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도 군대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사회 2003. 9. 14. 04:30 |03학번 커뮤니티에 갔다가 꽤 흥미있는 펀글을 발견했다.
글의 내용은 독일, 프랑스, 대만, 말레이시아, 스웨덴, 이스라엘 등의 나라들에서 병역의 의무를 남녀가 공동으로 지려는 여러 가지 노력들을 하고 있는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소개된 대한민국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세계유일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은 1999년
2년 동안 월평균 15,000원 받으며 제대한 군필자들의 공무원
시험 가산점을 폐지시킴
그냥 단순히 정보제공의 글로써 신선하게 받아들이고 넘어가면 된 이 펀글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후배님의 멘트 때문이다.
남자들아
그저 개처럼 끌려가기 전에 좀 분노해보기라도 하자.
물론 분노의 대상은 '여성부와 일부 몰지각한 페미니스트들'이다.
남학생들의 징병에 같이 가슴 아파 해주는 여학생들
정말 진심으로 고맙다.
물론 이런 이야기 한 두 번 들은 것도 아니고... 일면 수긍할 수 있는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타깃 설정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정말 분노해야할 대상은 아직도 군대문화를 이렇게 저급하게 만들고, 사병의 대우를 형편없이 꾸려나간 군 당국과 정부, 그리고 걸핏하면 안보라는 이름으로 공갈협박하는 남북한의 군국주의자들... 이들이 한국의 군대를 인간답지 못한 곳으로 만드는 주범이다. 우리의 진짜 적은 여성부와 일부 몰지각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구질구질한 남자 권력자들이다. 그런데 이런 남자 권력자들에게 욕하기는 참 어렵다. 이들에게 권력의 콩고물이라도 얻으려면 열심히 비벼대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만... 일부 페미니스트들이야 그런 것도 없고 흠씬 두들겨도 크게 두려운 점도 없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을 응징하면 당장에 속은 시원할지 모른다. 그러나 절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응징하는 당사자들이 더 잘 알지 않을까.
양성평등 논의가 여기저기서 진행되면서 “그럼 여자도 군대 가라”라는 울먹이는 외침도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점점 많은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고 있으니 병역의무에 있어서도 여성을 배제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병역의무를 수행해서 남성의 복무기간이 획기적으로 줄 수 있다면 남자들의 울분을 달래기도 그만이다. 그리고 여자 입장에서도 만날 남자들이 군대가지고 우월적 지위 차지하려는 것이 눈꼴 시려워서라도 병역의 의무를 지려고 하는 것이 양성평등의 지름길이라고도 생각해봤다. 그러나 이 생각은 당장에 실현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가까운 시일에 여성들이 “나 군대 갈래요~”라고 외치는 광경이 잘 상상이 안되기 때문이다.
차라리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은 우리 사회에 팽배한 남자답기, 여자답기를 강조하는 사회문화를 걷어내는 것이다. 한국사회를 떠다니는 군대에서 재생산되는 전체주의적이고 폭압적인 문화를 막는 것은 양성평등한 사회를 구축해야 한다. 이게 무슨 군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겠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한국 군대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마뜩지 않게 여기는 곳이다. 여기서 허비한 시간과 더러운 기억을 여성들과 공유(?)해서 그 상대적 박탈감을 줄여보자는 주장보다는, 양성평등한 문화적 토대를 건설해서 군대가 소위 ‘남자’ 만드는 곳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게 하고, 군사주의의 힘을 빼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해법이다. (물론 지낼만한 군대를 만드는 노력까지 병행해서 말이다)
혹자들은 그래도 한국은 남자들의 세상이고, 남자는 기득권자들인데 무슨 앙탈을 부리는지 모르겠다며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이들의 지적을 경청하지만 조금은 항변하고 싶다. 권력의 달콤함을 누리는 사람이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들은 극히 소수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대부분의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고만고만하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일단 한국 군대가 그리 인간답게 살만한 곳이 못된다고 판단되면, 보통 남자들이 그 곳을 가고 싶어할 이유가 거의 없다. 혹시 군대 갔다온 남자들은 확실히 여자들이 떠받들어주겠다는 계약이라도 해주겠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계약이 가장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남자는 군대가 ‘의무가 아니고’, 여자는 계약이 ‘의무가 되어야’ 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계약의 우스꽝스러움이 드러난다.)
물론 보통 남자, 보통 여자를 같은 범주로 묶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시점에서 보통 남자들이 ‘그래도’ 보통 여자들보다 쥐꼬리만한 권력이라도 더 누리고 있는 것이 사실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내 책임을 느낀다. 꼭 이 책임감 때문은 아니지만, 내게 남성으로서의 기득권이 있다면 그런 것들을 내어줄 용의가 있다. 또한 여성의 기회균등과 권익향상에 그 누구보다 찬성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여성의 책임과 의무감을 매섭게 강조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매섭게 다그칠 여성보다는, 그저 순한 양처럼 그럭저럭 살려는 여성들이 훨씬 많아 보인다는 것이 영 씁쓸하다. 정작 아쉬워 해야할 사람이 누구인데...^^; 물론 당연히 개개인의 자유를 인정하지만...
잠깐 이야기가 새지만, 언젠가 기억이 정확치는 않지만, 대략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느 해에 의대 신입생 중에 여성의 비율이 높았던 때가 있었는데, 남자 선배들이 남자 후배들에게 부러운 눈으로 던진 한마디... “짜식들~ 니들은 좋겠다”... 이유인즉슨, 그 바닥에서 결국 윗대가리들은 남자들 차지이다보니, 여자들의 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잠재적 경쟁자들이 줄었다는 청신호가 아니고 무엇이겠냐는 것이다. 그냥 웃고 넘겼지만 여자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열 받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똑같은 노력을 해서는 남자의 뒤에 설 수밖에 없는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현실이 보통 남자들이 그나마 가지고 있는 쥐꼬리만한 권력의 실체다. (쥐꼬리만한 권력이라고 비유했지만, 사실 이렇게 거대한 쥐꼬리도 없다^^;) 이것마저 내어놓는 대신 남자로서의 굴레들도 벗어 던져야 한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사실 내가 양성평등을 입에 달고 있는 것은 여성의 권익을 존중해서가 아니라, 내 멋대로 살고픈 참을 수 없는 자유주의적 열망 때문이다. 결국 남을 도우려는 것이 아닌, 내가 편하고 싶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구의 발로이다. 그러나 꼭 농도 짙은 이타심이 아니더라도, 적당한 정도의 이기심도 괜찮게 발현되면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된다. (물론 그 분야는 개인적인 관심에 국한된다는 한계도 있을 수 있지만 말이다) 남자다운 남자, 여자다운 여자라는 거짓된 이데아가 지배하는 세상의 숨막힘이 정말 싫다. 남자다운 남자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여자다운 여자가 있어야할 뿐만 아니라, 샌님, 기집애 같은 놈, 성적 소수자 등도 존재해야하는 폭압적 구조 하에서 나는 남는 장사를 벌이지 못할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남자다운 ‘척’하는 비용을 다른 곳에 투자하고 싶은데, 투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의 불편함이 양성평등을 외치는 근본적 이유다.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은 “거봐~ 군대가고 싶지 않지? 남자들이 군대 갔다 올 테니 니들은 제발 그 입 다물라~”를 돌려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말 열 마디 하느니, 남자 권력자들에게 한 마디라도 비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리고 여자도 군대 가라고 윽박질러봤자 그렇게 기를 꺾고 싶어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이렇게 외칠 것이다. “누가 너희들보고 우리 지켜달랬니 제발 전쟁질이나 하지마.” (진중권의 표현을 따왔다^^) 제 쥐꼬리만한 권력을 내놓을 생각은 없으면서, 남자들이 일방적으로 만들어놓은 싸움판에는 평등하게 참여하라고 외치는 것은 아닐지 돌아볼 일이다. 물론 군대 갔다오면 사람된다고들 하니, 이렇게 좋은 것을 여성들에게도 진심으로 권유할 생각이라면 그리 반대할 생각도 없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아니면서 물귀신 전략을 쓰려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피눈물나는 남자들의 군대생활을 여자들은 이해 못한다고 아우성이지만, 우리네 군대가 쓸데없이 피눈물을 자아내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것부터 고칠 일이다. 그런데 이건 참 힘든 일이고, 여자들을 닦달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그러나 조금 힘든 이 길이 결국 지름길이며, 옳은 길이라고 확신한다. 남자들이 2년 간 머리가 녹슬 것을 걱정할 때, 여자들은 평생동안 자기 학업과 직장을 포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는 것을 외면할 수 없다면,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도 분수가 있다면... 그 최소한의 분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일부 몰지각한 페미니스트들의 나를 불편하게 하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6(^.^)9
여성단체가 "군의 사기를 꺾기 위해 북한이 지원하는 이적단체"이며 위헌소송을 제기한 여대생들이 "빨갱이"라니, 하루라도 빨리 여자도 군대에 가자고 주장해 페미니스트들이 "빨갱이"가 아님을 증명해야할 것이 아닌가? 단, 조건이 있다. 징병제든 지원병제든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국방에 기여하게 한다면 여자를 남자보다 열등하게 취급하는 호주제는 즉각 폐지돼야 한다. 또 출산까지 담당해 국가에 더 많은 기여를 하는 여성들의 "사기"를 위해 국회의석의 최소 50%는 여성 몫으로 할당해야할 것이며 맞벌이 부부의 가사와 육아 분담의무를 법제화해야 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러지 않아도 되겠다. 군생활을 통해 "진짜 가시내"로 단련된 여성들이 그 정도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멀리 있는 법까지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 김신명숙, [여자도 군대 가라고?] 中
글의 내용은 독일, 프랑스, 대만, 말레이시아, 스웨덴, 이스라엘 등의 나라들에서 병역의 의무를 남녀가 공동으로 지려는 여러 가지 노력들을 하고 있는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소개된 대한민국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세계유일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은 1999년
2년 동안 월평균 15,000원 받으며 제대한 군필자들의 공무원
시험 가산점을 폐지시킴
그냥 단순히 정보제공의 글로써 신선하게 받아들이고 넘어가면 된 이 펀글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후배님의 멘트 때문이다.
남자들아
그저 개처럼 끌려가기 전에 좀 분노해보기라도 하자.
물론 분노의 대상은 '여성부와 일부 몰지각한 페미니스트들'이다.
남학생들의 징병에 같이 가슴 아파 해주는 여학생들
정말 진심으로 고맙다.
물론 이런 이야기 한 두 번 들은 것도 아니고... 일면 수긍할 수 있는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타깃 설정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정말 분노해야할 대상은 아직도 군대문화를 이렇게 저급하게 만들고, 사병의 대우를 형편없이 꾸려나간 군 당국과 정부, 그리고 걸핏하면 안보라는 이름으로 공갈협박하는 남북한의 군국주의자들... 이들이 한국의 군대를 인간답지 못한 곳으로 만드는 주범이다. 우리의 진짜 적은 여성부와 일부 몰지각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구질구질한 남자 권력자들이다. 그런데 이런 남자 권력자들에게 욕하기는 참 어렵다. 이들에게 권력의 콩고물이라도 얻으려면 열심히 비벼대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만... 일부 페미니스트들이야 그런 것도 없고 흠씬 두들겨도 크게 두려운 점도 없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을 응징하면 당장에 속은 시원할지 모른다. 그러나 절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응징하는 당사자들이 더 잘 알지 않을까.
양성평등 논의가 여기저기서 진행되면서 “그럼 여자도 군대 가라”라는 울먹이는 외침도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점점 많은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고 있으니 병역의무에 있어서도 여성을 배제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병역의무를 수행해서 남성의 복무기간이 획기적으로 줄 수 있다면 남자들의 울분을 달래기도 그만이다. 그리고 여자 입장에서도 만날 남자들이 군대가지고 우월적 지위 차지하려는 것이 눈꼴 시려워서라도 병역의 의무를 지려고 하는 것이 양성평등의 지름길이라고도 생각해봤다. 그러나 이 생각은 당장에 실현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가까운 시일에 여성들이 “나 군대 갈래요~”라고 외치는 광경이 잘 상상이 안되기 때문이다.
차라리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은 우리 사회에 팽배한 남자답기, 여자답기를 강조하는 사회문화를 걷어내는 것이다. 한국사회를 떠다니는 군대에서 재생산되는 전체주의적이고 폭압적인 문화를 막는 것은 양성평등한 사회를 구축해야 한다. 이게 무슨 군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겠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한국 군대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마뜩지 않게 여기는 곳이다. 여기서 허비한 시간과 더러운 기억을 여성들과 공유(?)해서 그 상대적 박탈감을 줄여보자는 주장보다는, 양성평등한 문화적 토대를 건설해서 군대가 소위 ‘남자’ 만드는 곳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게 하고, 군사주의의 힘을 빼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해법이다. (물론 지낼만한 군대를 만드는 노력까지 병행해서 말이다)
혹자들은 그래도 한국은 남자들의 세상이고, 남자는 기득권자들인데 무슨 앙탈을 부리는지 모르겠다며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이들의 지적을 경청하지만 조금은 항변하고 싶다. 권력의 달콤함을 누리는 사람이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들은 극히 소수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대부분의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고만고만하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일단 한국 군대가 그리 인간답게 살만한 곳이 못된다고 판단되면, 보통 남자들이 그 곳을 가고 싶어할 이유가 거의 없다. 혹시 군대 갔다온 남자들은 확실히 여자들이 떠받들어주겠다는 계약이라도 해주겠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계약이 가장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남자는 군대가 ‘의무가 아니고’, 여자는 계약이 ‘의무가 되어야’ 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계약의 우스꽝스러움이 드러난다.)
물론 보통 남자, 보통 여자를 같은 범주로 묶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시점에서 보통 남자들이 ‘그래도’ 보통 여자들보다 쥐꼬리만한 권력이라도 더 누리고 있는 것이 사실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내 책임을 느낀다. 꼭 이 책임감 때문은 아니지만, 내게 남성으로서의 기득권이 있다면 그런 것들을 내어줄 용의가 있다. 또한 여성의 기회균등과 권익향상에 그 누구보다 찬성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여성의 책임과 의무감을 매섭게 강조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매섭게 다그칠 여성보다는, 그저 순한 양처럼 그럭저럭 살려는 여성들이 훨씬 많아 보인다는 것이 영 씁쓸하다. 정작 아쉬워 해야할 사람이 누구인데...^^; 물론 당연히 개개인의 자유를 인정하지만...
잠깐 이야기가 새지만, 언젠가 기억이 정확치는 않지만, 대략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느 해에 의대 신입생 중에 여성의 비율이 높았던 때가 있었는데, 남자 선배들이 남자 후배들에게 부러운 눈으로 던진 한마디... “짜식들~ 니들은 좋겠다”... 이유인즉슨, 그 바닥에서 결국 윗대가리들은 남자들 차지이다보니, 여자들의 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잠재적 경쟁자들이 줄었다는 청신호가 아니고 무엇이겠냐는 것이다. 그냥 웃고 넘겼지만 여자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열 받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똑같은 노력을 해서는 남자의 뒤에 설 수밖에 없는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현실이 보통 남자들이 그나마 가지고 있는 쥐꼬리만한 권력의 실체다. (쥐꼬리만한 권력이라고 비유했지만, 사실 이렇게 거대한 쥐꼬리도 없다^^;) 이것마저 내어놓는 대신 남자로서의 굴레들도 벗어 던져야 한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사실 내가 양성평등을 입에 달고 있는 것은 여성의 권익을 존중해서가 아니라, 내 멋대로 살고픈 참을 수 없는 자유주의적 열망 때문이다. 결국 남을 도우려는 것이 아닌, 내가 편하고 싶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구의 발로이다. 그러나 꼭 농도 짙은 이타심이 아니더라도, 적당한 정도의 이기심도 괜찮게 발현되면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된다. (물론 그 분야는 개인적인 관심에 국한된다는 한계도 있을 수 있지만 말이다) 남자다운 남자, 여자다운 여자라는 거짓된 이데아가 지배하는 세상의 숨막힘이 정말 싫다. 남자다운 남자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여자다운 여자가 있어야할 뿐만 아니라, 샌님, 기집애 같은 놈, 성적 소수자 등도 존재해야하는 폭압적 구조 하에서 나는 남는 장사를 벌이지 못할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남자다운 ‘척’하는 비용을 다른 곳에 투자하고 싶은데, 투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의 불편함이 양성평등을 외치는 근본적 이유다.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은 “거봐~ 군대가고 싶지 않지? 남자들이 군대 갔다 올 테니 니들은 제발 그 입 다물라~”를 돌려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말 열 마디 하느니, 남자 권력자들에게 한 마디라도 비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리고 여자도 군대 가라고 윽박질러봤자 그렇게 기를 꺾고 싶어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이렇게 외칠 것이다. “누가 너희들보고 우리 지켜달랬니 제발 전쟁질이나 하지마.” (진중권의 표현을 따왔다^^) 제 쥐꼬리만한 권력을 내놓을 생각은 없으면서, 남자들이 일방적으로 만들어놓은 싸움판에는 평등하게 참여하라고 외치는 것은 아닐지 돌아볼 일이다. 물론 군대 갔다오면 사람된다고들 하니, 이렇게 좋은 것을 여성들에게도 진심으로 권유할 생각이라면 그리 반대할 생각도 없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아니면서 물귀신 전략을 쓰려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피눈물나는 남자들의 군대생활을 여자들은 이해 못한다고 아우성이지만, 우리네 군대가 쓸데없이 피눈물을 자아내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것부터 고칠 일이다. 그런데 이건 참 힘든 일이고, 여자들을 닦달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그러나 조금 힘든 이 길이 결국 지름길이며, 옳은 길이라고 확신한다. 남자들이 2년 간 머리가 녹슬 것을 걱정할 때, 여자들은 평생동안 자기 학업과 직장을 포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는 것을 외면할 수 없다면,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도 분수가 있다면... 그 최소한의 분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일부 몰지각한 페미니스트들의 나를 불편하게 하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6(^.^)9
여성단체가 "군의 사기를 꺾기 위해 북한이 지원하는 이적단체"이며 위헌소송을 제기한 여대생들이 "빨갱이"라니, 하루라도 빨리 여자도 군대에 가자고 주장해 페미니스트들이 "빨갱이"가 아님을 증명해야할 것이 아닌가? 단, 조건이 있다. 징병제든 지원병제든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국방에 기여하게 한다면 여자를 남자보다 열등하게 취급하는 호주제는 즉각 폐지돼야 한다. 또 출산까지 담당해 국가에 더 많은 기여를 하는 여성들의 "사기"를 위해 국회의석의 최소 50%는 여성 몫으로 할당해야할 것이며 맞벌이 부부의 가사와 육아 분담의무를 법제화해야 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러지 않아도 되겠다. 군생활을 통해 "진짜 가시내"로 단련된 여성들이 그 정도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멀리 있는 법까지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 김신명숙, [여자도 군대 가라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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