장악해서 빼았고, 전 의원과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 본회의장 밖까지 모셔다 드린다. 오열하는 한나라당과 자민련 의원들을 뒤로하고 의장석에 오른 김원기 의장은 의사봉을 잡고 말문을 연다.

“의장으로서 이런 말 안하려고 했지만 다 자업자득입니다. 왜 이런 일을 만듭니까?”

이어서 이어지는 김 의장의 발언...

“국가보안법 폐지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합니다.”

3분 동안 열나게 표결 진행...

“가 ***표, 부 *표로 국가보안법 폐지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박근혜 대표와 일부 의원들이 명패와 서류뭉치를 던지며 항의를 표시하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되었다. 우리-민노-민주 연합 의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본회의장에 한나라당-자민련 의원들은 망연자실하여 대성통곡을 한다. 꿇어앉아 애국가를 합창하고 있으나 개중에는 ‘키미가요’나 ‘Spangled Banner’를 부르는 경우도 눈에 띈다. 박근혜 대표는 다음 안건을 준비해야 한다며 밥이나 먹으러 가자며 다독인다. 오후에는 김희선, 김원웅 의원 등이 발의한 친일진상규명특별법 처리가 진행될 예정이다.


후기1.
다음날 한나라당 CF는 영화 Mission의 Gabriel's Oboe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다음과 같은 멘트가 이어진다. “국민여러분 죄송합니다. 우리가 힘이 모자라 국가보안법 폐지를 막지 못했습니다. 9월 **일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재/보궐선거 때는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후기2.
전여옥 의원이 “극우파여, 테러리스트가 돼라” 발간하다. 극우파들의 자아해방을 당당하게 선언하는 사회비평 에세이다. 극우파들이 진정으로 극우파답게 살기 위해서는 친북좌파 중심의 사회를 타파해야 한다는 내용과 극우파가 가져야 할 행동가짐과 마음자세를 글로 엮었다. 책 제목은 극우파들이 최근 잃어버리고 있는 기득권을 되찾을 때까지 ‘테러리스트’가 되어 친북좌파의 낡은 사고방식을 뜯어고치라는 의미에서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후기3.
독립신문 신혜식 대표를 필두로 자유총연맹과 재향군인회 등의 단체에서 잇따른 분신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권영길 의원이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 살림살이가 나아졌습니다”라는 요지의 성명서를 발표하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픽션입니다. 한나라당 의원님들 너무 마음 상해하지 마시길... 당신네들은 지난 3월에 실제로 3.12 의회 쿠데타라는 걸출한 논픽션을 선보이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단지 상상에 불과하지만 당신네들의 막무가내 삽질이 계속된다면 현실이 될지 누가 압니까? 끝으로 이 글의 영감을 제공해주시고 각색을 허용해주신 mannerist 선배님께 고마움을 표합니다.^^)

mannerist 선배님의 원문 보기 - a fantasy(이걸 꾸욱~)

무규칙 이종 탄핵 타이틀 매치 - 딴지일보 기사(이걸 꾸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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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새우범생 2004.09.30 03:08 Address Modify/Delete Reply

    평소 즐겨 찾는 칼럼사이트 서프라이즈(www.seoprise.com)에도 이 글을 올렸는데 놀랍게도 대문 화면(메인 페이지)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