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절전 정책에 따라 공립학교에 다니는 저는 한낮에는 30분 간격으로 냉방이 꺼지는 소소한 고통을 참지 못하는 제 초라함을 한탄하게 됩니다. 맥주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저이지만 이따금 김이 서린 맥주잔이 아른거렸지요. 대학원 졸업시험이 코앞에 닥쳐 왔지만 올림픽 정신 수준으로 참가에 의의만 두게 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만, 수험생의 예의를 갖추기 위해 술자리를 멀리하다 보니 잡글로 대신 술 생각을 달래렵니다. 

 

일전에 어느 술자리에서 “술은 영양가가 없지만 영양의 보고(寶庫)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2006년 9월경 서울 중구 보건소 자료를 기초로 인터넷 자료를 종합해 술의 칼로리를 좀 살펴보았던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회계학에 젬병이었던 저이지만 회계학원리 맨 앞부분에 나오던 회계일반원칙(Generally Accepted Accounting Principles: GAAP)은 어렴풋이 기억합니다. 그 가운데 “효익과 비용간이 균형”이란 것이 나옵니다.

 

정보의 제공에 소요되는 비용보다 이용자가 정보를 제공받음으로써 얻는 효익이 더 커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100% 정확한 정보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보실 만 할 겁니다. 잔류적 수준(residual level) 아래로 오류를 줄이기는 무척 힘들어서 들어간 자원에 비해 성과는 미미하기 마련이니까요.

 

여하간 충분히 알리바이를 마련해두었으니 재미삼아 참조하시리라 믿고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조사별로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고요, 술잔에 얼마나 따르느냐에 따라 오차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시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소주 1잔 90kcal(50cc)
병맥주 1잔 95kcal(200c)
생맥주 1잔 185kcal(500cc)
캔맥주 1병 150kcal
고량주 1잔 140kcal(50cc)
산사춘, 백세주 1잔 50kcal(50cc)
청하 1잔 65kcal(50cc)
적포도주 1잔 125kcal(150cc)
백포도주 1잔 140kcal(150cc)
막걸리 1잔 110kcal(200cc)
위스키 1잔 110kcal(40cc)
샴페인 1잔 65kcal(150cc)
폭탄주 1잔(맥주+양주) 200kcal

 

초미의 관심사인 소주의 경우 한 잔이 70kcal라고도 하고, 90kcal라는 수치도 있습니다. 최근에 도수가 약해졌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칼로리 차이가 날 것 같지는 않고, 아무래도 소주 한 잔을 얼마나 채우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소주잔을 가득 따르지 않으면 70kcal쯤 되는 관계로 소주 1병은 540kcal 정도 되는 듯싶습니다. 여하간 회계학적 보수주의(The principle of conservatism)를 좇아서 90kcal라고 정했습니다.

 

밥 한 공기 열량은 보통 300kcal 내외이며, 삼겹살 1점과 소주 1잔이 140kcal 정도여서 삼겹살 2점과 소주 2잔이 약 300kcal로 밥 한 공기의 열량을 낸다고 합니다. 성인 하루 권장섭취열량은 여성이 2000kcal, 남성이 2500kcal 정도입니다. 기온과 열량은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성인 남성의 경우 보통 영상 30도에서 3000kcal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기온이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면 열 발산이 많아져 5000kcal까지 필요로 한다고 하네요.

 

흔히 알코올을 ‘텅 빈 칼로리(empty calorie)’라 하는데 이는 단백질이나 비타민, 무기질 등 다른 영양소를 별로 함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칼로리를 증폭시키는 각종 안주들로 보충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음주에도 파레토 최적(pareto optimum)을 찾아봐야겠어요.^^;

 

술 마신 다음날 배가 고픈 느낌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는 과음으로 인한 일시적인 저혈당 증세 때문이라고 합니다. 알코올이 포도당 합성을 방해하기 때문에 혈당수치가 낮아지면서 끼니를 거른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술로 인한 저혈당은 정상인에서는 일시적 증상이므로 정상적인 식사를 하면 곧 회복되지만 그 때 또 폭식을 하면 과도한 열량 섭취의 압박은 물론 피로해진 위에도 부담을 주니 유의하세요.

 

술이 칼로리는 좀 적고, 영양가는 좀 더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래저래 좀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이 사랑스런 벗을 어찌 내칠 수가 있을까요. 진수의 『삼국지』 오서(吳書)에는 제갈량의 조카 제갈각(諸葛恪)이 당시 오나라 승상 육손에서 보내는 편지가 실려 있습니다. 거기에 “그 사람의 약점 때문에 그의 장점을 버리지 않았습니다(不以人所短棄其所長也)”라는 아름다운 말로 제 술벗들에게 양해를 구할 따름입니다.

 

이 구절은 비단 술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도 마찬가지겠지요. 술 칼로리를 계산하다가 뜬금없이 다짐을 합니다. 당장 제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며 사람이든, 신념이든, 원칙이든, 제 인연이 닿았던 것을 함부로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요. 제게 열량과 자양분이 되어주시는 여러분들 내내 건승하세요.^-^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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꼽등이 생각

잡록 2010. 8. 30. 04:04 |

꼽등이는 며칠 전에 알게 된 곤충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곱등이’였는데 국어사전이나 백과사전에 ‘꼽등이’라고 나오기에 이 표기를 따른다. 머리부터 배로 이어지는 등 쪽이 곱사등이처럼 굽어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모양이다. 귀뚜라미와 비슷하지만 더듬이가 길고 뒷다리가 길어서 잘 뛰는 편이다. 적잖은 분들이 꼽등이를 혐오하는 이유도 이 친구가 예상치 못한 점프력을 보여주기 때문인 듯하다. 나도 그래서 메뚜기과를 데면데면하게 여기는 편이다. 어쩌면 내가 가공할 점프력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곤충 따위는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종(種)차별주의(speciesism)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의 트라우마 때문일수도 있겠다.^^;


꼽등이는 시각과 청각이 약하고, 날개가 없어 귀뚜라미처럼 울지도 못한다고 한다. 나는 곤충계의 헬렌 켈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둘레 사람들에게 거의 동감을 얻지 못했다. 헬렌 켈러를 언급하니까 EBS 지식채널 ⓔ에서 헬렌 켈러가 장애를 극복한 인간 승리의 대명사로만 알려졌을 뿐, 그가 사회주의 운동에 몸담았던 사실은 대개 은폐되었음을 지적하는 <미국의 우상>편이 떠오른다. 헬렌 켈러의 삶을 발췌해서 간직하려는 그들은 헬렌 켈러를 그의 삶과는 정반대로 소비한다. 사회적 모순을 비판하던 그를 개인의 초인적 노력으로 역경을 딛고 일어서라는 자조론, 자력갱생의 미덕으로만 이용하려 했으니까 말이다. 헬렌 켈러 선생님은 낙관주의자의 사표셨는데 꼽등이도 세상의 비난을 의연하고 꿋꿋하게 해쳐나가길 바랄 따름이다.


꼽등이가 해충이라고 하는데 어떤 악행을 저지르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토로했더니 이런저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벌레 중에 피나게 무는 것은 거머리와 꼽등이 뿐이라든가, 꼽등이의 입과 항문 주변에 세균이 많은 비위생적 녀석이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좋다는 등의 이유는 무척 설득력 있었다. 음습한 곳에 사는 야행성 곤충이 한 둘이 아니지만, 초식성이 아니라 쓰레기 부식질이나 죽은 곤충 등도 먹는 (대부분은 동물성 먹이를 먹는) 잡식성이라는 사실이 꼽등이에 대한 비호감을 부채질한다.


꼽등이의 다양한 별칭 중에 ‘소악마’라는 것도 있었다. 고종석 선생님의 신작 소설 『독고준』에서는 “호모사피엔스가 가장 싫어하는 종은 호모사피엔스일 것이다. 인간은 악마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그러니까 우리들 자신이 악마이므로”라는 구절이 인상 깊었다. 넘치는 혐인(嫌人)도 경계하고 싶지만, 인간이 발전하거나 진화하는 게 맞는다면 우리 내부의 악마성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랑을 더해가는 세상보다는 미움을 덜어가는 세상이 좀 더 현실적인 목표 같기 때문이다. 꼽등이에 대한 사랑을 더하기는 어렵지만 미움을 더는 것은 약간의 정성이면 가능하다.


시인 김명수 선생님은 ‘꼽등이’라는 시에서 “귀뚜라미처럼 울지도 못하는 꼽등이가/ 수염이 너무 길고/ 뒷다리도 너무 가늘다고 여겨졌다”라고 쓰셨다. 메뚜기나 귀뚜라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혹시 꼽등이를 만나게 된다면 시인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금은 다정한 눈길을 건네 보고 싶다. 꼽등이를 해충이라 부르는 이유가 인간을 기준으로 한 것인지, 아니면 황소개구리나 베스처럼 자연계의 시각으로 본 것인지 아직도 헛갈리기 때문이다. 이 흉한 몰골의 벌레보다 인간은 얼마나 더 아름답고 덜 추악한 것일까? 이따금 자신이 없다.


내가 거니는 대학원 건물에 종종 출몰한다고 하니 곧 만나게 된다면 그 괴이한 형상을 마주치고 나면 내가 앞장서서 악플을 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전에 나쁜 벌레가 있으니 좋은 벌레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살육을 저지르는 인간이 이런저런 미물(微物)을 성토하는 것은 민망한 일이 아닐까 의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꼽등이의 존재를 알게 해주신 혜림누나, 꼽등이 못지않은 무서운 풍채로 유명한 그리마와 연가시와 같은 곤충 영상을 보는데 많은 도움을 주신 은영누나, 현영에게 다시금 고마움을 표한다.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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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과 수험생

잡록 2010. 5. 5. 21:36 |

나는 시험보다 교육에 주안점을 둔 것에 법학전문대학원의 대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험이 고급화될수록 교육과 상충관계가 된다. 모든 가치기준이 수험적합성에 맞춰지면서 법과대학의 수업이 파행적으로 운영된 경험을 반추해보면 알 수 있다. 시험을 위한 노력만큼이나 교육을 향한 노력도 평가하겠다는 명분을 늘 기억해야 한다.


한 번의 시험이 아닌 다방면의 교육으로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해 로스쿨을 도입한 만큼 변호사시험은 의사국가고시를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의사국가고시의 합격률은 2010년 92.9%, 2009년 93.6%였다. 높은 합격률에도 별다른 시비가 없는 것은 의대 교육과정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합의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종류의 경쟁을 설계해야 한다. 물론 경쟁이 늘어난다고 해서 경쟁의 강도가 줄어들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어떤 경쟁을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시험과 교육의 적절한 배합의 문제로 요약할 수 있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여하간 나는 ‘시험보다는 교육’이라는 법학전문대학원의 표어에 끌렸다. 그런데 그 교육이라는 것도 결국 잘게 나눠진 시험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다. 내가 로스쿨에 진학한 까닭은 행복하게 공부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수험생보다는 학생으로 살고 싶다. 수험생과 학생을 엄밀하게 구분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그래도 수험생이 시험에 주안점을 둔 개념이라면 학생은 교육에 주안점을 둔 개념이 아닐까 막연히 추측한다.


『꼴찌도 행복한 교실』의 저자가 독일의 쿠벤 김나지움의 교장선생님께 들은 이야기가 흥미롭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통해 사고의 깊이와 인성이 고양되지 않은 지식인을 키우는 교육을 가장 경계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곱씹을 만한 언설이다.


고령화 시대에는 젊은이 한 사람이 여러 명의 어른을 부양해야 한다. 이제 극소수의 승자만이 대접받는 시대가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잠재성과 소질을 계발하도록 노력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인간을 생각하는 경쟁이 가능할까 막막하기는 하지만 경쟁이 심하더라도 그 안에서 보람을 찾고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교육 현장 등에서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방안을 계속 궁리하고 싶다.


일전에 김우창 선생님은 <자기가 선택하는 삶>이라는 칼럼에서 우리 사회가 젊은 시절이 없다고 탄식하셨다. 내면적 의미의 추구와 외면적 가치에의 순응 사이에서 고민하고 타협하는 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에도 자기 스스로가 의미 있다고 느끼는 삶을 성찰할 여유가 없다 보면 자기 자신을 위한, 자아실현을 도모하는 위기지학(爲己之學)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남을 이기기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에 몰두하기 십상이다. 배움이 지속가능하려면 책을 펼치는 순간만큼은 가슴이 뛰어야 한다.


학생이 인격 도야와 자기 수양에 바탕을 두고 공부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나 혼자만의 즐거움에서 그칠 수 없다. 연못가에서 새와 짐승을 바라보며 즐기던 양혜왕이 맹자에게 현자도 이런 놀이를 즐기느냐고 물었다.


맹자는 “현자라야 이런 것을 즐겨한다(賢者而後樂此)”라고 답한다. 현자는 여럿이 함께 즐거워할 줄 알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유래한 여민동락(與民同樂)을 공직자의 자세쯤으로 좁게 해석하기보다는 모든 배우는 이의 덕목으로 삼아봄직하다.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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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티의 추억

잡록 2010. 3. 23. 23:39 |

2004년 11월 5일~6일 현대성우리조트
2005년 4월 1일~2일 강촌
2006년 3월 31일~4월 1일 대성리
2007년 3월 23일~24일 우이동
2008년 4월 4일~5일 우이동
2009년 3월 20~21일 우이동


대학교에서 반 활동을 시작하고부터 참석한 총엠티이다. 2005년부터는 총엠티가 1회로 축소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해마다 빠짐없이 참석했다. 나도 매번 시간이 나지는 않았을 텐데 이렇게 쫓아다닌 것을 보면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기는 하는 모양이다. 대학원 입학 전에 동기 분들과 함께 갔던 엠티에서도 엠티비를 수납하고, 답사를 가고, 장을 보는 일을 거들었으니 엠티와의 인연이 질긴 듯싶다. 내가 즐기는 일이라고는 고작 술을 나누며 담소 나누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 말이다.


05년 엠티 때는 후발대로 온 04학번들을 제치고 아예 선발대로 먼저 도착해서 좌중을 놀라게 했다. 선배들은 보통 체면을 세우느라 일부러 늦게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선배는 늦게 갈 권리가 있지만 우리 민법 제2조 제2항이 규정하고 있듯이 그 권리는 남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제 갓 선배가 된 친구들에게 괜히 늦지 말고 제때 가서 새내기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라고 곡진하게 부탁하는 게 주제넘은 참견이 아닐까 내 발밑이 늘 불안하다. 같이 노력하자는 의미 정도로 받아들여주시길 희망한다.


06년 엠티 때는 후배들과 함께 후발대를 가게 되었는데 청량리역에서 기차표가 모자라서 무임승차를 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내가 다음 기차를 기다리든가 아예 엠티를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결국 시외버스를 타고 엠티 장소로 향했다. 나는 선배의 권위를 이용해 후배들을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끌고 다닌 셈이다.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을 덜 어기는 게 민주시민의 덕목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내가 좀 넘쳤던 것은 아닐까 늘 헛갈린다.


3월 22일 월요일에 민형기 헌법재판소 재판관님의 특강을 들었다. 민 재판관님은 사법시험 3차 면접에서 술집을 함께 찾던 친구들이 무단횡단을 할 때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고 하셨다. 물론 모범답안은 친구들을 모두 이끌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다. 민 재판관님은 당신께서도 그 모범답안이 자신 없다고 하시면서 횡단보도를 안 건너고 갈 수 있는 술집을 제안할지도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지난날의 나는 모범답안을 거의 지켰다. 그런데도 마냥 뿌듯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규범을 어떻게 준수하느냐는 참 어려운 문제다.


07년 엠티는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나는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에 우이동을 향했다. 나는 우이동이 적잖은 단점이 있으나 선배들이 뒤늦게라도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도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이동행을 주창했다. 이때부터 우이동 엠티가 시작되었고 나는 지금도 모종의 책임의식을 느낀다. 사온 고기가 많았던지 밤새 삼겹살을 구웠는데 그 불판의 용사들이 그립다. 개중에는 어느덧 복학생 아저씨(?)가 된 친구들도 있다. 약한 불 때문에 한 시간 가까이 아침 라면을 끓이던 인내의 달인들도 아마 더 멋진 사람이 되었으리라.


08년 엠티가 열리던 날에는 금융론 과제를 하느라 금산분리에 대한 토론이 한창이었다. 4학년이던 나의 마지막 경영대 전공이어서 애정을 쏟은 과목이었다. 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고 말았다. 근처에서 머물던 04, 05학번들을 규합해 택시 세 대에 나눠 타고 위풍당당하게 후발대를 꾸렸던 추억이 새록새록 하다. 졸업생으로서 참석한 09년 엠티는 집에다가 야식을 좀 먹고 온다고 말씀드리고 참석했다. 실제로 야식을 먹긴 먹었으니 거짓말은 아니지만 야식을 조금 멀리서 조금 길게 먹은 셈이다.^^;


이번 금요일에 어김없이 학부 총엠티 기간이 돌아왔다. 문득 지난 엠티의 추억들을 돌아보니 가슴이 짠하다. 내가 몸 담았던 과반은 규모가 비교적 큰 조직이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편이다. 삼월에는 북적이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반보다 더 즐겁고 보람된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가게 된다. 나는 내 자신이, 그리고 내 둘레 친구들이 마음을 재까닥 옮기기보다는 하나둘 떠나가고 난 빈 자리를 늦게까지 어루만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이번 금요일 밤에는 우이동을 거닐 듯하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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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몸담고 있는 고대 경영 B반 클럽에서 <고려대는 시국 선언 안 하나요>라는 익명게시판 글을 읽었습니다. 저는 인터넷 실명제의 확대는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만, 제 자신이 익게를 쓰는 건 참 어색하네요. 다만 실명게시판에 글을 쓰고 나면 댓글을 실명으로 다는 게 부담스러우신지 서로 활발한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단점이 보이는 것 같아요. 자주 마주치는 선후배 나 동기 사이에 너무 얼굴 붉히며 논쟁하는 거 꺼려지는 일일 테니 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익게는 그 나름의 효용이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본래 제 이름 걸고 (남들이 보기에) 편파적인 이야기를 쓰는 것에 크게 부담 갖지 않는 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는 이제 꽤 높은 고학번 선배가 된 점을 악용(?)해서 실명으로 글을 남겨봤습니다. 시의성이 중요한 잡글 같아 부랴부랴 끼적거려서 내용이 매끄럽지 못합니다.


어제 교수님들의 시국선언이 나왔더군요. 아무리 먹고 살 걱정이 덜한 교수님들이라고 해도 살아있는 권력을 비판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일 겁니다. 대통령의 모교에서 시국선언을 발표한다는 게 얼마나 머뭇거려지는 일인지 익히 짐작하고 남습니다. 경영대 교수님이 한 분도 안 계신 것도 그런 연유겠지요. 시국선언문의 세세한 문구까지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지금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정부의 책임마저 외면하는 교수님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여기저기서 용기 내서 대통령을 비판했는데도 듣는 시늉조차 잘 보이지 않고, 사회통합을 저해한다는 소리나 날아오니 그럭저럭 전진해왔던 지난 민주화 20년이 흔들린다고 느꼈습니다.


선출된 권력은 정해진 기간 동안 자신의 국정 운영 철학을 구현할 권한을 위임 받습니다. 다만 거기에는 한계나 금도가 있어야겠지요. 이 정부 들어 기본권 가운데 가장 기초적인 ‘자유권적 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고, 그간 정부의 간섭에서 비교적 자유롭던 권력기관들이 다시 정권의 사유물로 전락하는 건 아니냐는 우려는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듯하네요. 대통령을 넘치도록, 어떤 때는 부당하다 싶을 정도로 욕할 자유를 만끽하던 국민이 작금의 분위기를 어색하게 여기는 건 크게 나무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동’과 ‘세뇌’를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그런 단어는 그 발설자도 자유롭지 못한 문제입니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자기 머리로 생각하며 움직이는 모습은 삶에서 작은 부분이니까요. 날선 표현은 마지막까지 아꼈다가 쓰시는 게 좋겠네요. 그 논리를 그대로 따와서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라는 선동과 부자들에게 감세하면 서민이 혜택을 입는다는 세뇌에 사로잡힌 분들이 적잖았다고 공박하는 건 참 쉬운 일입니다. 권력을 장악한 집단의 선동과 세뇌가 야당이나 시민단체 등의 선동과 세뇌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걸 굳이 강조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한국 현대사에 대해서 특별히 공부한 적은 없지만 대강은 알고 있습니다. 민주화 이후 제6공화국의 첫 정부였던 노태우 정부는 여전히 공안통치를 펼쳤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전두환의 제5공화국이나 유신독재의 제4공화국에서 나타났던 폭압성보다 그 정도가 약해졌음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노태우 정부가 너그러웠기 때문이라기보다는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말미암아 군사정부의 파시즘 색채를 절반 정도 탈색시키는데 성공한 것이죠. 집권자의 절제를 기대하는 것보다 민주화 세력의 견제가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었음을 방증합니다.


여하간 군사반란의 수괴도 시대의 흐름을 온몸으로 거스르지는 않은 셈입니다. 그 이후 들어선 정부들은 저마다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민적 자유를 신장해왔습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 역시 지금 위치에서 민주주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시대적 소명을 수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며 지난 정부를 극단적으로 폄훼한 분들이니 더더욱 말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명박 정부는 앞 정부들의 치적을 이어받아 늘어난 자유가 경제적 약자들에게까지, 지금 고통을 겪는 젊은 세대들에게까지 넓어지도록 애써주길 희망합니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선 경제적 민주주의까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다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사회는 보수나 진보 같은 이념의 차이를 뛰어넘는 우리 모두의 바람 아닙니까? 방법론은 엇갈리더라도 이 대의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데 이 정부가 그 대의를 이따금 망각한 듯이 행동하셔서 아슬아슬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살리겠다는 경제는 제가 기억하기로 국민 모두의 경제였습니다. 지난 정부들에서 모자랐던 점을 채워서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기를 바라는 시민의 마음이 그렇게 어리석고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민주주의 정도는 기본으로 깔고 더 나은 미래를 더듬어야 할 분들이 민주주의조차 지키지 못한다고 비판받는 모습이 영 안쓰럽네요. ‘민주주의’는 누구에게나 크고 무거운 주제이겠지만, 그 엄숙주의를 좀 줄이고 서로가 그리는 민주주의의 최소 기준 혹은 핵심을 논의해봅시다.


이 와중에 4대강 정비사업 예산은 22조 2000억 원으로 늘었군요. 지난해 12월 발표했던 13조9000억 원에 비해 60%가 늘어난 금액입니다. 일전에 대운하 찬성측이 대운하 사업비 예상액으로 14조에서 18억 정도를 제시하셨는데 이것보다 훨씬 많은 비용입니다. 지금 국민과의 소통이 안 된다고 아우성인 판국에 청와대는 불통(不通)이란 무엇인가 온몸으로 증명하고 계시네요. 정부 여당은 국민에게 마음을 열라고 윽박지르기 전에 스스로의 귀부터 먼저 여시길 진심으로 건의합니다. 그게 공복(公僕)의 자세입니다. 권력은 유한합니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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俗人昭昭 我獨昏昏 세상 사람 모두 똑똑한데 나 홀로 어수룩하고,
俗人察察 我獨悶悶 세상 사람 모두 살피고 따지는데 나 홀로 답답합니다.
澹兮其若海 담담하구나, 마치 바다와 같이.
飂兮若無止 몰아치는구나, 마치 멈출 곳이 없는 듯이.
衆人皆有以 뭇사람들은 모두 쓸모가 있는데
而我獨頑似鄙 나 홀로 고집스럽고 촌스럽게 보입니다.


『도덕경』 20장의 일부다. 내게는 여러모로 각별한 구절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온라인 필명(혹은 별명)을 만들어 썼을 때 아독혼민(我獨昏悶)이라고 지은 것도 여기서 따온 것이다(2003년 말 이래로 ‘새우범생’이라는 별칭을 쓴다). 고요히 흐르는 모양을 묘사한 담혜(澹兮)는 내가 스스로 지은 생애 최초의 호(號)이기도 했다. 『도덕경』이 본래 어려운 텍스트이기는 하지만 20장의 이 구절은 복잡한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즐겨 읽었던 모양이다. 오강남 선생님은 노자의 실존적 고독이 묻어나는 대목이라고 해석했다.


노자도 여기서 자기의 이런 심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 사람 모두 희희 낙락하고, 똑똑하고, 영리하고, 분명하고, 여유 있고, 쓸모 있고, 목적 의식이 투철하고 희망으로 가득한 것 같은데 자기 혼자 멍청한 것 같고, 맹맹한 것 같고, 촌스럽고, 답답하고 미욱하게 보이고, 빈털터리 같고, 정처없이 떠다니는 것 같고……. 하면서 자기의 ‘홀로임’을 슬픈 어조로, 그러나 담담하게 읊고 있다.
- 오강남 풀이, 『도덕경』, 현암사, 1995, 97쪽


왕필은 “무엇을 바라고 하고자 하는 바가 없으므로 어둡고 멍청한 것이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 그러므로 우둔하고 또 고루하다고 했다”라고 주석을 달았다. 하상공은 “뭇사람들은 유위하는데 나 홀로 무위하여 세상의 일반적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풀었다. 대체로 억지로 하려는 일이 없이 순리대로 살다보니 세속적 기준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한다. 노자는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았기 때문에 고독했다. 나는 평균적인 삶을 사는 분에게서 배우듯이 평균적인 삶을 살지 않은 분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노자는 초월적 발상을 통해 세상의 이분법을 극복하려 한다. 김진석 선생님은 ‘초월’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포월(匍越)’을 제시했다. 현실의 경험과 인식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둘레의 현실을 부둥켜안고 기어서 넘어가자는 말씀이다. 여하간 ‘포월’하며 ‘다른 삶’을 살고 싶다. ‘다른 삶’에 대한 열망 역시 또 하나의 목적이 되어 내 자신을 수단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삶’에 대한 과시는 또 하나의 지적 허영심이 아닐까? ‘다른 삶’을 꾀하는 것이 결국은 세속적 기준에 맞추려는 정성을 회피하는 면죄부는 아닐까?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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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으로서의 음주

잡록 2008. 6. 7. 18:52 |

우리 학교 행사 가운데 고대타임(고대생들이 으레 늦게 모이는 습속을 애정을 섞어 표현한 말)이 적용되지 않는 거의 유일한 행사가 입학식이다. 2002년 입학식 때 나는 대강 이 때쯤이면 되겠다 싶어 어슬렁거리며 입학식장이던 노천극장을 올라갔다. 30분도 늦지 않았는데 벌써 교가를 부르고 있었다.^^; 1978년 당시 김상협 총장님은 ‘여기에서 춤추어라’는 입학식사를 하셨다. “여기 자유 정의 진리의 전당이 있다, 여기에서 춤추어라. 여기 민족주체 민간주체의 석탑의 광장이 있다, 여기에서 춤추어라. 여기 지성과 야성, 한국과 세계의 캠퍼스가 있다, 여기에서 춤추어라.”와 같은 구절이 나온다. 이는 헤겔의 『법철학』 서설의 표현을 패러디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여기가 로도스섬이다. 여기에서 춤추어라, 여기 장미꽃이 피어 있다. 여기에서 춤추어라.”라고 썼다.


그런데 이건 또 이솝 우화를 인용한 것이다. 어떤 거짓말쟁이가 자신이 로도스섬에 있을 때 굉장히 멀리 뛸 수 있었다고 자랑한다. 그러자 한 사람이 나서며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이 진실이라면 굳이 많은 증인이 필요 없지. 여기가 로도스야. 여기서 뛰어보게(Hic Rhodos, Hic Saltus)!” 헤겔은 이 우화를 미덥지 못한 이상을 늘어놓기보다 삶의 현장에서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라는 것으로 풀었다. 진리라면 현실의 검증을 마다하지 말고, 로도스섬으로 피하기보다는 지금 딛고 있는 곳에서 가능성을 보이라는 설명이다. 차병직 변호사님은 헤겔의 언설을 환상의 나라, 허구의 나라, 불가능의 나라에 닿기 위해 헛되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말라는 메시지라고 보셨다. 축제의 계절인 오월에 음미해볼 만한 이야기 같아 많이 인용했다.


지난 5월 16일에 열렸던 대동제 주점은 즐거웠다. 재미난 시간은 빨리 가서 아쉽다. 주점이 있는 날 밤은 더 후다닥 지나간다. 처음처럼이 없는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빈자리를 소중한 사람들이 채워주셔서 얼마나 흥겨웠는지 모른다. 재현형님, 상준형님, 인호형님, 윤승형님, 광호형님, 정훈형님, 혜진누님 등의 선배님들 바쁜 시간 내어 왕림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바지런히 부침개와 만두를 굽고 감자를 튀기고, 오도독뼈를 익히고 달걀을 깨고, 과일 통조림을 조합하던 후배님들 모두 고생 많았어요. 주점 마치고 뒷정리하는 것처럼 괴로운 일도 없는데 묵묵히 남아 정리했을 여러 후배님들 사랑해요. 해장국은 들고 귀가했나 모르겠네요.


오월에 이어진 각종 술자리에서 숙취 없이 선방한 날도 있고, 주말 내내 뒹굴 거리며 요양했던 날도 있다. 술을 잘 못 마시면서도 술자리를 좋아하는 저는 아찔했던 경험도 적잖았지만 “술은 언제나 무죄다”라는 구호 아래 다음 술자리를 기획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현진건 선생님은 「술 권하는 사회」에서 식민지 조선의 암울한 상황을 술로 달래는 광경을 묘사했다. 하지만 술을 어떤 명분이나 핑계로 치장해 마시는 행동은 마뜩찮다. 우애로움이 술잔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술은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술을 그냥 술로써 좋아해야 한다고 우겨본다.


술자리에는 부분 강화 효과(Partial Reinforcement Effect)가 있는 것이 아닐까 궁리했다. 부분 강화 효과란 보상이 언제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행동이 오래 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주로 게임이나 도박의 사례를 많이 든다. 즉 추억으로 삼을 만한 성공적인 술자리가 언제 도래할지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에 끊지 못하는 증상이랄까?^^; 맹자는 사람들이 죽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어질지 못한 것을 좋아하는 행태를 비판하며 마치 “취하기는 싫어하면서도 무리하게 술을 마시는 것(惡醉而强酒)”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비유가 따갑다.


애주가들이 물아일체를 패러디 해 주아일체(酒我一體)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나는 ‘주간(酒間)’이라는 말을 종종 쓴다. 좀 과장을 보태면 내 삶은 술자리와 술자리 사이에 끼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 모자란 체력과 부족한 정신력이 용납하는 순간까지는 숙취를 애인처럼 여기며 지내볼 계획이다. 음주의 한계비용과 한계수입이 같아지는 균형점은 당최 어디에 있을까? 다음 술자리에서 더 나은 모습으로 나타나기 위해 또 알차게 살아봐야겠다. 잠시 술잔을 내려놓은 시간 동안 모두들 안녕히!^-^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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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학생이 선택하는 삶

잡록 2008. 3. 20. 02:44 |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 첫 회에서 삼순이는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이렇게 묻는다. “날 사랑하긴 했니? 3년 동안 넌 한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해준 적이 없어. 날 사랑하긴 한 거야?”나도 내 자신에게 묻고 싶다. “공부하기는 한 거야?” 그간 기웃거리던 행정고시 공부를 사실상 접었다. 편 것도 없으니 접을 것도 없다고 해야 맞는 표현이겠지만.^^; 졸업하기 전에 재수강을 하기로 결심한 행정법총론 강의 때문에 실낱같은 인연은 유지되지만 내 마지막 전공 과목으로 시험 과목인 미시경제론이나 거시경제론 대신 금융론을 넣음으로써 내 진로가 바뀌었음을 비로소 추인했다.


나는 어떤 결심을 할 때 관련 책을 사는 고약한 버릇이 있는데 이번에는 시험과는 전혀 관계없는 성백효 선생님이 번역한 『맹자집주』와 『논어집주』, 기세춘 선생님이 쓰신 『노자 강의』 등의 책을 구매했다. 4학년 1학기씩이나 된 학부생이 제 진로를 백지상태에서 검토한다는 건 민망한 일이다. 그런데 나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이는 고상한 예외주의라기보다는 내 삶을 그나마 이어가는 원동력인 대책 없는 낙관주의가 자기방어를 위해 발동했을 따름이다. 학교 내에 있는 국제관계연구원에서 인턴 일을 시작한 것 외에 더 정해진 바는 없다. 티베트 독립을 희망하기 전에 내 일신의 안온함을 꾀해야 할 텐데 걱정이다.


어제는 친구의 꼬드김으로 어느 기업 채용설명회를 참석했다. 올해부터는 인턴사원을 뽑을 때 작년까지는 없던 영어면접을 본다는 말에 흠칫 놀랐다. 경쟁률은 20대 1쯤 되겠냐고 대충 물었다가 면박을 당했다. 0을 하나 더 붙여 200대 1이 될 수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역시 날라리 경영학도로 살다 보니 냉혹한 자본의 논리를 아직도 깨우치지 못했다.^^; 생각 있으면 주말까지 자기소개서를 내라고 하는데 이 일을 떠나서라도 가까운 시일 내로 자기소개서라는 것도 좀 작성해봐야겠다. 도무지 소개할 것이 없는 내 지난날을 반성하는 기막힌 계기다.


얼마 전에 김우창 선생님의 <자기가 선택하는 삶>이라는 칼럼을 무척 감명 깊게 읽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남을 이기기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한, 자아실현을 도모하는 공부라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추구하라는 가르침과 상통한다. 이 글에서 선생님은 우리 사회가 외면적 순응만을 요구하고 내면적 의미의 추구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진단하셨다. 젊은 시절에도 자기 스스로가 의미 있다고 느끼는 삶을 추구할 여유가 없다는 한국 현실에 대한 탄식이 고맙다. 내가 대학을 선택하고, 스스로 직장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대학과 직장에 의해 선택 당하는 문제를 지적하실 때 적잖이 통감했다. 자기가 선택하는 삶은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두렵다. 그 두려움을 덮고도 남을 설렘이 없다면 선택을 할 유인이 많이 떨어진다. 설렘, 그간 잊고 있던 말이다.


사기업 취직에 대한 밀도 있는 고민을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역지사지한답시고 기업의 채용담당자가 되어 나 같은 녀석을 뽑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일어날까를 상상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이 또한 내가 선택하는 삶이라기보다는 남에게 선택 당하는 삶의 전형일 게다. 이러한 역지사지가 잘못이라기보다는 그에 앞서 품어야 할 고민을 망각하는 것이 잘못이리라. 그러고 보니 내가 원하는 게 진정 무엇이었는지, 내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을 찾아봤는지 부끄럽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고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마구 넘쳐나지도 않는다. 대개는 고운 정만큼 미운 정이 드는 모양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숭고하면서도 비루한 밥벌이에 나서는 이 땅의 모든 생활인들의 애환이 슬몃슬몃 나를 맴돈다.


이렇게 피곤한 채 죽으면
영원히 피곤할 것만 같아서
그것이 문득 두려워서

죽고 싶도록 슬프다는 친구여
죽을 것같이 슬퍼하는 친구여
지금 해줄 얘기는 이뿐이다
내가 켜 든 이 옹색한 전지 불빛에
生은, 명료해지는 대신
윤기를 잃을까 또 두렵다

- 황인숙, <묵지룩히 눈이 올 듯한 밤> 中


새해 들어 가장 먼저 내 눈에 들어온 시다. 사실 나는 무슨 일이든 피곤할 만큼 열심히 해본 적이 없는 듯싶다. 후배들을 보면 이틀 밤도 잘만 샌다는데 나는 지금까지 밤을 새본 적이 없다. 진정한 의미의 밤샘이란 늦잠이나 낮잠도 없이 새벽 공기를 맡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술 마시다가 아침 먹고 들어간 적이야 있지만 노는 걸로 지새운 밤을 자랑할 만큼은 내 낯짝이 두껍지 못하다. 모닝콜을 느지막이 맞춰놓고도 못 깨어나 늦잠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내 자신을 보니 문득 불안하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모든 걸 다 거두지는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내가 흠모하는 기열형께서 “내가 아쉬움이 없는 건 아쉬움이 남을 짓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술회하는 말씀이 너무 멋졌다, 따라하고 싶다. 아쉬움이 남을 짓을 하면서 그에 대한 아쉬움조차 정직하게 느끼지 못하는 내 자신이 딱하다. 무지근할 때까지 내 자신을 닦달할 용기는 좀처럼 나지 않지만 혹여 그런 순간이 도래한다면 이 다짐들을 기억하길. 더 많이 웃도록 하자. 술맛도 건사하자. 그 무엇보다 기품을 잃지 말자! 노곤함은 늘, 언제나 과정이어야지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종종 나른함이 삶의 목적인양 사는 사람을 봤다.


지난 1월 11일 타계한 뉴질랜드의 탐험가 에드먼드 힐러리를 처음 접한 건 어린이용 명언집에서였다. “나는 기술적으로는 프로가 되고 싶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언제나 아마추어이고 싶다”라는 말씀으로 기억하는데 인터넷 상에서는 “정신적으로는 아마추어, 기술적으로는 프로이고 싶다”라고 퍼져 있다. 프로가 맡은 일을 능수능란하게 처리하는 재주라면 아마추어는 순수함이나 겸손함을 가리키는 뜻으로 많이 풀이한다. 전문 분야의 솜씨에 국한되지 않는 통섭하는 능력이라든가, 인간미와 동떨어지지 않는 기예라고 봐도 괜찮다. 빼어난 기능인이 되기도 어렵지만 이를 넘어서려는 마음가짐도 필요하다.


시에 나오는 ‘-대신’이  어미 ‘-은’, ‘-는’ 뒤에 쓰일 때는 앞말이 나타내는 행동이나 상태와 다르거나 그와 반대임을 나타낸다. 즉 명료해져서 윤기를 잃어 가는 상황을 묘사한다. 명료는 전문적인 지식 같은 서늘한 유능함으로, 윤기는 우애와 신뢰 같은 정다운 인간미로 해석하고 싶어졌다. 힐러리의 경구에 대입해 본다면 프로의 소양을 갖추다 보니 아마추어적 감수성을 잃는 형국이다. “유능한 대신 부패하다”와 “부패한 대신 유능하다”는 뜻빛깔이 다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시인은 잃어 가는 윤기에 방점을 찍으며 안타까워한다. 나는 훨씬 더 명료해져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윤기를 덜 잃었으면 좋겠다. 또렷해지면서도 매끄럽고 싶다는 바람은 얼마나 거대한가.


힐러리에게 에베레스트를 어떻게 올랐냐는 질문이 쏟아지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올라갔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운명이 손을 들어주기 시작한다는 그의 지론은 내 어깨를 짓누른다. 요즘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폐허다. 내가 스스로 헝클어뜨려 놓고 괜히 투덜거린 건 아닐까 싶다. 맹자는 “사람은 모름지기 스스로를 업신여긴 뒤에 남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받는다(夫人必自侮 然後人侮之)”라고 역설했다. 어질지 못한 사람(不仁者)은 스스로를 모욕했기 때문에 남의 미움을 받는다는 맥락에서 쓰인 표현이다. 맹자는 이어 『서경』 태갑(太甲)편을 인용하며 “하늘이 지어낸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으나 스스로 만든 재앙은 피하지 못한다(天作孼 猶可違 自作孼 不可活)”라고 강조한다.


복학해서 듣는 논어 강의에서 내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구절을 접했다. 어찌나 따갑던지 강의시간이 참 길게 느껴졌다. 공자의 제자 염구가 “선생님의 도를 기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힘에 부칩니다(冉求曰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라고 고충을 토로한다. 공자는 “능력이 부족한 자는 도중에 그만두게 마련인데 지금 너는 미리 금을 긋고 있구나(子曰 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畫)”라고 꾸중한다. 즉 중간까지는 가서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한계를 긋고 멈추는 자포자기한 상태를 질타한 말씀이다. 숨이 차서 헐떡거리는 남들의 모습을 보고 지레 겁먹어 몸을 움츠리고 발을 뺄 궁리만 했던 건 아닌가 부끄럽다. 획(畫)을 한 번 그었으니 이제 당분간 삼가야겠다. “미안하다, 여기까지라서...”라고 말하며 퇴각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영국의 산악인 조지 말로리도 에베레스트에 오르려 애썼다. 사람들이 왜 산에 오르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것(에베레스트)이 거기에 있으니까요(Because It's there).” It은 에베레스트를 가리킨 말이었지만 요즘은 산 일반으로 많이 쓰인다. 좀 더 확장해서 특정한 목표를 It으로 두고 매진하는 경우도 많다. 진부한 명언을 꺼내드는 까닭은 “Because It's there”를 외칠 기력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프로도, 아마추어도, 명료도, 윤기도 모두 놓칠 것만 같다. 단순히 내가 게을러서 생긴 문제는 아니다. 길을 잃은 모양이다. “안개의 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기형도, <안개> 中).” 안개 탓만 하지는 않으련다.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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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과 개인주의

잡록 2008. 1. 4. 03:45 |

외우(畏友) 박영선님의 미니홈피를 갔다가 술자리에 한번 불참한 것으로도 타인에게 무한한 서운함을 주는 자의 고독을 엿봤다. 각종 모임이 잦았던 영선님은 머릿수 채우기용 병풍 역할을 계속 해야 할지를 고민하셨다. 문득 존경하는 인호형께서 일전에 들려주신 말씀이 생각났다. 언젠가부터 당연히 와 있어야 하는 사람이 되면, 오라고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지게 되는 역설. 조연도 아닌 하나의 배경이 되어서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가 보이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존재가 된다는 절절한 경험담을 곱씹을 때마다 가슴을 친다. 열심히 끼다보면 안 끼어있게 되고 관객석만이 덩그러니 남겨진 그 감추기 힘든 허망함이랄까. 이건 대학의 과반 활동에 그치기보다는 사람살이의 한 정형화된 주기를 보여주는 듯싶다.


요즘에 내가 몸담은 대학교 과반에서 반 활동이 앙상해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해법을 찾으려면 원인을 알아야 하는데 문제의 원인으로 개인주의의 심화를 드는 경우가 많아서 좀 당혹스러웠다. 개인주의는 집단주의에 대한 반대, 이타주의에 대한 반대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타주의에 대한 반대를 일컫는 말로 이기주의나 자기본위와 같은 말들이 있다. 그래서 칼 포퍼는 개인주의를 집단주의의 반대라는 의미로만 한정시켜 사용하겠다고 개념 정의하기도 했다. 포퍼는 플라톤이 이타주의를 집단주의와 동일시하고,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동일시했다고 비판했다. 이기적 개인주의와 이타적 집단주의라는 두 가지 선택지만 놓고 고르라고 윽박지르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유다. 철학자 김용석 선생님은 개인주의를 “'나'라는 개인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나, 너, 그, 그녀 등 모든 개인을 중요시한다. 즉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의 가치와 존엄 그리고 권리를 전제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기주의에는 자기 존중밖에 없다면, 개인주의에는 이와 더불어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다는 언설이 솔깃하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가르는 관건은 나만 생각할 것인가, 나를 포함한 모든 개인을 생각할 것인가에 있다는 주장에 거개 동감한다. 이렇게 개념 정의를 하고 나면 개인주의는 도피처가 아니라 지향점의 의미가 강해진다. 나는 개인주의는 핑계가 아니라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주장의 논거가 개인주의에 대한 개념 정의에 크게 기대고 있는 관계로 순환논증의 오류를 피하기 힘들다. 스스로 주장하려는 바를 자기 주장의 근거로 삼아버렸다고 볼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개인주의가 속죄양이 되어 쉬운 변명거리로 여겨지는 세태가 못마땅해서 개인주의에 대한 내 개념 정의를 말해봤을 따름이다.


선후배 관계가 데면데면해진 것이 어찌 개인주의 탓이겠는가. 우애보다는 경쟁이 더 실용적인 사회,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학점을 챙기는 게 미덕인 시대에 우르르 몰려서 술이나 마실 짬이 어디 있으며, 후배가 연락을 안 한다고 한가로이 투덜거리는 선배는 얼마나 가여운가(반어법임). 나는 극작가 배삼식 선생님의 <제갈량의 오만>이라는 칼럼을 읽은 이태 전부터 틈틈이 후배들이 덜 유능할 때, 적당히 무능할 때 부담 없이 다짐을 남발하고, 허영심에 들떠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했으면 좋겠다고 주절거린다. 해야만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에 좀 더 손길을 보내고, 좋아하는 책도 많이 보고,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만끽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훈장질을 했다. 돌이켜보니 민망하다. 재빨리 유능해져서 그 유능함을 써먹는 재미에 사는 후배들에게 내 잡설은 얼마나 메스꺼웠을까(물론 여기서의 유능함은 무조건 좋은 의미는 아니다).


지난 2007년 2학기 종강잔치 2차에서 우리 반에 비해 사람수가 훨씬 적은 사학과 분들이 종강잔치 하시는 광경과 마주쳤다. 언뜻 보아도 머릿수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서 속상했다. “고대 경영대는 희망합니다 우리를 향한 질투가 더 많아지기를...” 등의 신문 광고씩이나 내는 단과대의 외화내빈을 걱정한 것은 나만의 감정이었을까. 이렇게 말하고 보니 놀지 못해서 실성한 사람 같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친구들의 대부분이 이건 좀 아쉽다고 여긴 만큼 내가 중뿔나게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다. 설령 그렇더라도 개인주의자로 산다고 입으로는 말하면서도, 머릿수가 너무 줄어든다며 안타까워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 씁쓸하다. 내 자신부터가 머릿수 채우는 병풍 역할을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만만한 손아랫사람에게까지 병풍이 되라고 강권하지 않았나 반성한다.


늘은 재주는 없는 내게 후배들만 쌓일 때 곤혹스럽더니 최근에는 아예 무뎌진 듯싶다. 언제부터인가 후배들 보는 자리에서 나는 얼마나 유익했던가, 나는 또 얼마나 재미났던가를 고민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냥 얼굴 보는 것만도 좋긴 하다.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욕심을 포기한 건 아니지만 그냥 편하게 다가온다. 체념인지 달관인지 잘 모르겠지만.^^;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인 <템페스트>에서 프로스페로의 딸 미란다는 “아버지에게 나는 얼마나 큰 짐이었을까?”라고 묻는다. 프로스페로는 “귀여운 내 딸아, 너 덕분에 나는 존재할 수 있었다. 너의 미소는 하늘이 내게 준 용기를 머금고 있었다”라고 답한다. 둘레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짐이 되었을지 모르는 나이지만 “덕분에 존재할 수 있었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


흠모하는 재현형은 “대학생활 동안 내가 부르면 찾아올 사람들을 만들었다”고 자부하셨다. 인호형께서는 이 문구를 “나는 불러줄 사람들이 많다”라고 유쾌하게 패러디하셨다. 내 대학생활 동안 (배움을 제외한) 사람 사귐은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나는 천성은 게으른데 놀 때는 날래다. 불행 중 다행(?)인지 내 인간관계의 폭이 그리 두툼하지 못해서 책임질 사람이 많지 않아 부담이 덜하다. 괜찮은 병풍조차 되지 못한 내게 귀한 시간을 내준 지인들에게 조금만 미안하기 위해서라도 내 자신을 가꿔야겠다. 우선 익자삼우(益者三友) 같은 낡아서 도통 거들떠보지 않는 기준부터 채워보고 싶다. 무능한 주제에 이런 욕심을 부리다니 나는 아직도 정신을 덜 차렸다. 내게는 거침없이 죽비를 날려줄 벗이 좀 더 필요하다. 익구 공부독촉위원 인선을 마무리해야겠다.^^;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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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선거권 강제하는 50% 규정 문제 있다 
- 고대신문 1496호 2004년 12월 06일(월)

지난 38대 총학생회 선거는 학내 구성원간의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2일에서 3일로 투표일을 공식적으로 늘린 것도 모자라 월요일 하루 오후 6시까지 연장투표를 하고서 그것도 모자라 밤 11시까지 연장투표를 한 것은 선거시행세칙 상의 50% 투표율 규정을 채우기 위한 것이다.

선거권에는 투표를 할 자유와 투표를 안 할 자유가 있는 것이 상식이다. 50% 투표율 규정이 그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유권자의 선거권 행사를 강요하는 의미로 전락한 것이 이번 선거를 통해 명확해졌다. 상당수 대학의 총학생회 선거가 50% 투표율 규정을 고수하고 있긴 하지만 일부 대학들은 그런 규정 없이 개표를 하고 있으니 반드시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다. 또한 사회에서 이뤄지는 선출투표에서 투표율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형식적 대표성을 갖춰야겠다는 강박관념이 “투표 권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연장투표가 실시됨으로써 제 시간에 맞게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들은 자신의 의지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해 제 때 참여한 것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 학생회 선거에 무관심한 사람이 연장투표를 하는 선관위원들이 안쓰러워서나, 집요한 투표 권유에 마지못해 투표를 할 때 이는 회원들의 의사를 민주적으로 수렴하려는 선거제도 본연의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는 것이다.

현행 50% 투표율 규정은 투표하지 않을 자유를 제약하고 회원의 선거권 행사를 강제된 의무로 만드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정치적 동원이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니다. 자신의 자유의사에 반하는 것을 두 번 세 번 권할 때 그것이 동원이 된다. 의도했던 행위 자체를 만들어내지 못해도, 그 행위로 유도하려는 시도가 적정 수준을 넘어가면 동원으로 볼 수 있다. 선의가 충만해서 권유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불편하다면 그것을 동원으로 볼 수 있다.

선거에 참여한 유권자들의 자유의사가 최대한 반영되는 것이 맞다면, 참여한 사람들 간의 치열한 논쟁과 토론을 통해 다수표를 획득한 사람이 일정 기간 권한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하는 의회 민주주의의 원칙을 신뢰한다면 이러한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끝으로 일각에서 제기된 선거무효(무산) 운동이 대의 민주주의제 하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대리인 비용 자체를 치르기 거부하는 것으로 발전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간 학우들의 바람과는 달리 나갔던 학생회 조직에 대한 견제를 넘어 승복 자체를 거부하지 말았으면 한다.

치열한 논쟁과 많은 진통 끝에 38대 총학생회장단이 꾸려졌다. 우리 모두 어렵게 세워진 총학생회에 애정 어린 관심을 보내주자. 또한 앞으로 학우들의 의사가 최대한 반영되는 학생회가 될 수 있도록 한해 동안 많은 학내 구성원들이 함께 노력하자.

최익구(경영02)


<덧붙이는 말>

3년 전에 고대신문에 투고했던 글을 우연히 발견했다. 나는 게재가 거부당한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실린 모양이다. 고대신문 홈페이지에 기사검색을 해서 나온 결과를 긁어왔다(명백한 오타만 수정했다). 편집이 좀 됐을지는 모르나 문장이 참 거칠다.ㅡ.ㅜ 2005년 39대 총학생회 선거가 투표율을 채우지 못해 무산되고 다음해에 재선거를 치렀다. 2003년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투표율이 50%에 미달해 2004년 3월에 재선거를 치르는 난리를 보며 우리 학교에서도 이런 날이 머잖아 벌어질 것을 염려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빨랐다. 2005년 11월 39대 총학생회 선거 때 제 때 투표한 유권자들의 의사가 온전히 반영되지 못한 건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다.

그 이후에 나온 논의들은 실망스러웠다. 2006년 40대 총학생회 선거 때부터는 졸업예정자의 경우 투표에 참여하는 사람들만 투표율에 반영하는 식으로 개정해버렸다. 졸업예정자는 투표율이 낮으니 일단 빼놓고 투표하는 사람만 정족수에 산입하겠다는 이상한 논리다. 이를 통해 실질 투표율은 50%가 안 되도 개표 가능한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졸업예정자의 한 표는 비졸업예정자(?)의 표에 비해 투표율을 더 높이는 효과를 가져다주는 코미디를 앞으로도 계속할지는 잘 모르겠다. 50%라는 형식적 대표성을 확보하겠다며 졸업을 앞둔 사람들을 투표율 높이는데 이용하는 태도는 그리 많은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다.

나는 투표율이 50%에 모자라서 연장투표를 하는 현상의 문제보다 원칙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었다. 50% 투표율 규정은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회원의 선거권 행사를 강요하는 의미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내 기본 문제의식이다. 표현력이 부족해서 그 때나 지금이나 설득력 있지는 않지만 아마 내가 틀리지는 않을 거 같다. 처음 주장할 때는 정말 외로웠지만 점점 귀 기울여 주시는 분들이 늘어나서 반갑다. 올해는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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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보는 눈이 뜨여야 이런 저런 무엇을 갖출 수가 있는 것이다. 안고수비(眼高手卑)라는 말이 있어서, 마음은 크고 눈은 높아도 재주가 모자라 손이 눈을 따르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기도 한다만, 수비는 나중 이야기고 우선은 안고가 되어야 한다. 보는 눈이 먼저 열려야 분별을 하게 되고, 눈에 격이 생겨야 그 격에 이르려고 부지런히 손을 익힐 것 아니냐. 타고난 재주가 아무리 출중허고, 일평생 익힌 솜씨가 아무리 능란해도, 눈이 낮은 사람은 결국 하찮은 몰풍정(沒風情)을 벗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다른 무엇보다, 사람은 눈을 갖추어야 하느니라. 우리 사람의 정신 속에도 반드시 정신의 눈이라 할 혈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올바른 곳에 제대로 있고, 그 혈을 보는 눈이 밝은 사람을 세상에서는 '어른'이라 하지.
- 최명희, 『혼불』 4권 14~15쪽


지난해 한가위에 보름달을 보며 안고수비(眼高手卑)하지 말기를 다짐했었죠. 이번 한가위 보름달에도 똑같은 소원을 빌어야 하는 건 아닌가 자괴감이 드네요. 제 눈이 높은지는 확실치 않지만 재주가 낮은 건 분명하니까요. 최명희 선생님의 글을 읽고 제가 그나마 자신 있던(?) 안고(眼高)도 실은 제대로 못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꿈 꿀 수 있는 것이라면, 이룰 수도 있다(If yon can dream it, you can do it)”는 월트 디즈니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꿈에도 귀천이 있다면 너무 박절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거나 건정대며 바란다고 꿈이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죠.


이렇게 화끈거릴 때면 으레 “군자는 말이 행동보다 지나친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君子恥其言而過其行)”라는 논어 구절이 떠오릅니다. 저는 이 말을 퇴계 선생의 『자성록』 서문에서 처음 접했습니다. “옛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은 몸으로 실천함이 말에 미치지 못함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古者言之不出, 恥躬之不逮也)”라는 구절인데 뜻이 서로 통합니다. 혀로 살지 말고 손발로 살라는 죽비를 몇 대 맞으니 얼얼하네요. 서투른 정성이 교묘한 잔꾀를 이긴다(巧詐不如拙誠)는 한비자의 가르침을 저도 따르고 싶은데 의심이 많아서 걱정이에요.^^;


홍기빈 선생님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란 책 끄트머리에 실린 이병천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님의 발문을 길게 인용하고 싶네요. 무릎을 치면서 타이핑해둔 구절을 우연히 발견했거든요. 높을수록 낮아지고, 샅샅이 훑을수록 멀리 보는 그 오묘한 이치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선생님의 문제의식을 함께 음미해보면 좋을 듯싶네요. 세상을 세련되게 욕하겠다는 심보로 기교에 치중하고, 남의 흠 잡는 쾌감에 만족하는 제 자신을 반성해야겠습니다. 자기 둘레를 티끌만큼 바꾸는 게 버겁고, 돈이 되지 않는 가치를 도두보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제가 봐도 언짢은 엄살이지만요.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을 갖고 공부를 해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다시 요동치는 대전환의 소용돌이 속에 살면서 새롭게 그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즉 보편적인 것, 영원한 것을 추구하되 구체적인 때와 장소에 상응되게, 동료 시민들과 함께 길을 걸으며 더불어 소통하면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큰 것, 높은 것, 원대한 것, 우주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되, 아니 오히려 그것을 위해서라도 작은 것, 낮은 것, 미약한 것, 원자적인 것, 보이지 않는 것, 들리지 않는 것, 소멸한 것, 패배한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들이 연출하는 상호의존적인, 상관적 그물망의 숨결과 교감하고, 사랑하고, 애도할 줄 아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옛것, 고전, 선각, 대가, 그리고 외래적인 것으로부터 늘 배우고 익히되, 거기에 갇히고 그것을 물신숭배하면 위태로우며, 반성적으로 사유하고 무소의 뿔처럼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판잣집이라 해도 자기 집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한 나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오죽 좋을까.


제약회사 존슨앤드존슨의 윤리경영지침으로 ‘빨간 얼굴 테스트(Red Face Test)’라는 게 있습니다. 자신이 내린 결정이나 행동을 자기 가족에게 얼굴 붉히지 않고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윤리적인지 자문하는 과정이라고 합니다(허승호, 『윤리경영이 온다』, 동아일보사, 2004. 참조). 이보다는 덜 순박하긴 해도 GE에서는 자신의 활동이 신문에 나더라도 그와 같은 활동을 지속할 것인지를 잣대로 판단하는 Newspaper Test라는 것도 있다네요(P&G의 뉴욕타임스 룰도 같은 맥락인 듯싶습니다). 굳이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에게 설명하려고 할 것도 없이 제 자신이 얼마나 민망한 모습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가능성의 실마리를 잘 엮어봐야겠어요.


최근 겪은 흉사가 원인이었는지 여드름이 얼굴 동서남북으로 나서 연지곤지를 연상케 했습니다. 피부 재생이 잘 되는 청소년과 달리 성인은 여드름이 생기면 흉터가 많이 남는다는 걸 제 자신의 임상실험을 통해 입증해버렸네요. 본래 뽀송뽀송하던 낯도 아니었던 데다가 흉까지 지니 피부에 무심하던 저도 적잖게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이제 성인여드름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가 되어 원통합니다.^^; 연휴 동안 제 젊음과 트레이드 할(단순히 맞바꾸기보다는 자아실현을 위해 교환하겠다는 의미) 공부거리는 무엇일지 궁리해봐야겠습니다. 이만하면 작년과 똑같은 소원을 비는데 대한 궁색한 변명은 되겠지요?^^;


넋두리가 길었습니다. 아무쪼록 넉넉하고 재미난 한가위 되시길 바랍니다. 혹은 그러셨길 바랍니다. 아참 이 글은 미괄식입니다.^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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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니가 가르쳐준 것들

잡록 2007. 9. 10. 00:39 |

여러 경로를 통해 많은 분들이 애견 야니의 죽음을 애도해주셨습니다. 쑥뜸, 덕이母, 봄봄, lee856, 클리셰, joana, 권오성, 언어의 마술사, 윤정누나, 곽기민, 강기현, 윤선진, 한용철, 김지은, 이형신, 김준수, 이성구, 박태순, 이진원, 오규상, 이수영, 이청원, 황현식, 김소은, 정승현 등의 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덕분에 큰 힘을 냈습니다. 이어지는 잡글은 제게 따스한 마음을 보여주신 분들께 올리는 작은 선물입니다.


내내 헝클어져 있다가 간신히 추슬렀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너무 넘친 행동을 한 거 같아 민망하다. 애견을 잃은 감정을 쏟아내는 건 온전히 내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가끔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행동을 할 때도 있게 마련이니 너무 자책하지 말기로 하자. 펫 로스(pet loss)에 시달리고 나니 당분간 어지간한 서글픔에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어른이 된다는 건 제 둘레의 비극에 덤덤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아픔 끝에 놀라지 않고 성내지 않게 되는 건 아닐까 싶다. 나는 내가 그런 담담함을 체화하는 게 두렵다. 내 생애 줄서고 기다린 각종 애경사에 나는 처음처럼 웃고 울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결국 시간은 남은 사람의 편이겠지만 다시금 있을 때 잘해야 한다라는 평범한 진리를 곱씹게 된다.


지난 주말에는 비록 유해이기는 하지만 야니를 데리고 울산바위를 바라보기도 하고, 대포항의 짠내를 맡고, 화진포의 별장들을 둘러봤다. 통일전망대에 올라 북녘 땅을 가리켜보기도 했다. 고별 여행까지 다녀왔는데도 아직도 서운한 걸 보면 내가 마냥 무심한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반려견과 사별한 사람들이 으레 겪듯이 녀석이 생전의 재기 발랄한 모습을 뽐내는 꿈을 꾼 것도 벌써 두 번째다. 문득 그리워지면 하염없이 휑할 게다. 우울한 심사를 달래기 위해 프랑스 작가 장 그르니에의 <어느 개의 죽음>이라는 책을 읽었다. “우리는 살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살아남아 있을 뿐이다”라는 구절이 가슴에 사무친다. 한번뿐인 유한한 삶을 간소하면서도 진실하게, 올바르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녀석이 삶은 유한하다는 절절한 깨우침을 주고 떠났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불완전하고 그 불완전함을 보듬어가며 살아야겠다.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부질없는 결심도.


중학교 1학년 특별활동으로 논술반을 했다. 보신탕 문제가 나왔을 때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문화적 다양성을 드높이는 발표를 했다. 나는 그 때 브리지트 바르도를 소아병적이라고 몰아세웠다. ‘소아병적’은 내가 당시 구사하던 최고의 험담이다.^^; 최근 들어 알게된 것이지만 그녀는 푸아그라나 말고기도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서구우월주의자보다는 동물해방근본주의자가 더 맞는 듯싶다. 어차피 개고기 애호가들이 비판받을 이유는 거의 없다. 그러나 미감의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까지 원천 봉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부 서양인들의 옹졸함에 너무 성내지 말아야겠다. 야만인 운운했던 바르도의 거친 언사에 대한 반감을 좀 눅이고 개 식용 문화의 윤리적 측면을 살펴보는 넉넉함을 뽐내보자.


어린 시절 나는 문화상대주의라는 보검 하나면 더 이상 논쟁이 필요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세상 거의 모든 것이 그렇듯이 문화상대주의도 양날의 칼임을 알겠다. 문화상대주의가 지나치면 현재 상황을 맹목적으로 옹호해버릴 우려가 있다. 일체의 윤리적 판단을 포기한 채 다양성이 얼마나 잘 만개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문화상대주의에는 생태주의 가치가 들어있지 않다. 생태주의도 상대화된 가치의 하나로 존재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환경보호와 생명존중이라는 생태주의 가치는 향후 더욱 확산될 인류의 지향점이 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지속적인 성찰과 토론이 요구된다. 물론 개고기 논쟁에서 상대적 가치를 대체해서 보편적 가치가 얼마나 규정력을 발휘할지는 쉽게 가늠하기 힘들다. 인간의 생존 자체가 다른 생명체를 죽임으로써 가능하다는 확고부동한 사실 아래서 우리의 언행은 제약될 수밖에 없다.


이럴수록 가까운 곳부터 시작하는 게 온당하다. 『맹자』에 나오는 제(齊)나라 선왕(宣王)의 이야기가 이런 고심을 푸는 실마리가 된다. 선왕이 제사에 쓰이기 위해 끌려가는 소가 벌벌 떨고 있는 것을 보고 가여운 마음이 들었다. 선왕은 소 대신 양으로 제사를 지내라 명한다. 백성들이 소를 아껴 양을 쓴 왕을 인색하다고 여긴 모양이다. 하지만 맹자는 눈앞의 소가 죽는 걸 차마 보기 어려운 마음이 어짊을 베푸는 것이라 평가한다. 이기동 선생은 “보이지 않는 양에 대해서도 똑같이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식의, 머리 속에서 이끌어낸 합리적 사고에는 情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인 행동력을 동반하지 못한다”라고 풀이한다.


“소는 보았고 양은 보지 못했다(見牛未見羊)”라는 구절에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엿본다. 보지 못했던 양을 덜 불쌍히 여기는 건 너무 자연스러워서 당위적 혹은 합리적 가치를 들이대기 무안하다. 제 둘레의 것들에 연민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더 먼 곳의 아픔을 헤아리는 게 가능할까. 원거리로 건네는 가련함은 관념화된 추상은 아닐까. 이런 논리 혹은 의심을 이용해 국내의 빈곤층 문제는 나 몰라라 하면서 북한 주민의 인권을 걱정하는 걸 비판할 수 있다. 그런데 마찬가지 근거로 국내의 취업난은 외면하고 북한 지원에만 열중하는 걸 통박할 수도 있다. 뭔가 이상하다. 견우미견양의 가르침을 이렇게 소비하는 건 그리 적절한 처사가 아닌 듯싶다. 이런 식으로 편협한 삶을 부추기자는 의미는 아닐 게다.


견우미견양에서 단순히 인간의 한계를 지각하는 데 그쳐서는 곤란하다는 함의를 찾아보면 어떨까 싶다. 소를 대신해 양을 쓰는 걸로 만족하지 말자는 뜻이다. 궁극적으로는 나와 덜 친밀한 것까지 측은지심을 품는 실천을 꾀해야 한다. 측은지심을 자기 주변부터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방점을 찍을 부분은 측은지심을 바지런히 넓히는 데 있다. 여기까지 동의한다고 해도 측은지심이 확산되는 순서를 어떻게 정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국내 경제가 충분히 성장하면 비로소 북한을 도울 수 있다거나, 통일까지 이뤄야 국제 구호에 나선다거나, 인류가 충분히 평안해질 때 동물을 돌보겠다거나 하는 식은 분명 아닐 게다. 이렇게 단순한 선후관계였다면 이렇게 머리 아플 일도 없다.


반려견을 어떻게 바라보냐는 문제도 측은지심을 어떻게 배분하느냐는 서로 다른 잣대의 엉김이다. 쉽사리 합의점을 도출하기는 힘들 게다. 다만 어느 정도의 경향성은 도출할 수 있겠다. 개의 역할과 위상이 식용견에서 반려견으로 바뀌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흐름이다. 정약용 선생이 흑산도에 유배된 형 정약전의 병약함을 걱정하며 개장국을 권하던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소나 돼지와 달리 활동성이 강한 개는 축산 사육이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더군다나 이미 비만이 골칫거리인 시대에 굳이 개고기를 보양식으로 예찬하는 건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반려동물 가운데 가장 앞자리에 있음이 명백한, 인간과 가장 친한 친구로 일컬어지는 개에 대한 예의는 아니라는 데 마음이 기운다. 인간에 대한 예의도 묽어지는 시대에 호사스런 감상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창 진행중인 한국과 EU와의 FTA 협상 과정에서 동물복지라는 기준을 놓고 쟁점이 되었다. EU는 교역 대상이 되는 식용 동물의 권리를 보호할 것을 요청했다. 개발도상국의 열악한 인권, 보다 가까이는 북한 어린이들의 참상을 틈틈이 목도하면서 감히 동물권을 논하다니! 학대받지 않은 동물의 고기가 더 맛있다는 이유를 들기도 한다지만 유럽인들의 동물 사랑에 기인한 바가 큰 듯싶다. 유럽의 동물 애호가 따져보면 제국주의 식민통치로 말미암아 쌓인 옹골진 경제적 풍요 덕분이라고 핀잔할 수도 있겠다. 설령 위선일지라도 인간복지를 넘어 동물복지를 고민하는 그네들의 애틋함이 부럽다. 배우고 싶다.


동물복지의 사상적 연원을 철학자 벤담의 공리주의에서 찾는다. 공리주의하면 계산적이고 야박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신이 번쩍 든다. 벤담은 동물이 사람과 똑같이 감각이 있으므로 사람처럼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람을 동물에 견주어 특별히 취급해야할 까닭이 없다며 동물을 사람과 다르게 취급하는 걸 거부한다. 반려동물을 길러 본 사람들은 동물이 희로애락을 느낀다는 걸 믿는다. 근대과학도 최소한 척추동물은 고통을 지각한다고 확증한단다. 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보다 확장했다. 싱어는 공리주의 전통을 계승해서 자신의 이익과 타자의 이익에 동등한 비중을 둬야 한다는 이익 평등 고려의 원리를 역설한다. 그는 어떤 존재들이 쾌락과 고통을 느낀다는 점에서 같다면 그들은 동등한 도덕적 배려의 대상이 돼야한다고 설파했다. 인간과 동물을 차별하는 종차별주의(speciesism)는 잘못이라는 그의 주장에 동감한다.


싱어는 “인간은 살아 있는 것들의 최대 다수를 위한 최대의 선을 행해야 한다”라는 명제를 제시한다. “동물들을 일정한 목적을 위해 이용함으로써 얻어진 선이 과연 인간이 그 동물들에게 끼치는 해악을 초과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라는 대목에서는 그 고운 마음씨가 고맙다. 그간 인간다운 삶에만 천착하다가 인간 중심주의에 빠진 건 아닌가 반성을 해본다. 그는 동물해방론에서 그치지 않고 “상대적으로 풍요한 국가의 국민들이 기후 변화와 극단적 빈곤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제해야 할 의무가 있다”라는 데까지 나아간다. 싱어의 견해가 다소 성급해 보이기는 하지만 견우미견양이 희구하는 바와 얼추 비슷하다고 여겨진다. 더 탐구해봐야겠다.


동물 같이 힘없는 존재에 대한 윤리적 처우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회가 다른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데도 열심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연역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를 푸대접하면서 장애인을 염려하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어떤 사회의 후생수준은 그 사회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후생을 누리는 구성원의 효용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라는 롤즈의 사회후생함수에 기반한 추론이다(사회후생함수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니 더 자세한 사항은 미시경제학 교과서들을 참조해주세요). 경제적 보탬이 되지 않는 것에도 무심하지 않는 사회의 삶의 질이 더 높다고 직관적으로 확언한다(이걸 실증적으로 입증할 수 있을지 궁리해봐야겠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치와 권리를 부여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게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 가야할 방향이라고 본다. 잉여인간, 잉여동물들을 박정하게 내치지 않는 세상을 갈망한다.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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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니야, 고이 잠들길

잡록 2007. 8. 30. 03:23 |

8월 29일 새벽 익구네 애견 야니가 향년 7세로 운명했습니다. 전날 위 절개술을 받고 잘 회복하던 중에 일어난 일이라 더 경황이 없네요. 그리 큰 수술이 아닌데다 수술도 잘 되었기 때문에 안심하던 터라 충격이 큽니다. 원체 갇혀 있는 걸 싫어하는 녀석이라 처음 겪는 입원에 쇼크사한 게 아닐까 막연히 추정하고 있습니다. 삼가 애견 야니의 명복을 빕니다.


안녕 야니야... 형아다. 네가 하얀 천에 덮여 있었을 때 나는 담담했단다. 천을 들추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쓰다듬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나는 침착했었지. 늘 뜨겁던 네 몸이 서늘할 때도 나는 참을 수 있었어. 그런데 네 귀가 빳빳하게 굳어 잘 안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는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구나. 그렇게 튼튼하고 활기차던 네가 어떻게 병실에서 하룻밤을 못 넘기고 그렇게 되었는지 참 슬프다. 따갑다.


그간 하도 집 밖 나서기를 좋아하는 너를 농담 삼아 자유견(自由犬)이라고 불렀는데 철창에서 하루도 못 참았네. 우리들 곁에 한시도 떨어지기 싫어하던 너는 실상 외로움을 많이 탔었지. 네가 안정을 취하려면 들여다보지 않는 게 좋다는 병원의 충고대로 한 건데 그 사이를 못 참다니 안타까워. 결국 내가 건넨 마지막 말은 수술실 들어가기 전에 네게 건넸던 “안녕”이었네. 참 멋없게 헤어졌다. 네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게 많이 아쉽다. 곁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해.


집이 참 적막하네. 지난 주말에 사다놓고 몇 끼니 먹지 못한 채 고스란히 남아있는 네 밥, 네가 그렇게 좋아하던 간식과 껌들 그리고 쌀과자, 네가 즐겨 가지고 놀던 쿠션과 공들, 꼭꼭 씹어 늘 젖어있던 네 이불까지 덩그러니 남겨져 있어. 사진첩에 있는 네 모습에 자꾸 눈길이 간다. 네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같이 왔던 꼬질꼬질하던 수건에서 어찌나 안 떨어지려고 했었는지. 네가 가지고 놀던 물건들에 애착이 강한 걸 잘 알고 있는지라 뭘 좀 버리려고 해도 선뜻 결심이 안 서네. 다른 건 몰라도 한겨울에 입던 노랑병아리 옷은 차마 못 버릴 거 같아.


네 이름 야니에 내가 들 野, 진흙 泥라는 한자를 붙였지. 이 말처럼 개구쟁이 같던 너, 말썽꾸러기 녀석. 하얀 털에 눈 두 개, 코 하나만 새까맣다고 해서 지은 삼점(三點)이라는 아호(雅號)가 겸연쩍게 되었네. 온갖 복을 가져다준다는 뜻으로 지은 네 보금자리 이름 백복헌(白福軒)도 허전하다. 내 호사스런 취미 때문에 붙였던 이 이름들이 지금은 가슴에 사무친다. 그만큼 네가 각별했었던 모양이야. 야구리, 야구리우스, 야굴장군, 나불나불이, 복실이 등등 다채로웠던 별명들도 이제 주인을 잃었구나.


사람은 영악한 동물이라 나도 조금 지나면 너를 잊고 살겠지. 아니 그 말은 아무래도 너무 박절하다. 사실 너를 영영 못 잊을 거 같아. 무뚝뚝한 내가 네게 정이 많이 들었어. 내가 마냥 무심한 놈은 아니라는 걸 너로 인해 깨우쳤다. 이 아픔은 무(無)로 돌아간 너를 위한 것만은 아니야. 결국 내 자신을 위한 괴로움이겠지. 함께 나눌 수 있었던 내일의 가능성을 묻어야 한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그러나 마땅한 감정이랄까. 내 일부가 소실된 듯한 이 상실감. 미어진다는 기분이 이런 것이구나. 마음이 아리다. 저민다.


너는 내 생애 처음으로 겪는 지근거리(至近距離)와의 이별이다. 첫 죽음이라는 게 일개인에게 유형무형의 많은 영향을 미치겠지. 천수를 다 누리지 못하고 보내 더 비통하다. 어쩌면 네가 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의 불행을 모두 안고 그렇게 빨리 가버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너와 한 식구가 된 지난 4년 2개월 간 적어도 내 자신한테는 나쁜 일이랄 게 없는 나날들이었거든. 쌔근쌔근 잠든 네 모습을 보며 가끔 네가 내게 행운을 가져다 주는 건 아닐까 생각했지. 그간 참 고마웠어. 내가 일자리도 얻고 돈도 버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옆에서 좀 더 지켜보지 너는 날 뭘 믿고 그리 일찍 떠났니.


귀여운 내 동생아, 너 덕분에 내가 많이 웃었다. 너를 도닥거릴 때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었다. 지난 주 어느 날 내가 술 마시고 늦게 들어갔을 때 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나를 맞이해 준 네 모습이 선하다. 그게 마지막으로 네 단잠을 깨운 게 되었을 줄이야. 나는 사후세계를 믿지 않아. 천국과 지옥이 있을 것 같지 않고, 극락세계와 내세도 도무지 믿기 힘들어. 입으로는 명복을 빈다고 하지만 사실 네 죽음은 네게 있어 우주의 소멸에 지나지 않겠지. 한번뿐인 네 삶에 내가 어떤 의미였을지 모르겠다만 좋게 기억해주길 바랄게.


만약 내 믿음이 틀린 거라 우리가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면 내가 너를 알아볼까? 네가 나를 반길까? 이 부질없는 상상조차도 버겁다. ‘쭉쭉이’라고 불렀던 네 기지개가 그리울 게다. 산책 가자고 은근슬쩍 조르는 네 투정이 떠오를 게다. 다른 강아지들만 보면 짖어대던 네 극성맞음마저 추억할 게다. 매일매일 떼 줄 눈곱이 없어서 서운할 게다. 자기 전에 오줌 누고 오라고 엉덩이 톡톡 쳐주던 손동작을 괜히 해볼 게다. 첫새벽에 꼬리 흔드는 녀석이 없어서 쓸쓸할 게다. “앉아”와 “손”밖에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늘 즐거웠던 간식시간이 절실할 게다.


표현이 과격하기는 하지만 세상에는 개보다 어렵게 사는 사람도 많고, 개만도 못한 사람도 제법 있다. 너와의 짧은 인연을 딱한 사람을 헤아리는데 쓸게. 개만도 못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네 못 다한 삶까지 끌어다가 열심히 살게. 응원해주렴. 널 끔찍이 아끼던 어머니가 상심이 크시다. 슬퍼하되 너무 다치시지 않게 도와주라. 말이 너무 길었다. 오늘이나 내일쯤 화장장에서 네 유해가 돌아오면 네가 자주 거닐던 산책로를 함께 걸어야겠다. 늘 그랬듯이 나는 이야기하고 너는 듣기만 하겠지. 묵동천에서 부는 바람을 네가 느꼈으면 좋으련만.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서 “형아 왔다”고 외치고 싶은데... 네가 없었다면 내 삶은 얼마나 가난했을까.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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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개업식 날 친절봉사 외쳐 대면서 맛도 좋더니
실컷 놀다가 개학식날 굳은 맹세 하더니
변하더군 흐지부지 사랑이 식듯이 별 가책도 없이
원래 뭐 그런 거 아니냐더군

- 이승환, 「첫날의 약속」 中


아마도 이승환의 노래는 정채봉 작가의 「첫마음」이라는 시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싶다.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펼치던/ 영롱한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으로 시작하는 이 시는 첫마음이 흔들릴 때 찬찬히 소리 내어 읽어볼만하다. 공익근무를 수행한지 딱 절반의 시간이 지난 오늘 이 시를 꺼내들었다. 이제 정상에서 맑은 공기를 쐬고 하산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은 날들을 추슬러야겠다.


요근래 근무 관련한 감사 준비를 하면서 우리의 예비군 행정체계가 이렇게 꾸려져야 하는가 많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일단은 방통처럼 밀린 일들을 처리하기로 했다. 삼국지연의에는 자신을 겨우 뇌양현 현령으로 내려 보낸 유비에게 삐친 방통이 고을을 다스리지는 않고 매일 술 먹고 노는 대목이 나온다. 유비가 이 소식을 듣고 장비와 손건을 감사관(?)으로 내려 보냈다. 장비가 놀고먹는 방통을 윽박지르자 방통은 태연히 말한다. “겨우 백리밖에 안되는 고을의 작은 시빗거리를 분별하는 게 무에 그리 어려운 일이겠소?” 그리고서는 반나절도 안 돼 백여일이나 밀렸던 일을 수월하게 처리해버린다. 장비가 감동하고 유비도 자신의 과오를 뉘우쳐 방통을 중용하게 되었다 뭐 이런 내용이다. 그래도 벼락치기라도 하는 사람이 낫다.


구청으로 와서 처음 업무를 배울 때 선임이 없어서 여기저기 물어서 조금씩 배워나갔던 기억이 난다. 잘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 가를 절절이 체험하는 값진 경험이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어찌나 곤혹스러웠던가. 나는 “아는 것이 힘이다”가 대개는 옳고 바람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내 주업무인 예비군, 민방위 행정에 대해 적잖이 익숙해졌지만 역시나 아직도 낯설다. 민방위 업무는 내가 좀 간소화해도 무방한 재량의 여지가 좀 있지만 예비군 업무의 경우 개인이 사사로이 건드리지 못하는 번문욕례(繁文縟禮)가 너무 많다. 하긴 이런 번문욕례가 고용을 창출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니 구박하려는 마음이 약해진다.^^; 최근에 전산화를 통해 업무 통합을 하려고 애쓰고는 있다지만 중간에 낀 아랫것들은 바뀌는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고생일 뿐이다. 그 방향이 옳다고 보기에 조금 번거로움을 감수하고는 있지만 얼른 정착이 되어 행정 간소화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예비군 제도가 현역군인 다음으로 국가안보의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선의를 인정하더라도 예비군 제도는 국민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개편하되 좀 더 양질의 작전수행력과 동원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여당은 당정협의를 통해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예비군 복무 기간을 전역 후 8년에서 5년으로, 훈련 기간을 6년에서 4년으로 줄이기로 합의한 바 있다. 세부적인 단축안까지 내놓은 것은 아니지만 국민의 부담을 덜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은 평가할 만 하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이 된 짐을 덜기가 말처럼 쉬운 일인가. 예비군 복무기간 단축이 포함된 국방개혁기본법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어디 그 뿐인가, 민방위 편성 연령을 40세로 인하하고, 교육시간을 4시간으로 축소해 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이는 민방위기본법도 마찬가지로 상정만 되어 있고 처리가 안 되고 있다. 논어의 눌언민행(訥言敏行)이 떠오른다. 말은 좀 어눌해도 행동은 민첩하게 하는 대표자들이 좀 더 많아져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대리인비용을 좀 줄일 수 있으리라.


여하간 내가 맡고 있는 일의 범위나 폭이 좁은 편이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업무일지도 매일 퇴근 30분 전에 꼬박꼬박 뽑던 것이 퇴근 5분 전에 부랴부랴 뽑거나, 그마저도 못해서 다음 날로 미루기까지 한다. 공문 처리도 당일 처리 원칙이 무너지고 급한 게 아니라면 두어 개 모일 때까지 놔두기 일쑤다. 작년에는 혼자서도 거뜬히 들던 통합방위 상황판이 요즘에는 혼자 들기가 힘에 부쳐 둘이서 같이 들어야만 한다. 더군다나 매일 8시 30분까지 출근하던 것도 조금씩 늦춰져 이제는 40~45분에 간신히 출근하고 있다. 매일 하던 사무실 청소도 점점 간소화되고 있다. 의식하지 않아도 내 몸과 마음이 하산할 준비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짬이란 칸트의 시계만큼이나 정확하다.


연애감정을 유발하는 화학물질에 유효기간이 있다는 건 꽤 알려진 연구결과다. 사랑의 감정을 일으키는 호르몬의 지속시간을 이탈리아 파비아대 엔조 에마누엘레 박사팀은 6개월, 미국 코넬대 신디아 하잔 교수팀은 18~30개월, 이탈리아 피사대 연구팀은 2년 정도라고 발표했다. 사랑의 호르몬이 사라진 자리에 귀여운 감정을 느끼게 하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채워진다고도 하지만 사랑의 가슴 뜀마저 항체가 생긴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권태란 참 무시무시한 녀석이다.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면 만년으로 하고 싶다”는 중경삼림의 대사는 생리적 유효기간을 넘어서기 위한 의지의 표출일까.


적어도 세금은 축내는 녀석이 되지 말자고 결심하며 근무를 시작했다. 조금 지나고 나서는 기왕이면 내가 받는 세금의 열배 값은 하자고 호기롭게 말했다.^^; 그러나 소집해제의 그 날까지 세금의 열배 값을 해내기란 생각보다 무척 어려운 일이다. 사람이 늘 한결같고자 하는 건 과욕이라는 중학교 2학년 시절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한결같은 삶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던 내게 그 말이 얼마나 위안이 되었던가. 그러나 그 말뜻은 의욕적으로 품었던 초심을 함부로 내팽개치라는 뜻은 아니다. 마음이 흐트러질 때는 언제든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여유를 가꾸라는 준엄한 가르침이다.


권태가 도둑처럼 찾아와 내가 품던 겸양과 열정을 흔들 때 다시금 내 자신을 다잡는 견결한 자세를 욕심내보자. 자동차 사고는 초보운전일 때보다 제법 운전이 익숙할 때 일어나게 마련이듯이 모든 화근은 이쯤 하면 되었다 싶을 때 시작된다. 언제나 처음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첫마음을 건사해내는 하루하루가 모인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처음처럼 살 수 있는 사람은 기본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그 기본은 진짜 실력에서 나온다. 변치 않기 위해 부단한 자기혁신을 마다하지 말자.


처음처럼 소주가 예전 山 소주의 시장점유율을 넘어 선전하고 있는 모양이다. 수도권 소주 시장 독점 구도를 걱정하던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앞으로 처음처럼을 마실 때만이라도 내 형형한 눈망울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다짐을 해봐야겠다. 앞으로 남은 절반의 공익근무 기간 동안 더 깊어지고 넓어지도록 노력하자. 근데 2007년 8월이 오기는 하는 걸까?^^; - [小鮮]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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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부부를 위하여

잡록 2006. 7. 3. 03:08 |

(제목은 고종석 선생님의 칼럼 「11월의 新婦를 위하여」 패러디입니다^^;)

청첩장을 들고 용산역 어디께를 찾아가는 길은 기쁘고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좋은 사람들의 소중한 결혼식에 가는 길이 이토록 즐거운 일인지 이제 알 것만 같다. 어른이 되어 가는 징표 중에 하나가 제 앞으로 전해오는 청첩장도 해당되리라. 지난 3월 수옥누나가 내 생애 첫 청첩장 수령의 영광을 안기신 후 7월 첫 번째 일요일에 치러진 익균님과 승효님의 청첩장이 두 번째다. 특히 이번에는 신랑과 신부를 모두 잘 아는 재미난 상황이기도 하다. 사랑에 관한 명언이 하고 많지만 내가 특히 꼽는 건 실러의 말이다. "어디서나 기만과, 위장과, 살인과, 독약과, 위증과 배반이 있다. 그러나 단 하나 순수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깨끗한 인간성 속에 깃들어 있는 우리의 사랑뿐이다."


두 분은 고종석 팬카페를 통해 알게 된 분들이다. 그래서 나는 카페 아이디인 봄봄님과 박강님으로 부르는 게 더 익숙하다. 두 분이 처음 만나신 것이 작년 9월초에 있었던 카페 정모였으니 딱 10개월만에 카페 커플 1호라는 전무후무할 기록을 세우신 셈이다.^^; 사람은 사랑할 때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플라톤이 말했다지만 이 두 분은 그럴 공산이 매우 크다. 두분 다 국문학을 배우신 분들이라 보니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나시다. 두 분이 대학로 이음아트에서 정답게 책을 고르실 때 두 분 뒤로 쏟아지는 광채 혹은 깨알을 온몸으로 받아내던 유쾌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간 단벌신사로 지내다가 이번 결혼식 참석을 핑계로 여름양복을 한 벌 맞췄다. 이렇게 의상까지 신경 쓴 까닭은 축가를 불러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기 때문이다. 음치를 약간 면한 고음불가인 나도 함께 축가를 불러야 한다는 강권(?)을 끝끝내 마다하지 못했지 뭔가.^^; 카페에서 알게된 조르바님과 당일 날 알게 된 두 분을 포함해 네 사람이 급조되어 축가를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난감한 마음만 가득했지만 아마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축가가 될 것이 틀림없기에 그냥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이 다음에 내가 결혼식을 치르게 되면 축가는 꼭 노래 잘하는 준비된 사람을 고르리라 굳게 결심하기는 했지만.^^;


축가는 정호승 시인의 '우리가 어느 별에서'라는 시에 안치환이 곡을 붙인 노래였다. 인터넷에서 찾아서 들어보고는 다행히 그리 높지 않겠거니 싶었는데 막상 악보를 받아 들고 보니 내 음역을 뛰어넘는 고음도 있고 난리도 아니었다. 역시 가수의 첫째 조건 가운데 하나는 높은 곡조를 그리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데 있지 않을까 싶다. 당황하는 내 마음이 통했는지 음을 좀 낮춰 부르기로 했고 그제야 좀 상황이 호전됐다. 실제 축가를 부를 때 떨리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고음처리 불안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립싱크도 좀 하고 말았다. 추가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며 앞으로 결혼식장에서 축가를 들을 때 딴청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비문학 청년인 내가 문학을 집어드는 경우가 흔치는 않지만 인연이 닿아서 정호승님의 시집은 몇 권은 읽어봤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시는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로 시작되는 시를 소리내 읽고 나면 힘이 생긴다. 이 밖에도 "신촌 뒷골목에서 술을 먹더라도/ 이제는 참기름에 무친 산낙지는 먹지 말자/ 낡은 플라스틱 접시 위에서/ 산낙지의 잘려진 발들이 꿈틀대는 동안/ 바다는 얼마나 서러웠겠니(산낙지를 위하여 中)"나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내가 사랑하는 사람 中)" 같은 주옥같은 시구를 저장해두고 써먹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시 좀 읽어야겠다.


간만에 뵙는 young님과 lee856님과도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함께 사진 촬영을 했다. 신랑과 신부 어느 편에 설까 하다가 완전 가운데에 섰다. 지금 생각하니 자리를 정말 잘 잡은 거 같다. 어디 가서 이 정도의 기민한 순발력만 있다면 좋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피로연 음식은 뷔페였는데 늦은 점심이라 시장이란 반찬까지 곁들여서 무척 달게 먹었다. 다만 음식 분배에 실패해서 이런 기회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육회를 덜먹은 건 좀 실책이었다. 사실 내 식대로 했더라면 후식 이런 거 없이 마지막 접시까지 육회 등을 채워서 먹었어야 했는데 대화 나누느라 깜빡했다. 조르바님이 사숙하시고 봄봄님과 박강님이 함께 강의를 듣기도 했던 강유원 선생님과 대화 나누는 재미에 내 페이스를 잃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메밀국수를 고작 두 그릇밖에 안 먹은 건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다.^^;


강유원 선생님이 공부하셨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자신이 비참해졌다. 사람이 어떻게 하루에 18시간을 공부할 수 있을까. 18시간을 놀라고 해도 졸려서 못할텐데 말이다. 선생님이 인세로 1000만원 모으기까지의 험난한 세월을 듣다 보니 이 나라의 부박한 학문 풍토가 개탄스러웠다. 글로 벌어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다 보니 곡학아세나 연줄 타기의 유혹이 스며드는 건 아닐까. 인세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 이 나라에 고작 한 손가락 꼽을 수준이라니 無恒産無恒心(무항산무항심)이 떠올랐다. "일정한 생활 근거가 없으면 한결같은 마음이 없어진다"라는 말로 요즘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이들의 단골 문구이기도 하다. 백성들이 마음의 안정을 가질 수 있고, 제 영혼을 건사할 수 있는 경제적 기초를 마련해야 한다는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맹자는 "일정한 생활 근거가 없으면서도 항상 꾸준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는 오직 선비만이 가능하다(無恒産而有恒心者, 惟士爲能)"고 말한다. 여기서 선비는 학자나 공직자쯤을 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런 분들 가운데 무항산은커녕 유항산인데도 무항심인 경우가 많다. 신영복 선생님은 "얼마만큼의 소유가 항산(恒産)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항산이 왜 항심을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우리의 생각을 정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항산이 항심을 지탱해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항산을 마련하는 일보다 항심을 지켜주는 문화를 먼저 고민해야 하는 역순(逆順)을 밟아야"한다면서 "항산과 항심에 대한 생각을 달리다보면 결국 우리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더 많은 소비, 더 많은 소유를 갈구하게 하는 욕망의 생산구조에 생각이 미치게"된다는 것이다("유항산(有恒産) 무항심(無恒心)." 신동아 권두수필 1996년 11월호 참조).


강유원 선생님은 내 전공은 경영학과라고 말씀드리자 "경영과"가 아니냐고 반문하셨다. 學자를 붙일 수 있느냐의 함의가 무척 묵직하게 다가왔다. 나는 과연 이런 맹렬한 비판을 살뜰히 방어하며 學자를 사수하는 경영학도가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미제스는 『자유주의』라는 저서에서 "자유주의가 인류의 물질적인 복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쏟는 것은 그것이 정신적인 것들을 경멸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어떠한 외형적인 규제조치로도 인간의 가장 내밀하고 고상한 것에 도달할 수는 없다는 확신 때문"이라고 말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경영학의 성격을 이해해봄직하다. 경영학은 유항심(有恒心)보다 유항산(有恒産)에 관심이 많다. 모든 학문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결국 비슷하겠으나 가는 길은 다를 수 있다고 본다. 부디 물질적이고 외형적이라는 이유로 學자에 인색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여하간 강유원 선생님의 글을 좀 더 찾아 읽고 배우고 싶다.


강유원 선생님이 먼저 자리를 일어나시고 새우범생(나), young님, lee856님, 조르바님과 2차까지 이어지는 환담을 나눴다. 특히 독문학을 공부하시는 조르바님의 대학원 진학과 독일 진출이 화제가 되었는데 대학원 진학을 사실상 포기한 나로서는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미 다 꺼트려 놓은 대학원의 불씨가 살아나지는 않을 것 같다. 공부를 하기에는 내 자신이 놀기 좋아하고 게으르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고종석 팬카페에서 뵙게된 분들은 내게는 너무 과분한 사람들이다. 오래도록 함께 환담을 나누고픈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이런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내가 주눅 들기보다는 좀 더 바지런해지는 수밖에 없겠다. 내 둘레에 이렇게 열심히 가치 있게 사는 사람이 많은 것에 대한 최선의 보답은 나도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리라. 우리는 조만간 신혼집 집들이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오늘 하루 몸과 마음 모두 포만감에 행복했지만 밤이 되니 또 허기가 졌다. 오늘 하루 어떻게 밥 벌어먹고 사느냐는 고민을 너무 많이 했나보다. 근심걱정일랑 미뤄두고 된장찌개와 호박전으로 맛나게 늦은 저녁밥을 먹었다. 오늘 맺어진 두 분이 때로는 채우고, 더러는 비워가며 알콩달콩 재미나게 사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 [小鮮]


[우리가 어느 별에서] - 정호승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

해뜨기 전에
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
저문 바닷가에 홀로
사람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

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
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
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
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

Posted by 익구
:

메신저 상에서 후배와 수다를 떨다가 술자리에서의 진지한 대화 시도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주제와 관련도 있는 데다 횡설수설의 궤적도 살필 겸 약간 인용해봤다.

익구 :
분단 상황이 얼마나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저력을 갈아먹고 역량을 훼손하는지 참 슬픈 일이야.
지력도 소모되고, 재력도 더 들고, 인권도 침해되고
여하간 이 분단체제를 무탈하게 극복해내는 거
우리 세대에서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진짜 우리 다음 세대에 이게 반복되면 진짜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할 듯...

B군 :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이것저것 보게 되면서
우리나라의 분단 해결이 점점 멀게 느껴져요. ;

익구 :
동북아에서 신냉전이 도래할지도 모르는 국제정세도 불안한 만큼 스스로 능력을 키우면서도 확고부동한 평화통일의 원칙을 지켜내는 수밖에...
키득키득 이게 다 김정일 일당 때문이야. 막 이러고
개인적으로 북한 내부의 급변이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러나 그런 식의 통일은 동독의 붕괴보다 더 치명적이고 위험하다는 점에서 함부로 공언할 일은 아니지...

B군 :
급변에 중국이 개입하게 되면 특히 그럴 것 같구요.

익구 :
그러나 나라가 망하려면 속절없이 망하는 게 고금의 상례니 신라가 항복하고,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국치를 맞았듯이 그렇게 스스로 몰락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봐.

B군 :
스스로 몰락한 다음에도 중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아서요. 중국은 북한과 경제적-군사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몰락 이후에 북한에 진입하려고 시도할 것 같아요.

익구 :
중국이 한반도 북부로 다시 막 밀려들어온다. 덜덜덜
역시 역사는 반복되는가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아마 다시 중국이 개입한다면 희극이 되길 바라야겠다. 키득키득
암튼 이런 주제로 오프라인에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은근히 재미날텐데...
우리도 술자리에서 이런 식의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이야기를 많이 나눌 필요가 있어.

B군 :
예전부터 이야기되던 '대학생 다운 술자리 화제'인 것 같네요. 단순한 일반화인지는 모르겠지만 ^^;;

익구 :
아 예전부터 그런 이야기가 있었던가
뭐 당장 대학 새내기에게 그런 걸 권하는 건 무리고...
산전수전 겪은 대학 2년차 이상의 사람들은 그런 걸 함 추진해볼 필요가 있지.
귀한 시간 내서 다들 만났으니 기왕이면 좀 더 가치 있는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고.

B군 :
좋죠.

익구 :
근데 나도 말은 이렇게 하고 쉽지는 않다니까.
초동을 끊는 게 완전 압박

B군 :
일단 술이 들어가면 또 힘들지요.

익구 :
뭐 근데 일단 또 함 성사시키면 대박인 경우도 있으니까.


술자리에서 조금 진지하고 다소 심각한 이야기를 하면 술맛이 떨어진다고 느끼는 건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화해와 타협의 술자리는 차이나 갈등을 녹이며 대동단결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대개의 통상적이고 평범한 술자리에서는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할 수도 있고, 이슈에 대한 찬반을 나눌 수도 있는 것이다. 내 또래의 술자리는 그게 잘 안 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여럿이 모이는 대학 행사 뒤풀이의 경우에는 서로 인사 나누고 근황 묻고 약간의 상담을 나누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버린다. 더군다나 술을 더 마시네 못 마시네 이런 식의 실랑이라도 벌어지면 거기에 집중하느라 다른 이야기를 할 여지를 많이 줄여버린다.^^;


지난 주말 자취하는 친구 녀석의 집에 가서 족발과 바나나킥, 새우깡과 소주를 놓고 밤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는 스크린쿼터를 반대하는 영화인들이 FTA 반대를 주장하는 게 언짢다고 했다. 나는 농민과 영화인이 얼마든지 연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식으로 약자와 소수파가 연대하는 건 반가워하고 권장할 일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친구는 스크린쿼터에 그리 관심도 없을 장동건이나 이준기 같은 유명 배우가 1인 시위 등으로 이목을 끄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다. 나는 그네들이 설령 스크린쿼터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지 않더라도 유명하지 않은 배우, 이름 모를 영화 관계자들을 위해 사회적 발언을 하는 건 좋은 일이라고 반박했다. 미국 민주당의 케리가 갑부지만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책을 보다 많이 내는 정당의 대통령 후보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예를 들어가며 사회적 연대를 자꾸 차포 떼듯이, 양파껍질 벗기듯이 축소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기껏해야 보수적인 나이지만 개혁이나 진보를 말하고 실현하는 사람들도 보란 듯이 성공해서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사회가 좀 더 건실하고 역동적일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밖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적잖이 의견 접근을 이루기도 하고 끝끝내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기도 했다. 안주 삼아 나눴던 이야기들이 훌륭했는지 취하지도 않고 어찌나 맑은 기운이 맴돌던지.


이른 아침 한적한 전철을 타고 집에 오는 길에서 앞으로 이런 술자리는 많이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올해 초에 세웠던 목표 중에 하나가 내가 먼저 나서서 잡는 약속, 내 주도로 성사시키는 모임을 꾸리지 않는 것이었다. 조금 차분하게 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확보하고 지인들과 교류 나누는 재미를 적정하게 통제하면서 좀 더 유익한 존재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려는 거창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 다짐을 굳건하게 지키지는 못했다. 내가 먼저 연락해서 놀아달라고 조르고, 날을 잡은 게 하나둘 쌓이면서 나중에는 자포자기 심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밤의 대화처럼 유쾌한 모임이라면 좀 더 가져줘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좀 더 바빠지기 전에 그나마 좀 여유로울 때 서로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자리를 가져야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올 여름 내수 경기 진작을 위해 야심 찬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것과 더불어 잊지 못할 자리도 좀 가져보고 싶다. 나란 녀석이 좀 뜸해지고 떠나있게 될 때, 조금 더 뇌리에 남아 있고 조금 천천히 잊혀지게 하고 싶다. 탁 까놓고 말해 내가 누군가에게 실존하고 각인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소중한 시간 내서 한 자리에 만났다면 그에 상응하는 짭짤한 수익을 서로에게 안겨다 줄 수 있는 노력을 해야겠다. 이런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노력이 당장은 어색해도 세월의 무게를 견뎌내며 깊이를 더해 가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나는 내 둘레를 진지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는 소리를 적잖이 듣는다. 그 재능(?) 마음껏 발현해보자. 가벼움이 대세인 세태에 내 진지 모드가 안 통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주눅드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지극한 정성은 사람을 감동시킨다는 자세로 하찮은 나란 녀석을 보듬어주는 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보련다. 역설적이지만 약간의 긴장이 사람 사이를 좀 더 매끄럽게 만들어주는 거 같다. 진지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 [小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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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입학 전에 신입생 과제물로 전광용의 『꺼삐딴 리』에 대한 독후감을 쓰면서 “이인국은 물질적으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패배한 사람이다”라고 신랄한 비난을 했다. “대의보다 대세를 따르려는 현실이 아쉽다”고 탄식하기도 했다. 꽤 시일이 지난 오늘날 다시 곱씹어보니 그 비난의 날은 무뎌졌지만 탄식은 더 깊어진 것 같다.


이인국은 도드라진 처세술로 기득권을 누린 지식인이다. 일제강점기 하에서 친일파로, 해방기에는 친소파로, 월남해서는 친미파로 변신하는 삶의 궤적은 현란하다. 모범적인 황국신민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사상범의 입원을 거절하는 장면, 소련군 장교의 후원에 힘입어 아들을 모스크바로 유학 보내는 장면, 미국으로 가기 위해 미대사관 직원에게 고려청자를 선물하는 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영달을 위한 노력이 신기하다 못해 추잡하기까지 하다. 기회주의자가 승승장구하던 시대에 개인의 윤리와 책임은 무엇인가를 음미하게 해준다.


권력에 빌붙다가 어느 순간 그 자신이 권력이 된 기득권의 변절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다. 때로는 혐오하고 때로는 연민하다가 어느 순간 흠모하고 추종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부박한 생존양식을 온몸으로 마다할 자신이 점점 없어진다. 약자의 설움에 눈물 흘리면서도 결국은 강자를 편드는 것이 세상인심이라며 남 탓하기 바쁘다. 힘있는 자 곁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재미를 은연중에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워하면서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게 제일 두렵다.


강원도 영월에 있는 단종의 장릉(莊陵)에는 충의공 엄홍도의 정려각이 있다. 영월 호장이라는 미관말직의 엄홍도는 단종이 시해 당하자 시신을 수습해 선산에 장사 지냈다. 주위에서는 후환을 두려워하며 만류했으나 이를 뿌리치며 “의롭고 착한 일을 하다가 화를 당해도 나는 달게 받겠다(爲善被禍吾所甘心)”라고 의연히 말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엄홍도의 경우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사람들은 그리 오래 기억하지 않을지 모른다. 좋은 일을 해도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은 아니냐며 오해를 살지도 모른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느냐이다. 부끄러울 치(恥)자 셋이면 천박함을 피한다.


지난 4월 16일 열린 서울 길상사 법회의 아름다운 법문이 떠오른다. 법정 스님은 아프리카 탐험에 나섰던 유럽인들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유럽 탐험가가 원주민을 짐꾼 겸 안내인으로 앞세워 쉬지 않고 나아갔다. 사흘째 되는 날 원주민들이 꼼짝도 않고 주저앉아버렸다. 탐험가가 이유를 묻자 원주민은 “우리는 이곳까지 제대로 쉬지도 않고 너무 빨리 왔어요. 이제 우리 영혼이 우리를 따라올 시간을 주기 위해서 이곳에서 기다려야만 합니다”라고 말했다. 속도와 효율성을 내세우다가 영혼을 상실한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하는 우화다. 원주민의 말을 이렇게 변형해보면 어떨까. “우리는 제대로 성찰하지 않고 너무 빨리 변했어요. 이제 우리 영혼이 우리를 따라올 때까지 부끄러워해야만 합니다”라고.


스스로에게 던지는 “부끄럽지 않은가!”라는 질문 하나만으로도 꺼삐딴 리의 역겨움을 제법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 [小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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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fference or Wrongness

잡록 2006. 5. 15. 23:19 |

(대학 새내기 시절 들었던 교양영어 과제물로 냈던 에세이를 발견했다. 영어 에세이에 한자를 섞어 써낸 그 불굴의 정신이란...^^; 이 글의 주제인 에스노센트리즘(ethnocentrism)은 자민족중심주의, 자문화중심주의를 뜻한다)

[ENGLISH JOURNAL - "Ethnocentrism" p 150~153] - 2002년 5월 16일

[ Difference or Wrongness ]
    There are many people in the world. Every man have his own hobby or taste. No

two people think alike. "So many man, so many minds." This proverb describes this

situation. But we often make a mistake that is wrong which unlike one's own thing.

Ethnocentrism also has a weak point from this point of view. Sometimes ethnocentrism

is the point that one's nation unconditionally is superior to other nations.

    For instance, It is wrong that the West mistreats Korean eating dog meat. Though 

we Korean eat dog meat, we don't like to eat mutton or horse meat well like the West.

We and the West enjoy eating pork and beef, however. The people in Islam culture

never eat pork. And Indian hold a cow scared. Are their behavior suspicious really?

What do you think of the fact that France enjoy eating "foie gras" which is widen

through cruel method while they laugh at Korean who enjoy eating dog meat?

    Some people evaluate Picasso`s achievement as the best thing while others Gogh`s.

In this way, It is not right to think "the difference" as "the wrongness". We must get

rid of our prejudices that "myself is always right," and listen to others attentively with

open mind.

    Finally I remember this words that is talked to Korean famous philosopher Lee

Hwang.  "There are many opinions in the world. But why oneself is always right

whereas  others is always  wrong? (天下之義理無窮 豈可是己而非人)." That is very

instructive to people who have prejud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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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후배가 고등학교 친구의 군대 후임으로 들어갔다는 재미난 소식을 접했다. 나는 편지를 쓰면서 말년병장이던 친구에게 원체 대한민국 땅이 좁다 보니 생기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각별한 인연이 아닐까 싶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잘 보살펴주기를 청하면서 고등학교 시절 그 친구가 건넸던 질문에 답을 해봤다.


(전략) 후배를 잘 좀 봐달라는 청을 하다 보니 문득 옛날 이야기가 떠오르는 구나. 그 때 당시 네가 육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을 게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그랬는지는 모르겠다만 너는 흥미로운 사고실험을 제기했었지. “만약 네 아들이 입대할 나이가 되고, 아는 사람 중에 군장성쯤 되는 이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뭐 이런 식의 물음이었던 거 같다. 나는 그런 방면으로 별로 생각해보지 않아서 확답을 피했던 걸로 기억해. 다시금 생각해보니 그 질문은 역으로 생각하면 의외로 간단하게 풀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군장성일 때를 가정해봤어. 아예 모른다면야 모를까 아는 친구의 아들내미인 걸 알고 있다면 후대하지는 못해도 박대하지도 않겠지.


비슷한 의미로 내가 만약 음식점 주인이라면 친구들이 왔을 때 조금이나마 더 많이 얹어주고, 피차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만이라도 깎아주려고 하지 않을까. 또 내가 만약 작가라면 내가 쓴 책을 몇 권쯤은 주위에 나눠 읽으라고 선심 쓰듯이 건네주려고 하지 않을까. 혹은 내가 만약 신문기자라면 일부러 좋은 기사를 써주지는 못해도, 친구들 이름 석자라도 한번 싣는 방향으로 애쓰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 거 같더라. 명백한 불법이 아니고서야 또한 속 보이는 편법이 아니라면야 그 정도의 여유는 인지상정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 어질지는 못해도 모질게 살고 싶지는 않거든.


국사 시간에 나오는 상피제(相避制)를 기억하려나? 일정범위 내의 친족간에는 같은 관청 또는 통속관계에 있는 관청에서 근무할 수 없게 하거나, 연고가 있는 관직에 제수할 수 없게 한 제도라는 뜻인데... 조선시대 지방관을 파견할 때 자신이 자란 곳이나 연고가 있던 곳에는 보내지 않은 것이 대표적인 예지. 이 제도를 선용할 필요가 있을 듯 싶다. 아는 사람에게 잘해주고픈 마음을 마냥 억누를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제도를 통해 발현되는 것을 막는 것이 최선은 못돼도 차선책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에둘러서 말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5년 전 질문에 대한 답을 이제서 해본다.


문제의식을 확장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거스르는 것,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거스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생각해봤어. 아주 큰 맘 먹고 거스를 수야 있겠지만 곧 뒤따를 각박함과 구접스러움에 대한 원망을 견뎌낼 자신이 없기도 하고 말이지. 이런 혼란스러운 질문이 들 때 그저 조금 더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름다운 인연, 선한 인연을 많이 맺는 것이 마냥 좋은 일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후략)



예전에 부친 편지의 일부가 떠오른 까닭은 얼마 전 어느 선배님께 이런 질문을 받았기 때문이다. "네가 성공하거나 높은 지위에 올랐을 때 내가 뭘 좀 부탁하려 한다면 그걸 들어줄 거니?" 나는 "제가 그런 걸 들어줄 만한 자리에 있지 않을 것 같은데요"라며 웃어 넘겼지만 가슴 뜨끔한 질문이었다. 또한 예전 같으면 언짢게 들었을 "학연이 문제라고들 하지만 학연이 너무 좋은 거 같아요"라는 후배의 솔직한 애정 고백에 나도 적잖이 동감하기도 했다.


내가 부러 호인(好人)행세를 하려 들지 않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거스르거나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거스르기란 참 힘들다. 몇몇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용기를 내어 거스른다고 해도 내 자신에 쏟아질 그 실망의 눈초리를 감내할 자신이 많이 줄었다. 나는 팔이 안으로 굽으려 할 때 어떤 균형감각을 발휘할 수 있을까. 내가 지향하는 개인주의, 자유주의는 이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내 파당성(派黨性)은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 건가. 좀 더 부딪혀봐야겠다. - [小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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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인연이 다했다

잡록 2006. 3. 19. 05:55 |
불가 용어로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말이 있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때가 오면 스스로 찾아오고, 때가 되면 스스로 물러간다는 뜻이다. 내 짧았던 연애도 시절인연이 다했다. 나로서는 이게 가장 손쉬운 해명이지만 실은 오롯이 내 탓인 것만 같아 민망하고 부끄럽다.

모든 것은 한때의 시절인연이며, 시절인연이 다해 가는 것을 잡아둘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런 말로 둘러대기에 나는 너무 무심했다. 나는 진리는 시간의 딸이듯이 사랑 또한 시간의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 또한 버젓하지 못한 변명이었다. 결국 내 우려대로 내 부박함은 연인의 섬세한 영혼에 생채기를 남기고 산화했다.

법정스님의 잠언집을 건네고 헤어진 뒤 찾아간 동네모임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노원역에서 태릉입구역까지 만보(漫步)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동력이 소진된 연인에게 내가 굳이 직설법으로 종지부를 찍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탄식했다.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직설법은 여전히, 앞으로도 낯설고 어색할 듯싶다. 어쩌면 내가 먼저 동력이 소진되었는지도 모른다. 그간 한 게 뭐가 있다고.

그 날 만나서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인용하는 것으로 마무리짓도록 하자.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일부다.

아테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가 정무를 보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하루종일 페리클레스를 따라다니며 욕설을 해댔지만 페리클레스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했다. 저녁이 되자 페리클레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계속 욕을 하며 페리클레스의 집 앞까지 좇아왔다. 집에 도착한 페리클레스는 하인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길이 어두우니 횃불을 밝혀 저 사람을 집까지 데려다 주게.”

시인 이온(Ion)은 페리클레스의 그러한 태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페리클레스는 지나치게 교만한 사람이오,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는 속마음을 감추고 저렇게 행동하는 것이오.” 페리클레스가 고상한 척하는 것은 인기를 끌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에 대해 철학자 제논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네도 그처럼 행동해 보게. 그렇게 행동하다 보면 자네도 분명 고매한 인품을 갖출 수 있을 것이네.”


본래 내 것은 없다. 그렇게 다짐해놓고도 있을 때 잘하지 못했다. 정성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천형처럼 짓누른다. 좀 더 유익해지고 싶다. - [小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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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질문

잡록 2006. 3. 17. 01:10 |
<메신저 대화 일부를 발췌한다>

[mannerist] I'll raise you up 님의 말:
어떤 삶을 원해?
[mannerist] I'll raise you up 님의 말:
좋아하는거랑 잘하는거랑 분리시킬거야?
[mannerist] I'll raise you up 님의 말:
이 물음부터 대답하길. =)
[익구닷컴]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님의 말:
아마도 분리되지 않을까 싶어요. 자기가 하는 일을 좋아하면서 말이죠.
[익구닷컴]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님의 말:
일전에 형께서 말씀하셨듯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아주 잘하지 못한다면 나중에는 식상해져버릴 것 같아요.
[mannerist] I'll raise you up 님의 말:
그럼 그 다음
[mannerist] I'll raise you up 님의 말:
밥벌이와 좋아하는일 분리시킬거유?
[익구닷컴]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님의 말:
어쩌면 제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들이 가끔 즐기기 때문에 더 달콤하게 느껴지는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mannerist] I'll raise you up 님의 말:
동감.
[익구닷컴]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님의 말:
제 자신의 깜냥과 역량을 그다지 과대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선택의 폭 이런 건 그다지 생각지 않고 있어요.
[익구닷컴]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님의 말:
밥벌이와 좋아하는 일 분리 문제는 좀 더 고심해야겠지만 아마 분리될 듯 싶어요.
[mannerist] I'll raise you up 님의 말:
명예욕에 대해서는?
[mannerist] I'll raise you up 님의 말:
1. 강함 2. 그저 그러함 3. 약함
[익구닷컴]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님의 말:
강하지만 어찌 보면 그리 신경 안 쓰는 거 같아요. 남의 평가를 되게 중시하면서도 간단히 무시하는 양가적 행동을 하다 보니 말이죠.^^;
[mannerist] I'll raise you up 님의 말:
이정도면 대강 답 나오지? ㅎㅎㅎ
[익구닷컴]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님의 말: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되 내 맘대로 결정한다는 식이거든요. ㅡ.ㅡ;
[익구닷컴]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님의 말:
음 글쎄요 세 질문으로 확답이 나올는지... 덜덜덜


<아 모르겠다.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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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몽에서 깨어날 때

잡록 2006. 3. 10. 02:43 |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沙漠)으로 나는 가자.

- 유치환, 「생명의 書」부분


몸과 마음이 노곤해서 잠깐 졸 때면 종종 내가 깨어났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 나는 기지개를 펴고 일어났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아직도 쿨쿨 자고 있다. 아마도 가위눌린 것처럼 머리는 깨어났는데 몸은 좀 더 잠을 청하고 싶다는 방어기제가 발동한 것인가 보다. 어쩌면 지금 나는 미몽에서 깨어나는 게 마뜩잖아서 미몽의 안락을 꾀하고 있는 건 아닐까. 미몽 속에 있으면서도 미몽을 깨어나고 있다는 착각만 안고 말이다. 이 두터운 각질에 굴하지 않길 바라면서 좀 더 간소해지기로 결심했다.


내가 재물이 넉넉해 일 안하고 유유자적하면서 지낼 수 있는 유한계급(有閑階級)이기를 무던히 꿈꿨다. 세상 통념에 비추어 그리 재미나게 사는 것 같지 않아 보여도 내 자신이 끔찍이도 놀기 좋아한다는 것을 요즘 절감하고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지 않으면 얼마나 기품 있을까, 각박한 세상에 한 잠 늘어지게 자는 여유를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우아할까 늘 갈망한다. 내가 꿈꾸는 문화 향유가 미만한 세상은 실상 속 편하게 놀고 먹는 세상이다. 인간의 진보는 실상 귀차니즘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나는 내 깜냥 전체를 걸고 진지한 고심을 시작했다. 삼월의 미묘한 힘에 이끌려 깊은 시름에 잠겼다. 이제는 마냥 한가로이 세상을 유랑하며 즐길 수 없어졌다. 내 둘레에 사회인이 되어 세상의 번다함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친구들과 그 부잡스러움을 극복하기 위해 제 자신을 갈고 닦느라 여념이 없는 이들을 보면 한없이 부끄럽다. 자꾸만 설렘을 갉아먹는 두려움을 극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내 성정을 잘 아는지라 궁리할 시간을 많이 주고 싶지만 그냥 무턱대고 돈오(頓悟)에 휩싸일 그 날까지 기다릴 짬은 안될 듯싶다. 결단이 임박했다.


삘 꽂히는 대로 가버리고픈 열정을/ 마음에 품지 않은 자가 어디 있으며/ 순간순간의 행복을 놓치고픈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줄 위에서 균형을 잡은 채 계속 나아갈 수 없다면/ 차라리 잠시 내려와서 기술을 더 연마하자(...)//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열기를 잠시 묶어두자/ 불씨만 우선 살려두자/ 활활 타오를 기회는 나중에도 널리고 널렸다.


이 말을 남기고 행정고시 준비에 매진한 그 벗은 지금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으려나. 멀리 뛰기 위해 잠시 움츠리는 냉철한 현실감각, 내일의 당당한 주체로 서기 위해 오늘의 땀방울을 아끼지 않는 자세가 참 멋져 보였는데 말이다. 분명 순간의 행복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순간의 행복을 유보한 만큼 얼마나 더 큰 행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순간의 행복은 말 그대로 대체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부지깽이로 들쑤시지는 것마저 마다하고 그저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잘 간직하는 절제는 가슴 아리다.


고시생이 되기로 결심한다고 해도 반년 정도는 신변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듯싶다. 도저히 이 달콤쌉싸름한 세속세계를 하루아침 사이에 절연한 자신이 없다. 내가 만났던 아름다운 마음들에게 너그러운 양해를 구하고 싶다. 미처 못다 쓴 잡글도 마저 써야겠다. 내가 쓰고 싶거나 공부하고 싶은 목록을 뽑다가 아연실색했다. 공민왕과 신돈정권 연구, 수원화성 답사기, 뮌헨 영화평, 로스 어버전(loss aversion, 손실회피) 개념 적용, 파시즘 연구, 파레토 최적과 소극적 자유주의, 정암 조광조 탐구, 부여/공주 답사기, 왕의 남자 영화평,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비교 대조, 드라마 궁과 조선왕조 추존문제 고찰, 면암 최익현과 보수주의... 어디 그뿐인가. 당분간 읽고 싶은 책도 마음대로 못 볼 것을 감안하면 반년도 모자라다. 이게 미련이고 집착이다.^^;


나는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다. 천국과 지옥이 있을 것 같지 않고, 극락세계와 내세도 도무지 믿기 힘들다. 가끔 농담 삼아 "내가 전생에 무슨 업보가 있다고..."라며 말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한 개인의 죽음은 그 개인에게 우주의 소멸이다"는 명제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 나는 내 우주가 소멸되기 전에 하고 싶은 일도 해보고, 해야 할 일도 해보고, 하면 좋은 일도 해봐야겠는데 게으른 몸뚱이가 늘 머뭇거렸다. 나란 녀석 덕분에 이 우주가 조금은 재미나고 조금은 푸근해졌으면 좋겠다는 욕심은 늘 품고 있다. 이 우주의 은혜를 아는 게 진짜 개인주의자의 미덕일 테니 말이다.^^;


나는 누리기에 견디고, 견디면서도 누리는 일을 찾는 고민에 시달리고 있다. 밥벌이에 대한 고심으로 몸살이 나야하는 내 처지를 원망했다. 그러나 나와 비슷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 오히려 나보다 더 힘겨운 이들의 고통과 함께 하기로 하자. 황인숙 시인처럼 나도 웃음이 헤픈 건 좋아하지만 울음이 헤픈 건 언짢다. 내 자신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이미 충분하고 앞으로도 흥건할 것이다. 자기연민은 굳이 품지 않아도 늘 내 뒤를 쭐레쭐레 따라올 것이다.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고 싶다. 세파에 찌들어 먹고살기 힘들다며 징징거리지 않겠다. 내 눈물은 최대한으로 아껴두도록 하자. - [小鮮]


웃음이 헤픈 건 좋다. 울음이 헤픈 건 화가 치민다. 미감이 상한다. 내 성질이 이상한 건가? 울음은, 눈물은, 정말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상비약처럼 아껴둬야 한다. 정말 그것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순도와 농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이 돼버려서는 안될 눈물을 위해서.
- 황인숙. 2003. 『인숙만필』. 마음산책. 15쪽 '쓰달픈 인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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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김연수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마음산책, 2004)에 나오는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에서 따왔음을 밝힌다>


지난 삼일절에 운전할 줄 아는 친구를 졸라 부여와 공주를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터, 부여박물관, 궁남지, 무령왕릉을 둘러보며 신들린 듯 사진도 찍고 파안대소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2004년 10월 1일 종묘 답사부터 시작된 목조건축에 대한 관심이 고구려 고분벽화나 고려청자, 불화, 불상, 석탑 같은 고미술 전반으로 확장되더니 이제 문화산업이나 문화정책까지 눈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 부여박물관 앞길에 깔린 백제 무늬전돌(文塼)과 무령왕릉 들머리에 세운 벽돌무덤을 본 뜬 홍예문에 왜 이리 설레었던지.


얼마 전 찾았던 서울역사박물관 삼국유사 특별전에서도 무언가 아쉬움을 느끼며 나라면 어떻게 꾸렸을까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저작권법 개정 논란이 일었을 때 고작 이렇게 밖에 해법을 내놓지 못하는지 아쉬웠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고 나니 문화산업이나 문화정책과 관련한 일을 밥벌이로 삼아보면 어떨까 진지하게 고심하기 시작했다. 행정고시를 봐서 문화관광부쪽에서 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제법 구체적인 진로를 놓고 장고에 빠졌다. 번듯한 미래설계 없이 대학 4학년을 맞이한 나로서는 이제 어떤 식으로는 결단을 강요받을 처지에 놓여 있다.


“선거와 관련한 고민은 공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요약된다. 사회활동에서 내가 드러냈던 철학·성격·언행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그게 흔들리면 당락 여부와 상관없이 패배라고 본다. 아름답지 못한 패배다. 그러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지더라도 아름다운 패배일 수 있다. 삶이란 승리보다는 패배의 축적으로 아름다울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결과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 빼앗거나 더럽히는 방식으로는 아름다운 승리가 될 수 없다.”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한겨레21과 나눈 인터뷰에서 위와 같은 구절을 읽고 내 심정도 그와 같다며 설레발 쳤다. 나의 경우 고시와 관련한 고민은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요약된다. 나는 미래의 안락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결연히 내던질 자신이 없다. 나는 끊임없이 세속에 부대끼며 글 읽고 쓰는 걸로 위안을 삼고, 지인들과의 환담에 영감을 얻고 주말에 한 잠 늘어지게 자는 것을 좋아한다.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라는 내 필생의 보배가 빛을 바래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나 나의 호사스러운 사치는 곧 현실의 무게 앞에 짓눌릴 공산이 크다. 프리랜서로 유유자적할 깜냥이 되지 않는 나는 시험 공부, 대학원 진학, 취업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 어떤 일을 하던 내 역량의 보잘것없음에 지치고 실망하지 않도록 절차탁마해야 함은 자명하다. 내가 궁리한 것을 바탕으로 내가 믿고 좋아하는 것을 버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승패를 떠나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남의 입신을 질시하고, 남의 양명에 군침만 흘리지 말고 나란 녀석을 온전히 드러내놓고 견주어야겠다.


『시경(詩經)』에 靡不有初 鮮克有終(미불유초 선극유종)이란 말이 있다. 시작하기는 쉽지만 끝까지 잘 마무리 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시작이야 누구나 곧잘 하지만 끝맺음을 잘 하는 사람은 드물다. 초심을 버리고픈 아찔한 유혹은 늘 내밀하고 지근한 곳에서 맴돈다. 나는 변화무쌍한 삶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지라 일단 한번 정해지면 큰 궤도 수정 없이 밀고 나가고 싶다. 신중하게 결심하고 우직하게 밀어 붙이는 전략이 얼마나 통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두려움이 설렘을 죄다 잠식하기 전에 길을 나서야 한다. 누리기에 견디고, 견디면서도 누릴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을 것이다.


만약 공부를 시작한다면 우선 세 분의 사표(師表)를 두고 차근하게 해나가고 싶다. 삼국사기에서 빠졌거나 고의로 빼 버린 많은 사실들을 삼국유사에 수록해 우리 역사를 자주적으로 해석해 문화의 독창성을 일깨워준 일연 스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대동법 시행에 일생을 걸어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려 한 김육 선생, 우리나라가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했던 김구 선생이 그 분들이다.


아름다운 문화의 향기에 취하겠다는 목표를 위해 무한경쟁의 황량함을 감내하는 이 역설 앞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일주일에 반나절 정도는 책 읽고 잡글 쓰는 짬을 내고, 한달에 하루 정도는 부담 없이 놀러 다닐 자신이 생길 때 스스럼없이 이 귀하디 귀한 시간을 투자할 수 있을 듯싶다. 서약보다 질긴 편애만이 마지막까지 나를 지켜줄 것이다. 조만간에 경기도 여주의 세종대왕릉(英陵)을 찾아가 흐트러지고 이지러진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끝으로 외쳐보자. 靡不有初 鮮克有終! - [小鮮]


추신 - 靡不有初 鮮克有終에서 靡 자가 생소한데 靡(쓰러질 미)는 『시경』에서 '無'로 해석되는 조사라고 한다. 여하간 이 구절은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서 만날 수 있다. 문병 온 문무대왕에게 임종을 앞둔 김유신이 남긴 말 중의 일부다.

신이 보건대 예로부터 대통을 잇는 임금들이 처음에는 잘못하는 일이 없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대의 공적이 하루 아침에 무너져 없어지니 심히 통탄할 일입니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공을 이루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아시며, 수성하는 것 또한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시고, 소인배를 멀리하며 군자를 가까이 하시어, 위로는 조정이 화목하고 아래로는 백성과 만물이 편안하여 화란이 일어나지 않고 나라의 기틀이 무궁하게 된다면 저는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臣觀自古繼體之君, 靡不有初, 鮮克有終, 累世功績, 一朝墮廢, 甚可痛也. 伏願: 殿下, 知成功之不易, 念守成之亦難, 疏遠小人, 親近君子, 使朝廷和於上, 民物安於下, 禍亂不作, 基業無窮, 則臣死且無憾
- 三國史記卷第四十三 列傳第三 金庾信(下)<삼국사기 권 제43 열전 제3 김유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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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人多望愛難成 퇴고

잡록 2006. 2. 22. 21:30 |

퇴고(推敲)는 시문(詩文)을 지을 때 자구(字句)를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는 것을 말한다. 좀 더 확장해서 적절한 표현을 찾기 위해 문장을 다듬고 어휘를 살피는 작업이다. 이태준은 『문장강화』에서 퇴고의 고사를 “우리 문장인에겐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로맨스를 전한다”고 찬했다. 그 내용인즉슨 당시기사(唐詩紀事)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가 절친한 친구였던 이응(李凝)의 집을 방문하고 돌아오던 길에 좋은 시상이 떠올라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이응의 그윽한 거처에 붙여(題李凝幽居)라는 제목의 오언율시는 다음과 같다.


閑居隣竝少(한거린병소)
草徑入荒園(초경입황원)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
僧敲月下門(승고월하문)

한가로이 거처하니 이웃도 드물고
풀에 묻힌 오솔길은 거친 정원으로 통한다.
새는 연못가의 나무 위에 잠들고
스님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린다.


가도는 결구(結句)를 두드리다(敲)로 해야 할지, 밀다(推)로 해야 할지 골똘히 고민하다가 자신을 향해 오는 고관의 행차와 부딪혔다. 가도가 길을 막은 사람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며 서울시장격인 경조윤(京兆尹)의 직위에 있던 한유(韓愈)였다. 한유는 가도가 길을 비키지 못한 까닭을 듣고 잠시 생각하다니 두드릴 고(敲)가 좋겠다고 말했다. 그 후로 둘은 막역한 시우(詩友)가 되었다고 한다.


자신이 쓴 글을 읽어주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얼마나 황송한 기쁨인가. 내 마음을 읽고 봄바람 같은 격려와 가을서리 같은 비판을 해주는 이는 그 얼마나 투명한 설렘인가. 가낭선(賈浪仙)과 한퇴지(韓退之)의 우의를 숭앙하며 연인이 건네 준 권애시를 조심스레 퇴고해봤다.


<퇴고 전>
戀人多望愛難成(연인다망애난성)
靑春不來拜別悔(청춘불래배별회)
珍重交際相悅愛(진중교제상열애)
於焉之間詣而立(어언지간예이립)
연인은 바라는 게 많고 사랑은 이루기 어려우니
젊음은 다시 오지 않고 헤어지면 후회하게 된다.
소중히 여기며 사귀고 서로 아끼고 즐거이 사랑하면
어느새 이립의 때가 오게 될 것이다.


<퇴고 후>
戀人多望愛難成(연인다망애난성)
靑春不停拜別悔(청춘부정배별회)
喜色然後亦破顔(희색연후역파안)
塵世誰知自由心(진세수지자유심)

연인은 바라는 바가 많고 사랑은 이루기 어려우니
젊음은 머무르지 않고 헤어지면 후회하게 된다.
연인이 기뻐한 후에 나 또한 웃으니
티끌세상에 누가 자유로운 마음을 헤아릴까.


1행의 望자는 바라보다의 의미도 있지만 願자는 원하다, 소망하다의 의미로 많이 쓰이니 뜻이 보다 명료하기는 하다. 하지만 다망(多望)이라는 말은 "바라는 바가 많음, 꿈이 많음"이라는 뜻이니 그냥 놔둬도 무방할 듯 싶다. 이럴 때는 독음을 입으로 읊조려서 더 달라붙는 걸 선택하는 수가 있는데 이응(ㅇ) 받침이 한결 부드럽다. 2행에서 올 래(來)자 대신 머무를 정(停)자를 쓴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초고의 3, 4행은 다소 산문적이어서 조금 문학성을 높이기 위해 이것저것 뒤적거려봤다. 3행은 송나라 재상이었던 범중엄(范仲淹)의 악양루기(岳陽樓記)에서 천하 사람들이 근심하기 전에 근심하고, 천하 사람들이 즐거워 한 다음에 즐거워해야 한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는 구절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처음에는 자구만 좀 수정해서 후연인지소이소(後戀人之笑而笑)라고 해서 "연인이 웃고 난 다음에 웃고"라고 했다가 좀 더 변형해 봤다.


4행은 조광조의 영금(詠琴)이란 시 4행을 따왔다. 조광조가 외로움을 노래한 시구를 이런 데 훔쳐 와서 모종의 자부심을 표현하니 좀 민망하다.^^; “때를 만나 천지가 모두 뜻을 함께 하더니/ 운이 다하니 영웅도 어쩔 수 없구나/ 백성을 사랑한 정의일 뿐 내 잘못이 없나니/ 나라를 위한 참된 마음을 그 누가 알아주랴(時來天地皆同力 運去英雄不自謀 愛民正義我無失 爲國丹心誰有知)”는 전봉준의 절명시(絶命詩) 4행을 고쳐서 多情丹心誰有知 혹은 自由丹心誰有知라고 써볼까 했으나 고심 끝에 조광조의 시구를 채택했다. 백아절현(伯牙絶絃) 고사에서 나온 조광조 시 전문은 다음과 같다.


瑤琴一彈千年調(요금일탄천년조)
聾俗紛紛但廳音(농속분분단청음)
怊悵鐘期歿已久(초창종기몰이구)
世間誰知伯牙心(세간수지백아심)

천년의 가락을 거문고에 실어 보지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만 듣기만 하네.
슬프도다 종자기 죽은 지 이미 오래되었고
이 세상에 뉘 있어 백아의 마음 알아주리.


플라톤은 사람은 사랑할 때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했지만 아무나 되는 건 아닌가 보다. 한바탕 씨름했더니 배가 고프다.^^ - [小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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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人多望愛難成

잡록 2006. 2. 21. 02:15 |
자줏빛 바윗가에
잡은 손 암소를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라.



나는 헌화가(獻花歌)의 3행의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는 조건절과 4행의 꽃을 바친다는 은유적 표현을 맛깔스럽게 여긴다. 내가 헌화가를 좋아하는 까닭은 나중에 나이를 먹어서도 이렇게 낭만적이고 천진난만한 삶을 꾸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절벽 위의 꽃을 꺾어다 바칠 수 있는 열정보다 대단하지만 그보다 더 부러운 것은 노래 하나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 짙은 여운을 남기는 풍취다. 내가 애틋하게 간직하고 있던 헌화가를 써먹을 날이 오리라 믿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헌화가(獻花歌)의 마음을 그리며 내가 선물했던 헌화가 패러디는 다음과 같다.


번잡한 세상사에
읽던 책 쓰던 글 미루게 하시고
나를 아니 맵살스러워하신다면
술잔 따라 나누오리라.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되었고, 세상의 통상관념을 지그시 무시해가며 알콩달콩 지내고 있다. 내가 편애하는 것들이 시나브로 늘어가서 두렵고, 죄다 책임질 수 있다며 호방하게 웃어 넘길 배짱은 없다. 다만 선한 인연을 위해 내 자신을 절차탁마하고 싶다. 연인은 주자의 권학시(勸學詩)를 패러디 해 내게 권애시(勸愛詩)를 선보였다.


戀人多望愛難成(연인다망애난성)
靑春不來拜別悔(청춘불래배별회)
珍重交際相悅愛(진중교제상열애)
於焉之間詣而立(어언지간예이립)

연인은 바라는 게 많고 사랑은 이루기 어려우니
젊음은 다시 오지 않고 헤어지면 후회하게 된다.
소중히 여기며 사귀고 서로 아끼고 즐거이 사랑하면
어느새 이립의 때가 오게 될 것이다.


도입부 모티브는 주자의 우성(偶成)이라는 칠언절구에서 따왔다. 내가 중학교 한문시간에 배운 뒤 즐겨 읊는 한시인지라 연인께서 패러디 대상으로 선정해준 셈이다. 내가 헌화가 패러디할 때는 내가 좋아서 한 건데 이번에도 내가 좋아하는 시를 선물로 받았으니 망극한 일이다. 우성(偶成)은 우연히 짓는다는 뜻으로 즉흥시를 말한다. 3, 4행의 미려한 구절을 우연히 지었다고 하니 그 겸손이 오히려 얄밉다.^^; 연인이 곱게 써 보내준 시는 힘써서 지었다라는 뜻으로 면성(勉成)이라고 불러봄직 하다. 참고로 주자의 권학시는 다음과 같다.


少年易老學難成(소년이로학난성)
一寸光陰不可輕(일촌광음불가경)
未覺池塘春草夢(미각지당춘초몽)
階前梧葉已秋聲(계전오엽이추성)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짧은 시간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
연못가의 봄 풀이 채 꿈도 깨기 전에
계단 앞 오동나무 잎은 벌써 가을소리를 내는구나.


연인은 내 소소한 일상을 궁금해하지만 사실 이런 것도 얼마든지 자질구레한 일상으로 간직할 수 있을 게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최고위원이 신중하고 점잖은 행보 때문에 "김진지"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게 왜이리 부러운지 모르겠다.^^; 가벼워서 어디로 날라 가야할지 모르는 세태에 진중한 교제를 꿈꾸는 건 아름다운 사치다. 戀人多望愛難成(연인다망애난성)... 참 명문이다.^^ - [小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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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선한 인연을 많이 맺는 것이 제 삶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인연을 위해 제 자신을 절차탁마하려는 욕심도 품어봤습니다. 오랜 기간 제가 몸담은 솔로만세당은 제 허물을 보듬어주시고, 제 성장통을 감내해주셨습니다. 솔로만세당이 지금보다 더 옹골찬 모습으로 보무당당하길 바라마지않습니다만 연인들에게 좀 더 넉넉했으면 좋겠습니다. 연인들이 솔로만세당을 특별히 미워하지 않듯이 솔로만세당 역시 연인들의 앞길을 축원하는 여유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조직의 논리를 위한답시고 증오를 부추기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애호하는 솔로만세당의 정신에 맞지 않을 겁니다(물론 웃자고 해본 말입니다^^).


저의 탈당이 너무 전격적이라 많은 분들이 놀라셨을 줄로 압니다. 적잖이 섭섭하셨을 텐데 등을 토닥여주시며 격려를 해주시던 따뜻한 마음들에 감복했습니다. 소개팅을 흔쾌히 알아봐 주시던 동지, 때로는 추상같은 질책으로 정신을 번쩍 들게 해주시던 동지, 동병상련으로 얼싸안고 침묵의 위안을 건네던 동지... 모두 가슴 깊이 고맙습니다. 당사를 나서는 순간부터 여러분들의 뜨거운 정성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지겠습니다.


저는 영원의 달콤함보다는 덧없음의 쌉싸름함을 더 사랑합니다. 또한 절대자의 굳건함보다는 상대주의의 허무에서 노닐기를 즐깁니다. 무상함과 적요함을 노래하는 제게 사랑이란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럼없이 탈당을 하는 까닭은 제 지혜로움을 기대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다만 이 시련과 생경함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기에 소금 같은 의지를 벼려봅니다. 아무쪼록 제 비루함 앞에 억지로 인고하지 말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제 물러납니다. 아주 가끔만 뒤돌아보고 채우기 위해 비우는 데 열중하겠습니다. 제가 편애하는 것들이 시나브로 늘어가서 두렵습니다. 죄다 책임질 수 있다며 호방하게 웃어 넘길 배짱은 없습니다. 그러나 천년을 늙어도 가락을 잃지 않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이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중자애하겠습니다. 이 세상에 한 뼘의 자유라도 더 넓히는데 일조하겠습니다. 자주 제 둘레에 연민을 품겠습니다. 더 많이 부끄러워하겠습니다.


고독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가려질 뿐입니다. 그래서 사랑합니다. 너무 즐거워서 죄송합니다. - [小鮮]


번잡한 세상사에
읽던 책 쓰던 글 미루게 하시고
나를 아니 맵살스러워하신다면
술잔 따라 나누오리라.

- 헌화가(獻花歌)의 마음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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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휴가 나온 친구들을 만나러 노원역을 향하는 길이었다. 집에서 다섯 정거장인 짧은 거리였지만 챙겨온 책을 꺼내 들었다. 한국 명수필 모음집이다. 맛깔스런 문장들을 슬쩍 내 것으로 만들어봐야겠다는 유혹이 아찔했다.^^;

그러던 중에 상인 한 분이 1000원짜리 장갑을 팔기 시작했다. 전철을 타고 다니며 똑같은 장갑을 팔고 있는 것을 여러 번 보기는 했으나 왠지 모르게 마음이 뭉클했다. 아마도 내 손에 쥐어진 책과의 부조화 때문인 것 같다. 책 뒤표지를 넘겨보니 12000원이라 써있다.

1000원짜리 장갑과 12000원짜리 책, 저 상인 분은 이 전동차 몇 량을 헤매어야 내 손에 들린 책 한 권을 장만할 수 있을까. 과연 이 땅에 자기가 읽고 싶은 책 맘놓고 사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는 내가 읽는 책값을 하고 있는 건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번다하고 부잡스런 내 생활이 부끄러워졌다. 내 삶이 너무 평온하다 보니 지적 허영심만 들어 입만 놀릴 줄 아는 건 아닌지 참괴하다. 늘 모자라다고 투정부렸지만 실상 제 깜냥에 비해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 공짜가 없는 세상이라고 외치고 다니면서도 거저 얻은 것은 적당히 합리화했다.

세상에 넘쳐나는 눈물의 상당량이 눈물을 흘리는 당사자를 위한 것이고, 세상의 추함 가운데 하나가 자기연민이라고 한다(이 표현은 고종석 선생님의 『인숙만필』발문에서 훔쳐왔음을 밝힌다). 가끔은 남을 위해 눈물 흘리고 남을 위해 연민을 보듬고 싶다. 나는 내가 자주 연민을 품길 바란다.

금아 피천득 선생은 “젊음은 언제나 한결같이 아름답다”고 예찬했지만 이 말은 절반만 맞는 게 아닐까. 성찰하고 긴장하지 않는 젊음, 치열하되 재미나지 않은 젊음은 “언제나 한결같이” 아름다울 수 없으리라. 우리는 아주 가끔 육체는 늙어도 정신은 청춘인 사람들을 만난다. 젊음을 아껴 써야 하는 이유는 시기가 유한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가능성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내가 읽어 치운 책값을 하도록 노력해보자. 간명한 듯 지난하다. 명리(名利)에 허겁지겁 길들지 말고, 빈한(貧寒)에 속절없이 굽히지 않기를. 내 선한 인연들을 더 값지게 간직할 수 있기를! 덧붙이며, 새해에는 서러운 눈물들이 좀 줄었으면 좋겠다. - [憂弱]


이상! 빛나는 귀중한 이상, 이것은 청춘의 누리는 바 특권이다. 그들은 순진한지라 감동하기 쉽고, 그들은 점염(點染)이 적은지라 죄악에 병들지 아니하였고, 그들은 앞이 긴지라 착목(着目)하는 곳이 원대하고, 그들은 피가 더운지라 실현에 대한 자신과 용기가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상의 보배를 능히 품으며, 그들의 이상은 아름답고 소담스러운 열매를 맺어, 우리 인생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 민태원, 『청춘예찬』中(전철 안에서 읽던 책의 한 구절^^;)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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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늦잠에서 간신히 깨자마자 강아지 산책을 나섰다. 간밤에 내린 비로 낙엽길이 펼쳐져 있었다. 강아지 목줄에 걸린 방울이 딸랑거리는 소리와 낙엽들을 헤집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 낙엽길을 거닐다 보니 마음이 여려진다. 여하간 역시 가을은 시름과 상념에 잠기기 좋은 계절이다. 이 가을 상념을 착한 이야기와 좋은 생각들을 나누는데 쓰기보다는 남 험담하고, 내 자신의 경솔함을 보는 데 치중하다보니 민망할 따름이다. 문득 [논어]의 樂而不淫 哀而不傷(낙이불음 애이불상, 즐기되 지나치게 빠지지 말고, 슬퍼하되 자신을 상하게 하지 말라)이라는 구절을 떠올리며 무릎을 쳤다.


어제 있었던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오매불망 응원하던 프로토스 유저가 우승을 차지했다. 오영종 선수에게 깊은 고마움을 표한다.^^ 또한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했던 테란의 황제 임요환 선수도 무척 멋졌다. 5판 3선승제에서 5경기까지 이어지는 대혈전을 살 떨리는 기분으로 지켜봤다. 경기 중계를 보면서 짬짬이 읽으려고 책을 옆에 뒀으나 경기가 끝날 때까지 단 한번도 펴보지 못할 정도로 안절부절못했다. 문득 무언가를 편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생각했다. 내 편, 내가 응원하는 것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 성취의 희열을 맛보기 전에 애간장이 새카맣게 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프로토스 종족이 엄혹한 시절 속에 맞이하는 환희는 정말 가슴 뿌듯했지만 낙이불음(樂而不淫)을 떠올렸다.


요근래 대학교에서 일이 좀 있었다. 사익추구를 공익으로 멋들어지게 포장하는 꼴이 영 마뜩잖아서 시비도 좀 걸었다. 사람 모이는 곳은 어디든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고, 도덕군자와 소인배간의 건곤일척이 아니라 고만고만한 사람들 간의 티격태격임을 깨달았다. 새삼 권력의 유혹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에 몸서리 쳤고,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것 너머를 이야기하는 오버가 얼마나 구역질나는지를 절감했다. 남 흉보느라 내 자신을 다잡는 것을 소홀히 했고, 험담하는 재미에 내 옹졸함과 부박함이 커지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이번 사태를 겪을수록 사람에 대한 실망을 많이 한 것 같다. 이 슬픔과 원망에 너무 상심하지 말도록 하자. 애이불상(哀而不傷)을 좀 더 확장해서 적용하면 좋겠다. 내 자신을 상하게 할 만큼 애상에 잠기지 않는 것과 더불어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더라도 깊은 생채기는 내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행복할 때 절제하지 못하면 뒤따르는 고통이 더 따가운 법이다. 남을 향해 회초리를 들 때 그 매질은 고스란히 내 가슴을 내리친다. 조금 빈 듯이, 약간은 주저하듯이, 덜 채운 모습으로 세파를 헤쳐나가면 어떨까. 기뻐할 때 한 발짝 물러설 수 있고, 가슴이 미어질 때 의연하게 추스를 수 있으리라. 즐거움에 겨워 사시는 분들, 자신이나 남에 대한 혐오 혹은 안쓰러움에 시달리시는 분들께 樂而不淫 哀而不傷을 권한다. - [憂弱]


니체는 말하기를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심연(深淵)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면 심연이 당신의 영혼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황금을 얻고자 싸운 사람은 황금에 먹히지 않도록, 권력에 집착한 사람은 권력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범인 잡는 데 종사한 사람은 자기 마음이 범인 닮아서 사악해지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가 명심할 것은 공산당과 싸운다면서 공산당의 수법을 닮아가는 일이 절대로 없도록 할 일이다.

- 김대중, 2000, 『김대중 옥중서신』, 한울, 348쪽.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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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MBC 대학가요제에서 동률공을 만나서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김동률은 내가 팬임을 천명한 최초의 가수이자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가수이다. 그는 내가 여느 사람들처럼 누군가의 음악을 좋아하고, 그 사람의 팬이 된다는 보편적인 감정을 나도 느껴볼 수 있게 해준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다. 그를 꼭 동률공이라 높여 부르는 것도 이런 나의 호감의 표현이다. 동률공이 KBS 라디오 ‘김동률의 뮤직 아일랜드’ 디제이로 선임되고, MBC TV 수요예술무대 후속으로 ‘김동률의 포유’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자로도 나서게 된다고 한다. 그간의 적조함이 무색할 만큼 왕성한 활동이다. 반갑다. 죄다 자정 시간대라 수면시간이 좀 줄기는 하겠다만서도.^^;


드디어 개관하는 국립중앙박물관도 참 기쁜 소식이다. 요즘 들어 우리 문화유산과 미술사학 쪽에 부쩍 관심이 높아졌지만 다 둘러보려면 한나절은 족히 걸린다는 그 위용 앞에 조금 주눅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감각과 직관을 자유롭게 열어놓고 그저 유구한 역사를 음미할 수 있다면 무척 좋은 기회일 것 같다. 벼르고 있던 만큼 “유물원정대”를 꾸려서 자주 찾아갈 예정이다. 서로 유물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몰라도 이게 좋았다느니, 이런 느낌을 받았다느니 하면서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는 광경을 얼마나 그려왔던가. 국립중앙박물관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할 때까지 애면글면 노심초사하셨을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드린다.


떠남이 아쉬운 가을에 이렇게 돌아오는 것들이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돌아오는 존재들 덕분에 또 스산해진 마음을 덥혀준다. 돌아옴이 떠남의 아쉬움을 채워주는 용도로만 쓰여서는 곤란하겠지만... 상당부분 그렇게 사용하는 것을 억지로 부인하지는 말자. 이 정도만 해도 고독의 침투에 우아하게 대처할 수 있으리라. 고독 때문에 괴롭다고 한다. 모든 이에게 나름대로 숨겨져 있는 고독을 보자. 고독 위에 사랑을 심자. 다시 돌아오는 모든 것들에 따스한 격려를! - [憂弱]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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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떠나기 좋은 계절인 모양이다. 쓸쓸함을 만끽하기도 좋다. 누군가 나를 잊었다고 한탄하기 전에 내가 잊은 누군가를 먼저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우연히 접한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이라는 김탁환의 소설 제목이 머릿속을 맴돈다. 정호승의 시구대로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10월 13일 저녁에 열린 경영대 학생대표자회의(이하 “경학대회”)를 참관하면서 기쁘면서도 섭섭했다. 경영대 학생회칙이 대폭 개정된다는 소리에 적잖이 호기심을 가지며 예의주시하다가 결국 회의장까지 찾아갔다. 현 경영대 학생회칙이 비록 보잘 것 없고, 허점투성이지만 이 마저도 많은 이들의 노고 끝에 완성되었다. 보다 나은 방향으로 개정할 수 있도록 중지를 모으되, 회칙 한 조항 한 조항이 고심의 산물이었음을 존중해주었으면 하는 욕심도 솔직히 있었다. 수년간 멸실되어 있던 경영대 학생회칙을 이 사람 저 사람 번거롭게 하며 어렵사리 제정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학생회칙 조항들이 여기저기 뜯겨 나가는데 마냥 박수칠 만큼 모질지도 못하다.


그러나 이런 나의 감상과는 달리 경영대 학생회칙은 이미 나를 비롯한 회칙제정위원들의 손을 떠났다. 앞으로 어떤 예기치 못한 변화와 의도치 않은 귀결을 맞을지도 모른다. 후임자들 나름의 창조를 통해 다시 태어날 테니 말이다. 내심 “나만 하겠어?” 싶었던 후배들은 서로 다른 고민을 나누며 척척 잘 해나가서 기뻤지만, 내 빈자리를 결국 누군가 부지런히 채워나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니 한편으로는 섭섭했다. 후임자들이 잘하는 모습에 격려하고 축복하겠지만 콧잔등이 시린 애잔함마저 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후배들을 믿고 그 자리에 들어가지 않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경학대회 대의원 정족수를 예년에 비해 대폭 줄인 관계로 고작 6명이서 경영대 학생회칙을 고치는 게 아무리 탐탁지 않고, 못마땅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결국 굳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참지 못해 몇 마디 내뱉었다. 결국 회칙 개정 논의는 다음으로 미뤄졌다. 원하는 바를 이뤘지만 가슴 한 구석은 텅 빈 듯 했다. 발그레해진 얼굴로 회의장을 나서며 안도감보다는 자괴감이 압도했다. 태클 거는 대신 그저 인고(忍苦)할 수는 없었을까. 질시와 불신을 억누르고 내 자신을 다시금 다잡는 것은 어땠을까.


작년 이맘때 학생회장 임기 종료를 앞두고 걷잡을 수 없는 레임덕(?)에 시달렸다. 공허감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궁궐 답사가 인연이 되어 요즘은 문화유산 전반에 대해 깊은 애정과 관심을 쏟고 있기도 하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주문처럼 외웠지만 가을밤을 제법 뒤척였다. 늘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하면서도 잊혀진다는 것이 너무 두렵고 아쉬워 어찌나 몸서리 쳤던가.


그 후 1년, 많은 것을 비우고 제법 가벼워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전히 한 움큼씩 쥐고 있던 것을 놓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금 더 버려야겠다. 그리고 조금 더 물러나야겠다. 지워짐으로써 자유롭고, 잊혀짐으로써 풍성해지기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내던지고, 베어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세월의 무게는 영원할 것만 같은 것도 녹슬게 만들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도 낯설게 만든다. 가을바람에 나부끼며 끝내는 으스러지는 낙엽이 된다고 서글퍼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도 아름답지만, 어쩔 수 없이 회한을 짙게 남기고 떠밀려 가는 이의 퇴장도 그리 추잡한 것만은 아니다. 설령 미련이 남는다고 머뭇거리고 있으면 좀 어떤가. 어차피 다들 가을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이 될 터이니 말이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제법 스산해진 날씨에 옷깃을 여미다가 문득 凡事留人情 後來好相見(범사유인정 후래호상견)을 떠올렸다. 모든 일에 인정을 남겨 두면, 다음에 좋은 낯으로 대하게 된다는 말이 참 와 닿는다. 언제 어떻게 떠나고, 잊혀지고, 지워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남을 서운하게 했던 일들이 마음에 걸린다. 함부로 내뱉었던 말들이 민망하다. 남에게 민폐 끼치지 않는 삶을 갈구하는 나로서는 본의 아니게 나로 인해 상심했을 많은 이들을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남 눈의 티끌을 보며 뿌듯해 하면서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했음을 반성한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하나하나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고 내 자신을 다스리는 데 더 정성을 쏟아야겠다. 가을에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 시달리지 말자. 대신 지금 가고 있는 길에 감사하고, 함께 가는 이들에게 정다운 인사도 건네 볼 일이다. 떠남이 달콤하려면 머무는 시간들이 살갑고 진득해야한다. - [憂弱]

함께 영원히 할 수 없음을 슬퍼 말고
잠시라도 함께 있을 수 있음을 기뻐하고

- 한용운, [인연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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