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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서를 쓰다가

일기 2009. 11. 5. 03:07 |

주로 가으내 진행되는 자기소개서 집필은 신추문예(新秋文藝)에 빗댈 만하다. 그만큼 문학성(?)이 만개하는 글이다. 허풍이 폭넓게 허용되기는 하지만 혼자서 몰래 읽어야 할 법한 공상과학소설을 남에게 내는 민망한 기분은 나 혼자만의 감상은 아닐 게다. 그래 놓고도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있다며 아쉬워할 때는 이따금 황당하다. 지난달에 대학원 진학을 위해 자소서 한 부를 탈고하면서 여러모로 괴로웠다. 하지만 내 자신에게 이런저런 물음을 던지는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다.


공자가 존경했다는 거백옥은 예순이 될 때까지 육십 번을 변해 오십 구년의 잘못을 깨달았다고 한다. 꼭 자기소개서 방식이 아니더라도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를 종종 만들어서 지난날의 잘잘못을 조회해보면 좋겠다. 미국에서는 인생 목표를 구체적으로 글을 써서 소지한 사람이 나중에 살펴보니 경제적인 부를 누리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진정한 성공이라고 보기에 성급하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내 꿈을 몇 줄 글로 압축해서 써둔다면 자신이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을 좀 더 또렷하게 정리하는데 도움이 된다.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내 과거로 눈길을 돌려보니 아쉬운 지점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세속적으로 인정받는 증서들을 좀 모았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가령 컴퓨터 자격증이나 중국어 급수를 획득하는 식의 몸짓 말이다. 이른바 스펙을 쌓으려는 정성이 다른 사람에게 으스대기 위한, 남을 이기기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경계하면서도 말이다. 아무리 출중한 심사위원이라도 나의 내면을 헤집을 수는 없는 노릇일 테고 일차적으로는 그런 유의 공인된 능력을 평가할 수밖에 없으리라.


장자는 쓸모없음을 알아야 비로소 쓸모 있음을 말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발이 닿는 쓸모 있는 땅만 남겨놓고 그 둘레를 다 파서 없앤다면 딛고 있는 땅이 쓸모없어지고 만다는 비유를 들었다. 내 배부른 소리들과 투덜대던 기억 모두가 나를 채워왔던 일들이다. 나 같이 미욱한 인간을 지탱하는데도 이렇게 많은 것들이 들어가다니 그저 두려울 따름이다. 그래도 자기소개서를 쓰는 순간만큼은 그 두려움이 곧잘 넋두리로 변모한다. 쓸모없어 보였던 나의 행동들이 앞으로 내가 발을 좀 더 내딛을 수 있도록 넓혀둔 터전이라고 넉넉하게 여기기가 쉽지만은 않다.


답답한 마음에 5년쯤, 아니 한 1~2년쯤 시간을 돌릴 수 있으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해봤다. 하지만 “어쩌면 모든 사람의 길은 십 년, 아니 이십 년을 거꾸로 돌릴 수 있다 한들, 지금의 그 길로 다시 갈 수밖에 없을는지 모른다”라는 황주리 선생님의 <마흔 살의 자화상> 한 구절을 접하고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필연적인 귀결을 옹호하지는 않더라도 현재 머무는 내 자리에 감사하는 계기로 삼았다. 첫길을 찾아나서는 일만큼이나 지금 거니는 길을 긍정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모양이다. 절차에 일부 하자가 있지만 유효하다는 말은 자기소개서 쓸 때나 통용된다. 한 개인에게는 제 삶을 무효로 할 권한이 없는지도 모른다.


(미취업이 아닌) 비취업자로 지내는 날이 하루하루 더해지면서 내 본업(?)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어져서 곤혹스럽다. 그간 내 생활에 응용해온 3M의 15% 원칙을 더 이상 적용할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3M이 근무시간의 15%를 자신의 업무와는 무관한 관심 분야에 투자하도록 독려함으로써 새로운 아이디어를 양산하다 보니 포스트잇도 개발하게 되었다는 사례를 슬며시 따라해 왔는데 지금은 그 15%를 산정할 수 없지 뭔가. 한국일보 최윤필 기자님의 연재물 제목처럼 도무지 내 ‘바깥’을 더듬기가 힘들다. 이미 변두리로 나와 있기 때문일까. 그러고 보니 대다수의 자기소개서는 자신이 울타리 안에 성실히 머물렀음을 호소하는 편이다.


207년 삼고초려를 역사적 사실로 인정할 때 제갈공명이 출사한 나이는 27세로 딱 내 또래였다. 당시 기준으로 볼 때 공명이 젊은 날에 활약했다고 보기는 힘들 듯싶다. 삼국시대에서 젊은 날 대성한 사람으로 26세에 사망한 손권의 형 손책이나 24세에 요절한 천재 철학자 왕필 등이 있다. 물론 이런 분들만 있는 건 아니고 위나라 장수 등애가 촉한을 정벌했을 때 연세가 68세였는데 내게 위안을 주는 인물이다. 대기만성이란 말은 게으른 자들의 마지막 피난처인 셈이다.


『삼국지연의』의 공명은 “큰 꿈을 누가 먼저 깨닫는가/ 일평생 내 스스로 알고 있다네/ 초당에 봄잠이 넉넉한데/ 창밖에 해는 아직도 더디 가는구나(大夢誰先覺 平生我自知 草堂春睡足 窓外日遲遲)”라고 멋있게 시 한편 읊으면서 세상에 나온다. 이만하면 꽤 멋진 자기소개서다. 유비를 따라나선 자신이 세상의 먼지에 뒤덮일 것을 자조하면서도 포부를 실현하려고 일어서는 모습이 애틋하다. 설령 공명만큼의 재주가 없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파에 찌들면서 어떤 식으로든 자기 분야에서 유능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이 거드럭거릴 틈을 주지 않고, 무용함은 죄악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일정한 생활 근거가 없으면 한결같은 마음이 없어진다(無恒産無恒心)”라는 맹자의 말씀처럼 젊은이들의 항산(살아갈 수 있는 생업)을 마련하기 위해 각계각층이 뜻을 모으는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상황이 단지 항산이 모자라서 생기는 문제만은 아닌 듯싶다. 항산과 항심의 선후관계가 뒤집어질 이유는 없더라도 항심에 대한 관심도 종요롭다. 항산은 결국 항심으로 이어지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형사법의 고전 체사레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은 그의 나이 27세(한국 나이)에 출간한 책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당분간은 작가의 처녀작이 언제 나왔는지 찾아보는 걸 자제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역시 자신의 고민을 치열하게 녹여낸 한 편의 자기소개서다. 사색의 이력을 이렇게 아담하고 간명한 소책자로 엮어낼 수 있다니 참 부럽다. 닮고 싶은 사람을 좇아가려고 애쓰는 것과 그냥 비교하고 괴로워하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난다. 굳이 비교를 하려거든 남보다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자기를 대상으로 삼아야겠다.


나는 며칠 내로 자기소개서 한 부를 완성해야 한다.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말이 있지만 사흘은커녕 한 달이 지나도록 눈을 비빌 만한 발전을 이루지는 못했다. 늘어난 게 있다면 나를 좀 더 분칠하는 기예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내 항산이 조금 모자라도 내가 품은 항심이 제법 빼어나다는 점을 담아내고 싶다. 그래야만 분식(粉飾) 자기소개서를 면할 수 있으리라. 그 덕분에 배움의 기회를 얻어서 내 가슴이 뛰는 공부,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하겠다며 뻐기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아직 자기소개서에서 해방되지 못한 친구들, 모두 힘냅시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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