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국무총리의 3.1절 골프 추문은 부끄러운 일이다. 물론 골프에 대한 호오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사적 영역이다. 그러나 총리가 골프를 치는 순간 누구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골프를 쳤느냐는 공적 영역으로 전환된다. 더군다나 개혁성과 도덕성을 주창하는 참여정부의 2인자인 그가 골프광으로 행세하는 것은 볼썽사나운 일이다. 총리도 자신의 재미를 추구할 권리는 있지만 조금 절제하는 덕목을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 송나라 재상이었던 범중엄(范仲淹)의 악양루기(岳陽樓記)에 나오는 천하 사람들이 근심하기 전에 근심하고, 천하 사람들이 즐거워 한 다음에 즐거워해야 한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는 구절을 새겼어야 했다. 멸사봉공씩은 아니더라도 선공후사 정도는 했어야 했다.


유신독재에 비수를 던지던 이 총리는 홀컵에 공을 집어넣는 재미에 여념이 없었다. 과연 이 총리는 나이스 샷을 외치며 짝짝거리는 소리에 그 옛날의 곤고함은 까맣게 잊었는가. 그만큼 이 세상은 고루 살맛 나는가. 이 총리는 분권형 국정운영이라는 기조 아래 대통령으로부터 경제, 사회 분야를 아우른 내치를 사실상 일임 받았다. 국정의 새로운 지평을 연 분권형 총리에게 붙어 콩고물을 노리는 자들을 왜 결연히 떨치지 못했는가. 늘어난 권한만큼 더욱더 무겁게 처신하는 진중함이 못내 아쉽다. 엄혹했던 시절 이 총리가 믿고 의지했을 국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서는 곤란하다. 이 총리가 출세한 것은 일차적으로는 그 자신의 출중한 재능 때문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운동권 출신들을 권좌에 올려 놓아준 국민들의 공로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떠나야할 때를 다소 놓치기는 했지만 이 총리가 책임지고 물러난 것은 바람직하다. 물론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이 미처 이루어지기도 전에 사퇴하는 것은 영 찜찜하다. 지방선거 주도권을 잡기 위한 여하간의 쟁투와 한나라당의 물타기 전략에 희생이 된 감도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지지율이 40%에 육박하는 때에 더욱 행동거지를 조심하지 못한 실책은 뼈아프다. 노 대통령은 그토록 애호하던 이 총리의 사퇴로 적잖이 당혹스러울지 모른다. 그러나 참여정부 국정운영은 사람 보다 시스템이 일하는 체제를 지향했다고 본다. 이해찬이라는 걸출한 인재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일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 대통령의 읍참마속은 사람에 집착하지 않고 시스템을 신뢰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 총리의 불명예퇴진은 개혁세력의 타산지석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덜 혜택을 받아 그늘진 사람들의 열망을 제 이욕 추구에 온전히 들어바치는 광경은 무참하다. 개혁세력들은 혹여 이 사회에서 흥건한 혜택을 받아 양지바른 사람들의 열망을 대변할 이들에게 권력을 넘겨줄 때가 오더라도 국민의 핑계를 대지 말기를 바란다. 남의 누추함을 따지기 전에 제 자신의 비루함을 먼저 경계하라. 이 총리는 3월 15일 이임식에서 “나는 지금까지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디 그 결심을 앞으로도 유지하시기 바란다. 인간이 저지르는 잘못 중에 가장 끔찍한 것은 부끄러움을 잃는 것이다. - [小鮮]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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