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미워하지 않도록 노력하는데 잘 안 됩니다. 제가 비우는 술잔으로 원망하는 마음까지도 삼켜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문득 고려 경종이 시행했던 ‘복수법’이 떠올랐다. 사료에서 복수법이라고 명시된 바는 없지만 편의상 복수법이라고 부르는 관행을 따랐다. 고려 4대 임금 광종은 집권 후반기에 왕권을 위협하는 호족들을 상대로 피의 숙청을 벌였다. 광종의 공포정치가 종결될 무렵 살아남은 호족 공신은 겨우 40여 명이었다고 한다. 경종이 즉위하자 왕선(王詵)이란 인물은 광종 치세에 참소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이들의 자손에게 복수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복수법을 제안해 왕의 허락을 받았다. 복수의 공식적 허용은 한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로 보인다. 본래 취지는 왕실에 등을 돌린 호족들을 달래고 화합정치를 모색하기 위한 조처였으나 복수전이 가열되면서 또 다른 피바람을 일으켰다. 『고려사』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전한다.
집정(執政) 왕선(王詵)을 외직으로 내쳤다. 왕이 일찍이 선대 임금 때에 참소를 당한 사람의 자손이 원수를 갚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 마침내는 서로 마음대로 사람을 죽여서 다시 억울함을 부르짖게 되었다. 이때에 이르러 왕선이 복수한다는 핑계로 임금의 명을 거짓으로 꾸며서 태조의 아들 천안부원낭군(天安府院郞君)을 죽였다. 이에 선을 내쫓고 제 마음대로 사람을 죽여 복수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放執政王詵于外,王嘗1)許先朝被讒人子孫復讎,遂相擅殺復致冤號,及是詵托以復讎,矯殺太祖子天安府院郞君2),於是貶詵,仍禁擅殺復讎。
1) 『고려사』에서는 王嘗, 『고려사절요』에서는 初王으로 되어 있다.
2) 『고려사』에서는 天安府院郞君, 『고려사절요』에서는 天安府院君으로 되어 있다. 고려에서는 왕자를 낭군, 원군, 대군 등으로 일컬었다.
호족들의 복수혈전은 약 1년간 지속되었는데 976년에는 태조의 아들이 살해되는 지경에 이른다. 최승로가 성종에게 올린 상서문에서는 이 때 살해된 이가 천안낭군(天安郞君)과 진주낭군(鎭州郞君)이라고 말한다. 대체로 효성태자와 원녕태자를 지칭한다고 보는데 이처럼 종실의 어른마저 죽임을 당하는 상황에 처하자 경종은 복수법을 폐지하고 왕선을 귀양 보냈다. 최승로의 상서문을 좀 더 살펴보자.
더구나 광종 말년에는 세상이 어지럽고 참소가 일어나서 형벌에 연루된 이들은 대부분 죄가 없었고, 역대로 공훈을 세운 신하와 경험 많은 노장들이 모두 주살을 면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경종이 왕위에 오를 때 옛 신하 가운데 남아 있는 사람은 40여 명뿐이었습니다. 그때에도 피해를 만난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나 모두 후생과 참소한 무리들(後生讒賊)이므로 진실로 애석하게 여길 것은 없습니다. 다만 천안(天安)과 진주(鎭州) 두 낭군(郞君)은 본래 황실의 자손이어서 광종께서도 오히려 스스로 관용을 베풀고 마침내 이들을 법으로 처리하지 않았으므로 경종의 재위 기간에 이르러 충분히 황실의 울타리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권세를 잡은 신하에게 해침을 당해서 지하의 원통한 넋이 되었으니 어찌 종실의 가슴 아픈 일이 아니겠습니까? 돌아가신 선왕(경종)께서 장수하지 못한 것은 이러한 불행에서 기인함이 많으니 이런 일은 후세에 경계로 삼으셔야 합니다.
況屬光宗末年,世亂讒興,凡繫刑章,多是非辜,歷世勳臣宿將,皆未免誅鋤而盡,及景宗踐祚,舊臣之存者,四十餘人耳,其時亦有遇害衆多,皆是後生讒賊,誠不足惜,唯天安鎭州二郞君,本皇家之枝葉也,光宗猶自寬容,意不置於法,至景宗朝,足爲藩屛,却被權臣之賊害,沒爲地下之冤魂,在於宗盟,寧不痛惜,先朝不保永年,多因此禍,後世可以爲鑑戒。
최승로는 경종의 복수법이 왕선 같은 권신에게 좌지우지된 것을 비판하지만 그 취지는 공감한다. 광종의 전제정치를 반대하고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꾀했던 최승로는 집정제가 운용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졌다는 정도로만 비판한다. ‘후생과 참소한 무리들(後生讒賊)’이 해를 입은 것은 그리 안타까워할 일이 아니라는 시각에서도 그런 시각을 엿볼 수 있다. 후생참적은 광종의 개혁에 참여했다가 경종 초기에 제거된 무리로 본다. 노비안검법에 의하여 양인이 된 자들을 비롯해 하급관리 같이 광종 이후 벼슬을 한 인물들로서 고려 개국 이래 권세를 누린 호족공신들과는 대립되는 계층이다.
광종의 치적이 많이 알려진 것과는 달리 『고려사』에서 광종의 기록은 소략한 편이다. 광종이 처벌했던 이들이 그럴 만한 부정이나 비리를 저지른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왕권 강화의 걸림돌이어서 청산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숙청의 규모가 컸다는 점에서 죄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도매금으로 처리되었으리라 추정할 뿐이다. 경종의 바람과는 달리 칼자루를 쥐게 된 호족들을 무자비한 보복을 감행한 것으로 사료된다. 통합은커녕 복수심만 증폭시켰다.
경종이 복수의 대물림을 수수방관만 했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경종이 즉위했을 때 위협이 되는 세력은 호족공신이라기보다는 후생참적이나 종친이었다. 그래서 종친의 죽음에 경종의 묵인이 작용했다고 보는 견해도 보인다. 복수법이 폐지된 이후 전시과(田柴科)를 제정하여 토지제도의 근간을 마련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왕권 강화를 위한 경종의 의도가 개입되지는 않았을까 추측하게 만든다.
여하간 부모의 원수를 갚는 행위를 폭넓게 긍정하는 유교적 이념이 투영되어 복수법이 한때나마 위세를 떨칠 수 있었다.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경종이 선대의 조정에서 참소를 입은 사람의 자손에게 복수를 하도록 허락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아버지인 광종을 원수로 삼도록 했다고 비판했다. 참소를 한 사람들이 많이 있겠지만 그 참소를 받아들인 자는 임금이기 때문이다. 이 논리를 전개하면서 언급한 이야기가 경청할 만하다.
아들이 아비의 원수를 갚는 것은 당연한 바른 이치이고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이는 것이 왕자(王者)의 큰 법이다. 만약 효자(孝子)의 뜻에 따라 원수 갚기를 허락한다면 이것은 어지러움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 것인가? 부모를 죽인 것이 도리가 아니었다면 비록 그 원수를 갚았더라도 용서해 주어 효자의 의리를 펴게 한다. 부모를 죽인 것이 도리에 맞는다면 이는 법에 의해 죽은 것이므로 원수를 갚으면 이것은 왕법(王法)을 원수로 하는 것이니 죄를 용서할 수 없다. 이 두 가지일 뿐이다.
子復父讐,當然之正理,殺人者死,王者之大法,若循孝子之情,而許人復讐,是亂未有已也, 然則當奈何,殺人而非其理者,則雖復讐,原之而申孝子之義,殺人而當其理者,則是死於法,若復讐,是讐王法也,罪在不赦 惟此二端而已。
안정복은 왕법(王法)을 따랐는지 여부를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가 정치적 타살이라는 목소리가 여기저기 나온다. 검찰의 수사와 언론의 보도가 공정한 과정을 밟아 정의로운 법의 잣대를 들이댔는지 돌아볼 일이다. 아울러 이명박 정권 역시 보복의 정치를 펼치지 않았다면 훗날 정권 교체가 되고 나서 복수를 당할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노무현을 향해 정당한 법 집행을 했다면 원수를 갚겠다고 이를 가는 분들이 그릇된 것일 테니 말이다. 『고려사』를 보면 경종은 왕선을 추방하고 나서 다음과 같은 조치를 내린다.
순질(荀質)과 신질(申質)을 좌우집정(左右執政)으로 삼아 그들에게 모두 내사령(內史令)을 겸하게 했다.
以荀質,申質,爲左右執政,皆兼內史令。
검찰을 왕선 일당에 억지로 비유해봄 직하다. 국민은 이제 권력을 마음대로 하는 검찰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권력형 비리와 공직자의 부패를 찾아내 처벌하는 노력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재상 역할을 했을 집정(執政)의 권한을 둘로 나눠 서로 견제하게 만들었던 지난날처럼 검찰의 비대한 권력을 해체해야 한다. 중앙수사부 폐지와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 신설 등이 활발히 논의 중이다. 적어도 사법방해죄, 유죄협상제, 참고인 구인제도 도입 등을 통해 힘을 보태려던 검찰의 행보에 제동이 걸렸음은 또렷하다.
민주당이 검찰의 무절제한 칼부림을 막기 위해 정치보복금지법을 제정을 검토하는 모양이다. 1997년과 2002년 대선 때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끊겠다는 명분으로 정치보복금지법 제정이 공약으로 나오기도 했다. 2002년 10월 한나라당은 정치보복금지법이 입법기술상의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그 대신에 국가원로자문회의법의 부활을 추진해 퇴임한 대통령의 미래를 보장한다는 몸짓을 보이기도 했다. 기실 정치보복의 개념을 규정하기가 어렵다는 치명적 약점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단지 이전 정부의 상층부에 있었다는 이유로 법을 어겨도 면죄부가 발급된다면 법치주의를 크게 흔든다. 아무리 정교하게 입법을 하려 해도 이 부분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렇다고 마냥 양식 있는 정권과 권력기관을 가정하며 그네들이 베푸는 선의에만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형법에 공무원의 직권남용에 대한 규정이 있지만 이에 대한 보강이 요구된다. 정치적 외압 등 특수직권남용죄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겠고 어떤 식으로든 유한한 권력을 농단하는 무리들을 실질적으로 단죄하길 희망한다. 사사로운 복수의 유혹을 눅이는 해법은 어디까지나 국가가 정당하게 복수하는 길 뿐이다. 법의 지배를 허무는 망동에 단호하게 대처하기 위해 실정법을 만드는 게 능사는 아니겠으나 상징적인 입법이 필요할 듯싶다. 국민의 공복(公僕)들은 국민을 향해 원망하지 말라고 윽박지르지 말라.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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