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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29 졸업생에게도 도서 대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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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서보경님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안 빌려주자 비로소 대학 졸업을 실감했다. “대출불가 사용자”라는 문구는 내 가슴을 시리게 한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예약제가 있어서 이용도가 높은 도서의 경우 졸업생은 예약도 불가해서 거의 열람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학생 신분이 아니라고 책도 안 읽을 수는 없다. 미취업 혹은 미진학 졸업생들이 당장 거처를 옮길 수는 없고 학교 주변을 맴돌면서 공부를 하거나 책을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말이다. 광야로 내몰린 사람들이 덜 스산하도록 책 몇 권 끼고 다닐 수 있게 해주셨으면 좋겠다.


관련 조사가 거의 없지만 2007년 8월에 <졸업생에 야박한 대학도서관…‘도서대출’ 제한>이라는 제목의 경향신문 기사 정도가 눈에 띈다. 서울시내 28개 대학을 취재했을 때 15곳이 졸업생에게 도서 대출을 허용하지 않았고, 아무 조건 없이 졸업생에게 도서 열람과 대출하는 학교는 경희대 한 곳뿐이었다. 나머지 학교들은 비록 예치금 등의 일정한 제한이 있지만 조건부로 대출을 허용했다. 심지어 휴학 기간에도 책을 빌려주지 않는 학교들도 있는데 너무 박절한 처사다.


나는 요즘 친구나 후배들에게 부탁해 책을 몇 권씩 빌려보는 형편이다. 다행히 2009년 3월부터 학부생에게 기존 5권에서 7권으로 대출책수가 늘어나 조금 미안함을 덜었을 따름이다. 학생증을 타인에게 양도하지 말라는 도서관 이용 수칙을 지키겠다며 책을 빌려줄 사람을 도서관까지 불러 들여야 하니 여간 면구스러운 게 아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제자인 우선 이상적(李尙迪)이 보내준 책을 받고 그 정성에 감격하여 그려준 그림이 바로 세한도(歲寒圖)다. 세한도 발문을 읽다가 내게 책 보시를 해준 이들의 따뜻한 마음자리를 생각했다.


어떤 대학들은 지역 주민에게도 도서관을 개방한다고 들었지만 대학 당국이 우선 졸업생들에게 한두 권이라도 도서 대출을 허용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주셨으면 한다. 도서관이 공공성 이전에 제 몫의 사사로움을 다하는 길이다. 잡 셰어링 이야기가 많지만 북 셰어링도 긴요할 듯싶다. 재학생에 비해 더 적은 권수를 짧게 빌려주고 연체에 대핸 제재를 강화한다면 못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혹여 재학생들의 도서 이용에 불편을 줄까봐 큰 목소리로 외치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지역의 공공도서관을 활용하는 방안도 있겠지만 공공도서관과 대학도서관은 장서를 보유하는 양상이 다르다. 전공서적 혹은 학술서적은 아무래도 대학도서관 사정이 낫기 때문이다. 정확한 통계는 찾지 못했지만 장서수나 시설 면에서 공공도서관을 능가하는 대학도서관이 수두룩할 게다. 대학도서관은 공공도서관에 견주어 수는 적지만 장서수는 훨씬 많다고 한다. 열악한 공공도서관 상황 때문에 주민들에게 대학이 도서관 문을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지만 당장 힘들다면 학교 구성원이던 이들이라도 먼저 헤아려야 한다.


2008년 8월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가 발표한 도서관발전 종합계획에 따르면 2013년까지 607개(2007년 말 기준)인 공공도서관을 900개까지 늘린다고 되어 있다. 또한 현재 1권 남짓한 국민 1인당 장서수를 1.6권 수준인 8천만 권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1인당 장서수는 미국이 3권(2004년 기준), 일본이 2.8권(2006년 기준), 프랑스가 2.5권(2003년 기준), 영국이 1.8권(2005년 기준), 독일이 1.5권(2005년 기준)으로 우리가 많이 모자라다. 양이 부족하답시고 질로 승부할 역량도 아니니 문제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OECD 가입국 가운데 28개국을 대상으로 분석한 대학도서관 현황(2001∼2002년 기준)을 보면 우리나라 학생 1인당 대학도서관 장서수는 44.2권으로 20위였다. 아이슬란드는 141.6권으로 가장 많았고 미국이 131권으로 뒤를 이었다. 일본도 92.6권으로 우리의 2배가 넘었다. 2008년 한국대학교육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학생 1인당 장서수가 2000년 43.5권에서 2007년 58.5권으로 15권 증가하는 데 그쳤다고 한다. 도서관 관련 통계를 신문기사 검색을 통해 산발적으로 접했는데 앞으로는 도서관 관련 통계가 체계적이고 주기적으로 관리되길 바란다.


숙명여대가 국내 대학 중 최초로 ‘학사후 과정(Post-Bachelor Program)’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밝힌 이후로 몇몇 대학들이 이와 유사한 대책을 내놓은 것은 그 실효성 여부를 떠나 반가운 일이다. 물론 그 학사후 과정에는 도서관 대출 가능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최근 순천향대가 ‘졸업생 회원제’를 도입해 졸업생들도 간단한 가입 절차만 거치면 재학생과 똑같이 도서관 도서를 대출할 수 있도록 했다. 온라인 논문 검색, 열람실 및 스터디룸 사용, 멀티미디어존 등 도서관의 모든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한 그 애틋한 마음이 고맙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구상하는 ‘미취업 대학 졸업생 지원 프로그램(Stay-in-School)’은 채용 지원과 교육훈련 지원 사업으로 나뉘는 모양이다. 채용 지원은 사실상 현재의 행정인턴과 흡사해 보이고, 교육훈련이 좀 솔깃했다. 각 대학이 취업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정부가 대학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교육훈련이 내실 있게 운영된다면 언 발을 좀 녹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구체화되지 않아서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눈에 보이는 실업률만 낮추려고 인턴만 양산하기보다 교육을 좀 더 받을 기회를 넓혀줬으면 한다. 도서 대출도 그런 맥락이다.


2008년 4분기 전국 가구당 월평균 교양오락비는 9만 7천원으로 1년 전에 비해 8.1% 감소했다. 소비지출 기본 항목 10개 가운데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한 셈이다. 항산(恒産)이 위태롭더라도 우리의 항심(恒心)을 건사하기 위해 책을 사보거나 문화유산을 완상하고, 공연을 관람하는 등의 행위를 너무 줄이지 않기를 희망한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2008년도 출판통계에 따르면 책 1권당 평균 가격은 1만 2116원이었다. 책값이 비교적 싼 아동도서와 만화책, 문학 분야 도서를 제외한 많은 분야의 책값이 2만 원에 육박한다. 일감이 없는 졸업생들이 이 돈을 치를 여유가 없음은 자명하다.


읽고 싶은 책을 죄다 사볼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에는 빌리거나 헌책을 구해야 한다. 인터넷서점들이 중고도서 시장에 속속 진출하고는 있지만 중고도서 유통망이 갈 길은 멀다. 설령 중고도서 시장이 활성화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모든 종류의 책이 헌책으로 나와도 그것을 다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세계 10위권의 출판대국이라는 칭호가 속빈 강정이라는 비판도 많지만 오늘도 읽을 만한 책은 쏟아지고 있다.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이 책을 빌려보지 못한다면 나라의 불행이다. ‘도서 복지’의 개념으로 접근해보자.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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