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께 보낸 편지의 일부...
에구 조만간 편지 한 통 써서 보내야겠다.)

이번 편지에서는 지난주부터 다니고 있는 운전학원에 대해서 이야기 할까합니다.
차안에서 핸들 이리저리 돌리고 정지했다가 기어바꾸고...
이렇게 정신 없는 찰나에도 섬광같이 스쳐가는 깨달음이 있더군요.
첫날 운전할 때 도로 가에 있는 돌 위에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그걸 연석이라고 하던가... 잘 모르겠네요...^^;)
둘째 날에는 한군데서 대여섯번 연속으로 시동이 꺼져서
제 뒤에 차들이 줄을 좌르르 서게 만들기도 했답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굴절, 곡선, 방향전환 코스를 배웠습니다.
다섯 개 관문 중에 세 개를 배운 셈이죠.
이제 시동도 거의 안 꺼지고 중앙선 침범도 안 하는 경지에 다다랐습니다.
아직 급정거를 한다고 구박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학원에서는 월요일마다 새로운 반이 개강합니다.
월요일날 새로 운전을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운전연습을 했는데
정말 만감이 교차하더라구요...^^;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는 말도 있는데...
일주일 전 저처럼 헤매고, 지그재그로 달리는 차들을 보고
한번쯤 비웃어 줄만도 한데... 왜 저러랴고 생각해 볼만도 한데...
좀체 그게 안되더라고요...^^;
그보다는 저의 초반 쩔쩔맴이 오버랩 되면서...
동병상련만 물씬 풍겨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동감한다는 것, 공감한다는 것...
실로 가슴 뛰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랑 처지가 같거나 나와 같은 생각, 나와 비슷한 감정을 가진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그 든든함을 느낀다는 것은
분명 고독이 모르는 재미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제 바로 앞에서 길옆의 돌 위로 올라가는 차를 보면서
그때의 당혹감을 공감할 수 있기에...
함부로 웃어 제끼거나 할 수 없는 것이더라고요...^^

티비에서 두 번인가 본 ‘동감’이라는 영화도 재미났지만...
동감 혹은 공감은 힘은 엄청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시대와 장소를 넘어서 무언가 공유할 수 있다는 것.
각박한 세상 살아가는데 무척 요긴한 녀석인 것 같습니다.

게임 한판을 치열하게 하고 난 희열을 동감하는 사람들이 있고
같은 책을 읽고 함께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들 수도 있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초면도 오래된 친구처럼 반갑고
같은 어려움에 빠져있는 이가 있다면 꼭 오바해서 돕고 싶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같은 곳을 향하고 있는 발걸음이 있고...

생각만 해도 흥겨운 이런 일들이 부러워서
제가 “진솔한 대중성”에 그렇게 목매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체 고독과도 친숙하게 지내는 저라고는 하지만...
본디 남의 떡이 커보이는 법이라지 않습니까...^^

물론 이 공감이라는 녀석이 지나쳐서 엉뚱한 데로 흘러서는 안되겠습니다.
지연이니 학연이니... 뭐 각종 연줄이니 하는 것들...
크게 보면 공감 혹은 동감에서 싹이 트는 것이겠지요.
이런 것들은 철저히 경계할 일입니다.

천하의 ‘기계치’인 제가 운전을 배우다보니...
별의별 생각이 드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삼수해서 그들의 서글픔에 공감하는 것은 사양하고 싶은데 말입니다.^^;

방학 때 별로 한 게 없다보니 이것 밖에 드릴 말씀이 없군요.
몇몇 친구들을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잘도 다니던데...
저는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만...
예전에는 그런 제가 엄청 못나 보이고 모자라 보였는데...
짧은 성격심리학을 빌리면... 내향적인 사람은
밖에다가 에너지를 쓰면 금세 지쳐버린다고 하는 내용이 있더군요.
그 어느 천군만마가 저의 게으름을 이처럼 합리화시켜 줄 수 있을는지...^^; <2002년 8월 6일>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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