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이 있다고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만약 신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주위의 수많은 종교인들이 너무 황당할 것 같다는 배려 차원에서라도 신의 존재를 크게 부정하는 무신론자는 아닌 셈이다. 솔직히 말하면 종교란 인간의 행복 추구 욕구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신이란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철학자 포이어바흐의 견해를 지지하고 있다. 특히나 공익실현보다는 사익추구에 더 열심인 경향이 있는 우리나라의 종교를 보면 더더욱 그런 의구심을 지우기 힘들다.


지난 아테네 올림픽에서 경기 중에 기도를 하거나 메달 수상 소감에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대한올림픽위원회와 대한체육회 홈페이지에는 찬반 논란이 벌어지기도 하고 [법보신문]에 기사화 되기도 했다. 비단 올림픽뿐만이 아니라 각종 시상식에서도 오로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열혈 개신교도들은 차고 넘쳤다. 연말이라고 시상식을 할라치면 그 놈의 하나님 찬양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야 한다.


2003년 MBC 가요 대상을 수상했던 이수영이 눈물을 펑펑 쏟으며 내뱉은 딱 한 마디가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였다. 이걸 보는 개신교도들이야 함께 감동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토할 뻔했다. 기왕 한 마디만 할 거였다면 자신을 아낌없이 성원해준 팬들에게 따스한 감사를 표하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그간 힘든 가수생활 뒷바라지 해주느라 고생했을 가족들이나, 음반 활동을 위해 동고동락했던 동료, 스태프들에게 진정 어린 고마움을 표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에서였다. 물론 감정이 격해서 말을 잊지 못한 것은 이해가지만 말이다. 차라리 다른 가요 시상식에서 상을 휩쓴 이효리가 익숙하게 감사 멘트를 날리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올림픽 금메달이 하나님 덕분이면 축구가 8강에서 패한 것이나, 각종 메달 기대주들이 줄줄이 낙마한 것도 하나님의 탓이어야 상식적으로 맞다. 더군다나 하나님이 미국 선수 편을 들어서 체조에서 우리의 금메달을 빼앗아 가시기까지 하셨다. 그런데도 그런 볼멘소리는 입밖에 내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과 개신교도 덕분에 메달을 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국민 세금으로 지급하는 연금이야 줘서 뭐하겠는가? 이교도와 신이 없다고 믿는 사탄들이 모아 준 더러운 돈을 기분 좋게 받아 쓸 수 있겠는가?^^; 이렇게 치졸한 말꼬리 잡기를 하는 것은 물론 잘못된 처사다. 그런데 상당 부분은 일부 개신교도들이 자처한 것이 없잖아 있다. 일부 개신교도들이 원체 몰상식하게 나오니 비개신교인들이 천사표에다가 성인군자가 아닌 바에야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도 다 자업자득이다.


자신이 현재 위치에 올라 성공한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교인들의 공덕뿐인가? 대다수 타종교인과 종교 없는 이들의 성원에 힘입어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은 아닌지 생각할 여유도 없다면 정말 안쓰럽고 슬픈 일이다. 앞으로도 오로지 하나님과 개신교 만세만 외칠 생각이면 개신교도들이 지은 밥만 먹고, 개신교도들이 짠 의복만 입고, 개신교도들이 만드는 전자제품만 쓰고 사시라. 서울시장이라는 사람은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헛소리까지 했는데, 차라리 어디 땅 조금 내어드릴테니 개신교 공동체 만들어서 자기들끼리 기도하고 밥지어 먹으며 살 생각 없나요?^^;


대한민국은 엄연히 세속주의 원칙을 가지는 나라다. 종교의 자유는 소중하지만 그 자유는 다양한 종교를 믿을 자유와 종교를 가지지 않을 자유를 모두 포괄하는 것이다. 사실 종교는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건드리기 쉽지 않고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가령 “나는 당신이 개신교도인 것에 반대한다”는 명제는 어떤가? 남의 종교에 찬반 투표를 던지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종교의 자유에 위배되는 그릇된 명제다. 그런데도 일부 개신교도들은 내가 비개신교도인 것에 반대하는 것도 모자라 분통을 터뜨리거나, 지옥의 불구덩이로 협박하기까지 한다.^^;


여하간 종교의 자유를 위협하는 일부 광신도들과는 절대 타협할 수 없다. 한 명의 개신교 광신도가 탄생하면 세상의 저쪽에서는 극렬 안티 개신교가 생긴다는 사실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 아울러 미국을 위한 구국기도회 따위나 열면서 성조기 흔들지 말고, 북한에 대한 적개심에 불타 국가보안법 폐지는 안 된다고 생떼 쓰지 말고,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교도의 짓거리라며 반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하나님이 보면 눈물을 흘렸을 일부 극성맞고 보수적인 개신교 집단이 정말 밉다. 진정 하나님과 예수님이 있다면 이들에게 지옥의 불벼락을 선사해주셨으면 좋겠다.^^ 덤으로 전쟁에 미친 열혈 개신교도 부시에게도 말이다.


10월 4일에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벌어진 한기총 등의 비상구국기도회에서 “1945년 2차대전이 끝난 뒤 공산주의의 마수가 자유 대한민국을 침략해 적화위기에 처하게 됐을 때 하나님의 손길은 미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나타났다. 존경하는 부시 대통령과 미합중국에 하나님의 축복이 늘 함께하시기를 기도한다(한겨레신문 04. 10/6 [기독교인들의 분노 ] 中)”고 했다고 한다. 저들이 부시에게 보이는 관용의 10분의 1만이라도 가난한 자들, 정치적 소수자들에게 보냈다면 이렇게 원망과 질시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헛소리의 자유도 허용하지만 신을 팔아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시작하면 단순한 헛소리가 아니라 사기죄가 성립된다는 점을 유념했으면 한다.


[평화의 기도] - 성 프란체스코

저를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저로 하여금 사랑의 씨를 뿌리게 하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평화를,
무례함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기를,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기를,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나눔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나는 성경 읽기에 몇 번 도전했으나 도저히 재미가 없어서 몇 번 던져버렸을 만큼 종교 중에서 기독교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성 프란체스코의 [평화의 기도]는 늘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이렇게 기도하고 실천하는 개신교도와는 기꺼이 함께 기도하면서 곁에 두고 교류하고 싶다. 신을 팔아먹으며 제 잇속을 챙기려는 자들을 제거하는 일은 나 같은 녀석보다는 종교인 스스로의 자아반성과 끊임없는 경계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종교는 정말 건드리고 싶지 않은 문제이지만 막무가내 하나님 사랑에 볼멘 소리 나지막이 해보는 것은 그네들의 소음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하나님 사랑은 소리 높여 외치기보다는 묵묵한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이 어떨까? - [憂弱]


추신 - 이 글에서 일관되게 ‘개신교’라고 칭했다. 기독교(그리스도교) 중에서 가톨릭(천주교)은 극성맞음의 정도가 덜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흔히 개신교와 기독교가 혼동되어 쓰이지만 이는 엄격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고종석 선생은 한국어 사용자 대다수가 기독교를 개신교의 의미로 사용한다면 어쩔 수 없다며 언중을 존중하셨다. 하지만 신/구교를 통칭하는 개념인 기독교(그리스도교)라는 용어를 개신교도들이 독점하게 놔두는 것은 영 마뜩잖다. 아무튼 우리나라 개신교들 왜 기독교라는 용어를 고집하는지 모르겠다. 별걸 다 고집부리고 있다. 하기사 증세가 심한 분들은 가톨릭(천주교)도 종교가 아니라며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인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도 혹시 자기네들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다.
Posted by 익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