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4일 경제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정운영 선생이 향년 61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사회과학자로서는 드물게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이 깊게 배어나는 글쓰기로 많은 이들을 사로잡았다. 외국 사례의 무분별한 나열이라는 핀잔도 있겠지만 그의 글은 진보와 보수를 넘어 권력에 눈이 멀어 제 밥그릇의 안위만을 염려하는 이들에 대한 통쾌한 죽비소리였다.


조정래 선생은 그를 추모하며 "고작 이 세월을 살려고 그 많은 공부를 한 것입니까. 태산이 무색할 독서, 그 해박한 지식이 아깝고 아깝습니다(조정래. "[정운영 형을 기리며] 그토록 꼿꼿하고 당당했던 삶." 중앙일보. 2005. 9. 26.)"라고 탄식했다. 좀 더 많은 일을 해줬으면 하는 선생이 이렇게 빨리 속세의 짐을 내려놓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일세를 풍미했던 논객의 떠나 보내면서 내 인생의 초라함과 막막함을 생각해봤다. 내 나이 이제 스물 셋, 아흔 둘까지 산다고 치고 이제 삶의 1/4을 지나고 있다며 농담 삼아 계산했던 일을 떠올렸다. 조정래 선생의 추도사에서 "태산이 무색할 독서"라는 구절이 머리에서 가시지 않는다. 내가 정 선생보다 서른 해를 더 산다고 해서 나의 글 읽고 쓰기가 그의 반의반에라도 미칠까 하는 지극히 세속적인 꿍꿍이가 발동했다. 아흔 둘까지 살아야겠다는 욕심은 남들이 환갑이면 이룰 일을 좀 더 시일이 걸려서라도 해내려는 의지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젠장 술이라도 좀 줄여볼까.^^;


손해보는 장사를 싫어하는 경영학도로서 내가 배우고 익힌 것이 헛되지 않을 만큼의 삶을 꾸리고 싶다. 어차피 요절한 천재가 될 가능성도 없는데 그저 세월을 진통제 삼아 풍진 세상을 버텨 나갈 따름이다. 더군다나 곱게 늙는 것은 내게 있어 꽤 중차대한 목표 중에 하나다. 세월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고 아찔할 게다. 이를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와 여유를 갖춘 노년의 모습은 그 얼마나 기품 있는가. 나 또한 젊은 시절에는 많이 어리숙했고 윗사람 눈에 못미더운 녀석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기를, 후임자들이 잘하는 모습을 보고 시기하기보다는 기뻐하고 축복할 수 있기를. 그렇다면 신경질적인 노인 대신 해맑은 소년으로 평생을 살 수 있으리라.


절륜(絶倫)했던 인문주의자, 출중했던 스승이 떠나도 따르는 제자들의 몸부림은 계속된다. 고인을 가슴 깊이 추모하면서 다시금 치열하고 자유롭게 살 것을 다짐해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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