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은 자신의 호를 짓거나 남에게 호를 지어 줄때 그 글자의 출전이나 뜻을 밝힌 글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것을 호변(號辨) 또는 호기(號記)라고 하는데 옛사람들의 글 중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새로 바꾼 호에 대한 호변을 좀 늘어놓으려고 합니다. 소선(小鮮)을 쓴지 7개월 만에 새로운 호를 쓰게 되어 제 변덕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 민망합니다. 하지만 제가 쓰는 호라는 게 재미 반, 목표 반이니 만큼 앞으로 평생 쓰겠다 싶은 호가 나오기 전까지는 또 변경되고 그럴 듯합니다. 아호에 대한 전반적인 개념 소개는 익구닷컴 “아호(雅號) 단상 - 小鮮에 부쳐”라는 글을 참조해주세요.



내 초등학교 일기장에는 『사기』 맹상군열전(孟賞君列傳)을 읽고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맹상군의 정신을 본받아야겠다는 구절이 보인다. 얼마 전에는 역사 속 장애인 이야기를 다룬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제목의 책이 나오기도 했다. 그 책의 모티브가 된 것은 박연의 상소문이었는데, 박연은 시각장애 악공들의 처우 개선을 요청하며 “세상에 버릴 사람이 없다(天下無棄人也)”고 말한다.<주1> 물론 무기(無棄)라는 표현은 비단 박연의 독창적인 표현이라고 보기는 힘들고 자주 쓰이는 관용구였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전국시대 제나라의 맹상군은 그 전성기 때 6만호의 식객들을 거느리고 살았다고 한다. 오만 사람이 다 모였을 텐데 그러다 보니 계명구도(鷄鳴狗盜)라는 고사도 나오게 된 것이다. 닭 울음소리나 내고 개구멍으로 물건을 훔치는 따위의 변변치 못한 재주도 버리지 않았던 맹상군의 사람 쓰는 재주는 오늘날에도 많은 영감을 준다.<주2>


버림이 없다(無棄)와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는 『춘추좌전』 성공(成公) 9년조에 거(莒)나라가 방비를 마련하지 않고 있다 초나라에 망한 사실을 둔 이야기<주3> 가운데 나오는 “비록 실과 마로 짠 베가 있다 해도 띠풀이나 왕골 같은 물건을 버리지 말 것이며, 희성 같은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 할지라도 여위고 못생긴 이를 버리지 말 일이다. 무릇 모든 군자에게는 자신의 결함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雖有絲麻 無棄菅蒯 雖有姬姜 無棄蕉萃 凡百君子 莫不代匱)<주4>”가 있다. 여기서는 거나라가 방비를 소홀히 함을 지적하며 유비무환의 자세를 강조한 말이지만 뛰어난 것이 있다고 모자란 것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자세를 일컫는 말로도 많이 쓰이게 된다.


명주실(絲)과 삼실(麻)은 좋은 옷감을 만드는 실로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을 비유한다고 할 수 있다. 설령 그렇더라도 질 나쁜 갈(菅)이나 사초(蒯)로 비유된 미천한 사람을 버리지 말라는 뜻이다. 무기관괴(無棄菅蒯)<주5>의 고사는 『삼국사기』 설총 열전에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설화로 알려진 화왕계에서 백두옹(白頭翁, 할미꽃)의 말 가운데 “옛말에 이르기를, 비록 사마(絲麻)가 있다고 해서, 관괴(菅蒯)를 버리는 일이 없고, 군자는 부족에 대비하지 않음이 없다(故曰 雖有絲麻 無棄菅蒯 凡百君子 無不代匱)”라며 춘추좌전을 인용하는 대목이 나온다.<주6>


『도덕경』 27장에는 “그러므로 성인은 언제나 사람을 잘 도와주고, 아무도 버리지 않습니다. 물건을 잘 아끼고, 아무것도 버리지 않습니다. 이를 일러 밝음을 터득함(襲明)이라 합니다(是以聖人常善求人 故無棄人 常善救物 故無棄物 是謂襲明)”라는 구절이 있다. 왕필(王弼)은 주석을 통해 성인은 나아갈 것과 향할 것을 만들어서 진보에 뒤쳐지는 사람들을 못났다고 버리지 않으며, 저절로 그렇게 됨을 도와줄 뿐 새롭게 일을 시작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버리는 일이 없다”라고 풀이한다.<주7> 노자의 “사람을 버리지 않음”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갈라서 차별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보인다. 모든 사람과 사물을 한결같이 대한다는 점에서 보통사람의 차별주의적 세계관을 뛰어 넘어 선악과 시비를 초월해 존재하는 것 같아 조금 공허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식의 공허한 개념이라기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혹은 세속적으로 해석해서 사람을 구제하기를 즐기며, 스스로의 편견으로 말미암아 함부로 버리는 사람이 없는 자세로 본다면 얼마든지 실천 덕목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회남자』에서도 이런 식으로 해석해서 “사람에 버릴 사람 없고, 물건에 버릴 물건 없다(人無棄物 物無棄物)”고 말하고 있지 않나 싶다. 편견과 집착을 버리고 사람을 대하려는 노력은 『맹자』에서 “탕임금은 중용을 실천하시고, 어진 이를 쓰는 것에 모난 것이 없으셨다(湯執中 立賢無方)”라고 한 것과 통한다. 無方을 “일정한 방법이 없다”로 해석하여 신분이나 지역 또는 출신을 따지지 않고 어진 사람이라면 등용했다라고 풀이하기도 하고, “같은 무리를 찾지 않는다”라고 해석하여 오직 그 사람이 현명한가 아닌가로만 판단해야 한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어떻게 해석하든 간에 편견과 편애에 대한 절제와 경계를 일컫는 말이다.


내 새로운 자호(自號, 스스로 자신의 호를 지음)를 무기(無棄)로 하려 하는 건 이런 너그러움을 갖추고 싶기 때문이다. 너그럽다는 행위는 나와 다른 것을 인고(忍苦)하는 것이며, 그 사람의 약점에 천착하기보다 장점을 도두보는 노력이다. 훌륭한 목수는 버리는 재목이 없고,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으며, 웅숭깊은 스승은 아랫사람에게서 배우며, 부지런한 학생은 자신이 증오하는 것에서도 장점을 취한다.<주8> 『사기』 이사열전(李斯列傳)에서 진시황이 다른 나라 출신들을 의심해 모두 국외로 추방하려는 축객령(逐客令)을 내릴 때 초나라 출신 이사는 간축객서(諫逐客書)라는 상소를 올린다. “태산은 작은 흙덩이도 사양하지 않았기에 그처럼 크게 되었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았기에 그처럼 깊게 되었다(泰山不辭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이라는 이사의 주장에 진시황은 축객령을 철회하고 이사를 중용함으로써 마침내 천하통일을 이뤄낸다. 편협하거나 불의에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너그럽고 섬세하며 온유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신작 『부의 미래(원제 Revolutionary Wealth)』에서 ‘쓸모없는(obsolete)’과 ‘지식(knowledge)’을 결합해 만든 ‘무용지식(obsoledge)’라는 신조어를 통해 쓸모없는 지식의 폐단을 지적한다. 하지만 그것을 사람에게 적용해서 무용(無用)한 사람이란 것은 성립할까? 내 잣대에 어긋나는 사람을 함부로 내칠 수 있을까. “모든 사람들을 만족스럽게 하는 것은 아무도 할 수 없는 재주다(Allen Menschen recht getan ist eine Kunst, die niemand kann)”라는 독일 속담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나는 그저 “그 사람의 약점으로 그의 장점을 버리지 않음(不以人所短棄其所長)<주9>”을 실천하고 싶다. 지금도 여전히 배운 것은 부박하고 성정은 거칠지만 좀 더 긴장하고 의식하며 열린 마음을 품기 위해 애써야겠다. 내가 어떤 공부를 하든, 무엇으로 밥 벌어 먹고 살든 간에 남의 눈에 서러운 눈물 흘리게 만들기 보다는 그 눈물을 닦아 주거나 그도 아니면 차라리 함께 울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그 눈물을 덜 흘리게 하는 일을 하는 것도 값지겠지만.


‘버리지 않는다’는 불기(不棄)와 ‘버림이 없다’는 무기(無棄)는 뜻빛깔이 미묘하게 차이난다. 불기(不棄)는 세상에는 버려야 할 사람도 있지만 기왕이면 덜 버리고 끌어안고 가겠다는 의미인 반면, 무기(無棄)는 애초에 버림 받을 사람이란 없다는 좀 더 적극적인 의미로 볼 수 있다. 혹시 버림 받은 사람도 다시 거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물론 이건 내 멋대로 해석이고 아닐 不 보다는 없을 無자가 좀 더 맘에 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끝으로 불가의 역행보살(逆行菩薩)을 떠올려 본다. 남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일부러 못된 짓을 하는 이로 변장한 보살, 스스로 반면교사가 되어 중생을 가르치는 보살이라는 넉넉함이 애틋하다. 내 미움을 좀 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다 내 옹졸함이 빚어낸 것임을 자각하고, 내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이들에게서도 배워야겠다. 사람이든 꿈이든 원칙이든 내가 맺은 인연을 함부로 포기하지 않기를 다짐한다.


“그래. 난 정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라는 만화 슬램덩크의 명언이 떠오른다. 버릴 사람은 없다. 신념을 버리지 않겠다. 꿈을 포기하지 말자. - [無棄]


<주석> 다양한 출전 정보와 용례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주1>
박연의 상소를 일부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의 제왕은 모두 시각장애인을 사용하여 악사를 삼아서 현송(絃誦)의 임무를 맡겼으니, 그들은 눈이 없어도 소리를 살피기 때문이며, 또 세상에 버릴 사람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미 시대에 쓰임이 된다면 또한 그들을 돌보아 주는 은전이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古先帝王皆用瞽者, 以爲樂師, 委之絃誦之任, 以其無目而審於音, 且以天下無棄人也。 旣爲時用, 則疑亦有矜恤之典也。
- 『조선왕조실록』 세종 54권 13년 12월 25일 (병진) 005 / 박연이 무동의 충원과 방향의 제조, 맹인 악공 처우 등의 일을 아뢰다


<주2>
하지만 송(宋)나라의 정치가이자 문학가였던 왕안석(王安石)은 「독맹상군전(讀孟嘗君傳)」이라는 글에서 이런 내 견해를 통렬히 반박한다. 그에 따르면 “맹상군은 그저 계명구도들의 우두머리일 뿐이다. 어찌 선비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孟嘗君特鷄鳴狗盜之雄耳 豈足以言得士)?”라고 말한다. 제나라의 강성함을 마음대로 활용한 위치에 있었던 맹상군이 한 사람의 선비를 얻었다면 계명구도의 힘을 빌리지 않았어도 진나라를 제압할 수 있었다는 논설이 날카롭다. 즉 맹상군은 참된 선비는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주3>
춘추좌전은 시경(詩經)을 인용했는데 이는 일시(逸詩)다. 일시(逸詩)는 시경과 같은 시대에 읊어진 고시로서 지금 전하는 시경(詩經)에서 빠진 것이다. 실전되어 시경에 싣지 못한 옛 시라고 보면 된다.


<주4>
춘추시대 희(姬)는 주(周)나라의 성이고, 강(姜)은 제(齊)나라의 성이다. 그래서 희강(姬姜)하면 큰 나라 여인을 가리키며, 또한 여인의 아름다움을 가리키기도 한다. 다른 풀이에서는 희강(姬姜)이 전설적인 삼황오제인 황제(黃帝)가 姬성, 염제(炎帝)가 姜성인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한다. 여하간 본래 대국의 왕비, 궁중의 여인이란 뜻에서 미인의 범칭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주5>
관괴(菅蒯)를 버리지 않는다의 용례를 이율곡 선생의 상소에서 만날 수 있다. 관괴를 버리지 않았다는 말은 옛사람들이 겸양을 표하는 상투적 표현이었던 셈이다.

신은 본래 경솔하고 졸렬하여 스스로 쓸 만한 인재가 못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초야에서 지내는 것을 감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성상께서 관괴(菅蒯)를 버리지 않으시고 과분한 은혜를 누차 내리셨으므로 감히 끝내 피하지 못했는데, 한 번 은총과 영광에 얽매이게 되자 혼미해져 돌아설 줄을 모르게 되었습니다.

臣本輕踈迂拙, 自知非才, 甘老溝壑。 幸際聖明, 不遺菅蒯, 誤恩屢下, 不敢終遯, 一縻寵榮, 迷不知返。
- 『조선왕조실록』 선조수정 17권 16년 6월 1일 (신해) 002 / 양사가 이이를 파직시킬 것을 연계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자 중지하다

또 무기(無棄)는 태평성세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김육의 『잠곡유고(潛谷遺稿)』에는 유배를 가는 아들에게 그리며 읊은 시에서 “성조에선 버려지는 사람 없으니(聖朝無棄物)”라고 노래했고, 이덕무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는 “성명 세대라 버려진 물건 없음을 비로소 알았으니/ 이제부터 남은 여생 벼슬길에 맡기리(始識明時無棄物 從今日月屬官家)”라며 자신이 벼슬길에 나간 것을 감개무량해하고 있다.


<주6>
서애 유성룡은 널리 인재를 구할 것을 청하는 계에서 무기관괴(無棄菅蒯)를 언급하는데 다음과 같다.

옛사람이 “비록 사마(絲麻, 명주실과 삼실)가 있어도 관괴(菅蒯, 왕골과 기령풀)를 버리지 말라.[雖有絲麻無棄菅蒯]” 한 것은 작은 재주도 반드시 취하란 말이요, “비록 희강이 있어도 초췌함을 버리지 말라.[雖有姬姜無棄憔悴]” 한 것은 천한 사람도 버리지 말라는 말이며, “순무를 캐고 무를 캐는 것은 뿌리만을 먹으려는 것이 아니다.[采葑采菲無以下體]<*>”라는 것은 나쁜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을 가지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 말대로 하면 사람을 등용하는 도리를 다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사람이 반드시 구비하기를 구하여 비록 백 가지 장점이 있으나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버려서 취하지 않습니다. 또한 문벌로 한정하고 지위와 명성으로 비교하여 비록 탁월한 재주가 있어도 불행히 한미한 가문에서 태어나면 사람들이 모두 업신여겨서 돌아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하고서도 남의 작은 허물이나 숨은 잘못을 드러내는 데에는 교묘하여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비방하는 가운데에 있어서 하나도 온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고서도 초야에 버려진 현인이 없고 모든 공적이 다 빛나기를 구하니, 또한 어렵지 않겠습니까. 옛적에는 사람 취하는 도리가 심히 넓어서, 혹은 노예에서 발탁하고 혹은 군사에서 뽑으며, 혹은 장사치에서 떨쳐 올려서 오직 재주만을 취하고 다른 것은 묻지 않았으니, 진실로 까닭이 있습니다.
- 『서애선생문집(西厓先生文集)』卷七 啓辭 제7권 請廣取人才啓九月

* 采葑采菲 無以下體(채봉채비 무이하체)는 시경(詩經)의 패풍(邶風) 곡풍(谷風)에 있는 말로, 봉(葑)과 비(菲)라는 채소는 잎줄기는 아름답지만 뿌리가 좋지 못하다. 그러나 뿌리가 나쁘다 하여 좋은 줄기까지 버릴 수 없다는 말이다. 일부의 나쁜 점 때문에 전체의 좋은 점을 버릴 수 없다는 뜻으로 雖有絲麻 無棄菅蒯, 雖有姬姜 無棄憔悴와 비슷한 맥락이다.


<주7>
사람을 버리지 않음(無棄人)에 대한 왕필 주석 전문은 다음과 같다.

성인은 실제의 성적(形)과 의론(名)의 일치를 내세워 사물을 구속하지 않고, 나아갈 것과 향할 것을 만들어서 진보에 뒤쳐지는 사람들을 못났다고 버리지 않는다. 만물의 저절로 그렇게 됨을 도와줄 뿐 새롭게 일을 시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을 버리는 일이 없다”라고 했다. 현명하고 유능한 이들을 기리지 않으면 백성들이 다투지 않고,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이 도적이 되지 않고, 욕심날 만한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백성들의 마음이 혼란되지 않는다. 늘 백성들의 마음이 욕심 없도록 하고 현혹되지 않도록 한다면 사람을 버릴 일이 없다.

聖人不立形名以檢於物, 不造進向以殊棄不肖. 輔萬物之自然而不爲始, 故曰 無棄人也. 不尙賢能, 則民不爭, 不貴難得之貨, 則民不爲盜, 不見可欲, 則民心不亂. 常使民心無欲無惑, 則無棄人矣.


<주8>
“훌륭한 목수는 버리는 재목이 없”다고 한 것은 다음의 출전이 있다.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허침(許琛) 등과 사간원 대사간(司諫院大司諫) 허계(許誡) 등이 상소하기를,
《전(傳)》에 이르기를, ‘착한 임금의 사람 쓰는 것은 목수가 재목을 마르는 것과 같아서, 크고 작음과 길고 짧음을 또한 그 적당함을 얻도록 하기 때문에, 밝은 임금은 버리는 사람이 없고 훌륭한 목수는 버리는 재목이 없습니다.

傳曰: “聖主之用人, 如匠之制木, 小大長短, 亦得其宜。 故曰明主無棄人, 良工無棄材。”
- 『조선왕조실록』 성종 281권 24년 8월 27일 (기축) 002 / 허침 등이 윤은로의 일을 말하다


<주9>
진수의 삼국지 오서(吳書)에 나오는 제갈량의 조카 제갈각(諸葛恪)의 전기(傳記) 중에 제갈각이 승상 육손에서 보내는 편지의 일부에 출전이 있다.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군자는 한 사람에게 완전히 갖추기를 요구하지 않으며, 공자의 문하생 대략 3천 명 중에서 특별하게 돌출되는 72명, 자장(子張)ㆍ자로(子路)ㆍ자공(子貢) 등 70명의 무리에 이르러서는 아성(亞聖)의 덕을 갖추고 있지만, 각기 단점이 있어 전손사(顓孫師:자장)는 편벽되고, 중유(仲由:자로)는 법을 만들지 못했고, 단목사(端木賜:자공)는 자신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어찌 이들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결점이 없겠습니까? 그리고 중니(仲尼:공자)는 이런 제자들이 갖추고 있지 못함을 문제 삼지 않고 손을 이끌어 친구로 간주했으며, 사람들의 단점 때문에 그들의 강점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현재는 인재를 채용함에 있어 마땅히 지난 옛날보다 관대해야 하는데, 무엇 때문입니까?

愚以爲君子不求備於一人, 自孔氏門徒大數三千, 其見異者七十二人, 至于子張、子路、子貢等七十之徒, 亞聖之德, 然猶各有所短, 師辟由喭, 賜不受命, 豈況下此而無所闕?且仲尼不以數子之不備而引以爲友, 不以人所短棄其所長也. 加以當今取士, 宜寬於往古, 何者?
- 『三國志』卷六十四 吳書十九 諸葛滕二孫濮陽傳(제갈등이손복양전)第十九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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