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재(寶高齋) 전경

옹방강은 당시 78세였다. 그는 소동파를 좋아하여 서재 이름을 "소동파를 보배롭게 받드는 서재"라는 뜻으로 보소재(寶蘇齋)라고 했다. 추사는 이를 본받아 귀국 후 자신의 서재를 "담계 옹방강을 보배롭게 만드는 서재"라고 해서 보담재(寶覃齋)라고 하였다.
- 유홍준, 2002, 『완당평전 1』, 학고재, 91쪽


얼마 전 읽은 완당평전에서 다음 구절을 발견하고 무릎을 쳤다. 추사 김정희는 청나라 연경학계의 원로인 옹방강을 스승으로 모시며 서재 이름을 저렇게 지었다고 한다. 또한 정약용이 유배되었던 전남 강진 다산초당의 현판 글씨를 써주면서 보정산방(寶丁山房)이라고 써주는 데 보정산방이란 "정약용을 보배롭게 생각하는 집"이라는 뜻이다(유홍준, 2002, 『완당평전 2』, 학고재, 551~552쪽 참고). 옛사람들이 나눈 절절한 사모의 흔적들이 참 정겹다.


보소재, 보담재, 보정산방 등의 용례를 보며 나도 내 방(혹은 서재) 이름을 지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내 영혼의 스승이신 고종석 선생님을 존경하며, 그를 보배롭게 생각한다는 뜻으로 보고재(寶高齋)라고 지었다. 평소 흠모하고 사숙하던 선생님과 같은 기품 있는 자유주의자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또한 인터넷 헌책방, 출판사 문의를 통해 어렵사리 구한 고종석 선생님의 절판된 저서인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고종석의 유럽통신』, 『언문세설』, 『책읽기 책일기』, 『기자들』등을 구한 것을 기념하는 의의도 있다. 여하간 보고재에서 자유주의가 만개하길!

보고재 탄생의 모티브인 고종석 선생님의 저서들

보고재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상존한다. 좋은 책이라도 한두 해만 지나면 서점에서 찾을 길 없는 부박한 출판 풍토상 미리 확보를 해두어야겠다는 강박관념, 물욕이 발동하여 꼭 소장하고 싶은 책인데 도무지 구할 길이 없어 발을 동동 굴러본 기억, 학교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반납하는 대신 분실했다고 하고 내 책꽂이에 꽂아둘까 하는 아찔한 유혹, 무엇인가 홀린 듯이 별 고민 없이 충동구매하고 나서 드는 후회, 통장잔고가 바닥나는 데 아랑곳 않고 묵직한 책꾸러미를 보며 배불러하던 포만감, 단 한 쪽도 읽지 않고 고이 모셔두면서도 책표지와 책등만 바라봐도 흐뭇해하며 언젠가 꺼내들 그 날을 고대하는 희망...

날림으로 만들어 본 보고재 현판(?)

내 누추한 방구석을 보고재라 이름지으며 20대에 1000권 이상의 책을 읽기로 새삼 결심해본다. 1년에 100권이라는 소리인데 생각만큼 쉽지는 않으리라. 바쁘다는 핑계를 대지 않는 책읽기,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할 일을 하면서도 짬짬이 하는 책읽기, 남 눈치보지 않고 의연하고 당당하게 해나가는 책읽기를 주창해본다. 허영의 독서도 분명 있었을 것이고, 불필요한 금전적 낭비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책장을 넘기며 그 책들만큼 아름다운 마음들과 대화를 한 것이 행운이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책과의 인연을 사랑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책 사랑에 대한 고백은 아무리 해도 모자란 그 무엇이다. - [憂弱]


추신 - 보고재 탄생에는 mannerist 선배님이 잠시 거처하신 울산 모처의 원룸이자 "무사안일 쾌락만땅"이라는 모토를 실현시킬 공간이라는 뜻의 "만땅재"라는 이름도 참조했음을 밝힌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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