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학위수여식 단상
잡록 2005. 5. 4. 16:15 |이건희 회장의 명예 철학박사 학위수여식이 난장판이 된 것에 대한 말들이 많다. 당일날 학교를 와서 대자보를 언뜻 보고 지나치면서 무슨 일이 있겠구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일이 크게 벌어진 모양이다. 이번 학위수여식은 누가 봐도 삼성이 100주년 기념관 건립에 거액을 기부한 것에 대한 답례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학위수여식을 위해 고대에서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냈을 것이다. 마치 돈 받고 학위를 파는 듯하지만 꼭 그런 성질의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 이 회장이 철학박사가 되었다고 해서 그 분의 철학적 안목(?)을 갑자기 높이 평가하려는 사람도 없을테고 말이다. 여하간 고대에 오신 손님을 박절하게 대한 것은 조금 씁쓸하다.
경영학박사가 아닌 철학박사 수여에 불만이 있는 이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 같은 경영방식에 대한 반발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세계적인 기업에서 노조가 없다는 것에 의아심을 가지는 것이야 인지상정이다. 노조 탄압의 무수한 사례들도 적잖이 들어왔다. 삼성과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이 비판받을 점이 많겠지만 이만한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한 것도 탁월한 성과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종업원들의 피땀을 빨아 들여 성장하고 있는 것이라는 핀잔에도 일면 수긍하지만 말이다.^^ 적어도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업의 사명을 잘 수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난잡한 경영으로 진로 기업이 국민들에게 안겨준 열패감을 생각해보면 더욱더 그렇다.
학위수여식 다음 날 있은 이학수 삼성 부회장의 강연회에 앞서 어윤대 고대 총장은 부총장 이하 보직교수들이 사표를 제출했다며 일부 학생들의 과격한 행동을 야멸치게 비난했다. 거듭된 사양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모신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면서 앞으로 고대생들이 삼성에 취업하기 어려울까봐 걱정이라는 엄살도 부렸다. 2000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특강 무산 사태에는 없었던 보직교수 사퇴는 과공비례(過恭非禮)이며 자존심도 상하는 일이다. 이어 강연에 나선 이학수 부회장은 극소수 학생들을 제외한 절대 다수가 삼성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며 여유를 보였다. 사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삼성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개진하지 않은 절대 다수가 삼성을 반대한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차라리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처럼 "젊은 사람들이 패기에 넘쳐 하는 것"이라며 넘어갔으면 더 나았을 것이다. 고대 출신 임원으로서의 서운함이 느껴져서 차마 더 타박하고 싶지 않지만 말이다.
문득 삼국사기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견훤(진훤이라 읽어야 한다는 설도 있음)이 경주를 침공해 경애왕을 처치하고 경순왕을 세운 후, 왕건이 경주를 방문한다. 경주의 백성들이 왕건의 군사를 보면서 "옛날 견씨(甄氏)가 왔을 때에는 마치 승냥이나 범을 만난 것 같았는데 지금 왕공(王公)이 이르러서는 마치 부모를 보는 듯하구나(昔甄氏之來也 如逢豺虎 今王公之至也 如見父母)"라고 말했다고 한다. 견훤에 의해 옹립된 경순왕이 왕건에게 더 끌리고 만 것, 경주 백성들이 왕건을 찬양한 것은 견훤의 군대가 인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물론 승자의 기록이니 다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말이다. 여하간 이 대목에서 삼성의 경영과 일부 학생의 시위 모두에서 인심의 문제를 생각해봤다.
삼성이 일류기업으로 주가를 올리면서도 어두운 그림자가 적지 않음을 분명하다. 1등 기업의 오만에 빠져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막는 것은 그다지 보기 좋은 것은 아니다. 삼성에 대한 질책은 단지 1등 기업이라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삼성의 경영방식에 대한 반발로 인한 것이라고 많다. 삼성이 노동계나 시민단체 쪽에서 인심을 많이 잃은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마찬가지로 이번 집회에 참석한 학생들 또한 상당히 인심을 잃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학내에서는 방법론적인 문제를 지적하며 도가 지나쳤다는 의견이 많은 편이다. 인심을 잃으면 삼성의 그 휘황찬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노동탄압의 괴수가 되고, 일부 학우들의 노동자에 대한 애정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 옹고집으로 비춰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자리를 마련한 학교측도, 이에 응한 삼성측도, 집회에 나선 학생측도 상처를 입었다. 다 지나간 마당에 쓸데없는 바람이지만 학교측은 학위수여식을 조촐하게 치르려고 노력하고, 학생들은 피케팅 정도의 시위로 의사를 개진했다면 더 모양새가 나았을 것 같다. 인촌기념관 셔터를 거세게 흔드는 학생들의 모습이나 그렇다고 불만에 찬 표정으로 투덜거리는 학교측, 삼성측의 모습이나 다 보기 좋지 않았다. 양비론 같지만 제3자 입장에서 보면 둘 다 욕먹기 딱 좋은 그림이다.^^; 단순 해프닝으로 처리하고 넘기는 것이 상책이 아닐까 싶다. 더 이상의 긁어 부스럼은 아무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이번 학생들의 시위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나이지만 참가학생의 징계에는 전적으로 반대한다. 이번 사태에 대한 찬반은 교우님들과 학우님들이 판단할 문제다. 대내외적으로 우리의 옹졸함을 자랑할 속셈이 아니면 말이다.^^;
지난 한승조 사태 때 충분히 욕을 먹었건만, 이번 학위수여식 사태로 또 적잖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것 같다. 더 이상 액땜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고대 100주년은 고대를 사랑하고 아끼는 많은 이들에게는 즐거운 잔치이기 때문이다. 100이라는 숫자를 채워온 지난 세월을 경애하면서 관용과 화합을 생각해본다. 끝으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그 어떤 것도 절대시되어 성역으로 남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삼성이 이룩한 성과가 소중한 만큼 삼성이 저지른 잘못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도 소중하다. 이미 많은 국민들이 삼성의 세계적 활약을 내 일처럼 기뻐하며 격려하고 있다는 것은 본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쓸데없이 인심을 잃을 일은 없었나 반성하면서 혁신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천민 자본주의를 넘어선 아름다운 기업으로, 사랑 받는 기업으로 나아갈 것을 기대한다.^^ - [憂弱]
추신 - LG-POSCO 경영관 건립에 지대한 공헌을 하신 이필상 경영대 교수님을 생각했다. 평소 경제개혁에 대한 소신이 분명하신 분이지만 학생들의 보다 나은 강의 환경을 위해 각 기업체를 돌아다니면서 기부금을 얻어내기 위해 분투하신 일화는 경영대생들이 높이 기리고 있는 바이다. 건전한 기부문화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해봐야겠다.
경영학박사가 아닌 철학박사 수여에 불만이 있는 이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 같은 경영방식에 대한 반발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세계적인 기업에서 노조가 없다는 것에 의아심을 가지는 것이야 인지상정이다. 노조 탄압의 무수한 사례들도 적잖이 들어왔다. 삼성과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이 비판받을 점이 많겠지만 이만한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한 것도 탁월한 성과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종업원들의 피땀을 빨아 들여 성장하고 있는 것이라는 핀잔에도 일면 수긍하지만 말이다.^^ 적어도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업의 사명을 잘 수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난잡한 경영으로 진로 기업이 국민들에게 안겨준 열패감을 생각해보면 더욱더 그렇다.
학위수여식 다음 날 있은 이학수 삼성 부회장의 강연회에 앞서 어윤대 고대 총장은 부총장 이하 보직교수들이 사표를 제출했다며 일부 학생들의 과격한 행동을 야멸치게 비난했다. 거듭된 사양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모신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면서 앞으로 고대생들이 삼성에 취업하기 어려울까봐 걱정이라는 엄살도 부렸다. 2000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특강 무산 사태에는 없었던 보직교수 사퇴는 과공비례(過恭非禮)이며 자존심도 상하는 일이다. 이어 강연에 나선 이학수 부회장은 극소수 학생들을 제외한 절대 다수가 삼성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며 여유를 보였다. 사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삼성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개진하지 않은 절대 다수가 삼성을 반대한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차라리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처럼 "젊은 사람들이 패기에 넘쳐 하는 것"이라며 넘어갔으면 더 나았을 것이다. 고대 출신 임원으로서의 서운함이 느껴져서 차마 더 타박하고 싶지 않지만 말이다.
문득 삼국사기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견훤(진훤이라 읽어야 한다는 설도 있음)이 경주를 침공해 경애왕을 처치하고 경순왕을 세운 후, 왕건이 경주를 방문한다. 경주의 백성들이 왕건의 군사를 보면서 "옛날 견씨(甄氏)가 왔을 때에는 마치 승냥이나 범을 만난 것 같았는데 지금 왕공(王公)이 이르러서는 마치 부모를 보는 듯하구나(昔甄氏之來也 如逢豺虎 今王公之至也 如見父母)"라고 말했다고 한다. 견훤에 의해 옹립된 경순왕이 왕건에게 더 끌리고 만 것, 경주 백성들이 왕건을 찬양한 것은 견훤의 군대가 인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물론 승자의 기록이니 다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말이다. 여하간 이 대목에서 삼성의 경영과 일부 학생의 시위 모두에서 인심의 문제를 생각해봤다.
삼성이 일류기업으로 주가를 올리면서도 어두운 그림자가 적지 않음을 분명하다. 1등 기업의 오만에 빠져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막는 것은 그다지 보기 좋은 것은 아니다. 삼성에 대한 질책은 단지 1등 기업이라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삼성의 경영방식에 대한 반발로 인한 것이라고 많다. 삼성이 노동계나 시민단체 쪽에서 인심을 많이 잃은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마찬가지로 이번 집회에 참석한 학생들 또한 상당히 인심을 잃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학내에서는 방법론적인 문제를 지적하며 도가 지나쳤다는 의견이 많은 편이다. 인심을 잃으면 삼성의 그 휘황찬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노동탄압의 괴수가 되고, 일부 학우들의 노동자에 대한 애정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 옹고집으로 비춰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자리를 마련한 학교측도, 이에 응한 삼성측도, 집회에 나선 학생측도 상처를 입었다. 다 지나간 마당에 쓸데없는 바람이지만 학교측은 학위수여식을 조촐하게 치르려고 노력하고, 학생들은 피케팅 정도의 시위로 의사를 개진했다면 더 모양새가 나았을 것 같다. 인촌기념관 셔터를 거세게 흔드는 학생들의 모습이나 그렇다고 불만에 찬 표정으로 투덜거리는 학교측, 삼성측의 모습이나 다 보기 좋지 않았다. 양비론 같지만 제3자 입장에서 보면 둘 다 욕먹기 딱 좋은 그림이다.^^; 단순 해프닝으로 처리하고 넘기는 것이 상책이 아닐까 싶다. 더 이상의 긁어 부스럼은 아무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이번 학생들의 시위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나이지만 참가학생의 징계에는 전적으로 반대한다. 이번 사태에 대한 찬반은 교우님들과 학우님들이 판단할 문제다. 대내외적으로 우리의 옹졸함을 자랑할 속셈이 아니면 말이다.^^;
지난 한승조 사태 때 충분히 욕을 먹었건만, 이번 학위수여식 사태로 또 적잖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것 같다. 더 이상 액땜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고대 100주년은 고대를 사랑하고 아끼는 많은 이들에게는 즐거운 잔치이기 때문이다. 100이라는 숫자를 채워온 지난 세월을 경애하면서 관용과 화합을 생각해본다. 끝으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그 어떤 것도 절대시되어 성역으로 남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삼성이 이룩한 성과가 소중한 만큼 삼성이 저지른 잘못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도 소중하다. 이미 많은 국민들이 삼성의 세계적 활약을 내 일처럼 기뻐하며 격려하고 있다는 것은 본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쓸데없이 인심을 잃을 일은 없었나 반성하면서 혁신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천민 자본주의를 넘어선 아름다운 기업으로, 사랑 받는 기업으로 나아갈 것을 기대한다.^^ - [憂弱]
추신 - LG-POSCO 경영관 건립에 지대한 공헌을 하신 이필상 경영대 교수님을 생각했다. 평소 경제개혁에 대한 소신이 분명하신 분이지만 학생들의 보다 나은 강의 환경을 위해 각 기업체를 돌아다니면서 기부금을 얻어내기 위해 분투하신 일화는 경영대생들이 높이 기리고 있는 바이다. 건전한 기부문화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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