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시모집제도가 확대된 원년에 수시모집으로 대학을 가게 된 그 수혜자다.
서류전형에서 자기소개서가 있는데 수시의 확산과 더불어 한바탕 열풍이 불었다.
4가지 문항에 대해 얼마 되지도 않는 인생을 다 헤집으며 글을 쥐어 짜냈다.
조금 과장과 미화가 심하기도 해서 친구들에게 공개했을 때
어찌나 웃음거리가 되었는지 지금 돌이켜보면 즐거운 풍경이다.
경영학과와 사회학과용으로 두 가지가 만들어졌는데...
갑작스레 정해진 경영학과 선택이 난감했는지...
4번 문항의 그 궁색함에서 경영에 대한 애정과 관심보다는
‘빵’에 눈이 멀어 선택하게 되었음을 역설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아무튼 경영학과용으로 썼던 것을 주로 소개하고 사회학과용을 조금 붙인다.
수시모집이 도입되었을 때 여러 가지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이제 어느 정도 자리 잡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당시 혼란스러웠던 수시모집을 일관되게 옹호했던 그 때가 생각난다. 6(^.^)9


1.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장점(특성 혹은 능력)과 보완, 발전시켜야 할 단점(특성 혹은 능력)에 대하여 기술하십시오(자신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었던 사례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설명하십시오).



~ 저는 제 자신을 ‘햄릿’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햄릿과 저의 장단점이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햄릿은 소심해서 행동하기 전에 몇 번이고 생각해 보는 타입이지만 조심스럽게 상황을 파악해 가며 끝내 자신의 결심을 이루고 마는 신중함과 진지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햄릿을 단순히 내성적이고 감상적인 인물로 간주하지 않고, 자기가 할 바를 알고 그에 따라 능동적 의지로 산 인물로 평가합니다. 저도 햄릿처럼 항상 고개가 갸우뚱한 사고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단순판단보다는 종합판단, 현상보다는 본질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할 수 있습니다. ‘사회의 변혁과 진보는 너와 같은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담임 선생님 말씀 한마디에 큰 용기를 얻고 있는 저의 장점입니다. 하지만 고교시절 문학, 철학, 심리학, 정치, 경제 등 다방면에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보였던 관계로 주관이 너무 강해졌다는 점이 저의 단점이 아닐까 합니다. 박학다식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몇 푼의 지식을 마치 전부인양 내세우다 보니 친구 관계가 원만치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많은 대화시간을 갖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동호회 활동이나 토론 소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저의 이런 단점을 고쳐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결성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의 ‘PSC'(philo sophos club)라는 토론 소모임에 활동한 것이 다양한 의견을 귀기울이고, 아집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2. 고등학교 재학기간 중 학업 이외의 활동영역(사회봉사활동, 교내, 외 클럽활동, 단체활동, 취미활동, 문화활동)에서 가장 소중했던 경험을 소개하고, 이러한 경험이 자신의 성장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기술하십시오.



~ 고등학교 때 교지편집부원으로 참여했던 활동은 사회에 대한 안목을 넓혀주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체험으로 다가옵니다. 저는 ‘새천년 편집부’ 첫 야심작 “인간존엄성에 대한 논의”를 기획하고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인간 존엄성에 위배되는 여러 분야의 문제들-즉 남녀 차별, 빈부 격차, 인간 소외, 복제 인간 등등의 사회적 문제들을 진단하고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원고 마감을 몇 번이고 미뤄가면서 인간의 실질적 존엄성은 어떻게 지켜지는가 하는 의문에 해답을 찾을 때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부조리한 현실과 모순으로 가득 찬 사회 구조 속에 방치된 인간의 존엄성 문제는 저의 정의감에 불을 지피기에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자료 조사를 하며 사회의 부조리한 면면을 알게 되었을 때 분개하기도 하였고, 해결 방안에 대해 고민하면서 너무나 많은 정신적 성장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자부합니다. 인간의 삶에 가장 기본이 되어야할 가치에서부터 사회적으로 반드시 지켜져야할 인간의 가치까지 폭넓게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른봄에 시작하여 첫눈이 내리던 겨울에 탈고할 수 있었던 ‘인간의 존엄성’ 문제는 인간과 사회를 향한 저의 뜨거운 애정과 정열이 담긴 처녀작이 되었습니다. 정직함이 손해로 이어지지 않는 사회, 성실함이 그 자체로 존중되는 사회, 정의로운 인간이 소외당하지 않는 사회, 휴머니즘이 옹호되는 사회에 대한 염원이 알알이 담긴 작품이었다고 자부합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비전은 환각이다”라고 독일의 어느 경영자가 말했습니다. 이 말처럼 이상은 머리로만 생각하고, 입으로만 부르짖는 것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배우려는 경영은 결국 사람을 통한 일입니다. 고생 고생해서 일구어낸 편집부 기획은 사회의 공동선을 이루려는 의식을 가진 경영학도로서의 포부를 다지는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 사회학과용에서는 후반부를 이렇게 채웠다.

앎의 추구도 중요하지만, “정의는 행위 속의 진실이다”라고 디즈레일리가 말했듯이, 사회적 실천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해준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배우려는 사회학은 결국 사람을 통한 일입니다. 고생 고생해서 일구어낸 편집부 기획은 사회의 공동선을 이루려는 의식을 가진 사회학도로서의 포부를 다지는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이게 뭐 하는 짓거리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 당시... 아니 지금도 자기소개서 쓰는 친구들은 알리라. 지망 학과가 여러 개일 때는 약간의 문맥 다듬기로 여러장 지어내야했던 고육지책을 말이다...^^;)



3.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사건이나 경험을 설명하고, 그것이 자신의 가치관 혹은 인생관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기술하십시오.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은 ‘도덕경’과의 만남입니다. 도덕경을 처음 접한 것은 중1 때였습니다. 그저 잔잔한 시를 읽듯이 몇몇 핵심어구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마냥 좋았습니다. 문득 생각나거나, 힘겨운 일이 있을 때 종종 꺼내 들어 번잡한 세상일을 놓아두는 일종의 도피처로 애용한 것 같아 노자님께는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오죽했으면 고등학교 때 학생회장 선거에 입후보하여 마땅한 선거문구를 고민하다가 정한 것이 바로 “上善若水”였습니다. 비록 고배를 마셨지만 “물 같은 학생회”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그 때의 경험은 정말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아직 “無爲”의 개념도 채 익히지 못한 저이지만 무위란 인간들의 인위적 행위, 과장된 행위, 쓸데없는 행위, 함부로 하는 행위 등 일체의 부자연스러운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도덕경의 그늘로 들어간 이후로 저는 “爲無而無不爲”의 경지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즉, 아무 것도 하지 않으나 이루지 않는 것이 없는 경지, 너무나 자연스러워 ‘함이 없는 함’을 실천하는 경지 말입니다. 저는 이 무위를 체득하여 경영학도에게 요구되는 자유로운 상상력과 균형감각을 키워나갈 것입니다. 특히 “내 몸 바쳐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 가히 세상을 떠맡을 수 있다.” (愛以身爲天下 若可託天下)라는 구절은 지식정보사회의 최고 경영자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가치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가치관을 더더욱 올곧게 형성하여 항상 인간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천력을 겸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4. 전공선택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경험(인물, 사건, 서적 등)을 구체적으로 기술하십시오.



~ 제가 경영학과를 선택하게 된 것에 영향을 준 것은 우습게도 신문입니다. 중3때부터 신문을 꾸준히 읽어 왔습니다. 정치, 사회, 문화면까지 자세히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훑어보고 의문도 갖고 교훈도 얻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주일치를 모아서 보기를 좋아하는 제가 신문을 보려고 정리하면서 하는 일이 언제나 경제 섹션을 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인즉슨 아는 것이 없어 읽어도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IMF 시대가 열리고 경제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놓아졌지만 최근까지도 경제 섹션을 빼는 일을 해왔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경제신문’을 하나 더 보게 되었는데 읽자니 모르겠고, 그냥 두자니 아까운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내심 화가 났습니다. 그래도 친구들에게 ‘박학다식의 표본’으로 추앙 받고(?) 선생님마저 ‘최박사’라고 불러주시는 저의 자존심에 여간 큰 상처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언제나 미지의 분야로 남아있던 분야에 한번 도전해보자는 오기가 진로마저 경영학과를 선택하게 해주었습니다. “인생은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라는 초등학교 때부터의 이상을 고교시절 내내 고민해보았습니다. 과연 어렸을 적 꿈꾸었던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할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경영학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올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합리적이고 창의적인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연구하는 경영학의 매력은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신문 덕분에 이제 막 경영이란 어떤 것이며, 경제 돌아가는 것을 생각하는 얼뜨기 경영학도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저의 전공에 애정을 가지고 헌신할 것입니다.




---> 정말 경영학과를 선택하게 된 계기를 묻는 이 질문은 쓸 말이 없었다. 고작 이런 말을 쓸 수밖에 없었지만 이건 사실이다. 나를 경영학도로 이끈 두 가지는 ‘빵’에 마냥 초연할 수 없다는 현실인식과 미지의 분야에 대한 정복욕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좋아하는 것은 본업보다는 부업으로만 추구되었던 나의 지난 경험들도 바탕이 되었겠지만... (가령 수학을 가장 싫어했지만, 가장 못하는 과목이라 수능 전략상 3년 간 수학에만 매달려야했던 고행 같은 것들...)


이에 반해 사회학과용은 꽤 진솔함이 묻어 나있다. 어릴 적 꿈이 그 뜻도 모르는 ‘사회학자’였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지원을 해봤던 사회학과이지만 그 마음만은 진정성이 가득했다. 경영학도로 제법 시달린 지금에서는 사회학도로서의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고,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을 비교적 다행이라고 여기는 비겁한 망각을 꾀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 제가 사회학과를 선택하게 된 것에 영향을 준 것은 우습게도 어렸을 적의 일기장입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방안을 정리하다가 큰 상자 구석에 처박혀 있던 초등학교 시절의 일기장 몇 권이 저의 진로를 정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시의 유치한 사색의 흔적들을 곱씹으며 회상하다가 제 눈을 고정시킨 다짐 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인생은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제 어릴 적 꿈이 ‘사회학자’였음이 떠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철없던 시절, 사회학자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존재’라는 문구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힘있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제 머릿속의 사회학자는 너무나 작은 존재가 되어버리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그 후 고교시절 내내 초등학교 때의 다짐이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생활하며 ‘모범생’ 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그저 사회에 잘 적응해서 살아간다는 것은 저에게는 너무나 따분한 일이었습니다.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고픈 욕구’는 언제나 제 가슴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사회학과로 제 길을 정했을 때 부모님의 만류와 ‘굶어 죽기 십상’ 이라는 친구들의 핀잔보다도 옛 꿈을 찾았다는 만족감이 너무나 컸습니다. 사회를 이해하는 다양한 틀을 제공하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제반현상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사회학의 매력은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사회학을 배워서 보다 많은 민주주의의 원리가 실현되고 확장되는 사회 환경을 조성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어릴 적 동경해 마지않았던 그 ‘거인’이 되고자 합니다.



내가 썼던 이 자기소개서 대학으로 가는 길에 그다지 많은 도움은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배점도 크지 않았고 거의 요식적인 절차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나 나를 돌아보며 대학인으로서의 꿈을 키우던 유쾌한 경험이었다.
이런저런 자기소개에서 별로 기억나는 역사도 없고, 자랑할만한 것도 없는 인생은 허전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수입하고 치열하게 싸워야겠지.
자기소개거리가 메마르지 않는 인생은 가슴 뛰는 인생일 것이다. 6(^.^)9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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