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에 취해서

잡록 2003. 7. 15. 21:00 |

이 글은 제가 고등학교 2학년(2000년) 여름 어느날 유난히 아리땁던 노을을 보고 "쓰인" (스스로 썼다기 보다 어쩌다 쓰였다고 하는 편이 맞을것 같습니다) 글인데 한글문서에 저장해 놓았던 것을 조금 고쳐서 여기다 풀어 놓습니다.^^

 

몸을 뒤척이며 개운치 않은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보니 어느덧 저녁이 되어 있더군요.


막 노을이 붉게 지고 있었습니다. 잠시 감상에 잠겼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한 단어...


"제․행․무․상"


 제행무상은 '삼법인(三法印)'중의 하나입니다. 삼법인이란 세상의 모든 일들은 덧없는 것이고(諸行無常),  일체의 존재하는 것들은 그 실체성이 없으며(諸法無我), 이처럼 모든 것이 덧없고 실체성이 없는 데로 불구하고 이를 추구하기 때문에 고통이 생긴다(一切皆苦)를 말합니다.


 제행무상은 모든 존재는 영원 불변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생멸, 변화한다는 가르침입니다. 한여름의 무더위도 이내 붉은 노을로 변하듯이... 하지만 많은 이들이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할 줄로 믿고 시간을 헛되이 보내기도 하지요.(저도 찔리는 군요.) 많은 이들이 약속하지요. '영원히, 언제나 함께' 그런건 부질없는 바램에 지날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법정 스님의 말씀 중에 '사람은 저마다 업(業)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을 따로 해야 되고 행동도 같이 할 수 없다'가 생각나는 군요.


 제법무아는 일체의 존재가 공간적으로 자기의 고유한 성질이나 배타적 자기모습을 지닐 수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저의 삶의 제 1대 원칙이 '한결같은 삶' 입니다. 그것은 고정불변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변화와 갈등 속에서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나아가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말합니다. '나'또는 '나의 것'에 얽매이는 가련한 중생이여... (물론 저도 포함) 우리는 날마다 똑같은 사람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고 심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판단을 내렸을때 그는 이미 딴 사람이 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비난은 늘 잘못된 것이기 일쑤이다" (법정, 산에는 꽃이 피네中) 하지만 진심 어린 충고와 비판을 아껴서도 안될 것입니다.


 일체개고는 삶은 고통의 바다(苦海)라는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미운 것과 만나고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고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것 등의 숱한 괴로움 속에 허덕입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하고 피할 수 없는 것을 피하려고 하고... 이 모든 것이 무명(無明)에서 비롯되는 욕망과 집착에 있는 것이라고 불가에서는 말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 집착에 욕심, 성냄, 어리석음, 교만,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이것들에 얼마나 자유로우신지요...


 불교에서 말하는 불국정토(佛國淨土)는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곳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읽느라 지루하셨을 이 어수선한 글의 결론은...



“노을에 취해 보지 않은 자, 술에 취하지 말지어다.”

Posted by 익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익구청년 2003.10.02 19:03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이 글은 아마 내가 네티즌 되고 나서 쓴 최초의 장문형식의 글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이런 유치한 시절을 거치면서 나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 것이겠지... 아직도 생각나는 것은 컴맹이기도 한 터라 한글 문서에 저장하면서 쓰면 될 것을 악착같이 게시판에다 직접 쓰느라 애 먹던 것이다. 당시에 컴이 오류 나서 자꾸 튕겨나갔는데도 꿋꿋하게 다시 처음부터 쓰고 또 쓰고 해서 밤 꼬박 새고서야 전문을 올릴 수 있었다는 어처구니없던... 이 덕분에 나는 온라인 상에 글 쓸 때는 꼭 한글문서에 쓰고서 옮기는 습관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