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성이 능력이다1

경제 2007.11.06 03:53 |

<도덕성이 능력이다>는 총 5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순서대로 읽으셔야 하지만 따로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A는 Amorality의 약자로서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지도자를 지칭하는 가상의 인물입니다. 대선 끝날 때까지 틈틈이 수정할 계획이니 퍼가지 말아주세요.^0^


1. 탈도덕 현상


17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괴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현재 지지하고 있는 대선 후보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을 경우 계속 지지할 것인가를 묻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그런 조사를 처음 접한 것은 9월 9일 실시한 MBC 여론조사였는데 도덕성에 결함이 있더라도 자질이 뛰어나면 지지하겠다는 응답이 54.7%였다. 최근에는 아예 특정 후보 관련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을 경우 계속 지지하겠느냐고 묻기도 한다. 이런 식의 여론조사가 홍수를 이루면서 결과는 들쭉날쭉하지만 대개는 도덕성에 흠결이 있더라도 능력이 있으면 계속 지지하겠다는 답변이 우세하다. 도덕성에 대한 평가는 낮지만 국정운영 능력에 대한 기대는 높은 것으로 나오는 후보도 있다(SBS 10월 21일자 여론조사). 과연 윤리적 문제에 너그러운 지지층을 충성도가 높은 집단이라고 보는 것이 온당한지 궁금하다. 사기업도 윤리경영을 하겠다고 나서는 판에 공직을 맡겠다는 분들이 능력만 있으면 그만이라며 뽐내는 건 마땅한 일인지 혼란스럽다.


문화일보 10월 30일자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대통령을 선택하는 최우선 선택기준으로 ‘경제성장 해결 능력’이라는 응답이 57.1%로 압도적이었다. 15.9%로 2위인 ‘빈부격차 해소 능력’도 크게 봐서는 경제문제라고 볼 수 있다. 도덕성은 3위인 12.1%를 기록했다. 동아일보 11월 5일자 여론조사에서도 ‘차기 대통령이 가장 역점을 둬야 할 분야’(2개 복수응답)라는 물음에 경제성장(76.3%)이 사회복지(27.0%), 실업문제 해결(25.2%)에 비해 높았다. 도덕성과 관련한 부패척결(16.0%)은 4위에 그쳤다. 사실 외환위기 이후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경제성장 관련한 요구가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어떤 후보가 국민의 높은 기대만큼 경제분야에 유능한가를 검증하는 건 내 능력 밖이다. 문제삼고 싶은 건 도덕성의 결함에 너그러운 여론조사 결과다.


나는 도덕성과 능력은 별개의 문제라는 주장, 국가 지도자의 도덕성을 그리 중요한 요소로 보지 않는 견해를 통칭하여 ‘탈도덕 현상’, 혹은 좀 더 부정적으로 ‘탈도덕 사태’라고 부르길 제안한다. 나는 ‘탈도덕 현상’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적 특수성이라고 주장하기에는 현대 선진 민주국가와는 너무 동떨어진 사고방식이다. 대다수 선진국들은 도덕성을 넓은 의미의 국가 지도자의 능력으로 보고 있다. 도덕성이 국민의 신뢰를 얻어 정책의 추진력을 높이는 원동력이라는 통설에 공감한다. 문민정부가 국민의 정부가 임기 말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 문제로 도덕성에 상처를 입고 레임덕 현상에 빠졌던 것을 반추해본다. 혹자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사례들 들지도 모르겠다. 92년 미국 대선 당시 클린턴 후보가 내건 선거구호인 “문제는 경제야, 이 멍청아!(It’s the Economy, Stupid!)”를 들려주고 싶으실 게다. 앞으로 논의의 편의를 위해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후보를 A(Amorality의 약자쯤 되겠다)이라고 부르자. A는 어디까지나 가상의 인물이며, 누구나 될 수 있다. A의 도덕성 문제를 인지하고서도 그를 지지하는 유권자가 상당수 있다고 가정하자.


A의 도덕성 문제를 알면서도 지지하는 분들은 탄핵 역경을 딛고 높은 직무 수행 지지도로 임기를 마친 클린턴의 전례를 추억한다. A가 경제를 살려서 자신의 불안하고 찜찜한 기분을 덜어내기를 바라는 듯싶다. 물론 클린턴 시대 미국의 경제는 호황이었고, 재정적자 감소와 사회보장제도 개혁에서도 긍정적인 성과를 거뒀다. 그는 재선에 성공했으나 1998년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에 휩싸여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클린턴은 98년 12월 위증 및 증거은폐 등 2가지 혐의로 하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됐으나 99년 1월 상원에서 부결됐다. 클린턴의 행실에는 많은 미국인이 언짢아했으나 사생활의 문제일 뿐 정치의제가 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 적잖았다. 클린턴이 탄핵 위기에 처했던 이유는 부적절한 관계 때문이 아니라 국회에서의 위증 혐의였음을 기억하자. 미국헌법 제2조 제4항은 탄핵사유로 “반역죄, 수뢰죄, 기타 중대한 범죄나 중대한 비행(Treason, Bribery, or other high Crimes and Misdemeanors)”을 규정하고 있다. 거짓말에 단호한 미국인이라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 A가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경우의 수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A의 지지자들이 보고 배워야 할 것은 미국의 인사청문회 문화가 아닐까 싶다. 1993년 클린턴 1기 행정부 출범 당시 법무장관으로 지명된 조 베어드는 불법체류 페루인 부부를 가사보조원으로 고용했으며 관련 사회보장세를 있었다는 미납했다는 사실을 인정해 인준 투표 직전에 사퇴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명한 린다 차베스 노동장관 내정자나 버나드 케릭 국토안보장관 내정자 또한 불법 이민자를 가정부로 고용한 것이 문제가 되어 낙마했다. 미국의 엄격한 인사청문회를 설명할 때 많이 인용되는 사례들이다. 우리도 이를 좇아 고위 공직에 진출하려는 인사들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고 검증의 수위를 높이려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 하지만 A의 열성 지지자들은 한국사회의 난맥상을 일거에 풀어줄 초인을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 계몽군주가 나타난다고 우리는 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까. 제도화가 진척된 한국 사회에서 계몽군주는 등장할 수 있는가.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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