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불법에 대한 혐오는 정말 놀랍다. 근친증오라는 말이 떠올랐다면 실례가 되려나?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분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시는 분들이 법치주의를 무력화하는 시도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호기롭게 말씀하시니 민망하다. 이 분들이 요즘 불법집회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손해배상청구를 쉽게 하기 위한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지난 6월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집회의 인파를 보고 “뼈저린 반성을 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 반성은 법치를 바로 세우겠다는 아름다운 목표를 내거는 것으로 구현됐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대통령의 법치는 평평하다기보다는 기울어진 듯싶다. 이 법치는 시위에 나선 시민들이나 쟁의에 돌입한 노동자에게 더 엄정하게 적용될 공산이 크다. ‘편향된 법치’는 형용모순이다.


시위 집단소송제는 임지봉 서강대 교수가 지적했듯이 집회나 시위가 불법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사전에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점이 크다. 시민들에게 자신이 참여한 집회나 시위가 불법일지도 모른다는 자기 검열 혹은 검속을 하게 만드는 것이 이 입법의 주된 목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하면서 이룰 건전한 시위문화는 그리 탐스럽지 않을 게다. 자유와 권리를 부여하고 나서 책임과 의무를 요구하는 것이 마땅한데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 야간 집회를 원천적으로 불허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일말의 고민도 찾아보기 힘들어 아쉽다.


참여연대 공익법 센터의 논평을 통해 “우월적 지위에 있는 국가나 대기업의 불법행위를 견제하기 위한 제도이지, 돈도 없고 우월적 지위에 있지도 않은 사회적 약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시민들에게 수십억, 수백억원의 위협성 민사소송이나 제기하라고 있는 제도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약자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제도로 고안된 집단소송제가 국가 권력의 또 다른 통치수단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더군다나 한나라당은 현행 증권관련 집단소송제 등에 대해서는 재계의 반발을 걱정한 탓인지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이중적인 잣대를 드러냈다. 불법집회에 대한 피해 구제를 하겠다는 본래 취지보다는 정권에 반대하는 시도를 징벌하겠다는 욕망만이 퍼덕거린다. 김용철 변호사는 “<PD수첩> 수사하듯, 삼성을 수사했더라면 아마 우리 사회가 많이 달라져 있을 게다”라고 푸념했다. 법이 가진 자와 힘센 자의 손아귀에 맴돈다는 탄식이 묻어난다.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학업 효능감이라고 부르고, 성공적으로 도전과제를 마칠 수 있다고 여기며 자기 능력에 대한 신뢰하는 것을 자기 효능감이라고 부른다. 이 개념을 응용해서 정치적 효능감이나 정책 효능감 같은 말도 쓴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효능감들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법치 효능감(constitutional efficacy)’이 아닐까 싶다. 법을 지키면 나에게 이익이 되고, 법이 나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푸근함 같은 감정 말이다. 슬프게도 대한민국의 법을 좌지우지하는 자리에 있는 분들은 ‘법치 효능감’을 다른 맥락으로 이해하고 있으신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선진 민주주의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시위 집단소송제를 제정하려 하겠는가. 정부 여당이 기획하는 법치 효능감을 모든 사람이 골고루 나누기 힘들겠다는 불안감이 점점 커진다.


입법부와 행정부는 다수 국민의 지지에 따를 수밖에 없는 다수파기관의 성격을 지닌다지만 시위 집단소송제가 다수의 견해를 좇은 것인지는 불명확하다. 다수파기관이면서도 다수의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귀 기울이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다. 여하간 마지막으로 비빌 언덕은 비다수파기관이라고 불리는 사법부다. 일전에 노회찬 전 의원은 “법은 만명한테만 평등하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만인에게 평등한 법이 아니라 만명에게 평등한 법이라는 지적이 매섭다. 앞으로도 행정부와 입법부는 자신들이 정의한 법치 효능감에 입각해 각종 법안을 쏟아낼 것이다. 이를 일차적으로 견제하는 힘은 사법부다. 사법의 정치화나 사법적극주의에 대한 논란이 적잖다. 적어도 사법부가 지금보다는 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편에서 정치적 결정을 내리고 적극적 행동을 했다면 지금처럼 법치 효능감이 낮지는 않았으리라. - [無棄]


입법부나 행정부와 같이 그 구성과 존립이 다수국민의 지지 획득 여부에 달려있는 기관을 다수파기관이라 부른다. 입법부의 국회의원이나 행정부의 대통령은 선거에서 재선되기 위해 항상 다수국민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신경써야 한다. 그러나 사법부는 삼부 중 유일하게 ‘선거’를 치르지 않고 ‘임명’되는 비다수파기관이다. 따라서 다수국민의 의사에 신경 쓸 필요가 없고, 오히려 다수국민의 목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잘 조직화되지도 대표되지도 못하는 약자의 이익을 판결을 통해 획기적으로 구현해 나갈 수 있는 태생적 장점을 가진다.
- 임지봉 서강대 법학과 교수, [목요일언]약자 및 소수자의 법률가 中, 법률신문 2006.09.01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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