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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0.12 재미난 비용질병 이야기 4

거시경제학에서 생산성이 정체된 산업에서 비용과 가격이 오르는 현상을 Baumol의 비용질병(Cost Disease)이라고 한다. 이는 산업 부문에 따른 생산성 증가의 속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비용질병은 대부분 비교역 재화를 생산하는 서비스산업에서 발생된다. 서비스 부문에서 생산성 향상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노동을 기계설비로 대체하기가 힘들거나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교역재를 생산하는 제조산업의 경우 비싼 노동력을 기계가 대신하고 있어 노동생산성이 증가하지만, 비교역재를 생산하는 서비스산업은 생산성 지연(productivity lag) 문제를 겪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베토벤의 현악 4중주를 연주하는데 네 사람의 연주자와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북·장구·징·꽹과리로 연주하는 사물놀이에서 하나를 빼서 삼물놀이로 바꾸기는 여간 힘들 것이다.


국민소득이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이었을 경우에는 비교역재도 마찬가지로 저렴한 편이었으나 제조업 생산성이 증가하고, 국민소득이 향상되면서 생산성 향상이 더딘 비교역재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비용 증가를 유발하게 된다. 예를 들어 노트북 컴퓨터나 휴대전화기의 가격은 자꾸 떨어지지만 교육비 지출은 가파르게 증가하는 현상을 들 수 있다. 자본집약적 제조업의 실질임금이 상승하면 노동집약적 서비스업의 생산비용도 상승하고 이에 따라 비교역재 가격을 인상시키는 파급효과를 가져다 준다.


만약 노동생산성에 따라 임금이 지급되어야 한다고 한다면 오페라 배우는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실질임금이 별 차이가 없어야 하는데 아마도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오페라 배우직을 그만 둘 것이 분명하다. 반면에 공연예술이 가격이 다른 상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싸지면 서민과 중산층의 문화생활이 제약되는데 이 또한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이는 문화산업에 대한 정부 등의 지원의 논거가 된다. 가령 가수 비의 소득이 조용필의 열 배라고 가정하자. 그러나 가수 비는 조용필보다 노래를 열 배나 더 잘 부르는 것은 아님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유명 연예인의 엄청난 수입 증대는 연예인의 능력 향상보다는 삼성전자의 활약에 기인하는 바가 큰 셈이다.


비용질병이론을 개방경제로 확대 적용해보면 대한민국 대학교수와 미국 대학교수의 강의 질은 거의 차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임금은 현저하게 차이나는 까닭을 설명해준다. 이는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의 교역재 생산성이 비교적 높기 때문에, 비교역재 가격도 덩달아 높아지게 되어 결과적으로 물가가 더 높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생산성 향상과 경제성장은 장기적으로 비교역재의 교역재에 대한 상대가격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져다 주는데 이를 Balassa-Samuelson 효과라 한다.


비용질병이론은 몇몇 대기업들의 매출 성장이 반드시 더 나은 삶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시사점을 제시한다. 또한 비용질병은 피할 수 없지만 쓸데없이 더 늘리지는 말아야 하나는 교훈을 준다. 서비스산업의 생산성 향상이 비용질병 문제를 해소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안이겠지만 사실상 쉽지 않다. 일례로 농업 개방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농업은 비교역적 성질이 강하기 때문에 생산성이 낮더라도 함부로 포기해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한다. 여하간 일반 국민들의 후생수준을 높이는 경제발전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거 같다. 비용질병의 개념에 대한 설명으로 내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신 김경수 성균관대 교수님께 각별한 고마움을 표한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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