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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28 거리 두기가 어렵더라도 (4)

요즘 싱글벙글하다는 고려대 교우회를 바라보며 ‘낯설게 하기 효과(Verfremdungseffekt)’를 떠올렸다. 브레히트는 전통 연극이 무비판적인 감정이입을 양산해 현실을 당연하게 바라보도록 하는 문제를 극복하려 했다. 그래서 관객이 연극에 몰입하기보다는 거리를 만들어서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게 만드는 기법들을 고안했다. 몇 차례의 교우회보와 『고려대학교 교우회 100년사』에는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찬사가 그득했다. 교우회의 이런 행동은 역설적으로 이명박 당선을 어색하게 만들어 거리감을 갖게 만든다. 기품 있는 야당 지지자가 될 준비를 하는 적잖은 고대 교우들과 재학생들이 교우회를 찐덥게 여기지 않게 되었음이 그 예다.


공(公)과 사(私)의 구분은 어려운 문제지만 교우회는 어디까지나 사적인 친목 모임이다. 교우의 동정을 기록하는 건 교우회의 주요 역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명박 용비어천가는 신중했어야 한다. 선거법 준수 요청을 받았을 정도로 공적 영역에 개입한 잘못도 잘못이지만 내부인의 입장에서는 더 큰 서운함이 있다. 외부에 내보이기 낯뜨거움 이전에 내부 구성원의 의견을 한쪽만 조명한 실책 말이다. 이명박 당선자가 얻지 못한 과반수 지지율을 고대 교우나 고대 재학생 사이에서는 넘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추측이 교우회 일방통행의 논거가 되지는 못한다. “선을 권장함은 벗의 도리(責善 朋友之道也)”라는 맹자의 말씀을 상기한다면 선거 전후로 이명박 후보에게 쓴소리를 건넬 수 있어야 했다.


승리의 새벽이라며 들썩이는 교우회는 얼마나 치켜세웠는지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넘쳐서 문학성은 애당초 던져버리고 날것의 욕망이 넘친다. 에두르지 않고 할 말만 하는 날씬한 실용주의! 교우회는 책선(責善)도 못했고, 제 몫의 사사로움을 다하지 못했다. 나는 이명박 정부가 살리겠다는 경제가 모두의 경제가 되길 바라듯이, 내 모교의 교우회가 모두의 교우회가 되길 바란다. 교우회가 그저 교우라는 이유로 계속 열광한다면 민망하고, 지지 근거를 포실하게 내세운다면 억지스럽다. 이 진퇴양난에서 거리 두기를 생각한다. 공적인 거리 두기와 사적인 거리 두기가 많은 차이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솔직히 내가 교우회의 행보를 후련하게 비판하는 자세가 온당한지 헛갈린다. 나와 안면이 없는 까마득한 선배를 데면데면 대하기는 쉽다. 차라리 나와 구순하게 지내는 동기나 선후배가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올랐을 경우를 상상해보자. 내가 그들에게 손을 비비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반대로 내가 평소 궁리하는 바와 어긋날 때 단칼에 거절할 가능성은 얼마인가? 이런 사고실험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거스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를 묻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거스르기는 또 얼마나 힘든가’를 자문해본다. 이따금 큰맘 먹고 거슬렀다가 서먹서먹해졌던 기억은 다음 거스름을 도모할 의지를 꺾는다.


아담 스미스는 자신의 행동을 판단할 때 스스로를 객관화한 ‘공평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가 등장한다고 역설했다. 나 자신을 행위자와 관찰자로 나누고, 관찰자가 타인의 시각을 반영한다는 주장이다. 막상 실생활에서 적용하려면 암묵지(暗默知)의 성격이 짙어 당최 어떻게 구현해야할지 어렴풋하다. 좀 더 응용하기 쉽게 표현하자면 스스로가 일부러 이의를 제기하는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 역할을 맡으라는 셈인데 이마저 어렵다면 자기 둘레에 악마의 대변인을 두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알맞은 거리를 더듬기가 막막하다면 해서는 안 될 일의 목록을 추려보는 건 어떨까. 우리네 삶은 아무래도 네거티브 시스템(negative system)인 듯싶다. 무엇을 적극적으로 맹진하기에 앞서 이것만은 하지 말아야지라며 소극적으로 저항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아득한 길머리에서 “하지 않는 바가 있은 다음에야 하는 바가 있을 수 있다”라는 말씀을 찬찬히 곱씹는다. 나는 내가 부끄러워하는 일을 얼마나 마다할 수 있을까. 자꾸 이런 질문을 던지면 내 자신이 너무 너절해진다. - [無棄]


<군소리>
이쯤에서 지난해 지었던 여선배이명박시(與先輩李明博詩)를 공개한다. 을지문덕의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를 패러디한 작품이다. 한나라당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에 대한 허물이 연일 드러나는 것에 실망한 기운으로 써내려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2007년 7월 당시 열린우리당 윤호중 대변인도 여한장이명박시(與漢將李明博詩)를 지은 바 있다. 작성 시기가 대략 비슷해 표절 시비가 나올까 염려스럽지만 나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고, 순전히 개인적인 동기에서 창작했음을 밝힌다.


猛策興土木(맹책흥토목) 세찬 전략은 토목을 일으켰고
速算開淸溪(속산개청계) 빠른 계산은 청계천을 열었네
勝戰金旣裕(승전금기유) 승전금이 이미 넉넉하니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 만족함을 알고 그침이 어떠십니까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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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athfinder 2008.01.31 00:0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이런글이 외려 고려대학교의 진정한 기백을 담고 있는 것이겠지요.

    저도 익구님과 같은 분들의 존재와 고민을 잊은 채, 제가 좋아하는 후보가 되지 않았다는 분심을 섞어 도맷금으로 일부를 전체로 매도하는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나 반성해보겠습니다.

    정치적 반감에 어디 그래 잘 되나 보자 하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현직에 있을때는 고대 동문들로부터 가장 날카롭고 서늘한 충고를 듣고, 물러난 이후에는 고려대학교 역사에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남는 지도자가 되기를....그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겠지요.

    • 익구 2008.01.31 02:1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안 그래도 저는 이 잡글이 결국 학교를 돕는 형국이 되지는 않을까 망설였습니다. “그래 고대가 다 저렇지는 않지”와 같은 반응을 유발함으로써 학교에 쏟아질 지청구를 희석시키는 물타기가 아닐까 싶었거든요. 고대 재학생 가운데 차마 이명박을 뽑지 않은 분들이 적잖았음을 강조할 때 이것은 궁극적으로 학교를 위한 알리바이 확보가 될 테니 말입니다. 제 사리사욕을 위한 애교심은 오히려 학교 사람들에게 종종 오해를 받아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사적인 의리와 공적인 책무가 맞부딪힐 때 선공후사(先公後私)를 읊조리기야 쉽지만 막상 실천에 옮기려면 쉽지 않을 듯싶어요. 사귄 지 얼마 안 된 사람과는 더 친해지기 힘들까봐 거절을 머뭇거리고, 오랜 교류를 나눈 사람이면 지난 세월의 무게가 아까워서 거절을 주저하기 십상이죠. 인간적인 빚을 너무 많이 지고 살지는 말아야겠다 싶더라고요. 저는 그 빚을 안 갚고는 도저히 못 견딜 소심한 녀석이니까요.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2. 2008.02.02 23:57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익구 2008.02.03 02:1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하하 오랜만일세. 뭐 그런 말을 비밀댓글까지 하고 그러시나. 하기야 고작 그 정도의 이야기를 함부로 발설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당혹스러울 따름이지. 이번 사안은 고대를 아끼는 사람이라면 더욱 서운하게 여길 성질이 많았어. 나는 오히려 이명박 지지자들께서 이건 좀 넘치는 거 아니냐며 절제를 보여주기를 기대했는데 아직은 기쁨은 만끽할 때인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