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픈 잡담들...

잡록 2003. 7. 15. 21:06 |

<2000/11/10 쓴 글>

1.
[은행나무]

흔들린다.
떨어진다.
무심하게도.
으스러지고 나부끼는 너희들.

쓴 미소도 과분한.
차마 떨구어 내지 못하는 너희들.
내 마지막 작은 집착.

다가올 겨울의 추위보다
지난날 얘기들이 더욱 야위게.

눈물 몇 방울쯤 애써 외면할 뿐.


가을은 떠나는 계절이라고들 한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과연 나는 내게서 무엇을 떠나 보내야 할까? 한자로 '시름 수'자를 愁로 쓴다. '가을 추' 秋에 '마음 심' 心자가 합쳐진 꼴이다. 옛사람들도 가을의 마음은 시름뿐이었나... 괜스레 웃어본다. 시름을 달래고자 거닐어 본다.


2.
라이프니츠는 신이 이 세상을 가능한 모든 세계 가운데서도 가장 훌륭한 것으로 창조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도 넘쳐나는 악은 무엇이란 말인가? 라이프니츠는 이렇게 반론한다. 그러한 악이 있기에 세상은 선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만일 악이 없다면 선한 것은 결코 선한 것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만일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을 위해 있는 것이며, 불완전한 것은 완전한 것을 위해 있는 것이다. 비록 부분적인 악이 있다 할지라도 전체 속에서는 선한 것이며 무한한 신의 눈에는 결코 악이란 있을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한다. 이런 그의 견해를 '철학적 낙천주의'라고 한다. 그런데 어이할까. 그런 그도 말년에 실각하여 분루를 삼키며 고독한 나날을 보내지 않았던가. 화려한 지위에 있었던 라이프니츠도 정치적 몰락과 함께 그의 장례는 아무런 격식도 없이 초라하게 치러졌다고 한다. 하지만 감히 이런 그에게 조소나 던질 수 있겠는가? 그의 오른쪽 다리의 혈액순환에 이상이 생긴 이유가 아마도 며칠이고 의자에서 떠나지 않을 때도 있을 만큼 공부를 계속한데 있지 않을까라고 전기 작가가 말한 그의 삶을 보며 나는 그의 사상에 감히 피식 웃어나 보일 수 있겠는가?


3.
제행무상(諸行無常)... 나는 어쩌면 허무주의자의 기질이 은연중에 많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공허감이 부족감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은 물질적, 직업적, 지적, 기술적, 사회적 부족감이 아니라 궁극적 '가치'에 대한 부족감. '의미' 부재에 대한 의식이다." - 박이문

공허감을 느낄 수 있는 여백의 마음이 절실하다. 왜 사는가? 삶이란 무엇인가? 이런 물음은 이제 접어두련다. 삶의 의미란 논술문을 작성할 것이 못된다. 개념으로 기술할 수 있는 명제가 아니다. 아마도 삶의 의미란건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어째서 삶을 준비하는 데만 열심일까? 우리의 삶의 의미는 '여기'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만 있거늘... 훗날의 모습만 그리는데 삶의 보람을 써버리는 건 낭비이다.


4.
델리에 있는 간디의 동상에는 이런 글귀가 써있다. "간디는 진리를 믿고, 진리만을 생각하며, 진리대로 살았다." 아는 것, 믿는 것, 행하는 것을 서로 조화시키는 것... 어려운 일이다. 아는 바를 믿는 것은 쉽다. 그러나 행하는 것은 어렵다. 알면서도, 그렇게 믿으면서도 행함에 있어서 망설여짐은 비단 나만의 아픔은 아닐 것이다. "생각과 지식이 조화를 이룬 것을 '지혜(智慧)'라고 한다."고 나온 중학교 도덕책의 구절을 보며 지혜를 사랑하는 이내 마음은 달랠 길 없이 처량하다.


5.
이런 선문답이 있다.
"도란 무엇입니까?"
"평상심(平常心) 이니라."


남의 이야기, 물질적 욕심, 밖의 변화... 이런 것들은 좇다보면 마음은 흔들리게 마련이다. 세사에 마음을 빼앗기고 놀라고 화내고 미워하고... 부질없이 요원함만 한탄한다. 고독 때문에 괴롭다고 한다. 모든 이에게 나름대로 숨겨져 있는 고독을 보자. 고독 위에 사랑을 심자. 그런데 자꾸 나는 고독을 나의 채찍으로 삼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건 왜일까?


6.
[대나무를 심는 까닭]


식탁에 고기는 없을 수도 있겠으나
사는 집에 대나무가 없어서는 아니 될 일
고기 없으면 사람이 마르지만
대나무 없으면 사람이 속물 되기 마련
사람이 마르면 살찌울 수 있으나
선비가 속되면 고칠 수가 없다네
사람들은 이 말을 비웃어
고상한 듯하지만 역시 어리석다 말하네
대나무 옆에 두고 음식을 배불리 먹겠다 한다면
이 세상 그 어디에 그런 욕심 다 채울 사람 있으랴!

可使食無肉 不可使居無竹 無肉令人瘦 無竹令人俗
人瘦尙可肥 士俗不可醫 旁人笑此言 似高還是癡
若對此君仍大爵 世間那有揚州鶴

'기예론'에서 구박받던 소식의 시이다. 사람은 구박해도 시는 미워하지 말라인가... (이런... 위의 내 시랑 너무 비교돼잖아...T.T) 삶이란 추구의 연속이다. '나는 이걸 할래.' '이게 좋겠어.'... 이런 끊임없는 추구와 선택이 다양하게 전개된다. 내 삶의 방식이란 무엇일까? 고기와 대나무... 아마 교묘히 타협하자고 그럴테지...


어여 떠나보낼건 떠나보내고 기쁜 마음으로 겨울을 맞이해보자. 6(^.^)9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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