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후배가 고등학교 친구의 군대 후임으로 들어갔다는 재미난 소식을 접했다. 나는 편지를 쓰면서 말년병장이던 친구에게 원체 대한민국 땅이 좁다 보니 생기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각별한 인연이 아닐까 싶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잘 보살펴주기를 청하면서 고등학교 시절 그 친구가 건넸던 질문에 답을 해봤다.


(전략) 후배를 잘 좀 봐달라는 청을 하다 보니 문득 옛날 이야기가 떠오르는 구나. 그 때 당시 네가 육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을 게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그랬는지는 모르겠다만 너는 흥미로운 사고실험을 제기했었지. “만약 네 아들이 입대할 나이가 되고, 아는 사람 중에 군장성쯤 되는 이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뭐 이런 식의 물음이었던 거 같다. 나는 그런 방면으로 별로 생각해보지 않아서 확답을 피했던 걸로 기억해. 다시금 생각해보니 그 질문은 역으로 생각하면 의외로 간단하게 풀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군장성일 때를 가정해봤어. 아예 모른다면야 모를까 아는 친구의 아들내미인 걸 알고 있다면 후대하지는 못해도 박대하지도 않겠지.


비슷한 의미로 내가 만약 음식점 주인이라면 친구들이 왔을 때 조금이나마 더 많이 얹어주고, 피차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만이라도 깎아주려고 하지 않을까. 또 내가 만약 작가라면 내가 쓴 책을 몇 권쯤은 주위에 나눠 읽으라고 선심 쓰듯이 건네주려고 하지 않을까. 혹은 내가 만약 신문기자라면 일부러 좋은 기사를 써주지는 못해도, 친구들 이름 석자라도 한번 싣는 방향으로 애쓰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 거 같더라. 명백한 불법이 아니고서야 또한 속 보이는 편법이 아니라면야 그 정도의 여유는 인지상정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 어질지는 못해도 모질게 살고 싶지는 않거든.


국사 시간에 나오는 상피제(相避制)를 기억하려나? 일정범위 내의 친족간에는 같은 관청 또는 통속관계에 있는 관청에서 근무할 수 없게 하거나, 연고가 있는 관직에 제수할 수 없게 한 제도라는 뜻인데... 조선시대 지방관을 파견할 때 자신이 자란 곳이나 연고가 있던 곳에는 보내지 않은 것이 대표적인 예지. 이 제도를 선용할 필요가 있을 듯 싶다. 아는 사람에게 잘해주고픈 마음을 마냥 억누를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제도를 통해 발현되는 것을 막는 것이 최선은 못돼도 차선책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에둘러서 말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5년 전 질문에 대한 답을 이제서 해본다.


문제의식을 확장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거스르는 것,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거스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생각해봤어. 아주 큰 맘 먹고 거스를 수야 있겠지만 곧 뒤따를 각박함과 구접스러움에 대한 원망을 견뎌낼 자신이 없기도 하고 말이지. 이런 혼란스러운 질문이 들 때 그저 조금 더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름다운 인연, 선한 인연을 많이 맺는 것이 마냥 좋은 일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후략)



예전에 부친 편지의 일부가 떠오른 까닭은 얼마 전 어느 선배님께 이런 질문을 받았기 때문이다. "네가 성공하거나 높은 지위에 올랐을 때 내가 뭘 좀 부탁하려 한다면 그걸 들어줄 거니?" 나는 "제가 그런 걸 들어줄 만한 자리에 있지 않을 것 같은데요"라며 웃어 넘겼지만 가슴 뜨끔한 질문이었다. 또한 예전 같으면 언짢게 들었을 "학연이 문제라고들 하지만 학연이 너무 좋은 거 같아요"라는 후배의 솔직한 애정 고백에 나도 적잖이 동감하기도 했다.


내가 부러 호인(好人)행세를 하려 들지 않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거스르거나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거스르기란 참 힘들다. 몇몇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용기를 내어 거스른다고 해도 내 자신에 쏟아질 그 실망의 눈초리를 감내할 자신이 많이 줄었다. 나는 팔이 안으로 굽으려 할 때 어떤 균형감각을 발휘할 수 있을까. 내가 지향하는 개인주의, 자유주의는 이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내 파당성(派黨性)은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 건가. 좀 더 부딪혀봐야겠다. - [小鮮]
Posted by 익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