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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2.08 종부세 고지서와 함께 단잠을!
2006년 개인주택 종부세 부과대상은 23만7000명 정도다. 전국 주민등록상 세대수 1777만 세대의 1.3%를 차지한다. 종부세를 내야할 납세자의 71.3%는 2채 이상의 다주택 보유자라고 한다. 전군표 국세청장님은 “종합부동산세 대상자중 65세이상의 1가구 1주택자라도 예외를 둘 정도로 극히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한상률 국세청 차장님에 따르면 세부담 능력에 따른 분석 결과를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라고 하니 좀 더 두고봐야겠다. 집 한 채가 전부인 봉급생활자나 은퇴자들이 투기와는 무관하더라도 서민들에 비해 담세능력이 월등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부동산 과다보유 규제와 투기억제라는 정책목표에 비추어 이분들의 세금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을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보유세 비율은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라고 한다. 미국은 보유세와 거래세의 비율이 98대 2 정도이며 영국은 89대 11, 일본은 95대 5 정도를 차지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77대 23의 비율이다. 부동산 보유에 대한 실효세율도 0.4~0.6%로 1% 이상인 미국, 영국, 일본보다 낮은 편이며, 전체 세수 대비 부동산세 비율도 한국이 9.6%, 일본 13.9%, 미국 11.3%, 영국 10.7%로 낮은 편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세금폭탄이라는 레토릭은 국제적 시각이라기보다 국내용 선전 문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실현이익에 대한 과세는 과잉금지에 위반된다는 주장과 종부세는 이익에 부과하는 과세가 아니라 보유에 대한 과세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데 후자가 좀 더 설득력 있다. 다만 주택이 자산의 70~80%를 차지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무시하기 어려운 만큼 1주택자에 한해 종부세를 경감하는 건 수긍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정책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말이다.


아무리 종부세의 허점이 적잖다고 해도 중앙일보의 11월 18일자 <내달 `종부세 폭탄` 터진다> 제하의 기사는 매우 불편하다. 기사인즉슨 11년 전에 2억원으로 장만한 아파트가 현재 13억원으로 오른 서울 대치동의 이모씨가 258만원의 종부세와 1억3400만원의 양도세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사연을 소개한 것이다. 대다수 성난 누리꾼들과 마찬가지로 “종합부동산세 때문에 요즘 밤잠을 설친다”는 그 애틋한 사연에 함께 눈물 흘리지 못하는 내가 참 못된 놈인지도 모르겠다. 이 땅의 가련한 부자들의 간절한 호소를 귀담아 듣지 않는 오만불손함을 반성(!)한다. 비록 미실현이익이기는 하지만 11억원의 시세차익에는 한마디 언급도 없어 섭섭하다. 대다수 서민들이 꿈꾸지 못할 위치에 있는 분의 고충을 1면 톱으로 게재하는 건 서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국세청은 종부세가 “선택된 소수가 납부하는 '아름다운 되돌림!'이라며 “종합부동산세 납세의무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대한민국 1%의 고귀한 의무”라고 홍보한다. 그러나 우리네 경제적 상류층은 너무 겸손하셔서 그런 고귀한 의무보다는 서민의 자세로 내려오길 간절히 바라는 것 같다. 마르크스는 사회의 계급 구성원들이 자신의 객관적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를 ‘허위의식(false consciousness)’라고 설파한 바가 있다. 이 때의 허위의식은 피지배계급이 계급의식이 결여된 상태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우리 사회는 경제적 상층에 자리잡은 분들이 계급의식에 너무 철저해서 문제다. 참여정부가 계급의식을 조장해 편을 가른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누가 계급의식에 더 열심인지를 곰곰이 따져봤으면 좋겠다. 설마 계급의식에도 귀천이 있단 말인가.


정몽주가 선죽교로 향하는 밤 마지막을 함께 지키던 녹사(말을 모는 사람) 김경조가 자기와 더불어 봉변을 당할까봐 혼자 가겠다며 녹사와 동행하지 않으려 한다. 녹사는 이를 거부하고 마지막까지 정몽주 곁을 지키다 죽음을 당하는 이야기를 많이들 기억할 것이다. 지어낸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게 보수층 혹은 상류층의 참모습이 아닐까 싶다. 지켜야할 것을 지키되 자기가 먼저 헌신하는 분들이 밤잠을 그만 설치고 두발 뻗고 주무셨으면 좋겠다. 에드먼드 버크는 “사랑과 현명함이 인간에게 함께 주어지지 않듯이 세금과 기쁨도 마찬가지다”라고 말씀하셨지만 때로는 납세할 수 있다는 것도 기쁨이다. 나도 종부세를 내기 위해 밤잠을 설쳐 공부해봐야겠다. 그런 다음 종부세 고지서를 받아 들고 단잠을 자야겠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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