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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4.27 열녀전, 列女와 烈女 사이 3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서평으로 올린 글입니다)

 

『열녀전(列女傳)』은 중국 전한(前漢, 서한) 말기의 문헌학자 유향에 의해 저술된 중국 여성들의 전기다. 대개의 사람들이 짐작하듯이 나 또한 列女가 아니라 烈女들의 전기라고 생각했다. 유교적 여성 이데올로기에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은 제목만 보고 이 책을 멀리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실제 책 제목은 무던하게도 여인열전 정도다. 제목도 제대로 확인 안 하고 오해해 유향 선생께 미안하다. 변명하건대 유향 선생의 『전국책(戰國策)』, 『설원(說苑)』, 『신서(新序)』 등을 좋아하는 팬이니 너그러이 헤아려주시길.


물론 列女들 가운데 烈女에게 주안점을 두고 읽힌 건 사실이다. 인지전(仁智傳)과 변통전(辯通傳)에는 지혜로운 여성들이 대거 등장한다. 사람을 변별하고 정치적 현상을 조망하는 안목, 전고(典故)를 헤집는 통찰력, 권력의 부조리를 지적하는 용기 있는 여성들이 적잖다. 그런데 이 재주 있는 여성들은 자신의 재능을 자신의 치부를 위해 쓰지 않는 희생정신까지 보인다. 조나라 장수 조괄의 어머니와 조나라 필힐의 어머니 정도가 예외다. 이 분들이 자식의 허물로 말미암아 자신들까지 처벌되는 건 곤란하다며 항변하는 건 인상적이다.


자식과 남편에게 쓴소리를 하는 것도 죄다 그네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나는 여성들의 지혜와 식견이 남성을 위한 것으로만 복무하는 구조가 은연중에 엿보였다.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이 가로막힌 사회에 자식과 남편을 통해 욕망을 실현해야 하는 설움 같은 게 느껴진다. 유리 천장(glass ceiling)은커녕 강철 장벽이 놓여 있을 때 체념하기보다 대리분출이라도 하려는 노력이 애틋하다. 미안하고 고맙다. 옛 여성들의 기록을 복원하는 건 고구려 말기의 사적을 당나라측 기록에 의지해 반추하는 씁쓸함이다.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제나라 재상 안자(晏子)의 마부 아내 이야기는 다시 들어도 기껍다. 남편이 안자를 모시고 말을 끄는 모습을 본 아내는 남편에게 안자는 재상이 되어서도 신중하고 낮추는데 당신은 그의 마부에 지나지 않으면서 뭐가 그리 의기양양하냐고 핀잔한다. “안자의 지혜를 품고서 거기에 팔 척의 키를 더하십시오. 인의를 실천하며 현명한 주인을 섬긴다면 그 명예가 반드시 드러날 것입니다. 또 '차라리 의를 즐기고 천하게 지낼지언정 헛된 교만으로 귀하게 되지는 않는다'고 들었습니다(是懷晏子之智, 而加以八尺之長也. 夫躬仁義, 事明主, 其名必揚矣. 且吾聞, ‘寧榮於義而賤,不虛驕以貴’)”는 충언도 잊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史記) 관안열전(管晏列傳)에 나온다. 시기상으로 더 앞서니 열녀전 고사는 이것을 윤색했을 게다. 관안열전의 마부 아내는 남편에게 실망한 나머지 떠날 것을 청할 정도였다. 아마 열녀전의 전체적 분위기에서 이혼 선언은 안 어울려서 빼고 대신 좀 더 곡진한 충고를 삽입한 모양이다. 관안열전에서 안자의 키가 6척이 채 되지 않는다(長不滿六尺)며 마부의 우람한 체격과 비교하는데, 열녀전에서는 3척(長不滿三尺)이 못 된다고 키를 반 토막 내버렸다. 아마 옮겨 적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거나 마부의 떡대를 부각시키기 위해 일부러 과장된 표현을 썼을 게다. 후자라면 열녀전에 소설적 측면이 다분함을 엿볼 수 있다. 유향 선생도 사기를 읽다가 나처럼 이 대목이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남편이 말귀를 알아듣고 몸가짐을 삼가 안자에게 더 중용되었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마부의 아내는 인종(忍從)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관안열전의 기록을 볼 때 남편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생각을 한 거 같지도 않다. 그러나 마부의 아내는 그 누구 못지않게 여성적 매력으로 충만하다(내가 보기에는). 그가 오늘날을 산다면 어떨까? 남편에게 매여 꽃 피우지 못했던 가능성을 펼칠까? 아니면 가탈스러운 페미니스트라며 흘김을 받을까? 이 시대라고 여자의 말을 귀 담아 듣지 않는 남자의 비율이 크게 줄었을 거 같지는 않다. 나 또한 협상의 대상이 아닌 배려의 대상으로만 여성을 보려고 한다. 반성한다.


여하간 열녀전은 다양하게 변주되어 퍼졌다. 한국에서는 이와 같은 시도가 고려사 열전에서 처음 보인다. 조선의 사가들은 열전에 열녀전을 수록하며 한자를 列에서 烈로 바꾸어 놓는다. 옛날 여자는 처녀 때는 현숙한 여자가 되고, 시집가서는 현숙한 부인이 되었으며, 사고를 당해서는 열녀가 되었는데 요즘 여자는 그렇지 않아 “꿋꿋이 서서 어려움을 당하고도 이를 무릅쓰고 죽음으로써 그 지조를 바꾸지 않는 자는 찾기 어렵기에(其卓然自立 至臨亂冒白刃 不以死生易其操者 嗚呼可謂難矣)” 열녀전을 짓는(作烈女傳) 까닭을 밝히고 있다. 列女와 烈女의 작은 뜻빛깔 속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고통을 당했을까 상상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


유향 선생의 열녀전이 첫 시도임에도 가장 나은 모습을 보인 편이라는 게 놀랍다. 후세 사가들이 여성의 정절에만 집중해 편의적이고 형식적으로 지면을 할당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물론 전한 성제(成帝)가 애첩 조비연 등과 놀아나는 게 마뜩잖다는 열녀전 저술 동기가 엄연하다. 그러나 유향 선생은 그것을 편협하게 풀지 않고 유교적 덕목의 너름을 뽐내기라도 하듯 무늬만이나마 다채로움(Variete)을 시도했다. 화재 현장에서 보모(保姆)가 올 때까지 방에서 나가지 않는 법도를 지키다가 불에 타죽은 백희(伯姬)가 있는가 하면, 촛값을 못내 쫓겨날 처지가 된 서오(徐吾)가 “한 방에 나 하나가 더 있다 하여 촛불이 따로 닳는 것도 아닌데 촛불을 왜 아끼는가?”라며 재치를 발산하기도 한다.


적어도 몇 대조가 이런 벼슬을 했고 무슨 문집을 남겼다 식의 족보보다 훨씬 재미나고 유익하다. 물론 시대적 상황이 이런 단편적인 기록 하나만 남기도록 허락했겠지만 유향 선생의 글 묶는 솜씨는 역시 빼어나다. 열녀전에서 어떤 여성주의의 밀알을 기대하는 건 과욕이다. 그렇다고 그러면 그렇지라며 샐쭉 토라지는 것도 무성의한 태도다. 비록 남성들에게 재단되긴 했지만 좀처럼 접하기 힘든 옛 여인들의 이야기인 만큼 복선 없이 읽었으면 좋겠다. 상고주의(尙古主義)하자는 게 아니라 희소가치에 대한 호기심과 독점을 막자는 균형감각을 발휘하자는 뜻이다.


열녀전을 덮고 나니 지난 4·25 재·보선에서 아들을 당선시켜 달라며 휠체어를 타고 무안과 신안을 누비던 이희호 여사가 문득 애처로워졌다. 오냐오냐 키우느라 싫은 소리 할 줄 모르는 어머니, 캐비어만 먹을 수 있다면 좌우 볼 거 없다는 아내, 권세의 흐름에만 민첩하고 돈 헤아리는 데만 눈이 밝은 싱글들이 과거에 비해 더 늘었다(내 편견이다). 여성들이 제 욕망을 스스럼없이 발현하는 건 환영할 일이고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그 욕망이 좀 더 좋은 쪽으로 발현되기를 희망하는 건 여성 억압이 아닐 게다(그렇게 따지면 전 남성 혐오증 환자이려고요?^^;). 내 둘레에 매력적이고 기품 있는 여성들이 늘기를 바라는 마음은 적잖은 남성들의 앙큼한 바람일진저.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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