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에 썼던 잡글을 보완했습니다. 교육 현실과 접목해본 4장이 추가되면서 오히려 더 횡설수설한 느낌입니다.ㅡ.ㅜ


1.
가모우 히로시의 『떴다! 럭키맨』(원제: とっても!ラッキーマン)이라는 만화책은 럭키맨과 그 둘레 영웅들이 우주의 평화를 해치는 무리들을 처치하는 단순한 줄거리다. 등장인물 가운데 내가 가장 애틋하게 여기는 이는 바로 노력맨이다. 그는 그야말로 근성과 끈기의 화신이다. 노력맨은 운이 좋아 패배를 모르는 럭키맨이나 승리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승리맨처럼 승률이 높은 것도 아니고, 여러 친구들의 도움을 받는 우정맨이나 뛰어난 예지력을 발휘하는 천재맨처럼 효율적인 전투를 치르는 것도 아니다. 하다못해 가장 약골로 취급되는 슈퍼스타맨이 지닌 불사신에 가까운 빠른 재생력도 없는 노력맨은 오로지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승부한다. 우리는 노력맨이 되기를 권장하고 강요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과연 노력맨이 되면 우리는 행복할까?


얼마 전에 초등학생들도 국제중학교 진학을 대비해서 스펙 쌓기가 열풍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치열한 자기계발은 권할 만한 일이지만 우리 사회가 치켜세우는 자기계발이 실용이라는 미명 아래 협소한 분야라서 안타깝다. 젊은 세대들의 스펙 쌓기를 보면서 우려하는 목소리에는 경청할 점이 많다. 청년들이 스펙에 열중하느라 체제에 순응하는 인간이 된다는 비판은 곱씹을 만하다. 이태 전에 리영희 선생님의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읽다 가슴이 짠했던 적이 있다. 젊은이들의 보수화에 대한 물음에 선생님은 젊은이들의 보수화는 우리가 바라던 바 중 하나라고 말씀하셨다. 그만큼 젊은이들이 자유분방해졌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적 불감증이 일상화되고 취업에만 몰두한다면 우리 세대 스스로가 반성할 지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정명(正名)을 위해서 보수화라는 말보다는 맹목화나 획일화라고 하면 어떨까 싶다. 자기비하 같지만 우리 스스로에게 엄격해서 나쁠 건 없지 않겠는가.^^;


스펙 권하는 사회에 대한 우려가 적잖지만 조금씩 능력사회로 향하는 발걸음 자체는 나쁘게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능력주의 사회는 실력이 학력만큼이나 평가받고, 대학 졸업장이 아니라 평생에 걸친 지적 훈련이 존중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런저런 연줄로 말미암아 능력의 가치가 왜곡되지 않는 사회, 열심히 살면 정말로 성공하는 사회여야만 능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보상하는 능력주의의 보상체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다양한 종류의 능력이 존중받기를 바란다. 프로게이머가 활약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더 밝아졌듯이 말이다. 젊은이들이 좋은 일자리를 흠모하고, 좀 더 윤택한 삶을 누리기 위해 땀 흘림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렇지만 다양한 개성들이 몇 가지 안 되는 목표에 함몰되는 건 진정한 능력주의 사회라고 하기에는 좀 아쉽다. 사는데 좀 더 요긴하게 쓰이는 기예나 재능이야 앞으로도 존재하겠지만 거기서 그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선망 받는 지위가 분산될수록 특정 지위를 향한 무한 경쟁의 강도가 줄어들어 재능의 낭비를 막는다.


능력주의의 보상체계는 뛰어난 능력은 대부분 빼어난 성과로 드러나기 마련이므로 그 성과에 대해 보상함을 골자로 한다. 유능과 성공 사이의 상관관계는 대체로 인정된다. 그런데 ‘능력’이 누구나 갖출 수 있는 성질의 힘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왜냐하면 사람의 능력이 서로 다르다는 건 상식이기 때문이다. 능력이 노력에 의해 계발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한계가 있음도 직관적으로 파악 가능하다. 만약 그 한계가 제법 커서 능력과 노력이 포개지는 정도가 너무 작다면 능력주의 사회의 대원칙은 흔들리게 된다. 개념의 혼란을 막기 위해 ‘능력’은 후천적인 ‘노력’과 선천적인 ‘재주’로 나눌 수 있다고 정의하겠다. 능력을 선천적인 것으로 보아 후천적인 노력과 대비시키는 경우도 많지만 여기서는 그런 의미의 능력은 재주라는 단어로 대신한다. 국어사전을 살펴보면 ‘재능’은 개인이 타고난 능력과 훈련에 의하여 획득된 능력을 아울러 이른다고 말하고 있으니 ‘능력’과 비슷한 뜻으로 보이니 섞어 쓰겠다.


능력이 노력보다는 재주에 의해 좌우된다면 능력주의 사회는 선천적인 요소가 크게 기능하는 셈이다. 노동소득조차도 이런데 재산소득으로 눈을 돌리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재산소득은 부모로부터의 상속이라는 요인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재주와 상속의 혜택을 입지 못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이 바로 노력이다. 노력맨으로 변신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함은 재주와 상속의 덕택을 입지 못한 이들의 유일한 선택지인 셈이다. 그런데 이 노력이 교육을 통해 계발된다고 하면 그 교육에 들어가는 재화를 마련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과제다. 천정부지로 올라 사회 문제가 된 대학 등록금이 대표적 사례다. 교육비를 재주와 상속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벌어야 한다면 그 시간만큼 공부를 못해 학습 진도가 떨어질 수도 있고, 여가를 충분히 즐기지 못해 행복감이 떨어질 수도 있다. 노력이 재주와 상속을 따라잡기가 점점 힘들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
재주를 천부적인 운이라고 본다면 재주가 사회적 가치의 분배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상은 부당하게 여겨진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능력주의의 분배는 불평등을 재생산하는데 그칠 공산이 크다. 롤즈는 이런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몸과 재주가 개인의 소유라고 할 필연적인 이유가 없으므로 사회의 자산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몫이 아닌 것을 분배받는 것에 반대하며 재주란 노력 없이 거저 얻은 것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보았다. 우연히 좋은 부모를 만나고 천부적인 재주를 갖게 된 것이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해서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삼을 수 없다는 논변은 설득력 있다. 자신에게서 비롯된 몫만을 분배의 기준으로 내세우려는 정신을 곱씹어보자.


이에 반해 노직은 재주가 모자란 사람들은 재주를 소유한 사람들이 있음으로 해서 이익을 얻음을 강조한다. 재주 넘치고 부지런한 재간둥이가 우리 곁에 있음으로써 우리가 더 넉넉하게 살 수 있다는 항변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일부 사람들이 재주나 노력으로 더 많은 재화를 얻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만큼 잃게 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고 설파한다. 개인의 재능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이익을 주기 때문에 재간둥이의 정당한 몫에 손을 벌리지 말라고 일갈한다. 그의 지적대로 재주도 모자라고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재간둥이가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사회를 설계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드워킨의 표현대로 자신의 의사에 상관없이 주어진 재주에 둔감해지도록(endowment-insensitive) 애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주에 둔감해진 만큼 노력에 민감해지기를 제안한다.


재간둥이가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았다면 정의로운 분배이므로 그 이상의 분배를 꾀한다면 재간둥이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한다는 언설에는 맹점이 있다. 침해는 직접적이거나 의도적이고 명시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의 이익만을 추구해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안겨주는 경우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희소한 자원을 둘러싼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의 손해가 막대할 때 이 손해가 경쟁의 승리자의 탓은 아니더라도 그 원인으로 작용했음은 분명하다. 차병직 선생님이 『상식의 힘』에서 역설하신 대로 “진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기는 일이 가능”하며 “경쟁에서 뒤진 사람의 무능이나 나태함조차도, 그것이 이긴 사람의 영예나 쾌감에 기여하는 바는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노력으로 인한 성과물조차도 온전히 자신의 것일 수 없는데 재주로 이룬 업적이 매우 많은 공을 탐내는 건 사리에 맞지 않다.


더군다나 유능함만을 절대적인 분배 기준으로 활용하면서 유능하지 못한 계층의 생활을 외면한다면 합리적 이기주의의 관점에서도 노직 류의 견해가 그리 달갑지 않을 수 있다. 노직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므로 무능한 이들도 혜택을 누릴 것으로 전망했지만 소득 격차로 말미암은 상대적 박탈감이 심화되면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개인의 자존감이 흔들릴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소수의 재간둥이들은 자신의 수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공적이거나 사적인 경호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그런데 이 비용은 계속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제레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에서 실업의 상승과 폭력 범죄의 증가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며 미국에서 1%의 실업 상승이 6.7%의 살인 및 3.4%의 폭력 범죄, 그리고 2.4%의 재산 범죄 증가를 야기한다는 머바와 파울스의 연구를 인용한다. 인간은 이기성 만큼이나 이타성을 지니므로 꼭 이런 수치를 들먹이며 윽박지를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마르크스는 능력이 아닌 필요에 따른 분배를 주창하며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비록 능력을 몰아낸 자리에 필요를 올리려는 시도가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그의 논의는 사회적 필수재 혹은 기본재를 충족해야 한다는 합의를 도출하는데 기여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는 기회의 평등이 결과의 평등보다 현실적인 지향점이라는데 대체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능력에 따른 차등 분배의 원칙과 더불어 필요 충족의 원칙이 혼합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결국 생산에 이바지한 정도를 따지되 보상 수준은 그 공헌도의 차이보다는 더 적게 둠으로써 양자를 조화롭게 추구하려고 한다. 필요의 수준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삶의 질까지 확보하는 식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이는 시혜적 평등의 의미가 아니라 한 사회에 공유하고 합의하는 인간다운 삶의 최소 수준이 되어야 한다.


3.
재주라는 우연성이 능력주의 사회의 기둥을 부식함은 충분히 살펴보았다. 물론 재주가 꼭 우연적이고 선천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이견도 보인다. 홍성욱 선생님 등이 엮으신 『뉴턴과 아인슈타인』이란 책에서는 천재 과학자들의 연구과정을 고찰하며 천부적인 재주가 창조적인 업적을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분석한다. 천재성뿐만 아니라 노력으로 다져진 비판적 사고, 집중력, 끈기 등의 다양한 자질이 어우러졌기 때문에 재간둥이 가운데 앞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단지 탁월한 재주만이 아니라 부단한 연구 끝에 성취했다는 건 얼마든지 수긍할 만하다. 이 책에서는 우리 모두가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열심히 노력하면 이전보다 더 창조적으로 변모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해줄 따름이다. 재주라는 빙산이 생각보다는 거대하지는 않다고 항변하는 대목이 이 책의 미덕이다. 슬프게도 그래도 그 빙산은 꽤 크다.


나는 오래 전부터 능력과 필요의 대립 구조에서 노력의 가치를 도두보기를 말해왔다. 그런데 이미 선수를 쓰신 분이 계셨다.ㅡ.ㅜ 피터 싱어는 『실천윤리학』에서 타고난 능력보다는 필요와 노력에 따른 지불의 원칙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능력과 필요 사이의 간극을 노력으로 메워야 한다고 보고 “그들의 능력이 어떠하든 간에 그들의 능력의 상한선 가까이까지 일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돈을 지불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언명했다. 싱어는 필요에 따른 분배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에 따른 유인을 보탰다. 그의 논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적용해보자. 갑의 잠재적인 능력이 100이고, 을의 잠재적인 능력이 50이라고 가정한다. 갑은 60%만 노력하더라도 을이 100% 노력한 것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남긴다. 싱어가 구체적인 예시를 들지 않아서 단정하기 어렵지만 자기 능력의 상한선까지 오른 을에게 이전보다 더 많은 보상을 해줘야 함은 분명하다. 또한 을이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마저 뛰어넘는 120%의 초인적인 노력을 통해 갑과 같은 60의 성과를 낸다면 갑보다 더 칭찬을 건네야 할 것이다.


능력을 노력과 재주의 합이라고 볼 때 노력을 어떻게 측정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두 요소의 총합인 능력을 측정하는 기준조차 마련하기 힘든 판국에 그 능력을 노력과 재주로 가름해서 그 둘의 비율을 따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앞서본 예처럼 보상체계가 수립된다면 갑은 자신의 재주를 감추려는 전략을 취할 유혹에 빠진다. 갑은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을 을이라고 꾸미고 60%의 노력만 기울인다면 종전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력에 따른 유인이 너무 커진다면 이처럼 재주를 감춰서 노력이라고 분칠하고 잠재적인 능력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소홀하게 된다. 갑이 60%의 노력보다는 70%의 노력을 기울이도록 이끌어서 사회적인 후생을 증가시키는 것이 좀 더 바람직하다고 할 때 재주 숨김 현상은 줄여야 한다.


결국 우리는 재주 많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 만큼 보상을 받는 것을 인정해줘야 한다. 노력은 그 다음으로 고려할 요소다. 능력 있는 사람의 성과에 미치지 못했지만 제 나름대로 노력한 사람에게 현재 수준보다는 높은 수준의 보상을 주는 것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다만 노력한 사람에게 줄 보상을 늘릴 재원은 필요에 따른 분배의 몫을 건드리지 말고 유능한 사람에게 주던 보상에서 일부 끌어와야 한다. 이를 통해 보상의 차이가 성과의 차이보다 현격히 차이나지 않도록 조정해나가야 한다. 이러한 조치가 현행 능력주의 보상체계의 상층부에 있는 유능한 사람에게 반드시 불리하지만도 않다. 엄격한 능력주의는 자칫 잘못하면 1등이나 2등에게만 초점을 맞추는데 비해 노력을 통해 상위권에 다다른 사람을 위한 보상에 신경을 쓰게 되면 10등을 하더라도 상당한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유능한 사람이라고 해도 매번 1등이나 2등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10등까지도 충분한 보상을 하는 시스템의 사회적 보험 역할을 마냥 나쁘게 볼 일은 아닐 것이다.


이처럼 후천적인 노력의 가치를 재조명했더라도 의문점이 생긴다. 노력도 상당 부분 선천적인 재주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노력이라는 재능이 오로지 후천적으로 계발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사가 아닌 우연적인 이유로 노력을 싫어하는 성품을 부여받을 수 있다고 반박할 소지가 다분하다. 그런 속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재주보다는 노력이 우연성이 좀 덜하고, 보통 사람도 습득할 수 있는 재능이라는 점에 주목할 따름이다. 또한 노력의 적극적 재조명으로 말미암아 상위 1%가 아닌 상위 10%까지 보상체계의 접근성이 높아진다면 재주가 모자란 사람과 노력이 부족한 사람도 도전할 동기 부여가 될 것이다. 1등에 도전하기는 힘들어도 10등은 도전해볼 만하다고 용기를 북돋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재주와 대비되는 노력에 대한 사회적 의식의 환기를 기대한다. 불공평을 완화하는 기제로서 노력에 대한 보상에 주목하자.


4.
2009년 개교한 국제중은 1단계 서류심사, 2단계 면접을 거쳐 3배수를 선발한 뒤 추첨으로 학생을 뽑았다. 2010년에 개교하는 자율형 사립고는 내신 성적 50% 내에 들어야 지원이 가능하고, 2배수를 뽑은 뒤에 추첨으로 선발한다. 성적순으로 줄 세우기에만 익숙하던 우리네 입시 풍토에서 추첨제의 도입은 참신하면서도 어색했다. 실제로 대다수 언론이 국제중이나 자율고의 추첨 장면을 보도하면서 추첨의 비교육적인 측면을 꼬집었다. 시험은 노력으로 만회할 수 있지만 운 때문에 원하는 학교에 가지 못한다면 승복할 수 있겠느냐는 항변은 설득력 있다. 그러나 시험이나 경시대회 성적으로 1배수를 뽑는 것을 지양함으로써 경쟁의 압력을 완화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하려는 목적은 바람직하다. 전남대는 2009년 도전 장학생을 신설해서 학업성적 위주로 장학금을 선발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자기계발 활동 등을 통해 발전가능성이 있는 학생에게 도전 장학금을 줬다. 이 역시 성적순을 극복하는 파격적인 시도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능력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교육이라는 주장에 적잖이 동감한다. 하지만 공정한 경쟁이 단지 1등부터 꼴등까지 서열화한 성적을 나누는 것이라면 마냥 교육적일 것 같지 않다. 노력으로 만회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시험공부가 자본에 따른 경쟁이 되어간다는 비판이 점점 커지고 있다. 자녀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특목고 입시를 준비시킬 여유가 있는 부모의 자본도 우연적인 요소이고 비교육적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소수점을 가지고 다투는 입시경쟁의 폐해가 얼마나 극심한지 겪었다. 더욱이 시험 위주의 선발제도는 투입(input) 위주의 경쟁에만 몰두하는 문제를 낳았다. 한국의 대학들이 우수한 신입생을 유치하는 데만 온 정신을 쏟고 유능한 졸업생을 배출하려는 산출(output) 경쟁을 등한시한다는 지적이 적잖았다. 고교 교육의 다양화라는 미명 아래 고등학교마저 엄격한 능력주의에 매몰된 투입 경쟁을 이제는 줄여야 한다.


외국어고등학교 입시 개편에도 추첨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추첨제를 채택한 학교들과 형평에 맞는다. 외고는 어학 영재 양성이라는 특수목적고의 설립 취지를 거의 살리지 못했다. 다만 외고가 고교 평준화 정책의 보완책으로 수월성 교육에 대한 수요를 충족하는데 기여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수월성은 결국 대학 입학의 수월성으로 귀결됐다. 결국 외고는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기보다는 우수한 인재를 선점하는데 더 특화된 모습을 보였다. 대학들도 이에 호응해 내신 반영률을 낮춰 외고생들의 내신 부담을 덜어주는 등 각종 특혜를 제공했다. 2010학년도 서울 경기지역 외고 입시는 구술면접이 폐지되고 영어 듣기평가가 약화되는 대신에 학교 내신 성적의 비중이 강화됐다.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대책이었지만 풍선 효과로 말미암아 내신 합격선이 상승하는 효과를 낳았다. 내신 강화의 부작용은 추첨제의 도입으로 해소할 수 있다. 가령 내신 20~30% 정도를 지원 자격으로 하고, 영어 듣기평가나 구술면접을 합격, 불합격(Pass or Fail)을 정하는 요소로 활용해 일정 배수를 선발한 뒤 추첨을 하는 방식을 도입할 만하다.


추첨제는 정부가 수월성 교육을 목표로 하는 학교를 도입하면서 사교육비 증가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고육지책으로 등장했다. 사교육을 조장하지 않겠다는 점을 부각하는데 급급했을 뿐 추첨을 결단한 것에 대한 철학적 고려가 부족했다. 나는 추첨제의 부분적인 도입이 노력에 대한 보상 체계를 수립하는데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추첨제를 1%에 대한 보상에서 10%에 대한 보상으로 늘리는 대표적인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경제적 능력에 따라 차별이 빚어져서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헌법상의 권리가 자꾸 침해되는 현상을 막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노력을 해서 일군 성과에 따른 정당한 차별이라는 대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추첨제를 적용하는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인생의 한 시기에 펼쳤던 경쟁의 결과가 그 사람의 평생을 규정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 추첨제는 특정 학교의 우월적 지위를 상당부분 누그러뜨리고 교육을 통한 산출 경쟁에 좀 더 주안점을 두도록 유도한다. 고령화 시대에는 젊은이 한 사람이 여러 명의 어른을 부양해야 한다. 이제 극소수의 승자만이 대접받는 시대가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잠재성과 소질을 계발하도록 노력하는 사회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우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종류의 경쟁을 설계해야 한다. 물론 경쟁이 늘어난다고 해서 경쟁의 강도가 줄어들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실제로 법학전문대학원의 경우 학점 경쟁도 심하면서 변호사시험 준비도 병행해야 해서 고충이 크다고 한다. 시험이 고급화될수록 교육과 상충관계가 된다. 모든 가치기준이 수험적합성에 맞춰지면서 법과대학의 수업이 파행적으로 운영되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 번의 시험이 아닌 다방면의 교육으로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해 로스쿨을 도입한 만큼 변호사시험은 의사국가고시를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의사국가고시의 합격률은 2010년 92.9%, 2009년 93.6%였다. 이렇게 높은 합격률에도 별다른 시비가 없는 것은 의대 교육과정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경쟁의 강도에 대한 고민은 시험과 교육의 적절한 배합의 문제로 요약된다. 시험을 위한 노력만큼이나 교육을 향한 노력도 평가해야 한다. - [無棄]


추신 - 다른 영웅들이 적의 공격을 민첩하게 피할 때, 노력맨은 빠른 속도로 벽돌을 쌓아 노력 보호막을 만든다. 이 졸문은 그 우직함에 대한 경의의 표시다. 노력맨이 되는 건 상찬할 일이지만 노력 그 자체가 목적이 되도록 하지는 말자.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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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분석(1)

경제 2009. 5. 4. 05:15 |

2008년 봄학기에 들었던 이필상 교수님의 금융론 강의에서 에세이 과제로 작성했던 산업은행 분석에다 최근 바뀐 사정들을 보강해봤습니다. 산업은행 민영화 자체에 대한 찬반 논쟁보다는 민영화로 향하는 길목에서 벌어지는 쟁점 위주로 고찰했습니다. 민영화 자체에 대한 반대도 적잖다는 점을 잘 알고 있지만 이미 주요 법률안이 통과된 마당에 보다 바람직한 민영화를 더듬기 위한 삽질로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너더분한 잡설을 싫어하시는 분들이라면 1번, 5번, 9번 목차만 살펴보시면 됩니다. 과제물 작성 당시 자문에 흔쾌히 응해주신 원유태 선배님께 각별한 감사를 표합니다.


1. 산업은행 민영화를 위한 입법

지난 4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국산업은행 민영화를 위한 한국산업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처리했다. 이로써 산업은행에서 한국정책금융공사를 분리하는 한국정책금융공사법이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된 것과 더불어 산업은행 민영화를 위한 입법적 조치가 일단락됐다. 산은이 먼저 민영화되어야 그 자금으로 정책금융공사를 설립할 수 있는데 선후가 뒤바뀐 입법인 셈이지만 모양새는 갖추었다. 하지만 정부 여당이 공기업 개혁의 대표로 삼았던 산은 민영화가 이제 궤도에 올랐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4월 30일 밤 자중지란에 빠진 한나라당으로 말미암아 금산분리 완화 관련 법안인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 중에 은행법 개정안만 가결되었다.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이 부결됨에 따라 정부 여당의 계획은 상당부분 차질을 빚게 됐다. 정부 여당의 논리에 따르면 금산분리 완화를 통해 산은 지주회사의 지분 인수에 보다 많은 투자자가 참여하게 되면 몸값이 높아질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산업은행지주회사 산업자본의 금융지주회사 지분소유 한도가 현행 4%로 제한될 경우 투자 매력이 감소해 매수자를 찾기 힘들어진다. 산은 민영화를 위한 입법은 여기저기 지뢰밭이다.


물론 은행법 개정안이 이미 통과된 마당에 금융지주회사법만 그대로 두는 법체계가 오래 유지될 것 같지는 않다. 여당이 다시금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공산이 크다. 이런 가정 하에 이미 통과된 법률에 따른 산은 민영화의 얼개를 고찰해보자. 산은이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게 되면 산업은행 및 대우증권ㆍ산은캐피탈ㆍ산은자산운용 등을 계열사로 거느리게 된다. 정부가 산은지주의 지분 100%를 보유하지만 5년 내에 지분 매각을 시작한다. 정책금융 부문은 정책금융공사로 넘기는데 이를 위해 산은지주의 지분 49%를 정책금융공사에 출자한다. 나머지 지분 51%를 민간에 매각하고 나면 산업은행은 완전한 민간 회사로 탈바꿈한다.


산업은행의 빠른 매각에만 집착할 경우 제대로 된 가치를 평가 받기 어렵다는 염려에 귀 기울여야 한다. 산업은행의 가치를 적절하게 평가하기보다는 정해진 시간에 쫓겨 각종 절차가 허술하게 이행되어서는 곤란하다. 다행히 입법 과정에서 정책금융공사에 출자하는 산은지주 지분 49%의 최초 매각시점을 5년 이내로 잡았다. 처리시한을 다소 유동적으로 명문화함으로써 이런 걱정을 다소 덜었다. 그렇다고 가격을 높게 받기 위해 매각시한을 계속 늦춰 우리은행의 전철을 밟는 것도 피해야 한다. 정부는 대강의 틀을 정하고 구체적인 사항은 새로 임명될 최고경영자에게 포괄적으로 위임하는 것이 정책의 신뢰성과 효율성을 도모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2. 산업은행의 변천사

산업은행은 1954년 4월 세워진 국책은행으로서 산업의 개발과 국민경제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중요산업자금을 공급하고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산업은행법에 의하여 설립된 법인이다. 산은법은 이를 위해 정부가 전액 출자하고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는 것은 물론 결손까지도 정부가 보전하도록 했다. 실제로 1998년 산은이 5조원에 가까운 적자를 내자 정부가 2조원 이상의 증자를 단행했다. 이러한 목표 아래 경제발전 단계에 따라 시대적인 요청에 부응해 그 역할을 수행해 왔다. 산은은 개발도상국 단계의 국가에 필수적인 금융기관으로서 출발해 종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금융 전문은행으로 성장, 발전했다.


1950년대에는 전쟁으로 파괴된 산업시설 복구자금 지원의 역할을 맡았고, 1960~1970년대 고도 성장기에는 중화학공업 등 수출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장기설비금융을 지원했으며, 1980년대에는 설비금융 및 산업합리화에 주력했다. 1990년대에는 국제ㆍ투자금융의 기반을 닦아 국내기업의 해외진출을 도왔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기업구조조정, 신용경색 해소 및 시장 안정화 기능을 수행했다. 이 때 당시 산은은 시장 최후의 보루자(Last Resort)로서 대우 계열사 등 상당수 대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실질적으로 주도해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시스템을 조기 정착시키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2000년대 이후에는 경제 재도약을 위한 미래 성장동력을 육성하여 국가 경쟁력을 확충하고 사회간접자본 확충 등 사회균형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이처럼 산업은행은 시대적 상황에 맞게 산업 개발과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금융지원 분야 및 방식으로 변화했다. 산은법 제1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중요산업”의 개념이 계속해서 변화했기 때문이다. 50년대 중요산업이 전력, 시멘트, 석탄 등 기간산업이었다면, 60~70년대 중요산업은 섬유, 철강, 중화학산업이었다. 80년대는 자동차, 전자였으며, 90년대 들어 IT, 반도체가 중요해졌다. 2000년대 이후 방송, 통신, 생명공학 등으로 초점이 이동했다. 금융의 개방화, 자율화 추세에 발맞춰 산은법상 지원범위가 크게 확대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시대의 변화와 관계없이 혁신형 중소ㆍ벤처 기업, 초기 기술사업화 등 금융소외영역 지원을 확대해 국가경제 및 산업발전을 촉진시켜왔다.


산업은행은 취약한 국내 금융산업의 낙후된 분야에서 첨단금융상품을 선도적으로 개발하고 도입하여 새로운 금융시장을 조성함으로써 우리나라 금융산업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1995년 국내 최초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 금융을 취급했고, 기업금융 관련 환ㆍ금리 리스크 헤지 등을 위한 파생상품 업무 강화로 국내 파생상품시장을 개척했다. 또 기업금융 및 구조조정 역량을 토대로 M&A 업무를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2003년부터 컨설팅 업무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밖에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사모펀드(PEF)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국제금융시장 진출과 관련해서 국내기업의 외자조달을 주선하고, 선박ㆍ항공기 금융, 해외 PF 등 고부가가치 투자은행 업무로 업무영역을 확장하는 중이다.


3. 산업은행의 정체성 위기

외환위기 이후 금융의 대형화ㆍ겸업화 등으로 인해 4대 시중은행의 자산규모가 확대되면서 자산 규모나 기초 인프라 등에서 산업은행의 지위가 바뀌었다. 1999년 말까지 자산 규모 국내 1위였던 산업은행은 시중은행들이 생존을 위해 합병과 인수를 통해 몸집을 불리면서 2007년 9월 말 기준 국내 5위로 하락했다. 점포 수 및 임직원 수 등 기본적인 인프라도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였다. 또 민간금융기관의 적극적인 업무 확대로 금융시장에서의 산업은행의 주도적 지위는 약화되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체성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는 산은을 앞장세워 기업금융을 확대하고, 외화자금을 조달하였으며 기업구조조정을 추진해 시장실패를 보완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체질이 개선되자 산업은행은 민간금융기관과 충돌하게 된다. 기업들의 시설자금 수요가 급감하면서 산은은 시중은행들도 공급이 가능한 운영자금 대출을 확대했다. 전통적인 정책금융 수요가 점진적으로 감소함자 산은은 금융지주회사로 방향을 정하고 대우증권과 옛 서울투자신탁운용을 자회사로 편입하고 민간영역인 프라이빗 뱅킹(Private Banking), 방카슈랑스 등 수익성 사업을 확대했다. 정부의 출자와 지급보증ㆍ손실보전까지 받는 국책은행이 수익성 위주의 사업에 나서자 민간 금융회사들은 시장왜곡 현상이라며 반발했다. 감사원도 설립취지가 퇴색한 산은에 대해 정부 정책과 관련된 투자 및 융자에 특화된 금융기관으로 기능을 조정하도록 권고하기도 했다.


사실 업무중첩 문제는 산은이 민간영역을 의도적으로 침해했다기보다 SOC 건설을 위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ㆍ성장동력 벤처투자 등 산은이 선도적으로 개척한 분야에 민간금융기관의 진출이 확대되면서 발생한 경우가 많다. 공공적 역할로 인한 낮은 수익성을 만회하기 위한 자체 수익기반 확보 노력은 그 자체로 험담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산은의 정책금융 업무가 최근 전체 업무의 5% 이하로 줄었음은 주목할 대목이다. 산은 역할을 대신할 민간부문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방증이다. 2008년 말 국내 M&A 주선 시장에서 산은의 시장점유율은 70.8%였다. 국책은행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민간은행의 영역을 잠식한다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는 이유다.


산업은행이 2004년부터 조 단위의 이익을 낸 것도 대규모 유가증권 평가 및 처분이익 등의 발생에 기인한 것으로 과다한 수익성이라 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산은의 높은 임금 수준은 사회적 질시를 받기 충분하다. 총자산인건비율이 시중은행에 비해 낮고, 고급인력을 유치해 1인당 당기순이익과 1인당 부가가치가 시중은행에 비해 높다는 항변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008년 산업은행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9,270만원으로 공공기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산은의 과도한 인건비와 성과급은 여러 차례 지적되었지만 단지 이 때문에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 산업은행이 방만한 경영을 했기 때문에 변화를 요구한다기보다는 금융환경 변화에 걸맞은 역할을 부여한다는 의미에서 혁신을 탐색해야 한다.


4. 민영화 방안에 대한 논쟁

1990년대 이후 국제 금융질서가 바뀌면서 정부 소유 은행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정책금융이 축소되자 국책은행이 상업금융 분야로 업무영역을 넓혀가면서 국책은행의 설립목적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또 국책은행이 은행 간 경쟁을 위축시키면서 예대마진을 확대하고 여신을 대기업에만 집중시키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우리도 개발금융의 필요성이 감소하고 있으며 새로운 진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공감대를 얻어 산업은행의 개편을 준비하게 되었다.


2006년 6월 산업은행경제연구소 기업금융연구센터가 펴낸 ‘주요국 정부계 은행의 발전사례 분석’에 따르면 정부계 은행의 변화유형의 선택은 각국의 경제발전 단계, 정책방향, 개별은행의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정부계 은행은 업무범위 제약, 점포 및 자회사 설치 제한 등 경영 및 영업 측면에서 많은 제약을 받아왔으므로 단계적, 체제적인 체제변화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금융공기업 개편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으나 특수은행 체제를 유지하되 상업부문과 공공부문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방안과 민영화와 기능전환을 통해 일반은행으로 변모하는 방안으로 나눠볼 수 있다.


현재 산은의 상업금융은 민간으로 이관하고 정책금융의 공적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싱가포르 개발은행과 대만 교통은행과 같은 민영화 성공 사례도 있지만, 실패 사례 역시 존재한다. 필리핀국립은행은 무리하게 민영화를 추진했다가 다시 국유화가 되었고 일본 정책투자은행(DBJ)은 비효율적인 경영과 방만한 지출로 문제가 되자 DBJ를 주식회사로 만들고 2015년까지 완전 민영화하겠다는 법을 만들었다. DBJ는 2005년 민영화를 선언하고 2007년 관련 법안을 만들었지만 지분 매각은 아직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산은 민영화 역시 적잖은 시간이 걸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애초에 금융위원회는 산업은행 단독 민영화 방안을 추구했으나 산업은행과 우리금융지주, 기업은행을 합친 다음에 민영화하자는 ‘메가뱅크’안의 불씨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산은 민영화 추진 과정에서 순차적으로 추가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대형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아 메가뱅크가 추진될 여지를 남겼다. 기획재정부는 자산규모 500조원, 세계 30위권의 대규모 은행이 탄생되게 금융의 대형화를 꾀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메가뱅크안을 내놓은바 있다. 현재 대다수 은행들이 기존 M&A의 홍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자생적으로 대형 투자은행이 등장하기 어려운 구조다. 초대형 은행의 등장시켜 민간의 합병을 유도하자는 재정부의 고충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그 매물을 감당할 만한 인수 주체가 과연 있겠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잖다. 매각이 어려운 것은 물론 별개로 매각하는 방식에 비해 가격이 떨어질 우려도 크다. 자발적인 대형화가 아닌데다 국민은행의 자산규모보다 2배 이상 큰 메가뱅크 경영이 비효율적일 경우 국민경제에 미칠 위험은 심대하다. 다만 산업은행을 따로 매각하더라도 투자은행 업무 중심의 구조조정이 동반되기 때문에 나머지 사업부문을 다른 은행과 합치는 메가뱅크안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는 모양이다. 향후 우리금융지주와 기업은행이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은행 간 M&A를 통해 메가뱅크가 출현할 수도 있다.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이후 연기금이나 사모투자펀드(PEF)가 유사 금융주력자로 분류돼 은행을 직접 인수할 수 있기 때문에 마땅한 매수세력이 존재하지 않으리라 단정하기도 성급하다.


정부는 산업은행 민영화 과정에서 우리은행, 기업은행 중 한 곳을 자회사로 두는 것도 검토했다.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자산규모가 커지고 기능면에서도 기업금융 뿐 아니라 소매금융에서도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어 시장에서 높은 값을 받으려는 의도다. 더욱이 지난해 산은이 벤치마킹한 투자은행들의 잇따른 몰락으로 말미암아 민영화 연착륙을 위한 타 은행과의 합병이 계속 주장되는 실정이다. 이 경우에도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기보다는 전략적 투자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매각가치를 높여야 한다. 산업은행 개편은 우리 경제 및 금융여건에 대한 세밀한 검토와 더불어 비슷한 기능을 담당하는 공공기관 전반의 재정립과 함께 추진해야 한다.


5. 정책금융공사가 갈 길

정부는 산업은행 민영화를 통해 금융공기업 민영화와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한다. 산은지주 지분 51%는 일단 정부가 보유하고, 49%는 정책금융공사로 현물 출자하기로 했다. 산업은행의 정책금융 기능을 수행할 한국정책금융공사(KPBC)는 원래 한국개발펀드(KDF)라는 이름이 붙었다. 금융위의 설명에 따르면 정책금융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단순히 이름만 바뀌었다기보다는 성격에도 변화가 생겼음을 감지할 수 있다. 한국개발펀드는 시장원리를 강조하면서 정책금융의 수익성과 안전성을 부각시킬 태세였다면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정책금융의 본래 기능에 방점을 찍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정책금융공사 역시 직접 금융지원을 하는 기존 방식에서 민간금융회사를 통한 간접지원 방식으로의 전환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는 독일의 부흥은행(KfW)을 모델로 삼는다. 소유는 정부가 운영은 민간이 함으로써 직접 정책금융방식에서 간접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일컫는다. Kfw는 독일 정부가 상환을 보증하는 채권을 발행해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중소기업 지원 등 공공 목적으로 사용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KfW의 대출은 금융기관을 경유하는 간접대출이어서 중소기업은 먼저 거래 금융기관에 대출신청을 해야 한다. 대출신청을 받은 금융기관은 KfW에 해당 금액만큼 대출자금을 신청하고 KfW에 대해 지급하는 금리에 마진을 추가하여 중소기업에 대출한다.


이처럼 정책금융공사가 민간금융기관에 중소기업 자금을 배분하고 민간금융기관이 기업들에 대출해 주는 ‘전대방식(On-lending)’이 활용될 예정이다. 정부가 정책금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은 설정하지만 기업 선정 등 구체적인 사업집행은 민간금융기관이 위탁하는 방식이다. 전대방식은 시장친화적이라는 이점이 있으나 대출과 투자에 따른 책임을 민간금융기관이 지기 때문에 영세기업이나 소상공인은 성장 가능성 보유 여부와 관계없이 심사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소지가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유럽과 우리의 금융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금 수요자와 은행이 오랜 기간 관계를 유지하는 주거래은행제도가 활성화된 유럽과는 달리 우리는 단기거리에 편중된 상황이다. 기업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은행으로서는 전도유망한 기업을 가름할 역량이 부족해 담보나 보증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정책금융 기능이 시장에만 맡겨질 경우 일부 우량 중소기업에만 대출이 몰릴 공산이 크다. 실제로 정책금융기관을 민영화한 일본은 Kfw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정부의 직접 지원이 아쉬운 금융위기 시대에 전대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중소기업이 자금 경색을 겪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반응도 보인다. 몇몇 기업에 지원이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중개한 금융기관의 마진폭을 신용 등급별로 차등화하고 낮은 신용등급에는 최대 50%의 보증이 이뤄질 방침이라고는 하지만 정책금융의 부실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민간금융위원회에서 금융기관들이 중소기업을 제대로 판별하기 위해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정보를 제공하는 인프라스트럭처 구축이 먼저 필요하다고 제안한 내용을 새겨볼만 하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공적자금 투여나 재정투자 확대 같은 흐름과 전대방식이 어울리기 힘든 측면이 있는 만큼 미세조정에 더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아울러 현재 중소기업 관련 기관은 중소기업청,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 등 10곳이 넘고 지원자금 규모도 60조원을 넘는다. 여기에 정책금융공사까지 등장할 경우 중소기업 금융지원에 대한 업무분담과 역할정리가 절실하다. 정책금융공사의 역할을 정책금융 업무를 조정하는 교통정리 기관 정도로 국한하자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중소기업 지원 외에 수출입금융과 개도국 지원 등의 역할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에 대한 검토도 요구되는데 정책금융공사를 만드는 대신 해당 기능을 수출입은행에 통폐합하자는 주장도 나온 바 있다. 반면에 정책금융공사에 중소기업 지원 역할과 기업 구조조정, 부실기업 회생 작업 따위의 금융시장 안전판 역할을 광범위하게 포괄하자는 견해도 나온 만큼 정책금융공사에 대한 명확한 방향 설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산은 민영화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암초가 될 것을 걱정한다. 한미 FTA 협상에서 양측은 국책금융기관의 정책금융 지원은 지속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정책금융 지원 기관을 산업은행ㆍ기업은행ㆍ주택금융공사ㆍ농협ㆍ수협 등으로 명문화했는데 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정책금융공사는 당연히 언급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통상마찰 등을 피하기 위해 정책금융공사를 전대방식으로 운영할 계획이지만 미국 측이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금융위는 정책금융공사가 산은 매각 대금으로 설립되는 데다 민간금융기관과 경쟁하지 않는 공적 역할을 담당하므로 별 문제 없다는 입장이지만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한다. 만약 정책금융공사를 미국 측이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서면 정책금융 기능이 큰 위기를 맞을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응전략을 마련하길 바란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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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분석(2)

경제 2009. 5. 4. 05:08 |

7번, 8번 목차에서 투자은행에 대한 설명이 장황하게 이어지는데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인 2008년 상반기에 정리한 내용이라 시의성이 떨어집니다. 다만 투자은행 관련 개념들을 짜깁기해둔 만큼 논의의 흐름을 짚어보는데 필요할 듯싶어 쳐내지 않고 살려뒀습니다.


6. 수신기반의 확보

산업은행 민영화의 당초 목표가 글로벌 투자은행 육성이라고 하지만 IB사업의 상당부문이 개인고객 기반 없이는 성립이 어렵다. 따라서 현재의 기업금융 전문에서 소매금융까지의 영역 확대는 불가피하다. 산업은행은 예대마진이 아니라 투자수익에 의존해 왔기 때문에 순이자마진(NIM)은 2007년 말 0.2%에도 못 미쳤다. 수신기반이 취약한 데다 대출의 상당액이 5bp 내외의 유명무실한 마진을 받고 공급하는 저수익 여신이 많았다. 저수익 여신 비중을 줄여나간 결과 2008년 말 NIM은 0.73%로 개선되었지만 시중은행에 비해 많이 모자란 수치다.


산업은행은 예대마진이 아니라 투자수익에 의존해 왔다. 앞으로 산업금융채권(산금채)을 발행에 바탕을 둔 자금조달 방식은 기대할 수 없으므로 안정적인 수신기반을 마련해야 궁극적으로 IB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소매금융기관과의 제휴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하며 수신기능과 전국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된 우체국 금융부문과의 통합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싱가포르 개발은행(DBS)는 민영화 과정에서 정부가 떼어 준 우정사업본부를 M&A해 출발하자마자 싱가포르 국내 수신의 60%를 보유한 상태였다.


실제로 산업은행은 민영화를 대비해 개인고객 확보에 나서고 있다. 민간은행의 적금과 경쟁하기 위해 2008년 5월부터 ‘ⓤbest 자유적금’을 판매하여 정기예금 수준의 금리를 적용 받도록 했다. 우리은행과 제휴해 우리은행 지점에서 산업은행 계좌의 입ㆍ출금, 통장정리, 통장이월, 조회 거래 등이 가능하도록 해 지점이 40여 개의 불과하다는 단점을 보완했다. 지난해 고액자산가들을 유치하려는 목적으로 PB전문인력을 채용한 것도 민영화를 대비한 포석이다. 이처럼 취약한 수신기반을 넓히기 위해 시중은행과의 M&A 역시 검토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외환은행과의 짝짓기설도 들린다.


또한 국내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다이렉트 뱅킹’ 방식의 예금을 준비했다. 다이렉트 뱅킹이란 금융사가 지점을 거치지 않고 인터넷과 콜센터를 통해서만 예금과 대출 등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작년 하반기 즈음 수시입출금식예금(MMDA)인 ‘kdb 다이렉트예금(가칭)’을 출시한다고 했으나 실제로 성사되었는지는 관련 기사가 보이지 않아 확인하지 못했다. 머잖아 인터넷전문은행이 도입된다면 이를 설립할 것을 예고하는 산은의 태도로 보아 실제로 상품이 출시되지는 않은 듯싶다. 인터넷은행은 인건비 및 운영비가 덜 드는 만큼 비교적 높은 금리와 낮은 수수료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내다본다.


국책은행이라는 타이틀을 반납하는 순간 채권 발행금리가 10~20bp는 오를 것으로 예상돼 자금조달비용이 늘어날 것이 자명한 만큼 개인고객 예금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산업은행 독자생존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민영화 논의가 한창이던 2008년 5월 무디스(Moody's)는 산은의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민영화 과정에서 산은 신용등급이 현재의 국가 신용등급보다 낮아지는 건 어느 정도 예상되는 일이다. 올해 2월에는 다른 은행은 모두 ‘안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산은만 계속 ‘부정적’이라는 등급전망을 유지했다. 수신기반을 확보하는 노력은 산은의 불확실한 미래를 눅이는 지름길이다.


7. 투자은행으로의 변화

2008년 하반기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투자은행은 한국의 금융환경을 개선할 백마 타고 올 초인이었다. 투자은행에 대한 열망을 키운 원인은 여러 가지다. 우선 금융의 탈중개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기존의 은행 중심의 간접금융에서 직접금융 비중이 확대되었다. 은행의 수익성은 악화되어 2005년 2.8%대이던 순이자마진(NIM)이 2007년에는 2.4%대로 하락했다. 증권사도 위탁매매 중심 수익구조에서 벗어난 다변화된 수익구조를 물색했다.  여기에다 기업들이 투자, R&D보다 현금보유비중 높이는 자본과잉 현상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퍼졌다. 가계는 은행 저축보다는 펀드 같은 금융상품을 통한 투자를 선호하면서 금융이 새로운 성장동력산업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 투자은행이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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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록, 『Investment Banking』, 교보문고, 2008. 참조/함께 과제했던 애후배 용철 작성>

투자은행은 주식ㆍ채권 등의 직접증권을 인수하고 판매하는 은행을 말한다. 즉 IB란 자본시장을 통해 기업과 투자자를 연결해 주는 중개기능을 맡는 은행이다. 상업은행이 고객들에게 확정금리에 따라 이자를 주는데 반해 투자은행은 투자 성과에 따라 고객에게 수익을 돌려준다. 국내은행의 IB업무 수익비중은 글로벌 은행에 비해 극히 낮은 수준임은 여러 차례 지적되어 왔다. IB는 전통적으로 기업 및 프로젝트의 자금조달을 위하여 증권인수 및 기업공개(IPO) 등의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각종 투자형태를 망라하는데 최근에는 인수합병(M&A), 자기자본투자(PI), 신용파생거래 등을 통해 큰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요즘 국내에서 투자은행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대상은 중소기업, 벤처 파이낸싱, 프로젝트 파이낸싱, M&A 등이며 이 가운데 특히 중소기업과 M&A를 위한 투자은행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다.


애초에 금융당국은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계기로 우리나라에도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IB 탄생을 기대했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교역규모는 세계 10위권에 근접했지만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이름을 대면 알만한 IB 하나 없는 게 우리 금융산업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회사들이 건전성 확보에 주력하면서 리스크가 큰 IB부문에 주력할 수 없어 벌어진 현실이지만 자통법 시행으로 IB쪽 환경이 우호적으로 변했다. IB업무 관련 글로벌 시장에서는 과점형태로 소수의 금융회사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며 일정 부분 규모의 경제로 인한 진입장벽도 존재한다. 따라서 국내 금융회사는 무작정 백화점식으로 IB업무를 벌이기보다는 자신의 경쟁력을 십분 발휘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IB업무는 고수익, 고위험 업무로서 수익의 변동성이 매우 높아 금융회사의 대형화가 필요하며 역사적으로 미국 등 선진국에서 수많은 투자은행들이 경쟁에서 도태되고 현재 몇 개 대형 투자은행만이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IB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해외 선진 IB에 대응하여 국내 IB산업 발전을 선도할 역량을 보유했다고 판단된다. 토종 IB 성립을 위해 산은은 대우증권 등 금융자회사와의 결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노리겠다고 밝혔다. 산은은 광범위한 기업고객 네트워크, 채권시장업무(DCM) 관련 IB업무를 근간으로 기업금융전문은행으로 특화하고 대우증권은 주식시장업무(ECM) 관련 IB업무를 토대로 금융투자회사로 특화한다는 그림이다. 이를 통해 기업금융 중심 투자은행(CIB, Corporate Banking + Investment Banking) 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그런데 산업은행에서 정책금융 기능을 제외한 부문을 모두 IB로 볼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산은의 기업금융부문, 즉 일반 상업금융부문이 여전히 남기 때문에 산은지주회사는 내부에 IB부문을 포괄하는 상업은행과 별도 증권사 등을 보유한 우리금융, 신한금융 등 기존 은행지주회사가 별반 차이가 없어질 가능성이 있다. 당초의 원대한 목표에 못 미치는 또 하나의 은행지주회사만 만들어지는 셈이다. 산은지주회사가 다른 은행지주회사보다 IB부문에서 강점을 가진다는 주장은 설득력 있지만 민간은행 기업금융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지는 미지수다. 특별법의 적용을 받아왔던 국책은행이라는 장벽이 걷힐 때 IB부문의 강점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8. 투자은행 경쟁력 향상 방안

IB업무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금융 전문인력의 양성, 선진형 보상체계 정착, 적극적 위험관리, 국내외 네트워크 확충, 조직의 유연성 제고, 규모의 대형화, 자본력 확보 등의 과제들이 손꼽힌다. 특히 중요한 것은 해외진출전략의 이행이다. 산업은행은 해외금융시장을 선도적으로 개척하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국내은행의 해외진출은 외환위기 직후 크게 위축됐으나 2002년 이후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활성화되었다. 아시아에 편중된 국내은행 해외진출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영업거점의 해외 네트워크 확대가 필요하다. 진정한 의미의 해외영업 확대란 기존의 수익창출 구조 외에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는 것으로 IB업무에서 나온 수수료수익 등 비이자부문의 수익창출 능력을 키워야 한다.


글로벌 IB들의 발전경로를 살펴보면 자국영업에서 출발하여 지역영업으로 확장하고, 진출지역을 하나씩 늘리면서 발전하는 모습은 보인다. 가령 1869년 설립된 골드만삭스는 미국에서 기업어음과 IPO 등의 투자은행 업무를 영위하다, 1970년 유럽지역으로의 진출을 위해 런던에 첫 해외지점을 개설했다. 유럽시장에서 M&A 재무자문 등으로 성공한 골드만삭스는 1974년 도쿄지점과 1984년 홍콩지점을 개설하면서 아시아지역으로 진출하여 공기업들의 민영화에 참여했다. 아시아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중동지역으로 진출한 골드만삭스는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만 전체 IPO 수입의 43%를 거두는 등 전세계에서 고른 실적을 거뒀다. 이러한 국내->영국->유럽->아시아로의 단계적 해외진출 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현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진출한 국가의 문화, 제도 및 환경에 최적화된 전산 및 리스크관리 시스템, 인력 등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에 맞는 상품을 개발하여 해당 국가 및 글로벌 투자가에게 공급해야 한다. 여기에는 금융개방의 정도나 선진 금융기관의 진출 정도 등을 면밀히 분석하여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것도 포함된다. 선진 금융기관이 아직 진출하지 않은 아시아 지역의 성장잠재력이 높은 시장을 선점하는 타이밍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즉 진출한 국가를 거점으로 인접한 시장에 대한 정보 수집 및 교류를 통한 지역별 허브전략을 통해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조성해 신흥국가에 대한 정보 취득의 어려움을 보완할 수 있다. 산은은 국내기업 M&A 자문에서 보여준 업무성과를 바탕으로 국경간 인수(Cross-border M&A) 및 지분 참여를 이용해 현지 국가의 차별적 규제를 회피하고 신뢰 및 평판을 높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글로벌 IB들이 특정업무의 전문화를 기반으로 단계적으로 성장한 역사적 사실을 감안하여 국내 IB도 단기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특정업무의 전문화를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 산은도 기업규모(중소기업/대기업), 산업(특정 산업/모든 산업), 업무(특정 업무/모든 업무), 지역(국내/지역/글로벌) 등의 특화 가운데 어디에 선택과 집중을 할지 명확히 해야 한다. 아시아 시장에 진출함과 동시에 전략적 영업거점의 해외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지역 특화를 꾀할 만하다. 또한 M&A, 구조화금융(SF)과 PF, PEF, 파생상품 업무에 집중하는 업무 특화 역시 단기적 목표로 삼을 만하다. 세분화된 목표시장을 선정해 강한 업무부문에 집중하면서도 절대적 우위로 삼을 만한 부문을 마련하는 것이 관건이다.


9. 투자은행의 실패를 징검다리 삼아야

산업은행 민영화는 경쟁력을 갖춘 동북아 투자은행을 만들어 국부를 창출하겠다는 포부에서 출발했다. 가장 잠재력 있다고 여겨지는 산업은행을 국내 IB의 선도주자로 나서게 함으로써 동북아 금융시장을 이끄는 지역 IB로 발돋움하려는 웅지를 품었다. 2008년 하반기 불거진 금융위기 국면에서 주요 투자은행들도 휘청거리는 만큼 산은의 민영화 전략이 온당하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IB 육성이라는 경영전략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들린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IB 노하우를 가장 많이 축적한 산은에 대한 애정을 거두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은 리먼브라더스와 같은 독립계 IB가 아닌 상업은행을 기반으로 한 투자은행(CIB)을 지향하기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인다. 산은도 은행을 기반으로 하는 도이체방크식 IB를 본받겠다고 안심시킨다. 사실 CIB에 대한 개념 정의도 명확하지 않다. 당초 산은이 내세웠던 기업금융 중심 투자은행(Corporate and Investment Bank)과 지금 말하는 상업은행 기반 투자은행(Commercial and Investment Bank)은 그 정신이 비슷하지만 완전히 포개지는 것 같지는 않다. 여하간 과감한 위험 감수와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상징되는 IB가 아닌 보수적인 자산운용으로 대표되는 CB를 접목하겠다는 구상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 담보대출) 사태는 IB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이 재앙을 빗겨간 CB를 재조명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고수익을 얻지 못한다고 구박받던 CB의 안전성이 재평가되면서 CIB나 UB(Universal Bank) 모델이 부상했다. CIB가 금융지주회사 밑에 CB와 IB를 운영하는 형태라면 UB는 CB 내에 부서를 설치해 IB업무를 수행한다. UB는 IB업무만을 담당하는 자회사를 두지 않고 CB가 IB업무를 병행한다는 점에서 CIB와 대별된다. 유럽에서는 전통적으로 CB와 IB를 분리하지 않은 UB를 운영해왔고 미국은 CIB 형태가 발달했다. CIB와 UB는 크게 차이난다기보다는 미국과 유럽의 금융법과 관련해 나온 산물일 따름이다. 두 유형 모두 IB가 부실해질 때 CB영역까지 전이될 위험이 엄존한다.


CIB가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는 있지만 만병통치약이 아님은 또렷하다. CIB인 씨티그룹도 서브프라임 사태로 막대한 손실을 입고 곤욕을 치렀다. 단순히 외국의 어느 모델을 따르느냐 하는 주판알을 굴리기보다는 안전성과 수익성의 적정 비율과 알맞은 조합을 궁리하고 우리의 금융 관리ㆍ감독체제를 점검해보자. 『삼국지연의』에 비유하자면 군세를 자랑하던 IB군은 적벽에서 참담한 패배를 당한 형국이다. 산은은 IB의 긍정적 유산을 수습해 화용도로 퇴각해야 한다. 화용도의 관우는 자애로웠지만 오늘의 패잔병들이 맞닥뜨릴 ‘탐욕’이란 장수는 별로 푸근하지 않을 테니 퇴로는 험난하겠지만 말이다. 극단적 성과주의의 파국을 목격한 산업은행이 자본주의 사회의 절제를 고민하길 희망한다.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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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익구
:

금산분리 논쟁(2)

경제 2008. 4. 27. 22:52 |

3. 외국자본 어떻게 볼 것인가?

   정부가 금산분리 원칙을 수술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금융 공기업의 민영화와 결부시켜 이해할 수 있다. 우리금융지주는 외환위기 때 휘청거리던 것을 예금보험공사가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최대주주가 되었기 때문에 민간 은행으로 전환하는 것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은 정책금융과 중소기업금융 등 공적 목적을 띄고 만들어진 국책은행이지만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목적으로 민영화할 계획이다. 그런데 이들 민영화 대상 은행을 인수할 만한 거액을 동원할 수 있는 전략적 투자자는 현실적으로 외국자본 아니면 국내 산업자본 정도다. 7개 시중은행 가운데 6개가 외국인이 주인이며 우리은행만이 정부 소유이다. 이로 말미암아 토종은행을 더 이상 외국자본에 넘겨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민영화를 해야겠는데 국내에서는 사줄 곳이 없고, 외국자본에 내맡기기에는 부담스럽기 때문에 단계적인 금산분리 완화정책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금산분리 완화의 배경으로 제시하는 외국자본에 대한 방책은 앞으로도 금산분리 논쟁의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할 것이므로 고찰하는 실익이 크다.


   2007년 외국 사모펀드인 론스타는 보유하고 있는 외환은행 지배지분(51%)의 매수계약을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체결했다. 이에 따라 국부 유출 논란이 벌어지면서 금산분리 논쟁이 심화되었다. 외환은행이 HSBC로 넘어갈 경우 국내 금융시장에서 은행 민영화가 확대되고 국내 금융시장에 씨티그룹과 스탠다드차타드(SC)에 이어 또 하나의 강력한 외국자본이 등장하게 된다. 외국자본에 의해 인수되어 외국자본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은행은 외환은행, SC제일은행, 한국씨티은행이다. 2007년 말을 기준으로 국민, 신한, 하나, 외환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은 81.33%, 58.13%, 75.10%, 80.72%다. 주주 구성에서 본다면 우리금융지주에 속한 우리, 광주, 경남은행, 민영화가 논의되는 기업은행, 지방은행 중 전북은행만 토종은행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 기관이 일정 부분 리스크를 감수하고 국내은행의 주인이 되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자본은 제도적으로 참여가 불가능했고, 엄청난 수익을 거둔 것에 비해 사회공헌은 전무하다는 점 등이 사회적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간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산업의 주권을 외국인에게 빼앗기고 있기 때문에 국내 토종자본이 은행, 또는 은행지주회사를 인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금지원칙을 완화하자는 주장이 적잖다.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하는 이들의 가장 강력한 논거 가운데 하나다. 그나마 외국자본에 대해 독립성을 지키던 우리은행마저 곧 매물로 나오는 현실은 더 이상 외자에 국내은행을 내어줄 수 없다는 여론과 결합하여 큰 호소력을 갖는다. 금산분리를 유지하자는 입장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좀 더 명확한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금융위는 론스타와 같은 사모펀드가 국내 시중은행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것은 당분간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투기자본보다 전략적 투자를 하는 곳만 유치할 것이라는 금융위의 자세는 일견 바람직하다. 외국자본에 맞서 국내 금융시장의 자주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수긍할 만하다. 국내자본이 역차별 받고 있다는 대표적인 예로 거론되는 론스타의 사례는 좀 더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론스타의 경우 산업자본으로 비금융주력자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금융당국이 돈이 급해 대주주 적격성 심사(fit & proper test)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엄연하다.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때 부실금융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적용되는 은행법상 예외조항을 적용받았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과정에서의 불법적인 문제와 먹튀 논란은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대주주 자격을 심사하고 주식취득을 승인한 정부와 감독기관에게도 분명한 책임이 있다.


   직관적으로 볼 때 외국자본의 국내 은행산업 진출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지닌다. 먼저 은행산업 내 경쟁을 촉진하고 금융서비스 개선 효과를 가져다준다. 선진금융기법을 전수받아 금융산업의 발전을 도모할 수도 있다. 또한 감독 및 법체계 등을 포함한 금융시장 하부구조 개선을 통해 국내기업의 체질 개선에도 이바지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 진입한 외국계 은행에 대한 평가는 그리 후하지 못하다. 제일은행은 뉴브리지 캐피탈에, 한미은행은 칼라일에, 외환은행은 론스타에 팔았는데 이들 외국자본은 사실상 은행업의 경험이 없는 사모펀드일 뿐이다. 이 펀드들은 부실기업을 인수하여 구조조정한 후 되파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사모펀드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은행경영을 기대할 수 없고 선진금융기법에 대한 전수도 미비했다. 외국계 은행이 보여준 안전자산 위주의 자산운용은 국내 금융산업의 안정성 측면에서는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수적인 자산운용은 은행의 자금중개기능을 약화시켜 실물경제의 활력을 불어넣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만든다. 특히 외국계 은행이 중소기업금융에 인색할 우려가 크다. 외국자본의 입장에서는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에 대해 정보의 비대칭성에 노출되어 있어 실제 리스크보다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더불어 외국계 은행이 우량고객을 선점하게 되면 서민금융 역시 위태롭게 된다.


   이처럼 외국자본은 지금까지 그 순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하지만 외국자본이 못했다고 국내 산업자본만이 대안으로 내세우자는 결론이 논리적으로 도출되지는 않는다. 은행을 인수하는 주체가 은행을 얼마나 잘 경영할지를 판단하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국내 산업자본은 증권회사나 보험사 등 비은행 금융회사를 이미 많이 소유하고 있다. 이 회사들을 세계적으로 키우기보다는 재벌의 지배구조 유지라는 목적으로 금융회사를 거느린 것이 아니냐는 의혹은 여전하다. 국내 산업자본이 금융산업을 발전시킨다는 믿음이 없는 판국에 민족주의 논리에 따라 산업자본만이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몰고 가서는 곤란하다. 보다 근본적으로 은행에 꼭 주인이 있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도 생각해봄직하다. 앞서 살펴봤듯이 세계적인 민간 상업은행 가운데 민간 지배적인 대주주가 소유하는 곳은 많지 않다. 굳이 주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주인이 될 자격이 모자란 주체에게 은행을 넘기는 부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외국자본이 과도하게 국내은행을 좌지우지한다면 문제다. 정부가 은행을 지배하는 것도 문제고, 산업자본이 은행을 지배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다. 은행의 소유구조와 관련해서 외국자본, 산업자본, 정부 모두 정답이 아니라는 원칙이 필요하다. 세 주체 가운데 어느 것이 그나마 나은가 하는 식의 접근을 넘어 여러 가지 소유구조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4. 금산분리 정책이 나아갈 방향은 어디인가?

   금산분리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없다. 다만 금융위의 방안이 완화 일변도에 치우쳐 있다는 점에서 보완책과 향후 과제를 찾아볼 필요는 있다. 우선 국내 금융자본 육성을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동안 금융전업기업가 제도 등을 통해 금융자본 육성을 시도하였지만 실패했다. 현실적으로 산업자본과 연계하지 않은 별개의 금융자본의 존재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아직은 그 규모가 작지만 자본시장통합법 등의 시행으로 비은행 금융회사의 규모가 커질 경우 순수하게 금융회사로만 이루어진 금융그룹이 출현 가능하다. 은행과 은행, 은행과 금융회사 간 상호 주식 보유(cross-shareholding)를 통해 산업자본이나 외국자본을 대체할 만한 구조를 형성할 수도 있다. 금융자본-산업자본-외국자본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통한 동반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물론 비은행 금융회사를 운용하고 있는 산업자본에게 은행을 거느릴 수 있게 만들어 시너지효과를 누리게 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산업자본이 들어가지 않은 금융전업자본의 생성 가능성을 미리부터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은행 민영화 시 인수자금이 부족한 금융자본에게 매각하거나 또는 국민주 형태로 민영화할 경우 할부(installment) 방식의 매각을 고려해 볼 수 있다. 할부방식의 매각은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의 국가에서 정부지분 매각 시 활용한 방안으로 2단계에 걸쳐 인수가격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매각대금이 완불되기 전이라도 투자자들은 배당을 받을 수 있어 많은 소액투자자들을 유인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지분 분산효과가 발생한 사례가 있다. 이처럼 기관투자가에 다수 소액주주를 융합시키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기존의 재벌들이 소유와 지배구조를 개선하여 금융그룹과 제조업그룹으로 그룹 내 기업들을 분할한 뒤 그 중 금융그룹이 은행을 인수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재벌 문화를 봤을 때 이 제안이 실현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확답을 내리기 어렵다. 삼성의 경우 삼성물산을 정점으로 해서 제조업체들을 묶은 산업지주회사와 삼성생명을 정점으로 해서 카드, 증권을 엮은 금융지주회사로 나뉘는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는 만큼 향후 움직임이 주목된다. 이런 경향이 두드러질수록 산업자본의 금융화(financialization)가 급격하게 진행되는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 금융업이 발달해서 제조업이 위축되는 선진국에서는 실물부문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어 실업이 늘고 양극화가 심해진다. 금융기업의 성격이 강해진 GE가 금융화 축적 전략을 채택하면서 13만여 명의 생산직 노동자가 해고한 사례가 있다. ‘88만원 세대’라는 용어가 유행하는 우리의 상황도 그 굴레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조업의 고용창출이 한계에 다다랐다며 금융을 비롯한 서비스업에 몰두하자는 주장은 금융화가 몰고 올 위기를 간과한 처사다. 금융화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면 산업 공동화를 가속화하지 않는 선에서 관리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음으로 금융감독 체계를 굳건히 확립해야한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하고 나선 이명박 정부는 규제완화책에 몰두하고 있다. 대기업에 대한 정부의 신뢰는 어느 때보다 높으나 대기업의 잘못된 관행이 최근 들어 시정되었다는 증거는 찾기 힘들다. 규제완화가 가장 효과적인 단기 처방임을 인정하더라도, 사후 감독을 강화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 하고 있는 금융위는 보다 실질적인 중장기 대응책을 제시해야 한다. 미국의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금융감독이 선진적인 국가에서도 금융혁신으로 말미암아 다양한 위험들이 끊임없이 생성되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안이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우리에 견주어 금산분리가 엄격하지 않은 선진국들에서 산업자본이 금융회사를 경영하는 예를 찾아보기 힘든 것은 엄격한 금융감독이라는 사후적 감시가 잘 되어있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의 금융감독 체계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세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카드사에 대한 규제완화로 400만 명의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 논란이 아직도 진행 중인 경험에서 보듯이 금융감독 기능에 대한 불안감은 막연한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기능을 통합한 현재의 금융위는 관치금융의 우려를 계속 자아내고 있다. 정책적 실패를 은폐하기 위해 감독권 발동을 태만하게 하는 감독유예 현상(supervisory forbearance)에 대한 걱정도 높다. 이럴 때일수록 은행의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단호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시장의 규율은 철저히 준수하겠다는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다. 정부안대로 금산분리가 완화될 경우 사외이사와 감사위원회 등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니 이에 대한 입법적 보완도 절실하다. 또한 은행 및 비은행 금융회사에 서로 다르게 규제하고 있는 부분을 어느 정도 통일시켜 산업자본이 규제 차이를 선택적으로 이용하는 규제차익(regulation arbitrage)을 차단해 철폐되고 남아있는 규제의 실효성은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가장 중요하면서도 번번이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경제사범에 대한 처벌 강화다. 회계부정을 저지른 미국 엔론사의 최고경영자가 25년형을 선고받은 것은 시사해주는 바가 많다.


   궁극적으로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모두 해외시장 개척을 권장해야 한다. 국내은행의 해외진출 비중(국내은행 총자산 중 해외점포 자산의 비중)은 2006년 2.3%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자본시장통합법의 시행으로 투자은행(IB)은 은행과 증권사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현재 국내은행의 수익 중 투자은행 부문의 비중은 3%에 불과한 실정이다. 보다 큰 위험을 안고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은행 부문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 위험 부담을 안을 수 있는 자본금을 크게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논리가 반드시 산업자본의 참여를 촉구하는 쪽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이동걸 한국금융연구원장은 “눈높이를 낮출 필요가 있다. 국내 금융회사들이 지금 당장 세계적인 투자은행(IB)으로 성장할 수 없다. 우선 국내 자본시장에서 소외받고 있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기업 공개, 상장 업무, 인수·합병 같은 투자은행 업무를 해가면서 실력을 키운 뒤 국제적으로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골드만삭스 대신 실버만삭스를 제안한 그의 주장을 음미할 만하다.


   산업자본에게도 외국은행 M&A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하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 국내 산업자본이 보유한 잉여자본을 외국 우량 금융회사 투자에 나서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꼭 은행업이 아니더라도 증권, 보험사를 소유한 대기업들이 많은 만큼 진출에 큰 장벽은 없어 보인다. 싱가포르의 테마섹(Temasek)처럼 국외 금융업의 글로벌 경험을 쌓게 만드는 셈이다. 성공적으로 외국은행 경영을 해낸 산업자본에 한해 국내은행과 국경 간 M&A를 허용해 국내 은행산업의 글로벌화를 촉진하는 기폭제로 삼는다. 이러한 절차를 통해 금산분리 완화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검증된 실력을 다시 국내로 도입하는 선순환을 노릴 수 있다. 금융위의 완화 방침 가운데 3단계는 아직 구체적인 일정이 잡혀있지 않다. 사회적 합의가 여의치 않을 경우 장기화 되거나 무산될 여지도 있다. 이러한 국내 일정에 얽매이기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해외로 눈을 돌리는 과감함이 요구된다. 국내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결합하여 국내의 금산분리를 극복하기 위해 나라 밖에서 만나는 흥미로운 발상의 전환이다(박동창, “‘한국형 테마섹’이 금산분리 해법”, 매일경제, 2007.07.16. 참조).


   두서없이 살펴봤지만 금산분리 논쟁은 파고들수록 백가쟁명 백화제방(百家爭鳴 百花齊放)이다.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비율과 조합의 문제다.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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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개혁연대 http://www.ser.or.kr/
금융위원회 http://www.fsc.go.kr/
전국경제인연합회 http://www.fki.or.kr/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
한국금융연구원 http://www.kif.re.kr/

Posted by 익구
:

금산분리 논쟁(1)

경제 2008. 4. 27. 22:24 |

이번 학기에 듣는 금융론 에세이 과제로 냈던 글입니다. 후배 용철이와 공동으로 작성했습니다. 특히 2장은 용철이의 손길이 가장 많이 닿아 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하게 된 과제물인데 예전만큼의 의욕이나 열정이 녹아 들어가 있지 않은 것 같아서 반성하는 의미에서 자주 찾아보려고 여기다 올립니다. 사실 어차피 다 짜깁기한 것이라 딱히 읽을 만한 내용도 없고요. 저와 용철이가 금산분리 정책에 대한 시각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딱히 결론이랄 것은 없습니다. 이 잡글을 쓰는데 가장 많은 영감을 제공해주신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님과 현석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님께 각별한 고마움을 표합니다.


1. 이명박 정부는 왜 금산분리를 완화하는가?

   이명박 정부의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31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업무 보고를 했다. 업무보고의 핵심은 산업자본의 은행 인수를 막는 현행 금산(金産)분리 제도의 손질이다. 금융위는 글로벌 금융강국 건설을 모토로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막는 금산분리 규제의 완화, 금융지주회사의 설립 활성화, 산업은행의 민영화 등에 역점을 두고 있다. 금융위는 3단계에 걸쳐 금산분리 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1단계는 사모펀드(PEF)와 연기금의 은행 지분 보유규제를 완화해 산업자본이 간접적으로 은행을 소유할 수 있게 한다. 2단계로 현행 4%로 제한된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한도를 상향조정한다. 3단계로 법률에 규정된 보유한도를 폐지할 방침이다. 금융위는 산업자본 소유한도 4%를 놔두고 1단계만 실시할 경우 실효성이 없다는 고려 하에 연내에 1단계와 2단계를 함께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위는 이와 더불어 보험ㆍ증권지주회사 등 비은행 금융지주회사가 제조업체 등 비금융 자회사나 손자회사를 소유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금융지주회사에 대한 자회사 규제를 풀어 대형 금융그룹의 출현을 유도한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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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산분리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결합에 의한 폐해를 막기 위해 산업자본의 금융산업의 지배 또는 금융산업의 산업자본 지배를 제한하는 규정이다. 대기업이 은행에 예치된 고객의 돈을 제멋대로 대출해 쓰거나 또는 은행의 풍부한 자금을 이용해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은행법 제16조의 2에서는 비금융주력자는 금융기관의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4(지방금융기관의 경우에는 100분의 15)를 초과하여 금융기관의 주식을 보유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4% 정도의 지분이라면 은행을 좌지우지할 수 없으리라는 판단에서다. 또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과 공정거래법에서는 명시적으로 금산분리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금융자본의 일반산업 지배를 막겠다는 취지가 녹아 들어가 있다. 기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구분 여부는 나라마다 다르다. 스위스와 같이 전혀 구분하지 않는 나라도 있지만, 미국처럼 엄격하게 구분하는 나라도 있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벗어날 필요는 있겠으나 우리와 여건이 다른 외국의 사례를 추종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참고로 기획재정부는 국책은행 민영화 방안으로 ‘메카뱅크’안을 내놓았다. 산업은행, 기업은행, 우리금융지주를 통합한 뒤 민영화자는 기획재정부의 안은 금융위와 이견을 보이고 있다. 금산분리 완화만이 유일한 방책이 아닌 셈이다.


   2007년 11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서강대학교 부설 서강시장경제연구소가 공동으로 금융전문가 18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현행 금산분리 정책에 대한 찬반이 갈렸다. 현행 금산분리 정책이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효율성과 금융제도의 안정성을 제고하느냐는 질문에 ‘동의하지 않는다’가 42.9%, ‘동의한다’가 40.2%로 팽팽하게 맞섰다. 금산분리 정책의 개선 방향에 대해서는 ‘현행보다 강화’가 7.6%, ‘현행대로 유지’가 25%, ‘현행보다 완화’가 39.1%, 은행과 산업 분리로 범위를 축소(은산분리)가 17.9%, ‘분리법안을 폐지’가 10.3%로 다채로웠다. 현행보다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67.3%에 달하지만 완화 방안에도 편차가 큰 편이다.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4년 1월에 발표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에 따른 부작용 방지 로드맵’의 ‘7대 실천 과제’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물어 본 결과 ‘동의한다’는 의견이 평균 64.2%로 나타났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금산분리가 완화된다 하더라고 그에 따른 부작용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한다는 의견임을 알 수 있다. 금융전문가들 사이에도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보아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금산분리 찬반에 대해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옳다는 것을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의 조치가 가시화된다면 국내 주요 기업들 가운데 은행 경영권 인수 의사를 표하는 곳이 조만간 등장할 것이다. 내년 이후 추진되는 산업은행 및 우리금융지주 민영화에는 국민연금 등 연기금과 사모펀드를 앞세운 산업자본이 뛰어들 전망이다. 사모펀드를 통한 재무적 투자를 통해 미리부터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 수도 있다. 금융위의 방침이 오히려 글로벌 스탠더드에 배치된다는 시민단체의 반발도 거세다. 2007년 경제개혁연대는 ‘세계 100대 은행 및 보험사의 최대주주 분석’ 자료를 통해 세계 100대 은행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292개 산업자본 가운데 89.0%인 260개 산업자본의 지분율은 4% 미만에 불과하고, 산업자본이 실제 은행 경영을 지배할 수 있을 정도의 지분을 보유한 경우는 세계 100대 은행 중 4개뿐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의 보고서에서는 2006년 7월말 기준 세계 100대 은행 가운데 주식 소유구조가 공개된 91개 은행을 조사했더니 영향력 있는 주요주주가 없는 경우(지분율 10% 미만)가 52.7%인 48개로 나타났다. 산업자본이냐 아니냐를 떠나 애초에 은행을 특정 자본이 지배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분석 결과다. 금산분리를 완화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인지, 금산분리를 유지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인지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2. 금산분리 논쟁은 무엇을 두고 다투는가?

   금산분리를 둘러싼 논쟁에 앞서 우리는 우선 금융회사가 여타의 제조업 등과 구분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금융회사는 주로 자금의 중개를 담당하는 업무의 특성상 자기자본이 작고 타인의 자금을 가지고 영업을 하게 된다. 국제은행(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에서 은행의 안정적 경영을 위해 권고하는 자기자본비율이 고작해야 8%에 지나지 않을 정도이다. 이처럼 금융회사는 자기자본 비율이 적다. 즉 대주주의 입장에서는 부실화에 뒤따르는 자기자본의 손해, 즉 부실위험이 적기 때문에 위험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경제 전반적인 파급효과를 감안해 볼 때 제조업체와는 달리 금융회사의 부실은 수많은 금융 서비스 이용자들과 금융시스템 자체의 안정성 등에 미칠 악영향이 크므로 보다 더 안정적인 경영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금융회사의 운용 자산은 현금성 자산이 대부분으로 유동성이 매우 높아서 산업자본이 이를 소유하게 될 경우 임의로 계열기업에 지원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차입경영을 통한 무분별한 팽창이 금융계열사와 비금융 계열사 모두를 부실하게 해서 지난 외환위기의 주범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은행의 주된 역할 중 하나는 자원의 배분이다. 적절한 곳에 적절한 자금을 투입하고 부실 가능성을 평가하여 상시적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것 또한 은행의 임무다.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소유는 이와 같은 은행의 역할을 정상적으로 수행하지 못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위험을 추구하여 높은 성장을 추구하는 산업자본이 금융회사를 소유하고 지배함에 있어 제한을 두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산업자본이 금융회사를 차지하게 될 경우 예상되는 유리한 점 역시 존재한다. 우선 규모의 경제를 통해 경영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또한 업무가 다각화되면서 다방면에서 창출되는 종합적인 시너지효과 또한 기대해 볼 수 있겠다. 경영효율성의 제고에 가장 주된 부분은 대리인 문제(Agent-problem)의 해결이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이며 주주를 대신할 경영자를 고용하여 기업을 운영하게 되는데, 이 때 주주의 통제 감시능력이 일정 수준에 달하지 못한다면 경영자가 기업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하기보다는 사적 이익에 더 큰 유인을 느끼고 행동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 은행의 경우 과거 소유규제로 인해 경영을 통제하는 지배대주주가 존재하지 않아 경영의 효율성이 저해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은행 민영화 과정에서 공적자금 최대 회수라는 목표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지배대주주의 존재를 옹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은행을 소유할 수 있을 정도의 자금력을 가진 주체는 외국자본이 아니라면 산업자본 뿐인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외국 자본의 지분이 너무 높아 금융 시스템이 외국자본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있어 산업자본에 그 자리를 주어 이를 막자는 주장이 있다.


   또 실물기업과 금융회사가 결합하여 유기적으로 기능한다면 규모의 경제뿐 아니라 범위의 경제까지 가능하게 하여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 결합기업의 다양한 인력, 정보, 설비 등 생산요소의 공동사용으로 규모 및 범위의 경제를 실현하고 기업제품 및 금융제품의 연계판매와 상호구매 등을 통해 판매수입을 증대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또 서로 상이한 지역권에 위치할 경우 지역간 경기변동 차이의 영향을 상쇄시켜 결합기업 수익의 안정성을 높일 수도 있다. 또 경영자 및 전문가를 서로 파견하여 우수경영기법을 상호전수 해주는 것도 가능하다. 금융회사의 첨단 관리기법에 능숙한 금융전문가가 기업의 재무관리 효율성 증대에 보탬이 될 수 있고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자금조달 경험에 많은 기업의 재무관련 전문가가 국제금융 업무에 있어 금융회사의 큰 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여신이나 유가증권 등의 자산 운용에 있어서 금융회사와 기업간 정보비대칭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여신 건전성을 확보할 수도 있게 된다. 더불어 기업은 단기적 지표에 얽매일 필요 없이 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효율적 투자를 추구하여 성장잠재력을 확충할 수도 있게 된다.


   그렇다면 금산분리에 대한 주요 논쟁과 거기에 대한 찬반양론의 입장을 정리해보도록 하자. 도입부에서 언급된 통계자료에도 나타나 있듯이 금산분리에 대해서는 많은 이견이 존재한다. 금산분리에서 논의되는 주요 쟁점들은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견제, 규제의 역차별성, 금융시스템의 안전성, 국내기업간 적대적 M&A 대응 문제, 금융산업 발전에 대한 이해, 규제의 실효성에 대한 논쟁의 여섯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이상의 분류는 현석원, “금산분리 논의의 쟁점과 개선 방향”, 『VIP REPORT』 2007.10.02, 현대경제연구원, 2007. 재정리).


   먼저 규제의 역차별에 대한 논의는 가장 치열한 쟁점이다. 금산분리의 현행 유지를 주장하는 측은 산업자본이 진입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국내 은행이 해외에 인수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다. 현행법에 의해 해외자본은 외국 금융자본만이 진입 가능한 상황인데 금산분리를 완화하게 된다면 그로 인해 해외 산업자본이 국내 시장에 진입할 우려가 있다. 이에 대해 금산분리의 폐지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결국 이는 국내자본에 대한 역차별이며 그것 때문에 시중은행의 경영권이 외국자본에 넘어가게 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외국자본과 국내자본의 은행 지배에 차별성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져 볼 수 있다. 국내 토종자본이 은행을 인수한다고 하여 금융산업이 발전할 것이라는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외국자본을 국내자본으로 대체한다고 금융회사의 경쟁력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며 금융회사의 경쟁력은 금융회사의 경영진과 이를 견제하고 감독하는 이사회, 감사위원회의 구성, 기타 금융산업의 영업관련 규제 완화를 통해 제고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에 대해 별도로 후술하겠다(3장 참조).


   은행의 사금고화에 대한 우려 역시 크다. 산업자본이 금융회사를 소유하게 되면 순환출자 등을 통해 은행이 기업의 사금고가 될 가능성이 높아져 경제력이 대기업에 집중될 수 있다. 앞서도 말했듯이 유동성이 높은 자산은 임의로 운용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적은 자본금으로 금융회사를 설립하고 레버리지를 활용한 자금동원으로 기업을 확장하여 위험도를 높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평상시에는 멀쩡하다가 모기업이 경영위기에 닥치자 급속도로 금융회사가 부실화되었던 외환위기 당시 경험담도 언급된다. 이에 금산분리의 폐지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시장 개방을 통해 국경을 넘어 무한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그와 같은 경제력 집중에 대한 우려가 과장되었다고 주장한다. 2007년에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작성한 ‘금산분리정책의 문제점 및 정책개선방향’에 따르면 최근 금융산업의 독립성과 건전성은 외환위기 이후 금융감독장치 및 준법감시인제도, 이사회제도 등을 통해 제도적으로 확립되어 있어 금융기관에서 거액의 자금이 불법적으로 대주주에게 이동한다면 이를 충분히 감지해 낼 만큼 시장 기능이 제고되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또한 금융계열사를 지배할 여력이 있는 수준의 산업자본은 자기 신용으로 직접 시중 금리보다 저렴하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에 굳이 은행을 사금고화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이와 연관해서 금융시스템의 안전성 문제에 대해서도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금산분리를 유지 하는 측의 입장에서는 산업자본인 모기업의 이해관계에 따라 금융회사의 자금이 무리한 확장과 위험한 투자에 이용되어 건전성과 안전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앞서 언급하였듯 은행은 자기자본비율이 낮고 대부분 타인의 자금으로 영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주주 입장에서 위험사업을 추구할 유인이 크고 그에 따라 부실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반면 금산분리 폐지론자들은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기업의 낮은 부채비율을 감안할 때 은행으로부터 기업이 무분별한 대출을 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현재와 같이 국제화된 금융시장에서는 금융회사 소유 여부가 기업의 확장능력을 좌우한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 국내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적대적 M&A를 막기 위해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금산분리 유지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적대적 M&A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규제의 완화보다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을 통해 주주가치의 상승을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금산분리 폐지 입장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 투자유치와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M&A 규제를 대부분 철폐하게 되었고 이는 곧 국내 기업 경영권이 외국자본으로 넘어가게 되는 현상을 초래했다고 말한다. 독일이나 일본의 경우 이를 막기 위해 은행과 기업 간 상호주식보유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금융산업의 발전에 위한 선결문제에도 양측이 엇갈린다.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보다는 금융산업 자체의 발전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금산분리 유지 측의 입장이다. 은행의 건전성을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정부나 외국자본, 대기업으로부터 독립된 국내 금융자본을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금산분리 폐지 쪽에서는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금융이 산업을 지배하는 시대이며 기업 자본 부족의 시대는 잉여자금의 시대로 바뀌었다고 본다. 금융 자체가 고수익 산업이고 성장 동력이므로 글로벌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해외기업 인수합병과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 등의 분야에서 금융 및 산업자본의 공조를 이끌어내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와 같은 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라는 규제가 실효성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있다. 금산분리 폐지 입장에서는 영국에서는 인터넷뱅킹(Internet Banking)을 중심으로 한 은행사업을 유통산업에 허용하고 있고, 미국의 경우 제너럴 일렉트릭(GE)은 GE 캐피탈(Capital)을 자회사로, 지엠(GM)은 GM 파이낸스(Finance)를 운영하고 있는 예로 제시하면서 정보기술의 진전에 따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어 인터넷 발달에 따라 제조업이나 유통업에서 은행사업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이에 반해 금산분리를 유지하고자 주장하는 사람들은 은행은 기업의 정보들이 집중되는 곳임을 강조하며 은행은 반드시 중립적이어야 하며 따라서 산업자본의 은행 진출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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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이 능력이다5

경제 2007. 11. 6. 03:57 |

<도덕성이 능력이다>는 총 5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순서대로 읽으셔야 하지만 따로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A는 Amorality의 약자로서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지도자를 지칭하는 가상의 인물입니다. 대선 끝날 때까지 틈틈이 수정할 계획이니 퍼가지 말아주세요.^0^


5. 도덕력으로 경쟁하라


11월 1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한국노동연구원이 기획예산처에 제출한 ‘소득분배 및 공적이전·조세 재분배’ 보고서에서 도시가구의 시장소득 기준 상대빈곤율이 2006년 16.42%로 관련 통계가 나온 199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행히 증가폭은 둔화되고 있다. 상대빈곤율은 가구소득이 도시가구 평균소득의 50%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의 인구 비율을 말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보장과 조세제도 등 정부 정책을 통한 불평등 완화 효과는 커지고 있지만, 개인이 벌어들이는 시장소득의 불평등은 확대되고 있다. 시장소득은 모든 수입을 합한 경상소득에서 정부보조와 같은 공적이전소득을 제외한 것으로, 가구원이 직접 벌어들인 소득이다. 저소득층의 소득이 줄어들고, 고소득층과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정부지출이 불평등을 완화시키고 있다지만 비정규직이나 영세 자영업자의 소득 감소에 기인한 시장소득의 불평등에 대한 개선책 마련이 시급하다. 정부는 공적부조와 조세정책을 감안한 가처분소득은 소득 불평등 추세가 정체되고 있다고 해명한다. 선진국과의 복지 예산의 규모 차이가 재분배 효과의 차이를 낳는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다. 양극화 해결을 위해 성장을 통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이처럼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숫자 하나를 놓고 분석도 묘안도 갈린다. 경제중심주의, 경제만능주의가 지배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탈도덕 현상’이 꾸려 가는 경제에는 도덕성이 천덕꾸러기일 게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선(先)성장 후(後)복지 레토릭 밖에 내놓을 거리가 없다. 나는 도덕성을 희생해서 경제를 살리지 못한다고 확신한다. 윤리경영, 부패지수, 사회자본 등의 각종 이론과 실증 연구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아니 양보해서 경제가 살아난다고 해도 부도덕한 경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게다가 A 같은 이들이 사회의 상층부를 차지하는 사회에서 가장 피해를 볼 계층은 서민이다. ‘도덕력’이 동난 세상에서 누가 일차적이면서 심대한 타격을 입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탈도덕 현상’을 가치중립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까닭은 그것이 환상이고 허상이기 때문이다. ‘탈도덕 현상’의 기저에 깔린 ‘식객(食客)의 도덕’은 시혜적 평등을 내포하고 있다. 선거는 정치적 학습 과정이다. 1952년과 56년 미국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나섰던 스티븐슨은 매카시즘에 맞서 강요된 애국심이 아닌 민주와 자유의 가치를 일깨웠다고 한다. 그는 연거푸 패배했지만 자신이 믿는 가치에 헌신할 줄 알았던 그 자세를 배우고 싶다. 이번 대선을 통해 스티븐슨 같은 괜찮은 지도자도 만났으면 좋겠다.


잡설이 길었지만 끝끝내 A가 집권한다고 치자. “요와 순은 천하를 다스리기를 어진 마음으로 하였으므로 그 백성들도 그를 따라 어질게 되었고, 걸과 주는 천하를 다스리기를 포악한 마음으로 하였으므로 그 백성들도 그를 따라 포악하게 되었다(堯舜帥天下以仁 而民從之 桀紂帥天下以暴 而民從之)”라는 『대학』 구절이 있다. 요와 순이 통치한 것은 백성들이 요순 같은 자질을 가졌기 때문이고, 걸과 주가 통치한 까닭은 백성들이 걸주와 같은 포악함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거꾸로 읽으면 섬뜩해진다. 민주공화국의 수준은 결국 그 국민의 수준과 비례한다는 평범한 진리이겠지만. 이어서 “그 내리는 명령이 그들 자신이 실제로 좋아하는 바와 상반되는 것이면 백성들은 따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기에게 선이 있은 뒤에 남에게 선을 지니기를 요구하며, 자기에게 악이 없는 뒤에 남의 악을 비난하는 것이다(其所令 反其所好 而民不從 是故 君子有諸己 而後求諸人 無諸己 而後非諸人)”라고 말한다. 앞서 본 공자와 맹자의 경구와 비슷하다. A는 결국 또 다른 A를 복제해낼 따름이다.


실질적 민주주의를 논하는 분들이 부쩍 늘었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완숙해진 거 아니냐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탈도덕 현상’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선출 과정의 필터링(Filtering)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자원을 결핍한 A는 ‘비지지자 신뢰도’를 확보하기 위해 유무형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A 비지지자들의 냉소주의도 문제겠지만 극단적으로는 맹목적인 신뢰를 부여할 수 있는 온정주의적 독재자의 출현을 고대할지도 모른다(임혁백, 『세계화시대의 민주주의』, 나남출판, 2000). 아직 보완이 더 필요한 ‘도덕력’이지만 도덕성이 능력이라는 기본 골격만은 확고하다. 유권자들은 이제 ‘도덕력’ 경쟁도 헤아리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이중적 잣대와 관대화 경향을 버리고 얼마 더 깐깐해져서 이 권리를 누리자. ‘탈도덕 현상’이 헝클어뜨리고 있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건사하고 믿음직한 지도자를 선택하자.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위원으로 고생하셨던 한홍구 성공회대 역사학과 교수가 “우리는 화해를 구걸하지 않겠다”라고 일갈했다는 기사가 떠오른다(“"우리는 화해를 구걸하지 않겠다" .” 오마이뉴스. 2007. 10. 28.). 과거의 행적이든 오늘날의 과오든 양심 고백을 하는 사람은 너무 드물다. 하지만 구걸로는 진정한 화해를 이루지 못한다. 나는 마찬가지 논리로 도덕을 구걸하지 않겠다. ‘탈도덕 현상’을 부추기는 자들은 나쁜 줄 알면서 저지르는 고의범도 있고, 자신의 행동이 옳다고 믿는 확신범도 있다. 고의범은 극복과 제어의 대상일 뿐 논쟁과 토론의 상대는 아니다(이런 말을 하는 게 슬프지만). 확신범은 개전의 희망이 있기는 하다. 그네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도덕적 훈계가 아니라 ‘도덕력’의 유용함이다. A와 그 지지자들에게 건넨 손가락질을 나 자신에게 먼저 돌리고 한 번 뿐인 삶을 ‘도덕력’으로 매만지는 긴 호흡의 여정이다. 종종 고단하겠지만 남에게 말하지 못할 것이 없는 떳떳한 삶을 지킨다면 얼마나 번듯하고 흐뭇하겠는가. 정리하자. 우리를 다스리는 분들이 ‘도덕력’을 갖췄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결코 사치가 아니다. 나를 다스리는 사람이 존경스럽고 본받을 만한 분이길 갈망한다. 하지만 나는 감동을 구걸하지 않겠다. - [無棄]


* 현행 공직선거법 제93조는 탈법방법에 의한 문서·도화의 배부·게시 등 금지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선거일 180일 전부터는 선거에 영향을 끼칠 목적으로 정당·후보자를 지지·반대하는 내용에 대해 게시 및 상영을 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이 법이 누리꾼들의 건전한 정치 토론을 사실상 봉쇄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적잖습니다. 선관위가 선거법 93조의 본래 취지를 망각하고 무리하게 적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안타깝네요. 선거법 개정에 소극적이던 어느 정당은 선관위 이외에 정당도 포털이나 언론사에 글을 올린 이용자의 신원 정보 제공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규제를 한층 강화한 법안을 지난 5월 발의했다고 합니다. 경제성장을 약속하기 전에 국민의 기본권부터 보장해주시길 간곡히 청합니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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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이 능력이다4

경제 2007. 11. 6. 03:56 |

<도덕성이 능력이다>는 총 5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순서대로 읽으셔야 하지만 따로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A는 Amorality의 약자로서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지도자를 지칭하는 가상의 인물입니다. 대선 끝날 때까지 틈틈이 수정할 계획이니 퍼가지 말아주세요.^0^


4. 사회자본과 수기치인


정치학에서 사회자본의 개념을 대중화시킨 퍼트남(Robert D. Putnam)은 “사회자본을 상호간의 이익증진을 위한 조정과 협조를 용이하게 하는 네트워크(network), 규범(norms), 사회적 신뢰(trust)와 같은 사회조직의 특성”으로 정의한다. 이탈리아의 남과 북은 반세기가 넘도록 동일한 민주정치와 지방자치제도 아래에서 운영되어 왔음에도 사회 문화의 발전 수준의 차이가 컸다. 퍼트남은 선진국 수준에 다다른 북부에 비해 낙후성에 머무른 남부와의 차이를 축적된 사회자본의 격차로 설명한다. 수평적 질서에 기초한 신뢰와 협력을 중시하는 시민정신이 발달한 북부에 비해 남부는 수직적 질서에 따른 질서와 명령, 복종과 불신이 자리잡았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신뢰와 사회자본을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했다. 그는 “한 국가의 복지와 경쟁력은 하나의 지배적인 문화적 특성, 즉 한 사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라고 주장한다. 신뢰는 거래비용을 줄이고 분업과 협동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고신뢰 사회일수록 번영하게 된다는 논리다.


최근 사회자본의 긍정적 효과를 조명한 연구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아직 명확한 개념 정의가 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상호협력을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이루지만 사회자본을 구성하는 항목들에 대한 학자들의 설명은 통일성이 없다. 2000년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 경영경제학회에서 사회적 자본의 4대 구성요소로 신뢰성(trust), 진실성(integrity), 단결성(solidarity), 개방성(openness)을 꼽았다. 다소 애매하게 번역된 진실성은 원칙을 준수하는 의지 및 능력을 뜻한다. 이렇게 대체로 합의된 개념을 깨우치더라도 사회자본이 경제발전의 독립변수인지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모호하다는 문제가 남는다. 사회자본이 경제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경제발전으로 인하여 사회자본이 형성될 여지도 배제하기 어렵다. 특히 산업혁명 시기를 고찰해보면 부의 축적과 자본주의 발달이 시민사회 활성화와 사회자본 축적을 낳았다는 설명도 일리가 있다. 사회자본은 경제발전의 상호변수이거나 심지어 종속변수일 가능성도 있다(허철행·허용훈, “한국 사회자본 형성의 한계와 전망”, 『한국행정논집』 제19권 제1호, 한국정부학회, 2007, pp. 151~170).


이런 험담에도 불구하고 물적자본, 인적자본과 더불어 사회자본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저출산과 투자부진으로 인적자본과 물적자본의 한계에 봉착한 한국에서는 사회자본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 사회자본은 한번 형성되면 장기간 지속되는 특성을 갖기 때문에 꾸준한 관심을 요구한다. 더군다나 한국 민주주의 공고화라는 틀에서 정치문화의 중요성은 증대되고 있다. 사회자본의 형성은 정치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사회자본은 서구의 맥락에서 지나친 개인주의의 폐단을 극복하고 공동체적 관심을 환기하느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한국의 사회자본은 서구의 정치문화와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연고주의나 정실주의의 잔재를 안고 있는 한국은 투명하고 정의로운 공적 영역을 만드는 과제를 우선해야 한다. 한국은 과도한 개인주의를 우려하기 이전에 지나친 권위주의, 국가주의를 걷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낮은 신뢰도에 허덕이는 국회, 정당, 정부에 대한 제도개혁을 모색할 때다. 다양한 계층의 국회 진출에 바탕을 둔 대표성의 확충, 정당의 책임성 강화로 말미암은 정당일체감 고양, 정부 정책의 일관성 확보와 대민 응답성 제고 등의 방안들이 있으리라.


이쯤에서 A의 존재를 고찰해보자.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쯤 되는 직선 대표라면 빼어난 능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공동체의 이해 갈등 조정이다. 이를 좀 더 원활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가운데 하나가 윤리성이다. 지도자의 도덕성도 사회자본인 셈이고 이를 통해 국민들이 좀 더 승복하도록 유도한다. 보다 근본적인 물음은 능력이라는 게 앞서 살펴본 사회자본의 개념의 난립과 마찬가지로 명확히 측정 가능하기 힘들다. 능력의 실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능력이 발효되는 데 시차가 있다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또 다른 기제가 있어야 하는데 그 대표적인 게 바로 도덕성이다. ‘탈도덕 현상’의 심각한 부작용으로 예상되는 건 ‘비지지자 신뢰도’다. A가 다수의 지지를 얻어 권력을 행사할 때 비지지자 집단이 강한 불신을 나타낸다면 정책 추진력이 반감될 가능성이 높다. 복수의 A가 난무하는 상황이 되면 정치 냉소주의는 심화되고 그들만의 민주주의가 고착화되는 절망적인 상황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나는 수기치인(修己治人, 자신을 다스린 후에 남을 다스린다)을 전략적으로 차용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다른 표현으로는 내성외왕(內聖外王)이라고도 부른다. 서구의 리더십은 윤리성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 한국은 종래의 리더십 이론을 버리고 서구의 능률적인 기술자(technician)에 천착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지도자의 도덕성을 중시하는 정신은 우리 사회의 오랜 전통이었다. 유학에서는 개인의 도덕적 학문적 자기완성의 정도에 따라 정치활동의 범위가 점차 확대된다고 봤다. 유학의 입장에서 볼 때 논리적으로도 수기는 치인에 선행한다. 『대학』의 8조목인 격물치지성의정심(格物致知誠意正心)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가 순차적인 점진주의다. 개인의 윤리적 각성을 시발점으로 하여 그 점차적 확산을 꾀해야 한다는 유가의 가르침이다. 혹자는 정치가의 도덕적 수양에 몰두한 나머지 치인보다 수기에 치중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유교 내지는 주자학은 수기적 행위에 치열하면 할수록 그것은 동시에 치인적 행위에도 치열한 것이 된다고 인식했다. 도덕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현실적 정치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다시 말해 도덕성이 곧 능력이라는 것이다(안외순, “『동호문답(東湖問答)』에 나타난 율곡 이이의 초기 정치사상”, 『유교사상연구』 제28집, 한국유교학회, 2007, pp. 125~154). 


수기치인의 현대적 복원으로 ‘탈도덕 현상’을 누그러뜨려 볼만하다. ‘탈도덕 현상’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도덕과 능력의 유기적 통합으로 ‘도덕력(道德力)’을 창출해야 한다. 현실과 유리되지 않고 현실 속에 추동하는 ‘도덕력’이야말로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오늘날의 사회자본 패러다임에도 부합하는 개념이 아닐까 한다(완전 자화자찬^^;). 『논어』에서 “제 자신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해지고, 제 자신이 바르지 못하면 비록 명령한다 하더라도 따르지 않는다(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고 했다. 또 “진실로 제 자신이 바르다면 정치에 종사하는 게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제 자신을 바르게 하지 못한다면 어찌 남을 바로잡겠는가(苟正其身矣 於從政乎何有 不能正其身 如正人何)?”라는 말씀도 있다. 일전에 김진표, 김병준 두 분의 교육부총리의 자녀가 외국어고에 다닌 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외고는 평준화 교육의 근간을 흔든다며 야멸친 언사를 늘어놓던 분들이 자녀는 외고에 보낸 행태를 위선이라 여기고 서운한 감정을 느낀 국민이 많았다. “지금 집을 사면 낭패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무서운 말씀을 하셨던 이백만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정작 자신은 강남 아파트를 구입한 것으로 밝혀져 빈축을 샀다.


『맹자』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맹자의 제자 진대(陳代)가 스승에게 제후를 만나도록 권했다. 자존심 좀 굽히고 찾아가는 건 한 자를 굽히는 작은 일이지만 왕도의 사업을 이룩하는 건 여덟 자를 펴는 큰 일이라는 구실을 내세웠다. 맹자는 한 자를 굽혀 여덟 자를 펴는 이해타산적인 생각을 한다면, 두 자도 굽히고, 석 자도 굽히다가 종국에는 여덟 자를 굽혀 한 자를 펴는 것도 이롭다는 명분으로 자행하게 될 것이라고 대꾸한다. 벼슬이 탐나 양심을 속이고 예법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맹자의 논리를 강고한 도덕주의를 대변한다. 내가 주창한 ‘도덕력’은 이렇게 가파른 경지를 원하지 않는다. 현행 법을 준수하면서 한 자를 굽혀 여덟 자를 펼 수 있다면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도덕력’이 좀 더 실천적인 관념이 되려면 입신양명하려는 개인의 욕구와 공익의 실현을 조화롭게 추구하기 위한 방안을 보강해야 한다. 여하간 맹자는 이 대목에서 “자기를 굽히는 사람이 남을 곧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枉己者 未有能直人者也)”라고 촌철살인을 날린다. 공명을 위해 정도를 굽혀 남에게 굴종하는 자세를 칭하나 의역을 해서 “자기가 올바르지 않다면 다른 사람을 정직하게 만들지 못한다”고 해석해 봄직하다. ‘도덕력’의 고갱이는 남 탓이 아닌 자기 탓을 먼저 하는 자책(自責)의 일상화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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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이 능력이다3

경제 2007. 11. 6. 03:56 |

<도덕성이 능력이다>는 총 5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순서대로 읽으셔야 하지만 따로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A는 Amorality의 약자로서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지도자를 지칭하는 가상의 인물입니다. 대선 끝날 때까지 틈틈이 수정할 계획이니 퍼가지 말아주세요.^0^


3. 윤리경영, 부패, 신뢰


한국이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 가입한지 11년째다. 1996년부터 2005년까지의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아일랜드(7.2%), 룩셈부르크(4.9%)에 이어 4.3%로 OECD 회원국 중 3위다. 국내총생산(GDP)도 1996년 5474억달러에서 2005년 7875억달러로 41.3% 늘어나며 OECD 회원국 중 9위에 올랐다. 수출은 2005년 2844억달러를 기록해 1996년의 1297억달러에 비해 119.3%나 증가했다. 외형은 커졌지만 OECD 회원국과 비교한 순위는 크게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이나 경제규모가 상위권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노동시간, 사회보장비 등 삶의 질은 최하위권이었다. 연간 근로시간도 1996년 2648시간에서 2004년 2423시간으로 줄긴 했으나 여전히 OECD에서 가장 많다. GDP 대비 사회보장비 지출은 1996년 1.8%에서 2002년 4.6%로 늘었으나 26위에 머물렀다. GDP 대비 조세부담률은 1996년 19.7%에서 2002년 19.8%로 거의 변화가 없고 27위를 유지하고 있다. 2002년 기준 공교육비 지출은 23위에 그쳤으나 사교육비 지출은 1위를 차지했다. 2005년 전체 의료비 지출은 낮은 수준이나 본인 부담률은 47%로 미국(55%), 멕시코(55%), 그리스(57%) 다음으로 4번째로 높았다. 여기에다 자살률과 저출산율은 최고 수준이다.


2003년 초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인수위원회는 최종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GDP대비 사회보장비 지출이 OECD 30개국 중 29위라며 복지후진국임 밝히며 복지, 여성, 환경, 문화, 주거 분야에 투자를 높이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부의 사회적 기능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작성한 ‘비전 2030’에 대한 다각도의 비판으로 말미암아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참여정부의 복지예산(사회복지·보건 분야) 증가율은 전체 예산 증가율보다는 높은 수준이나 국민의 정부 때에 미치지 못했다. 국민의 정부 때 복지예산은 1997년 21조원에서 2002년 37조9400억원으로 연평균 16.1% 증가했다. 이에 견주어 참여정부의 복지예산은 2002년 37조9400억원에서 2007년 61조3800억원으로 연평균 12.4% 증가했다. 결국 ‘비전 2030’으로 표상되는 대한민국 미래상을 놓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탓에 정책 표류가 이어진 셈이다.


도덕성과 능력의 상관관계를 명확히 드러내는 연구 결과는 아직 없다. 하지만 윤리적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투자수익률이 더 높다는 것을 주장하는 사회적 책임성 투자( Socially Responsible Investing, SRI)이론에서는 몇 가지 실증 연구가 있다. 미국에서 ‘다우존스 공업지수(Dow Jones Industrial Average)’는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사 중에서 선정된 30개 회사의 주가의 평균변동을 말한다. 다우존스 공업지수는 1976년~1989년의 13년 간 174% 증가하였다. 여기에 비해서 ‘윤리적인 기업’ 30개를 선정하여 조사한 ‘착한 기업 공업지수(Good Money Industrial Average)’는 같은 기간에 647% 증가하였다고 한다. 대기업 및 중소기업 1,000개 중에서 윤리수준이 높은(사회적 책임성이 있는) 400개 회사를  선정하여 작성한 평균주가지수인 ‘사회지수’와 S&P사 선정 500개 회사의 평균지수를 1983∼1988년 사이 비교한 결과, 1983년에 1,000달러를 투자하였다면 사회지수 수익률은 164.7%이었는데 비해 S&P 500개 회사의 투자수익률은 101.7%이었다고 한다(이종영, 『기업윤리』, 삼영사, 2007).


또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Fortune)이 선정하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10대 기업’들의 주가수익률은 2001년의 경우 평균 9.7%로 S&P 500의 평균치인 -11.9%를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6~2001년까지의 주가수익률의 경우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10대 기업’은 25.6%로 나타나 S&P 500의 10.7%에 비해 두 배 이상을 상회하였다(이건희 외, 『윤리경영론: 21세기 기업 생존의 핵심 키워드』, 학문사, 2004). 윤리경영이 기업성과를 크게 악화시킨다는 연구 결과는 찾아보기 힘든 점으로 볼 때 윤리경영은 장기적으로 기업의 시장가치를 높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001년 미국의 엔론 사태가 벌어지기 직전까지만 해도 5년 연속 포춘이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10대 기업이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개중에 이런 쭉정이가 있기는 해도 윤리경영이 모든 기업의 기본 신조가 되고 있음은 또렷하다. 요즘은 많이 나아져 가고 있다지만 한국기업의 주식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현상을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라고 부른다. 기업의 투명성 및 책임성과 관련된 기업지배구조 위험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매력 있는 기업이 되려는 노력은 시간과 돈이 남아서 하는 일이 아니다. 결국 기업의 안정과 경쟁력 확보를 위함이다.


국내에서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03년 1월 발표한 2001년 기준 국내 30대 그룹 소속기업을 대상으로 기업윤리와 기업가치 및 성과간의 관계 분석 결과가 있다. 이에 따르면 전담부서를 설치해 윤리경영을 적극 실천하는 기업의 1999년~2002년 주가상승률은 평균 46.3%를 기록했다. 윤리헌장만 제정한 기업의 16.1%, 윤리헌장 미제정 기업의 22.1%의 주가상승률을 크게 상회한다. 또 윤리경영 전담부서를 설치한 기업의 1998~2001년 매출액영업이익률은 평균 10.3%를 기록해 그렇지 않은 기업의 평균치인 7.3%보다 40% 이상 높았다. 전담부서 설치기업은 주식시장 상승할 경우 주가상승폭이 시장평균을 훨씬 웃돌았으며 하락할 경우에도 하락폭이 다른 기업군의 절반 정도에 그쳤다(가령 2002년에 종합주가지수는 9.5%가 빠졌으나 이들 전담부서를 설치한 기업은 오히려 10.2%가 뛰었다). 그런데 윤리경영 전담부서 없이 윤리헌장만을 제정한 기업과 윤리헌장 미제정 기업간의 주가상승률이나 매출액영업이익률은 거의 차이가 없거나 윤리헌장을 제정하지 않은 기업이 오히려 높게 나타났다. 이는 윤리헌장 제정만으로는 부족하고 전담부서 등을 통해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투자자와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국제 반부패 NGO인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 TI)가 발표한 2007년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s Index, CPI)에 따르면 한국은 10점 만점에 5.1점으로 조사 대상 180개국 가운데 43위를 기록했다. CPI란 공무원과 정치인 등 공공 부분이 어느 정도 부패했는지에 대한 민간 부분의 인식 정도를 지수화한 수치다. 해당 국가에 거주하는 기업인이나 전문가를 대상으로 공공부문과 정치부문의 뇌물을 포함한 각종 부패 내용을 설문 조사하여 얻은 자료를 토대로 작성한다. 점수가 낮을수록 부패가 심하다는 뜻인데 한국은 OECD 30개국 평균 7.18에 훨씬 못 미치고 순위도 25위로 2계단 하락했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9.3, 4위), 홍콩(8.3, 14위), 일본(7.5, 17위), 마카오와 대만(5.7, 34위)에 이어 말레이시아와 함께 6위를 기록했다. 2006년 우리나라 교역 규모는 6349억달러로 세계 12위, 국내총생산(GDP)은 8874억달러로 세계 13위인 것에 비추어 민망한 수치다.


한국은 4.29점(1995), 5.02점(1996), 4.29점(1997), 4.2점(1998), 3.8점(1999), 4.0점(2000), 4.2점(2001), 4.5점(2002), 4.3점(2003), 4.5점(2004), 5.0점(2005), 5.1점(2006), 5.1점(2007)의 추이를 기록하고 있다. 2005년에는 조사 대상 159개국 중 40위였고, 2006년에는 163개국 중 42위였다. 2005년 5점대에 진입한 이후 답보 상태를 보이는 셈이다. TI 한국본부는 “2001년 부패방지법 제정, 2002년 부패방지위원회(현 국가청렴위원회) 설립, 2005년 투명사회협약 체결 등 하드웨어적 성과를 거뒀으나 이를 뒷받침하고 내용을 채우는 일에서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사슬의 강도는 가장 약한 부분에서 강도가 결정 나게 마련이다. 다른 부분이 아무리 굵어도 한 군데가 약하면 사슬은 툭 끊어지게 된다. 한 국가의 능력이 반드시 사슬의 법칙을 따르지는 않겠지만 경제 지표의 우수성을 바래게 하는 약한 연결고리를 강화해야 하는 건 자명한 일이다. 부정부패가 줄고 공정한 경쟁과 평가가 이루어질 때 경제성장 혹은 국민소득이 상승이 진정한 효과를 낼 것이라고 본다.


2006년 12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사회적 자본 실태 종합조사’ 보고서는 우리 사회의 불신 실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불신을 0점, 신뢰를 10점이라고 했을 때, 국회 2.95점, 정당 3.31점, 정부 3.35점, 지자체 3.89점, 검찰 4.22점, 법원 4.29점, 경찰 4.48점, 노동조합 4.61점, 대기업 4.68점, 군대 4.85점, 언론기관 4.91점, 시민단체 5.41점, 교육기관 5.44점이었다. 응답자의 70%가 ‘공직자 2명 중 1명은 부패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60%는 ‘정부 공직자들이 중요 정보를 별로 또는 전혀 공개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공직자들이 법을 거의 지킨다’고 생각한다는 사람은 5%에 불과해 공직자에 대한 불신이 심각한 수준이다. 공공기관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신뢰도 낮아 평균 4.8점으로 나타났다. 공식적인 조직인 직장·학교의 동료에 대한 신뢰도는 6.5점, 비공식 조직인 동호회·단체 신뢰도는 6.0점이었고 처음 만나는 사람에 대한 신뢰도는 4.0점이었다. KDI는 이 같은 수치는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놀라운 점은 국회, 정당, 정부, 지자체에 대한 신뢰도는 전혀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신뢰도인 4.0점에도 못 미친다는 결과다. 저신뢰는 필연적으로 고비용을 유발한다. 서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감시 및 통제 비용을 더 많이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국회의 입법과정이나 정부의 정책수행에 대한 불신은 법치에 대한 불신과 정책에 대한 반발을 낳을 공산이 크다. 요 근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더 많은 투자와 고용 창출, 복지국가를 얻기 위해 재벌에게 경영권 보호를 양보하는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자는 주장도 들린다. 아일랜드나 북유럽 등지에서 만들어낸 사회적 대타협 방식을 우리도 추진해보자는 고민은 동감할 만하다. 하지만 우리네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은 많이 부족한 상태다. 우리나라 국민이 선진국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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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이 능력이다2

경제 2007. 11. 6. 03:55 |

<도덕성이 능력이다>는 총 5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순서대로 읽으셔야 하지만 따로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A는 Amorality의 약자로서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지도자를 지칭하는 가상의 인물입니다. 대선 끝날 때까지 틈틈이 수정할 계획이니 퍼가지 말아주세요.^0^


2. 도덕성과 능력의 상관관계


네덜란드의 일화 하나는 언제 반추해도 신선한 충격이다. 로테르담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16년 동안 한국돈으로 4백 만원의 판공비를 착복했다는 혐의로 내무장관직에서 물러난 페퍼 전 시장의 존재가 무겁게 다가온다. 입만 열면 대가성이 없었다는 핑계를 대는 우리네 풍토와는 너무 다른 세상이다. 사스키아 스티벨링 감사원장은 이에 대해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공직자에 대한 신뢰의 문제”라고 답했다. 네덜란드 공직자의 이런 자세는 도덕성과 능력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에 기인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현실은 더 퇴행적이라 부끄럽다. 이중적 윤리 잣대가 횡행하는 건 기본이고, 최고 지도자 (후보) 평가에 대한 관대화 경향은 끔찍한 정도다. 이러한 이중성과 관대화는 ‘탈도덕 현상’을 확대 재생산한다. 여기서는 도덕성과 능력의 상관관계에 대한 탐구에 집중하면 될 듯싶다. ‘탈도덕 현상’의 핵심 논리는 도덕성과 능력의 낮은 상관관계이며, 능력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탈도덕 현상’은 열악한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유능한 지도자를 지향한다. 개혁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염증을 토로한다. 참여정부는 출범 초부터 깨끗하고 정통성 있는 정부라는 자의식이 충만했다. 정부의 도덕적 자부심은 그 자체로 큰 자산이었고, 소수파 정부로서의 약점을 보완하는 기제로 작동했다. 마키아벨리는 결과는 가치나 동기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며 결과적 선(善)을 옹호했다. 이러한 비도덕주의(amoralism)은 정치를 도덕과 종교로부터 분리해냈다. 막스 베버는 이러한 마키아벨리의 도덕관을 상당 부분 계승했다. 그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신념의 윤리(Gesinnungsethik)와 책임의 윤리(Verantwortungsethik)를 제시했다. 신념윤리(혹은 심정윤리)는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행위자의 심정, 의향에 도덕적 가치를 둔다. 선에서는 선만이 생겨나고 악에서는 악만이 생겨난다고 믿고, 동기가 선하면 주어진 행위는 그 결과에 상관없이 선하다고 본다. 이에 반해 책임윤리는 인간의 평균적인 결함을 계산에 넣는다. 달리 표현해 세계의 윤리적 비합리성(die ethische Irrationaliaet der Welt)을 고려해서 행동한다. 동기의 선함보다는 결과의 선함을 더 중시하며 예측 가능한 결과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을 진다는 특징이 있다.


베버는 신념윤리를 따르는 사람은 나쁜 결과가 나올 경우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지 않고 세상이나 타인의 어리석음에 돌린다고 평한다. 이에 반해 책임윤리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사려 깊게 궁리한다고 표현하기 때문에 두 가지 윤리의 개념 정의에서 베버의 의도적 편향을 엿볼 수 있다. 베버는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는 절대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둘이 서로 도와야 비로소 정치의 소명을 지닐 수 있는 참된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베버는 신념윤리는 무책임이 아니며, 책임윤리가 무신념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신념윤리를 평가절하하고 정치인은 책임윤리를 함양해야 한다는 쪽이다(류지한, “베버의 가치 철학에서 책임윤리와 합리성의 한계”, 『철학논총』 제29집, 새한철학회, 2002, pp. 179~203). 도덕성 시비에 휘말린 후보를 응원하는 쪽에서는 뜬금없이 책임윤리를 꺼낸다. 참여정부는 신념에 함몰되어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책임윤리를 설파했던 베버도 두 윤리를 양자택일할 수 있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설령 그가 책임윤리에 올인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자신의 편의에 근거한 개념 정의에 힘입은 결론이다. 행위의 결과를 절대적으로 무시하는 정치는 존재하기 어렵고, 자신의 비전(심정)도 없이 결과를 향해 매진하는 정치 또한 상상하기 힘들다.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느냐,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하느냐 정도의 논쟁이 있을 뿐 이 둘을 엄밀하게 구분하는 건 실익이 없다. 선심성 행정을 비판하는 논거로 책임윤리 명제를 가져다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남발해서 외칠만한 소리는 아니다. 설령 베버의 논리를 오롯이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A가 책임윤리의 적격자라는 견해가 도출되지는 않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경제성장이라는 목표에 투신해야 한다는 건 어찌 보면 신념윤리와도 제법 닮았다. 신념윤리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독교적 가치관을 든다. 산상수훈(山上垂訓)을 연상시키는 절대윤리의 그림자가 경제대통령 담론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러한 메시아주의는 신념윤리의 부정적 측면이다. A가 책임윤리의 적임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에 대한 묻지마 지지는 책임윤리를 지향하는 태도는 아니다. 책임윤리는 결과로써 승부하는 것이다. 메시아를 옹위하려는 의도가 지나쳐 성과 평가에도 선택적 잣대를 들이대지는 않을까 염려스럽다. 모든 문제를 떠나서 A가 예측 가능한 결과에 책임을 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는 도덕성 여부에 관계없이 검증할 문제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책임윤리로 ‘탈도덕 현상’을 설명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면 조조의 인재 기용 방식인 ‘유재시거(唯才是擧, 능력만이 추천의 기준이다)’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건안 15년(210년) 조조는 명을 내려 “만일 반드시 청렴한 선비가 있어야만 기용할 수 있다면, 제나라 환공(桓公)은 어찌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는가!”라며 “오직 재능만을 천거하는 것이 옳으니, 나는 그런 자를 쓸 것이다”라고 말한다. 건안 19년(214년)에는 “품행이 바른 인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진취적인 것이 아니고, 진취적인 인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품행이 바른 것은 아니다”라며 유능한 인재가 버려지지 않기를 당부했다. 조조는 능력만 있으면 도덕성이 모자라도 기용하겠다는 의지를 가졌다. 물론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억울한 누명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진일보한 의미도 품고 있지만 그의 신하 중에 권모술수에 강한 인물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결국 사마의의 쿠데타로 위나라는 망하게 된다. 인재난에 시달리던 촉나라의 인재 기용 방식을 정확히 알기는 힘들지만 제갈량의 출사표에서 간접적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그가 후주 유선에게 신하를 추전하며 “착실하며 뜻과 헤아림이 충실하고 순수하다”“성품과 행함이 선량하고 공평하다”“곧고 믿음직해서 절개를 위해 죽을 만하다”라고 평한다(김재웅, 『제갈공명의 도덕성 우선의 리더십』, 창작시대, 2002).


위와 촉의 국력 차이를 볼 때 서로 다른 인재 채용이 어떤 기능을 했을지 가늠하기는 힘들다. 하나 분명한 것은 평생 청렴했던 제갈량이 단지 재능만으로 그만한 공적을 쌓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조조의 유재시거(唯才是擧)가 도덕성과 능력이 낮은 상관관계를 입증하지도 않는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탈도덕 현상’의 근원을 탐구하는 게 무익하게 느껴진다. ‘탈도덕 현상’은 어떤 논리체계를 가진 실체라고 보기 멋쩍다. 그렇다면 현재의 정치지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A를 대체할 만한 대안세력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일 수 있기 때문이다. A의 반대세력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상태에서는 유일한 선택지로 지목된 A에 대한 방어심리가 기형적으로 발현될 공산이 크다. 슬프게도 광신으로 불신을 치유하지는 못한다. 거품(bubble)은 반드시 터지게 마련이다. ‘탈도덕 현상’은 이제 신뢰의 문제로 옮겨가야 한다. 그래야 좀 더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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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이 능력이다1

경제 2007. 11. 6. 03:53 |

<도덕성이 능력이다>는 총 5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순서대로 읽으셔야 하지만 따로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A는 Amorality의 약자로서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지도자를 지칭하는 가상의 인물입니다. 대선 끝날 때까지 틈틈이 수정할 계획이니 퍼가지 말아주세요.^0^


1. 탈도덕 현상


17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괴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현재 지지하고 있는 대선 후보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을 경우 계속 지지할 것인가를 묻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그런 조사를 처음 접한 것은 9월 9일 실시한 MBC 여론조사였는데 도덕성에 결함이 있더라도 자질이 뛰어나면 지지하겠다는 응답이 54.7%였다. 최근에는 아예 특정 후보 관련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을 경우 계속 지지하겠느냐고 묻기도 한다. 이런 식의 여론조사가 홍수를 이루면서 결과는 들쭉날쭉하지만 대개는 도덕성에 흠결이 있더라도 능력이 있으면 계속 지지하겠다는 답변이 우세하다. 도덕성에 대한 평가는 낮지만 국정운영 능력에 대한 기대는 높은 것으로 나오는 후보도 있다(SBS 10월 21일자 여론조사). 과연 윤리적 문제에 너그러운 지지층을 충성도가 높은 집단이라고 보는 것이 온당한지 궁금하다. 사기업도 윤리경영을 하겠다고 나서는 판에 공직을 맡겠다는 분들이 능력만 있으면 그만이라며 뽐내는 건 마땅한 일인지 혼란스럽다.


문화일보 10월 30일자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대통령을 선택하는 최우선 선택기준으로 ‘경제성장 해결 능력’이라는 응답이 57.1%로 압도적이었다. 15.9%로 2위인 ‘빈부격차 해소 능력’도 크게 봐서는 경제문제라고 볼 수 있다. 도덕성은 3위인 12.1%를 기록했다. 동아일보 11월 5일자 여론조사에서도 ‘차기 대통령이 가장 역점을 둬야 할 분야’(2개 복수응답)라는 물음에 경제성장(76.3%)이 사회복지(27.0%), 실업문제 해결(25.2%)에 비해 높았다. 도덕성과 관련한 부패척결(16.0%)은 4위에 그쳤다. 사실 외환위기 이후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경제성장 관련한 요구가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어떤 후보가 국민의 높은 기대만큼 경제분야에 유능한가를 검증하는 건 내 능력 밖이다. 문제삼고 싶은 건 도덕성의 결함에 너그러운 여론조사 결과다.


나는 도덕성과 능력은 별개의 문제라는 주장, 국가 지도자의 도덕성을 그리 중요한 요소로 보지 않는 견해를 통칭하여 ‘탈도덕 현상’, 혹은 좀 더 부정적으로 ‘탈도덕 사태’라고 부르길 제안한다. 나는 ‘탈도덕 현상’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적 특수성이라고 주장하기에는 현대 선진 민주국가와는 너무 동떨어진 사고방식이다. 대다수 선진국들은 도덕성을 넓은 의미의 국가 지도자의 능력으로 보고 있다. 도덕성이 국민의 신뢰를 얻어 정책의 추진력을 높이는 원동력이라는 통설에 공감한다. 문민정부가 국민의 정부가 임기 말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 문제로 도덕성에 상처를 입고 레임덕 현상에 빠졌던 것을 반추해본다. 혹자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사례들 들지도 모르겠다. 92년 미국 대선 당시 클린턴 후보가 내건 선거구호인 “문제는 경제야, 이 멍청아!(It’s the Economy, Stupid!)”를 들려주고 싶으실 게다. 앞으로 논의의 편의를 위해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후보를 A(Amorality의 약자쯤 되겠다)이라고 부르자. A는 어디까지나 가상의 인물이며, 누구나 될 수 있다. A의 도덕성 문제를 인지하고서도 그를 지지하는 유권자가 상당수 있다고 가정하자.


A의 도덕성 문제를 알면서도 지지하는 분들은 탄핵 역경을 딛고 높은 직무 수행 지지도로 임기를 마친 클린턴의 전례를 추억한다. A가 경제를 살려서 자신의 불안하고 찜찜한 기분을 덜어내기를 바라는 듯싶다. 물론 클린턴 시대 미국의 경제는 호황이었고, 재정적자 감소와 사회보장제도 개혁에서도 긍정적인 성과를 거뒀다. 그는 재선에 성공했으나 1998년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에 휩싸여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클린턴은 98년 12월 위증 및 증거은폐 등 2가지 혐의로 하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됐으나 99년 1월 상원에서 부결됐다. 클린턴의 행실에는 많은 미국인이 언짢아했으나 사생활의 문제일 뿐 정치의제가 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 적잖았다. 클린턴이 탄핵 위기에 처했던 이유는 부적절한 관계 때문이 아니라 국회에서의 위증 혐의였음을 기억하자. 미국헌법 제2조 제4항은 탄핵사유로 “반역죄, 수뢰죄, 기타 중대한 범죄나 중대한 비행(Treason, Bribery, or other high Crimes and Misdemeanors)”을 규정하고 있다. 거짓말에 단호한 미국인이라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 A가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경우의 수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A의 지지자들이 보고 배워야 할 것은 미국의 인사청문회 문화가 아닐까 싶다. 1993년 클린턴 1기 행정부 출범 당시 법무장관으로 지명된 조 베어드는 불법체류 페루인 부부를 가사보조원으로 고용했으며 관련 사회보장세를 있었다는 미납했다는 사실을 인정해 인준 투표 직전에 사퇴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명한 린다 차베스 노동장관 내정자나 버나드 케릭 국토안보장관 내정자 또한 불법 이민자를 가정부로 고용한 것이 문제가 되어 낙마했다. 미국의 엄격한 인사청문회를 설명할 때 많이 인용되는 사례들이다. 우리도 이를 좇아 고위 공직에 진출하려는 인사들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고 검증의 수위를 높이려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 하지만 A의 열성 지지자들은 한국사회의 난맥상을 일거에 풀어줄 초인을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 계몽군주가 나타난다고 우리는 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까. 제도화가 진척된 한국 사회에서 계몽군주는 등장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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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 성장이라는 궤변

경제 2007. 4. 23. 12:22 |

소득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밑돌고 있다. 한국은행이 3월 21일 발표한 ‘2006년 국민계정(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실질 GDP 성장률은 5.0%지만, 실질 GNI는 2005년 675조원에서 2006년 691조원으로 2.3% 증가하는데 그쳤다. GNI 성장률이 GDP 성장률을 밑도는 현상은 1995년 이래 11년째 계속되는 일(2002년에는 두 가지가 같았음)이다. 실질 GNI는 교역조건 변화에 따른 무역 손익을 더한 다음 외국인이 국내에서 벌어간 소득은 빼고 한국인이 국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은 더해 계산한다. 수출가격이 내려가고 수입가격이 올라 교역조건이 악화되면 무역 손실이 발생하고 이 만큼 국민소득도 줄게 된다. 실질 GNI는 실질구매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이 수치가 GDP 성장률보다 낮다는 것은 경제의 외형이 커지고 있으나, 실제 소득 증가가 따라가지 않는 외화내빈의 형국인 셈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3월 22일 펴낸 보고서 ‘중진국 함정에 빠진 한국경제’에서 이젠 선진국 구분의 잣대는 개인 소득 3만달러 수준이라고 제시했다. 2만달러는 1990년대까지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결국 또 다시 목표를 더 높여 잡아야 하는 셈이다. 수출환경이 단번에 나아질 가능성이 없는 만큼 시선을 내부로 돌려 기초소재·핵심부품의 자체 생산력 제고와 내수 파급효과가 큰 서비스산업과 부품·소재, 신기술 관련 벤처기업 육성 등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을 경청할 만하다. 이광준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의 말씀대로 “주요 소재 부품의 국산화율 제고와 내수 및 수출 부문의 균형 발전”이 긴요하다. 살림살이 나아질 탐구를 따라가다 보니 문득 “더 많은 돈이 지속적으로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는 잘못된 가정”을 버리라는 미국의 경제학자 이스털린(Easterlin)의 충고가 떠오른다.


이스털린은 경제 성장과 인간의 행복감 사이의 상관관계를 탐구한 선구적 학자다. 그는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같은 나라, 같은 지역의 소득수준이 낮은 사람들보다 행복감도 커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런데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에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의 비율이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이 발견됐다. 또 한 나라 안에서 가난하던 시절과 부유한 시절을 비교해도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의 비율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 나라의 높은 경제 성장과 물질적 풍요가 그 나라 국민 전체를 더 행복하게 한다는 보장이 없는 셈이다. 이처럼 일정한 생활수준에 다다르면 경제 성장은 개인의 행복, 사회적 후생 증가에 이바지하지 못하는 현상을 “이스털린의 역설”이라 일컫는다.


이스털린은 “소득과 욕구는 분명 나란히 증가한다. 내 해석이 맞는다면,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사회가 부족함 없는 과잉 공급의 상태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끊임없이 성장하는 욕구를 더욱 강하게 자극하게 될 것이고, 그런 욕구의 충족을 위해 다시금 경제적인 성장이 요구될 것이다(하랄드 빌렌브록 지음, 배인섭 옮김, 『행복경제학』, 미래의창, 2007, 28쪽)”라고 주장한다. 욕망의 증가 속도가 부의 증가 속도보다 더 빠르다면 돈은 바닷물과 같다던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될 것이다. 이스털린의 역설이 성립하는 “일정한 수준의 부”가 어느 정도인지는 이견이 적잖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수치화된 목표를 잡아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텐데 말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트리클다운(Trickle Down)이라는 경제 용어가 생각났다. 대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면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도 자연히 혜택이 돌아간다는 이론이다. 물이 넘쳐 바닥을 적신다는 뜻으로 적하정책(滴下政策)이라고 쓰기도 한다. 오늘날 파이를 키워야 나눌 게 있다는 주장은 큰 틀에서 트리클다운에 바탕을 둔 주장으로 볼 수 있다. 이번 한미 FTA로 남는 이득을 손해 보는 부문에 보전해주자는 논리도 비슷하다. 하지만 양극화 문제를 돌이켜볼 때 성장의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고 있는 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다른 선진국의 경우에도 진보와 보수 진영이 모두 저마다의 습관적인 주장에서 탈바꿈해서 소득 불균형 문제 해결을 위해 상대방의 주장도 접합하려고 애쓰는 것을 보면 쉽게 풀어낼 문제가 아닌 듯하다.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개방이나 성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복거일 선생님은 “성장 자체가 양적 개념”임을 강조하신바 있다. “질적인 것도 모두 수량화(quantification)하면 잴 수 있는 것이고, 모든 것은 양적으로 환원”된다는 것이다(계간 『현대사상』 98년 여름호, 권두 좌담회 <한국 지식인, 무엇을 생각하는가> 참조).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국민소득대로 그 나라 사람값이 매겨지는 법”이라며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암만 행복해도 그 나라 대학 졸업자가 남의 나라 가서 막일을 해야 먹고살 판이면, 난 그런 행복 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弱者를 빙자한 권력층의 "경쟁 반대!"” 동아일보. 2007. 03. 29. 참조). 두 분의 말씀은 선뜻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있다. 하지만 양적 성장의 힘을 빌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도 적잖다. 절대적 빈곤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지만, 상대적 빈곤을 다독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돈이 드는 건 아닐 게다.


정부 정책 차원에서 국민의 행복감을 증진하는 서비스를 고안해야겠지만 개별 경제주체들도 인식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조지 버나드 쇼가 “60세가 되어 20세 시절보다 열 배 부자가 된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 누구라도 열 배 더 행복해졌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핀잔에 자유롭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다. 나라가 살찌는 만큼 국민도 살찌는 선순환 구조를 궁리해야 한다. 김호기 교수님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에다 새롭게 대외 개방과 대내 복지의 선순환을 결합시키는 이중의 선순환 구조”를 역설하셨는데 그것의 좀 쉬운 표현이다. 국민이 살찌는 나라는 민익(民益)을 지향한다. 부러 민익이라는 낯선 용어를 쓴 것은 국가주의적 국익론을 극복하는 발상의 전환을 꾀하기 때문이다.


복 선생님 말씀대로 질적 성장은 허구적 개념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양적 성장으로도 민익은 얼마든지 도모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노동사회(work-based society)에서 문화사회(culture-based society)로의 이행을 주장한 프랑스 사회학자 앙드레 고르(Andr Gorz)의 개념 정의에 따르면 노동사회와 문화사회는 질적 차이가 선명하다. 나는 질적 성장에 대한 미련을 쉽게 못 버리겠다. 단순 성장(simple growth)을 넘은 복합 성장(complex growth)이란 궤변을 늘어놓고 싶다(왈쩌의 다원적 평등(complex equality)에서 빌려왔다). 일자리 만들기에 혈안이 된 요즘 문화사회를 꿈꾸는 건 배부른 소리다. 그러나 그 배부른 소리가 경제만능주의에 대한 근본적 반성과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할 여유를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성장 생각에 빠져있지만 그 성장은 순도가 높기보다는 불순물이 많이 섞인 잡스러운 녀석이다. 성장에도 무늬가 있었으면 좋겠다.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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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과일음료의 추억

경제 2007. 3. 29. 07:30 |

2004년 5월 마케팅원론 시간에 했던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이다. 역시 질문도 명료하게 하지 못하고 내 하고 싶은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았다. 무능한 경영학도의 비애다.^^;




<5월 18일 델몬트 망고 질문입니다^^>

안녕하세요. 델몬트 망고 발표 즐겁게 잘 들었습니다.
저는 망고뿐만 아니라 포시즌과 구아바까지 다 마셔봤는데 저마다의 개성들이 있고 다들 상큼한 열대과즙을 느낄 수 있어서 즐겨 마시고 있습니다.^^


올해 열대과일음료 시장이 전체 주스 시장 예상 규모인 1조원 중에서 2000억원 정도 차지할 것이라고 하니 열대과일음료의 인기를 실감하게 됩니다. 여담이지만, 비락 식혜가 작년 9월 발매 10년을 맞았을 때 10억캔을 팔았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었는데, 망고 주스의 경우 발매 11개월만에 2억 4000만캔이 팔렸다는 뉴스를 접하고 과히 망고 열풍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식혜 제품이 등장했을 때도 당시 음료시장의 수위를 달리던 사과주스의 매출액이 감소한 것으로 아는데... 망고 주스의 등장도 몇 년 전의 식혜 돌풍처럼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인기를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관건이겠지만요.^^


보아하니 롯데칠성에서는 열대과일음료 신제품을 통해 비슷한 제품군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누리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발표하신 내용대로 웰빙 열풍으로 탄산음료를 기피하는 소비자들을 열대과즙으로 공략할 계획인 것 같습니다.


발표 시간에 망고 주스의 경우 생산공정이 일반 음료와 달라 상대적으로 높은 생산단가를 보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질의 응답시간에도 망고 수급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 또한 비슷한 염려가 드는 것이 만약에 롯데칠성이 앞으로도 열대과일음료 제품군으로 재미를 보고자 기획하고 있다면, 아마도 상당량의 원료를 외국으로부터 수입해야 할 것입니다(말 그대로 열대과일이니까요^^;). 그렇다면 공급자의 교섭력이라는 측면에서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요. 열대과일음료 원료 수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대책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배나 사과 같은 경우는 국내산도 많으니 논외로 하고, 가령 오렌지 같은 경우에는 미국과 브라질에서 양질의 오렌지가 원체 많이 공급되고 있고, 수입 농산물 등으로 대체재가 풍부해질 것으로 예상되어 공급자의 교섭력이 낮다고 손쉽게 말할 수 있지만 열대과일의 경우에는 조금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습니다. 실은 제가 좋아하는 열대과일음료를 원하는 때에 언제든 손에 쥘 수 있을 수 있을까라는 쓸데 없는 걱정의 산물이기도 하고요.^^; 제 걱정을 좀 덜어주셨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 나호님

우선 미흡하기 그지없었던 저희 발표를 즐겁게 들으셨다니 쑥쓰럽고 황송하군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대로 망고 주스는 그 원료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얼마나 원활히 원료를 수급하느냐가 제품의 성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우선 제품을 런칭한 시기, 그러니까 작년 초까지는 망고의 수급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우선 망고의 주요 생산국중의 하나인 필리핀에서 농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원활히 수입할 수가 있었고 롯데칠성 음료측에서 예측한 '델몬트 망고'의 2003년 예상 판매액 100억원어치를 생산할 수 있는 양의 원료는 충분이 확보가 되어있었기 때문이죠.


문제는 델몬트 망고가 업계의 예상보다 너무 많이 팔렸기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업계는 작년 한해 망고 시장이 1500억원에 달했기 때문에 필리핀에서 수입하는 농축액의 양으로는 수요를 따라가기에 부족해지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그나마 롯데 칠성은 선발주자였고, 또한 선도업체였기 때문에 질좋은 필리핀산 망고 농축액을 독차지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정이 괜찮았지만 후발 주자들은 원료를 구하지 못해서 수입선을 이스라엘, 인도, 콜롬비아로 돌리는 방안을 추진중에 있습니다. 아마도 이같은 사정은 선도업체인 롯데칠성도 마찬가지겠죠.


그러나 업계의 전문가들은 망고음료시장이 올해를 기점으로 하향곡선을 그릴것으로 예상하고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수급대책을 내놓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하나마 답변이 되셨는지 모르겠네요.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나의 댓글>
와우 그렇군요. 앞으로도 열대과일음료를 마음껏 즐길 수 있겠네요. 답변 고맙습니다.^^



아쉽게도 답변자의 말씀대로 열대과일음료 열풍은 사그라졌고 한때 좋아하던 나도 시들해졌다. 마실거리에 관심이 많은 나는 앞으로도 이 분야에 눈길을 계속 건넬 듯싶다. 그나저나 조만간 학교로 돌아가면 유종의 미를 거둬봐야겠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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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개인주택 종부세 부과대상은 23만7000명 정도다. 전국 주민등록상 세대수 1777만 세대의 1.3%를 차지한다. 종부세를 내야할 납세자의 71.3%는 2채 이상의 다주택 보유자라고 한다. 전군표 국세청장님은 “종합부동산세 대상자중 65세이상의 1가구 1주택자라도 예외를 둘 정도로 극히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한상률 국세청 차장님에 따르면 세부담 능력에 따른 분석 결과를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라고 하니 좀 더 두고봐야겠다. 집 한 채가 전부인 봉급생활자나 은퇴자들이 투기와는 무관하더라도 서민들에 비해 담세능력이 월등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부동산 과다보유 규제와 투기억제라는 정책목표에 비추어 이분들의 세금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을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보유세 비율은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라고 한다. 미국은 보유세와 거래세의 비율이 98대 2 정도이며 영국은 89대 11, 일본은 95대 5 정도를 차지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77대 23의 비율이다. 부동산 보유에 대한 실효세율도 0.4~0.6%로 1% 이상인 미국, 영국, 일본보다 낮은 편이며, 전체 세수 대비 부동산세 비율도 한국이 9.6%, 일본 13.9%, 미국 11.3%, 영국 10.7%로 낮은 편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세금폭탄이라는 레토릭은 국제적 시각이라기보다 국내용 선전 문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실현이익에 대한 과세는 과잉금지에 위반된다는 주장과 종부세는 이익에 부과하는 과세가 아니라 보유에 대한 과세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데 후자가 좀 더 설득력 있다. 다만 주택이 자산의 70~80%를 차지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무시하기 어려운 만큼 1주택자에 한해 종부세를 경감하는 건 수긍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정책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말이다.


아무리 종부세의 허점이 적잖다고 해도 중앙일보의 11월 18일자 <내달 `종부세 폭탄` 터진다> 제하의 기사는 매우 불편하다. 기사인즉슨 11년 전에 2억원으로 장만한 아파트가 현재 13억원으로 오른 서울 대치동의 이모씨가 258만원의 종부세와 1억3400만원의 양도세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사연을 소개한 것이다. 대다수 성난 누리꾼들과 마찬가지로 “종합부동산세 때문에 요즘 밤잠을 설친다”는 그 애틋한 사연에 함께 눈물 흘리지 못하는 내가 참 못된 놈인지도 모르겠다. 이 땅의 가련한 부자들의 간절한 호소를 귀담아 듣지 않는 오만불손함을 반성(!)한다. 비록 미실현이익이기는 하지만 11억원의 시세차익에는 한마디 언급도 없어 섭섭하다. 대다수 서민들이 꿈꾸지 못할 위치에 있는 분의 고충을 1면 톱으로 게재하는 건 서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국세청은 종부세가 “선택된 소수가 납부하는 '아름다운 되돌림!'이라며 “종합부동산세 납세의무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대한민국 1%의 고귀한 의무”라고 홍보한다. 그러나 우리네 경제적 상류층은 너무 겸손하셔서 그런 고귀한 의무보다는 서민의 자세로 내려오길 간절히 바라는 것 같다. 마르크스는 사회의 계급 구성원들이 자신의 객관적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를 ‘허위의식(false consciousness)’라고 설파한 바가 있다. 이 때의 허위의식은 피지배계급이 계급의식이 결여된 상태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우리 사회는 경제적 상층에 자리잡은 분들이 계급의식에 너무 철저해서 문제다. 참여정부가 계급의식을 조장해 편을 가른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누가 계급의식에 더 열심인지를 곰곰이 따져봤으면 좋겠다. 설마 계급의식에도 귀천이 있단 말인가.


정몽주가 선죽교로 향하는 밤 마지막을 함께 지키던 녹사(말을 모는 사람) 김경조가 자기와 더불어 봉변을 당할까봐 혼자 가겠다며 녹사와 동행하지 않으려 한다. 녹사는 이를 거부하고 마지막까지 정몽주 곁을 지키다 죽음을 당하는 이야기를 많이들 기억할 것이다. 지어낸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게 보수층 혹은 상류층의 참모습이 아닐까 싶다. 지켜야할 것을 지키되 자기가 먼저 헌신하는 분들이 밤잠을 그만 설치고 두발 뻗고 주무셨으면 좋겠다. 에드먼드 버크는 “사랑과 현명함이 인간에게 함께 주어지지 않듯이 세금과 기쁨도 마찬가지다”라고 말씀하셨지만 때로는 납세할 수 있다는 것도 기쁨이다. 나도 종부세를 내기 위해 밤잠을 설쳐 공부해봐야겠다. 그런 다음 종부세 고지서를 받아 들고 단잠을 자야겠다.^^;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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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길 효성가톨릭대 교수님은 계간 <문화과학>에서 한국보다 먼저 신자유주의화의 길로 간 일본 사회의 서민들에 대한 복지 서비스 후퇴에서 한국 사회의 미래를 읽었다. “일본의 신자유주의화가 한편으로는 국가의 복지 영역을 민간기업에 떠넘기고 또 한편으로는 상징 천황제를 강화하며 애국주의를 부추기는 우경화로 갔다”는 주장이다. 나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천황제 같은 건 없지만 우리네 천민 자본주의적 속성은 그에 못지 않은 저력(?)을 품고 있는 듯싶다.


신자유주의의 폐해로 곧잘 언급되는 비정규직 문제도 심각하지만, 나는 자영업자 및 가족종사자가 36~37%인 고용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에 시달리고 있다. 좋은 일자리의 부족으로 인한 불완전취업 및 저임금계층의 증가로 말미암은 고용시장의 구조적 모순이 안타깝다. 우리 사회의 안정성 수준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리는데 행정역량이 상당부분 집중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 정도의 사회 안정망 구축이 구조조정에 대한 저항을 줄이고, 공무원 열풍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충격을 최소화하면서도 자영업자 비중을 낮추는 고용구조 개편도 시급하다.


한국개발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30대 대기업 계열사와 공기업, 금융회사 같은 괜찮은 일자리 종사자가 1997년 157만 9,000명에서 2004년 130만 5,000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월평균 명목임금이 전체 업계 평균치를 웃도는 ‘괜찮은 일자리’가 2004년 30만5000개에서 지난해와 올해 각각 14만1000개와 16만3000개로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는 삼성경제연구소의 최근 조사 결과도 우울하게 들린다.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인 대기업의 고용 비중이 너무 적은 탓도 있지만 문제는 보다 근원적이다. ‘성장→일자리→분배 개선’이라는 사이클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세계화, 자동화, IT화 등으로 말미암아 성장을 해도 그만큼 일자리가 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회자되고 있다.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 출산율 저하 및 노동력 고령화, 중국의 급속한 성장, 지식노동으로의 노동방식 재편 등도 들어볼 수 있겠다. 성장에 따른 고용흡수력 감소는 선진국이 먼저 경험하고 있는 통상적인 현상이니만큼 이에 대한 대처가 필요하다.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교수님의 분석에 따르면 “전체 경제구조 고용구조를 고민하지 않고 정부 책임을 방기”했기 때문에 문제가 심화되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알아서 살라고 하니, 길이 없어 자영업으로 몰린” 셈이다. 스웨덴은 보육 보건 복지 노동 교육 등 공공서비스가 전체 노동력의 약 30%라고 한다. 뭐 스웨덴 사례가 우리와 맞지 않다고 본다면 우리가 좇으려고 애쓰는 미국도 15%선임을 말해야겠다. 우리는 고작 5% 정도라고 한다. 다른 통계에 따르면 2005년말 기준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2,286만명 중 사회서비스 분야가 13.1%를 차지하고 있어 2003년 OECD 국가 평균에 10%정도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얼마 전 세금 논쟁에서 불거진 조세부담 비중에 대한 통계처럼 공공서비스와 사회서비스 분야 이런 것들에 대한 명확한 통계는 좀 헛갈리는 면이 있다. 참고로 정부의 재정지출 규모는 2004년 기준 27.3%(한국은행 결산기준 28.1%)로 OECD 국가 평균 40.8%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스웨덴(58.2%), 프랑스(54.4%)에 비교할 것도 없이 작은 정부의 표상처럼 떠받드는 일본(37.6%), 미국(36.%)보다 낮은 수준이다. 넓은 의미의 정부개념을 기초한 우리나라의 재정규모는 선진국에 비해 크다는 반론도 있다. 정부의 범위도 좀 명확히 해야 논쟁의 접점을 찾기 쉬울 거 같다. 제 입맛에 맞는 통계를 들고 나오는 건 나도 잘할 수 있다.^^;


성장과 분배의 비율을 높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모범답안이 없음은 명백하다. 어쩌면 이론적 논증 영역이라기보다는 실천적 적용 영역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분배를 표방한 복지정책이 언 불에 오줌 누기 식의 임시변통이라는 주장과 저소득층의 소득 증가가 총수요의 증가를 가져다 온다는 주장이 팽팽하지만, 일자리 창출이 긴요하다는 데는 견해가 일치한다. 성장한 만큼 일자리가 늘지 않는 시대일수록 ‘더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More and Better Jobs)’ 공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힘은 어디까지나 기업에서 나오지만, 정부 또한 보이지 않는 손만 기다리기보다는 재주 있는 손을 동원해야 한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기업하기 좋은 환경 구축’과 ‘사회서비스 확충’이 양립 불가능한 과제로 보이지 않는다. 민간과 시장이 뛰어들어 이문이 나기 힘든 사회서비스 영역에는 정부와 공공부문이 좀 나서겠다는데 인색할 까닭도 없다. 공공부문의 역할을 ‘민간이 전혀 하고 있지 않은 분야’로 제한한 케인즈의 단서를 수용하고 공공부문 개혁이 선행한다면 ‘할 일을 하는 좋은 정부(good government)’가 불가능한 꿈은 아닐 것이다. 이래저래 어려운 문제다. 아무쪼록 새로운 질적 성장모델로 전환하기 위해 우리네 고용구조에 대한 논의를 진지하게 해야 한다.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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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은 선동이 아니다

경제 2006. 11. 10. 01:00 |
지난 3월 노무현 대통령님은 “세금을 올리더라도, 상위 20%가 소득세의 90%를 내기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은 손해볼 것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에 ‘소득 상위 20%’의 실체와 ‘세금을 올리면 누가 부담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일부 언론은 “상위 20%=월급쟁이 대부분”이라며 저소득층의 부담을 신랄하게 써내려갔다. 상위 20%가 월급쟁이 대부분이라면 당최 그 아래 80%의 생활수준은 어떻다는 것인지 소름이 다 끼친다.


2005년 11월 재정경제부가 낸 자료에 따르면 근로소득세 과세표준이 1원도 안돼 세금을 한 푼도 안내는 사람이 전체 봉급생활자의 50.7%(643만8천명)고, 과표가 0~1천만원인 사람이 29.7%(377만7천명), 과표가 1천만~4천만원인 사람이 17.6%(224만2천명), 과표가 4천만~8천만원인 사람이 1.6%(20만8천명), 8천만원 초과가 0.3%(4만1천명)이라고 한다. 과표 0원이면 연봉 기준으로 대략 2000만~2500만원, 과표 1천만원이면 연봉 기준 대략 3000만~3500만원 정도다. 그런데 연봉 2000만~2500만원도 못 받는 사람이 전체 봉급생활자의 절반이나 되고, 연봉 3000만~3500만원 이하인 사람을 합하면, 80.4%로 봉급생활자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근로소득 상위 20%일 뿐 봉급생활자, 자영업자를 통틀어 가구당 소득이 상위 20%에 들어가려면, 연간 6855만원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상위 20% 월급쟁이’와 ‘상위 20% 가구’는 엄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여하간 월급쟁이 상위 20% 내에서도 소득구간별로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건 과표만 봐도 금세 알 수 있다. 누진세율 체계로 인해 세율을 동일하게 올리면 소득이 높을수록 자기소득 대비 부담은 더 커지는 게 상식이다. 과표 1천만원 이상이 근로소득자의 19.5%이고, 이들이 근로소득세의 93%를 부담하고 있다. 더 세분화해서 살펴보면 과표 8천만원 초과인 인원이 0.3% 밖에 안 되지만, 이들이 근로소득세의 19.3%를 내고, 과표 4천만~8천만원인 인원이 1.6%인데, 이들이 21.0%를 부담한다. 상위 1.9%가 전체 근로소득세의 40.3%를 내는 셈이다.


여하간 월급쟁이 대부분에게 세금폭탄을 투하한다는 일각의 분개는 좀 지나친 감이 있다. 오히려 일부에게 집중될 세금폭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민생과 직결되는 세금 정책에 있어서 자신들의 편을 부러 늘려서 논쟁을 유리하게 끌어오는 건 떳떳한 자세가 아니다. 아울러 미온적인 특수직연금 개혁에 대한 의구심이 국민연금 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하듯이 전문직,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세금탈루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도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세금 문제만큼은 ‘계급의식’에 철저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과세표준에 따라 나뉘는 계급이라 통상적 의미의 계급과는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증세든 감세든 세금 논쟁은 산수도 좀 살펴가며 꼼꼼하게 해나가야겠다.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단대표님이 지난 2월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 때 제안했듯이 민노당의 부유세, 열린우리당의 공평과세론, 한나라당의 감세론 등 각 당의 세제방안을 놓고 정직하게 토론하고 정책 경쟁을 하길 바란다. 세금은 선동으로 처리하기에는 너무 중요하다. - [無棄]


* 권태호 기자님의 “‘세금폭탄’의 진실…난 상위 20%에 포함될까(한겨레신문. 2006. 03. 30.)?”를 거의 베껴오다시피 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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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문제 해결은 “더 내고 덜 받기”를 실천하기만 되는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 논의되고 있는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민주노동당의 국민연금 개혁법안은 그렇게 단순하게 넘어가기에는 차이점이 많다. 여당의 개혁안은 현행 60%인 급여율을 2008년부터 50%로 10% 포인트 낮추고, 보험료율은 지금처럼 9%를 유지하되 2008년 이후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함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 65살 이상 전체 노인 중 65%에게 7만원에서 10만원을 차등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하기로 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노동당이 주장하는 기초연금제를 상당부분 도입하기는 했지만 각 당의 입장 차는 그리 쉽게 봉합될 거 같지 않다. 1990년대 초 스웨덴 총선에서 연금개혁을 주도한 집권당이 참패한 사례 등을 봐도 국민들의 인기를 얻기 힘든 이 폭탄을 선뜻 품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님은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국민보고서’를 통해 “보험료율을 더 올리고 급여율을 낮추는 재정안정화 대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보험료율을 올리고 급여율을 내리는 동시에 빈곤 고령층에게 국가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공적부조를 제공하자는 보건복지부의 새로운 절충안”은 재원조달 등이 불투명한 야당의 전면적인 기초연금제 도입에 견주어 점진적 개혁안으로 평가된다. 적어도 이 수준이나마 고쳐서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를 조속히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초연금제도는 분명 매력적인 제도지만 현실적으로 돈이 너무 많이 든다. 특히 재원을 조세로 하는 조세방식 기초연금은 스웨덴, 핀란드 등 복지정책이 탁월한 나라들도 축소개편하고 있는 실정이다. 저성장과 저출산, 고령화로 말미암아 조세방식 기초연금을 유지하는 비용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안은 기초연금제와 소득비례연금을 분리하는 2층 구조다. 기초연금 재원은 조세로 충당하고 소득비례연금은 보험료로 충당한다는 것이다. 저소득층에 집중되는 연금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조세에 의한 재원조달이 불가피한 만큼 보험료와 조세의 비율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열린우리당안이 야당 등에서 주장하는 기초연금 제도를 경로연금 확대로 부분적으로 수용하기는 했지만 기초연금의 취지를 구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초노령연금을 낮은 수준의 기초연금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당장 2조 7천억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제대로 된 기초연금을 시행하려면 그 이상이 될 것은 자명하다. 국민연금기금의 일부를 기초연금의 재원으로 쓰는 등의 다양한 제안들이 있지만 급격한 고령화사회를 겪는 우리가 기초연금제를 지속 가능하게 유지할 수 있는지를 엄밀히 따져봐야 한다.


특히 한나라당은 민주노동당의 15%보다 높은 20% 급여율의 기초연금제를 제안한다. 이 기초연금은 2006년에 급여율 9%(14만원)로 시작, 2028년에 20%에 도달한다. 높은 기초연금액을 마다할 사람은 없으나 재원방안이 아직 명쾌하게 나오지 않은 것 같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감세를 주장해온 한나라당이니 만큼 보다 명확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기왕 감세를 추진한다면 감세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세수 감소분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공급중시 경제학(supply-side economics)과 어떤 차이가 나는 것인지, 재정 적자에 대한 대비책은 있는 것인지, 단기적 경기부양으로 그칠 염려는 없는 것인지, 감세혜택이 부유층에만 집중될 소지는 없는지 등을 면밀히 따져야 할 것이다. 정부나 여당이 국민연금제도 개혁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에 비해 제1야당의 움직임이 그리 민첩하지 못한 거 같아서 해보는 소리다.


아울러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있는 영세 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기존 가입자의 급여율과 보험료율 조정 문제에서 시야를 넓혀 미가입자들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 등 특수직연금도 고통을 분담하는 동반 개혁이 있어야 한다. 비록 그네들이 강고한 이익집단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커진 요인에는 미진한 공무원연금 개혁 등이 크게 작용했음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자영업자들에 대한 소득 파악도 보다 정교하게 해서 국민연금의 형평성을 높이고,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한나라당 등에서 주장하는 소득비례연금은 소득에 비례해서 받게 되므로 소득을 파악하기가 원활해지는 측면이 있다).


세계에서 제일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는 국민연금만으로 고령빈곤 문제를 해결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복지후생을 전적으로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구축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과제가 될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보다 섬세한 논쟁을 통해 미래세대의 희생을 줄여나가는 사회적 계약이 필요하다. 만약 기초연금제를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당장의 재원 확보 방안이 없다면 기초연금의 대상을 대폭 줄여야 한다고 본다. 상위 20%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지 않으며, 부부가 동시에 기초연금을 받을 경우 일부를 감액하는 등의 내용을 포함한 민주노동당안도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 여당의 국민연금 재정안정화에 대한 문제의식도 타당하고, 야당 등의 기초연금제 주장도 경청할 점이 많다. 과연 우리의 대리인들은 얼마나 멋진 ‘가능성의 예술’을 선보여줄까? 부디 눌언민행(訥言敏行) 하기를!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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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경제학에서 생산성이 정체된 산업에서 비용과 가격이 오르는 현상을 Baumol의 비용질병(Cost Disease)이라고 한다. 이는 산업 부문에 따른 생산성 증가의 속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비용질병은 대부분 비교역 재화를 생산하는 서비스산업에서 발생된다. 서비스 부문에서 생산성 향상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노동을 기계설비로 대체하기가 힘들거나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교역재를 생산하는 제조산업의 경우 비싼 노동력을 기계가 대신하고 있어 노동생산성이 증가하지만, 비교역재를 생산하는 서비스산업은 생산성 지연(productivity lag) 문제를 겪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베토벤의 현악 4중주를 연주하는데 네 사람의 연주자와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북·장구·징·꽹과리로 연주하는 사물놀이에서 하나를 빼서 삼물놀이로 바꾸기는 여간 힘들 것이다.


국민소득이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이었을 경우에는 비교역재도 마찬가지로 저렴한 편이었으나 제조업 생산성이 증가하고, 국민소득이 향상되면서 생산성 향상이 더딘 비교역재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비용 증가를 유발하게 된다. 예를 들어 노트북 컴퓨터나 휴대전화기의 가격은 자꾸 떨어지지만 교육비 지출은 가파르게 증가하는 현상을 들 수 있다. 자본집약적 제조업의 실질임금이 상승하면 노동집약적 서비스업의 생산비용도 상승하고 이에 따라 비교역재 가격을 인상시키는 파급효과를 가져다 준다.


만약 노동생산성에 따라 임금이 지급되어야 한다고 한다면 오페라 배우는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실질임금이 별 차이가 없어야 하는데 아마도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오페라 배우직을 그만 둘 것이 분명하다. 반면에 공연예술이 가격이 다른 상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싸지면 서민과 중산층의 문화생활이 제약되는데 이 또한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이는 문화산업에 대한 정부 등의 지원의 논거가 된다. 가령 가수 비의 소득이 조용필의 열 배라고 가정하자. 그러나 가수 비는 조용필보다 노래를 열 배나 더 잘 부르는 것은 아님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유명 연예인의 엄청난 수입 증대는 연예인의 능력 향상보다는 삼성전자의 활약에 기인하는 바가 큰 셈이다.


비용질병이론을 개방경제로 확대 적용해보면 대한민국 대학교수와 미국 대학교수의 강의 질은 거의 차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임금은 현저하게 차이나는 까닭을 설명해준다. 이는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의 교역재 생산성이 비교적 높기 때문에, 비교역재 가격도 덩달아 높아지게 되어 결과적으로 물가가 더 높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생산성 향상과 경제성장은 장기적으로 비교역재의 교역재에 대한 상대가격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져다 주는데 이를 Balassa-Samuelson 효과라 한다.


비용질병이론은 몇몇 대기업들의 매출 성장이 반드시 더 나은 삶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시사점을 제시한다. 또한 비용질병은 피할 수 없지만 쓸데없이 더 늘리지는 말아야 하나는 교훈을 준다. 서비스산업의 생산성 향상이 비용질병 문제를 해소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안이겠지만 사실상 쉽지 않다. 일례로 농업 개방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농업은 비교역적 성질이 강하기 때문에 생산성이 낮더라도 함부로 포기해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한다. 여하간 일반 국민들의 후생수준을 높이는 경제발전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거 같다. 비용질병의 개념에 대한 설명으로 내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신 김경수 성균관대 교수님께 각별한 고마움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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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2005년 4월에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11기 3차 회의에서 공개된 북한의 2005년 예산은 북한 환율을 적용해봤을 때 28억7,000만 달러 정도라는 보도를 접하고 놀라워했던 적이 있었다. 북한은 국방비가 전체 예산의 15.9%인 북한 돈 618억원(한국 돈 약 4,600억원)을 배정했다고 밝혔지만 정부는 공개 된 것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5년 한국 정부 예산이 195조원었고, 국방비가 22조 5,129억원이었던 것을 따져볼 때 단순 수치로는 북한 정부 예산과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그런데 두 해전 기사를 보니까 2003년 3월 열린 최고인민회의 10기 6차회의에서는 예산 지출총액이 114억9천529만달러이며, 15.4%인 17억7천28만 달러를 국방비로 책정했다고 한다. 그 당시 분석으로는 국방비를 실제로는 50억 달러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지적에 따르면 “북한이 발표하는 국방비는 인건비와 장비운영비 등 일부 경상지출만 포함한 것이고, 무기ㆍ장비 획득비나 연구개발비 등 핵심항목은 다른 예산항목으로 은폐하고 있다”고 한다. 국방비를 어느 범위로 하느냐에 따라 액수가 천차만별인지라 정확한 비용을 추산하기는 참 힘들다.


북한의 통계가 아무리 들쭉날쭉하다고 해도 이건 너무 심하다. 어떻게 이태만에 정부 예산이 3분 1 수준 이하로 축소된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하기야 북한 관련 통계는 거의 다 추정치이고, 발표된 것도 곧이곧대로 믿기가 힘든 관계로 이런 비교가 무의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확실히 북한 예산이 줄어들었고, 이는 계속되는 경제난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국방비 지출은 점점 더 한계에 다다르고 있고,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도모할 수 있는 핵 개발을 들고 나온 것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 같다. 나는 남북문제에 식견이 없는 만큼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이다. 불분명한 통계에 불투명한 전망이라니 찰떡궁합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9월 12일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한 올해 월드 팩트북 (World Factbook)에 따르면 2005년 한 해 동안 세계 각국의 군사비 지출에서 미국이 5,181억달러로 단연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이어 2위는 중국으로 814억달러였으며 3위 프랑스 450억달러, 4위 일본 443억달러, 5위 영국 428억달러로 집계됐다. 한국은 210억5천만달러로 8위에 올랐으며 2002년 추정치로 50억달러를 사용한 북한은 22위였다. 북한의 2005년 예산 자료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텐데 업데이트를 안 한 것인지 아니면 보다 정확한 정보를 선별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혹시 북한의 군사 위협을 강조하기 위해 줄어든 군사비를 반영 안 한 것은 아닐까 내 멋대로 추측해본다.^^;


물론 남북한의 경제체제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남북한의 군사비 차이는 줄어들 여지가 있다. 통일연구원의 정영태 박사의 주장대로 “북한의 경우는 무기 개발 체계에 있어서 그 비용이 지불 안 해도 좋은 것이 너무 많이 있고, 모든 것이 국가 소유”이고, 인건비나 복리후생비가 남한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게 든다. 2005년 8월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펴낸 “'05 국방예산 분석·평가 및 '06 전망”이란 자료집에 따르면 국방비 중 인력운영비 비중은 1990년 40%에서 2000년 46.5%, 2004년 49.1%로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다가 2005년에는 47.9%선을 유지하고 있다. 인건비와 급식비, 피복비를 합한 군 인력운영비가 전체 국방예산의 절반 수준에 육박해 전력투자비와 경상사업비를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실질적으로 군사전력을 높이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남북한의 격차가 생각보다 작을 수 있다.


아무리 이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우리 국방부는 너무 겸손한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알기로 국방부의 공식 입장은 북한의 군 전력이 우리와 비슷하거나 조금 앞서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최근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와 관련해서 국방부는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전작권 환수를 반대하는 쪽에서 우려하는 군사력 열세 상황을 앞으로 군사력 증강을 통해 메우겠다며 자신감이 넘친다. 하지만 국방부의 우리 군 전력에 대한 설명은 여러모로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 대한 반성은 별로 보이지 않고 오로지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형국이다.


수년 간 북한을 압도하는 국방 예산을 운영하면서 고작 이런 식으로밖에 쓰지 못했는지 엄중하게 묻고 싶다. 사회경제적 측면에 바탕을 둔 종합적인 전쟁수행 능력을 구축해내지 못한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하지 않을까. 2005년 54만 사병의 1년치 봉급 총액은 2900여억원이라고 한다. 3800여명인 전국의 예비군 동대장 봉급 총합보다 조금 많은 정도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남는 그 많은 돈은 다 어디에 쓰인 걸까. 제 나라 인민을 굶주리게 만드는 초라한 나라보다 못한 국방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쉬워서 해본 소리다.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하는 건 군대도 예외일 수 없다는 생각에 괜히 쓴소리를 해봤다. 아무쪼록 우리 국방부가 들인 돈만큼의 성과를 거둘 수 있길 바란다. 끝으로 증액되는 국방비의 상당 부분은 그간 혜택을 받지 못했던 50만명이 넘는 사병들의 복무 환경 개선에 투자할 것을 촉구한다. - [無棄]

추신 - 국방비와 군사비는 좀 더 엄밀한 학술적 개념으로는 차이가 날 수 있겠으나 여기서는 그냥 동의어로 보고 혼용해서 썼음을 밝힌다.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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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9일 교육인적자원부는 그간 전국단위로 신입생을 모집하던 외국어고등학교 입학을 거주지 시와 도 소재지에 있는 외고에만 지원할 수 있다는 요지의 발표를 했다. 교육부는 2006년 현재 전국적으로 31개 외고가 운영되고 있으나 서울, 경기, 부산에 전체의 64% 이상인 20개교가 몰려 있고, 울산, 광주, 충남, 강원에는 1개교도 설립되어 있지 않아 지역적 불균형이 심화되는 문제를 거론한다. 또한 어학분야 영재 양성이라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입시위주의 교육을 하면서 졸업생의 동일계열 대학진학비율이 2004년 기준 31.2%에 불과해 과학고의 72.5%에 크게 못 미치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학생부를 중심으로 한 내신성적을 강화하는 2008학년도 대학입시제도 하에서는 동일계 이외의 분야로 지원하는 외고 학생들은 불리하기 때문에 자퇴를 하거나 내신경쟁을 위한 사교육에 의존하는 등 비교육적 사태가 초래될 것은 우려된다고 말한다.


사실상의 외고 입학 제한 조치에 논쟁이 거세다. 추측컨대 이런 특단의 대책이 나오게 된 배경은 공영형 혁신학교를 띄우기 위한 의도도 있겠지만, 내신 성적을 강화하는 2008학년도 대학입시제도의 원칙을 견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대학들이 외고 학생을 흡수하려고 내신 반영률 50% 원칙을 지키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100점 만점에 내신이 50점이라 명목반영률(외형적 반영률)이 50%라고 해도 40점을 기본점수로 주면 실질반영률은 10%밖에 되지 않는 맹점이 있다. 실제로 2006학년도 서울 주요 대학 입시에서도 표면상 40%에 달했던 내신의 실질반영률은 2.28%(서울대)∼11.7%(연세대)로 태반이 10% 이하였다고 한다. 내신이 강화되더라도 실제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적을 것이라는 믿음이 특목고를 필두로 확산될 여지가 많다.


게임이론에 따르면 경제행위에 있어서 위협(threat)과 약속(promise)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위협이나 약속에 얼마나 신빙성(credibility)이 있는가가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고려해야할 중요한 요소다. 대학들이 실질반영률을 높이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명목반영률만 높여봤자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즉 수험생들에게 그다지 신빙성이 없는 위협 혹은 약속이 되게 된다. 공교육 정상화를 고심하는 교육부는 정책의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외고의 모집 단위를 제한하는 식의 처방으로 입시 명문고로 자리매김한 외고에 대한 선망을 얼마나 줄일지 회의적이다. 신통찮은 효과만 누릴 정책을 급박하게 내어놓는 건 전략적으로 미숙하다. 벌써부터 실제 입시에서 학생부 영향력은 실질반영률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상위권 학생들의 경우 실질반영률보다 좁은 개념의 ‘사실상의 반영률’은 극히 미미할 것이라는 게 대다수의 전망이다. 그렇다면 보다 근본적으로 대학 입시에서 내신의 실질반영률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교육부는 지난해 2008학년도 입시 내신 강화안을 발표하면서 동일계열 진학 외 내신불리 조항을 명백히 하여 입시 목적의 특목고 지망생에게 신호(signal)를 보낸바 있다. 그러나 2002학년도 입시 때 수능 등급제를 도입하면서 얼마나 큰 혼란이 유발되었던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미 몇 해 전에 수능 총점제 폐지를 공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닥치니 수험생과 학부모 모두 고초를 치렀던 전례를 살폈어야 했다. 물론 외고의 문제를 개선하려는 교육부의 취지는 기본적으로 적절하다. 그러나 정책 입안 및 발표 과정에서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공영형 혁신학교 시범운영 방안에 끼워서 발표한 것부터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국민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교육정책은 섬세하게 추진해야 한다. 외고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면 그에 대한 성실하고 진지한 자세로 대처했어야 하는데 그저 문제점 몇 개를 던져놓고 해법도 그다지 설득력 없으니 오해를 사고 있는 것이다. 원론이 맞다고 곱게 봐주기에는 각론에 너무 허점이 많다. 외고에 대한 수요를 공영형 혁신학교로 흡수하겠다는 발상은 얼마나 안일한가. 과연 현행 입시제도의 틀 안에서 공영형 혁신학교는 입시위주의 교육에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단 말인가.


지난 1974년 도입된 고교 평준화 제도는 고등학교 입시를 위한 중학생의 과외 열풍, 고입 재수생의 누적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행되었다. 이를 통해 명문고 중심의 학벌주의를 완화하고 초등학교, 중학교 교육이 안정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수월성 교육의 부족과 학교선택권의 제한 같은 문제도 적잖았다. 이런 평준화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는 80년대 후반부터 과학고, 외국어고, 자립형 사립고 등을 설립해 평준화 틀을 유지하는 선에서 다양한 고교 시스템을 꾀하고 있다. 외고는 처음 들어섰을 때부터 내신 적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요동을 쳤다. 1994년 2월 교육부는 특목고 학생들이 동일계열 진학 때 학교 성적이 아니라 수능시험 성적에 따라 내신점수를 부여하는 ‘비교내신제’를 99학년도 신입생 모집부터 폐지한다고 밝혔다. 비교내신제와 대학별고사 전형을 믿고 외고에 자녀를 보낸 학부모들은 크게 반발했고 97년 2월에는 ‘입시제도 변경에 따른 신뢰이익의 손실’을 두고 헌법소원이 제기되기까지 했다. 교육부는 99학년도부터 비교내신제를 폐지했고, 당시 전국 외고와 과학고에서 무더기 자퇴사태가 벌어지며 홍역을 앓았다.


이해찬 당시 교육부장관이 주도하는 2002년도 입시개혁안까지 나오면서 외고 진학을 고민하는 중3들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마음을 바꿔야 했다. 나 같은 경우 외고 진학을 결정한 날을 선택기념일이라고 명명해가며 고등학교 시절 내내 기렸을 정도다. 내가 서울외고에 지원했던 98년도에 서울 시내 6개 외국어고의 99학년도 신입생 모집 결과 평균 1.74대 1의 경쟁률로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나는 1.6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가까스로 서울외고에 입학할 수 있었다.^^; 내신이 생각만큼 불리하지 않을 터이니 너무 염려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선생님들의 격려를 거름삼아 그럭저럭 2학년까지 마치고 마침내 고3 수험생이 되었다. 대대적으로 확대된 수시모집 제도에 도전하려니 석차백분율이 필요했다. 중국어과 두개 반을 다해도 100명이 안 되다 보니 모든 과목을 과 10등을 하더라도 석차백분율은 10%가 넘었다. 수시모집에 대한 꿈을 안고 석차백분율을 계산하다가 패닉 상태에 빠졌던 고3 교실의 광경을 아직도 선하다. 수시모집에서 다소 불리한 점이 있었다고는 해도 정시모집에서는 내신 절대평가제나 수우미양가의 평어 계산이 도입되면서 불리한 면을 불식시켰다. 고대나 연대 등 일부 대학들이 절대평어 방식으로 특목고생들을 유혹하면서 일반고까지 성적 부풀리기 현상이 만연하는 촌극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일부 대학의 고교 등급제 적용 논란까지 불거지더니 결국 교육부는 2008학년도 대입부터 내신을 상대평가하기에 이른다.


외고 문제에 대해 솔직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내가 외고에 간 건 외국어 전문가가 되려는 게 아니었다. 사실 내 고등학교 1학년 동안의 꿈은 국문학도였고, Y대에서 나를 거절하지 않았으면 지금 사회학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외고 입학 당시만 해도 외국어가 정말 좋아서 외고 온 사람은 열에 하나 정도였다. 대개는 좋은 환경과 시설을 누리며 모범생 혹은 우등생들과 함께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에 그 불안함 속에서도 지원한 것이다. 물론 수업시수도 많고 하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중문과를 전공하게 된 친구들이 많지만 시작부터 일편단심이었던 것은 아니다. 외고의 어문계 진학비율이 낮다고 하지만 외고가 생긴 이래 동일계 진학비율은 늘 30~60% 정도였다는 점은 엄연한 현실이다. 10년 전인 1996년에도 31.9%였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고등학생들의 진로가 애초부터 정해진다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 사실 외고의 설립 취지가 어떤 것이냐 하는 문제는 조금 애매한 감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역관 양성소를 지향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외국어 능력을 갖춘 우수한 인재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외국어를 도구삼아 다른 학문의 지평을 넓힌다면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것은 아닐까. 영어도 열심히 공부 안하고, 그나마 좋아했고 잘했던 중국어마저 하루하루 까먹어가는 내 처지가 한심해서 하는 말이다.


외고는 고교평준화 정책의 보완책으로 나왔다. 좀 더 명확히 말해 평준화 틀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교육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어느 정도 공급하기 위한 사회적 타협의 산물이다. 비록 불완전하지만 10년 이상을 유지해오며 어느 정도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 당장 고교평준화를 폐지할 것이 아니라면 외고 같은 타협은 불가피하다. 외고보다 좀 더 나은 대안으로 공영형 혁신학교를 내놓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외고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수도 적고 힘도 없고 역사까지 짧은 외고는 지난날 평준화 도입으로 말미암아 명문고들이 입었던 타격보다 더 많은 피해를 감내해야하기 때문이다(제법 위용을 자랑하는 대원외고 같은 몇몇 외고는 좀 예외일수도 있겠지만). 공영형 혁신학교가 그리 자랑스럽거든 잘 만들어서 외고랑 경쟁에 붙이면 그만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으로 교육정책을 운용하기에는 열심히 공부하는 수험생들의 눈물이 너무 무겁다. 외고에서 외국어‘도’ 잘하는, 외국어‘마저’ 잘하는 인재를 키우는 게 뭐가 그리 잘못인가. 어딜 가나 출신학교를 따지는 이 나라 풍토에서 외고만 세류에 휩쓸리지 말고 독야청청 외국어만 파고 있으라는 주장은 너무 끔찍하다. 외고생과 그 학부모들은 천사들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소박한 꿈을 가지고 애쓰는 사람들일 뿐이다. 다시금 내신 불이익의 공포에 떨 이름 모를 후배들이 가여워 쓴소리를 해봤다. - [小鮮]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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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바나나킥을 소주 안주로 삼으면 기가 막히다는 내 주장에 반신반의하던 친구들이 한번 먹어보더니 맞장구를 쳐줬다. 그 날 바나나킥 다섯 봉지를 맛나게 먹으며 바나나에 대한 나의 애호를 새삼 확인했다. 문득 통상정책 강의시간에 교수님이 과거에 바나나 한 개가 얼마나 귀했는지를 추억하시던 것이 떠올랐다. 막상 먹어보면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과일이 하도 귀하다보니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통해 자유무역의 혜택을 설명하시려는 의도였을 게다.


바나나의 황홀한 맛에는 거품이 적잖았다는 체험담에서 그 옛날 도루묵의 거품이 생각난다. 임진왜란 때 한양을 버리고 피난을 갔던 선조 일행은 먹을 것이 변변치 못했다. 아쉬운 대로 진상된 ‘묵’이라는 생선을 먹은 선조는 너무 맛있다며 생선의 은빛 뱃살을 보고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전쟁이 끝나고 선조는 달게 먹었던 은어 생각이 났다. 그러나 산해진미와 함께 놓인 은어의 맛은 예전 같지가 않았다. 왕은 도로 ‘묵’이라고 부르도록 하였고 여기서 도루묵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손을 떨며 한 개를 조심스레 까먹던 바나나를 요즘은 한 다발씩 사서 대강 까먹다가 한 두 개 정도는 너무 갈변했다며 음식물 쓰레기 처리하기 일쑤다. 바나나의 베이지빛 과육을 음미하며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떠올려봄직하다. 세상인심도 반추한다면 금상첨화다.


바나나는 한때 무척 귀한 과일이었지만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출입되는 과일이다. 거래가 많다 보니 분쟁도 많아 2001년에 미국과 유럽연합(EU) 간의 바나나 무역분쟁이 일단락 되기도 했다.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바나나를 수입 규제하는 대신 비닐하우스를 전기 난방해서 바나나를 재배하게 했다. 이 국내산 바나나는 맛도 신통치 않았거니와 값도 비쌌다. 게다가 농업용 전기는 원가 이하로 공급되기 때문에 그 차액을 국민이 분담해야 했으니 이런 낭비가 없다. 1991년 수입 개방으로 델몬트, 돌, 스미후르 같은 기업들이 국내시장에 진출하면서 바나나는 그 귀족적 자태를 잃고 서민의 품에 안겼다.


예전에는 호사품이었던 바나나가 저렴한 가격에 부담 없이 사먹을 수 있게 된 것은 환영할 일이다. 바나나를 처음 수입할 때 사과 소비가 줄어 사과농가가 타격을 입는다며 반대했던 게 무색할 정도다. 그런데 얼마 전 한-칠레 FTA를 체결할 때는 포도농가가 타격을 입지는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다행히 큰 무리가 없이 지나갈 모양이지만 앞으로 농업 부문의 개방은 이런 식의 갈등이 재연될 소지가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주곡, 과일, 육류가 비싸다는 게 사실이라면 풍요로운 먹을거리를 값싸게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건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여전히 쇠고기는 비싸지만 그래도 값 싼 수입 쇠고기가 있다는 건 육식을 즐기는 이들에게 그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도 좋지만 파시스트가 아니고서야 애국심도 동이 나게 마련이다.


다만 사회적 후생을 증가시키더라도 단기적으로 소수에게 피해가 집중된다면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어쩌면 농산물 개방을 둘러싼 갈등은 역진적인 소득재분배 문제를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정부와 국회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싶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트러스트(Trust)]에서 사회구성원들의 신뢰가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켜 경제적 번영을 뒷받침하고 국가경쟁력을 높인다고 말한다. 신뢰가 한 나라의 복지와 경쟁력을 결정짓는 사회적 자본이라는 주장은 경청할 만 하다. 후쿠야마의 지적대로 대한민국이 저신뢰(low-trust) 사회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상호불신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좀처럼 줄지 않는 것은 나라살림을 주름지게 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까지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한-미 FTA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의 하나라면 때려치우라는 단선적 주장 대신 어떻게 하면 좀 더 얻어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길 바란다. 우리가 어느 선에서 배수진을 칠 것인지, 우리가 꼭 얻어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놓고 섬세한 논쟁을 벌이다 보면 막연한 불안과 불신도 줄어들 것이다. 노란 껍질이 그럴싸하지만 썩기 쉬운 바나나처럼 시장 개방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는 명쾌할지언정 곪기 쉽다.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개방해서 실패한 경우도 있었지만 쇄국해서 성공한 나라는 없다”고 한 말은 설득력 있다. 바나나처럼 썩기보다는 바나나가 서민들의 벗이 되었듯이 개방의 혜택이 서민들에게 고루 돌아갈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 [小鮮]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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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 알라딘 서재에서 알게된 마태우스님의 술 일기를 읽다가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을 만났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김여정님의 이야기다. 술을 마실 때마다 "경제를 살려야 해!"라고 말씀하시고, 마태우스님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경제 살리고 있어요!"라며 자긍심을 내비치시는 분이다. 예전에 강준만 선생님이 "독립된 사람들끼리의 연대는 의외로 무서운 것"이라고 인물과 사상에서 써놓으셨던 문구가 떠오른다. 정말 마태우스님이나 여정님의 존안을 뵌 적도 없고, 술 한 잔 나눠본 적도 없고, 경제에 대한 고견을 청해본 적도 없지만 이 땅의 어디선가 같은 뜻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다.


2004년 4.18 구국대장정에 대한 중앙운영위원회가 있던 날 올해 4.18 기조와 구호를 논의하는 시간이 있었다. 비정규직 철폐, 파병 철회, 신자유주의 반대 같은 문구들이 줄줄이 제시되었고 일사천리로 통과가 되었다. 침묵하고 있던 나는 사실 "내수경기 진작하자"는 구호를 제안하고 싶었다. 내수라는 단어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끝내 말하지는 않았다. 내 진솔한 고민이 그다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역시 경영학도가 생각하는 건 고작 그 수준이지 이런 경멸이나 받아 경영대 학우들께 누를 끼칠까봐 그만뒀다. 4.18이라는 행사는 너무 엄숙했고, 행사를 관장하는 학생회 일꾼들은 너무 경직됐다. 대신 나는 2005년 새해 인사 문자를 보내면서 내수경기 진작하자는 구호를 건넸고,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공식, 비공식 선거자금이 시중에 유통되게 마련인 전국적 선거를 얼마 전 치렀다. 그런데 국내 경제 규모가 원체 커졌다 보니 그 효과가 미미하다고 한다. 우리 경제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생각에 흐뭇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앞선다. 이렇게 커질 대로 커진 우리 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내 자신이 좀 더 노력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사명감이 압도한다. 머잖아 내 진로에 대한 준비로 말미암아 마음껏 놀지 못하는 상황이 도래하기 전에 뭔가 내 몫을 해내야겠다는 조바심이 생겼다. 구국의 처음처럼, 불패의 참이슬이 나설 때다.


지인들이 대부분 여름방학이라는 점을 착안해 내수 경기 활성화를 위한 특단의 캠페인을 벌이려고 한다.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를 벤치마킹한 "술 술 술 술을 마십시다!" 프로젝트다. 앞으로 소주 한두 잔 먹고 경제를 살렸다고 뿌듯해하지 않기로 했다. 소주 한 병은 먹어야 이제 좀 내수 진작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싶다. 이 숭고한 취지에 동감하는 이들의 정성을 모아 이 여름 우리 경제가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하겠다. 방학기간인 7, 8월 두 달 동안 지인들에게 제안할 실천강령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봤다.


1. 15번 이상의 술자리를 가진다(나흘에 한 번 꼴).
2. 안주는 남기지 않을 선에서 최대한으로 시킨다.
3. 될 수 있으면 사람을 많이 모아서 마신다.
4. 소주보다 세율이 높은 맥주도 많이 마셔준다.
5. 어떤 자리든 제 주량의 2/3 이상은 먹도록 한다.


내 자신은 이 다섯 가지를 다 지키려고 하겠지만 너무 기준이 엄격하면 중도에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을 우려해 주위에는 다섯 개 중에 세 개를 실천하길 권할 생각이다. 그간 못 만났던 지인들과 약속을 잡고 주저 없이 잔을 나누리라. 우리 경제에 대한 허심탄회한 난상토론을 안주 삼아 나누면 금상첨화다. 여정님의 감동적인 멘트를 빌려와 늦은 저녁에 "지금 경제를 살리고 있어요. 함께해요!"라는 연락을 돌려봐야겠다. 문득 고개를 들어 유독 별이 빛나는 밤하늘이 보이거든 "아 익구가 어디선가 내수를 살리기 위해 애쓰고 있구나!"라고 생각해주시길.^-^ - [小鮮]


추신 - 해외로 나갔다 오는 분들은 좀 더 특별관리를 해야 한다. 그 기간 동안은 내수를 살릴 수 없으니 말이다. 오히려 그간 유출한 국부를 감안해 좀 더 가열찬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일단 떠오르는 건 중국 유학 중인 친구 섭공이다. 7월에 학기가 마치고 돌아올 그에게 나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둘 것을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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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셤의 법칙(Gresham's law)’이란 이름은 1858년 H. D 마크로드가 명명한 것이다. 영국의 금융가인 그레셤(Thomas Gresham, 1519-1579)이 내놓은 화폐 유통에 관한 법칙으로 “악화(惡貨)는 양화(良貨)를 구축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 money)”는 말이다. 이는 그레셤이 악화를 개주(改鑄)하여 외국환의 지배권을 장악하려는 구상을 엘리자베스 1세에게 진언한 편지 속에 나온 말이라고 한다. 그는 한 사회 안에서 귀금속으로서 값어치가 큰 화폐와 값어치가 작은 화폐가 동일한 화폐가치를 지니고 유통되는 경우(실질가치가 다른 두 화폐가 똑같은 명목가치를 지닐 경우), 귀금속 가치가 큰 화폐는 유통에서 사라지고 가치가 작은 화폐가 활개를 친다고 주장했다.


18세기까지 유럽에서 쓰인 돈은 모두 은화 아니면 동화였다. 지폐와 달리 금속화폐는 명목가치와 실질가치가 일치했다. 1파운드의 금이나 은이 그만한 가치를 액면으로 반영했고, 그 무게단위가 화폐단위였던 것이다. 그런데 정부에서 재정 부담을 줄이고자 순도가 떨어지는 은화나 동화를 생산해내기도 했다. 사람들은 순도가 높은 은화는 쓰지 않고 저장해 두고, 순도가 낮은 은화만 널리 사용했다. 가령 빳빳한 새 지폐는 좀 더 보관하려 하고, 너덜너덜 낡은 지폐는 얼른 써버리는 행위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금화와 은화가 똑같은 액면가를 가질 경우 될 수 있으면 금화는 쓰지 않고 저장하고, 은화만 쓰게 된다. 금화는 차라리 녹여서 금괴나 장식물로 쓰거나 해외로 반출하는 게 이득이 되어버린다. 가령 희소성이 있는 기념주화가 거의 유통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기 그 뿐인가. 주화 가장자리를 조금씩 깎아내 모은 금, 은을 팔았다고도 한다.^^;


1866년 흥선대원군은 당백전(當百錢)을 찍어내 강제로 사용토록 했다. 당백전은 당시 통용되던 상평통보(常平通寶, 엽전)의 100배에 해당하는 큰돈이었지만 중량은 상평통보의 5,6배에 지나지 않았다. 당백전의 실질가치는 명목가치의 20분의 1밖에 되지 않은 셈이다. 상인들이 당백전 받기를 꺼리자 강제로 당백전을 유통시키기 위해 애썼고 나중에는 양화인 상평통보 대신 악화인 당백전만 유통되어 물가가 폭등했다. 당시 백성들은 당백전에서 백자를 뺀 당전을 거세게 발음해서 ‘땅전’이라 불렀고, 땅전은 뒤에 ‘땡전’으로 일컬어졌다. 당백전에 대한 혐오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흥선대원군은 화폐발행차익(seigniorage)을 이용해 경복궁을 다시 지어 후손들에게 번듯한 문화유산을 물려줬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오늘날에는 금속화폐 대신 신용화폐를 주로 사용하다 보니 그레셤의 법칙은 화폐 유통을 설명하는 적실성을 잃었다. 오히려 경제학 이외의 분야에서 다양하게 응용되는 경우가 많다. 경영학자 H. A.사이먼은 경영의 의사결정문제로 전환해 “계획의 그레셤법칙”을 주창했다. 이는 경영자가 정형적 결정 책임과 혁신적 결정책임을 동시에 지니고 있을 때 일상적인 정형적 문제처리에 쫓겨 혁신적ㆍ전략적 결정을 놓치거나 미루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장기적 수익모델을 창출하고 급변하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혁신적ㆍ전략적 결정이 통상 사무처리인 정형적 결정에 밀려 버리는 것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매일 매일 주문처리와 재고관리에만 얽매여 있다가 신기술 도입이나 신상품 출시를 소홀히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혁신적 결정을 수행하기 위한 의도적 노력이 필요하며 전문화된 부서를 설치하는 게 필요하다.


이런 다소 엄밀한 학적 개념 외에도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그레셤의 법칙을 적용해볼 수 있다. 본래 그레셤의 법칙은 선악의 가치판단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 영역으로 확대 적용되어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이 득세하는 세상을 개탄할 때 자주 쓰인다. 가령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뽑을 때 정직하고 유능한 사람이 부패하고 무능한 사람에게 밀려날 때 그레셤의 법칙을 떠올려봄직 하다. 양질의 전문 학술 서적은 맥을 못 추고 할인 경쟁을 하는 대중서적들만 난무하는 도서출판계의 사정도 비슷하다. 어쩌면 이토록 다양한 변용이 가능한 까닭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이기심을 바로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필귀정(事必歸正)이나 파사현정(破邪顯正)이니 하는 말들이 허울뿐인 구호라는 체험적 지식에서 연유된 것은 아닐까.


그런데 反그레셤의 법칙이라는 말도 있다. 디지털 기술 기반의 여러 제품이나 서비스가 융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제품이나 서비스로 탈바꿈하는 것을 가리키는 디지털 컨버전스(Digital Convergence)가 그 주인공이다. 기술 경계를 허물고 통합해 새로운 기술을 지향하는 흐름에는 악화가 마냥 넘쳐날 수 없게 만든다. 즉 시장지배세력이 기득권에 안주하며 신제품의 출현을 지연시킬 여지를 줄이게 된다. 소니는 브라운관 TV의 명품 브랜드인 베가(WEGA)를 지키려고 했지만 삼성전자를 위시한 LCD TV의 성장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소니는 2005년 LCD TV 전용 브랜드인 브라비아(BRAVIA)를 출범함으로써 LCD TV 경쟁에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했다(“디지털컨버전스와 반 그레셤의 법칙” 전자신문. 2004. 03. 08. 참조). 이처럼 양화가 악화를 구축하는 경우가 좀 더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악화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자발적인 혁신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상 돌아가는 일을 양화와 악화로 가름하는 건 편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재미나기까지 하다. 그레셤의 법칙을 들어 악화가 만개하는 세상이 도둑처럼 찾아오게 하지 말자고 외치는 건 얼마나 명쾌하고 통쾌한 이야기인가. 하지만 양화와 악화의 이분법으로만 세상을 재단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양화와 악화의 건곤일척을 상정하면 싸움 구경하는 재미야 있겠지만 다원주의 사회에서 명백한 악화는 드물기 때문이다. 어쩌면 독선과 오만이야말로 진짜 악화인지도 모른다. - [小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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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절세(Tax Saving)는 기본권이야!”


세무학을 공부하는 친구의 일갈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절세는 세법이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합법적으로 세금을 줄이는 행위다. 강남구 의회를 비롯해 서울과 경기도 상당수 자치단체가 올해 주택분 재산세를 최고 50%까지 인하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투덜거리고 있던 참이었다. 불법이 아닌 것에 너무 분개하는 건 그다지 좋은 태도가 아닌 것 같다. 명백한 불법을 제 때 단죄하는 것도 여의치 않은 세상인데 그런 것까지 너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이렇게 쿨하게 넘어가기에는 뭔가 조금 석연치 않다. 서울지역 25개 구 중에 20곳이 인하했는데 내가 사는 중랑구가 그 혜택을 입지 못해서 섭섭해서 그런 건 아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재정 형편이 어려워 탄력세율을 적용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니 세금 아껴서 책을 더 사보거나 하지는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재산세에 탄력세율을 적용해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기존의 계획을 강행하고 있어 ‘동일가격 동일세금’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도 일가견이 있다. 재산세 탄력세율은 아파트를 비롯해 주택을 소유한 주민들의 재산세를 인하해주는 것을 말한다. 물론 재산세 탄력세율 적용은 지방세법에 근거한 합법적인 조치다. 현 지방세법상 주택에 대한 재산세율은 상하 50%범위에서 지자체가 자율로 조정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같은 세금을 놓고 이를 깎아주는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으로 양분되는 건 조세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지적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아파트 투기와는 거리가 먼 강원도 사정 탓인지 강원일보에서 비교적 높은 어조의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수도권의 아름다운 감세 열풍과는 달리 강원도를 비롯한 대부분의 지방에서는 재정자립도가 낮아 세수 감소로 이어질 재산세 인하를 선뜻 따라하지 못할 것이다.


주택공시가격이 적잖이 올랐기 때문에 늘어나는 세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것이 구청측의 입장에 적잖이 동감한다. 2006년 부과되는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는 공시가격이 전년대비 18.5% 가량 크게 오른 데다 과표 적용률 상향 조정으로 인하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부동산 불로소득 회수가 목적이라면 양도소득세 인상이 해법이지, 자꾸 보유세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항변도 설득력 있다. 일단 정부는 보유세 강화, 거래세 완화를 기본원칙으로 보유세(재산세, 종합부동산세) 강화에 따른 세수증가분은 거래세(취득세, 등록세) 인하와 연계해 국민 전체의 세부담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개선할 계획임을 밝히고 있다. 이번 보유세 개편의 핵심은 주택보유에 따른 세부담을 늘려 시세차익이나 임대료 등으로 발생하는 주택보유의 수익률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보유세 부담은 주요국들에 비해 낮은 것이 사실이다. 주택가격 대비 보유세 비율인 보유세 실효세부담률은 2005년 현재 0.15%로 미국의 1.69%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보유세 실효세부담률을 어느 수준까지 끌어 올리느냐의 문제가 있을 뿐 일정 정도의 인상은 크게 반대할 명분도 없다. 그런데 보유세 인상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차가운 것은 왜일까.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이 말한대로 “부동산세는 소득이 실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즉 돈이 내 눈앞에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납부해야 하기 때문에 저항이 심해지는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더군다나 정부가 2%p 낮췄다나는 거래세도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해서 거의 체감할 수 없게 된 것도 실책이다. 세금을 인상하더라도 납세자의 부담 능력과 심리적 충격을 고려해 증가속도와 증가폭을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금 가파르게 세금을 올릴 경우에는 정말 성심성의껏 그 불가피성을 설득하고 양해를 구해야 했다. 정부와 여당은 그 점에서 섬세하지 못했다.


2.
여하간 재산세와 더불어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를 살펴보자. 종부세 산출세액은 ①산출세액전 종합부동산세 - ②차감재산세액 - ③세부담상한초과액으로 정리할 수 있다. 좀 더 풀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 산출세액전 종합부동산세 = 종합부동산세 과세표준 × 세율
* 종합부동산세 과세표준 = (종합부동산세 과세대상자산 공시가격 - 종합부동산세 기준금액) × 70%(2006년도 기준)
② 차감재산세액 = 재산전체에 부과된 재산세 - 종합부동산세 기준금액에 부과된 재산세
③ 세부담상한초과액 = [산출세액전 종합부동산세 - Min(세부담상한액, 산출세액전 종합부동산세)]


② 차감재산세액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하자면 종부세 과세대상 자산은 지방세법의 재산세의 과세대상이기도 하다. 재산세가 과세되고 종부세가 또 과세된다면 이중과세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이에 따라 종합부동산세법에선 종부세 과세대상 자산에 이미 부과된 재산세는 종부세에서 차감한다.


③ 세부담상한초과액이란 종부세를 도입하더라도 종부세 과세대상 자산에 대한 보유세 부담의 급격한 인상을 막기 위해 세부담 상한선을 두는 것을 말한다. 2005년에 1.5배이던 것을 3배로 상향조정했다. 만약 2005년에 재산세와 종부세를 합해 1,000만원을 납부했다면 올해 보유세 부담상한은 1,000만원 × 300% = 3,000만원인 셈이다. 만약 2006년도에 재산세가 800만원이고, 종부세가 2,500만원이라면 종부세는 2,200만원만 납부하게 되는 것이다. [산출세액전 종합부동산세-Min(세부담상한액, 산출세액전 종합부동산세)]를 이용해 계산을 해보자. 종부세의 세부담상한 초과액을 계산하려면 부담한 재산세액은 빼줘야 하기 때문에 세부담상한액은 3,000만원-800만원=2,200만원으로 계산된다. 따라서 세부담상한초과액은 2,500만원-Min(2,200만원, 2,500만원)=300만원으로 산출된다.


당최 이게 뭔 소리란 말인가. 그래서 도전해보기로 했다.


강남구에 따르면 공시가격이 24억3900만원인 삼성동 아이파크 73평형은 지난해 재산세 418만5000원을 납부했지만 올해는 재산세 583만7500원과 종부세 1519만8500원을 납부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재산세 탄력세율 50%를 적용하면 재산세가 291만원으로 크게 줄어들고 대신 종부세는 1749만7250원으로 다소 늘어난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재산세 탄력세율 50%가 적용되면 재산세의 상당액이 종부세로 전가돼 고가주택은 주민의 세부담 경감 혜택이 축소된다"고 밝혔다.

- “서울 자치구 재산세 인하추진” 매일경제. 2006. 05. 30


위 기사의 사례에서 나온 수치가 도출되는 중간고정을 낱낱이 밝혀보겠다. 다만 세부담상한초과액은 계산에서 제외하도록 하겠다. 무려 네 시간동안 독학으로 끙끙대다가 구했으니 내 부족한 수리능력이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우선 계산은 “(공시가격 × 과표적용률) × 세율”의 기본 구조를 가진다. (공시가격 × 과표적용률)이 과세표준을 의미하는데 과세표준(standard of assessment)은 말 그대로 세금을 부과함에 있어 그 기준이 되는 것을 말한다.


○ 24억3900만원에 대한 재산세 과세
재산세 과세표준 : 1,219,500,000원(공시가격의 50%)
* 2008년부터는 2006년 현재 50%인 과표적용률을 매년 5%포인트씩 높여 2017년 100%로 올릴 계획임.

공시가격 8,000만원 이하(세율 0.15%)
(80,000,000 × 50%) × 0.15% = 60,000
공시가격 8,000만원 초과 2억원 이하(세율 0.3%)
(120,000,000 × 50%) × 0.3% = 180,000
공시가격 2억 초과(세율 0.5%)
(2,239,000,000 × 50%) × 0.5% = 5,597,500

∴ 60,000 + 180,000 + 5,597,500 = 5,837,500원

○ 6억원을 초과하는 1,839,000,000원에 대한 종부세 과세, 즉 산출세액전 종부세 산출
종부세 과세표준 : 1,839,000,000원(2,439,000,000 - 600,000,000)
* 2006년 현재 70%인 과표적용률을 매년 10%씩 상향조정하여 2007년 80%, 2008년 90%, 2009년 100%로 올릴 계획임.

공시가격 6억원 초과 9억원 이하(세율 1.0%)
(300,000,000 × 70%) × 1.0% = 2,100,000
공시가격 9억원 초과 20억원 이하(세율 1.5%)
(1,100,000,000 × 70%) × 1.5% = 11,550,000
공시가격 20억원 초과 100억원 이하(세율 2.0%)
(439,000,000 × 70%) × 2.0% = 6,146,000

∴ 2,100,000 + 11,550,000 + 6,146,000 = 19,796,000원

○ 6억원 초과한 18억3900만원 상당의 재산세분에 대한 이중과세조정, 즉 차감재산세액 산출
(1,839,000,000 × 50%) × 0.5% = △4,597,500원

☆ 종부세 산출세액 = 19,796,000 - 4,597,500 = 15,198,500원
☆ 보유세 산출세액 = 5,837,500 + 15,198,500 = 21,036,000원


여기서 재산세가 50% 인하된다면 ...

○ 재산세는 5,837,500원 × 50% = 2,918,750원으로 인하

○ 산출세액전 종합부동산세액은 위와 마찬가지로 19,796,000원

○ 그러나 차감재산세액의 변동이 있음, 종전의 차감재산세액 산출에서 재산세 인하폭인 50%만 계산
4,597,500 × 50% = △2,298,750원

☆ 종부세 산출세액 = 19,796,000 - 2,298,750 = 17,497,250원
☆ 보유세 산출세액 = 2,918,750 + 17,497,250 = 20,416,000원

◎ 재산세 50% 인하에 따른 절세 효과
21,036,000 - 20,416,000 = 620,000원

아쉽게도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재산세의 20%인 지방교육세와 재산세 과표의 0.15%인 도시계획세가 더해지고, 종부세의 20%인 농어촌특별세라는 부가세(surtax)가 더해지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생략했다. 여하간 이렇게 해서 보유세 대장정은 일단락된다.


3.
재산세 탄력세율 50% 적용이 되어도 고가주택 주민의 세부담 경감 혜택은 축소된다는 강남구청 관계자의 주장은 상당히 호소력 있다. 고가주택 주민들은 재산세 인하된 만큼 종부세가 늘어나게 된다. 종부세는 국세이고, 재산세는 지방세다. 중앙정부의 살림을 위해 국민으로부터 징수하는 세금을 국세라 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살림을 위해 지역주민으로부터 징수하는 세금을 지방세라 한다. 국세는 중앙정부의 행정관서인 국세청(세무서)과 관세청(세관)에서 부과·징수하며, 국방·치안·교육 등과 같은 국민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용된다. 지방세는 지방자치단체인 특별시와 광역 및 도와 시·군·구의 행정기관에서 부과·징수하며, 상·하수도 및 소방 등과 같은 지역주민의 이익과 지역발전을 위해 사용된다. 결국 재산세 인하되고 종부세 인상될 경우 강남 이외의 지역에서도 쓸 수 있는 국세가 늘어나기 때문에 반드시 강남에만 좋다고 볼 수도 없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강남 고가주택 소유자에게 해당되는 말이고, 종부세 부과와 관계없는 강남의 대다수 서민들은 재산세가 줄어드는 효과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


강남 서민들이 혜택을 누리는 효과가 적지 않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에 곱지 않은 시선이 가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강남이라는 상징자본이 표상하는 이미지가 크게 작용한 듯하다. 그러나 강남의 주민보다 싼 주택을 가진 다른 지역의 주민이 더 많은 재산세를 내는 역설은 그리 만만한 사안이 아니다. 강북지역 주민들이 강남지역 주민보다 세부담이 늘어나게 되는 건 그다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또한 수도권 전체로 시야를 넓혀서 보면 수도권처럼 주택값이 오르는 곳은 세금을 깎아주고 오르지 않는 지방은 세금을 그대로 내야 하는 것 문제는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할 공산이 크다. 이런 식의 선심성 행정이 해당 지역의 복지나 문화 등의 행정 서비스 축소, 지방재정의 왜곡을 유발할 수도 있다. 실제로 강남구청은 세수 부족 등을 우려 탄력세율을 30%로 낮춰달라며 재의를 요구했다가 무산되었다. 구의회가 지자체의 재정이나 행정, 국가 정책에 대한 보조는 뒷전에 두고, 주민들의 민원 해결을 빌미로 조삼모사(朝三暮四)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생긴다.


부자 지자체들의 이기적 행동은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일 수 있다. 그러나 부동산 세제 강화라는 국정 취지를 지켜가려면 조세감면 제도의 정비와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의 재정 보조 방안들을 마련해야 한다. 세목(稅目)교환, 공동재산세 같은 정책들도 검토하는 적극적 노력을 통해 조세정책의 신뢰성을 확보해야할 것이다. 아울러 지방에서도 주민들의 세금부담을 완화하면서도 재정자립도를 확충할 수 있는 세원정책과 재정운용을 고심해야 할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서로의 영역에서 국민들의 복리후생 증진을 위해 경쟁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


부동산 관련 조세 정책의 핵심이 부동산투기 근절이라면 정책 실현 과정에서 촉발된 서민과 중산층의 실질적, 심리적 부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부동산 정책은 다른 경제사회정책과 상호 관련이 있는 만큼 세금 정책만 들여다보고 있어서는 안 된다. 가령 지역균형발전정책 같은 정책들이 부동산 가격 상승 심리를 부추긴 것은 아닌지 기존의 정책들도 고찰해야할 것이다. 부동산 투기세력에게 버티면 된다는 식의 신호를 주지 않으면서도 서민과 중산층의 심리적 섭섭함을 어루만질 수 있는 묘안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앞으로도 양극화 문제 등을 해소하기 위한 증세와 감세를 둘러싼 세금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다. 지속적인 세금 토론을 통해 사회 저변의 인식을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小鮮]


<추신>
1. 아 나중에 돈 벌면 종부세를 꼭 좀 내고 싶군요.^^;
2. 열심히 공부해뒀는데 종부세법이 개정되면 낭패
3. 재산세, 종부세 계산할 때 도표 같은 걸로 멋들어지게 만들지 못해서 죄송해요.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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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경영학도?

경제 2006. 6. 14. 01:00 |
그러나 5.31 지방선거가 보여주듯이 한국의 진보는 정점에서 다시 추락하고 있고 한국의 보수는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보수의 부활은 다음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추동되었다. 첫째, 한국 진보의 실패가 한국의 보수에게 부활이라는 반사이익을 안겨주었다. 한국의 진보는 정권을 장악했을 때, 통치능력 (governability)을 보여주지 못했다. 진보정권은 세계화의 도전에 대응하여 성장촉진형 분배정책, 분배개선형 성장정책의 개발을 통해 경제영역에서 헤게모니를 구축하는데 실패하였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나 동반성장이라는 수사학은 요란했으나, 성장은 부진했고 분배상황은 악화되었다. 사회의 양극화는 심화되었고 진보의 지지기반은 약화되었다. ‘고용없는 성장’으로 청년 실업층이 증가하면서 진보의 강고한 지지층을 형성해왔던 20대의 이반이 일어났다.
- 임혁백. “한국사회는 보수화되고 있는가” 교수신문. 2006. 06. 05.


도둑처럼 다가온 한나라의 천년왕국(?)에서 영락을 누리기를 마다하는 내 자신이 밉다.^^; 임혁백 교수님의 글 중에서 “성장촉진형 분배정책, 분배개선형 성장정책”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 왔다. 앞으로 짬을 내어 그 쪽을 고심해보고 싶다는 야심에 불타 올랐다. 가령 파이는 언제까지 키워야하는 것인가, 성장우선주의는 극복할 수 없는 절대선인가, 양극화 문제를 좀 더 합리적으로 조정가능한 방안은 무엇인가 같은 주제들을 놓고 궁리해봐야겠다는 의욕이 생겨버렸다. 조세정책을 비롯한 분배정책, 공정거래/재벌 문제/소유지배구조를 검토하는 기업이론, 균형 잡힌 노사관계, 납득 가능한 국민연금 개혁, 부동산 문제 해법, FTA를 위시한 통상정책 등의 주제를 놓고 모자란 머리를 신나게 굴려보고 싶다. 사실 내 학부 전공과 적잖이 관련도 있고 말이다. 그간 너무 외도(?)가 심했는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돌아온 탕자(蕩子)가 되어 볼 참이다. 돌아온 탕자가 올바른 길을 간다는 법은 없지만 말이다.


기실 명색이 경영학도이면서도 내 전공을 조금 업신여겨왔던 거 같다. 수리에 약한 내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구차한 숫자놀음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아주 좋아서 경영학도가 된 것도 아니고 어쩌다가 굴러들어간 것이지만 이 운명 같은 만남을 통해 내 자신이 많이 배우고 성장했음을 이제야 밝힌다. 경제에 미쳐 돌아가는 세상인데도 불구하고 경영, 경제에 대한 이해와 기업인에 대한 합리적 비판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을 좀 더 확장해봐야겠다. 내가 돌아가는 까닭은 한번뿐인 삶을 대충 살지 않기 위해서다. 경영, 경제학적 지식을 좀 더 연마해야겠다. 몰라서 당하기는 싫다. 가령 서울대 박세일 교수는 부유한 국민이 사는 덕 있는 나라라는 “부민덕국(富民德國)”이라는 이상을 제시했다. 나도 실질적 분배를 구현하는 성장전략을 어떤 식으로든 모색해보고 싶다. 부민(富民)은 그 누가 독점하기에는 너무 소중하고 절실한 문제다. 그러나 적어도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외우고 싶지는 않다.


2005년 4월에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11기 3차 회의에서 공개된 북한의 2005년 예산은 북한 돈으로 3,885억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이 미화 1달러에 북한 돈 135원50전 정도의 공식 환율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28억7,000만 달러가 2005년 북한 예산이라고 추정했다. 그 당시 환율 1달러에 1,000원으로 계산하면 한국 돈으로 2조 8,700억원이 북한의 한해 예산인 셈이다. 한국 정부 예산 195조원의 약 1/70 규모다. 2005년도 한국 국방비가 20조8,226억원이었던 것을 따져볼 때 북한의 예산 전액이 국방비에 투입되더라도 한국 국방비의 1/8 수준이라는 점이 충격적이다. 물론 실제로 그렇지는 않고 북한은 국방비가 전체 예산의 15.9%인 618억원(한국 돈 약 4,600억원)을 배정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실제 국방예산은 공개된 것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부의 계산에 따르더라도 북한의 국방 예산은 1조원 이상에 불과해 우리 국방비의 1/10도 안 된다.


북한의 예산체계가 우리의 그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물가도 차이가 난다는 점을 참작하더라도 이 수치는 놀랍다. 왜 훈련소의 정훈 장교는 미군이 없으면 우리가 북한을 이기기 힘들다고 열변을 토했을까. 당최 우리나라 군대는 이 압도적으로 차이나는 예산을 가지고도 북한 하나 이기지 못하는 국방력을 보유하고 있다니 기가 막히다. 물론 공격을 하는 쪽이 방어를 하는 쪽보다 쪽수나 물자가 우세해야 한다는 건 병가의 상식이다. 그런데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을 우리가 먼저 침공할 일도 없을 터이고 방어를 위한 전력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니 통탄할 노릇이다. 이쯤 되면 군 간부들을 대대적으로 문책해야 하는 거 아닌가. 군 장성부터 예비군 동대장에 이르기까지 매일 밤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베갯잇을 물기로 적셔야 하는 게 도리가 아닌가. 여하간 이런 식으로 조금만 유식해지면 사기도 덜 당하고 남 좋은 일을 나 좋은 일이라고 착각하지 않게 된다.


성경에 있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찾아 음미했다. 누가복음 15장 11∼32절에 있는 이 이야기에는 아버지로부터 재산 상속분을 미리 받아 머리 떠났다가 허랑방탕하여 재산을 허비하고 빈털터리로 돌아온 둘째 아들이 나온다. 돌아온 못난 자식을 아버지는 측은히 여겨 달려 나와 목을 안고 입을 맞춘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고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열어준다. 그간 아버지 곁을 지켰던 착실한 맏아들은 “그동안 내 벗들과 즐기라고 염소 새끼도 주지 않으시더니 놀다 온 아들에게는 이렇게 잔치를 베풀어 줄 수 있느냐”며 불평한다. 아버지는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지만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으니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다”며 달랜다. 사실 내가 탕자 흉내를 낸다고는 했지만 묵묵히 실천으로 보여줬던 맏아들의 심정은 충분히 동감할 수 있을 듯싶다.^^;


아버지를 떠날 때는 스스로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돌아올 때는 다시는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탕자의 마음이 되어 본다. 나는 둘째 아들처럼 내 한계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경영, 경제의 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돌아온 탕자의 마음처럼 다시는 내 전공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경영학의 이름으로 기도한다(어느 목사님의 설교문의 표현을 데려와 바꿔봤다). 어쩌면 내 전공은 집 나간 경영학도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축복하기를 빨리 하시는 사랑의 경영학은 인내하심으로 기다리는 사랑, 내 더러움을 개의치 않는 사랑, 좋은 것으로 바꾸어주시는 사랑, 내 방황의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사랑을 주신다. 어찌 아니 경배할 수 있겠는가.


나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다. 이제 경영학 어버이의 품으로 돌아가야겠다. 이제는 경영학의 전능(?)을 뼛속에 새기며 경영학을 나의 지적 스승으로 모시고 경제를 나의 구세주로 믿고 새 인생을 살아야겠다. 내게도 잔치를 베풀어주시리라. 금의환향을 못한 귀거래사일지언정 고향은 언제나 그립다. 돌아가자. 내가 인생길을 잘못 들어 헤맸지만 멀어진 건 아니다. 비로소 지금이 옳고 어제가 그릇됨을 알았기에(實迷塗其未遠 覺今是而昨非). 경영경제宗敎(?)에 귀의하면서 너무 요란을 떨었나.^^; 다시금 강조한다. 몰라서 당하는 게 싫어서 돌아간다. 내 마음의 고향으로. - [小鮮]


혁명적 변화는 사람들에게 영웅적 행위 속으로 개인의 삶을 투척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영웅이 아닌 보통 사람의 경우 일상적 삶에서 잃어버릴 것이 없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발전 단계에 두드러진 것은 일상적 삶의 성장이다. 그것을 넘어, 해야 할 많은 일이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도 이미 얻은 것에 기초하면서 그것을 넘어가는 것이라야 한다. 마르크스적 혁명 이상에 공감했던 프랑스의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성쇠를 지켜보면서 사회 혁명의 바른 방법은 마치 시인이 사실을 비유적으로 변화시켜 원래의 의미를 확대하듯이 사회가 드러내주는 사실 자체의 성격에 충실하면서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 우리의 과제는 현실의 핵심적인 사실에 충실하면서-이 현실이 사람의 삶의 기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그것을 보다 온전한 것으로 바꾸어 가고, 그것을 보다 나은 다음 단계로 유도해 가는 것이다.
- 김우창. “[시대의 흐름에 서서] 정치와 일상적 삶” 경향신문. 2006. 06.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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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를 처음 익히던 시절

경제 2006. 5. 16. 01:47 |

2003년 2학기에 들었던 통상정책 중간고사 서술평 문제를 대비한 답안정리다. 그 때는 즐겁게 배우고 앞으로도 관심을 갖자고 해놓고서 그간 신경을 못 썼다. 한미 FTA가 화두로 떠오른 요즘 WTO를 처음 익히던 그 시절을 추억한다.

 

<WTO협정의 구성내용 및 GATT와 대비한 WTO의 주된 특징을 설명하라>

2차 세계대전 후 세계무역 체제는 다자간 무역협상기구인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체제 아래서 운영되어 왔다. WTO(세계무역기구)는 전후 약 50년 간 세계무역을 주도 해왔던 GATT체제의 발전적 해체로 등장하게 되었다. WTO는 기본적으로 전신인 GATT의 기존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국제교역환경의 변화에 따라 부상한 새로운 교역과제를 포괄하고 회원국들의 무역관련 법, 제도, 관행 등의 명료성을 제고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세계교역을 증진시키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최종의정서에 회원국들이 서명함으로써 정식 체제를 갖추게 된 WTO 협정은 이 최종의정서의 부속서로서 많은 세부협정들을 포함하고 있다. WTO 협정문은 회원국들의 무역관련 활동에 대한 공통의 제도적 틀을 제공하는 WTO 설립협정과 분야별 제도적 틀을 제공하는 부속서들인 다시 17개의 다자간 무역협정(MTA)과 4개의 복수간 무역협정(PTA)들로 구성되어 있다.


다자간 무역협정은 WTO 협정의 일부로서 모든 회원국에게 적용되며, WTO 설립협정의 부속서 1에서 3까지 규정되어 있다. 부속서 1은 다시 그 성격에 따라 3개로 나뉘어 부속서 1A는 상품무역에 관련된 협정으로서 GATT 1994, WTO로 복귀하는 협정, 도쿄라운드 MTN 협정 중 다자화된 분야, UR 협상을 통해 새로 도입된 협정 등으로 구분된다. GATT 1994는 GATT 1947과 UR 협상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각서와 부속 협정에 의해 개정된 것을 말한다. WTO로 복귀하는 협정으로는 농산물 협정과 섬유 협정을 들 수 있다. 이는 GATT 규정의 폭넓은 예외조치를 인정받은 이 두 분야를 UR 협상의 주요의제로 삼아 WTO 체제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도쿄라운드 MTN 협정 중의 일부를 다자화시킨 것으로는 수입허가절차, 관세평가, 보조금 및 상계관세, 반덤핑, 기술장벽 등 5개 분야를 말한다. UR 협상을 통해 새로 도입된 협정으로는 위생 및 검역조치, 무역관련 투자조치, 선적전 검사, 원산지 규정, 긴급수입제한조치 등이 있다.


부속서 1B는 서비스무역에 관한 협정(GATS)이며, 부속서 1C는 무역관련 지적재산권협정(TRIPs)을 정하고 있다. 부속서 3에는 분쟁해결규칙 및 절차에 관한 협정(DSU)를 담고 있어 GATT 체제에서 명확한 분쟁해결 절차가 없던 것을 보완하고 그 권위를 대폭 확충, 강화했다. 부속서 3에는 무역정책검토제도(TPRM)가 있어 각 회원국의 무역정책과 관련제도 및 관행을 정기적으로 평가하는 내용을 포함한다. 복수간 무역협정을 정하고 있는 부속서 4에는 민간항공기 교역, 정부조달 협정 등이 있는데 이에 속하는 협정들은 이를 수락한 회원국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실질적으로 WTO 협정과는 별도로 독립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GATT와  WTO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면서도 양자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주요 차이점을 대비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GATT는 임시적 성격의 국제협정으로 국제기구로서의 법인격을 갖추지 못한 임시 사무국의 성격을 가진 불완전한 체제였다. 이러한 이유는 ITO의 성립에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WTO는 항구적이고 법인격을 갖춘 국제기구이다. 모든 회원국은 WTO 규정을 비준하는 법적 절차를 거침으로써 WTO는 법인격을 갖춘 실체로서 그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둘째, GATT가 관세인하에만 주력했다면 WTO는 관세인하 외에 특정 분야에 대한 무관세화와 고관세 품목의 관세완화 등 다양하고 큰 폭의 관세인하를 진행시킨다. 또한 WTO에서는 GATT에서 선언적 규범정립에 그친 수량규제 같은 비관세장벽 철폐를 강력히 추진한다.


셋째, 관할범위에서 GATT는 상품무역에 한정하고 있지만, WTO는 농산물과 섬유는 물론 무역관련 투자, 서비스, 지적재산까지 포함하는 매우 포괄적인 관할범위를 갖고 있다. 이는 세계의 경제 및 무역환경의 급변에 맞춰 새로운 이들 분야들의 거래에 관한 국가 간의 질서를 확립해야 할 필요성이 증대되었기 때문이다.


넷째, WTO는 분쟁해결방식도 과거보다 훨씬 신속하고 강력하게 되었다. GATT에서는 무역분쟁에 대한 권고안만 제시했지만 WTO에서는 분쟁해결을 위한 협정이 제정되고, 상설 분쟁해결기구(DSB)와 상소기구를 설치해놓고 있다. 또한 분쟁해결의 단계적 절차와 이행기간이 명료화하였으며, GATT에서의 합의제와는 달리 역총의제를 통해 DSB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또한 WTO에서는 교차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함으로써 분쟁기구의 결정사항이 용이하게 집행되도록 하고 있다.


WTO의 목표인 자유무역과 다자통상체제는 명목상으로 약소국들에게도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강대국들의 영향력이 막강하며 실제로 미국은 자국에게 유리한 분야를 의제로 채택하려고 시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여러 요직에 자국의 인물들을 앉혀 놓기도 하는 등 강대국들의 입김은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WTO가 GATT보다 더 강력하게 무역질서를 정착시키기 위해 탄생한 것이라면 보다 강력한 위상을 가진 국제기구로서 개도국에 대한 무역 강대국의 일방적인 무역제재조치 같은 횡포를 제지할 수 있는 독립적이고 공정한 기구로서 거듭나서 모든 회원국들의 권익을 도모하는 데 이바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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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경영학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지금보다 더 모르는 것이 많았던 대학교 새내기 시절 경영학원론에 해당하는 현대기업경영이라는 강의를 들었다. 재무관리 부분 강의에서 장하성 교수님의 Korea Discount에 대한 논문을 접했다. 재벌구조에 대한 많은 논란 중에 아직 어느 것이 더 적절한지 잘 모르겠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그러나 장하성 교수님의 논문을 접하고 감명을 받을지라 그쪽에 무게중심이 더 있음도 솔직히 고백한다. “기업 지배구조는 단순한 경제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기업가치와 자본의 효율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구절에서 얼마나 가슴이 시렸던가.


Korea Discount는 한국기업의 주식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현상을 말한다. 장하성 교수님의 [Korea Discount와 기업지배구조] 논문을 소거법의 전개로 정리해봤다.


1) 할인율은 기업의 자산이나 이익에 내재된 위험을 반영한 것이다. Korea Discount는 우리 기업이 다른 경쟁국가보다 높은 위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것을 말한다. 국제간의 기업가치의 평가에 반영되는 위험은 크게 국가위험, 산업위험, 그리고 기업위험이 있다.

2) 국가위험이 높기는 하지만 국가신용등급이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저평가되고 있지는 않다. 산업위험은 우리나라의 산업구조가 다른 나라보다 더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볼만한 근거가 없다. 따라서 우리기업의 저평가 현상은 기업차원의 위험에서 찾아야 한다.

3) 기업위험은 영업위험, 재무위험, 기업지배구조위험이 있다. 이익의 변동성이 큰데서 비롯되는 영업위험과 부채비율이 높은데서 비롯되는 재무위험이 특별히 더 크다고 볼만한 근거가 없다. 따라서 기업경영의 투명성 및 책임성과 관련된 기업지배구조 위험을 검토해야한다.


최근에 삼성경제연구소에서 Korea Discount는 실체가 없으며 기업지배구조 때문이 아니라 “낙후된 회계관계, 부적절한 시장개입, 부패 등이 신흥시장국에 공통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국내적으로는 안보위협, 정치적 불안, 소모적 노사관계, 투자부진에 따른 성장탄력의 둔화 등에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보고서를 냈다. 아울러 한국적 환경에서는 소유-경영 분리의 영미식 지배구조보다는 지금 같은 오너 경영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너무 일방적으로 재벌기업들을 옹호하는 듯한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 성과가 달갑지 않다고 해서 곡학아세(曲學阿世)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삼성경제연구소 같은 훌륭한 연구소에서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에게 쓴소리도 시원하게 하는 것을 너무 보기 힘들다는 아쉬움이 든다.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기업지배구조 문제 제기에 사측에서 “순이익 100달러의 실적을 거둔 기업의 지배구조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연구의 대상”이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자부심의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잘나갈 때일수록 경계하고 혁신하는 것을 모를 이 없을 것이다.


그간 Korea Discount의 대표적 원인으로 지적된 열악한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재별개혁이 당위적으로 받아들여진 감이 없잖아 있다.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되어 경영 투명성이 높여 기업가치를 올리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절대적 수단은 아닐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지적대로 글로벌 스탠더드랍시고 받아들인 각종 제도와 기준이 절대선은 더더욱 아니다. 최소한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없는 부정, 부패, 비리가 없는 선에서 한국식 지배구조를 모색해볼 필요도 있다(이 대목은 이필상 교수님의 강의에서 따왔다). 기업지배구조에는 명확한 해답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업지배구조는 소수 지배주주의 독단적 결정이 아니라 전체 주주가 참여하는 의사결정으로 바뀌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이 변화가 너무 더디다고 뾰로통하지만, 변화를 감내하는 기업들은 적잖이 곤란할 것이다. 게다가 기업의 항변대로 Korea Discount는 기업만의 탓도 아닐 공산이 크다.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와 행정 전반에 걸쳐 투명성과 효율성 제고에 힘써야 한다. 정부기관, 공기업들은 나몰라라하면서 애꿎은 민간기업만 선진화된 기업지배구조를 강요하는 것은 볼썽사납다.


비단 기업지배구조뿐만 아니라 시야를 넓혀 사회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장의 룰에 따라 공정한 경쟁을 하는 것이 그 핵심이 될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정부 정책이 일관성 있게 진행되어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하며, 정치권도 경제권력과의 유착을 끊고 경제에 대한 안목을 키워나가야 한다. 우리가 일한 만큼의 제 값을 받기 위해 모든 경제주체들의 지혜를 모아 다방면으로 궁리하고 힘쓸 때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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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이 그들의 나라에서 왕이 되지 않는 한, 또 반대로 왕 또는 지배자로 불리는 이들이 실제로 지혜를 사랑하지 않는 한, 즉 정치 권력과 철학이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 한, 국가에 있어서 인류에 있어서 나쁜 것들이 종식될 날이 없을 것이다”


그 유명한 플라톤의 철인군주론이다. 플라톤이 실제로 정치적 야심을 품고 왕이 되고자 직접 거사를 도모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제자들은 자못 답답한 마음에 물어왔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스승께서는 그토록 권좌에 집착하십니까?”라고 말이다. 플라톤의 대답은 간단했다. “나보다 못한 놈들이 나를 다스리는 것을 참을 수 없으니까.” 대철학자의 자부심과 안타까움이 묻어 나오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여기저기서 흔들기를 하고 있을 때 유시민 선생이 칼럼니스트 활동을 접고 절필을 선언한 일이 있다. 경기장에 반칙이 횡행하는데도 심판이 그것을 묵과하거나 오히려 반칙한 쪽은 편드는 일이 반복되는 데 해설자 노릇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떳떳하게 경기하는 선수가 발길에 채이고 밟히고 모욕당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분노는 많은 이들을 공감시켰다. 그는 결국 반칙하는 선수를 규탄하는 관중을 조직하는 데서 나아가 선수로서 경기장을 누비고 있다.


플라톤이나 유시민은 대리인비용(agency cost)을 치르는 것이 버거워 본인이 주체가 되기로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M.jensen & W.Meckling은 1976년의 논문에서 법인세나 개인소득세 등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에도 대리인비용의 존재로 인하여 기업의 최적자본구조가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재무학 관점에서 보면 자기자본의 대리인비용과 부채의 대리인비용의 합인 총대리인비용이 가장 작아지는 부채비율이 존재하며 이 지점에서 자본비용을 극소화하고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는 최적자본구조가 되는 것이다.


모든 인간들이 이기적이라는 경영/경제학적 가정에 기반을 둔다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익이 극대화가 되도록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기업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이해관계는 항상 일치될 수 없다. 주주와 경영자, 주주와 채권자 등의 관계에서 이해관계가 상충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대리인문제(agency problem)라고 한다. 주주와 채권자간에 발생하는 대리인문제의 경우는 채권자는 대리인문제를 감안해서 높은 이자율을 매길 수 있으므로 결국은 기업과 주주가 손실을 부담하게 된다. 결국 대리인문제는 불특정 다수인들로 구성되어 비교적 약자의 입장에 있는 주주들에게 가장 치명적이다.


M.jensen & W.Meckling은 대리인문제와 관련하여 발생되는 모든 비용인 대리인비용을 다음 세 가지로 분류했다(정확히 말하면 ‘자기자본의 대리인비용’이다). 감시비용(monitoring cost)은 대리인의 행위를 직접 감시, 감독하는 데 드는 비용뿐만 아니라 일의 성과에 대한 평가비용, 합리적 보상체계와 유인체계의 도입비용, 기회주의적 행위의 제재비용 등을 말한다. 보상유인정책(incentive system), 예산통제시스템의 설정 등이 그것이다.


확증비용(bonding cost)은 대리인이 스스로 기회주의적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물적, 인적 보증을 하는 비용을 말한다. 즉, 대리인이 주인에게 해가 되는 행위를 하지 않고 있음을 확증하기 위해야 대리인이 부담하는 비용을 말한다. 주인의 이해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제약하고, 위반시의 벌칙을 약속하는 행위, 회계감사를 받아 영업보고서를 공시하는 경우 등이 그것이다.


잔여손실(residual cost)은 감시비용과 확증비용의 지출에도 불구하고, 대리인의 의사결정이 주인의 최적의사결정과 일치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주인의 부의 감소를 말한다. 감독과 보증노력을 하고 나서도 남는 비효율과 낭비로서 대리관계로 인한 생산의 감소 혹은 주인의 효용 감소라고 볼 수 있다.


보통의 합리적 인간이라면 대리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감시비용과 확증비용을 지출하려고 노력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감시비용과 확증비용은 말 그대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대리인의 기회주의적 행위를 원천봉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인과 대리인, 즉 주주와 경영자가 똑같이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경영자가 주주 부의 극대화를 이룰 수 있다는 완전자본시장의 이데아는 희망사항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결국 일정 정도의 잔여손실은 불가피한데 이에 대한 개개인의 판단도 다를 것이다.


잔여손실에 대한 내성(耐性)의 정도를 ‘잔여손실내성도’라고 명명해본다면, 플라톤의 거사나 유시민의 절필은 자신의 잔여손실내성도를 넘어섰기 때문에 더 이상 대리인비용을 치르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직접 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어련히 알아서 잘 했으면 비용도 조금만 지출하고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재미나게 보낼 수 있는 것을 원체 죽을 쑤고 있으니 참다 못해 내 손으로 하는 것이 손실을 줄이는 방책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모든 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이 일정 기간 동안 위임해준 것이다. 주인인 국민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정치권력, 경제권력, 문화권력은 감시비용과 확증비용을 현격히 높이다가 궁극적으로는 잔여손실을 증대시킨다. 사람마다 잔여손실내성도는 다르겠지만 대리인들의 삽질이 계속되면 될수록 대리인들을 퇴출시키고 자신이 직접 나서는,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다른 대리인을 내세우려는 유인이 커진다. 자신의 잔여손실내성도를 넘어섰을 때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이 상도덕을 바로 세워 짭짤한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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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에 들었던 통상정책 중간고사 서술형 문제 중의 하나가 “한국의 농업개방문제에 대해 현황, 논쟁, 대안 등을 논하라”였다. 문서 정리를 하던 중 그 때 쓰려고 작성해둔 답안지를 발견했다. 요즘 새터 준비를 핑계로 업데이트도 부실한 터에 글 이게 웬 떡이라며 반기며 싣는다.^^


2003년 10월15일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제5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공동 선언문을 채택하지 못한 채 폐막되었다. 비록 이번 WTO 각료회의가 결렬되었지만 이번 회의에서 한국 농업의 대폭 개방을 불가피하게 만든 초안이 마련됐고, WTO 또한 협상 타결 의지를 강력히 표명하고 있다. 3년 간 진행되는 DDA 협상의 한 과정에 불과한 칸쿤 회의가 끝났을 뿐 DDA 전체 협상이 무산될 가능성은 희박하며 농산물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하하고 저율관세 의무수입량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농업개방의 원칙이 조만간 채택될 것이다. 앞으로 DDA 협상이 계속되어도 한국에게 불리하게 정해진 조항들이 뒤바뀔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국 국내 농업의 전면적인 개방은 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단계적으로 농산물 시장을 개방할 수 있게 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끝난 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정부는 1994년 이후 지난해까지 농업 부문에 71조8000억원의 어마어마한 예산이 투입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농업 현실이 변하지 않은 것은 정부가 농업경쟁력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서 구조개선 사업에 역점을 두기보다는 단기적인 부채탕감과 소득을 보전해주는 등 소비성부문 예산에 낭비해 버리고 만 것이다. 10여 년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 농산물 시장개방에 따른 피해액이 1995~2004년의 10년 간 총 1조6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바 있는데 기초적인 산수감각만 있으면 시장개방을 막고 대응하느라 든 비용보다 활짝 열었을 때의 비용이 훨씬 적게 들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누적된 농정실패가 엄청난 손실을 유발한 것이다.


현재 농민들이 쌀 농사로 벌어들이는 소득이 47%에 달한다고 한다. 이 주된 돈벌이마저 농산물 시장 전면 개방으로 흔들리게 되는 것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DDA 농업협상이 지난 회의에서 논의된 의장 초안을 토대로 타결될 경우,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농업부문의 총소득은 15조원에서 9조원으로 감소하고, 자연감소분을 제외하고도 농업취업자 25~5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런 당장에 농민들이 입을 피해와 더불어 식량안보론도 농산물 반대입장의 주요 논거가 된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곡물자급도가 30%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주곡인 쌀만 100% 자급하고도 남아 재고가 늘고 있을 뿐, 대부분의 다른 곡물의 자급도는 5%도 안 되는 심한 불균형 현상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서 더욱 낮아진다면 국제적 식량상황이 급변할 때 어떻게 생존권을 지킬 수 있겠느냐고 항변한다. 또한 세계 총곡물 교역량의 85% 가량을 취급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곡물메이저에게 우리의 밥상을 편안히 맡겨둘 수 없다는 주장도 무척 설득력 있다. 또한 100년 이상부터 산업화가 착착 진행되어 농업구조조정을 순차적으로 할 수 있어 그 충격을 완화했던 선진국들과는 달리 급속한 산업화를 이룩한 우리는 그런 완충 작용을 노릴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기 때문에 조정기간 내지 유예기간을 더 얻어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사정을 들어 개도국 지위를 포함한 유리한 조건을 얻으려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본위의 생각일 뿐이다. 한국만큼 자유무역체제의 은혜를 입은 나라도 찾기 어렵다고들 한다. 썩 만족스럽지는 못해도 지난날의 헐벗고 굶주리던 것을 확실히 벗어 던지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까지 가입하며 제법 멋을 내고 있는 것도 수출해서 부를 축적한 덕분이다. 우리는 국내총생산(GDP)의 70% 이상을 무역에 의존하고 있고 앞으로도 경제성장에서 가장 큰 부분을 수출이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실에서 WTO와 같은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다자통상협상은 우리에게 남는 장사다. 합리적 경제주체간의 협상은 상호간에 주고받는 공생관계를 지향하는 것이지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기생관계로는 성립할 수 없다. 10년 전의 개도국 타령을 또 한 번 우려먹는다면 무슨 염치로 우리 상품을 세계에 팔 것인지가 걱정이다.


설혹 다자협상인 DDA가 무산된다고 해도 한국 농업은 개방에서 예외일 수 없다. 미, 중 등과 개별적으로 양자협상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즉, WTO라는 울타리에서 집단적으로 개방협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 EU 등 우리보다 협상력이 강한 국가와 일대일 대결을 벌이는 것이 더 힘든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또한 식량안보론도 실제보다 과장된 측면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식량을 무기로 삼는 일은 너무나 비윤리적이어서 오히려 그 가능성을 줄인다고 생각된다. 식량 수출국인 북미와 호주, 유럽 등지의 안정되고 높은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나라들에서 식량을 무기로 삼으리라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이 밖에도 세계의 농업시장은 팔려는 사람이 사려는 사람보다 많은 ‘구매자 시장’이라는 논거를 들 수 있다. 또한 농업은 공업보다 기반을 복구하기가 훨씬 쉽고 간단해서 버려진 논밭은 종자만 잘 보관하고 있다면 한두 해 안에 그럭저럭 복구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남의 선의(善意)에 제 목숨을 걸어두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농산물 수입자유화는 분명 식량 수입국에게 어떤 식으로든 불리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식량 수출국의 식량의 정치적 이용가능성과 세계 식량생산의 불확실성이 만의 하나 존재한다면 그러한 비상사태를 대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을 대비한 지출을 아까워하기보다 식량대란이 야기되지 않도록 예의 주시해야 한다. 아무리 개방이 되더라도 우리 농업을 적정 수준 개발하고 보존하는 것이 진정 국익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협상은 그것이 어떤 형식이든 상호주의에 입각하는 바, 우리의 농산물시장을 방어하는 것은 우리의 자유이나 그럼으로써 우리가 포기하고 감수해야 하는 것도 우리의 선택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선택은 농업 시장을 어느 정도까지 개방하느냐 정도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에 대비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다. 세계 모든 국가가 자국 상품의 수출을 증대시키기 위해 FTA를 확대하고 있는데 한국은 WTO회원국 가운데 FTA 하나 체결하지 못한 6개국 중 하나이다. 한-칠레 FTA법안 비준은 물론, 다른 나라와의 FTA 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우리 수출상품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또 교역상대국의 보호장벽이 낮아지는 만큼 우리 농산물도 특화하여 수출할 수 있는 기회가 커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가령 최근 추진되고 있는 한-일 FTA의 경우 농산물 분야에서 4억 달러의 흑자가 예상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국내농업의 생산성 향상과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와 노력을 더욱 촉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로, 농업 개방이 전체적 사회적 후생을 증가시킬지라도 단기적으로 발생하는 역진적인 소득재분배와 이로 인한 사회적 형평성의 문제를 최소화시켜야 한다. 개방으로 인한 이익을 손해를 보는 저소득 농가에게 보상하고 재분배시키려는 제도를 마련하지 않는 한 농업 보호에 대한 요구는 가라앉지 않을 것이며, 강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 이들에게는 소득보전직불제, 재해보험제도, 상시적 경영회생 지원제도 등의 안전판을 확충해주고, 농업을 포기하거나 전업하려는 이들에게도 생계를 위한 충분한 보상책을 마련해서 농민들의 불만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


셋째로, 농외 소득기반을 늘려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조업, 서비스업과 연계한 시장 개척을 해서 농외소득을 실현해야 한다. 민속주 생산 농가들이 중국, 일본과 공동 수출을 추진하는 것이나 도시와 농촌을 연계해 관광 산업을 육성하거나 도시민의 실버타운을 개발하는 등 농촌 서비스업을 육성하는 것이 그 예이다. 주5일 근무제와 같은 여가수요의 확대,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농촌다움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 전국 곳곳까지 깔려있는 도로망 등은 농촌에 사람과 자본을 끌어들여 이를 소득원화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최근 정부가 시도한 300평 이하 주말 농장용 농지에 대한 비농업인 소유 허용, 농촌주택에 대한 1가구 2주택 양도소득세 면세조치 등은 도시자본의 농촌 유입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넷째로, 농업이 가지는 비교역적 기능의 급격한 감소를 막고 유지발전 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즉 식량안보나 국토의 균형발전, 환경보존과 정신적,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능을 위해서 장기적으로도 일정 수준의 국내농업생산이 필요하다. 경제적 효율성 증대만큼이나 비교역적 기능을 확보하는 것이 국익을 일환이라고 생각된다. 산업에도 포트폴리오 개념을 도입하여 논에 대한 규제를 풀어주되 유사시 즉각 쌀 생산이 가능하도록 일정 부분은 논의 형태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곡물자급도의 목표치를 설정해 이를 법제화시켜 농업의 급격한 붕괴를 막아야 한다. 실제로 우리와 농업 형편이 여러모로 유사한 일본의 경우 식량자급율의 목표치를 설정해 이를 법제화했다.


농업 개방에 찬성하지만 비교우위의 역동성과 계량모델상의 증명만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처사다. 앞으로의 협상에서 우리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노력하되 우리 농민들이 입는 손해를 국민 전체가 분담하는 데 인색하지 않겠다는 여론 형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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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과 효용

경제 2004. 1. 2. 01:09 |
친구의 누리집을 들렀다가 지난 학기 강의에서 배웠던 내용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었다. 통상정책 강의 시간에 나왔던 이야기인데, 경영, 경제분야와 인문, 사회분야간 사고의 차이점에 대한 것이다. 바로 한계를 고려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차이를 말한다. 즉, 경영, 경제가 제약조건을 따지고 분석하는 반면, 인문, 사회분야는 당위성을 역설하면서 현실을 바라보고 바꾸려는 노력을 한다는 기본적인 발상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무리한 일반화의 혐의를 완전히 걷을 수는 없겠지만 일면 타당한 구분일 것 같다. 얼치기 경영학도로 살면서 귀가 못이 박히게 듣고 마음에 쑤셔 넣었던 것이 바로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 비용과 효용의 분석문제이기 때문이다. 가령 기초적인 회계원리를 꺼내보면 재무제표 정보의 제공에 대한 제약요인으로 특정 정보로부터 기대되는 효익은 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하여 소요되는 비용을 초과해야한다는 ‘효익과 비용간의 균형’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물론 효익과 비용의 평가는 잣대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고, 효익향유자와 비용부담자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문제 등이 비일비재하다보니 효익과 비용의 비교분석은 경영학의 주요 탐구 과제이다.


지식인들이 흔히 어떤 사회적 현안을 논하면서 심심치 않게 하는 말이 “비용이 얼마나 들던 간에...” 등의 표현이다. 내 주제에 경영학 물은 먹었다고 이런 말을 들으면 이제는 적잖이 불편하다. 비용이 얼마나 들던 간에 무조건 해야하는 일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용을 들인 만큼 효용이 창출되지 않는 것에 투자를 한다는 것은 합리적 효용함수를 가진(비록 이래저래 제한되기는 하지만...) 인간을 기만하는 처사다. 물론 사람 사는 세상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최소한의 가치들은 상당한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그러나 이 비용 지출도 어디까지나 장기적 효용을 꾀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누구도 타인에게 손해보는 장사를 지속하게 할 권리가 없다. 물론 그 장사가 상도덕에 지키고 있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었을 경우에 말이다.


자유, 평등, 정의, 평화, 물질적 복지, 사회적 안전, 쾌적한 환경... 이러한 가치들은 따로 떨어뜨려 놓아도, 이런저런 조합을 해놓고 보아도 좋은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가치들이 실현되어 우리네 살림살이가 나아지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그 비용조달에 대한 고민을 없이 비용을 들여 이룩할 효용에 대한 찬사만 늘어놓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무책임한 행동이다. 이상적 가치들은 저마다 군침이 돌지만 그걸 다 한상차림할 수 없는 우리의 형편을 직시해야 한다. 아마 한상차림할 수 있는 나라는 당분간, 어쩌면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원칙과 당위를 역설하는 나 같은 사람들은 이미 생존경쟁 체제에서 자기위치를 굳힌 사람들이다. 즉, 대학교수나 언론인들이 아름다운 원칙을 역설하는 것으로 인해 자신이 손해 볼 일은 전혀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존경까지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말에 감동해 그 말을 그대로 실천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다.

나의 고민은 지식인의 책임에 관한 것이다. “내 주장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건 이루어지지 않건 그건 중요치 않다. 나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원칙만을 역설할 뿐이다”는 게 많은 지식인들이 갖고 있는 자세일텐데, 과연 이러한 자세에 문제는 없는가 하는 것이다.
- 강준만, 한국일보 2002년 9월 17일, [더러워져야 성공한다] 中


진중권은 강준만의 칼럼을 평하며 당위론자들에 대한 낡은 비난에 남에게까지 “큰 손해”를 입힌다는 새로이 죄목이 하나 더 첨가된 것이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원칙과 당위"의 피해자들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정성’을 기치로 내걸고 등장했던 강준만이, 그 글쓰기의 끝에서 결국 ‘우리 모두 공정하게 더러워져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을 보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이다. 반은 더럽고, 반은 깨끗한 사회에서, 모두 함께 더러워지는 것이 공정성이라고 한다면, 과연 그 공정성이 도대체 이 사회에 무슨 도움이 될까?
- 진중권, 오마이뉴스 2002년 9월 18일, [더러워져야 한다?] 中


두 논객이 입장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 논쟁의 핵심은 ‘실현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실현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현실주의자의 독차지가 아니라 오히려 이상주의자들이 더 신경을 써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실현가능성의 재는 척도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비용의 측정과 조달의 문제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비용의 문제를 외면하는 이상주의자 내지 개혁, 진보 진영은 현실주의자들에게 현실세계의 헤게모니를 넘겨주는 것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 또한 일부 제 잇속에 눈이 먼 수구 세력들은 기본적인 상도덕(혹은 정의)를 깡그리 무시함으로써 일부 극단적 이상주의자들이 목청을 높이게 만든다. 강준만의 표현대로 두 극단주의자들은 ‘적대적 공존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다. (이는 인물과 사상 25권 278쪽의 내용을 참조했다) 이러한 적대적 공존관계는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게 만든다.


솔직히 난 아직도 비용 따위의 형이하학적이고 구질구질한 문제들을 내팽개치고 맛깔스런 효용만을 노래하는 레토릭의 근사한 매혹을 완전히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아마도 나는 얼치기 경영학도로만 머물 것 같다. 그러나 당위성에만 집착한다고 구박받고 돈도 못버는 학문이라며 외면 받는 인문, 사회분야를 과도하게 몰아붙일 만큼 우리 사회는 아름답고 살맛 나지 못하다. 세상 모든 학문은 결국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방법론이 옳다고 믿고 사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남의 방법론은 글러 먹었다며 핏발 세우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불가에서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고 하듯이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결국 같다. 살림살이 나아지기 위해 경영학에서 출발할 수도, 철학에서 시작할 수도, 물리학을 딛고 있을 수 있다. 그 차이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 나도 다른 길을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만큼, 비용을 따지고 제약조건을 궁리하는 내 길의 소중함을 옹호해야겠다. - [憂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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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수요일날 중간고사가 있는 통상정책과 정치학원론의 방대한 학습분량 앞에서 잠시 넋을 놓고 있을 때 후배님께서 이번 세계경제와 기업 과목의 시험문제인 ‘미국의 신경제 논쟁이 우리의 부동산 열기에 주는 시사점을 논하라’ 비슷한 물음을 들고 왔다. 세상에나 무늬만 경영학도로 악명이 높은 나에게 질문을 던지다니...^^; 다행스레 나도 작년에 똑같은 교수님께 같은 강의를 들었던 터라 그 때의 기억들을 쥐어 짜내 몇 마디 던져주었다. 뒤늦게 옛날 공책을 찾아보니 그 때 썼던 필기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걸 진작에 발견해서 후배님들께 전수했으면 좋았을 것을 안타깝게 되었다. (후배님들 시험 잘 치르셨기를...^^)


작년에 들었던 세계경제와 기업 강의의 중간고사 문제 중의 하나가 ‘90년대 후반이 논란이 된 신경제론에 대해 설명하라’였다. 당시에 다음과 같은 모범답안을 작성해 놓은 것을 달달 외워 토씨 몇 개만 빼놓고 그대로 옮겨 적었다.^^


미국의 신경제(New Economy)란 지식의 축적, 기술 변화의 가속화 등 노동, 자본이 아닌 새로운 생산요소에 의해 고성장, 저실업, 저물가를 동시에 유지한 것을 말한다. 전통적 필립스 곡선에 대한 이론이 90년대 미국 경제에서 깨어지게 된 것이다. 90년대 미국은 획기적인 과학기술의 발달이 막대한 수익을 가져옴으로써 혁신에 대한 투자를 더욱더 가속화시키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기존 금융시장에서 다루기 힘들었던 High risk, High return 산업을 위한 자본을 형성하기 위한 금융기술 역시 맞물려 발달하였고, 이는 전세계의 자본이 미국으로 몰려드는 계기를 만들었다. 또한 제품을 생산함에 있어서 세계를 상대로 판매하기 시작하는 세계화의 흐름까지 맞물려 이것들이 다시 새로운 혁신과 고생산성을 낳게 된다. 즉, 기술혁신, 금융개혁, 세계화는 신경제의 3대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기가 좋다는 것은 투자와 소비가 높다, 즉 수요가 많기 때문에 외국에서 물품을 수입해 오게 되고 수출보다 수입이 많아져 경상수지가 악화된다. 미국의 신경제 또한 경상수지 악화라는 아킬레스건이 존재했고, 자산효과로 말미암은 거품이 2000년대 경제불황을 어느 정도 유발했다고 볼 수 있다.



‘필립스 곡선’은 실업률이 일정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임금이 오름을 보여주는 그래프로 임금상승률은 물가에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은 반비례의 관계에 있다는 설명이다. ‘High risk, High return 산업을 위한 자본을 형성하기 위한 금융기술’이란 한마디로 벤처캐피털을 의미한다. 벤처캐피털은 벤처기업의 기술과 아이디어, 장래성만을 믿고 담보 없이 투자하는 기업이나 그러한 기업의 자본을 말한다. 무담보이기 때문에 실패하면 한푼도 건지지 못하지만, 기업이 성공할 경우 투자 원금의 수십 배까지도 건질 수 있는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의 원리를 따르는 사업인 것이다.


또한 ‘경상수지’는 흔히 ‘무역수지’와 혼동해서 잘 쓰이는데, 무역수지는 상품의 수출입에 의한 외환이동의 차액을 나타내는 수지이며, 경상수지는 무역수지를 포함한 기타 모든 외환의 이동을 고려하여 그 차액을 나타내는 수지이다. 만일 수출입에서 흑자가 나더라도 무역외수지의 하나인 해외여행비 지출로 인한 적자가 그 차액보다 큰 적자를 보았다면 무역수지는 흑자가 되지만, 경상수지는 적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국제수지’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경상수지와 자본수지 등으로 구성된다. 경상수지는 앞서 말했듯이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한 대외교역 즉 수출입 차액을 나타내는 수치이며 자본수지는 경상수지 외에 직접투자와 간접투자 등에 의한 대외투자금액의 차액을 나타내는 수치이다. 하여간 정리하면 ‘국제수지 > 경상수지 > 무역수지’의 관계가 된다. 에구에구...^^;


마지막으로 ‘자산효과(Wealth Effect)’란 서류상 이익으로 부유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효과를 말한다. 자산이란 미래의 경제적 효익을 가져다 주는 재화로서 주식, 부동산이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자산효과란 갑자기 집 값, 주식 값이 오르면 소득은 변화가 없어도 상대적으로 소비, 지출을 많이 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가령 자기가 사는 집 값이 오르면 부동산 가격 상승 분이 현금으로 굴러 들어온 것도 아닌데 돈을 벌었다는 느낌을 가지면서 소비를 늘리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실질소득은 변화가 없는데 소비가 증가하는 거품현상인 것이다. (나처럼 경제원론의 악몽에 시달렸던 기억이 있으시거나 경제 분야에 지식이 잘 없으신 분들을 위해 용어들을 설명했다)


하여간 미국의 신경제를 한 쪽에서는 거품이라고 폄하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고 있다. 최근 들어 미국 경제가 주춤거리고 있지만 미국은 정보혁명의 파급효과를 경제전반의 생산성 향상 및 효율 증대로 연계시켜 성과를 거둬 성장잠재력 제고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여전히 풍부한 지적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경제 근본구조의 저력은 무시할 수 없다. 신경제 논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아마도 미국 경제의 향방이 어느 한쪽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잘되면 충신, 못되면 역적’이라는 세상이치를 경제상황을 분석하고 이를 진단해서 내놓는 경제학에서는 참 잘 써먹기 때문이다.


신경제 예찬론자들은 장기간 호황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 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주장은 전통 경제학의 틀 속에 갇힌 고루한 분석일 뿐이라고 말한다. 성장과 침체를 반복하는 경기변동의 개념도 사라졌으며 생산성 향상에 바탕을 둔 고성장인만큼 물가상승이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그러나 미국 경제가 비틀거리면서 비판론자들은 신경제 역시 성장과 침체를 반복하는 전통 경제학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미국은 이전에도  신경제 현상과 비슷한 높은 생산성 증가율이 있었다는 선례들을 들어 아직까지 신경제가 일시적인 현상인지, 획기적으로 새로운 현상인지는 결론 내릴 수 없다고 외친다. 아무래도 미국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고 하는 만큼 거품론에 무게중심이 쏠리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강한 달러정책을 포기한지 오래인 미국은 어쩌면 신경제의 일정정도의 거품을 스스로 시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1995년 역플라자 합의를 통해 구축된 강한 달러 가치는 미국으로 해외자본이 유입되게 해주었고 이로 말미암아 미국 주가상승과 금리하락을 낳았다. 이렇게 경기가 좋아지자 자산효과로 인한 소비증가와 투자증가로 이어졌고 이러한 수요 증가에 따라 수입이 늘어나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되게 되었다. 이를 통한 세계의 동반 성장이 미국이 말하는 금융중심의 성장 패러다임이었는데 이것을 미국이 포기한 것이다. 여기서 역플라자 합의란 ‘플라자 합의’의 반대되는 성격이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플라자합의란 80년대 엔화대비 달러 가치가 치솟자 선진국 재무장관들이 1985년 달러 약세를 용인하게 된 합의를 말한다.


플라자 합의로 인해 엔화가치는 절상되고 이것이 일본경제의 운명을 바꾸어 놓고 말았다. 일본은 급격한 엔화 강세로 수출이 침체되자, 이를 만회하고 불황에 대응하기 위해 초저금리의 극단적인 통화팽창정책과 공공투자 확대 등의 경기부양조치를 실시한다. 그러나 상당기간 금융 및 재정정책의 완화기조를 유지함에 따라 부동산과 주식에 돈이 몰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기업과 가계는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차입하여 주식과 부동산을 사들였고 거품을 우려한 일본 정부는 90년대 들어 금리를 인상하고 부동산 관련 대출을 규제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주식, 부동산의 값이 큰 폭으로 하락하게 된다.


거품의 후유증은 무서운 것이었다. 기업과 가계는 거품경제기에 늘어난 부채의 상환을 위해 소비 및 투자지출을 축소했다. 이와 같이 기업의 부채극소화 노력과 가계의 높은 저축수준 지속은 기업과 가계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으나 경제 전체로는 구성의 오류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를 ‘대차대조표 불황(Balance Sheet Recession)’이라고도 하는데 부채를 줄여 건실한 대차대조표를 만들려는 노력이 투자 축소로 이어져 거시경제 전체의 불황을 가져오는 현상을 말한다. 결국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일본정부는 제로 금리까지 내려 소비와 투자를 촉진시키려고 했지만 소비와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일본의 장기적인 불황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일본의 고민은 자산가격이 거품 붕괴로 돌아가서 모두가 부채 걱정이 없어지지 않고서는 이 난국의 해법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우리나라도 현재 부동산 시장 과열로 사회가 혼란스럽다. 거품은 언젠가는 빠지게 되어있다. 부동산 가격이 급락할 경우 우리도 일본과 같은 전철을 밟을 우려는 얼마든지 있다. 일본정부가 최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12년 간 부동산값이 하락으로 공중분해된 돈이 1천조엔, 우리 돈으로 1경원에 달한다고 한다. 물론 일본경제 규모는 우리의 10배에 달하고 돈 가치도 10배가 높은 것을 감안해 1천조엔의 10분의 1인 1천조원의 재앙은 상상할 수가 없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일본의 전례 덕분인지는 몰라도 거품 붕괴가 미칠 악영향에 대한 공감대가 많이 형성되어 정책당국의 대응도 과거 일본에 비해서는 상당히 빨리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거품 붕괴로 인한 금융기관 부실에 대비한 가계대출 억제나 금융기관의 대손충당금(대차대조표에 자산으로 기재되는 받을어음, 외상매출금, 대출금 등의 채권(債權)에 대한 공제의 형식으로 계상되는 회수불능 추산액) 적립 수준을 제고시켜온 정책 등이 앞으로도 더 개발되고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플라자 합의가 나와서 이야기가 딴 데로 새버렸는데 다시 돌아오자면...^^; 물론 미국은 달러화의 가치를 점진적으로 절하시키려고 할 것이다. 달러화의 폭락은 세계경제에 또 한 번의 공황을 불러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위안화, 일본 엔화 절상 압력과 더불어 우리 원화도 절상의 압박을 받고 있다. 자칫 하다가는 달러 거품을 우리가 떠맡게 될 수도 있음이다. 내수 부진이 여전한데 원화 절상으로 수출마저 활력을 잃는 것은 가뜩이나 경제가 침체되어 있는 상황에서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재선을 앞둔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강한 달러정책으로 기업 경쟁력이 약화되어 울상이었던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의 제조업 분야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일본, 중국 등에 대한 통화 절상압력을 당분간 계속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결국 달러 약세는 꽤 지속될 것이고 환율전쟁이 벌어질 것에 대비해 완충 조치를 마련해 두어야 할 것이다.


하여간 부시 대통령은 밉다 밉다하니깐 더 미운 짓만 골라서 하고 있다. ᅳ.ᅳ; 부시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한답시고 침략전쟁이나 해대면서 군비를 확충하고 전후 복구를 위해 엄청난 정부 예산을 쏟아 붇고 있다. 이와 함께 고소득층을 위한 감세 정책도 경기회복에 도움이 못되었고 주식시장 부진에 따른 자본이득세(유가증권 및 부동산 차익과세)의 감소 등으로 재정적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다가 지난 강한 달러정책으로 누적된 경상수지 적자액까지 합쳐져 난리도 아닌 모양이다. 그러나 이는 일차적으로 미국의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이 실패한 결과인데 이를 너무 싼 아시아 통화 때문이라며 칭얼거리는 것이 영 밉살스럽다.


신경제 이야기를 하려다 한바탕 횡설수설했다. 아무래도 다 연관관계가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경제를 외치며 우쭐거리던 미국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는 것은 조금은 고소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의미로 고소(苦笑, 쓴웃음)를 짓게 하는 일은 미국경제의 의존도가 여전히 높은 내 나라의 현실을 마냥 외면할 수만도 없기 때문이다. 대미의존도를 줄이는 노력은 정치, 군사적인 측면만큼이나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이 기침을 하면, 감기에 걸린다는 한국 경제가 언젠가 미국의 헛기침에 하품으로 응수하는 날은 아련한 꿈이려나. 절제된 자유무역과 다자통상체제로 말미암은 경제적 다극화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면야... 아무튼 아직은 경제, 경영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기가 영 어색하고 서툴다. 더 많이 배우고 익혀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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